과제구분 | 한국학 기초연구/고전자료의 현대화 연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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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코드 | AKSR2017-J04 | |||||||||||||||||||||||||||||||||
연구과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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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 원창애 | |||||||||||||||||||||||||||||||||
공동연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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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간 | 2017-05-08 ~ 2017-11-30 | 연구형태 | 공동연구 | |||||||||||||||||||||||||||||||
연구목적 및 배경 | 1) 연구 목적
□ 특화된 한국학 자료의 발굴과 집적 조선시대 등록 자료는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등의 연대기 자료 편찬 사료로 활용되었다. 군영등록은 568권에 이르는 거질의 원본 자료로서 기존의 연대기 자료에 기록되지 않은 병영 기록들이 있다. 본 연구는 조선후기 군영의 핵심인 훈련도감의 등록인 『훈국등록』의 내용과 가치를 재조명하여 한국학 분야의 기초자료로 활용 가능하게 하고자 한다.
□ 군영등록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기반 마련 등록은 중국과 한국의 전통시대 관청 문서철이지만, 중앙 군영에서 생산한 공적 문서철은 흔치 않다. 특히 장서각에 소장된 군영자료를 검토한 결과, 관청에서 수발한 문서를 단순히 필사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자료로 재구성하였다. 즉 수발문서를 처음 베껴놓은 초등록(草謄錄)을 바탕으로 해서 업무 분야별로 나누어 세부적인 등록들이 만들어지고, 또 주요 내용을 정리해서 그 관청의 매뉴얼을 작성하였다. 이러한 문서 정리는 비단 군영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몇 백 년 동안 축적해온 관청 등록이 흔치 않기 때문에 다른 관청 등록에서는 이러한 문서 관리 방법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조선왕조 군영등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여 선조들이 문서를 어떻게 관리하고 정리했는지를 세계에 알림으로써 대한민국의 기록문화에 대한 국민적 자긍심의 고양과 군영등록의 세계사적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 스토리텔링으로 고전 자료의 현대적 의미 발굴 번역결과물의 활용은 전문 연구자에 한정하지 않고, 일반 대중들에게도 공개·공유되어야 한다. 스토리텔링으로 고전 자료의 현대적 의미를 도출하는 한편, 새로운 콘텐츠를 축적해야 다양한 분야에서의 한류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번역과 함께 『훈국등록』 스토리텔링을 통해 학술자료의 대중화와 지식 공유 기반을 넓히고자 한다.
2) 연구 배경
□ 새로운 한국 사회사 자료의 발굴 필요성 · 조선왕조의 군영등록을 기록한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 등 삼군문은 16세기 후반기~17세기 전반기 동북아시아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하여 성립되었다. 군영등록에는 임진왜란과 명·청 교체기를 지나며 형성된 국방 강화와 평화 유지라는 시대적 요구가 반영되어 있어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시사 하는 바가 큰 기록이다. · 『훈국등록』은 국내 유일본으로 정치·외교·군사·사회·경제·문화 분야를 망라하는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연대기 자료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군인’을 매개로 이루어진 조선 후기 사회·경제 ·문화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사회사·경제사·문화사 자료이다.
□ 자료 접근의 용이성과 공유 요구 · 『훈국등록』은 거질(巨帙)에다 초서(草書, cursive script)로 되어 있어 자료 활용이 쉽지 않다. 마이크로필름(M·F)으로만 열람이 가능하여 자료 접근이 제한적이다. · 이에 초서를 정서하는 탈초(脫草)와 한글로 번역(飜譯)하여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가공하여 활용도를 높이고자 한다. 특히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쉽게 스토리텔링을 진행하여 대중의 고전 자료 공유 요구에 응하고자 한다.
□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풍부한 연구경험과 인프라 활용 · 한국학중앙연구원은 방대한 고전 자료 연구성과를 축적하였고, 정확하고 수준 높은 탈초·번역이 가능한 우수 인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스토리텔링식 가공 경험도 축적되어 있어 학술연구와 대중화의 두 영역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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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 및 내용 | 3-1) 연구 방법 (1) 연구팀 구성
∙ 관련분야 원내외 교수, 장서각 연구원으로 연구팀을 구성한다. ∙ 연구팀은 연구책임자, 공동연구원 9명, 연구보조원 1명 등 10명이 참여한다. ∙ 연구팀은 탈초·표점, 역주, 스토리텔링 분야로 역할을 분담하여 수행한다. ∙ 탈초, 번역 및 스토리텔링 주제 집필의 일부는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킨다. ∙ 연구보조원 1명은 탈초 및 번역 의뢰 및 원고 수합, 각종 교열 의뢰, 스토리텔링 원고 수합, 책 발간 보조 업무 등을 수행한다.
(2) 연구 수행 절차 □ 탈초 · 표점 ∙ 탈초·표점은 외부 전문가가 담당한다. ∙공동연구원이 검수 확인한다. ∙ 검수된 텍스트를 역주에 활용해 최종 탈초·표점 원고를 완성한다. □ 역주 ∙ 역주는 공동연구원 3명과 외부전문가 담당한다. ∙ 외부전문가에게 번역원고의 교열을 의뢰한다. ∙ 본연구팀의 『훈국등록』 강독회를 통해서 역주본을 검토한다. ∙ 공동연구원이 최종 원고를 검수한다. □ 스토리텔링 ∙ 본 연구팀에서 집필 주제를 개발한다. ∙ 공동연구원 8명과 외부 전문가 2명이 개발된 주제에 따라서 스토리텔링 원고를 작성한다. ∙ 출판 경험이 있는 외부 전문가가 원고를 교정 교열하여 완성한다.
3-2) 연구 내용 (1) 전체 연구 내용
(2) 연구내용 1 : 탈초·표점 ∙ 연구대상 : 『훈국등록』(K2-3400) 총4책(권18∼권22) 탈초·표점하였다. ∙ 외부전문가 2명이 탈초, 교열 그리고 공동연구원의 검수 작업으로 5책(권18∼권22)의 탈초 및 탈초 교열 작업 완료하였다. ∙ 탈초 교열 작업을 마친 후에 연구팀에서 마련한 ‘표점지침’에 따라 외부전문가가 탈초된 4책의 표점과 검수 작업을 수행하였다. (표점 지침은 부록 1 참조)
(3) 연구 내용 2 : 역주 ∙ 연구대상 : 『훈국등록』(K2-3400) 총3책(권12∼권15) 역주하였다. ∙ 공동연구원과 외부 전문가는 역주 지침에 의거하여서 총4책(권12, 13, 14. 15)의 역주 작업을 완료되었다.(역주 지침은 부록 2 참조) ∙ 역주 원고는 공동연구원의 검수와 외부전문가의 교열 작업을 진행하였다. ∙ 『훈국등록』권12∼권15는 1699년(숙종 25), 1702년(숙종 28), 1705년(숙종 31), 1710년(숙종 36)분이었다. 현전하는『훈국등록』에는 1700년~1701년, 1703년~1704년, 1706년~1709년분이 유실되었다. 역주한 분량의 주요내용은 국왕의 거둥(종묘, 사직, 능행), 훈련도감 군병의 시재, 가뭄 및 전염병으로 인한 세금 감면 문제, 세곡선의 난파, 축성(북한산성, 문수산성 등), 호환(虎患), 재정 문제, 군병 충당 문제, 군기 제조(조총, 활 제작, 화약제조) 등을 다루고 있었다. 이 시기의 특징적인 내용은 호환과 재정 문제였다. 1699년, 1702년 등에 계속 호환과 관련된 기록이 연이어 등장하고 호환절목이 마련되었다. 훈련도감 재정 문제는 화폐, 군포 등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군포는 처음에 법제화한 5승포 35척에서 이때에 6승포 40척으로 강화되었다. 또한 군병 충정 문제는 도망병과 사망한 군병의 대정(代定) 방안 등을 다루고 있었다.
(4) 연구내용 3 : 스토리텔링 ∙ 원래 스토리텔링이란 사실(史實)에 입각하여 사건의 전말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콘텐츠를 활용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본 연구팀에서 추구하는 스토리텔링이란 사실에 입각하여 쉽게 서술하여 타 분야 연구자들이나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훈국등록 소스북(Source Book)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 『훈국등록』은 이미 언급하였던 것처럼 조선시대 군인으로 살아갔던 민생들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다. 현대를 사는 소시민의 감성을 자극하는 소재들이 풍부하다. 본 연구팀은 ‘훈련도감 업무를 수행하는 군인’에 초점을 두면서 스토리텔링의 주제를 정하였다. ∙ 정해진 10개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① 숙종, 4,026명 군인을 위한 잔치를 열다 1687년(숙종 13) 10월 9일 숙종이 파주 장릉(長陵)에 능행을 하였다. 능행을 마친 후에 시위했던 훈련도감 장관과 군병 4,026명을 대상으로 호궤를 행하였다. 훈국등록에 기록된 호궤 음식과 기물을 바탕으로 군인들에게 베푼 잔치를 재구성하였다. 장관과 군병에게 제공된 음식물은 무엇인지, 양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전치 장소와 상차림의 형태 등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② 북한산성 축성과 훈련도감의 역할 숙종이 즉위한 해부터 북한산성 축성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어 1711년(숙종 37)에 드디어 공사기 시작되었다. 여기서는 숙종 즉위 후부터 있었던 논쟁의 내용을 서술하고, 북산산성의 공사에 대한 내용을 상세하게 다루었다. 훈련도감 군병은 북한산성 중에서 가장 험난한 곳에 성벽을 쌓았다. 이때 투입된 훈련도감 군병과 재원에 대해서 다루고 있어서 당시 공사 상황을 알 수 있다.
③ 훈련도감 장병 가족들의 서울 생활 훈련도감이 도성 내에 설치됨으로 부양가족들도 서울사리를 하게 되었다. 지방의 군병 가족이 서울에 올라와서 어디에 거주하였는지, 생계유지를 위해서 어떠한 경제활동을 했는지를 서술하였다.
④ 훈련도감군, 조선의 공병(工兵)으로 성장하다. 숙종 초기에 오삼계의 반란을 대비하기 위한 청나라 대응 정책으로 북한산성과 함께 대흥산성 축조가 있었다. 유혁연이 훈련도감 별대 5,000명을 이끌고 대흥산성을 축조하였다. 북한산성과는 달리 오로지 훈련도감 별대의 대흥산성 축성기를 정리하였다.
⑤ 훈련도감의 둔전 경영 훈련도감의 재정은 호조에 제공되는 군병의 급료, 군병 보인의 가포, 그리고 둔전 경영이 있다. 여기서는 훈련도감의 둔전 경영의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정부의 대책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둔전이 훈련도감 재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를 살폈다.
⑥ 군영의 신고식 관행, 면신 심임관료가 선배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거나 물품을 바치는 신고식 관행을 면신이라고 한다. 훈련도감 내에서 행해지는 면신례의 실제와 조정에서 면신례의 폐단을 막기 위해서 발표한 사목을 중심으로 신고식 관행을 다루었다.
⑦ 한성에 많은 훈련도감 마병이 있었네! 조선의 군인을 보병으로만 표현되고 있으나, 훈련도감의 포수와 함께 마병이 주요하였다. 여기서는 훈련도감의 마병 창설 과정과 이들의 역할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마병 훈련 광경을 묘사하였다.
⑧ 경신환국과 훈련대장 유혁연 1680년(숙종 6) 훈련대장 유혁연을 교체하면서 경신환국이 시작되었다. 훈국등록의 기록을 기초로 하여 경신환국이라는 정변과 훈련대장 유혁연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정치적인 논쟁과는 무관한 실무에 능한 무관 유혁연이 경신환국에서 희생된 원인과 과정을 살펴보았다.
⑨ 행행과 능행의 정치학 숙종은 능행을 많이 하였던 왕이다. 숙종의 능행과 행행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속내를 살펴본 것이다. 특히 여기서는 1693년(숙종 19) 8월에 있었던 개성의 후릉 능행을 중심으로 다루면서 국왕의 행행이나 능행의 의미를 해석한 것이다.
⑩ 훈련도감의 군사 훈련 현장을 찾아서 훈련도감의 교본이 되었던 척계광의 『기효신서』를 익히 알고 있었던 최덕문이 훈련도감의 교관으로 오게 된 경위와 훈련도감의 훈련 내용을 다룬 것이다. 훈련도감의 훈련은 도성에 사는 여인네들에게도 흥미로운 일이어서 볼거리를 제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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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
연구결과 | 2017년 본 연구팀이 수행한 연구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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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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