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 기초연구/공동연구과제 | ||
---|---|---|---|
과제코드 | (AKSR2018-C15) | ||
연구과제명 |
|
||
연구책임자 | 김인숙 | ||
공동연구자 |
|
||
연구기간 | 2018-04-04 ~ 2018-11-30 | 연구형태 | 공동연구 |
연구목적 및 배경 | 본 연구는 근대음악 1차 사료로서의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장서각 소장 유일본 『조선아악????(MF16-332)의 본격적 활용을 위한 기초 작업과 공동연구이다. 『조선아악????은 이왕직아악부의 결정초기부터 해체시기까지 그 조직과 활동에 관련된 매우 잡다한 문서가 두서없이 묶인 특이한 형태의 자료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기초 작업으로서 원문을 일차적으로 정리하여 전자 문서화 하는 것을 목표의 하나로 삼아 향후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에서 원문 이미지와 함께 서비스하여 자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자 한다. 이와 아울러 본 연구에서는 『조선아악????을 중심으로 근대기 조선 궁중음악의 체제와 변모 양상을 다섯 가지의 주제로 쟁점화 하여 『조선아악????의 자료적 가치를 드러내고 근대음악사의 흐름을 새롭게 짚어내고자 한다. 나아가 비록 식민지 시기라는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 궁중음악기관이 전통의 계승과 근대적 변화라는 당대적 과제를 어떤 방식으로 이행했는지를 『조선아악????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줌으로써, 근대음악사를 재정립하고 현대음악사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보는데 일조하고자 한다. |
||
연구방법 및 내용 | 장서각 소장 『조선아악???? 자료를 바탕으로 본 연구에서 수행하고자 하는 주제는 다음의 다섯 가지이다. 1) 일제강점기 조선 장악원·장악과 전통의 억압과 굴절(권도희) 『조선아악』중의 <아악대에 관한 건>을 중심으로 대한제국기로부터 고종황제의 부묘의가 치러질 무렵까지 궁중음악 전통의 단절과 일제에 이해 억압당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특히 고종황제의 부묘의가 끝나기를 기다렸던 일제가 궁중음악을 전유하는 절차와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1922년 이후 궁중음악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과시적으로 보여주는 부호로써 해독되는 측면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으로는 고종황제 서거라는 정치적 사건이 있었음을 지적하고 이를 통해 3·1운동 이후 시도된 문화정치가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이 말하는 것과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2) 이왕직아악부의 궁내성 출장과 궁중음악의 변동(이수정) 『조선아악????에는 이왕직아악부의 일본 궁내서 출장 보고서라는 문서가 끼워 있다. 이 중 ‘궁내성악부견학과 조사개요’에는 악부의 현황 및 운영, 연주 악곡과 악생운영 상황, ‘악부연주회참관소감’은 서양악기와 아악기를 혼합관현악으로 연주하는 악부연주회를 본 소감을 기록하고 있다. 김덕규의 출장복명서는 동경에서 만난 이우공부사무관 飯高治衛의 충고를 정리한 것이다. 이 출장 복명서는 아악부원의 이름으로 작성되었지만 궁내성관계자가 이왕직아악부의 운영에 어떠한 방법으로 관여했는지 확인 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 이 출장 복명서를 중심으로 1930년대 궁중음악계의 상황을 살펴본다. 이왕직아악부의 궐 밖 음악활동으로 조선신궁(1926), 용산의 조선총독관저(1926), 박람회장(1929), 창경궁 야외행사장(1924), 경성방송국(1928),부민관(1938)이 있는데, 순종승하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궐 밖 음악활동 양상과 궁내성 출장 이후에 벌여진 부민관 공연 활동을 주목하여 살펴본다. 일제 식민정책에 따라 변화된 이왕직아악부의 상황을 살핌으로서 이왕직아악부의 음악적 전통은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파악한다. 3) 안확의 조선음악사 서술 범주와 특징(이정희) 이왕직아악부의 촉탁으로 근무하며 집필한 안확의 조선음악사에 대해 주목한 것이다. 안확의 조선음악사 저작으로 공인된 <조선의 음악(上)>(『신천지(新天地)』, 1922)과 <조선음악사>(『朝鮮』. 1931년 12월, 1932년 1월)의 주요 내용과 특징 등을 각각 점검한 후 10여년의 시차를 두고 이왕직아악부에서 촉탁 근무 전후 음악사 서술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살펴본다. 기존 연구성과에서 안확의 음악사관이나 음악사 서술의 특징을 다룬 것에 힘입어 두 텍스트를 각각 분석한 후 달라지는 양상까지 다루는 방식으로 고찰한다. 즉 <조선의 음악(上)>과 <조선음악사>의 주요 내용, 특징 등을 각각 점검한 후 10여년의 시차를 두고 이왕직아악부에서 촉탁 근무 전후 음악사 서술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비교 연구한다. 4) 이왕직아악부의 『조선음악서???? 편찬과 그 의미(김은자) 『조선아악????에 수록된 악서편찬 관련 내용과 참고서목을 바탕으로 이왕직아악부의 악서편찬 결과물인 『조선음악서????의 편찬경위와 서술내용을 검토하고 음악사료적 가치를 고찰한다. 주요 연구방법은 문헌론적 방법이다. 국립국악원 소장 『조선음악서????, 장서각 소장 『조선아악????, 잡지 『조선????에 실린 안확의 「조선음악의 연구」와 「조선음악사」 등 문헌기록을 통해 이왕직아악부의 악서편찬 사업에 접근한다. 연구범위는 시기적으로 일제강점기에 국한하며 연구내용은 1930년대 이왕직아악부의 악서편찬 진행 방향과 결과물을 검토하여 악서편찬의 의미와 사료적 가치를 살펴본다. 『조선음악서????의 편찬경위와 서술 내용을 검토하여 그 의도를 파악해보며 나아가 『조선음악서????의 음악사료적 가치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이왕직아악부가 추구했던 악서편찬의 지향점을 찾아보고 조선시대 음악이 일제강점기로 넘어오면서 겪게 된 변화의 지점을 확인하고자 한다. 5) 이왕직아악부 관련 악보의 간행과 편찬(김인숙) 20세기 전반 궁중음악의 주요 담지자였던 이왕직아악부와 그 주변에서 이루어진 악보의 간행 및 편찬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기왕의 연구에서 다소 비켜간 내용에 대해 다음의 세 가지를 쟁점 삼아 논의하고자 한다. 첫째, 이왕직아악부 시기에 필사되거나 간행된 『세종실록악보????와 『세조실록악보????에 대해 그 발간 배경과 내용을 알아보고 음악사적 의미를 찾아본다. 『조선아악????에 포함되어 있는 『세조실록악보????(부분)을 통해 이 시기에 이루어진 고악보 간행의 내용을 고찰한다. 둘째, 이왕직아악부에서 본격적인 사업으로 추진했던 채보 사업과 악보화 사업의 전반을 조감하면서 전통음악이 규격화 표준화되어가는 측면에 대해 살펴본다. 그동안은 주로 채보 사업의 과정과 내용에 대해 분석하는 연구가 많았었는데, 아악부 악보(정간보)와 오선채보 사업을 통해 변모되어가는 음악 및 전승의 측면에 대해 주목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악보화 사업이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서 20세기 초반부터 이루어진 민간음악(정악)의 채보와 악보화 과정에서 이왕직아악부가 했던 역할과 교류의 측면에 대해 의미를 부여해 본다. 여기에는 『양금보개요????나 『아악부악보????등 관련 자료를 추가하여 살펴본다. |
||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I. 일제강점기 조선 장악원·장악과 전통의 억압과 굴절 1. 머리말 2. 비밀문서의 지향과 실제 3. 齋藤 총독부의 “보존” 프로파간다와 아악대 4. 일제의 궁중음악 억압과 고종 황제의 국장 5. 일제의 궁중음악 전유와 문화정치 6. 맺음말 <부록> 번역: ‘雅樂隊에 관한 건’(全文) II. 이왕직아악부의 궁내성 출장과 궁중음악의 변동 1. 머리말 2. 이왕직아악부의 일본 궁내성 출장 1) 출장 경과와 출장 복명서의 구성 2) 함화진의 복명서 3) 김덕규의 복명서 3. 1920-30년대 궁중음악의 재편 1) 일본 궁내성 출장 이전 궁중음악의 재편 2) 일본 궁내성 출장 이후 이왕직아악부의 활동 4. 맺음말 III. 안확의 조선음악사 서술 범주와 특징 1. 머리말 2. 조선음악사 집필 배경 및 준비 과정 3. <조선의 음악(上)>의 내용과 특징 4. <조선음악사>의 내용과 특징 5. 조선음악사 서술의 변화 양상 6. 맺음말 IV. 이왕직아악부의 『조선음악서???? 편찬과 그 의미 1. 머리말 2. 이왕직아악부의 『조선음악서???? 편찬 경위 3. 『조선음악서????의 서술체제 및 내용 구성 4. 『조선음악서????의 음악사료적 가치 5. 맺음말 V. 이왕직아악부의 악보 간행과 편찬의 내용과 의의 1. 머리말 2. 이왕직아악부 관련 악보의 존재와 성격 1) 민간과 아악부의 교류와 공유 2) 고악 연구와 고악보의 간행 3) 전통음악의 규격화와 표준화 3. 맺음말 |
||
연구결과 | 본고는 이왕직아악부 한국 궁중음악의 변화를 한국 근대 음악사의 전개 속에서 살펴본 것이다. 이를 통해 특정 시기에 이루어진 궁중음악의 변화를 독립적 개별적 사건으로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의 의미의 전유 상황을 설명하고 제도적 변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궁내성 출장 복명서의 분석을 통해 1930년대 이왕직아악부의 상황을 이해하고 식민통치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단서를 제공했다. 일제강점기 최장수음악 단체이며 궁중음악을 대표하는 음악집단으로서 이왕직아악부의 역할에 대해 조명해보는 것은 식민통치기 복잡하고 중층적인 조직에 속한 이왕직아악부의 처지와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연구되지 않은 이왕직아악부의 내부 상황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점에서 기존연구와 다른 차별성이 있다. 이왕직아아부의 활동과 업적으로 고악보의 간행은 그리 주목되지 못해왔다. 그러나 1922년과 1942년에 『세종실록악보????와 『세조실록악보????가 각각 간행되는데, 이는 일제에 의해 왕조실록이 민간으로 반출된 배경에 비롯되지만, 이왕직아악부원들의 고악보에 대한 연구와 고악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도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1942년도에 간행된 33부씩의 『세종실록악보????와 『세조실록악보????의 간행 주체는 ‘조선아악연구회’라는 이름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역시 여러 가지 정황상 이왕지아악부 내부의 조직일 가능성을 밝혔다. 이왕직아악부의 채보는 교육적 목적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채보에서 아악부에서 전통적 정간보로 일차 정리되고, 여기서 더 나아가 오선악보로 거듭 채록되면서 전통음악이 점차 표준화, 획일화됨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왕직아악부에서 추진한 악보 편찬 사업을 안확과 성낙서의 저작물을 통해 드러냈다. 안확의 <조선의 음악>과 <조선음악사>를 꼼꼼히 비교하여 두 저작물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드러냈다. 한편 성낙서를 비롯하여 김영제, 함화진 등이 주도한 <조선음악사>(전6권)의 존재와 내용, 집필 과정과 경위 등을 새롭게 밝혀냈다. 근대적 국악연구의 시발점을 안확과 성낙서로 소급해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 갑오개혁 이후로 고종 황제는 궁중 전례와 음악을 적극적으로 정치에 활용했다. 특히 황제국의 위용을 대내외적으로 보이기에 전례 음악은 요긴했다. 그만큼 고종의 강제 폐위와 서거는 궁중음악의 변화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고종 황제 서거 이후 조선 궁중음악에 대한 주도권은 사실상 일제가 갖게 되었다. 일제는 악대의 조직을 재편하기 위해 여러 절차를 마련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과거 황실 악대의 종류나 규모에서 대한제국기 상황을 회복할 수 없었고, 그 실연의 의미도 달라졌다. 이러한 통제가 구체화된 것은 1922년부터인데 이는 이른바 일제의 “문화정치”라는 맥락 속에 놓여 있었다. “문화정치”란 일제의 조선 궁중음악의 전유를 포함하고 있었다. 본고에서는 궁내성 출장 복명서의 내용을 분석하고, 이왕직아악부에 적용된 일본 국가권력이 ‘조선아악’의 문제를 어떠한 시선으로 접근하였는지를 살펴보았다. 일제강점기 일본 궁내성, 조선총독부와 같은 기관에 소속되어 35년간 연주했던 이왕직아악부의 활동을 두고 궁중음악의 전통을 이어온 전승공로자로 이해하기에는 문제가 너무 많다. 게다가 일제강점 초기와 말기의 통치양상의 변화 및 이왕직 내부사정의 변화 등을 고려한다면,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이해하려는 시각이 필요할 것이다. 일제강점기 최장수음악 단체이며 궁중음악을 대표하는 음악 집단으로서 이왕직아악부의 역할에 대해 조명해보는 것은 식민통치기 복잡하고 중층적인 조직에 속한 이왕직아악부의 처지와 상황을 이해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궁내성 출장 복명서가 식민통치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단서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본 연구를 수행한 결과 일제강점기에 이왕직아악부에서 추진한 악서편찬의 대강을 파악할 수 있었다. 1차 악서편찬은 안확이 주도하였으며, 당시의 진행상황은 『조선아악????의 참고서목 및 악서편찬과 관련된 내용에서 확인되었고, 그 결과물은 1930~31년에 안확이 잡지에 기고한 「조선음악의 연구」와 「조선음악사」였다. 2차 악서편찬은 성낙서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신문기사와 성낙서의 회고담에서 진행상황을 확인하였고, 그 결과물은 『조선음악서???? 6권이었다. 한국근대전환기에 국내에서 한국음악을 독립적인 학문으로 인식하고 사적 흐름으로 정리하려는 근대적인 시도는 안확의 조선음악사에서 최초로 진행되었다. 한국음악사 서술의 출발이자 이후의 한국음악사 저작물 탄생과 이후 한국음악의 여러 연구 주제를 개발한 선구적인 역할을 안확이 담당했고, 그 궤적이 조선음악사에 압축되어 있다. 결국 조선음악사는 현재 한국음악사와 한국음악이론 분야의 초기 학문적 자원이 무엇이었고, 그 후 이를 어떻게 확장했는지에 관한, 즉 학문적 궤적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따라서 본 연구가 근현대를 거치며 한국음악사 라는 학문의 형성과정과 현재 한국음악사의 이해를 증진하는데 활용된다면 한국음악사 연구의 저변 확대에 일조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이왕직아악부에서 본격적인 사업으로 추진했던 채보 사업과 악보화 사업의 전반을 조감하면서 전통음악이 규격화 표준화되어가는 측면에 대해 살펴보고 정간보와 오선채보 사업을 통해 변모되어가는 음악과 전승의 측면에 대해 주목했다. 또한 아악부 시기에 필사되거나 간행된 『세종실록악보????와 『세조실록악보????에 대해 그 발간 배경과 내용을 알아보고 시대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근대기 이왕직아악부에서 이루어진 전통음악의 악보화 배경에서 다소 간과되어 왔던 민간음악의 수용과 교류의 측면도 부각하여 이왕직아악부가 격변의 시대를 맞아 모색했던 숨은 면모와 근대적 체계를 갖추기 위해 시도했던 다양한 작업에 대해 살펴보고 그 음악사적인 의미를 진단했다. |
||
참고문헌 | 『宮內省 職員록???? 궁내 대신관방 비서과, 1924~1943. 「宮內省の秘曲 日比谷て公開」『조선신문???? 1928. 12. 11. 兼賞淸佐, 「朝鮮の音樂」 『日本の音樂???? 東京: 京都帝國大學 實驗心理學會·服部書店, 1913. 『高宗太皇帝明成太皇后祔廟主監儀軌????. 『官報????(일본) 제2756호. 1921年 10月 7日. 『京城日報???? 1922. 7. 23. 김수현·이수정. 『한국근대음악기사자료집』 권1-9. 민속원, 2008. 김인식, 『조선구악 영산회산????, 경성: 창문당, 1914. 『大阪毎日新聞???? 1921.10.7. 東國史略』. 『동아일보???? 1922. 11. 10. 『매일신보???? 1922. 5. 4. 成樂緖. 『朝鮮音樂史』. 청주대 소장. 星湖僿說』. 『세종실록악보????국립국악원 자료실 911.052 실794 ㅅㅈ 138-146. 『세종악보???? 한국학 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K3-583. 『세조실록악보???? 국립악원 자료실 구분류번호 17~20. 『세조악보???? 한국학 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K3-581. 『순종실록부록???? 2권. 「아악부 양금보」(1930년대), 『한국음악학자료총서????28, 국립국악원, 1989. 안확, 「朝鮮의 音樂(上)」, 『新天地』8, 1922.12. 안확, 「세계인이 흠탄하는 조선의 아악」, 『別乾坤』12·13호, 1928.5. 안확, 「朝鮮音樂史」 『朝鮮』170, 1931.12; 171호, 1932.1. 안확 저·김세종 편역. 『조선음악의 연구』, 보고사, 2008. 安廓. 「朝鮮音樂의硏究(一~七)」, 『朝鮮????149~150·154~158호, 京城: 朝鮮總督府, 1930. 安廓. 「朝鮮音樂史(附處容)」, 『朝鮮????15(12)·16(1), 京城: 朝鮮總督府, 1931. 『양금보개요????, 한국학 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K3-590. 『애국창가????, 호놀룰루. 1916. 「李王垠殿下 宇都宮へ御赴任遊ばさる」, 『부산일보????. 1935. 8. 6. 이종태, 「조선아악기의 구조와 성능 9」, 『동아일보????. 1938. 11. 27. 『壬寅年進宴儀軌???? 국립국악원 영인본. 『自山安廓國學論著集』 1-6. 여강출판사, 1994. 장사훈, 『국악대사전????, 세광음악출판사, 1984. <제4회 아악생교과철> 이왕직아악부 아악부원양성소, 1931. <제6회 아악생교과철> 아왕직아악부 아악부원양성소, 1941. 『朝鮮武士英雄傳』. 『朝鮮文明史』. 『朝鮮文學史』. 「조선신궁연중제사」, 『조선????269, 1937, 10. 『朝鮮雅樂』.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K3-0590. 『조선아악???? 한국학 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K3-590. 「조선아악보전회 개요」, 국가기록원, 문서번호 CTA0001834. 복사본. 「조선음률보」(1916), 『한국음악학자료총서????25집, 서울: 국립국악원, 1988. 『朝鮮樂槪要????(1917), 국립국악원 소장. 『朝鮮樂槪要????. 장서각 소장본, K3-0591. 「朝鮮洋樂의 夢幻的 來歷 3」, 『東明????15, 1922.12. 『조선일보????(1921. 3. 26). 朝鮮音樂史』. 국립국악원 소장. 『朝鮮總督府官報????(제237호 1면), 1911.6.15. 增補文獻備考』 「樂考」. 「천추에 드리울 대사업 조선아악보 완성」, 『매일신보????, 1936.7.30. 『總督府官報????2756, 1921,10.7(금). 『最新唱歌集-附樂典???? 小營子: 光成中學校, 1914. 「2600년 송축가로 아악 동경첫공연」, 『동아일보????, 1940.3.10. 강민기, 「조선물산공진회와 일본화의 공적전시」, 『한국근현대미술사학????16,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06. 국립고궁박물관, 『이왕직아악부 유성기음반 조선아악????, 2014. 국립국악원 편, 『역대 국립음악기관 연구????, 국립국악원 2001. 국립국악원, 『(建院1400年) 開院50年 國立國樂院史????, 국립국악원, 2001. 국립국악원, 『국악연혁????, 국립국악원, 1982. 국립국악원 편, 『李王職雅樂部와 음악인들????, 국립국악원, 1991. 국립국악원 편,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1 권오성(權五聖)????, 국립국악원, 2011. 宮嵜 刀史紀, 「皇紀二千六百年奉祝藝能祭に關する一考察」, 『演劇研究センター紀要???? I, 東京: 早稲田大学坪内博士記念演劇博物館, 2003. 권도희, 「대한제국기 황실극장의 대중극장으로의 전환과정에 대한 연구-희대․협률사를 중심으로」, 『국악원논문집???? 32, 국립국악원, 2015. 권도희, 「장서각 소장 『조선아악????의 해제와 근대음악사료적 가치에 대한 고찰」, 『동양음악????26,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2004. 권도희, 「조선후기와 대한제국기의 외교음악」, 『음악과 문화????29, 2012. 권도희, 『한국근대음악사회사????, 민속원, 2004. 권오성. 「안확(자산)의 국악 연구에 대한 고찰」, 『韓國傳統音樂論究????,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0. 국성하, 「일제강점기 동화정책 수립 수단으로서 조선 신궁의 건립과 운영」, 『한국교육사학????26, 2004. 김수현, 「타나베 히사오의 조선음악조사에 대한 비판적 검토」, 『한국음악사학보????22, 1999. 김수현, 「자산 안확의 음악론에 대한 고찰」, 『온지논총????9, 온지학회, 2003. 김수현, 「일제강점기 국악 관련 학술적 연구 경향 고찰」, 『한국음악사학보????48, 한국음악사학회, 2012. 김수현, 「선교장 소장 악보현금보 초 연구」, 『장서각 ????39,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 김영운, 「1913년 고종탄신일 축하연 악무연구」, 『장서각????19, 한국학중앙연구원, 2007. 김은자, 「안확의 조선무용사 서술내용 및 인식태도」, 『동양음악』43, 서울대 동양음악연구소, 2018. 김종수, 『조선시대 궁중음악의 문화사적 고찰????, 민속원, 2018. 김태균, 「이왕직아악부와 국립국악원 : 친일에게 묻는다」, 『라라????17, 2015. 남성호, 「근대 일본 아악국의 설치와 아악계의 동향」,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심포지엄 “근대 동아시아 전통춤의 굴절과 전개‘ 자료집(2018년 6월 1일 국립국악원 대회의실). 류미나, 「식민지 권력에의 ‘협력’과 좌절」, 『한국문화????35, 2005. 류준필. 「1910-20년대 초 한국에서 자국학 이념의 형성 과정–최남선과 안확을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52,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2005. 박은경, 「한국최초의 민간음악교육기관 조선정악전습소 연구」,『음악과민족????21, 민족음악학회, 2001. 배인교, 「북한의 조선음악과 민족음악에 대한 개념사적 연구」, 『동양음악』41, 서울대 동양음악연구소, 2017. 寺內直子, 『雅樂お聽く????, 東京:岩波書店, 2011. 山本華子, 「李王職雅樂部の硏究」 東京: 東京藝術大學敎 博士學位論文, 2008(『李王職雅樂部の硏究???? 秋田市:書肆フロ-ラ, 2011) 서준섭, 「安自山의 ‘朝鮮文學史’에 대하여」 『국어교육』35, 한국어교육학회, 1979. 성경린. 『조선의 아악????. 박문출판사, 1947. 성경린, 『노을에 띄운 가락????, 휘문출판사, 1978. 성경린, 「아악부의 노스승들과 아악부의 신세대」,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국립국악원, 1991. 성기련,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 아악부원 연구」, 『동양음악????26집,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2004. 成樂緖 著(成玉慶 編). 『(芸庭 成樂緖先生 文集)雁葉記????. 昌寧: 昌寧成氏 芸圃公派 宗中, 2000. 송방송, 『악장등록연구????, 경산: 영남대학교출판부, 1980. 송영국, 「안확의 국악이론 연구」, 중앙대학교 석사논문, 1994. 심지우, 「안확의 악률 연구」, 『한국음악문화연구』5, 한국음악문화학회, 2014. 植村行生, 「植民地期 朝鮮 宮中音樂 調査 –田邊尙雄 ‘朝鮮雅樂調査’政治的 文脈」, 『朝鮮史硏究會論文集????35, 東京: 朝鮮史硏究會, 1997. 윤명원, 「이왕직아악부 시대의 업적」,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 국립국악원, 1991. 이미순, 「安廓의 <朝鮮文學史>에 나타난 大倧敎의 영향」, 『冠巖語文硏究』16,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1991. 이선균. 「成樂緖 鄕歌硏究: 鄕歌의 槪念, 形式, 解讀을 中心으로」. 청주: 청주대학교 석사논문, 1999. 이수정, 「황화만년지곡연구????, 『온지논총????46, 온지학회, 2016. 이수정, 「이왕직아악부의 조직과 활동」,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문, 2016 이수정, 「조선신궁 예제와 이왕직아악부」『이화음악논집????, 23-1호, 2019. 이욱, 「근대국가 모색과 국가의례의 변화-1894~1908년 국가제사의 변화를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 27-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4. 이윤상, 「일제하 ‘조선왕실’의 지위와 이왕직의 기능」, 『한국문화????40,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2007. 이윤상, 「고종즉위 40년 및 망육순 기념행사와 기념물」, 『한국학보????111, 2003. 이윤상, 「대한제국기 국가와 국왕의 위상제고사업」, 『진단학보????95, 진단학회, 2003. 이정희, 「1910년대 고종 탄신기념 연회의 공연양상」, 『공연문화연구????35, 공연문화학회, 2017. 이정희, 「개항기 근대식 연회의 성립과 공연문화사적 의의」, 서울대학교 박사논문, 2010. 이정희, 「대한제국기 순조황제 즉위 행사와 음악」, 『한국음악사학보????47, 한국음악사학회, 2011. 이정희, 「대한제국기 건월절 경축행사의 설행양상」, 『한국음악사학보????45, 한국음악사학회, 2010. 이정희,「대한제국기원유회 실행과 의미」, 『한국음악연구????45, 한국국악학회, 2009. 이정희, 「이왕직아악부의 활동과 안 밖의 시각」, 『동양음악????26,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2004. 이종숙, 「일제강점기 종묘제례악무 고찰」, 『한국음악사학보????31, 한국음악사학회, 2003. 이종숙, 「종묘제례악의 일제강점기 왜곡과정 연구」, 『이화사학연구????30,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사학연구소, 2001. 이종숙, 『종묘제례악 일무의 왜곡과 실제????. 민속원, 2012. 이지선, 「1910년대 일본인의 조선음악연구-가네쓰네 기요스케의 『朝鮮の音樂????을 중심으로」, ????한국음악사학보????50, 한국음악사학회, 2013. 이지선, 「1910년대 조선에서 일본 전통음악사정 2」, 『국악교육????26, 한국국악교육학회, 2013. 이지선·야마모토 하나코, 「『직원록????을 통해 본 이왕직의 직제연구」, 『동양음악????26,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2004. 장사훈, 『여명의 동서음악????, 보진재, 1974. 장사훈, 『화전태와 화류태????, 수서원, 1982. 장신, 「일제하 李王職의 직제와 인사」, 『장서각????35, 한국학중앙연구원, 2016.. 田辺尙雄, 『續田辺尙雄自敍傳(大正·昭和篇)???? 東京: 邦樂社, 1982. 田邊尙雄, 『朝鮮·中國音樂調査紀行???? 東京: 音樂之友社, 1970. 최원식, 「안자산의 국학-조선문학사를 중심으로」, 『심상』8, 1981. http://yoksa.aks.ac.kr/jsp/aa/InfoView.jsp?aa10no=kh2_je_a_vsu_30590_001&keywords=조선아악 朝鮮雅樂 http://archive.gugak.go.kr www.emuseum.go.kr |
전체 연구결과 요약(초록) | |
---|---|
20세기 무너지기 시작한 궁중의 음악환경은 이전 시대부터 전해오던 음악적 지형도를 크게 바꿔 놓았다. 결과적으로 바라보면 시간의 흐름 끝에 남은 변화된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 과정을 추적해 보면 시대와 일체가 되어 생존하며 투쟁해온 능동의 역사임을 확인하게 된다. 갑오개혁 이후로 고종황제는 궁중 전례와 음악을 유연하게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그런 만큼 고종의 강제 폐위와 서거는 궁중음악의 변화를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조선 궁중음악의 활용 주체는 일제로 변화되었고, 이에 따라 황실 악대의 종류나 규모 그리고 공연 실행 양식에서도 러일 전쟁 이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1908년부터 1921년까지 벌어진 궁중음악의 변화를 주도했던 주체였던 통감부, 총독부, 이왕직, 궁내부의 상황을 통해 일제의 궁중음악에 대한 억압과 통제을 측면을 밝혀볼 수 있었다. 조선의 궁중음악이 1922년부터 이른바 일제의 문화정치라는 맥락 속에 놓이는 배경에 대해 고찰하였다. 또한 ????조선아악????에서만 볼 수 있는 이왕직 아악부의 일본 궁내성 출장 복명서 역시 일본의 국가 권력이 이왕직아악부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이와직아악부는 음악내외적으로 상당한 변화양상이 있었으며 이러한 이왕직아악부의 활동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하고 평가해야 할 필요성도 드러났다. 이왕직아악부의 촉탁으로서 악서 편찬과 이론서 집필을 주도했던 안확이라는 인물을 통해서는 당대의 음악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음악사의 시대구분이라는 음악사의 틀, 그 틀의 내용인 콘텐츠, 콘텐츠를 확보하는 자료 확보 능력, 자료를 실증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10년 사이에 보다 넓고 두터워지고 세밀해진 안확의 음악 연구 변화 과정이 집중적으로 드러났다. 이왕직아아부의 활동과 업적으로 고악보의 간행은 그리 주목되지 못해왔다. 그러나 1922년과 1942년에 ????세종실록악보????와 ????세조실록악보????가 각각 간행되는데, 이는 일제에 의해 왕조실록이 민간으로 반출된 배경에 비롯되지만, 이왕직아악부원들의 고악보에 대한 연구와 고악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도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1942년도에 간행된 33부씩의 ????세종실록악보????와 ????세조실록악보????의 간행 주체는 ‘조선아악연구회’라는 이름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역시 여러 가지 정황상 이왕직아악부 내부의 조직일 가능성을 밝혔다. 이왕직아악부의 채보는 교육적 목적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채보에서 아악부에서 전통적 정간보로 일차 정리되고, 여기서 더 나아가 오선악보로 거듭 채록되면서 전통음악이 점차 표준화, 획일화됨을 확인할 수 있다. 본 연구를 수행한 결과 일제강점기에 이왕직아악부에서 추진한 악보 편찬 외에도 악서편찬의 대강을 파악할 수 있었다. 1차 악서편찬은 안확이 주도하였으며, 당시의 진행상황은 ????조선아악????의 참고서목 및 악서편찬과 관련된 내용에서 확인되었고, 그 결과물은 1930~31년에 안확이 잡지에 기고한 「조선음악의 연구」와 「조선음악사」였다. 2차 악서편찬은 성낙서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신문기사와 성낙서의 회고담에서 진행상황을 확인하였고, 그 결과물은 ????조선음악서???? 6권이었다. 본 연구를 통해 일제강점기라는 굴곡진 시공간 속에서 격변의 시기를 지내오며 이왕직아악부에서 이루어낸 다양한 활동과 사업, 제도적인 변화, 정치적인 입장 등 다양한 방면을 ????조선아악????이라는 파편적인 자료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었다. 다섯 명의 연구자가 각기 다른 주제와 영역을 가지고 연구를 한 결과는 변혁의 시기 궁중음악의 변모와 재편이라는 대주제로 모아진다. |
|
세부과제별 요약 | |
세부과제1 |
일제강점기 조선 장악원·장악과 전통의 억압과 굴절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아악』이라는 서류철 중에 <雅樂隊에 관한 건>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글이다. 일제는 고종 황제의 부묘의가 끝나자 마자 조선의 궁중음악을 직접 통제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했는데 <雅樂隊에 관한 건>은 일제가 이 일을 처음으로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문서는 일제가 조선의 궁중음악을 직접 통제하려하기 시작한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다층적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특히 아악대의 입장 보다는 아악대를 직접 통제하는 상위기관(이왕직)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문서가 작성된 경위와 내용을 관련 자료와 함께 분석한 결과 이왕직이 아악부와 관련하여 조선총독부와 궁내성의 입장을 조절하는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문서의 내용은 외면적으로 보면 아악대의 개선에 관한 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데, 1922년 이후 실제 아악대의 운용을 살펴보면 현실적인 개선 내용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를 통해 고종황제의 부묘의 이후 진행된 일제의 조선 궁중음악에 대한 통제와 억압의 절차와 과정을 밝힐 수 있었다. 1922년 이후 조선의 궁중음악은 장악원의 전통을 이어 받은 유산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일제의 식민 통치 상황을 과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부호로도 해독될 수 있다. 조선 궁중음악 전통의 훼손과 굴절은 조선 장악원의 전통을 가장 극단적으로 확장했던 대한제국 시대의 종말과 맞물려 있다. 궁중음악이말로 국가의 통치이념을 바탕으로 한 정치문화적 함의를 지닌 것이다. 일제는 고종의 서거 이전까지 지속되어 독립적 국가의 가치와 상징을 아악대를 직접 통제하는 장치를 통하여 격하하거나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3·1운동 이후 일제에 의해 시도된 이른바 “문화정치”란 폭력적 통치로부터 거리를 둔 행위 이상이었다. 고종 서거 이후 일제에 의해 진행된 궁중음악의 변화 역시 문화 전유의 측면에서 한층 교묘해진 식민지 통제 전략을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세부과제2 |
이왕직아악부의 궁내성 출장과 궁중음악의 변동 ????조선아악????에 수록된 이왕직아악부의 일본 궁내성 출장에 관한 복명서를 고찰하여 1930년대 궁중음악의 변화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함화진 아악사장과 김덕규 아악수장이 1936년 10월 15일부터 11월 4일까지 일본 도쿄, 우쯔노미야, 교토 등지를 방문하고 작성한 것이다. 방목의 목적은 궁내성 악부(樂部) 주최 공연 관람과 악부 견학이지만 당시 관련이 기록이나 언론 보도가 전무한 점과 이왕직 본질적 업무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점에 주목했다. 1930년대에 전통궁중음악과 다른 음악 활동을 준비하는 과정을 복명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복명서에 기록된 내용은 간단하지만, 1938년・1940년에 있었던 아악기로 연주하는 새로운 곡, 즉 <기미가요>・<우미유카바>・<황화만년지곡> 과 관련된 일련의 준비과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일제가 궁내성악부의 서구화된 현장을 견학하게 함으로써 이왕직아악부에도 변화를 자연스레 수용하도록 하고자 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 과정에서 이왕직아악부 내부와 아악부원 개인의 문제를 부각시켜 이를 빌미로 그들의 의도를 관철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복명서를 중심으로 1930년대 이왕직아악부의 궐 밖 음악 활동-조선신궁(1926), 용산 조선총독관저(1926), 박람회장(1929), 창경궁 야외행사장(1924), 경성방송국(1928), 부민관(1938)-이 순종승하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점을 제시했다. 연주장소가 변함에 따라 일어난 악현의 변화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본 바, 현재까지 국악관현악단의 악현에 나타나고 있는 다소 독특한 모습이 이 때 비롯된 것이며, 소화편종・소화편경의 개량이 <기미가요> 같은 새로운 곡의 연주와 관련되어있음도 시사했다. 요컨대, ????조선아악????의 일부 문건을 통해 일제 식민정책의 기조에 따라 좌우된 이왕직아악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으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음악 전통 가운데 일부가 이때의 식민지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혔다. |
세부과제3 |
이왕직아악부의 ????조선음악서???? 편찬과 그 의미 ????조선아악????에 수록된 악서편찬 관련 내용과 참고서목을 바탕으로 이왕직아악부의 악서편찬 결과물인 ????조선음악서????의 편찬경위와 서술내용을 검토하였고 음악사료적 가치를 고찰했다. ????조선음악서????는 집필 이후 간행되지 못한 채 원고 형태로 묶여 국립국악원 내부에서만 열람할 수 있었기 때문에 책의 내용 자체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음은 물론 근대 음악사료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왕직아악부에서 추진한 1차 악서편찬은 안확이 주도하였으며, 당시의 진행상황은 ????조선아악????의 참고서목 및 악서편찬과 관련된 내용에서 확인되고, 그 결과물은 1930~31년에 안확이 잡지에 기고한 「조선음악의 연구」와 「조선음악사」였다. 2차 악서편찬은 성낙서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신문기사와 성낙서의 회고담에서 진행상황을 확인하였고, 그 결과물은 ????조선음악서???? 6권이었다. ????조선음악서????(6권)는 1930~1939에 이루어졌다. 총론과 서설 및 내용의 주요 집필은 성낙서가 맡았고 전체 구성과 음악은 김영제와 함화진이 담당하였으나 1939년 인력과 비용의 문제로 간행되지 못한 정황을 확인하였다. ????조선음악서????는 제1편 「조선음악사(朝鮮音樂史)」, 제2편 「악기편(樂器篇)」, 제3편 「음률론(音律論)」, 제4편 「악곡편(樂曲篇)」, 제5편 「가편(歌篇)」, 제6편 「무편(舞篇)」의 수록 내용이 이왕직아악부에서 계승하고 있는 음악 중심임을 증명했다. ????조선음악서????는 이왕직아악부가 추구했던 악서편찬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한편 종묘제례악과 같은 당대 음악의 변질과 관련된 내용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집필자 성낙서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함을 지적했다. |
세부과제4 |
안확의 조선음악사 서술 범주와 특징 안확의 <조선의 음악(上)>(『신천지(新天地)』, 1922)과 <조선음악사>(『朝鮮』. 1931년 12월, 1932년 1월)의 주요 내용과 특징 등을 각각 점검한 후, 그가 10여년의 시차를 두고 이왕직아악부에서 촉탁 근무 전후 음악사 서술의 변화를 살펴본 글이다. 두 저작물의 차이는 시대 구분이 다르며(<조선의 음악>(1922)에서는 발해사를 언급하고 있으나 <조선음악사>에서는 발해를 전혀 다루지 않을 뿐 아니라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시대별로 소개한 음악사는 내용에서도 차별화 된다. 음악의 기원을 단군교 찬송, 단군시대 가무회(歌舞會)를 전면적으로 내세운 전작과 달리 <조선음악사>에서는 단군을 언급하지 않았다. 전작에서는 삼국시대의 음악을 국내로 한정하고 있으나 <조선음악사>에서는 음악사의 범주를 확장시켜 당악, 서역악의 유입을 소개하고, 고구려가 중국에서 연주했던 악기, 백제가 일본에 전파한 악무(樂舞)까지 확장하여 설명하고 있다. 고려시대는 불교와 무인(武人)의 영향력에 비중을 두어 설명한다. 조선 전기음악사에서 박연을 주로 언급했던 전작과 달리 <조선음악사>에서는 박연의 이름조차 넣지 않은 채 악기제작만 간단히 서술하고 불교음악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하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조선음악사>에서는 조선후기의 음악으로서 군악을 중요하게 취급한다. 같은 저자의 시기를 달리하는 저작물의 이와 같은 변화는 지적 역량의 확장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왕직아악부의 촉탁을 역임하면서 집중적으로 조사ㆍ섭렵한 음악자료-개인 수집 자료, 이왕직아악부 소장 자료, 학무과 분실 자료, 장서각 소장 자료, 기타 외부 기관 자료, 개인 소장 자료- 등 다양한 경로로 확보한 문헌이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사료에 의거한 실증적인 고증적인 방법론으로 일관했던 안확의 학문적 방향과 태도도 반영되어 있다. 한국의 근대전환기 안확은 전통음악을 독립적인 학문으로 인식하고 사적 흐름으로 정리하는 시도를 최초로 해냈다. 이후 이루어진 여러 연구 주제의 개발의 측면에서 살펴볼 때 안확의 선구적인 역할의 궤적은 조선음악사에 압축되어 있다. 시대구분의 틀, 시대를 아우르는 역사적 내용의 해석뿐만 아니라 자료에 대한 안목과 그것의 확보 능력, 실증적 연구 방법 등 10년 동안 드러나는 안확의 지적 확장을 살펴볼 수 있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세부과제5 |
이왕직아악부 관련 악보의 간행과 편찬 ????조선아악???? 가운데 악보 관련 자료-「아악채보예정표」와 ????세조실록악보????(부분), 그리고 이와 별도로 문서철에 끼워져 있던 영산회상의 양금 육보인 「양금보개요」-를 통해 이왕직아악부 시기에 필사되거나 간행된 ????세종실록악보????와 ????세조실록악보????에 대해 그 발간 배경과 내용을 알아보고 음악사적 의미를 찾아보았으며, 이왕직아악부에서 본격적인 사업으로 추진했던 채보 사업과 악보화 사업의 전반을 조감하면서 전통음악의 변화 양상을 고찰했다. 첫째, 이왕직아악부에서 본격적인 사업으로 추진했던 채보 사업과 악보화 사업을 통해 전통음악이 규격화 표준화되어가는 측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동안은 주로 채보 사업의 과정과 내용에 대해 분석하는 연구가 많았었는데, 아악부 악보(정간보)와 오선채보 사업을 통해 변모되어가는 음악과 전승의 측면에 대해 주목했다. 둘째, 아악부 시기에 필사되거나 간행된 ????세종실록악보????와 ????세조실록악보????에 대해 그 발간 배경과 내용을 알아보고 시대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조선아악????에 포함되어 있는 ????세조실록악보????(부분)을 통해 이 시기에 이루어진 고악보 간행의 내용을 고찰했다. 마지막으로 근대기 이왕직아악부에서 이루어진 전통음악의 악보화 배경에서 다소 간과되어 왔던 민간음악의 수용과 교류의 측면을 부각시켜 보았다. 이왕직아악부에서 주관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 중심과 주변에서 이루어진 악보를 통해 당시 변화하던 음악 환경을 ????조선아악????과 함께 관리되어 오던 ????양금보개요????나 기타 ????조선음률보????(1916), 선교장 소장 ????현금보초????(1926) 등 이왕직아악부과 직접 간접으로 관련있는 악보들을 교차하여 살펴보았다. 주목되지 못했던 ????조선아악????의 자료에 착안하여 이왕직아악부가 격변의 시대를 맞아 모색했던 숨은 면모와 근대적 체계를 갖추기 위해 시도했던 다양한 작업에 대해 살펴보고 그 음악사적인 의미를 진단해보았다. 20세기 벽두 무너지기 시작한 궁중의 음악환경은 이전 시대부터 전해오던 음악적 지형도를 크게 바꿔 놓았다. 결과적으로 바라보면 시간의 흐름 끝에 남은 변화된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 과정을 추적해 보면 시대와 일체가 되어 생존하며 투쟁해온 능동의 역사임도 확인하게 된다. 이왕직아악부라는 굴곡진 시공간 속에서 격변의 시기를 지내온 과정을 전통음악의 채보와 악보화, 나아가 고악보의 간행 등 일련의 과업을 통해 조감할 수 있었다. |
내용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