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 기초연구/공동연구과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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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코드 | (AKSR2018-C13) | ||
연구과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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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 구난희 | ||
공동연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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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간 | 2018-04-04 ~ 2018-11-30 | 연구형태 | 공동연구 |
연구목적 및 배경 | 이 연구는 고대고분 연구에서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고분 주변에 시설되는 다양한 시설물에 주목하였다. 8~9세기 왕조들이 고분 주변의 시설물을 통해 얻고자 한 기능과 역할, 그 의미를 찾는다. 아울러 신라, 발해, 당, 일본의 사례를 아우름으로써 동아시아의 고대 고분과 그 주변의 시설물을 원형과 변용이라는 맥락 속에서 고찰해 보려는 목적도 견지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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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 및 내용 | 고대 고분 주변 시설물의 연구 범위는 8~9세에 존속한 신라와 발해, 그리고 중국(당), 일본(헤이안)으로 삼아 4개의 주제로 구성하였다. 첫 번째 주제는 통일신라시대 왕릉과 주변 시설물, 특히 능사의 구체적인 사례와 기능에 대해 다루었으며, 두 번째 주제는 발해의 고분 외부조영물이 배치되는 방식을 통해 왕실고분의 묘역화를 제안하였다. 세 번째 주제는 수당대 황제릉 주변의 불교시설물에 대해 그 종류와 특징, 능원 속 입지조건, 능침제도 속 기능과 의미를 검토하였으며 마지막 주제는 왕실보물 창고로 잘 알려진 쇼소인이 묘제의 변화와 함께 무덤의 기능을 담당하였음을 제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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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1. 통일신라시대 왕릉의 불교적 시설과 능사(김창겸) 2. 발해의 고분 외곽 조영물에 대한 연구(구난희) 3. 중국 수당대 고분주변 불교시설물에 대한 연구(양은경) 4. 고대 일본 고분과 능사(유키오 리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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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 4개의 연구는 신라, 발해, 당, 헤이안 왕조의 사례를 통해 고분 외곽 시설물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을 환기시킴으로써 고대사 연구의 새로운 연구 영역을 발전시켰다. 아울러 한국사의 문화 현상을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심화된 인식을 제고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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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
전체 연구결과 요약(초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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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과제에서 담은 내용은 크게 ①한국의 능사(적 요소)의 출현과 특징, ②능사의 기원, ③ 발전양상의 세 부분이며 총 4개의 주제 연구로 구성하였다. 한국의 능사(적 요소) 출현은 통일신라와 발해를 대상으로 하였고, 능사의 기원은 수당대의 왕릉을 대상으로 하였다. 아울러 능사의 변용과 발전 양상은 신라, 발해, 당에서 모두 다루되 좀 더 변용의 외연을 확대하기 위해 일본의 사례도 포함하였다. ① 한국의 능사(적 요소) 출현과 특징 능사를 광의적 의미로 정의하고 고분 문화와 종교 건축의 접합 지점에서 나타나는 문화 양상을 포괄하였다. 첫 번째 주제연구에서는 『三國史記』, 『三國遺事』에서 서술된 통일신라시대 왕릉과 주변 사찰에 대한 문헌기록을 정리하고 감은사, 능지탑 등 현존하는 능사와 관련된 일련의 유적과 유물도 조사하여 문헌기록과 결부시켜 고찰하였다. 삼국시대에 등장한 능사가 통일신라에는 어떠한 양상으로 변화, 발전하는지를 다루었다. 두 번째 주제연구에서는 발해의 고분을 다루었는데 능사적 요소를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지점을 뚜렷하게 발견하기는 어려워, 외부조영물을 중심으로 능침적 기능이 어떻게 왕실고분의 능역화 과정과 연동되고 나타나는지를 분석하고 그것이 발해사 이해에 제공하는 시사점을 분석하였다. ②능사의 기원 주로 세 번째 주제연구에서 다룰 부분이다. 여기서는 고대 중국에서 능사가 등장하는 시기, 조사된 사례, 전개양상에 대해 다루었다. 『洛陽伽藍記』, 『水經注』, 『資治通鑑』등 문헌기록에서 언급된 능사와 실제 발굴조사된 능사를 결부시켜 종합적으로 비교 고찰함으로써 그동안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수, 당의 능사 출현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다. ③능사의 발전 양상 4편의 주제연구 전반에 반영된 요소이다. 수, 당의 능사 문화와 발해, 신라의 능사 문화를 비교함과 동시에 일본의 헤이안 시대의 능사 문화를 다룸으로써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각 왕조의 특성을 살피고자 했다. 특히 일본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잘 알려진 쇼소인을 불교와 도교의 요소가 포함된 왕실 무덤으로 파악함으로써 동아시아적 보편성이 일본에서 특수화되는 지점을 분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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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과제별 요약 | |
세부과제1 |
이 연구는 통일신라시대 왕릉과 주변의 불교적인 시설물들과 능사를 다루고 있다. 신라의 능묘제도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고 변천하였다. 하지만 전성기 신라 왕릉은 唐 皇帝陵 능원의 석물 배치의 기본적인 모형을 흡수하여 성립되었으나, 이전 시기부터 이어져 온 王卽佛思想에 의하여 능을 불탑과 같이 꾸몄으며, 十二支神像과 胡人俑을 묘실의 밖 護石과 陵園으로 끌어내 왕릉을 보호하는 시설 로 재창출하였다. 특히 호석의 구성에 따른 면의 공간에 12지신상을 浮彫하여 다 양하고 화려한 위용을 보이는 형식으로, 또 능전 시설은 당의 석물 배치를 모방하 였으나 신라만의 독특한 형식을 창출하였다. 신라 왕릉은 봉분과 봉분 주변 시설물 및 여러 가지 부속물이 있었다. 봉분과 관련하여서는 호석과 난간석・상석 등이 있 고, 또 능역에는 陵儀石物과 陵寺 등이 있다. 신라시대 특정한 國王에 대하여 극락왕생을 비는 願刹은 王京과 지방에 여러 개 존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왕경의 원찰 중에는 서악동 고분군과 哀公寺 및 永 敬寺, 문무왕의 大王岩과 感恩寺, 신문왕릉과 皇福寺, 원성왕릉과 崇福寺처럼 왕릉 의 주변 시설물의 하나로서 능사적 성격을 가진 것들이 있었다. |
세부과제2 |
이 연구는 발해 고분의 외부조영물의 현황과 배치, 그리고 그것에 나타난 의미를 다루었다. 먼저 외부조영물을 물길의 총상작옥과 연결하는 중국학계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고 물길전의 총상작옥은 시신의 보관 기능에 한정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다음으로 고고 성과를 토대로 외부조영물의 현황을 검토하고 크게 돌담형, 탑파형, 금당형, 능원형으로 분류하였다. 돌담형은 진한시대에 등장한 능침과 같은 기능을 담당하는 외부조영물로 이해하였으며 탑파형은 돌담형을 모태로 당의 묘상탑과 전실묘의 영향이 융합된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탑파형은 왕실고분군이 하나의 능역으로 조성되는 가운데 수묘와 추복의 조영물로 부가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와 달리 금당형과 능원형은 하나로 능역화된 왕실고분군과는 별도로 독자의 능원을 추구한 사례로 해석하였다. 육정산고분군의 제1묘역과 용두산고분군의 용해구역 제5대지는 왕실 고분을 하나의 능역으로 조성한 구역이라는 점을 제안하고 그 조성 주체를 문왕으로 추정하였다. 이를 해명하기 위한 첫 단서로 정혜공주묘와 정효공주묘에 주목하였다. 정혜공주묘와 정효공주묘는 서로 다른 묘제를 취하고 있지만 왕실무덤의 정중앙에 주변과 다소 다른 특이한 묘제로 안치되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뿐만 아니라 양 공주묘의 묘지석에서 ‘陪葬於○○之西原’이라는 구절을 포함한 것은 수사적 서술만이 아니라 이러한 의도를 표현한 것임을 재인식하였다. 문왕은 57년간의 긴 재위를 통해 왕실의 권위를 드높이고 그것을 자신의 직계를 중심으로 재편하고자 왕실 능역을 조성하였던 것이다. 이는 곧 살아있는 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며 고분 외부조영물은 이를 보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에 따라 용해구역 제8대지의 금당형 조영물(M13과 M14), 삼릉둔고분과 하남둔고분과 같이 별도의 능원을 조성한 경우는 문왕이 주도하는 권력 관계와 왕실 내의 지위에 불편을 느끼거나 그를 능가할만한 권력을 영유하거나 소망하면서 별도의 묘역을 마련하였던 것으로 보았다. 이는 또 다른 살아있는 이의 의도가 드러나는 지점이며 이를 외부조영물로써 구현하고 있다. |
세부과제3 |
이 연구는 중국의 전통 예제사상이 강하게 반영된 수당대 황제릉의 능원에 불교 적인 시설물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유와 그들이 담당한 기능에 의문을 제기하고 수당대 황제릉 주변의 불교시설물에 대해 그 종류와 특징, 능원 속 입지조건, 능침제도 속 기능과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필자는 우선 오늘날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사원지와 불당, 석경당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으며, 고고조사내용과 문헌기록을 종합하여 발원자, 발원목적, 조성 시기, 현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수 문제 태릉의 사원, 당 태종 소릉의 요대사, 당 선황제 건초릉・광황제 계운릉의 광업사는 황제의 발원에 의해 능사로 조성되었으 며, 당 고조 헌릉의 석불당, 소릉 요대사지의 석경당은 귀족들과 일반인들의 발원 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요대사는 무덤이 조성될 당시 무덤과 동시기에 건립된 능사이었으며, 나머지 능사들과 석불당, 석경당은 무덤이 완성된 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 므로 요대사는 능원에서 주된 장소를 선점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나머지 사례들은 전체 능원 속에서 고정된 장소 혹은 일정한 규정을 가지며 배치된 양상 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다시 말해, 무덤과 부속시설물들은 능침제도에 기초하여 조성되고 배치되었기 때문에, 후대에 안치된 불교시설물은 처음의 능원계획 속에 포함되지 않았을 가능 성이 높다고 판단하였다. 그렇기에 이들은 무덤, 능묘석각, 침전 등 시설물들이 안 치된 공간 이외의 장소에 배치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하였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수당대 능원에서 불교시설물이 담당한 기능과 역할에 대해 고찰한 결과 수릉, 추복, 유람장소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능사에서는 齋會 등 불교식 추복활동이 거행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으며, 이러한 내용은 중국 전통 예제사상에 기초하여 추모활동을 한 예제건물과는 다른 불교적 인 역할로 해석하였다. 당대 극성한 불교는 중국인의 상장문화에 일정한 영향력을 미쳤으며,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는 황제 능원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을 확인하였다. 결론적으로 당 대 능원은 전통의 예제사상과 불교가 함께 공존한 곳이었으며, 당대에는 전통사상 과 외래종교가 융합하여 이전 시기와는 다른 새로운 능원, 능침문화를 형성하였던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이 형성된 능원, 능침문화는 송대 황실에도 계속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
세부과제4 |
이 연구는 나라의 도다이지(東大寺) 사찰에 위치한 8세기 일본의 쇼소인(正倉院)보고의 성격을 죽은 군주를 추모하고 그의 사후세계를 상징하는 이행기적 공간으로 보고, 이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쇼소인 보고의 핵심적인 보물들은 756년에 죽은 남편 쇼무 천황을 애도하고자 고묘 황후(光明皇后, 701-760년)가 도다이지의 대불에게 헌납한 것들이다. 전통적으로 쇼소인의 예술품들은 나라 궁정이 당나라의 문화, 그리고 더 나아가서 당의 수도 장안(長安)의 국제적인 분위기를 흉내내던 시도라고 여겨졌다. 그리고 페르시아나 중앙아시아의 예술적 전통에 영향을 받은 유물이 많았기에, 쇼소인은 “실크로드의 최종 목적지”라고 불려 왔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쇼무 천황의 애장품을 도다이지의 대불에게 봉헌하는 행위, 그리고 일부 보물들의 성격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 보고 다른 해석을 제안하고자 한다. 본고는 쇼소인이 쇼무 천황의 보살왕으로서의 이미지를 완성할 뿐 아니라, 그의 영혼이 사후세계로 떠날 때 인도해주는 무덤과도 같은 기능을 한다고 역설한다.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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