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목적 및 배경 |
한반도, 특히 남부 지역에서 두.두형토기가 부장용으로 선택되기 시작한 것은 초기철기~원삼국시대 초기부터이다. 그런데 두.두형토기는 시기와 지역과 따라 출토 맥락과 비중에서 차이를 보일뿐더러, 주거․의례․고분에서 출토되는 양상이 상이하다. 두.두형토기.고배로 불리우는 기종의 생산과 사용 여부도 시기-지역에따라 차이가 있다고 여겨지는데, 설령 이러한 기종이 해당 지역.문화에 존재하고있다 할지라도, 그 구체적인 사용 방식과 의미 및 사회문화적 맥락은 제각각 달랐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한반도를 벗어나 우리 고대 민족이 활동하고 있었던 중국 동북의 일부 지역으로까지 넓힐 경우,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그간 이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사시대 두.고배는, 특히 영남 지역의 경우, 목관묘 단계부터 고분의 제사용으로 본격적으로 부장되기 시작한다. 깊은 묘광 내에 겹겹이 반복되는 고분의 축조와 제의 과정에서 어떤 위치와 순서에 따라 두․두형토기․고배가 부장되었다. 목관묘 단계부터는 그릇의 부장이 좀 더 평면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서 부장 기종의 수량과 배치가 체계화된다. 그간 우리 학계에서는 이러한 부장 양상에 대해 뭉뚱그려 토기 부장 전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있지만, 그 이상의 부장의 의미, 즉 물질문화의 상징적 체계 안에서 특정 부장토기 기종 구성의 의미에 대해서도 제대로 접근해 본 적이 없다.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문제 의식과 현재 관련 학계의 연구 현황을 고려하여, 시간적으로는 초기 철기시대부터 원사시대까지, 공간적으로는 고대 우리 민족이 활동하고 있었던 제2송화강 유역과 연변조선족자치주 및 요동 등지를 중심으로한 중국 동북 지역으로부터 한반도 남부까지, 주요 연구 대상으로는 두.두형토기.고배를, 연구의 초점은 부장토기로 하되 해당 시기와 지역의 물질문화에서 부장토기와 연동되는 생활유적의 토기까지를 포함하여, ‘동북아 부장토기의 형성과 전개’라는 대주제 아래 전체 5인의 연구자들이 모여 공동연구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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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
동단산형두의 확산과 지역적 양상 및 의미(오강원)
부여문화로 알려져 있는 포자연문화의 두를 동단산형두로 유형화한 뒤, 각 형식의 변천 관계와 주변 지역과 물질문화의 병행.후행 두와의 관계, 동단산형두의 출현과 전개 양상 및 이러한 두가 출현하게 된 문화적 맥락 등에 대해 상세하게
살펴보았다. 기원전 3~기원후 4세기 중국 동북 지역의 두 각각의 관계와 기원을 분명하게 밝힌 점, 각 물질문화에 각각의 특색 있는 두가 발생하고 사용된 맥락을 정확하게 밝힌 점 등이 주목할 만하다.
마한 권역 초기철기·원삼국 분묘의 토기 부장 양상과 의미(박진일)
마한 권역의 초기철기시대부터 원삼국시대까지의 고분 출토 토기의 부장 양상과 의미에 대해 살폈다. 마한 권역의 점토대옹, 장경호, 조합식우각형파수부호, 단경소호, 단경호를 분석한 뒤, 획기별 부장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고, 이에 더해 마한 권역의 부장 토기와 진한과 변한의 초기 목관묘 부장 토기를 비교하였다. 와질토기의 부장이 시대적 획기성이 약하다는 점을 근거로 기원전 2세기 초를 삼한의 개시기로 삼을 수 있다고 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호서·호남지역 두형토기 연구(한수영)
호서와 호남 지역 두형토기를 4단계로 획기한 뒤, 그 시간 범위를 기원전 5세기 후반부터 기원 전후로 보았다. 토착의 송국리문화에 외래계인 점토대토기문화가 유입된 후, 지속적으로 외부 문화가 유입되었다는 사실을 최근 출토된 두.두형토기 유적을 통해 밝혀냈다는 점, 중서부지역의 점토대토기문화가 서남부지역으로 2차 파급된 뒤 서해를 통해 만경강이나 영산강 유역으로 다양한 문화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양상을 조명하였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3~4세기 영남지역의 고배의 변천과 사회변동양상 비교검토(김일규)
영남 동해안 권역과 낙동강 하구 유역에서의 신식 와질토기단계 고배의 출현과 전개 양상을 밝히고, 도질토기 출현 이후 고배의 변천을 통해 낙동강 하구 유역, 경주 지역, 서부 경남 지역, 합천 지역의 사회 변동 양상을 추적하였으며, 고배 변천을 통해 3~4세기 한반도 동남부 지역의 사회 변동 양상을 총체적으로 조망하였다. 부장토기와 지역 형식 토기의 확산과 공반에 주목하여 가야연맹체의 동향, 가야연맹체와 신라와의 정치사회적 관계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추가한 점
등이 주목할 만하다.
신라토기의 성립과 부장토기의 선택(이성주)
신라토기를 일상토기와 제의토기로 이대분한 뒤, 부장토기의 출현 과정과 맥락에 대해 살펴보았고, 그에 이어 4~5세기 신라 고분의 토기 부장 양상을 토기 생산 시스템, 제의 등과 연계해 분석하였다. 음식 봉헌 등 과시적 의례의 측면에서 신라 부장토기의 문제를 조망하였다는 점, 토기 부장 제도의 물질화가 결국 5세기 내 신라 도질토기 생산 체계 형성을 이끌어냈다고 보았다는 점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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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보고서와 보고문은 생략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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