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 기초연구/ | ||||||||||||||||||||||||||||||||||||||||||||
---|---|---|---|---|---|---|---|---|---|---|---|---|---|---|---|---|---|---|---|---|---|---|---|---|---|---|---|---|---|---|---|---|---|---|---|---|---|---|---|---|---|---|---|---|---|
과제코드 | AKSR2017-V01 | ||||||||||||||||||||||||||||||||||||||||||||
연구과제명 |
|
||||||||||||||||||||||||||||||||||||||||||||
연구책임자 | 김경일 | ||||||||||||||||||||||||||||||||||||||||||||
공동연구자 |
|
||||||||||||||||||||||||||||||||||||||||||||
연구기간 | 2017-03-20 ~ 2017-11-30 | 연구형태 | 공동연구 | ||||||||||||||||||||||||||||||||||||||||||
연구목적 및 배경 | 본 연구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인의 가치(관)와 감수성이 어떻게 변화했고 한국인은 이 시기의 급격한 사회 변동을 어떻게 인지하고 느껴왔으며 또 거기에 어떤 주관적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가치변동’과 ‘감정양식’이라는 개념적 도구를 통해 파악하는 데 목적을 둔다. 또, 그런 가치변동과 감정양식이 사회구조와 개인의 행위와 결합됨으로써 한국인의 심성구조와 인격유형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도 살펴보고자 한다. 일찍이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세계 각국과의 비교의 틀 속에서 한국인의 사회의식을 조사하려는 연구기획을 진행했지만(박영은 외, 1999, 2000), 아쉽게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후속 연구가 진행되지 못했다. 또, 그간 근대화에 따른 한국인의 가치(관) 변화를 다룬 연구들은 무척 많았지만, 많은 경우 개별적인 가치 하나하나에 천착했을 뿐 가치 변동의 전체적인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더 나쁜 것은, 실제의 가치 변화를 정확하게 포착하기 전에, 미리 공동체의 해체, 지나친 개인주의, 젊은 세대의 도덕적 해이와 방종 등 산업화 ․ 도시화의 악영향에 대한 우려부터 내세우거나, 경제개발을 위한 국가적 동원과 관련해서 지배이데올로기를 올바른 가치관으로 ‘정립’하려 했던 시도들이다. 이 연구는 기존의 이런 시행착오들을 벗어나서, 일차적으로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의 가치의 역사적 변화와 현재의 양상을 정확히 포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이 연구는 크게 역사적 연구와 현재의 가치 조사라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질 텐데, 본 연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존 사회의식조사 연구에서 거의 다루지 않은 감정양식 영역을 다룸으로써 사회의식이나 가치관의 변화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감정은 이성과 대립되는 감각 혹은 감성으로 평가절하 되어 인간과 사회의 이성적 판단과 기획을 약화시킨다고 파악하였고, 따라서 적극적으로 축소되거나 억제되어야 하는 인간의 부정적 특성으로 인식되었다. 그 결과 합리적 이성에 입각하여 구축된 근대 학문의 장에서 감정은 그 연구 대상으로서 회피되거나 제외되어온 영역이었다. 설령 연구가 이루어진다고 하여도 부정적인 의미에서 이루어지거나 기껏해야 심리학적 연구대상으로 학문적 관심사항이 축소되어오기 일수였다(Gordon, 1981; Greenwood, 1994; Lutz, 1998; Ben-Ze’ev, 2001; Solomon, 2003; Ahmed, 2004). 그러나 인간의 사고·구상·기획 그리고 행위와 실천이 철두철미하게 이성적인 것만은 아니며 또한 엄격히 이성적·비이성적 혹은 감정적 영역 자체를 구분하기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그 결과 인간의 공동체·조직·사회가 보여주는 집단적·집합적 기획과 실천에 있어서도 순수하게 이성적인 면모를 전부로 인식하기 힘들다고 말할 수 있다(허먼, 2009; 정수남, 2013; 하홍규, 2013; 푸레디, 2013; Milton, 2006; Riis & Woodhead, 2010; Tonkin, 2006; Wetherll, 2012; TenHouton, 2013). 따라서 그간 학술적인 논의에서는 배제되어 왔고 또한 사회적 실천과 담론에서도 억제되어 왔지만, 인간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제였던 감정은 21세기 감성의 시대에 다차원적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콜린스, 2009; 김홍중, 2014; 박형신·정수남, 2009, 2015; 메스트로비치, 2014; 럽톤, 2016. Crossley, 1997; Goodwin, 2007; Turner, 2011). 순수한 인식과 이성적 계산보다는 인간의 실천적 행동을 이끄는 의지나 정서, 감수성, 에토스(ethos)와 파토스(pathos)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가치변화와 감정양식의 관계는 실제로는 매우 밀접하며 심지어 가치는 감정양식에 의해 구성되거나 결정될 정도로 둘 간의 관계는 분리될 수 없다. 가치나 사회의식이 인지적 차원에서 다뤄지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실상 사회의식이나 가치관은 한 개인이나 한 집단구성원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사건이나 일상생활의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에 의해 형성된다. 가령 유명한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정신’은, 인식론적으로는 개인의 구원과 관련된 신의 섭리를 알 수 없다는 不可知論과 관련되겠지만, 동시에 그와 관련된 비극적 세계관이나 엄숙주의로 설명될 수 있다. 나아가 르 고프 등 베버의 자본주의 명제를 비판하는 여러 학자들은 현세의 삶에 대한 더 긍정적이고 밝은 감정이나 감수성을 근대와 자본주의의 원동력으로 제시한 바 있다(베버, 2012; 골드만, 1986; 르 고프, 1998). 또 예컨대 최근의 촛불집회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한 국가권력을 상대로 시민들이 분노를 통해 다시금 민주주의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재구성하는 계기가 된다. 이런 관심에서, 본 연구는 한국인의 가치와 감정이 역사적 흐름 속에서 어떠한 변화를 거치면서 세계사적 보편성과 특수성을 지내게 되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또한, 근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역사적 국면과 사회변동, 그리고 사회적 이슈에 따라 어떤 감정양식으로 발현되어 개인의 감정과 집합적 감정으로 표출되고 있는지 파악하여 이를 개념화하고, 한국인의 가치관 형성과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감정구조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이론적 시각과 연구방법을 탐색하고자 한다. |
||||||||||||||||||||||||||||||||||||||||||||
연구방법 및 내용 | 1) 연구내용 개괄 본 ????한국인의 가치변화와 감정양식???? 과제는 다음과 같은 연구내용들이 다뤄질 것이다. 우선 제1영역은 감정양식의 역사적 변화에 대한 연구이다. 한국 근대 초기부터 1950년대까지 한국인들에게서 나타났던 지배적인 감정과 감수성에 대한 연구이다. 여기서는 한국인들이 개항 이후 급속하게 밀려드는 서구 및 일본의 문명과 마주하면서 가졌던 감정과 그에 대한 구체적인 언어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를 통해 전통사회와 근대사회의 감정양식의 비교 및 차이를 들어냄으로써 감정양식의 역사적 변화를 탐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제2영역은 근대적 가치와 집합감정의 변화에 대한 연구이다. 이 영역은 크게 두 영역으로 나눠지는데, 하나는 근대적 가치의 출현과 변동이다. 여기서는 한국인들이 근대 이후 지배해왔던 근대적 가치의 핵심 내용이 다뤄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인들이 집합적으로 표출하는 감정양식의 변화와 그것의 특징을 다룬다. 여기서는 최근 들어 한국사회에서 두드러지는 집합감정을 살펴보면서 오늘날 한국인들이 추구하는 가치 혹은 다양한 가치를 둘러싼 갈등양상을 다루게 된다. 마지막으로 제3영역은 가치변화와 감정양식에 대한 사회조사이다. 여기서는 기존의 사회의식 및 가치관 조사를 적극 활용하고 응용하여 가치변화와 감정양식을 함께 다룰 수 있는 사회조사 방법과 이를 적용한 실제 자료수집 및 분석을 시도할 것이다. 개별 연구내용과 연구방법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2) 사회조사의 방법 본 연구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가치변화 관련 사회조사는 불가피하게 조사업체를 선정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조건과 방법을 통해 최대한 우량한 조사업체를 선정하고, 또 조사업체의 조사과정을 감독·모니터링하고자 한다.
가. 모집단 및 표본추출틀 본 연구는 한국에서의 가치 변화 양상과 감정양식 변화 양상, 그리고 이러한 감정과 가치관의 국제적 비교를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의 사회조사 모집단은 전국에 거주하는 만 15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병원, 요양원, 기숙시설, 특수사회시설 등에 입소해 있지 않아야 하며, 업무 전용 시설과 도서산간지역 거주자는 제외한다. 이러한 모집단을 대표할 수 있는 표본을 확률적으로 추출하기 위하여 다단계 지역표본추출법(multi-stage area sampling)을 사용하고자 한다. 즉, 가구수를 고려하였으며, ‘시군구→읍면동→집계구→청크(chunk)→세그먼트(segment)’의 5단계를 거쳐 표본가구를 추출하였다. 시군구, 읍면동, 집계구 표본은 비복원확률비례추출법(probability proportional to size without replacement)으로 추출되었으며, 청크와 세그먼트 표본은 단순임의추출법(simple random sampling)으로 추출할 예정이며, 각 표본가구에서 면접은 조사대상에 적격인 가구원 중 1명의 응답자를 랜덤하게 선정하여 실시할 것이다. 구체적인 절차는 아래의 [그림]에 제시된 바와 같다.
나. 표본크기 결정 현재 조사예산 등의 한계 등을 고려하여 1,200개 사례를 조사하는 것으로 최종 표본크기로 결정하였다.
다. 조사방법 모든 표본에 대해 반드시 방문면접을 실시하며, 위의 다단계 지역표본추출법으로 추출된 표본가구를 최초 방문 시 면접조사할 수 없을 경우 최소 3회의 반복방문을 원칙으로 한다(본 과제 연구팀에서 표본가구 중 일부를 무작위 추출, 방문면접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모니터링 실시).
라. 사회조사의 질 관리 다음으로 1인가구, 맞벌이 부부, 60대 이상 접근전략은 다음과 같다. 가구방문 시 1인가구 및 맞벌이 부부 가구는 응답률이 가장 낮으며, 초기 접촉이 어렵기 때문에 평일 출근시간에 인터셉트하여 적정 조사시간대 확인 후 조사를 진행할 것이다. 그리고 60대 이상 노년층은 설문내용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하므로 응답 시 불편함이 없도록 관리할 것이다.
세 번째로는 고소득층 거주가구, 저소득층 거주가구 등 특수 계층 조사를 위한 특수지역 전담팀을 운영하여 회수율을 높이고, 조사원에 의한 비표본 오차를 최소화하고 응답률을 제고하기 위해 표준화된 거절 유형별 가이드를 작성하여 조사원 교육 시 Role-Playing을 통해 미리 연습해보고, 상황에 맞는 대처능력을 향상시키고자 한다.
※ 조사업체 선발 방법 및 덤핑 방지 방법 본 연구에서 실시하고자 하는 “한국인의 가치변화와 감정양식” 조사는 향후 감정 및 가치변화와 관련된 한국의 대표적인 조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올해의 1차 년도 조사를 어떻게 실시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이에 따라 국내의 조사대행 업체 중에서 사회조사 경험이 풍부하고 공신력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하여 지속적인 혁신을 도모하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조사업체를 선정했다. 수의계약을 통해“사회조사 실시방안”에서 제시한 표본 설계와 실사 과정을 엄격히 준수하면서 조사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으며, 향후 조사를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 업체를 선정했다. |
||||||||||||||||||||||||||||||||||||||||||||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
연구결과 |
한국인의 가치, 성격 및 감정에 대한 윤치호의 평가는 오랜 시간에 걸쳐 기록해 온 일기들의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을 만큼 일관된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그의 일기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이들 부정과 비판, 비난의 목록들과는 달리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긍정의 평가는 매우 드물어서, 그의 일기 전체를 통해서 이에 해당되는 사례는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은 비록 그 의도나 지향은 다르다고 하더라도 조선인 자신에 의한 이후의 다른 평가들이나 서양의 외부 관찰자들에 의한 서술, 혹은 심지어는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일본인들에 의한 주장과도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하인이나 농민, 노동자와 같은 하층 계급을 게으름과 기생주의의 전형으로 제시하거나 불결과 더러움을 조선인에 고유한 속성으로 간주할 만큼 감정과 편견으로 일관하는 윤치호의 반응은 조선인의 근면·노동과 청결의 가치에 주목한 독일인 겐테의 사례와는 정반대의 시각에 서 있다. 이처럼 한국의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절망을 배경으로 한국인의 가치, 성격과 감정에 대한 그의 입장은 자학과 부정, 그리고 냉소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이 글에서는 40여 년에 걸쳐 지속된 방대한 그의 일기 자료를 통하여 그 내용을 범주화하고 구체화하여 살펴보고자 하였다. 나아가서 그것이 어떠한 성격과 지향을 갖는가를 보기 위하여 이후의 다른 조선들이나, 일본의 식민 정책자들, 그리고 선교사나 여행자와 같은 서구의 논의들을 비교와 대조의 시각에서 검토해 보았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인의 성격과 감정에 대한 부정과 비판의 논의의 기원을 흔히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가 일정 범위 안에서만 설득력만을 갖는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하였다. 한국인의 가치, 성격과 감정에 대한 부정과 비관의 주류 평가가 무력과 강권에 의한 식민 지배로의 편입 이전에 한국인 스스로에 이미 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윤치호의 사례가 주목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가치, 성격과 감정에 대한 윤치호의 기술이 부정과 비판의 언어들로 얼룩져 있다 하더라도 그 원류로서 윤치호를 지목한다거나 정형화하려는 시도는 다분히 경계해야 한다. 한국인의 가치, 성격, 감정을 보는 시각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윤치호 개인에 내재하는 불변의 고유한 속성으로 고착해서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윤치호가 왜 이러한 가치 등을 내재하게 되었는가를 밝히기 위해서는 그의 성장 배경이나 교육, 혹은 종교(기독교) 등의 영향을 염두에 두면서 일본 유학과 귀국 이후 왕실의 인물들과 관료들, 중국과 러시아의 인물들, 미국 유학에서 교수들과 선교사들, 일반의 미국인들, 일본 식민정책자들, 그리고 조선에 체류한 선교사들과 같은 다양한 범주의 인물들과의 교류를 통한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자아의식과 자기정체성을 구명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윤치호의 일기를 통해 나타난 윤치호 언어의 다차원성과 복합성, 그리고 내재하는 자기모순을 고려하면서 왜 그러한 가치와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검토하는 것은 남겨진 과제가 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발행된 근대이행기 신문들은 오늘날의 신문들과 달리 지면상에 필자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 연구는 근대이행기 순한글 신문에 나타난 감정 표현의 언어 양식을 분석하고 해당 표현들이 갖는 담화적 기능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독립신문』, 『매일신문』, 『제국신문』, 『대한매일신보』 등 근대이행기 순한글 신문의 논설 기사를 분석 자료로 삼는다. 근대이행기 순한글 신문에 사용된 감정 표현들은 그동안 보도의 미숙성 혹은 전근대성 정도로 여겨져 왔지만 본고의 분석 결과 이는 독자들의 감정을 움직이고 공감대를 형성해 이들을 정치 참여의 주체로 변화시키고자 했던 신문의 의식적 전략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근대이행기 신문들의 공통적 목표였던 ‘계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근대이행기 신문들이 한국 백성들에 대해 입을 모아 비판한 것은 그 ‘무지함’보다 ‘무감정함’이었으며, 신문 필진들은 민중들에게 분노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야 함을 강조하였다. 근대이행기 순한글 신문들은 공감을 통해 정치적 감정 능력을 기르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 양식을 활용하였는데, 두드러진 것은 형용사, 과장법, 신체 관련 비유, 동물 관련 비유 등이었다. 신문에 노출된 감정은 주로 부정적 감정이었으며 해당 감정 표현들은 특정 대상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비판의 대상은 한국 정부, 한국 백성, 친일 세력, 일본 정부의 네 가지로 요약된다. 이 중 가장 강도 높은 비판의 대상은 친일 세력으로, 성상형용사, 심리형용사, 사악함을 강조하는 과장법 표현, 신체 비유, 동물 비유 등을 통해 혐오와 비하, 동정 등의 감정이 표출되었다. 일본 정부에 대한 비판은 1907년 전과 후의 정도차가 컸는데, 1907년 이전에는 성상형용사, 태도형용사, 대응형용사 등 감정 표현의 정도가 높지 않은 형용사들이 쓰였지만 1907년 이후에는 개별 어휘의 부정적 의미가 강화되었을 뿐 아니라 심리형용사의 쓰임이 증가하였고 비하의 의미를 담은 과장법 표현이나 동물에 대한 비유 표현이 나타났다.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성상형용사와 대응형용사를 사용하거나 무능함을 강조하는 과장법 표현을 사용하였고, 한국 백성에 대해서는 비참함을 강조하는 과장법 표현이나 신체 관련 비유 표현 등이 사용되었다.
이 글에서는 근대 이행기 한국에서 감정과 관련된 새로운 번역어들이 어떻게 도입․수용되고 또 확산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한편으로는 Ridel 신부의 ????한불ᄌᆞ젼????(1880), Underwood의 ????한영ᄌᆞ뎐????(1890), Gale의 ????한영ᄌᆞ뎐????(1897)과 그것의 증보판(1911, 1914), James Scott의 English-Corean Dictionary(1891), George Heber Jones의 ????영한ᄌᆞ뎐????(1914), 조선총독부의 ????朝鮮語辭典????(1920), Underwood 父子의 ????英鮮字典????(1925), 조선어연구회의 ????鮮和新辭典????(1930), Gale의 ????한영대ᄌᆞ뎐????(1931) 같은 서구어-한국어 사전들에 실린 감정 관련 어휘들을 살펴보았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독립신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같은 주요 신문 자료를 가지고 감정 관련 어휘들을 키워드 검색하였다. 그렇게 해서 밝혀낸 감정 관련 어휘의 변화과정은 범박하게 ‘情’과 ‘七情’에서 ‘感情’과 ‘情緖’로, 라고 요약할 수 있다. ‘感情’과 ‘感性’, ‘情緖’ 등은 19세기 말 일본에서 서구 개념어의 번역어로 성립된 말들이다. ????독립신문???? 이래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될 때까지 간행되었던 여러 신문들에서는 이런 말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당시의 전체 어문생활을 파악하기에는 형편없이 부족한 자료기는 하지만, 이중어사전의 표제어와 설명에 등장하는 어휘들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感情’이나 ‘情緖’ 등의 말이 조선에 본격적으로 도입․수용된 것은 1910년대 전반의 일이라고 추측된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조선사회는 이광수의 ????무정????으로 대표되는 東京 유학생들의 폭발적인 감정/감성 담론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엘리트들의 어휘/담론과 일반 민중의 실제 생활 사이에는 여전히 상당한 거리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 현대사에서 ‘1950년대’라는 시공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 부상하는 하나의 난제(難題)는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되어버린, 그리고 죽음이 도처에 널려 있는 땅을 배회하는 ‘좀비’들이 어떻게 피와 살이 흐르는 인간으로, 나아가 심지어 ‘혁명’을 욕망하기까지 하는 인간들로 변모되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1950년대 전후 한국사회는 시체와 죽음, 죽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죽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거나 아니면 생존에 급급한 탐욕의 화신들이 뒤엉켜 살아가는 혼란스러운 시공간이었다. 손창섭, 장용학 등 전후소설가들이 핍진하게 그려낸 세계 역시, 이러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좀비들의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삶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1950년대 전후문학의 인간형을 변함없이 일관되게 절망, 좌절에 빠진 무기력한 존재들이었다고 간주할 때 부딪치는 한계는 1960년의 4월혁명이라는 거대한 사건, 나아가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출현하는 다양한 욕망들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좀비임을 알아버린 소수의 무기력한 좀비들과 생존이라는 유일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폐허를 배회하는 무수한 좀비들과 야수들이 뒤섞여 있는 시공간에서 어떻게 사람들은 다른 세상, 즉 혁명을 꿈꿀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점에서 1950년대 중반 손창섭 등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인물들의 출현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도 괴롭고 암울한 지옥 같은 일상이 끝없이 반복된다는 현실 자체를 대안이 없는 무게로 받아들이며 현실로 파고 들어가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니체적 영원회귀의 사유가 전후 작가들의 일련의 작업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전후 문학에서 등장한 새로운 인간형을 실제 한국 사회에서의 변화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 아마 그것이 의식적이었든 무의식적이었든 당대 전후 작가들의 기획 의도를 파악하고 거기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그 작품들을 읽었던 극소수의 독자들뿐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들이 좀비임을 자각한 -그 결과 좀비로부터 벗어난- 소수의 인간들과 대다수의 좀비와 생존주의의 화신인 야수들의 조우가 이루어지는 소용돌이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명사로서의 ‘소용돌이’가 아닌 ‘휘말린다’라는 동사가 만들어내는 생성, 즉 ‘휘말린다’는 감각이 대전(帶電)하는 새로운 연루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방법적 전환이 요청되는 것이다.
19세기 이전의 조선인들에게 죄(罪)라는 관념은 공동체의 행위 규범에서 벗어난 행위를 단죄할 때 사용되었다. 그래서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행위가 사회적 규범에서 일탈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률로 규제할 때 죄라고 하였다. 또 유교적 가치 규범에 따라 백성들을 교화하고 예교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강상의 윤리나 수신의 도덕 실천을 강조할 때 죄 혹은 죄인 등의 표현을 사용하였다. 불교의 경우에는 윤회설에 입각하여 현생에서 겪고 있는 모든 상황을 카르마, 즉 전생의 업보로 설명한다. 그래서 내생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참회와 수행을 통하여 현세에서 저지르는 죄를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처럼 세속 공동체의 행위 규범이건, 유교나 불교의 종교적 가치 규범이건, 죄라는 개념은 현실에서 일어난 당사자의 특정 행위와 관련된 것이다. 이에 비해서 19세기 조선 천주교 신자들의 기록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죄, 죄인 등의 표현은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에 관한 모든 일을 주재하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계명을 어겼거나 완수하지 못했다는 자책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때에 따라서는 천주교 신자 개인의 행위와는 무관하게 인간이 신의 명령을 어기면서 발생한 상황에 대한 인식을 담아서 스스로를 죄인으로 규정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이건 천주교가 신자들에게 제시한 죄 관념은 전통 한국 사회의 가치 규범에 내재된 죄 관념으로 볼 때 상당히 이질적인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18세기 말 조선에 전래된 천주교의 죄 관념은 신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을까? 기존의 가치관과 어긋나는 지점은 무엇이었을까? 또는 상호 오해나 상호 침투의 양상은 없었을까? 이런 점들을 살펴본다면 개항 이후에 폭풍처럼 닥쳐오는 근대와 전통의 가치관 충돌 이전에 어떤 조짐들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19세기 조선 천주교 신자들의 기록에 나타난 죄 관념과 그 작동 원리 등을 다루고자 하였다. 먼저 19세기 천주교 신자들이 ????성교요리문답???? 등 천주교 서적을 통하여 배운 죄 관념은 죄의 종류를 원죄와 본죄로 나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천주의 명령을 어기면서 발생한 원죄는 그 자손이 되는 모든 인간들에게 전해져서 영혼의 타락을 초래하였다. 이로 인하여 인간들 각자는 스스로 죄를 짓게 되었다. 천주가 인간을 창조하면서 그 양심에 계명을 새겨 천주의 명령대로 살도록 하였지만 원죄로 인한 영혼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본죄를 짓고 지옥으로 떨어질 운명을 안게 되었다. 하지만 19세기의 천주교 교리는 지옥의 상층부에 연옥이라는 별도의 공간을 있어서 원죄는 해소하였지만 본죄를 미처 용서받지 못한 인간들이 정해진 기간 동안 정화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하였다. 이에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은 자신의 죄도 용서받고 또 돌아가신 조상이 연옥에 머무르는 기간도 단축할 수 있는 기도와 선행을 실천하였다. 하지만 죄에 대한 윤리적 해석 방식은 색다른 성격을 띠고 있었다. 1845년부터 1866년까지 21년 동안 조선에서 생활하였던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 주교가 간행한 ????회죄직지????, 1801년 탄압사건 때 배교하여 참수형을 면하고 유배형을 받았던 최해두가 쓴 ????자책????, 1866년 탄압사건 때 살아남아 천주교를 재건하는 데 공을 세웠던 김기호의 저술 ????봉교자술???? 등의 천주교 서적들을 보면, 죄가 인간에게 미치는 해악을 설명하면서 유교 윤리적인 표현들을 많이 사용한다. 천주의 불효자식, 강상죄인 등과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19세기 조선 천주교는 천주와 인간의 관계를 가부장적 윤리로 설명하는 경향을 강하게 띠고 있기 때문에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유교적 가치관에 매우 근접해 있다는 인상을 준다. 죄에 대한 관념에 가시적인 외관을 입히고 종교적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의례적 실천이다. 즉 죄를 해소하는 방법으로서 19세기 조선 천주교는 세례와 고해라는 성사를 제시하였다. 원죄와 기존에 지은 본죄를 소멸시키는 세례성사, 그리고 세례 이후에 짓게 되는 본죄들을 없애주는 고해성사는 죄 관념에 생생한 사실성의 후광을 드리우고, 신자들로 하여금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그래서 매년 두 차례 교우 마을을 순방하면서 성사를 베푸는 선교사들을 만나기 전에 고해성사를 준비하는 복잡한 과정을 감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고해성사의 준비 과정에서는 자신이 지은 죄를 낱낱이 파악하는 성찰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때문에 선교사들은 신자들이 죄를 성찰하는 데 도움을 줄 목적으로 천주십계, 성교사규, 칠죄종의 항목들에 맞추어 매우 자세하게도 장황하게 고해성사를 받아야 하는 죄의 목록들을 나열한 서적들을 보급하였다. 고해성사를 준비하는 안내서에서 나열하고 있는 죄들의 목록을 보면, 죄의 내면화보다는 죄의 외재화가 더 중심적인 경향이라는 인상을 준다. 개신교에서 강조하는 신과 인간의 인격적인 만남과 회개보다는 죄 고백을 듣고 죄 사함을 내려주는 사제, 즉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존재의 역할과 기능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는 죄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19세기 조선 천주교의 죄 관념에서는 오늘날 천주교 교회법에서 말하는 내적 법정(Forum internum, 개인의 내면에 자리를 잡은 양심에 의해서 사태를 판단하는 행위를 말하며 처벌받을 수 없는 절대적 자유를 누림)이라는 개념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고해 내용에 대한 비밀 준수 의무 등이 내적 법정과 관련된다. 19세기 조선 천주교의 성사 규정에서 내적 법정 개념이 부각되지 않으므로 근대적 주체 형성과 죄 관념의 상관관계를 묻기가 쉽지 않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죄 관념 사이에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내면성의 원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만, 천주교의 죄 관념이 기존의 종교적 성향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규명하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이다. 유교 성리학에서는 죄의 관념, 죄 개념, 죄 이론이 부각되지 않는다. 성명과 의리에 관한 학설, 심성에 관한 논의 등에서 죄 개념은 핵심적인 위치에 놓여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유교의 이상은 예치, 예교 이념이기 때문이다. 덕과 예로 교화하는 정치가 왕도이고, 법과 형벌로 다스리는 정치는 패도이다. 벌을 엄하게 하면 사람들이 따르기는 하지만 수치를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논어????의 구절처럼, 왕도 정치를 구현하려는 이상 속에서는 죄가 되는 행위와 그에 따른 처벌의 문제는 사후적인 것일 뿐이다. 사전에 덕과 예로 교화하면 사람들이 죄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백성들을 바르게 하는 덕치가 중요한 반면에, 죄는 처벌과 결부된 개념이어서 왕도 정치의 이상과 맞지 않다는 생각이 유교 성리학자들의 심성에 들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다. 한편 천주교의 죄 관념이 지닌 독특한 측면을 내면성으로 설정하려면, 유교 및 불교와의 차별성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자면 유교와 불교의 심 개념과 천주교의 내면이 지니는 차이점이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마음과 내면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내면 자체가 내적 공간이고, 마음은 내적 공간 속에서 활동하는 주체인가? 유교와 불교는 마음이라는 주체의 움직임에 주목한다면, 천주교는 마음이 움직이는 내면 공간에 주목하면서 마음을 성찰하는 주체이자 성찰당하는 객체로 바라보는가? 이러한 문제를 밝히려면 천주교의 묵상 서적들에 대한 상세한 분석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한편으로 한국 자본주의 및 그 정신을 역사적-구조적으로 분석한 다음 서구 자본주의 및 그 정신과 비교하는 데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이 비교에 근거하여 진정한 자본주의와 그 정신을 찾아보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한국의 자본주의,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의 근대 산업자본주의는 개항 이후에 시작하여 일제 강점기에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이 시대의 자본주의는 총독부-지주 동맹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총독부-지주 동맹자본주의의 양 당사자는 공동의 목적이 필요했는바, 그것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물질적 이해관계였다. 총독부가 자본주의를 식민지배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했다면, 기업은 거기에 기여하면서 이윤을 추구했다. 해방 이후의 한국 자본주의 역시 동맹의 형태를 띠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이다.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에 의해 추진된 한국의 근대화는 산업화와 경제성장과 동일시되었다. 한국의 근대화는 그 영역에서 경제성장으로 환원되고 그 주체에서 국가와 재벌로 환원되었다. 그것은 이중적 환원근대이다. 이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는 전통주의적 정신과 천민주의적 정신과 결합하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구체적으로 말해 근대화의 두 주체세력인 국가와 재벌은 근대화의 객체이자 도구인 개인들을 유교적 이념에 의해 기업과 국가에 강력하게 결속시키면서 화폐가치로 표현되는 경제적-물질적 가치를 진정하고도 유일한 근대적 가치로 추구하도록 교화하고 환원적 근대화에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개신교가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의 ‘전도사’로 기능했다. 한국의 개신교는 자본주의의 전위대요 첨병이며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그이다. 개신교회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복음이 선포되고 성례전이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 주술적으로 자본주의적 욕망이 선포되고 그 욕망을 신과 성령 그리고 그리스도의 힘을 빌려 실현코자 하는 인간의 이기주의적 의식이 집행된다. 진정한 자본주의와 진정한 자본주의 정신이 가능하려면 먼저 모든 것을 경제성장으로 환원하는 환원근대적 사고를 극복하고 환원근대의 핵심 축인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가 해체되어야 한다. 또한 유교에 기반하는 전통적 집단주의 정신을 근대적 개인주의 정신으로 대체해야 한다. 근대의 토대는 전통이 아니라 근대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는 환원근대와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의 전도사 역할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그 본연의 종교적 임무, 즉 영혼의 구원에 헌신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자본주의의 피안에서 자본주의와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평등(equality)과 평등주의(equalitarianism)는 서로 관계된 개념이지만 엄연히 결을 달리하는 개념이다. 평등은 프랑스혁명(1789) 이래 인류사회가 지향해야 할 보편가치로 자리잡아 온 사회운동적․법적 실체에 가까운 개념이다. 이에 비해, 평등주의는 “평등을 지향하는 심성 내지 정신적 특징”이자, “평등을 원하는 심성(mentality)”이며, 하나의 태도이자 감정양식이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평등주의가 싹튼 토대이자 발원처는 단연 교육의 장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기회균등의 이데올로기가 사회적으로 더 확산되었고 이것은 평등주의 심성을 강화시켰다. 한국사회에서 교육제도는 사회적 상승이동을 바라는 한국인들의 열망이 투영되는 대상이 되기 십상이었고, 교육을 매개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의 출발과 그 지속이 하나의 신화처럼 자리해왔다. 평등주의의 물질적 토대는 고도경제성장이었고, 그것이 낳은 결과로서 중산층의 의식적․실제적 확충이었다. 평등주의는 ‘입신출세’라는 신화가 구체적 현실 속에서 작동할 수 있었던 사회 속에서 발견되는 집단적 감정으로서, 한국사회가 걸어온 ‘입신출세사회’의 궤적과 그 흐름을 함께 한다고 할 수 있다. 근래 들어 한국사회에서 평등주의는 그 물질적 기반을 상실하고 있다. 저성장과 양극화로 인한 중산층의 의식상․실질상의 감소는 그 경험적 증거이다. 이것이 평등주의 감정의 쇠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며, 또는 평등주의가 시험만능주의(“시험 앞에서의 만인의 평등”)로 왜소화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평등주의가 한편으로 사회적으로 무분별한 경쟁의 비용을 가중시켜온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내포한 근본주의적 지향이 한국사회의 역동적 변화에 동력을 제공한 점도 작지 않기 때문에, 이 평등주의의 해체 혹은 전환/왜소화 현상이 지닌 정치적․사회적 의미는 앞으로 좀 더 섬세한 관찰을 통해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평등주의 감정을 측정해낼 수 있는 사회조사의 질문, 지표를 개발하는 일도 보다 진전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광화문의 비폭력적인 촛불집회 이후 일각에서는 그 원인으로 ‘시민의식의 성숙’을 들고 있다. 이 설명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이 설명을 뒤집으면 과거 우리 사회에서 역사적 변화의 중심 동력이 되었던, 폭력행위를 포함한 집합행위들―4월혁명,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등등―은 극단적으로는 무분별한 폭도의 행동이 되고 만다. 이럴 경우 폭도들이 한국사회의 발전을 이끌었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러한 역설이 발생하게 된 까닭은 분노는 부정적 감정이고 따라서 폭력적 분출과 같은 부정적 결과를 산출한다는 단순 논리적 선입견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집합행위에서 감정이 어떤 경우에 폭력적으로 표출되는지, 그리고 그 폭력적 분출은 어떻게 감정적으로 해석되고 의미를 부여받는지를 이론적으로 탐구한다. 이를 위해 먼저 집합행위에서 감정이 어떻게 다루어져왔는지를 군중이론의 전통, 합리주의적 접근(자원동원이론과 정치과정이론), 감정사회학적 접근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둘째, 분노가 집합행위로 분출되는 감정동학을 분노의 원인과 분노의 표출방향과 관련하여 살펴보고, 집합행위는 사회적․정치적 분노가 외사되고 사회적․정치적 적대감으로 전화되어 집단적으로 표출할 때 발생함을 규명한다. 셋째, 분노감정이 집합행위에서 폭력적 분출로 이어지는 경우를 저항자들의 분노강화 전략과 국가 행위자들의 공포 조장하기 전략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이상형적 모델을 통해 도출한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집합행위에서 폭력이 감정적․도덕적으로 승화되는 방식을 추적함으로써, 국가폭력과는 달리 저항폭력이 역사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근거를 밝힌다.
본 글은 한국현대사에서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한 두 대통령, 박정희와 노무현에 대해 대중들이 경험한 집합적 슬픔과 애도행위를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두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애도는 한국 현대사에서 매우 독특한 사건이었으며, 그로 인한 사회적 효과 또한 매우 컸다. 가장 두드러진 효과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두 감정공동체들 간의 이념적·감정적 대립과 갈등 양상에서 잘 나타난다. 두 대통령에 대한 각각의 애도의례는 정치적 신념이나 이념을 공유하는 정치적 공동체를 넘어 생애서사 혹은 삶의 경험 자체를 공유하는 일종의 운명공동체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운명공동체는 유사한 생애적·세대적 경험, 상징체계, 문화적 에토스 등으로 결합된 집단이다. 박정희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이들에 대한 애도담론을 보면 ‘서민대통령’, ‘영웅서사’, ‘자수성가’를 상징하는 표상이 지배적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을 가난과 배고픔으로 보냈으며, 혹독한 시련과 차별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경제적·정치적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영웅으로 상상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상은 다름 아닌 대중 각자가 살아온 자기서사와 일맥상통한다. 무엇보다도 유사가족주의가 강하게 나타나는 데, 이는 운명공동체에게 나타나는 속성 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대중에게 박정희와 육영수는 ‘어버이’, 반대로 노무현은 ‘친구같은’ ‘이웃집 아저씨’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런 점에서 두 대통령이 밟아온 사로 다른 정치적 이력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있어서 이들의 비극적인 죽음은 곧 내 부모의 죽음 그리고 친근한 사람의 죽음으로 이해된다. 그런 만큼 대중이 두 대통령에게 투사했던 감정은 대중 자신의 삶과 그들의 삶 간의 상상적 친화력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두 대통령의 죽음 사이에는 30년의 시간적 간극이 놓여 있다. 이 기간 동안 한국사회는 민주화를 거치면서 대중의 정치적 감각 또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 시간적 격차와 정치적 경험은 현재 박정희를 애도하는 사람들과 노무현을 애도하는 사람들 간의 격차로 이어졌다. 본 논문에서는 이 격차를 살펴보기 위해 2017년에 동시에 개봉한 <미스 프레지던트>와 <노무현입니다>를 분석했다. 전자는 박정희와 육영수를 추앙하는 사람들의 감정구조를 반영하고 있다면, 후자는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감정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이른바 범박사모 사람들은 박정희를 조국근대화를 이룩한 영웅으로 내면화하면서 자신의 현재 삶과 박정희 시대를 동일한 시공간에 위치시키며, 박정희의 딸 박근혜의 몰락을 자기 삶의 예고된 몰락처럼 받아들인다. 반면 범노사모 사람들은 정의와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온 삶, 약한 정치적 기반을 가진 대통령, 소탈하고 서툰 서민의 풍모를 가진 사나이로서 노무현을 기억하면서 그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죄책감으로 노무현을 애도한다. 범박사모가 저물어 가는 것에 대한 애절함과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한 사회적 무시를 겪는 것에 대한 하나의 반응으로‘태극기’를 전면에 내세운다면, 범노사모는 아직 미완결된 민주화에 대한 희망과 노무현에 대한 죄책감에 대한 반응으로 ‘촛불’을 내세워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재구성한다. 지금의 한국은 여전히 이 두 감정공동체가 사회갈등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의 갈등은 단순히 이념적·이데올로기적 갈등을 넘어 오래된 습속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결국 상호 무시와 무지에 의한 적대적 관계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두 감정공동체 간에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절차적 단계를 생략한 채 30년 시간을 반목하면서 버텨왔던 것이다.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한국정치의 비민주적 행태와 전근대성은 상호 민주적 소통을 통한 인정체계의 부재에서 비롯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문제는 기성세대가 자연스럽게 생물학적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순간 사리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적 습속으로 전승된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고독이란 말은 개인이 사회로부터 단절·고립되어 혼자 생존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인·심리적 결과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동양사회에서 고독은 ????맹자????에 등장하는 ‘환과고독(鰥寡孤獨)’이란 말에서 유래했다. 즉 늙어 아내 없는 이 즉 홀아비(鰥), 늙어 남편이 없는 이 즉 과부(寡), 어리고 아비 없는 이 즉 고아(孤), 늙어 자식이 없어 외로운 이(獨)가 바로 환과고독이며 이들은 국가가 돌보아야 하는 사궁민(四窮民)에 해당했다. 이는 전근대 사회에서 가족의 부재가 곧 고독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당시 인간관계 즉 사회적 관계의 단절은 친인척 관계의 단절로부터 유래하며 이는 삶을 위기의 상황으로 몰아넣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면서 신분사회가 해체되고 혈연 중심의 공동체에서 개인이 독립한다. 이제 개인은 공동체와 집단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생존과 활동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이같은 독립과 자유는 필연적으로 과거와는 다른 고독감을 불러일으켰다. 전근대사회라면 가족이라는 혈연공동체의 몰락이 고독의 원인이 되었다면, 근대 이후 인간 고독은 1차적 사회집단의 원심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항시적으로 개인에게 나타내는 그 무언가가 되었다. 여기에 산업화와 근대국가의 성장, 그리고 전쟁과 갈등 등과 같은 세계사적 사건들이 겹치면서 대규모 이산과 이주가 근대 이후의 세계에 몰아쳐온다. 이제 개인은 익숙했던 지역과 문화를 등지고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삶에 적응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같은 급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는 근대 이후에 개인이 고립을 대면하게 되는 세계사적인 계기가 되었는데, 이를 통해서 보편적인 의미에서 근대인의 고독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여느 제3세계 못지않은 변동과 이주·이향·이산으로 점철되어 왔다. 이는 비자발적이고 강제적인 관계단절과 더불어 익숙한 터전과 문화로부터 뿌리 뽑혔다는 의식을 한국인의 심성 속에 강하게 심어놓았다. 즉 서구와의 폭력적인 만남, 식민지, 자본주의 시장과 세계체제로의 비자발적인 편입, 전쟁과 분단, 이데올로기적 혼란과 갈등, 근대화와 산업화, 독재와 민주화 투쟁 등 급격하고 굵직한 변동의 경험이 숨 가쁘게 점철되어 온 역사가 바로 한국의 근현대사이다. 이같은 상황으로 인하여 구한말 이후 현재까지 대규모의 이향과 탈향이 급격하고 강제적인 형태로 발생하였고, 이에 따라 사회적 관계의 급격한 단절과 새로운 관계설정이 끊임없이 발생하였다. 한국의 근현대사 자체가 관계 단절과 그로인한 고독이라는 감정이 강렬한 형태로 자리 잡게 하는 조건이 되었다. 그리고 이같은 고독감으로 인해 한국인은 역으로 고향과 과거에 대한 강한 향수를 자주 드러낸다. 1990년대 이후, 특히 IMF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새로운 고독감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 이후의 변화가 사회를 극도의 경쟁공간으로 변화시킴으로써 파생되었다. 그 결과, 경쟁에서 패한 대다수는 사회적 배제를 통해서 사회적 약자가 되어 사회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여기에 민영화와 사회안전망의 해체 등으로 이들을 지지해줄 국가적·사회적 장치들마저 빈약해진 상황에 처하면서 이들의 삶은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로 몰리게 되었다. 그 결과 이들의 삶은 회복될 수 없는 상황에 빠졌고, 각종 사회적 연결망에서 서서히 축출되었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배제된 자들은 오로지 홀로 냉혹한 현실을 감수해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고독사’의 증가로 나타났으며 ‘무연사회’라는 용어를 일반화시켰다. 거기에 위기에 처한 개인의 극단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 자살 역시 높은 추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이유이긴 하지만, 1인가구 역시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더군다나 생애과정 자체가 불투명해짐에 따라 결혼과 출산과 같은 가족형태의 이행자체를 경험하지 못하는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고립을 나타내는 각종 사회적 현상은 고립 자체를 공포로서 경험하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생존의 위기감이라는 극단적 감정으로서 고독을 경험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어가자, 유사 이래 현자와 성인들이 경험했던, 자기충만과 고양의 계기로서 고독은 이젠 소수만이 경험하는 재화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 한국인에게 이런 식의 고독은 또다시 힘들게 달성해야 하는 기획이 되어버렸으며, 소수의 승리자에게 고독은 일종의 사치재가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2000년대 이후 한국인에게 고독이란 양극화된 극단으로 경험하는 감정이 되어버렸다.
혐오는 단순히 이질적 타자를 싫어하거나 거부하는 수동적 감정상태를 넘어서 그 타자를 위해(危害)적 존재로 대상화한 후 그 대상을 다양한 형태로 배제하려 한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목을 요하는 감정이다. 나찌즘 정권이 유태인들을 그렇게 하였듯 혐오는 특정집단에 대한 차별을 넘어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위해를 가하려 하기 때문에 폭력을 수반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혐오는 그 대상이 되는 이질적 존재를 번식과 증식을 통해 세력을 확장시키려는 위험한 유기적 생명체로 인식하기 때문에 특정집단을 배제하는 생명정치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혐오는 이념적, 정치적, 종교적인 가치관의 차이들을 지닌 집단들간의 대립과 갈등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다양성의 화합과 공존을 토대로 하는 공화주의적인 시민사회의 성장을 가로막기도 한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발견되고 있는 혐오(군)의 증상들을 두루 찾아보고, 혐오의 역사문화적인 토양 즉, ‘배경’에 대해 논의했다. 이어 ‘혐오하는 집단’들이 혐오대상을 어떤 식으로 유기체로서의 대상화, 즉 생명화하고 배제하려하는지를 ‘혐오표현’을 통해 살펴봤다.
본 연구는 ‘한국인의 가치관 변화와 감정’을 서베이를 통해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감정이나 가치관을 측정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문항을 이용하였다. 그러나 한국인의 가치관과 감정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시계열적 비교와 국제적 비교가 가능하도록 조사문항을 설계하였다. 또한 최근 한국사회에서 문제시 되고 있는 혐오, 차별, 분노 등의 감정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척도를 포함시켜 한국인들의 가치관 변화를 탐색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설계된 설문지를 이용하여 19세 이상의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약 2개월 간 조사를 실시하였다. 엄격한 조사과정을 통해 얻어진 자료를 면밀히 분석하여 한국인의 가치관과 감정의 개념적 지도를 재구성하고 이를 경험적으로 구현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본 연구는 가치관과 감정 이외에 이들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현상에 대한 태도 및 인식 문항들에 대한 분석을 수행하고자 하였다.
이 연구는 가족관계의 질에 주목하여 한국인의 꿈꾸는 능력이 세대 간의 차이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꿈자본은 대체로 20대, 30대에게서 높게 나타나고 60세 이상이 되면 급격히 낮아진다. 개별적인 꿈자본의 구성요소를 살펴보면 상상력은 20대에게서 눈에 띄게 높게 나타나고 60세 이상 집단과도 가장 큰 차이를 보이지만, 그밖에 낙관성, 희망, 회복탄력성은 20대보다 30대에서 다소 높게 나타나며, 회복탄력성의 경우 세대별 차이가 가장 적게 나타났다, 둘째, 각각의 가족관계의 질을 구성하는 요인들이 꿈자본에 미치는 효과를 회귀분석한 결과, 각각 가족애착과 가족신뢰, 가족관계는 꿈자본 전체를 비롯하여 상상력과 낙관성을 유의하게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통합모델에서는 낙관성을 제외하고 오직 가족관계만이 유의한 영향을 미쳤고, 낙관성은 가족애착과 가족관계가 좋을수록 유의하게 높아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희망은 개별모델에서 가족애착과 가족관계가 좋을 경우 유의하게 높아졌지만 통합모델에서는 가족관계만 효과가 있었다. 회복탄력성의 경우 60대와 20대의 차이가 없었고, 가족관계와 함께 가족의 지지가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셋째, 가족애착은 60세 이상인 집단에 비해 다른 세대에서 더 급격히 꿈자본(전체와 그 구성요소 모두)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는 60세 이상인 집단과 50대와 가장 뚜렷히 나타났고, 20대와는 유의한 차이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종합적으로 60세 이상인 집단은 가족애착이 높아질수록 낙관성이 거의 변화하지 않았고 상상력과 희망, 회복탄력성이 오히려 줄어드는 결과를 보여 다른 세대와 명백한 차이를 보였다. 한편 가족의 지지가 높을수록 60세 이상을 포함하여 다른 모든 세대의 상상력은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30대는 오히려 증가하였다. 반면 긍정적인 가족관계는 60세 이상인 집단의 경우 상상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 것과 달리, 20대와 30대에게는 상상력을 낮추는 효과를 낳았다.
본 연구에서는 주관적 웰빙에 대한 관심이 삶의 만족을 비교하는 것을 넘어 정서경험을 측정하고 이를 비교하는 것으로 발전하는 경향 속에서 한국인의 정서경험을 주관적 웰빙에 관심을 두고 조사 및 분석하였다. 선행연구들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전반적으로 OECD 다른 국가들에 비해 볼 때 긍정적, 부정적 정서경험이 낮은 편에 속한다. 이러한 결과는 대체로 주관적 웰빙의 정서적 측면에서 긍정정서의 비율이 낮도록 하는데 기여한다. 하지만 한국이 긍정정서 비율이 낮은 것은 단순히 문화적인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비슷한 문화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동아시아 사회에서 서유럽이나 북미, 동구에 비해 긍정적 정서경험이 더 낮거나 부정적 정서경험이 더 많다고 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설문조사 분석 결과에 의하면 연령대가 증가할수록 삶의 만족이 낮아질 뿐만 아니라 긍정적 정서경험의 경우 여성은 나이를 먹을수록 늘어나는 경향이 있지만 남성은 정체되거나(편안함) 오히려 낮아진다(즐거움). 부정적 정서경험의 경우 남성과 여성 모두 청년기에 부정적 경험이 높다가 낮아지지만, 남성의 경우 40대에 부정적 정서경험이 높아지고(불안과 슬픔), 여성은 슬픔의 경우 40대에 불안의 경우 50대에 높아진다. 분석 결과를 종합하면 청년기에는 긍정적 정서경험이 높지만 부정적 정서경험도 높고, 중년기에는 긍정적 정서경험이 줄면서 동시에 부정적 정서경험이 늘어나며, 노년기에는 긍정적 정서경험은 여성에서만 높은 편이고 부정적 정서경험은 남녀 모두 낮아진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주관적 웰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주관적으로 자신의 지위를 평가한 것에 따라 삶의 만족과 긍정적 정서경험이 일관된 방향으로 함께 변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직업지위에 따라 비교하면 삶의 만족은 유사하게 직업지위가 높을수록 만족도가 높지만 긍정적 정서경험 중 즐거움은 대인접촉이 많은 서비스-판매직에서 가장 낮다. 한편 부정적 정서경험은 주관적 지위나 직업집단과 별로 유의하게 일관된 관계를 보이지 않는다. |
||||||||||||||||||||||||||||||||||||||||||||
참고문헌 |
내용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