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 기초연구/공동연구과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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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코드 | (AKSR2018-C11) | ||
연구과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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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 조영준 | ||
공동연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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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간 | 2018-04-04 ~ 2018-11-30 | 연구형태 | 공동연구 |
연구목적 및 배경 | 2017년에 『보부상자료집』 제2책(地)과 관계된 저산팔읍(苧産八邑; 서천・부여・임천・홍산・정산・남포・비인・한산)의 ‘상무우사(商務右社)’ 자료에 대한 탈초・번역・해설을 수행한 바 있다. 본 연구에서는 그 뒤를 이어 저산팔읍의 ‘상무좌사(商務左社)’가 남긴 자료의 탈초・번역・해설을 진행하였다. 영인본인 『보부상자료집(地)』이 공간되어 있지만, 『보부상자료집(地)』을 통해 저산팔읍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영인본 수록 자료 전체에 대한 정리・탈초・번역・해설 작업을 통해 해당 자료를 원본에 가까운 형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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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 및 내용 | 다음과 같은 순서에 따라 작업을 수행하였다. (1) 자료의 수집 및 정리(국립부여박물관 소장 자료 등) → (2) 선행 연구의 검토 및 회람 → (3) 탈초 및 정서 → (4) 탈초 및 정서의 교정 및 교열 → (5) 고문헌 번역 및 주석, 근대 문헌 번역 및 주석 → (6) 번역 및 주석의 교정 및 교열 → (7) 자료별 해제 작성 → (8) 종합 해제 작성 → (9) 최종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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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해제〕 저산팔읍 상무좌사의 자료와 조직 〔01〕 절목 (1879) 〔02〕 임홍청금록 〔03〕 절목 (1879) 〔04〕 비변사완문 (1879) 〔05〕 판하절목 (1881) 〔06〕 판하정식절목 (1881) 〔07〕 충청도비인임소청금록(1881) 〔08〕 혜상공국서 (1883) 〔09〕 판하상리국절목 (1887) 〔10〕 완문 (1890) 〔11〕 완문 (1894) 〔12〕 완문 (1894) 〔13〕 절목 (1897) 〔14〕 상무장정부칙 (1901) 〔15〕 상규단취지서 (1907) 〔16〕 상무회규칙 〔17〕 비람좌지사소임책 (1910) 〔18〕 서부좌사선생안 (1910) 〔19〕 상무연구회규칙 (1920) 〔20〕 동아상무조합정관 (1936) 〔21〕 서부청금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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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 2017년의 ‘상무우사’ 연구에 이어서 수행된 2018년의 ‘상무좌사’ 연구로서 본 연구를 수행한 결과, 『보부상자료집(地)』 전체를 아우르는 연구가 완성될 수 있었으며, 다음과 같은 특장점을 보이게 되었다. (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된 문서 전체를 활용하여 연구의 기초를 다지고 효율성을 제고하였다. (2) 탈초・정서의 완성도를 높였다. (3) 방법론의 차별화를 꾀하여, 기존의 연구에서는 활자화된 텍스트만 제시한다거나 일부 내용만 발췌하여 번역하는 수준이었다면, 이 책에서는 텍스트의 제시, 텍스트의 특이점 확인, 역주를 포함한 번역, 개별 자료에 대한 해설 추가 등을 수행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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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金柄夏 (1972), 「褓負商關係史料追補」, 『韓國經濟史文獻資料』 3, 80-106쪽. 民俗苑 (1988), 『褓負商資料集 地』(扶餘鴻韓山編), 영인본. 朴元善 (1965), 『負褓商―韓國 商法史上의 行商制度硏究―』, 韓國硏究院. 劉敎聖 (1962), 「忠淸右道苧産八區 商務社左社」, 『歷史學報』 17·18, 385-412쪽. 劉元東 (1965), 「忠南의 褓商團이 保有하고 있는 文獻數種」, 『忠淸南道誌』 下卷, 188-232쪽. 李光奎 (1969), 『褓負商』(民俗資料調査報告書 第16號), 文化財管理局. 조영준·심재우·양선아·전경목 역해 (2015), 『장돌뱅이의 조직과 기록: 예산·덕산·면천·당진 편』,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趙宰坤 (2001), 『한국 근대사회와 보부상』, 혜안. 조재곤 (2003), 『보부상―근대 격변기의 상인』, 서울대학교출판부. Avner Greif (2006), Institutions and the Path to the Modern Economy: Lessons from Medieval Trade, Cambridge University Press. Sheilagh Ogilvie (2011), Institutions and European Trade: Merchant Guilds, 1000-1800, Cambridge University Press. |
전체 연구결과 요약(초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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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행기의 대표적 상인으로 알려져 있는 보부상에 관한 연구는 영인본인 『보부상자료집』(民俗苑 刊; 天・地・人・續, 총 4책)이 간행된 이후 활성화된 바 있다. 하지만 전체 자료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결합하는 수준의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한 연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노력으로서, 2015년 12월에 발간된 『장돌뱅이의 조직과 기록: 예산・덕산・면천・당진 편』(이하 『장돌뱅이』로 약칭함)은 『보부상자료집(天)』의 완역 및 해설을 통해 새로운 연구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장돌뱅이』에서는 『보부상자료집』 제1책(天)의 전체 내용을 탈초(脫草)・정서(正書)하여 재편집하고, 각 자료에 대해 번역 및 해설을 가미함으로써, 관련 연구의 진전 및 대중적 관심 유도에 기여한 바 있다. 또한 2017년에 수행된 후속 연구에서는 『장돌뱅이』의 문제의식과 방법론을 계승하여 『보부상자료집』 제2책(地)과 관계된 저산팔읍(苧産八邑; 서천・부여・임천・홍산・정산・남포・비인・한산)의 ‘상무우사(商務右社)’ 자료에 대한 탈초・번역・해설을 수행한 바 있다. 본 연구에서는 그 뒤를 이어 저산팔읍의 ‘상무좌사(商務左社)’가 남긴 자료의 탈초・번역・해설을 진행하였다. 영인본인 『보부상자료집(地)』이 공간되어 있는 상황에서 본 연구와 같은 시리즈를 추진해야만 하는 이유 및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보부상자료집(地)』에 수록된 자료는 좌사・우사의 구분이 불명확하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좌사(左社)란 등짐장수인 부상(負商)의 조직을, 우사(右社)란 봇짐장수인 보상(褓商)의 조직을 가리킨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저산팔읍의 경우, ‘저산팔읍 상무좌사’와 ‘저산팔읍 상무우사’가 별도로 조직되어 있었으며, 양자가 보유한 자료 및 유물 역시 별도로 관리된 바 있다. 양자의 유품(遺品)은 문화재관리국에 의해 공히 중요민속자료(重要民俗資料)로 지정된 바 있으나, 저산팔읍 상무좌사의 유품은 1973년 7월 16일에, 저산팔읍 상무우사의 유품은 1980년 11월 29일에 각기 별도로 지정되었다는 점에서 시기의 차이가 있다. 또한 현재 시점에서 양자의 유품은 모두 국립부여박물관에 기탁되어 있는데, 기탁의 주체가 상이하며, 별도의 유물로 관리되고 있다. 좌사 유품의 기탁은 원 소장자인 김재련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 후손인 김삼현에게 상속된 반면, 우사 유품의 기탁은 황인철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 후손인 황원하에게 상속되었다. 그리고 좌사의 유품은 ‘홍산 보부상 유품’, 우사의 유품은 ‘임천 보부상 유품’이라는 유래(由來)가 불분명한 명칭으로 관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양자의 이러한 명백한 구분이 『보부상자료집(地)』에서는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표지의 우측 상단에 “부여홍한산편(扶餘鴻韓山編)”이라고만 부기되어 있어서, 전체 수록 자료 중에서 어느 것이 우사의 것이고, 어느 것이 좌사의 것인지 독자가 인식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좌사와 우사의 구분을 명확히 하여 개별 자료의 유래와 성격을 밝혀 둘 필요가 있다. 둘째, 『보부상자료집(地)』에 수록된 상무좌사의 자료 중에는 원본인지 사본인지 비판적으로 검토되지 않은 것들이 뒤섞여 있다. 예컨대 동 자료집의 3번째(49쪽)와 19번째(369쪽)에 각기 「혜상공국서」라는 자료가 실려 있는데, 영인본의 편집자가 양자를 별개의 것으로 파악하였으며, 전자에 대해서는 연대를 1930년으로 비정해두기도 하였다. 그런데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실물 자료와 대조해 보면, 3번째 자료는 19번째 자료를 후대에 필사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즉 1930년이라는 연도는 사본을 필사한 연도이지 원본을 생산한 연도가 아닌 것이다. 그밖에도 몇몇 자료에서 사본이 뒤섞여 있지만, 영인본 상으로는 이를 분명히 하기 어렵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사본을 걸러내고 원본에 의거하여 탈초・번역・해설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독자에게 미칠 수 있는 혼란을 막고자 하였다. 셋째, 『보부상자료집(地)』은 흑백으로 출판된 영인본이다. 그래서 도장이 찍혀 있는 부분이나 글자를 덧쓰거나 고쳐 쓴 부분 등에 대한 판독이 어렵다. 최근 들어 수많은 역사 자료가 컬러판 이미지의 형태로 활용 가능하다는 점과 대조적이다. 넷째, 『보부상자료집(地)』은 절반 이상의 내용이 초서(草書)로 작성되어 있다. 일부 연구자에 의해 탈초 또는 정서가 시도되기도 하였으나, 그 정확성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는 사례가 많다. 고문헌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연구자에 의해 하나하나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다섯째, 『보부상자료집(地)』에는 원본 문서를 해체하여 영인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순서가 뒤바뀐 경우 등의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착간(錯簡), 결락(缺落), 혼효(混淆) 등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편집 오류 가능성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그 결과, 영인본만을 보아서는 원본의 순서대로 재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었다. 이상의 셋째・넷째・다섯째 문제점은 공히 탈초・정서・재편집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여섯째, 『보부상자료집(地)』에 수록된 각 자료에 대해서 부여된 제목(표제)이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개별 자료 하나하나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인본을 출판하게 된 까닭으로 사료된다. 일곱째, 『보부상자료집(地)』에 수록된 일부 자료에 대해서는 연대 비정(比定)이 잘못된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원본 자료에서 연대의 표기를 찾을 수 없거나, 연대가 연호(年號) 없이 간지(干支)로만 표기되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각 자료의 작성 시기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하게 된다면, 자료를 활용한 분석의 기초를 확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상의 여섯째・일곱째 문제점은 본 연구의 수행 과정에서 모두 바로잡을 수 있었다. 요컨대, 『보부상자료집(地)』을 통해 저산팔읍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영인본 수록 자료 전체에 대한 정리・탈초・번역・해설 작업을 통해 해당 자료를 원본에 가까운 형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본 연구에서는 ‘상무우사’에 관한 성과에 이어서 ‘상무좌사’에 관한 성과를 산출함으로써 『보부상자료집(地)』의 한계를 극복하고 연구자 친화적인(researcher-friendly) 결과물을 내어놓고자 하였다. 향후 단행본으로 공간된다면, 저산팔읍을 비롯한 보부상 전반에 관한 연구가 경제학, 경영학, 한국사, 민속학, 사회학, 국문학, 고문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증폭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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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과제별 요약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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