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조선 초의 왕조 교체와 정도전의 문제의식
고려 말의 혼란은 단순한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원리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였고, 그 속에서 정도전은 새로운 질서를 설계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보았다. 14세기 말 고려는 대외 관계의 불안, 왜구의 침입, 권문세족의 토지 지배, 약화된 왕권 등 복합적인 문제에 직면하였다. 국왕의 권위는 크게 흔들렸고, 정치 체제 역시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질서를 유지한 채 국가를 다시 세울 수 있는가는 중요한 문제였다.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이 문제에 대해 고려 말의 혼란을 단순한 정치 세력의 갈등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와 사회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할 문제로 이해하였다. 위화도 회군 이후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하고 제도 개혁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정도전은 이러한 변화에 사상적 방향을 제시한 핵심 인물이었다. 왕조 교체는 단순한 권력 이동이 아니라 사회 문제 해결의 방향을 둘러싼 역사적 선택이었다.
성리학과 새로운 국가 구상
정도전의 사상은 새로운 국가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치적 답변이었다. 조선 건국의 사상적 기반은 성리학이었으며, 고려 말 성균관을 중심으로 성장한 신진 사대부들은 이를 새로운 정치 질서의 이념으로 받아들였다. 인간과 사회의 질서를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고 정치와 도덕을 결합하려는 성리학의 사유는 새로운 국가 운영의 기준을 제공하였다. 정도전은 이러한 사상을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적용하였다. 그는 민본 정치와 관료 체제, 재상 중심의 정치 구조를 통해 국가 운영의 틀을 새롭게 구상하였다. 이러한 구상은 토지 제도와 사회 구조 개혁으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국가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구상은 단순한 제도 개혁에 그치지 않았고, 새로운 국가가 어떤 원리 위에서 운영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문명 전환과 정도전 사상의 의미
조선의 건국은 왕조 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사상적 기반과 문명 구조가 바뀌는 역사적 전환이었다. 고려 사회를 지탱하던 불교 중심 질서는 조선 건국 이후 성리학 중심의 사회 질서로 바뀌었다. 이는 종교만의 변화가 아니라 정치와 학문, 사회 규범이 새롭게 재편되는 문명적 전환이었다. 정도전은 이러한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새로운 국가의 방향을 설계하였다. 그의 구상은 단순히 새로운 왕조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의 권위가 어디에서 비롯되며 정치와 사상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연결되었다. 정도전을 다시 읽는 일은 조선 건국을 하나의 정치 사건으로 이해하는 시각을 넘어, 국가와 사상의 관계를 다시 묻게 한다. 왕조 교체의 시대에 던져졌던 이 질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역사적 문제로 남아 있다.
정재훈. 조선시대사 전공,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朝鮮前期 儒敎政治思想 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인문학연구원 연구위원 등을 역임했다. 조선 전기에 『대학』을 중심으로 한 유교정치사상이 어떻게 이해, 수용되고 자기화하였는지를 검토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는 조선의 사상과 문화의 정체성과 특성, 동아시아에서의 위상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 『조선전기 유교 정치사상 연구』(2005), 『조선시대의 학파와 사상』(2008), 『조선의 국왕과 의례』(2010), 『조선 국왕의 상징』(2018), 『18세기 조선이 만난 문명』(2023), 「18세기 연행과 정조(正祖)」(2012) 등이 있다.
1장 조선왕조 건국과 정도전
1. 왕조교체기의 혼란과 정도전의 부상
2. 정도전 연구의 동향과 과제
2장 정도전의 생애
1. 정도전의 가계와 성장
2. 이성계와의 만남과 왕조 창업
3. 좌절과 사후 평가
3장 학문과 사상체계
1. 학문 경향과 다양한 저술
2. 성리학 사상
3. 벽이단론과 대불교관
4장 정치·외교·군사 사상
1. 정치사상
2. 외교사상
3. 군사사상
5장 사회사상과 경제사상
1. 사회사상
2. 경제사상
6장 정도전의 사상적 위상
1. 정도전 사상의 구조와 영향
2. 정도전 사상의 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