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중점연구 / 연구·교육 연계과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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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코드 | |||
연구과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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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 장신 | ||
공동연구자 | |||
연구기간 | 20240304 ~ 20240830 | 연구형태 | 단독연구 |
연구목적 및 배경 | 1. 연구의 목적 및 배경 1) 「한국대외관계사 사료강독」의 교과 목표 이 수업의 목표는 첫째로 1908년 4월 「신문지법」 개정 이후 일제의 언론 검열의 실상을 이해하고, 둘째로 일본어 사료 번역과 압수된 신문의 원문 입력을 통해 사료의 독해 능력과 이해도를 높이는 데 있다. 수업에서 다루는 사료는 내부 경무국에서 생산한 「押收新聞記事摘要」(1908년 4~10월), 「自隆熙三年一月 至同年六月 押收新聞記事摘要」(1909년 1~6월), 「自隆熙三年七月一日 至同年十二月末日 押收新聞記事摘要」(1909년 7~12월), 「凶變前後ニ於ケル在外韓字新聞押收記事摘要」(1909년 10월 1일~11월 26일)이다. 여기에 (舊韓國)官報와 統監府公報, 警察月報 등을 보조적으로 사용한다. 2) 연구과제의 배경과 필요성 (1) 「신문지법」 제정 이후 신문 검열 기준 연구 내부 경무국의 검열 대상은 국내외에서 발행된 신문·잡지와 출판물이지만 수업에서 다룰 대상은 대한매일신보와 해외에서 발행된 신문들이다. 일제는 1907년 7월 법률 제5호로 「신문지법」을 공포하여 신문 검열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지만 이 법은 한국에서 한국인이 발행하는 신문만 대상으로 하였다. 그래서 영국인 베델이 발행하던 대한매일신보와 러시아와 미국에서 발행되던 한인 신문을 제재할 수 없었다. 1908년 4월 「신문지법」을 개정할 때 “외국에서 발행한 한국어 신문과 외국인이 국내에서 발행한 韓字新聞을 단속”하는 조항을 삽입했다. 수업에서 연구할 자료는 1908년 4월부터 1909년 12월에 발행된 신문을 대상으로 검열하였다. 2000년 이후 한국의 검열연구는 <참고문헌>의 단행본에서 보듯이 언론과 출판, 영화, 연극,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방면에서 진행되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검열 주체, 검열 기준, 검열 회피를 위한 우회 전략, 검열이 문학과 예술에 미친 영향 등 검열을 통해 일본의 조선지배의 실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한계라면 연구의 대부분이 1920~30년대를 대상으로 하는 점이다. 자료의 부족탓이지만 1910년대 뿐아니라 대한제국기의 검열은 정근식을 제외하면 법률의 설명에 그치고 있다(정근식, 2003). 이 연구에서는 「신문지법」 개정 이후를 중심으로 대한제국기 일제의 검열 기준과 실태를 한단계 더 진전시키려고 한다. (2) 다양한 언어로 구성된 사료 습득의 필요성 한국근대사는 시간적으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기에 걸치고, 공간적으로는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 언어와 문자로 보면 한국어(한글), 한문,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일본어 등 다양하다. 한글만 해도 1934년 조선어맞춤법이 제정되기 이전에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표기법이 달랐고 국한문체도 적지 않았다. 매 학기 계획을 세워 다양한 언어의 사료를 접할 필요가 있는데, 이번 학기에는 일본어와 20세기 초 한글 사료를 읽고, 번역함으로써 한국근대사 연구에 필요한 사료 독해 능력을 높이려고 한다. (3) 외부 연구 용역에 대응하는 능력의 필요성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소속 대학원생에게 제공하는 혜택이 다른 대학원보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본원에 진학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저렴한 학비인 것처럼 대학원생들은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런 이유로 연구와 관련 없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근대사 전공의 경우 국사편찬위원회, 국가보훈처, 독립기념관 등 여러 기관에서 석박사 과정의 대학원생이 참여할 수 있는 사료 해제나 분류 또는 입력 작업을 발주한다. 현재 재학중인 한국근대사 전공 대학원생들은 프로젝트 참여 경험이 없는 데다가 다양한 사료를 접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전공과 관련 있는 아르바이트에 참여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수업을 통한 교육 효과 외에 독립된 연구자로서 외부 연구 용역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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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 및 내용 | 강독에 사용할 첫 번째 검열 자료는 「押收新聞記事摘要」이다. 1908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압수 기사를 흉행선동 갑을, 국교조애(國交阻礙) 갑을, 폭동선동, 질서문란의 기준으로 분류하고 압수 기사를 요약 소개했다. 일본 경찰대학이 이 자료를 소장하다가 일본 국립공문서관으로 이관하였다. 이 자료는 韓國警察報告資料 一로 편철된 문서에 포함되었는데 아시아역사자료센터에서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다. 두 번째 검열 자료는 「自隆熙三年一月 至同年六月 押收新聞記事摘要」이다. 1909년 1월부터 6월까지의 압수 기사를 국교조애 갑을, 폭도선동, 질서문란, 국권회복 갑을로 구분하고 요약했다. 이 자료도 앞의 「押收新聞記事摘要」와 소장 상황 및 열람 방법이 같다. 세 번째 검열 자료는 「自隆熙三年七月一日 至同年十二月末日 押收新聞記事摘要」로서 1909년 7월부터 12월까지 다루었다. 검열 기준은 흉행선동, 국교조애 갑을, 질서문란, 국권회복 갑을병이었다. 이 사료는 한국병합 전에는 통감부 경무총감부 기밀과 고등경찰계원이었고, 1910년 10월 1일부터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 고등경찰과의 도서계원이었던 모리와키 에이시(森脇英士)의 소장품이다. 이 자료는 일본 사가현의 나고야성(名護屋城)박물관이 2004년에 도쿄의 고서점에서 구입했는데 모두 19건 54점이다. 이 소장품 중의 靑丘余屑 其一에서 찾을 수 있다(浦川和也, 2006). 현재는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열람할 수 있다. 검열 대상이 된 신문은 앞서 본대로 대한매일신보의 국한문판과 국문판, 해외 발행 신문이다. 대한매일신보는 영인본 외에 대한민국신문아카이브에서 원문을 열람할 수 있다. 해외 발행 신문은 러시아의 대동공보|와 해조신문, 미국의 공립신보, 신한민보, 한성신보|, 신한국보| 등이다. 이 신문들은 국가보훈처에서 발간한 영인본과 대한민국신문아카이브, 한국독립운동사정보시스템 등에서 원문을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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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押收新聞記事摘要」(1908년 4~10월) 3 제일. 흉행선동 4 제이. 국교조애 27 제삼. 폭동선양 61 제사. 질서문란 63 「自隆熙三年一月 至同年六月 押收新聞記事摘要」(1909년 1~6월) 92 제일. 국교조애 94 제이. 폭도선동 120 제삼. 질서문란 123 제사. 국권회복 163 「自隆熙三年七月一日 至同年十二月末日 押收新聞記事摘要」(1909년 7~12월) 173 제일. 흉행선동 175 제이. 국교조애 197 제삼. 질서문란 254 제사. 국권회복 2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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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 200자 원고지 2,944매 분량의 번역과 원문 기사 | ||
참고문헌 | 정진석, 2007, 『극비 조선총독부의 언론검열과 탄압』, 커뮤니케이션북스 검열연구회 편, 2011, 『식민지 검열: 제도·텍스트·실천』, 소명출판 이 연, 2013, 『일제강점기 조선언론통제사』, 박영사 한만수, 2015, 『허용된 불온 - 식민지시기 검열과 한국문학』, 소명출판 정근식 외, 2016, 『검열의 제국: 문화의 통제와 재생산』, 푸른역사. 문한별, 2017, 『검열, 실종된 작품과 문학사의 복원』,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한기형, 2019, 『식민지 문역』,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이민주, 2020, 『제국과 검열-일제하 신문통제와 제국적 검열체제』, 소명출판. 구나경, 2011, 「해조신문과 공립신보의 상호텍스트성 연구」, 텍스트언어학 31, 한국텍스트언어학회 김대룡, 2012, 「海朝新聞의 간행과 교육론」, 한국사상과 문화 63, 한국사상문화학회 박 환, 1993, 「구한말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간행된 민족지 : 대동공보(大東共報)」, 韓國學報 19-4, 일지사 배병욱, 2020, 「일제시기 中村健太郞의 언론활동과 내선융화운동」, 인문사회과학연구 21-3,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안예리, 2022, 「20세기 초 하와이 한인 디아스포라의 국문신문 신한국보의 광고 연구」, 반교어문연구 61, 반교어문학회 정근식, 2003, 「식민지적 검열의 역사적 기원」, 사회와 역사 64, 한국사회사학회 崔起榮, 1989, 「舊韓末 共立新報, 新韓民報에 關한 一考察」, 東亞硏究 33,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최덕수, 2010, 「‘한국병합’ 전후 동아시아 국제환경과 한인언론의 세계인식」, 동북아역사논총 30, 동북아역사재단 황재문, 2016, 「1905~1910년 미주 한인신문과 전통의 문제 - 공립신보와 신한민보를 중심으로」, 국문학연구 33, 국문학회 浦川和也, 2006, 「「森脇英士警察資料」について - 韓國倂合前後における「高等警察」の組織と活動」, 硏究紀要 12, 佐賀縣立名護屋城博物館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http://archive.history.go.kr/) 대한민국신문아카이브(https://www.nl.go.kr/newspaper/) 한국독립운동사정보시스템(https://search.i815.or.kr/) 아시아역사자료센터(https://www.jacar.go.jp/) |
전체 연구결과 요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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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과제별 요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