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기초연구 / 공동연구과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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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코드 | |||
연구과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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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 옥창준 | ||
공동연구자 | 백원담, 김도민, 고자연 | ||
연구기간 | 20240108 ~ 20241216 | 연구형태 | 공동연구 |
연구목적 및 배경 | 본 공동연구는 냉전 국제정치의 냉전적 논리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중립’(Neutrality)과 ‘비동맹’(Non-Alignment)의 역사를 평화사의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했다. 이는 한미동맹의 틀 아래에서 발전해온 우리에게 그동안 잘 의식되지 않은 비동맹의 역사를 우리의 관점에서 재정리한다는 의미와 동시에 최근의 정세를 짚어내는 평화의 새로운 상상력을 도출하기 위함이었다. 2024년 지금의 세계에서 전쟁은 더 이상 사라진 과거가 아니다.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이제 유럽에서도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 그리고 핵무기의 사용도 언급되는 전쟁이 현실화되었다. 또 2023년 10월 시작된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은 기존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지역적 갈등을 넘어서, 세계 각 국가 내부의 갈등 역시 격화시키고 있다. 이 상황에서 소위 ‘신냉전’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면서 전 세계적으로 다시 ‘동맹’의 줄세우기가 본격화된다. 유럽에서는 중립국의 대표주자였던 스웨덴과 핀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는 일이 벌어졌고,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한미일 연대가 강화되고,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을 하는 등, 북러의 결합이 강화되어 가고 있다. 탈냉전 시대를 주도했던 미국의 헤게모니도 흔들리면서, 현재의 세계는 탈-단극 질서의 유동화(流動化)된 국제정치로 진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과정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추수하는 논리만이 아니라, 현실을 상대화해서 바라보는 거시적이면서 동시에 비판적 시각이 요구된다. 본 공동연구는 이와 같은 시각을 냉전을 극복하고 노력했던 냉전기 중립과 비동맹을 둘러싼 역사에서 재발견하고, 이들의 역사적 경험을 성찰하면서 현재의 ‘신냉전’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유와 상상을 모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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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 및 내용 | 본 공동연구의 작업은 냉전의 종식 이후 축적된 냉전사(Cold War History) 연구의 흐름과 결을 같이 한다. 냉전사 연구는 강대국 간의 대립만 아니라, 지역별 냉전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동시에 탈냉전 평화 구상과 실천의 역사까지 함께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실 남북한의 체제경쟁을 경험한 한국의 한국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냉전 국제정치를 두고 비상한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나 냉전을 역사화하는 냉전사 연구에 입각한 ‘냉전적 시각’의 극복과 역사화에 입각한 논의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판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본 공동연구는 특히 냉전기 아시아 지역에서 모색된 중립과 비동맹의 역사와, 이와 같은 역사적 경험이 서로 연루/연결되면서 상호 간의 영향을 미친 사실을 강조하고자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세계는 빠르게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냉전적 양극 질서로 분화되어 갔다. 이는 한국전쟁을 통해 더욱 견고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전쟁을 통해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으며, 반식민(反植民)·평화·중립을 주창했던 새로운 세력이 빠르게 등장했다. 이들은 1955년 4월 개최된 반둥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와 1961년 비동맹 회의를 통해 냉전 국제정치에 그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이 두 회의는 기존의 서구 중심의 국제정치 논리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가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반둥 회의가 기존 국제정치의 중심국가들이 다루지 않았던 식민주의의 문제를 제기했다면, 비동맹회의는 ‘동맹’이라는 줄서기의 대상으로서 자신을 바라보지 말라는 실존적인 외침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 공동연구는 기존에 진행된 연구들과는 다음과 같은 차별점을 지닌다. 먼저 개별 국가의 일국사 중심으로 논의되었던 냉전 및 평화의 역사가 아니라, 냉전기 모든 위기가 세계적으로 얽혀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냉전을 바라보는 지구사적 시각을 취한다. 중립과 비동맹운동은 냉전의 세계적 연동성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고, 이들의 시선에서 냉전의 경험을 어떻게 포착하고 있었는지를 다룰 것이다. 동시에 냉전 안에서의 위치와 위상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르게 경험한 중립과 비동맹의 경험을 섬세하게 서술했다. 특히 본 공동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아시아-한반도의 관계는 여전히 중심부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냉전사’ 연구의 비판적 확장에도 큰 의의를 지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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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제1장: ‘동맹’과 ‘비동맹’의 각축: 제네바에서 보고르까지 1. 태평양과 지중해 사이에서 2. 냉전의 선 긋기 3. 제네바 회의의 개최 4. 콜롬보 회의의 소집 5. 제네바 회의의 콜롬보 정신 6. 보고르로 가는 길 제2장: <문학신문>을 통해 본 북한과 인도네시아의 문화연대 1. 머리말: 1965년 봄, ‘김일성화’로 피어난 북한-인도네시아 친선 2. 북한-인도네시아 문화교류의 전개 3. 「인도네시아 기행」(1959)과 레크라(LEKRA) 4. 맺음말 제3장: 알제리 민족해방 운동을 바라보는 남북한의 시선 1. 머리말 2. 알제리전쟁의 발발(1954): 폭동 VS 사태 3. 알제리임시정부 수립(1958): 침묵 VS 승인 4. 알제리 독립(1962): 외교적 승인 VS 대사급 외교관계 5. 맺음말 제4장: 1970년대 세계의 재편과 평화지대로서의 아시아 기획: 비동맹 제5차 정상회담 선언 다시 읽기 1. 머리말 2. 비동맹회의와 콜롬보의 장소성 3. 제5차 회의 <정치선언>과 1970년대 평화세계 기획과 평화레짐 4. 제5차 회의 <경제선언>과 집단적 자립을 위한 콜롬보 행동계획 5. 맺음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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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 연구의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먼저, 제1장은 반둥 아시아-아프리카 회의(1955) 개최 전까지 아시아 지역에서 모색된 여러 회의(제네바, 콜롬보, 진해, 마닐라, 보고르)들을 다루면서, 이와 같은 회의에서 동맹과 비동맹 아시아 국가들의 전선이 명확해지고, 1955년 반둥 회의로 나아가는 역사적 저류를 점검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와 함께 ‘전후’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탈식민을 위한 민족해방운동이 들끓었다. 1947년 이후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는 냉전이 형성되어 갔으며, 실제 1950년 한반도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유럽에서는 한국전쟁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되어 유럽이 다시 전쟁의 참화를 겪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가졌으며, 한반도 주변의 아시아 국가들도 “한국전쟁의 비극이 자국에서만큼은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며 평화의 경로를 모색하고자 했다. 지금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그러하듯이 제2차대전이 끝난 지 5년 만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한반도와 아시아 그리고 세계에서 ‘제3차 세계대전’의 공포와 냉전이라는 양 진영의 대립 질서를 더욱 강화시키는 듯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처참한 전쟁의 경험과 세계 제3차대전의 위협은 반전(反戰)과 평화를 지향하며 냉전의 어느 한편에 서기를 거부하는 ‘중립’과 ‘비동맹’의 흐름을 동시에 만들어냈다. 냉전기 아시아는 한국전쟁과 인도차이나전쟁이라는 ‘열전’의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서 평화를 모색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 장에서는 ‘동맹’ 외교를 선도한 한국고 ‘비동맹’ 외교를 선도한 아시아 국가들의 외교적 경합 과정을 다루면서, 1955년 반둥 회의를 하나의 이상화된 결과물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역사 그 자체로 다루고자 했다. 제1장이 아시아 국가들과 한반도 국가들의 관계를 다루었다면, 제2장은 반둥 아시아-아프리카 회의 이후 중립 지대 및 비동맹 세력과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한 북한의 동향을 문학신문 기사라는 새로운 사료를 중심으로 살폈다. 더 구체적으로는 1958년부터 1965년까지 북한과 인도네시아의 작가 및 예술가들의 문화연대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 연구는 냉전기 북한 지식인의 아시아 인식 연구의 일환이기도 하다. 북한은 반둥 회의를 계기로 공산국가로 국한되는 진영외교를 벗어나 외교 정책의 다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는 남한과 국가 정통성을 두고 외교적 경쟁체제에 돌입하던 때이기도 했다. 이에 1956년 4월 조선로동당 제3차 대회에서 김일성은 반둥 회의의 성과를 ‘반식민주의’와 ‘평화’로 평가하였고, ‘상이한 사회제도를 가진 나라들’ 즉, 중립국과의 친선과 협조를 강화하겠다는 새로운 대외정책을 제시했다. 그리고 1957년 4월부터 비사회주의 국가인 인도, 인도네시아, 버마, 이집트에 무역 대표단을 파견하여 양자적 통상관계 수립을 모색했다. 한편, 반둥 회의에서는 네루를 중심으로 아시아 국가 간 문화적 교류의 필요성이 강조되었고 이에 대한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그리고 ‘아시아 문화연대’라는 공통의 목적 아래 1956년 12월 인도의 뉴델리에서 ‘아시아 작가대회’가 열렸다. 반둥 회의가 아시아 연대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연대를 약속한 자리였다면, 아시아 작가대회는 문화를 기반으로 앞으로 구축해나갈 아시아의 실체를 공동기획한 자리였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아시아 작가대회에 적극 참여했으며, 이를 통해 아시아 여러 국가의 지식인들과 실질적인 만남을 경험할 수 있었다. 또한, 아시아 작가대회를 계기로 여타 국가들보다도 인도와의 문화적 교류를 확대해나갈 수 있었고, 1957년 5월 8일에는 ‘조선 인도 문화 협회’가 창립되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58년에 양국은 문화협정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이후 인도의 외교 방향이 달라지면서 북한과 인도의 교류 및 연대는 지속될 수 없었다. 반면, 1958년부터 시작된 북한과 인도네시아의 친선관계는 점차 공고화되어 갔다. 북한과 인도네시아의 친선교류는 1958년 9월 인도네시아에서 ‘인도네시아-조선 친선협회’ 창립으로 시작으로 본격화되었다. 11월에는 북한에서 ‘조선-인도네시아 친선협회’가 창립되었고, 1959년 2월에는 ‘조선-인도네시아 친선협회와 인도네시아-조선 친선협회 간에 문화 협조에 관한 합의서와 1959년도 문화 교류 계획서’에 조인했다. 당시 북한의 친선교류는 주로 작가‧예술가 등의 문화엘리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인도네시아와의 교류도 마찬가지였다. 북한과 인도네시아의 문화엘리트들이 당시 어떻게 교류를 했고, 어떤 연대를 맺었는지에 대한 기록들이 실제로 <문학신문>에 많이 남아 있다. 이 장이 주목하는 대표 자료 가운데 송영의 「인도네시아 기행」이 있다. 송영은 북한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1958년 11월 10일 열린 ‘조선-인도네시아 친선 협회 창립 대회’에서 본 협회의 집행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위원장의 자격으로 1959년 1월 24일부터 28일까지 5일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인민 문화 련맹(약칭 LEKRA) 제1차 전국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조선-인도네시아 친선협회와 인도네시아-조선친선협회 간의 문화 협조에 관한 합의서와 1959년도 문화 교류 계획서’ 조인도 이때 송영이 인도네시아에서 한 것이다. 제2장은 <문학신>의 인도네시아 관련 기사들을 중심으로 먼저, 북한과 인도네시아 문화연대 양상을 고찰하고, 나아가 당시 북한의 인도네시아 인식을 살펴보았다. 이는 당시 북한 지식인들의 아시아 인식을 읽어내는 데에 중요한 한 부분이다. 또한 제2장에서 다루는 내용은 광의적으로는 냉전기 아시아 지식인들의 문화교통과 그것이 각 국민국가의 문화구성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하는 데에도 일조할 수 있다. 제3장은 남북한이 ‘비동맹’의 최전선에 있던 알제리 독립운동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분석했다. 특히 남북한 정부와 다른 주체들은 냉전기 전개되던 알제리 민족해방운동이라는 ‘탈식민’과 이와 불가분의 관계였던 ‘중립·비동맹’의 문제에 대해 어떠한 인식의 층위를 보였으며 그리고 외교적 대응은 어떠했는지 정리했다. 비동맹운동의 시초라고 여겨지는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회의에서는 알제리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지지가 표명됐다. 또한 1955년부터 알제리가 독립에 이르는 1962년까지 매년 열리는 국제연합 총회에서 알제리 문제가 의제로 상정 및 토론됐다. 그리고 1961년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제1차 비동맹회의도 식민주의 청산을 내걸었다. 이처럼 냉전기 어느 한편에 서지 않고 반(反)식민·중립(비동맹)·평화를 지향했던 세력, 특히 아시아·아프리카 그룹(일명 AA group)은 알제리의 민족해방운동에 지지를 표명하며 국제사회의 연대를 주도했다. 한반도에는 1945년 8·15해방과 1948년 남북한 분단정부 수립 그리고 1950년 6·25전쟁의 발발로 ‘탈식민(脫植民)-분단(分斷)-냉전(冷戰)’이 중층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이에 당대 한반도 사람들은 미국과 소련에 대한 소식만큼이나 전지구적으로 발생하는 민족해방운동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1950년대 남한 사람들에게 세계 소식을 전달해주는 주요 매체이던 일간지 신문을 기준으로 하면, 민족해방운동의 성격을 지닌 사건으로 베트남독립전쟁(1950∼54년)과 이집트혁명(1952년), 수에즈전쟁(1956년), 알제리민족해방운동(1954∼62년), 헝가리혁명(1956년) 등이 크게 보도됐다. 이에 제3장은 일차적으로 그동안 기존 연구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알제리 민족해방운동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의 전개 양상에 대하여 남북한 정부가 어떠한 인식과 외교적 대응을 전개했는지 그 양상을 전체적으로 정리했다. 왜냐하면 냉전기 제3세력이었던 아시아·아프리카 그룹들은 알제리 민족해방운동을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 회의) 그리고 유엔총회에서 지지했기 때문에, 이와 연동되어 남북한은 중립국·비동맹외교를 전개해야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한의 이승만 정부는 알제리 민족해방운동 세력에 대해 주로 ‘관망’하는 자세를 보였다면, 북한은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며, 심지어 1960년 5월 알제리 임시정부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나아가 이 장은 야당과 신문, 잡지들은 알제리 민족해방운동에 대해 정부의 공식적 외교와 어떠한 면에서 같고 다른 인식의 층위를 가지는지도 분석했다. 이를 통해 규명한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냉전기 민족해방운동에 대해 당시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탈식민-냉전-분단’의 중층적이며 역사적인 ‘경험’이다. 냉전기였으나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경험’과 ‘감정’에는 36년간의 식민지 경험과 1945년 해방, 1948년 정부수립,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탈식민과 냉전이 중층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내외 냉전사와 탈식민 관련 연구들은 권헌익이 지적했듯이 동시적 사건이었던 ‘탈식민’과 ‘냉전’의 문제를 따로 다루어왔다. 또한 한국현대사 연구들도 일국사 차원에 한정되어 세계 민족해방운동이라는 외부적 요인, 즉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한 차원에서 진행되는 당대인들의 냉전적 혹은 탈식민적 경험에 주목하기 어려웠다. 이에 제3장은 냉전 초기 한반도를 살았던 당대인의 인식·표상·담론 속에서 탈식민과 냉전이 어떻게 교차하고 관계맺으며 시기적으로 변화해갔는지를 드러내고자 했다. 둘째 남·북한 비교 및 관계를 고찰함으로써 ‘한반도적 관점’을 드러냈다. 한국현대사를 다루는 역사학이든 사회과학이든 문학이든 대체로 한국 학계는 남·북한을 각기 다른 연구 영역으로 취급하여 따로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러다보니 냉전기 남·북한은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였음에도, 동시대적 사건에 대해 남과 북 반쪽짜리 시각에 머문 채 한반도적 차원의 시야를 가지지 못했다. 즉, 알제리 민족해방운동이 한반도 분단의 상황에서 남·북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드러냄으로써, 냉전기 남·북한의 비교사와 관계사의 영역을 더욱 확장하고자 했다. 앞선 논의들이 남북한을 의식하면서 비동맹 아시아 국가들을 다루고 있다면, 제4장은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비동맹회의로 대표되는 중립 지대가 어떤 위기를 겪으면서, 자기갱신을 시도해나갔는지를 제5차 비동맹정상회의(1976)를 중심으로 논했다. 1976년 8월 제5차 비동맹정상회의는 스리랑카의 콜롬보에서 개최되어 PLO를 포함하여 86개국이 참가함으로써 비동맹운동의 세력화를 실감하게 하였다. 이 회의는 비동맹운동의 아시아적 입지를 분명히 한 가운데 인도차이나반도에서의 미군철수로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반도 3개국과 포르투갈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모잠비크인민공화국과 앙골라인민공화국이 처음 참가함으로써 비동맹운동이 보다 급진화하는 정황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 회의를 통해 비동맹운동의 세력화 추세는 비동맹조정국을 뉴욕에 설치할 만큼 성장했고 그것이 명실공히 제3세계로서 미‧소 두 진영으로 공고화된 세계질서를 타파하는 확실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음을 과시했다. 회의의 결과로서 채택된 주요 선언들을 개관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정치선언」은 비동맹의 평화공존의 원칙에 기초한 국제평화를 확립할 것과 신구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민족해방운동의 전진에서 비동맹운동의 정책과 역할을 의미화하였다. 「경제선언」을 통해서는 세계경제체제의 위기가 심화에 따라 발전도상국들은 정치‧경제관계 심각한 영향을 받는 세계적 위기의 희생자로서 경제적 격차는 물론 분쟁과 긴장이 격화되는 상황에 있다. 따라서 빈곤과 기아, 질병, 문맹, 뿌리 깊은 지배‧착취와 같은 발전도상국에 만연된 사회적 해악의 뿌리를 근본적으로 일소시키기 위해 이 회의는 새로운 국제경제질서의 수립을 촉구하였다. 구체적으로는 모든 국제무역기기구의 근본적 재편성, 세계적인 생산체계와 국제통화체제의 근본적 재편성, 개발자원의 충분한 이전의 보장, 공적 대외채무문제 해결, 농업발전을 위한 자금과 기술의 제공을 요구했다. 회의는 또한 집단적 자립정신(collective self-reliance)을 강조하며 ‘경제협력을 위한 행동계획’과 ‘조정국의 구성과 위임에 관한 결정’을 채택했다. 한편 한반도문제에 있어서도 이 회의는 정치선언 102-103항에 걸쳐 깊은 우려와 해결을 촉구했다. 비동맹운동은 1947년 아시아관계회의로부터 1955년 반둥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에서 세계적인 냉전의 체제화에 대응한 다른 세계구성을 제기한 바와 같이 아시아가 추동하고 1960년대 아프리카 민족해방운동의 광범한 전개와 신흥독립국이 다수 건설됨에 따라 아프리카 주도성이 두드러졌지만 쿠바의 합류로 라틴아메리카까지 지리적으로 확대되고, 내용적으로 방향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게 된다. 1960년대 말 일시적인 침체과정을 거쳤지만, 1970년 잠비아의 루사카에서 개최된 제3차 정상회의를 계기로 보다 급진적인 추세로 한편으로는 인도차이나전쟁에서 미국의 책략을 비판하며 반서구·반미적 경향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경제적 독립과 세계경제의 위기적 재편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정치중심에서 경제중심으로 의제가 전형되면서 선진공업국의 공산품과 개발도상국의 자원 간에 개재된 불균형을 규탄하고, 자원민족주의를 표방하며 라틴아메리카지역까지 포괄해나갔다. 그리하여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곧 AALA의 역동성에 의해 기존 국제질서를 다수의 정치로 재편해나가며 제3세계의 굴기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제4장은 비동맹운동이 1970년대 다시 굴기하는 기점으로서 1975년 베트남의 승리 등을 통해서 방향타를 재정립하는 기점으로서 제5차 비동맹정상회의를 주목하고, 특히 그 회의에서 아시아 지역화의 의미를 제기한 것에 초점을 두고 그것이 갖는 함의를 분석했다. 이는 남한과 북한이 동시에 비동맹 가입을 추동했지만, 북한은 유고슬라비아의 전격적인 지원으로 1975년 가입되고 남한은 미국과 군사동맹 체결문제로 가입이 거부된 사태에서 확인되듯이 비동맹운동과 한반도의 관계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다. 아울러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은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에서 우리는 세계 지배질서가 전쟁을 통해 재편되는가 하는 문제의 지점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미국의 글로벌 패권이 무너지는 징후이기도 하고 세계가 다극적 질서로 재편되는 과정으로도 파악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마스 사태에서 아랍권의 연대대응을 목도하면서 이것이 비동맹운동의 역사적 경험과 그 현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당대의 경험을 통해 재확인하는 일은 의미가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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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연구결과 요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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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과제별 요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