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기초연구 / 공동연구과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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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코드 | |||
연구과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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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 정해은 | ||
공동연구자 | 윤혜민, 나영훈, 이남옥 | ||
연구기간 | 20240108 ~ 20241216 | 연구형태 | 공동연구 |
연구목적 및 배경 | 이 연구의 목적은 조선 후기 서반 청요직인 선전관의 관료적 위상과 선전관의 모집단이라 할 수 있는 선천(宣薦) 무관들의 집안 배경과 관직 진출을 분석하는 것이다. 선천이란 ‘선전관천거’ 또는 ‘선전관천’의 약칭으로 무과급제자와 한량을 대상으로 장차 선전관이 될 만한 사람을 미리 천거해두는 제도다. 간혹 선천을 선전관에 임명하기 위한 관직 후보자 추천 곧 의망(擬望)으로 이해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오류다. 선천을 받았다고 해서 누구나 선전관이 되는 것은 아니며, 선전관의 모집단을 미리 발탁해 두는 의미였다. 문신의 ‘홍문록(弘文錄)’과 마찬가지로 선전관이 될 만한 모집단을 미리 뽑아두는 제도였다. 조선은 ‘양반관료체제’로 규정되며 여기서 양반은 문과급제자 출신의 문반과 무과급제자 출신의 무반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또한 조선은 문과 급제자로만 관직 구성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경국대전』을 기준으로 5,600개가 넘는 관직을 운영한 조선은 문과 출신만이 진출할 수 있는 ‘청요직’의 관직은 138개에 불과했다. 이 외의 수많은 관직에 음관, 잡과중인뿐 아니라 무관들 역시 다수 진출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문과에 집중되어 조선의 관직체계를 연구하면 조선의 정치제도에 대한 불균형적인 이해에 그칠 우려가 있다. 문관과 함께 양반의 한 축을 이루었던 무과 출신에 대한 이해도 병행되어야만 조선시대 관직제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이 연구는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서반 최고의 요직인 선전관의 모집단에 주목하였다. 이에 숙종대부터 정조대까지 선천을 받은 무관들이 실제 관직 경로에서 어떠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었고 얼마나 우대를 받았는지 파악하여 조선 후기 양반 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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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 및 내용 | 이 연구는 선천 무과의 출신 배경과 진로에 접근하기 위해 먼저 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의 『선전관청천안(宣傳官廳遷案)』과 『선전신천안(宣傳新薦案)』의 자료를 엑셀로 입력하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어 수록된 인물의 관직 정보를 조선왕조실록 및 『승정원일기』등를 통해 조사하고자 한다. 또한 무과방목』의 경우 현전하는 수량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선전관청천안』과 『선전신천안』의 특정 연도와 현존하는 『무과방목』이 일치하는 경우 서로 대조하는 작업을 통해 선천과 선천이 아닌 무과급제 출신의 무관 관로를 비교해 검토할 예정이다. 『선전관청천안』(奎9758)은 모두 7책으로 구성된 책이다. 이중 1책부터 5책까지 5권이 1724년부터 1894년까지 약 170년간 선천의 명단과 이들을 천거한 천거인의 이름을 담았다. 『선전신천안』(奎9771)은 숙종대 초반의 선천 명부이며, 1책이다. 그간 해제에서는 『선전신천안』이 고종 대 자료로 소개되어 왔지만 이는 잘못된 것으로 숙종 대의 선전천 명부이다. 기재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천거 연월일 ②천목(薦目) ③행수 선전관(行首宣傳官) ④장무 선전관(掌務宣傳官) ⑤피천인(被薦人) 성명(姓名) ⑥피천인 부(父) 품직(品職) ⑦피천인 부명(父名) ⑧피천인 무과 방목(榜目)[將鬼薦 또는 出身薦만 기록] ⑨피천인 거주지 ⑩천주(薦主) 성명 등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이외에도 각 피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⑪피천인 생부(生父) 품직 ⑫피천인 생부 명(生父名) ⑬삭천(削薦), 발천(拔薦), 복천(復薦)과 관련된 전교(傳敎) 및 등단(登壇)의 여부 등의 정보를 담은 두주(頭註) ⑭피천인 개명(改名) 등이 해당될 때마다 별도로 표기되었다. 연구의 내용은 먼저 자료의 심도 있는 분석을 위해 선전관청천안』과 『선전신천안』의 자료적 성격을 파악하는 연구를 진행하며, 이어 조선후기 선전관의 제도적 위상과 그 성격에 대한 고찰을 시도한다. 이어 숙종, 영조, 정조대를 각각 나누어 정조대 선천내금위(宣薦內禁衛) 제도가 시행되기까지의 선천의 위상 변화에 대해 관로 및 가계 분석을 시도한다. 각 연구자들은 왕대별로 나누어 검토를 시도하며 이를 토대로 조선후기 선천 및 선전관의 위상과 정치적 특권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이를 통해 무관 가운데 선전관이 지닌 위상을 확실히 드러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이들의 위상이 시기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아버지 정보를 통해 해당 인물의 가문적 배경을 살피는 작업을 병행한다. 이는 무반벌족이라 불리는 무관 가운데 좋은 가문의 인물들이 선전관과 같은 특권적 요소가 다분한 관직에 어느 정도 비중으로 분포하는지 알 수 있다.또한 조선 지배층의 신분적 요소를 일부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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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Ⅰ.『선전관청천안』의 성격과 자료적 가치 1. 머리말 2.『선전관청천안』의 작성 배경 및 서지 내용 3.『선전관청천안』의 체제와 내용선전관의 임무 4.『선전관청천안』의 자료적 가치 Ⅱ. 조선 후기 선전관의 운영과 관인적 위상 1. 머리말 2. 선전관청의 성립과 조직 3. 선전관의 임무 4. 선전관의 위상 5. 맺음말 Ⅲ. 숙종대 『선전신천안(宣傳新薦案)』을 통해 본 무관의 인사 운영과 관직 이동 1. 머리말 2. 숙종대 선천(宣薦)의 시행과 운영 실태 3. 선전관(宣傳官)의 임명과 인사 분석 4. 군영대장(軍營大將)으로의 관직 이동 5. 맺음말 Ⅳ. 영조대 선천인에 관한 연구 1. 머리말 2. 영조 대 『선전관청천안』분석 3. 영조 대 선천인의 관로 분석 4. 맺음말 : 남항천 출신 선전관의 관로 상 비교 우위 Ⅴ. 조선 정조대 선천(宣薦)의 관직 진출과 그 위상 1. 머리말 2. 정조대 무관들의 관직 진출 3. 선천과 비선천 무관의 관로와 위상 차이 4. 남항과 출신의 가문 차이:『무보』등재를 통해 본, 남항천의 가문적 위상 5. 맺음말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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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 이 연구는 자료 구축을 위해 숙종대의『선전신천안』에 수록된 1,314명, 『선전관청천안』총 5책에 수록된 영조~고종 대까지의 선천인 12,006명 등 총 13,320명을 엑셀로 입력하여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완료하였다. 이 연구는 이 가운데 본래 연구계획에 따라 숙종~정조 대의 선천인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 연구는 당초 계획한 선천 무관들의 관직 진출을 면밀하고 세밀히 분석하여 기존에 파악하지 못한 숙종대부터 정조대까지 선천을 받은 무관들이 실제 관직 경로에서 어떠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었고 얼마나 우대를 받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간 선전관이 지닌 중요성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에서 지적이 있었지만 실제적으로 이들이 어떤 관로를 거쳐 다른 무관들과 얼마나 우대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막연히 군영대장의 다수가 선천이었다거나 당대 사료에서 선천의 우수성을 지적한 것을 통해 짐작하는 정도였다. 이 연구는 조선후기 선전관의 후보자 명부인 『선전관청천안』의 자료적 중요성과 본 자료를 분석해야하는 당위성에 대해 확인하고(제1연구), 조선후기 선전관의 실제 운영 양상과 이들이 지닌 위상과 중요성에 대한 검토를 바탕으로(제2연구), 본격적인 선전관 후보자들의 관직 진출 양상을 살폈다. 우선, 숙종대 선전관의 검토를 토대로 한 연구에서는 선전관들이 숙종대까지는 관로상에 있어서 다른 무관들에 비해 큰 우대를 받은 것은 아니었음을 검토하였다(제3연구). 그러나 영조 대에 들어서면 선천에 올라간 관원들이 다른 관원에 비해 관로 상에서 압도적인 우대를 받기 시작하였고(제4연구), 정조대에 들어서면 더욱 확고하게 무관으로서의 위상이 증대되었음을 검증하였다(제5연구). 결국, 조선후기 선전관은 다른 무관들에 비해 현저히 높은 위상을 확립해 갔던 존재임을 본 공동연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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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김우철, 『조선후기 지방군제사』, 경인문화사, 2000. 김종수, 『조선후기 중앙군제연구-훈련도감의 설립과 사회변동』, 혜안, 2003. 나영훈, 「규장각 소장 ‘先生案’의 현황과 자료적 가치」, 『한국문화』 86, 2019 나영훈, 「17~18세기 司僕寺 관직 운영의 실제와 참상관의 官路」, 『장서각』 38, 2017 민현구, 『조선초기의 군사제도와 정치』, 한국연구원, 1983. 박현순, 『조선 후기의 과거』, 소명출판, 2014 박현순, 「조선후기 蔭官의 初入仕 임용」, 『규장각 58, 2021 유진박 지음, 유현재 옮김, 『조선 무인의 역사, 1600~1894』, 푸른역사, 2018. 박홍갑, 『조선시대 문음제도 연구』, 탐구당, 1994. 서민주, 「정조대 승지직 운영과 승정원의 정비」, 『한국사연구』 194, 2021 송웅섭, 「류수원의 관제개혁론에 대한 검토」, 『한국실학연구』 36, 2018 심승구, 「조선후기 무과의 운영실태와 기능 - 萬科를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보』23, 2002. 오수창, 『조선후기 평안도 사회발전 연구』, 일조각, 2002. 원창애,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의 관직 진출 양상」, 『조선시대사학보』 43, 2007 윤혜민, 「17세기 『홍문록(弘文錄)』을 통한 인사 운영 실태와 그 변화 양상」, 『한국학』172, 2023 윤혜민, 「조선시대 軍禮 연구의 현황과 과제」, 『조선시대사학보』100, 2022 이강욱, 「조선후기 東西 兩班 官職의 분류」, 『한국문화』 89, 2020. 이근호, 「조선시대 吏曹銓郞의 인사 실태」, 『한국학논총』31, 2009. 이남옥, 「장서각 소장 先生案의 현황과 사료적 가치」, 『동양고전연구』 69, 2017 이성무, 『조선초기 양반연구』, 일조각, 1980. 이태진, 『조선후기의 정치와 군영제 변천』, 한국연구원, 1985. 임민혁, 『조선시대 음관연구』, 한성대학교출판부, 2002. 장필기, 『조선후기 武班閥族家門 硏究, 집문당, 2004. 장필기, 「조선후기 선전관출신 가문의 武班閥族化 過程」, 『군사』 42, 2001. 정해은, 「조선후기 선천(宣薦)의 운영과 선천인의 서반직 진출 양상」, 『역사와 현실』39, 2001. 정해은, 「조선 후기 무신의 중앙 관료생활 연구 -《盧尙樞日記》를 중심으로-」, 『한국사연구』143, 2008. 정해은, 『조선의 무관과 양반사회 - 무과급제자 16,643명의 분석 보고서』, 역사산책, 2020 한충희, 『조선초기 관직과 정치』, 계명대학교출판부, 2008 |
전체 연구결과 요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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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은 미래의 선전관을 미리 뽑아두는 천거였다. 여기에 뽑히지 않으면 첫 관직은 물론이거니와 향후 고위 관직으로 나가겠다는 포부를 접어야 했다. 이러한 선천의 권위는 무관 최고의 청요직으로 꼽히는 선전관의 위상에서 나왔다. 승정원의 승지가 국왕의 문관 비서라면 선전관청의 선전관은 국왕의 무관 비서였다. 군사 업무에 관한 왕명을 전담하고, 궁궐을 출입할 수 있는 각종 출입증을 관장했으므로 권한이 셌다. 그래서 선전관은 서반 고위직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엘리트 코스였다. 선전관을 거치지 않으면 고위 무관으로 출세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선전관은 무관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지만 아무나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국왕의 무관 비서로서 늘 국왕 주변에 있어야 하므로 대대로 명문가의 자제로서 신원이 확실한 사람을 선호한 탓이었다. 이런 배경으로 무관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선천이 중요했다. 다만 거듭 강조하거니와 선천은 선전관이 될 만한 사람을 모집단으로 미리 천거해두는 제도였다. 그래서 선전관을 반드시 선천 중에서만 뽑은 것이 아니었다.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무관으로 출세하는 경로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서 처음부터 선천을 받지 못하면 고위 무관으로 나가는 길이 막혀 버렸다. 이 연구는 총 다섯 편으로 구성되었으며, 조선 후기에 양반관료사회에서 무관들의 진출에 영향을 끼친 선천에 주목하여 숙종 대부터 정조 대까지 선천 무관의 출신 배경과 진로를 파악하였다. 연구주제 1은 이 연구에서 이용한 자료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선전관청천안』의 성격 및 총 13,320명의 명부가 갖는 자료적 가치를 검토하였다. 연구주제 2는 이 공동연구가 추진할 선전관청의 천안(薦案)을 분석하기 위한 토대 연구로서 조선 후기 선전관의 운영과 동향, 임무를 조망하여 선전관의 관인적 위상을 검토하였다. 선전관은 서반 고위직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엘리트 코스였다. 선전관을 거치지 않는다면 고위 무관으로 출세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연구주제 3은 숙종 대의 선천 무관의 특징과 진로를 검토하였다. 숙종 대의 선천에 대해서는 그동안 전혀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분야로 숙종대에 선천인의 특권이 영조나 정조 대에 비해 크지 않았다는 점을 매우 세밀하게 실증적으로 규명하였다. 연구주제 4는 영조 대의 선천 무관의 특징과 진로를 검토하였다. 무관출신을 대상으로 한 출신천에 비해 남항을 대상으로 한 남항천이 관직 승진에 강점을 보였으며, 선천인의 거주지가 서울에 집중되었음을 여러 사례와 함께 실증적으로 밝혔다. 연구주제 5은 정조 대의 선천 무관의 특징과 진로를 검토하였다. 정조 대는 선천 제도가 이전 시대에 비해 더 정교하게 운영되었다. 이 연구에서는 선천인의 진로가 현저히 비선천인보다 관직 진출과 당상관 승진에 유리했음을 흥미로운 사례와 함게 실증적으로 규명하였다. 이 공동연구의 의의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조선후기 ‘선전관’에 대한 최초의 DB 구축은 조선시대 관료의 또 다른 축이었던 무관들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를 축적할 수 있다. 『선전관청천안과 『선전신천안』에 포함된 자료는 무관들의 엘리트인 선전관에 대한 방대한 인명 정보 및 이들에 대한 부가 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연구 자체가 매우 적었던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데이터 입력은 그 자체로 차후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 이 연구는 조선시대 무관 엘리트인 선전관의 관원 명단에 집중하여 이를 중심으로 진행된 조선후기의 인사제도를 정리한 성과이다. 기존 연구에서 『선전관청천안』을 다루기는 했지만 방대한 양으로 인해 한정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선전신천안』은 그간 다루지 못했던 자료이다. 자연히 관련 연구 성과도 많지 않은 실정이다. 특히 조선시대 엘리트 무관인 선전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라는 점에서, 문관에 집중되어 있던 조선시대 관료제 연구의 균형적 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셋째, 이 연구는 새로운 관점과 자료를 통해 양반 관료 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수 있다. 이 연구에서 활용한 『선전관청천안』과 『선전신천안』에 등재된 인물들은 기존에 주요한 분석 대상이었던 문과급제자가 아닌 무과 출신들이다. 지금까지 이들을 인명DB로 구축하여 활용한 적은 거의 없다. 이들은 『승정원일기』와 같은 연대기에 그 존재의 단서를 찾을 수 있는 만큼 이들 정보를 토대로 무관들의 진로를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따라서 『선전관청천안』과 『선전신천안』에 수록된 인명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토대로 한 이 연구가 조선시대 양반 관료 사회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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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과제별 요약 | |
1. 연구주제 1: 『선전관청천안』의 성격과 자료적 가치 『선전관청천안』은 1678년부터 1893년까지 작성된 선천(宣薦)을 받은 사람들의 명부이다. 이 자료는 선전관의 모집단 명부로 13,320명의 이름과 내력을 포함하여 무관 엘리트 계층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구성 요소는 천거 연월일, 후보자의 신상 정보, 관직 내역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일관성을 갖춘 희소한 자료로 조선 후기 무관 체제와 정치적 맥락을 분석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를 제공한다. 다른 사료와 비교 검토를 통해 조선 후기 하급 간부와 선천의 경로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2. 연구주제 2: 조선 후기 선전관의 운영과 관인적 위상 선전관은 국왕의 무관 비서이다. 무관으로서 국왕을 보좌하며, 국왕 시위, 궁궐 입직, 왕명 전달 등의 임무를 맡았다. 이들은 서반 고위직으로 가는 엘리트 코스로서, 대대로 신원이 확실한 명문가의 자제들이 주로 임명되었다. 선전관청은 조선 후기 정3품 아문으로 공식화되었고, 『대전통편』에서 선전관의 임무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었다. 조선 후기 선전관은 서울과 지방에 파견되어 국왕 명령을 전달하고, 지역 동향을 보고하는 중책을 맡았다. 3. 연구주제 3: 숙종대 『선전신천안』을 통해 본 무관의 인사 운영과 관직 이동 선천은 선전관 후보를 천거하는 제도로, 숙종 대에는 출신천(무과 급제자)의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숙종대 선천은 연평균 40명 정도가 선발되었고, 천거 이후 선전관에 임명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숙종대 선천인 중 남항천은 관직 진출률과 군영대장 진출 비율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다. 선전관의 거주지는 서울 및 수도권에 집중되었고, 비정기 시험에서 급제한 사례가 많았다. 숙종대 선천인들은 군영대장이 되는 데 소요된 기간이 길었으나, 이후 정조 대에 특혜가 강화되었다. 4. 연구주제 4: 영조대 선천인에 관한 연구 영조대 선천은 규정이 법제화되어 이후 선천 운영에 기준점을 제시하였다. 남항천은 출신천보다 더 어린 나이에 천거되었으나, 관직 진출률은 출신천이 높았다. 남항천은 관직 승진에서 강점을 보였고, 특히 특정 가문에 집중된 양상을 나타냈다. 선천인의 거주지는 서울에 집중되었으며, 무과 급제와 관직 진출에서 지역적 차이가 있었습니다. 영조대 선천은 선전관, 훈련원, 도총부를 거치는 관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5. 연구주제 5: 조선 정조대 선천의 관직 진출과 그 위상 정조대 선천인은 무관의 관직 승진 경로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사례를 제공한다. 선천인은 비선천인보다 관직 진출과 당상관 승진에서 현저히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남항천은 출신천보다 높은 승진률을 보였으며, 수군절도사 이상으로의 진출에서도 차별화되었다. 남항천의 집안 배경은 높은 관직 승진에 영향을 미쳤으나, 무과 급제 여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정조대 선천은 조선 후기 관직 체계에서 가문 배경과 제도적 안정성이 관직 경로에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