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기초연구 / 기타과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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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코드 | |||
연구과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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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 한승훈 | ||
공동연구자 | 편용우, 정경진, 조은일, 김미진, 이효원, 야마다 쿄코, 히라이 아몬, 소메야 토모유키, 카타야마 마리코 | ||
연구기간 | 20230525 ~ 20231216 | 연구형태 | 공동연구 |
연구목적 및 배경 | 이 연구의 목적은 조선후기 한국과 에도시대 일본을 중심으로 근세 한국과 일본의 사상적, 문화적 접촉 양상을 탐구하는 것이다. 한일관계에 대한 통속적인 인식은 근현대 영역에서는 대립과 지배의 정치사, 전근대 영역에서는 민족주의적 서사의 충돌로 특징지어져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국과 일본은 유교, 불교, 도교 등 공유된 사상자원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한 축을 형성해 왔으며, 여러 층위의 접촉을 통해 상호 영향을 주고받기도 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 사이의 장기적인 사상, 문화 교류사를 재구성하는 것은 비교연구는 물론, 각국의 사상사, 문화사 연구에 있어서도 새로운 통찰을 얻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연구는 특히 17~19세기 조선-에도시대에 주목하였다. 당시 양국은 16세기 말 7년간의 전쟁으로 충돌한 이래, 사회구조와 정치체제에 있어 각자 큰 규모의 변화를 겪고 있었다. 이 시기는 명·청 교체로 인해 동아시아 세계질서에 격동이 일어난 때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607년 재개되어 1811년까지 이어진 조선통신사 파견은 양국의 정치적, 문화적 교류의 주된 통로가 되었다. 통신사는 기본적으로는 에도 막부의 쇼군 즉위를 축하하는 사절단이었지만, 지식인들 사이의 문학, 예술 교류, 물질문화의 교환 등을 촉진하기도 했다. 또한 전쟁과 교류라는 두 가지 형태의 접촉은 서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문화적인 상호인식에도 일정한 영향을 주었음이 확인된다. 따라서 이 연구는 조선통신사 등의 경로를 통한 공식적인 정부 간 교류에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영역, 다채로운 양태의 사상, 문화적 관계 양상에 주목하였다. 여기에는 통신사 사행길을 매개로 한 문인 및 학자들의 교류와 논쟁, 극문학, 물질문화, 미술, 언어학 영역에서의 영향과 교섭 관계 등이 포함된다. 나아가 직접적인 상호 교류 이외에도 동시기 한국과 일본의 사상, 문학, 풍속 관련 문헌들을 비교 검토하는 작업도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양국이 공유하는 문화적 자원이 각자의 맥락과 조건에 따라 어떤 특성을 드러냈는지를 규명하여 의미 있는 일치점과 차이를 발견하고자 하였다. 이 연구의 의의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제시될 수 있다. 첫째, 정치적 대립과 갈등을 넘어서 한일관계의 다양한 층위와 장기적인 양상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킨다. 둘째, 양국의 접촉이 유발한 사상적, 문화적 변동을 규명하여 해당 시대 연구 분야들에 신선한 관점을 제공한다. 나아가 한국학 연구에 있어서도 일본과의 관계사 및 비교연구의 유용성을 환기하고, 연구의 시야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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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 및 내용 | 이 연구는 다양한 분과학문에 전문성을 가진 한국과 일본 연구자들의 학제간 협업 체제로 이루어졌다. 공동연구원은 한국인 5명, 일본인 4명이며, 문학, 사상, 미술, 언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되었다. 연구진 각자의 연구 관심을 바탕으로 전문화된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전체적인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를 조정하고 공통의 텍스트를 공유하기 위해서 정기적인 전체, 팀별 회의를 운영하였다. 이를 위하여 온라인 회의와 자료 공유를 위한 체계를 구축하고, 상시적인 소통을 통해 아이디어와 조언을 제공하는 등 공동연구의 이점을 극대화하고자 하였다. 세부 연구 주제는 크게 세 영역으로 나누어 구성되었다. 1부 “조선통신사행과 사상, 문화 교류”에서는 통신사행록에 대한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하되, 정치사와 외교사의 문제의식을 넘어 문인 교류, 양국 유학자들의 화이론(華夷論) 논쟁에서 나타난 자타인식, 통신사 기록에서 나타나는 일본 종교문화 서술 등의 주제를 다루었다. 2부 “연극, 미술, 언어, 물질문화 영역의 한일 교류”에서는 근세 일본 대중연극에 그려진 조선인 이미지의 변화, 일본에 전래된 조선의 자수 흉배(胸背), 일본의 근세국어사전에서 나타난 조선어의 양상, 조선과 에도 사이의 본초용, 원예용 식물 교류 등 참신한 연구 영역을 발굴하고자 하였다. 3부 “근세 한일 사상문화 비교 연구”에서는 근세 한국와 일본의 경제, 상업 양상이 양국의 문화와 문학에 미친 영향, 양국 유학자의 노자 이해와 주석 전통, 동시기 역법과 세시기에서 나타나는 공유점과 차이 등 일련의 비교문화론적 연구가 이루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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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서문 1부 조선통신사행과 사상, 문화 교류 계미통신사행(1763)의 조선 서얼 문인과 게이한(京坂) 문인의 교류와 그 의미 Ⅰ. 서론 Ⅱ. 계미통신사와 서얼 문인 Ⅲ. 통신사의 필담 교류와 문인 교류 Ⅳ. 조선과 일본 문인의 ‘문화적 교섭’ - 《겸가아집도》 Ⅴ. 결론 1763년 계미사행에서의 통신사와 소라이학파의 논쟁과 자타인식 Ⅰ. 들어가며 Ⅱ. 시문(詩文)을 통한 문명권의 소통 가능성 Ⅲ. 문명적 우월의식과 화이(華夷) 의식의 극단화 Ⅳ. 나가며 조선후기 통신사행록의 일본종교 서술 Ⅰ. 조선통신사가 본 “신불의 나라” Ⅱ. 사찰과 승려들 1. 관소로서의 사찰 2. 쓰시마의 사찰들과 이정암 3. 절벽 위의 관음당 4. 도시의 승려와 산의 승려 Ⅲ. 신사와 신들 1. 세 대명신(大明神) 2. 아타고산의 일라 3. 안덕천황신당 4. 쿠마노의 서복 사당 Ⅳ. 해적 길리시단과 반역자 야소종문 1. 해적 길리시단 2. 남만인 미소종문과 서양국인 이마두 Ⅴ. 맺음말 2부 연극, 미술, 언어, 물질문화 영역의 한일 교류 江戸歌舞伎における朝鮮(異国)のイメージ ―その変化を中心に― Ⅰ. はじめに Ⅱ. 重なる中国と朝鮮―『国性爺合戦』 Ⅲ. 変化する大陸のイメージ―『四天王産湯玉川』 Ⅳ. 朝鮮認識の変化の象徴、唐人殺し Ⅴ. おわりに 足利学校所蔵の刺繍胸背とその伝来について Ⅰ. はじめに Ⅱ. 足利学校と伝来に関して Ⅲ. 朝鮮時代における「胸背」の歴史 Ⅳ. 伝来した「胸背」の特徴 Ⅴ. 『裁判記録』のなかの「胸背」 Ⅵ. おわりに 日本の近世国語辞書に見られる朝鮮語 Ⅰ. 研究目的およびその背景 Ⅱ. 先行研究と問題点 1. 小倉進平の研究から 2. 柳尚熙の研究から 3. その他語源研究と『倭訓栞』 Ⅲ. 調査対象と調査内容 Ⅳ. 『倭訓栞』に見られる朝鮮語 1. 「自筆本」の状況 2. 「整版本」の状況 Ⅴ. 『東雅』との関わり Ⅵ. まとめと展望 17-19세기 조선과 에도의 식물 교류사 Ⅰ. 들어가며 Ⅱ. 본초용 식물 교류 : 조선인삼(朝鮮人参) 1. 조선통신사의 사행록과 조선인삼 2. 약초목(薬草木)를 재배하는 정원수 가게(植木屋)와 약원(薬園) 3. 조선 인삼 재배와 판매 Ⅲ. 원예용 식물 교류 : 일본 문인의 정원과 조선석류 Ⅳ. 나오며 3부 근세 한일 사상문화 비교 연구 前近代の日韓における経済・商業の様相と文化・文学 Ⅰ. はじめに Ⅱ. 江戸時代の経済小説史 Ⅲ. 『本朝二十不孝』の重要性 Ⅳ. 巻一の二・三の二話 Ⅴ. 書籍目録の内典外典 Ⅵ. 朴趾源の経済認識 Ⅶ. 朝鮮時代の経済と銀 Ⅷ. 野談の二話 Ⅸ. 結語 한일 유학자의 『노자』 읽기에 관한 고찰 Ⅰ. 들어가며 Ⅱ. 각 유학자의 『노자』 읽기의 특징과 배경 Ⅲ. 주제별 비교 고찰 1. 생성에 관하여 2. 감각에 관하여 Ⅳ. 성인의 무상심(無常心) Ⅴ. 나가며 동아시아 세시기의 비교연구 Ⅰ. 머리말 Ⅱ. 일본의 역법(日本曆) 1. 일본 역법의 역사 2. 일본력(日本曆)의 특징 – 서양력(西洋曆)과의 관련 Ⅲ. 조선의 역법 1. 조선 역법의 역사 2. 조선의 역법의 특징 – 칠정산(七政算)과 관상수시(觀象授時) Ⅳ. 동아시아 제사기에 관한 고전 자료 Ⅴ. 맺음말 결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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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 이 연구에서는 근세 한국과 일본 사이의 교류와 접점들에서 일방적인 문화 전파나 영향 관계로는 포섭될 수 없는 특징들이 드러났다. 두 지역에서 공유된 사상, 문화적 자원들은 서로 다른 역사적 맥락 속에서 고유한 방식으로 발전, 전개되었다. 이 시기 외교, 교역 등으로 증가한 교류 속에서는 상호의 차이를 인식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실천들이 나타났다. 그 결과는 우호적인 접촉으로부터 오해와 갈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 연구는 인접한 타자로서 양국이 공유한 경험을 중층적으로 이해하고, 보다 진전된 학술적 논의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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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연구결과 요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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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조선통신사행과 사상, 문화 교류”에서는 통신사행록에 대한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하되, 정치사와 외교사의 문제의식을 넘어 문인 교류, 양국 유학자들의 화이론(華夷論) 논쟁에서 나타난 자타인식, 통신사 기록에서 나타나는 일본 종교문화 서술 등의 주제를 다루었다. 2부 “연극, 미술, 언어, 물질문화 영역의 한일 교류”에서는 근세 일본 대중연극에 그려진 조선인 이미지의 변화, 일본에 전래된 조선의 자수 흉배(胸背), 일본의 근세국어사전에서 나타난 조선어의 양상, 조선과 에도 사이의 본초용, 원예용 식물 교류 등 참신한 연구 영역을 발굴하고자 하였다. 3부 “근세 한일 사상문화 비교 연구”에서는 근세 한국와 일본의 경제, 상업 양상이 양국의 문화와 문학에 미친 영향, 양국 유학자의 노자 이해와 주석 전통, 동시기 역법과 세시기에서 나타나는 공유점과 차이 등 일련의 비교문화론적 연구가 이루어졌다. | |
세부과제별 요약 | |
1부 조선통신사행과 사상, 문화 교류 “계미통신사(1763)행의 조선 서얼 문인과 게이한(京坂) 문인의 교류와 그 의미” : 11번째 조선통신사행인 1763년 계미통신사 중에서 일본인과의 필담을 담당한 제술관 남옥과 서기 성대중, 원중거, 김인겸에 주목하여 이들 ‘서얼 문인’과 오사카의 상인 기무라 겐카도(木村蒹葭堂)를 중심으로 한 게이한(교토와 오사카 지역) 문인의 교류 양상을 살펴보고 성대중의 의뢰로 제작된 그림첩 《겸가아집도》의 조선 전래 의미까지 고찰하였다. 계미통신사는 에도를 방문한 마지막 사행으로 특히 서얼 문인은 일본 전국을 돌며 500 명 이상의 일본인과 필담으로 교류하였다. 그런 와중에서 이들이 게이한 문인과의 만남을 통해 일본의 문인과 그 사회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사행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공식 기록물인 사행록에 나타나지 않은 양국 문인의 교류 양상은 일본의 승려 다이텐(大典)의 필담록 『평우록(萍遇錄)』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본 연구에서는 남옥, 성대중, 원중거, 김인겸의 사행록과 평우록의 기록을 비교해 가며 사행이라는 공식 외교 행사 기간 중 이루어진 양국 문인의 만남과 필담, 서간, 선물 교환 등의 다양한 형태의 교류 양상을 확인함으로써 양국 문인의 상호 인식의 변화와 한일 문인이 공유한 ‘문인 의식’에 대해 논하였다. “1763년 계미사행에서의 통신사와 소라이학파의 논쟁과 자타인식” : 18세기 에도 문단에 오규 소라이(荻生徂徠)를 필두로 하는 소라이학파가 등장하여 문학과 사상에서 커다란 전환이 일어났다. 소라이는 훈독의 관습을 버릴 것을 주장하였고, 주자학을 비판하며 고문사(古文辭)에 의거한 새로운 학문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소라이학파의 등장과 더불어 조선 및 통신사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였다. 자국의 문학과 사상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며 스스로를 화(華)로 인식한 소라이학파 문사들은 통신사를 만난 자리에서 이들의 시문과 주자학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하였다. 본 발표에서는 이와 같은 문학사, 사상사의 변화에 유의하면서 통신사와 소라이학파의 필담을 통해 동아시아 화이론(華夷論)의 향방을 추적하였다. 특히 1763년 계미사행 때 이루어진 통신사와 소라이학파의 논쟁을 중심으로 이들의 자타인식을 검토하되 조선과 일본의 사회문화적인 특수성을 염두에 두고 논의를 진행하였다. “조선후기 통신사행록의 일본종교 서술” : 조선후기 통신사 기록의 종교 관련 서술을 분석하여 에도시대 종교문화에 대한 조선인의 인식을 규명하는 연구다. 통신사 일행의 여정에서 사찰, 사당, 신궁 등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며, 특히 사찰은 통신사의 숙소이자 현지 인사들과의 교류 장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여러 사행록 기록자들은 각지의 하치만궁(八幡宮), 시모노세키의 안토쿠천황사(安德天皇祠), 서복사(徐福祠) 등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나아가 장례나 민속신앙에 대한 관찰을 남긴 기록도 있다. 이 연구에서는 이들 자료를 바탕으로 외부인의 시각으로 본 타자의 종교로서의 에도시대 일본종교 서술을 다루되, 시기나 기록자에 따른 인식의 차이에도 주목하였다. 2부 연극, 미술, 언어, 물질문화 영역의 한일 교류 “에도 가부키에 있어서의 조선(이국)의 이미지 –그 변화를 중심으로” : 일본 근세의 대중연극 가부키(歌舞伎〉와 인형조루리(人形浄瑠璃) 속에 등장하는 조선인에 대한 묘사를 분석해 근세 일본인들의 조선 인식을 규명하는 연구다. 일본 근세의 문예 작품 속에는 조선과 중국의 이미지가 혼재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로 1789년 초연된 가부키 『간진 칸몬 데쿠다노 하지마리(韓人漢文手管始)』와 1804년 초연된 가부키 『덴지쿠도쿠베 이코쿠바나시(天竺徳兵衛韓噺)』라는 작품은 각각 조선의 통신사 최천종, 진주목사 김시민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들의 말투나 복장은 중국에 가깝다. 근세 문예 속의 조선과 중국 이미지의 혼재는 흔히 「이국풍(異国風)」이라고 정리되어 왔다. 또한 통신사절의 내일 시기에 조선에 대한 묘사가 가부키 작품에 두드러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선행연구를 발전시켜 근세 연극에서의 조선인 이미지 변화를 작품과 그 주변 자료 중심으로 명확히 하였다. “아시카가 학교(足利学校) 소장 조선 자수 흉배(胸背)에 대하여” : 일본 도치기(栃木)의 아시카가 학교에는 에도시대에 전래된 조선의 자수 흉배가 소장되어 있다. 첨부서[附添書]에 의하면, 이 흉배를 들여온 것은 교토 5산(京都五山) 가운데 하나인 겐닌지(建仁寺)의 “석학(碩学)” 승려인 가이산 가쿠센(海山覺暹)이었다. 그는 대조선 외교의 거점이었던 쓰시마(對馬) 이테이안(以酊庵)에 조선통교수문승(朝鮮通交修文僧)으로 부임하였을 때 조선의 흉배를 얻어 이것을 당시 교토 5산을 총괄하고 있던 난젠지(南禅寺) 곤치인(金地院)에 선물했다. 이후 곤치인의 승려 소메이 겐보(蒼溟元汸)는 이 흉배를 아시카가 학교의 17대 상주(庠主) 센케이(千渓)에게 증정하였다. 당시 이 흉배는 “이국적인 진기한 물건[異邦之竒物]”으로 여겨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에도 이테이안에 부임한 고호 도슌(高峰東晙)이 교토에 흉배를 가지고 오는 등 쓰시마를 통해 유입된 조선제 흉배가 귀중한 보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이 『対州土産物控』 등의 고문서에서 확인된다. 이 연구는 근세 일본에서 흉배와 같은 조선 공예품이 어떤 방식으로 전달, 유통, 수용되었는지에 대한 의미 있는 사례를 제공해 줄 것이다. “일본의 근세국어사전에 보이는 조선어” : 에도시대의 일본에 있어서의 조선어 교육이나 조선어가 항간에 소개된 실태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성과가 알려져 왔다. 한편으로 조선어교육이나 양국교류사 속에서 진행되어 온 연구에 대하여 주변분야로부터 적극적인 관련성이나 비판적 검증 등은 여전히 논의할 여지가 많다. 여기에서는 오구라 신페이가 『국어와 조선어를 위하여』에서 보인 「국어조선어의 어휘비교연구자료」를 참고하면서, 사전연구의 입장으로부터 에도시대 일본의 대표적인 국어사전 『와쿤노시오리』 속에 보이는 조선어를 재검토하고, 그 의미를 해명하였다. 특히 샘플 조사를 전수조사로 확장하여 사전의 특성이나 성립과정론과 대조하면서 ‘일본의 국어사전을 작성한다’는 의식의 근저에서 진행된 편집작업에 대하여 조선어나 조선관계의 지식이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는지, 혹은 삭제되어 왔는지를 검토하였다. “17~19세기 조선과 에도의 식물 교류사” : 17~19세기 조선과 에도의 본초와 원예 접촉 양상을 고찰하여 양국의 식물 교류사를 조망하였다. 구체적으로는 두 가지 관점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첫 번째는 본초용과 원예용 식물의 교류 양상이다. 17세기 초 조선통신사에 의해 조선의 식물이 일본에 건너가게 된다. 18세기 전반에는 도쿠가와 요시무네(徳川吉宗) 정권의 약재정책(薬材政策)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조선의 약초목(藥草木)을 일본에 들여와 고이시카와(小石川), 고마바(駒場) 등의 약원(薬園)에서 재배하게 된다. 이와 같이 조선에서 건너온 식물로는 참나리(鬼百合:이하 일본식 표기를 괄호에 기입), 샐러리(清正人参), 고리버들(行李柳), 흰독말풀(朝鮮朝顔), 조선석류(朝鮮石榴), 조선인삼(朝鮮人参) 등이 있으며 그 밖에 어떠한 식물들이 일본어 건너가게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두 번째는 조선의 본초와 원예 관련 서적도 다시 일본에 건너가게 된다. 조선의 구황식물, 약초 등에 관한 서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에도시대에 간행된 고증수필에는 식물 관련 항목이 다수 존재하면 고증에 조선의 본초학과 원예학 서적이 자주 인용된다. 이와 같은 서적이 교류를 통해 17~19세기 조선과 에도 양국의 식물 관련 지식 교류 양상을 살펴보았다. 3부 근세 한일 사상문화 비교 연구 “전근대 일한에 있어서의 경제, 상업의 양상과 문화, 문학” : 일본의 에도 시대와 한국의 조선 시대 후기의 경제 상황과 상업의 전개를 양국의 경제 소설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일본의 경제 소설 가운데에서는 『本朝二十不孝』와 『日本永代蔵』, 비교 대상인 조선 시대의 자료로는 『허생전』 등의 소설과 야담 자료 속의 거상전을 활용하였다. 특히 개성과 의주 상인의 활동에 대한 묘사에 주목하여 일본 경제 소설과의 비교를 통해 당시 동아시아의 경제적 조건이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어 있는지를 검토하였다. “한일 유학자의 노자 읽기에 관한 고찰” : 한국의 조선시대와 일본 에도시대 학문의 중심에는 유학자들이 있었다. 한편 이들은 유학의 텍스트뿐만 아니라 도가 텍스트를 지적 자양분으로 삼기도 하였는데, 때론 매우 깊은 도가 텍스트 이해를 보여주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인식을 배경으로 본 연구는 조선과 에도시대의 유학자가 『노자』라는 텍스트를 어떻게 읽었는지에 주목한다. 구체적으로는 주요 주제를 선택하여 율곡 이이(李珥, 1536-1584)의 『순언(醇言)』, 서계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의 『신주도덕경(新註道德經)』, 하야시 라잔(林羅山, 1583-1657)의 『노자권재구의(老子鬳齋口義)』, 우사미 신스이(宇佐美灊水, 1710-1776)의 『노자도덕진경(老子道徳真経)』 등에서 보이는 각 유학자의 노자에 관한 견해를 살피고, 그 차이점 및 연관 관계 등을 파악하려 하였다. “동아시아 세시기의 비교연구” : 동아시아에서는 고대 중국의 영향으로 24절기(節氣), 72후(候)가 널리 전해져, 역(曆)으로서 사용되었다. 월령 등도 그 영향의 하나다. 그것들은 일한에서는 각각 세시기로 발전했다. 캘린더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는 당의 선명력(宣明曆)에서 명의 대통력(大統暦)으로의 개변의 기운 속에서 원의 곽수경(郭守敬) 등이 작성한 수시력(授時曆)을 연구하여, 야마토력(大和暦)인 죠쿄력(貞享暦)으로, 한편으로는 조선에서는 명의 대통력으로부터 청의 시헌력(時憲曆)으로 변화하였다. 또 세시기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는 유학자이며 본초학자인 조카인 카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의 조카인 카이바라 요시후루(貝原好古)가 중국의 형초세시기를 참조하여 『일본세시기(日本歲時記)』를 편찬하였다. 한편, 조선에서는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가 유명하다. 이들 세시기의 내용에 대한 비교를 시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