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과제구분,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연구책임자, 공동연구자, 연구기간, 연구형태, 연구목적 및 배경, 연구방법 및 내용,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연구결과, 참고문헌, 로 구성
과제구분 한국학기초연구 / 공동연구과제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 국문 : (AKSR2023-C02)『병후만록(病後漫錄)』 역주 연구 Ⅱ
  • 영문 :
연구책임자 조융희
공동연구자 신익철, 박진성
연구기간 20230101 ~ 20231216 연구형태 공동연구
연구목적 및 배경 장서각 소장 『병후만록』은 최규서(崔奎瑞)의 일생 경력과 다양한 견문이 담긴 자전적 작품으로 필사본이 유통되고, 야사총서에도 수록될 만큼 후대에 널리 읽혔다. 『병후만록』은 작자의 일생과 사유 세계가 총체적으로 응집된 작품으로서 조선 후기 당쟁사나 자전문학의 변모 양상을 고찰함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므로 시급히 역주될 필요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병후만록』에 대한 교감과 역주를 통해 최규서 개인에 대한 연구와 조선 후기 정치사 및 문학사 이해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연구방법 및 내용 『병후만록』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많고 당쟁과 얽힌 사건들이 다수 등장한다. 또한 이본 대비 교감도 필요하다. 이에 2년의 연구 기간을 설정하여 역주와 교감 작업을 세밀하게 진행하고자 하였다. 금번 2년차 연구에서는 『병후만록』 후반부에 수록된 87화(김려의 발문 포함)에 대한 교감과 역주를 진행하였다. 역주 결과물은 원문에 대한 번역문과 교감 사항에 대한 주석‧주해가 중심이 되며, 두주의 원문과 번역문은 별도로 표시하였다. 총 3인의 연구자가 보조원 3인과 조를 이루어 각자 역주 작업을 진행하고 총 10차례 전체 연구자 회의를 진행하여 역주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함께 검토하였다.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목 차 -

1. <박명창과 연최적 등이 은거하고 있는 나를 찾아온 일>
2. <갑술년(1694)에 전라도 관찰사로 옮겨진 일>
3. <남구만과 장희재의 옥사를 논한 일>
4. <전라도 관찰사로서 펼친 삼한(三閑)의 정사>
5. <전라 관찰사로서 당색을 초월하여 공평하게 처리한 정사>
6. <절수의 폐단을 진달하는 장계를 올린 일>
7. <전라도 네 산성을 두루 살펴보다>
8. <금구의 금산사를 유람하고 도안 선사와 대화를 나눈 일>
9. <조정의 명에 따라 이국헌·김천서·김계광 등을 인재로 추천하다>
10. <전라감사로 순행할 때 성악(聲樂)을 즐기지 않은 일>
11. <이수언이 전라 감영의 영속(營屬) 급료를 혁파하려 함>
12. <장희재의 일에 한 번도 간여하지 않다>
13. <박세채와 문인 임영의 죽음>
14. <비변사에서 함께 근무한 이>
15. <왕세자 가례교명문(嘉禮敎命文) 서사관(書寫官)으로 차임된 연유>
16. <남인을 등용시키려는 남구만의 차자에 반대하다>
17.<내 평생에 부끄러운 두 가지 일>
18. <강화도에 환곡 창고의 관리규정을 마련한 일>
19. <정축년에 순절한 이의 자손을 녹용하고 효행이 있는 자를 정표함>
20. <무예 시험을 보아 별장(別將)을 임명한 일>
21. <맏형 이사명을 신구하도록 권하려 한 이이명>
22. <남에게 의심받았으나 해명할 수 없었던 두 가지 일>
23. <김재를 천거하여 후회한 일>
24. <이절·유선기 등의 고변으로 생긴 일>
25. <황감제 때 본 선비의 습속에 대한 탄식 >
26. <나의 출처(出處)에 대한 기록>
27. <주청사의 부사로 뽑힌 사연>
28. <연행 도중에 있었던 삼사신의 수창>
29. <산해관에서 중국 관원에게 항의하여 사과를 받아낸 일>
30. <아득히 솟은 계주 극락사 누각>
31. <몽골인 제독 보주(保住)의 훌륭한 품성>
32. <주청의 성사를 위한 노력과 각로(閣老) 이상아(伊桑阿)의 도움>
33. <청나라에서 본 세 가지 뛰어난 점>
34. <조대수 패루에서 느끼는 명말의 망조>
35. <백성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청나라 제도>
36. <왕봉영·왕택홍의 훌륭함>
37. <연행시 수행원 명단>
38. <연행 중 하사받은 금품과 남은 노자의 용처>
39. <연행 뒤에 남은 것을 나누어주는 이유>
40. <여색에 대한 자성>
41. <귀국길에 봉황성에서 노모의 편지를 받은 감격>
42. <동지사(同知事)가 되어 역관들과 나눈 농담>
43. <귀국 후 받은 은전과 관직의 변동>
44. <정2품으로 승진한 시말>
45. <형조판서일 때 논핵 당한 일>
46. <역병의 징조>
47. <단종과 신비(愼妃)의 복위에 관한 논의>
48. <검약한 산릉 제도를 따른 숙종>
49. <단종의 부묘(祔廟) 때 생긴 이변>
50. <예조판서 시절 고묘(告廟)를 잘못 계청한 일>
51. <이유와 달리 탐관 조태래를 비판한 일>
52. <혜성의 이변을 계기로 임금에게 아뢴 말>
53. <진하에서 음악을 정지하려다 주상의 노여움을 산 일>
54. <별시 설행 문제로 생긴 이세백과의 갈등>
55. <김구와 이덕성의 갈등을 풀어준 일>
56. <노친을 모시고 용인으로 이사할 때의 일>
58. <용인 어비곡에 은거하며 지은 절구시 두 수>
59. <내 사주풀이의 맞고 틀림>
60. <여덟 번 상소를 올려 대제학을 사양하다>
61. <서문중이 나의 복직을 청하다>
62. <오도일의 뛰어남을 알게 해준 세 가지 일>
63. <천거하는 일의 어려움>
64. <이천에서 본 도깨비불>
65. <부임을 계속 거부하다가 삭탈관작 당하다>
66. <서용된 뒤에도 부임을 거부하다>
67. <중궁이 승하한 뒤 차자를 올리려 한 남구만을 저지한 일>
68. <신사년 옥사 때의 비방하는 일>
69. <김수항의 만사를 거절한 까닭>
70. <임금의 선위를 말리는 상소에 동참하지 않은 일>
71. <숙종의 엄한 질책을 듣고도 나아가 대죄하지 않다>
73. <점술과 얽힌 두 가지 일화>
74. <진퇴의 의리에 관한 지조>
75. <어곡에서 용진으로 이사한 연유>
76. <물건 주고받는 일을 신중히 하다>
77. <한가로이 지내며 얻은 것>
78. <양평 산골 이사에 대한 잘못된 소문>
79. <판의금부사에 낙점되었으나 사양하다>
80. <비방이 저절로 사그라들다>
81. <저자도에 살다가 집을 팔고 이사한 이유>
82. <자신의 심정을 똑같이 노복에 견주어 말한 이재와 최석정>
83. <송상기의 역량을 알고 충고한 일>
84. <기로소 선생안에 이름을 올릴 때의 일>
85. <기로소에 들어 받은 예분을 돌려준 >
86. <무신난과 얽힌 여러 가지 조짐>
발문: <『병후만록』 뒤에 쓰다(題病後漫錄卷後)>
연구결과 당초 목표로 삼은 최규서의 『병후만록』 후반부 이야기 총 87화에 대한 교감 및 역주 작업을 최종적으로 완료하였다. 학술적 교감과 상세한 주석을 붙인 최종 결과물은 200자 원고지 기준 868매(A4 105매) 정도이다. 2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총 165화에 달하는 장서각본 『병후만록』의 교감과 역주를 모두 완료하였다.
참고문헌 ‧ 崔奎瑞, 『艮齋集』, 한국문집총간 161집.
‧ 崔奎瑞, 『病後漫錄』, 장서각소장본.
‧ 金鑢, 『한고관외사』 4책, 장서각소장본
‧ 『稗林』 8책(영남대도서관 소장본), 탐구당, 1969.

연구요약문

연구요약문: 전체 연구결과 요약, 세부과제별 요약로 구성
전체 연구결과 요약
연구 자료인 『병후만록』은 조선 후기 문인 艮齋 崔奎瑞(1650~1735)의 자전적 필기잡록으로 3권 1책의 필사본이며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병후만록』의 국내 판본은 장서각본 외에도 『간재집』본(규장각 소장), 『한고관외사』본, 『패림』본 등 총 4종의 이본이 전한다. 이 가운데 장서각본은 유일하게 단행본 체재를 갖추고 있어 『병후만록』이 조선 후기에 따로 유통되었음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남다르다. 간재 최규서는 숙종~영조 연간에 예조 판서‧대제학‧좌의정 등을 역임한 중신이자 소론의 영수로서 당시 혼란했던 정치사를 논함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병후만록』은 최규서가 69세의 노년에 지은 자전적 작품으로 유년기 성장과정에서부터 출사 이후 관직생활과 정치적 시련, 치사 후 은거 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사다난했던 작자의 인생 이력과 일상의 사건들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밖에도 1697년 그가 주청사의 부사로서 연행을 다녀오며 견문한 정보와 이국 문물에 대한 견해도 기술되어 있다. 따라서 『병후만록』은 최규서의 생애 전반을 고찰하고 그의 정치적‧문학적 성과를 논함에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비교적 긴 편폭에 자기 일생에 대한 회고와 성찰을 담아내고 있어 현대의 자서전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조선시대 자전문학 관련 연구에서 최규서의 생애를 고찰하고 그 자서전적 특질과 가치를 논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처럼 『병후만록』은 최규서의 일생 경력과 다양한 견문이 담긴 저작으로 독립된 필사본이 유통되고, 『한고관외사』・『패림』 같은 야사총서에 수록될 만큼 후대에 널리 읽힌 중요한 저작이다. 이에 최근 이르러 학계의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 바, 장서각 소장 자료 가운데서도 시급히 역주가 이루어져야 할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 중요성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최규서의 일생과 업적을 상세히 구명하고 이 작품의 가치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역주 작업을 진행하였다.
세부과제별 요약
2022년에 장서각본을 저본으로 삼아 <『병후만록(病後漫錄)』 역주 연구Ⅰ>을 진행하였고, 『병후만록』의 총 155화 가운데 절반인 78화를 교감 및 역주하였다. 이번 2차년도 연구를 통해 나머지 79~155화와 김려의 발문에 대한 교감과 역주 작업을 진행하였다. 2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완성된『병후만록』 교감 역주본이 간행된다면 최규서 개인에 대한 연구는 물론이고, 조선 후기 정치사 및 문학사 연구의 토대 자료로 널리 활용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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