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과제구분,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연구책임자, 공동연구자, 연구기간, 연구형태, 연구목적 및 배경, 연구방법 및 내용,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연구결과, 참고문헌, 로 구성
과제구분 한국학중점연구 / 연구·교육 연계과제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 국문 : (AKSR2022-RE02)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검열과 해외언론
  • 영문 : In the 1910s, censorship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nd foreign media
연구책임자 장신
공동연구자
연구기간 20220302 ~ 20220831 연구형태 단독연구
연구목적 및 배경 1) 「한국대외관계사 사료강독」의 교과 목표
첫 번째는 조선총독부의 언론통제를 1910년대 신문검열 중심으로 이해하고, 두 번째는 일본어 사료 번역과 신문 입력을 통해 사료 접근성과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다. 수업에서 다루는 사료는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가 1914년부터 1919년까지 생산한 󰡔朝鮮總督府通報󰡕 전3책으로서 각 449면, 554면, 213면 등 총 1,216면의 문서철이다.

2) 연구과제의 배경과 필요성

(1) 다양한 언어로 구성된 사료
한국근대사는 시간적으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기에 걸치고, 공간적으로는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 언어와 문자로 보면 한국어(한글), 한문,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일본어 등 다양하다. 한글만 해도 1934년 조선어맞춤법이 제정되기 이전에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표기법이 달랐고 국한문체도 적지 않았다. 매 학기 계획을 세워 다양한 언어의 사료를 접할 필요가 있는데, 이번 학기에는 일본어와 20세기 초 한글 사료를 읽고, 번역함으로써 한국근대사 연구에 필요한 사료 독해 능력을 높이려고 하였다.

(2) 일본 공문서 독해 능력과 사료 비판
󰡔조선총독부통보󰡕는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의 문서철이다. 조선의 안과 밖에서 간행된 신문과 출판물을 검열하고, 그 자료를 일본의 주요한 기관과 공유한 자료이다. 그 동안의 연구 관행을 보면 문서 자체보다 내용에만 주목했는데, 공문서는 본문 외에 문서번호와 제목, 발신자와 수신자, 수령일, 참고기관 등이 모두 중요하다. 일본의 근대 공문서는 법령에 규정된 대로 작성하되 기관마다 약간의 특성이 있었다. 사료를 발췌하지 않고 전체를 읽는 훈련을 통해 사료 비판 능력을 높인다.

(3) 해외 발행 신문과 검열 기준
󰡔조선총독부통보󰡕의 검열 대상은 국내외에서 발행된 신문·잡지와 출판물이지만 절대 다수는 󰡔국민보󰡕, 󰡔권업신문󰡕 등 미국과 러시아 등에서 발간된 신문이다. 이 신문들은 국외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들이 발행하였다. 한국의 시사를 순차 보도하고 독립의 의지를 담은 사설과 기사로 가득했다. 매일 발행된 해외의 신문 중에서 어느 기사가 검열 대상으로 압수되었는지 정리함으로써 실체를 알 수 없는 1910년대 조선총독부 검열 기준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방법 및 내용 (1) 강독 사료
󰡔조선총독부통보󰡕는 일본의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소장된 자료이다. 문서를 찾기 위해서는 戦前期外務省記録 - 1門 政治 - 3類 宣伝 - 1項 帝国의 경로를 통해 「新聞雑誌出版物等取締関係雑件」에 접근해야 한다. 지금은 아시아역사자료센터(www.jacar.go.jp)를 통해 원문을 이용할 수 있다.
󰡔조선총독부통보󰡕는 1주 또는 2주 단위로 검열을 한 대상과 기사를 정리하였다. 보통 한 회 분의 신문이나 잡지에서 하나의 기사를 예시하고 제목과 호수, 기사 제목과 내용을 일본어로 번역하였다. 대체로 1915년까지는 기사 전체를 번역하다가 1910년대 후반에는 기사를 요약하거나 제목만 제시하였다.
1910년대는 조선총독부의 언론통제가 극심했던 까닭에 조선 내에서 발행되던 신문이나 출판물이 압수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해외에서 발행되어 국내로 반입되던 신문과 출판물이 주된 탄압 대상이었다. 특히 일간이나 주간 발행의 신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였다. 연구자가 계획서 작성 이전에 신문을 정리하였는데 대략 1천여 호가 압수되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발행의 󰡔신한민보󰡕, 하와이의 󰡔국민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의 󰡔권업신문󰡕과 󰡔한인신보󰡕, 니콜리스크의 󰡔청구신보󰡕 등이 대표적이었다.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1. 1910년대 조선총독부 검열 기구와 검열 기준
2. 󰡔朝鮮總督府通報󰡕의 구성과 내용
3. 󰡔조선총독부통보󰡕의 해외 언론 검열
4. 부록 : 원문 입력
연구결과 (2) 연구 결과
7종의 신문에서 334건의 원문 기사를 입력하였다. 원본이 없을 경우 별도로 표시하였다. 원문 기사 입력량은 2,784매이며 표를 제외한 50매 정도의 해제를 덧붙였다. 표를 제외한 200자 원고자 총매수는 2,834매이다.
이번 과제에서 강독 대상으로 삼은 신문은 미주지역 신문으로 󰡔국민보󰡕, 󰡔한민시사󰡕, 󰡔신한민보󰡕 등 3종이며 러시아지역 신문은 󰡔권업신문󰡕, 󰡔청구신보󰡕와 󰡔한족공보󰡕, 󰡔한인신보󰡕 등 4종이다. 원문 입력은 󰡔국민보󰡕 104건, 󰡔권업신문󰡕 45건, 󰡔신한민보󰡕 117건, 󰡔청구신보󰡕 14건, 󰡔한민시사󰡕 14건, 󰡔한인신보󰡕 37건, 󰡔한족공보󰡕 3건 등 총 7개 신문 334건이었다. 신문 원본이 없을 경우 ‘신문 없음’ 또는 ‘원본 없음’으로 표기하였다. 아래에서 보듯이 형식이 다른 데다가 원본을 오해할 수 있기에 신문 원본이 없는 데도 󰡔조선총독부통보󰡕의 기사를 번역하지 않았다.

󰡔조선총독부통보󰡕의 압수 기사 정리 형식을 보면 크게 셋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1914년 1월부터 1916년 10월까지의 형식이다. 곧 신문명, 호수, 언어, 발행일, 발행지, 기사 분류(논설, 잡보 등), 제목, 기사이다. 문제로 삼은 논설이나 기사를 번역하였는데 전문은 아니다. 전략, 중략, 후략 등으로 어떤 내용을 문제 삼았는지 알 수 있는데 번역도 일부는 완역, 일부는 요약 등으로 그때그때 다르다. 한 예로 1913년 12월 10일에 호눌룰루에서 발행된 󰡔국민보󰡕 제35호의 잡보 중 「소년병학교의 영광이」이란 기사를 보자. 첫 번째가 검열본이고 두 번째가 원문이다.

소년병학교의 光榮
「네브라스카」에 있는 대한인소년병학교 출신으로서 현금 미국 각지의 관사립대학에서 면학하는 사람이 수삼십여명으로서 그 중에 정희원씨는 이미 망한 국가를 광복하고 민족을 물불속에서 건져내려는 큰 뜻으로 능히 艱難을 인내하고 문무 학술을 배운다면 후일 반드시 좋은 기회를 얻어 높이 날고 멀리 뛸(高飛遠躍) 날이 있을 것

캔사ㅅ스 신문 샹에 현추ㄹ
병학교 즁대쟝 졍희원씨는
시방 캔사ㅅ스 관립학교의 학도
네ᄲᅳ라스카 대한인 소년병학교 츌신으로 현금 미국동남과 즁앙 각쳐 각 대학에 허여져 젼문과를 닥ᄂᆞᆫ 생도들이 그 슈효가 심히 번셩ᄒᆞ야 뉴욕에 코넬대학과 쉬카고에 쉬카고대학과 셔복대학과 일리노이 관립대학과 에핑엄 대학과 네ᄲᅳ라스카에 관립대학과 관립사범과 웨슬리안대학과 헤스팅쓰 대학과 기외에 아이오와, 캔사쓰, 콜로라도 각 대학에 즐비ᄒᆞ게 벌여잇셔 엇던 곳에는 한 두 사람으로 사오명도 되고 엇던 곳에는 오륙인으로 십여명ᄭᆞ지 잇ᄂᆞᆫ 바에 그 즁 젼일 소년병학교 학도대 二즁쟝의 근무를 ᄯᅴ고 잇던 졍희원씨는 오ᄂᆞᆯ날 캔사쓰 도셩 토피카 관립학교의 생도ㅣ라 씨가 캔사쓰 학교에 입학ᄒᆞᆫ 후에 일반 학도의 우의를 얻을 ᄲᅮᆫ더러 ᄯᅩ한 부인신사와 신문긔쟈들 사이에 큰 감화력을 얻어 자긔의 개인샹 명예를 유지ᄒᆞᄂᆞᆫ 동시에 ᄯᅩ 우리 국가의 정형과 학계의 광채와 교회의 발뎐ᄒᆞᄂᆞᆫ 소식을 틈〃히 젼ᄒᆞᄂᆞᆫ고로 그동안 토피카 신문은 수삼차 우리 국졍과 학교 교회의 현샹을 미국 사람에게 소개ᄒᆞᆫ 것이라 우리는 우리 학생계에 이러ᄒᆞᆫ 인물들이 각쳐에 허여져 잇슴을 깁히 자랑티 안하리 몯ᄒᆞ겟노라
씨는 고금에 셩취ᄒᆞᄂᆞᆫ 사람들의 자취를 밟아 능히 고생을 견ᄃᆡ며 공부를 힘쓰ᄂᆞᆫ 학생이라 젼일에 소년병 학교에 잇슬 ᄯᅢ에도 무수ᄒᆞᆫ 고초를 견ᄃᆡ엿고 이졔도 ᄯᅩ 동일ᄒᆞᆫ 경우에 쳐ᄒᆞ엿거니와 그 배흐ᄂᆞᆫ 바는 문과 무를 겸ᄒᆞ야 예비ᄒᆞᄂᆞ니 달은 날에 한번 놉히 날고 멀리 ᄯᅱ는 ᄯᅢ에는 으당 문무의 술법을 아울러 시험ᄒᆞᆯ진뎌

원문과 검열된 번역문을 대조하면 양 뿐만 아니라 내용도 변조된 흔적이 있다. 설명을 요약하고 숫자를 더해 없는 30여 명을 만들었다. 번역문은 원문에는 없는 “이미 망한 국가를 광복하고 민족을 물불(위험) 속에서 구해내려는 큰 뜻으로”를 조작하였다. 이 기사가 왜 문제인지를 확실하기 설명하기 위해서 대한제국기의 ‘국권 회복’에 해당하는 광복 또는 독립을 염원하는 기사로 해석하였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형식은 1916년 11월부터 1919년 3월까지의 형식이다. 문제로 삼은 논설이나 기사 전체를 번역하지 않고 제목을 임의로 붙이거나 내용을 축약해서 정리하였다. 예를 들어 󰡔한인신보󰡕 1917년 11월 4일자 「단군대황조성탄기원절」 기사의 원문과 번역본을 비교해보자.

긔원 四쳔二백五십년 음력 十월 초三일 오날은 곳 우리 부여족의 조상되는 단군대황조의 셩탄날이며 겸하야 건국 긔원절이니 자손이오 백셩되는 우리들은 졍셩을 다하야 경축하고 마암에 색여 긔념할지니라 단군께서 래원갑자 十월 三일에 탄생하시고 강생 후 一백二십五년 무진 十월三일에 건국하시니 이 날이 곳 우리 조샹이 생긴 날이며 또 나라를 세운 날임으로 우리 부여족에게는 이 날처럼 더 큰 날이 없고 이 날이 과연 긔념할 날이니라
슲으다 오날에 우리의 형편이 엇지 되얏나고 四쳔년 긔섭이 끈어지고 二쳔만 민족이 노예가 되며 三쳔리 강토가 없어진 오날에 우리가 무산 면목으로 단군대황조 셩탄긔원졀에 기뿜을 의리며 긔념을 올니리오 다만 배불반心 설음이오 흘니것은 눈물뿐이로다 우리는 그럴사록 제 조샹을 더욱 사모하며 내 본국을 또한 생각하야 이날에 기뿜과 함끠 희망을 붗일 것은 우리 마암 자리에 꽉 작뎡할 것이니라
이제 우리는 해외에 나온 슈백만 부여족의 대표와 내디에 잇난 二쳔만 동포의 졍신샹 련락을 한데 뭉치고 마암 심지에 정셩의 불을 켜니 단군대황조 셩탄 긔원졀에 송축을 흘니며 긔념을 듸림은 우리의 직분이오나 또 다시 긔도할 바는 우리들의 죄악을 용셔하시고 임의 주섯든 긔업을 회복케 하옵소셔 우리는 반만년 전 조샹의 혼령 압헤 이 말을 요구함이 너무 오활하나 정녕 오날브럼 단군대황조가 우리 조샹인 줄 알며 그 주신 긔업을 꼭 찻사야만 살줄을 우리 二천만 동포의 노속을 깨치면 곳 다시 계쇽하는 날이니 우리는 이 닻을 가지고 단군대황조의 사업과 공덕을 숑축하여 긔념하노라

「단군대황조성탄기원절」이라 제목을 붙이고 기원 4250년 음력 10월 3일 즉 오늘은 우리 단군대황조의 탄강하신 기념일이다. 지금 우리 사천여년의 基業은 단절되고 이천만 민족은 노예로 되고 삼천리 강산은 讐敵에 유린되었다. 우리는 항상 발분노력하여 조국의 회복을 이루도록 해야할 것이다라는 기사를 게재하고

일부 원문을 번역하였지만 전체 내용을 요약했다. 본문의 “임의 주섯든 긔업을 회복케 하옵소셔”가 검열자의 시선에서는 “조국의 회복을 이루자”라고 읽혔다. 개천절을 기회로 단군이 건국하여 물려준 조국을 되찾자는 기사였다. 이러한 형식은 신문의 전체 내용보다 기사가 무엇을 전달하려는가만 포착해서 보고하였다.
세 번째 형식은 1919년 삼일운동 이후 바쁜 정세 속에서 극도의 간략함을 추구하였다. 1919년 7월 17일자 「신문지 차압의 건」 공문이 대표적이다. 이 공문은 치안방해의 명목으로 275번부터 297번까지 연번을 붙여 압수한 신문과 잡지를 보고하였다. 보고 내용은 제호, 발행일(발행지), 호수, 언어, 기사 제목 뿐이었다. 예를 들어 연번 275번 󰡔저팬 크로니클󰡕 7월 3일 발행(神戶), 제8641호, 영문, 「조선에서 일본의 수단」으로 제목 붙이고 “불온의 기사를 게재하고” 이다. 제목을 알 수 있지만 기사의 어떤 부분이 ‘불온’한 지를 알 수 없다.
참고문헌 1) 자료
朝鮮總督府 警務總監部, 󰡔朝鮮總督府通報󰡕 第一卷
朝鮮總督府 警務總監部, 󰡔朝鮮總督府通報󰡕 第二卷
朝鮮總督府 警務總監部, 󰡔朝鮮總督府通報󰡕 第三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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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요약문

연구요약문: 전체 연구결과 요약, 세부과제별 요약로 구성
전체 연구결과 요약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가 1914년 1월부터 1920년 6월까지 일본 외무성에 보낸 문서철인 󰡔조선총독부통보󰡕 전3권의 압수 기사 목록 중 해외 독립운동에 관계된 신문 중에서 7종, 곧 러시아 지역의 󰡔권업신문󰡕, 󰡔한인신보󰡕, 󰡔청구신보󰡕, 󰡔한족공보󰡕와 미주 지역의 󰡔국민보󰡕, 󰡔신한민보󰡕, 󰡔한민시사󰡕등 7종의 신문에서 334건의 의 원문 기사를 입력하였다. 원본이 없을 경우 별도로 표시하였다. 원문 기사 입력량은 2,784매이며 표를 제외한 50매 정도의 해제를 덧붙였다. 표를 제외한 200자 원고자 총매수는 2,834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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