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과제구분,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연구책임자, 공동연구자, 연구기간, 연구형태, 연구목적 및 배경, 연구방법 및 내용,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연구결과, 참고문헌, 로 구성
과제구분 한국학기초연구 / 공동연구과제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 국문 : (AKSR2022-C15) 『御定 朱書百選』 역주
  • 영문 : An Annotated Translation of One Hundred Selected Letters from Zhu Xi by Jeongjo
연구책임자 신상후
공동연구자 조원희, 신영주, 성백효, 김정철
연구기간 20220101 ~ 20230616 연구형태 공동연구
연구목적 및 배경 『어정 주서백선』(이하 『주서백선』)은 정조가 退溪 李滉(1501-1570)의 『朱子書節要』를 기준으로 삼아, 주자의 편지 중 긴요한 것 100편을 뽑아서 엮은 選集으로, 총 6권 3책이며, 1794년 편찬이 완료되어 이후 활자본과 목판본으로 간행, 전국에 배포되었다.
『주서백선』은 선집이다. 주자의 글을 읽고 그 사상을 연구하는 데에 선집이 활용된 이유는, 대체로 『주자대전』이 워낙 巨帙이라는 데에 있었다. 『주자대전』은 正集 100권ㆍ續集 11권ㆍ別集 10권 총 121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조선조의 학자들이 『주자대전』 전질을 소유하고 이를 연구의 자료로 삼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초학자의 입장에서는, 주자의 방대한 글 중에 무엇을 먼저 읽을 것인지, 모순된 언설 중에 어떤 것을 정설로 삼을지를 판단할 수 없었다. 이에, 조선의 학자들은 선집을 만들었다. 여러 종의 선집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것은 퇴계의 『주자서절요』와 정조의 『주서백선』이다.
독창적 서술을 연구의 본령으로 삼는 현대 학술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선집류 편찬에 학술적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겠지만, 述而不作의 태도에 기반한 전통시대 학술의 관점에서 보면, 선현들의 수많은 언설들 중 일부를 선별하고 거기에 주석하는 일은 학자 자신의 관점과 해석을 드러내는 적극적 학술 활동에 해당한다. 따라서 선집류라고 해서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되고, 이를 그 학자의 학문적 성과로 간주해야 하며, 더 나아가 그 선별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그의 철학과 사상을 가늠해내야 한다.
이것이 정조의 학술을 연구할 적에 『주서백선』을 반드시 활용해야 하는 이유이다. 예컨대, 『주서백선』에 수록된 모든 서간이 『주자서절요』와 일치하는데, 권5의 단 한 편 「答蔡季通」만이 정조가 새로 뽑아 수록한 편지이다. 이러한 차이는 주목되어야 할 부분인데, 기존의 연구에서는 이를 밝혀주기만 했을 뿐 그 의의는 분석되지 못하였다. 그 분석은 「答蔡季通」의 내용과 함의가 철저하게 규명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고, 또한 이 규명에 앞서 이 글의 정확한 번역과 상세한 주석이 기초자료로 제공되어야 하는바, 여기에서 다시 『주서백선』 역주의 필요성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주서백선』의 번역은 기출간된 책이 현재 2종이 있다. 이민수 역, 『현토완역 주서백선』, 학민문화사, 1999; 주자사상연구회, 『주서백선』, 혜안, 2000.
기출간 번역서가 있음에도 새로운 역주가 필요한 이유는, 기존 번역서가 조선조 주자학 연구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주자대전차의집보』(이하 『차의집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종종 발견되는 부정확한 번역이나 불충분한 설명들은 이로 인한 것인 듯하다. 『차의집보』는 조선조 주자학 주석서의 완결판으로, 우리 전통시대 주자학 연구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연구성과이다. 『차의집보』는 華西 李恒老(1792~1868)와 그의 아들 李浚( 1812-1853)에 의해 편집된 책으로, 그때까지 나온 주자서 주석서 및 문집의 관련 내용들을 총망라하여 엮은 것이다. 이 책은 퇴계 이래 300년 간의 조선 주자학의 성과들을 집적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온나라의 지적 에너지를 주자학에 쏟은 것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이 책이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보적 성과이고 독보적 수준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분량이 워낙 방대한 데다가 판본도 좋지 못하여, 현대 연구자들에게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외의 학자들은 차치하고, 우리나라의 주자학 연구자들이 『주자대전』을 읽으면서 이 책을 참고하지 않는 것이 학계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차의집보』가 비록 『주서백선』의 주석서는 아니지만 『주서백선』을 읽고 연구할 때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책이다. 이 책의 참고 여부가 번역과 주석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 연구는 『차의집보』를 충실하게 참고ㆍ반영한 역주서 부재라는 배경에서 계획된 것이다.
연구방법 및 내용 원전 강독을 통해, 원고를 작성하였으며, 『주서백선』 권1부터 권6까지 전량을 번역하고 주석하였다. 번역의 저본은 규장각본을 사용하였으며, 서울대학교규장각에서 2000년 영인한 『朱書百選·雅誦』을 사용하였다.
그 외 『주자대전』의 여러 판본을 참조하여 교감하였다. 또한, 각 편마다 【해제】를 붙여, 『주자대전』 수록 권수, 해당 편지를 작성할 당시의 주자의 나이, 전체의 줄거리 등을 밝히고 특별히 주목할 내용을 약술하였다.
특히, 우리나라 전통방식의 원문가공법을 따라 원문에 현토를 함으로써 표점을 대신하였는바, 이는 기존 번역서와의 차별적 부분이기도 하다. 현토는 우리 고유의 원문 가공법으로, 소재언어(source language)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단어 사이에 목표언어(target language)의 조사와 어미를 끼워 넣음으로써 원문의 문법구조와 의미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때 끼워 넣는 조사와 어미, 즉 吐는 우리말식 조사와 어미이다. 현토는 소재언어를 변형하지 않으면서 목표언어의 문장형태소를 사용함으로써 목표언어로 나아가게 하는, 일종의 반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토는 중국식 표점을 대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자가 원문을 어떻게 이해ㆍ분석하고 있는지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가공법이 된다. 현토한 사람이 해당 문장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표점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주자의 글에서 표점보다 현토가 유리한 이유는 주자의 문체가 호흡이 길고 문리가 난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자의 글은 직역을 하면 우리말에 자연스럽지 않고, 의역을 하면 의미는 전달될 수 있지만, 그 원문이 왜 그렇게 번역되었는지 알기가 어렵다. 즉 의역을 하면 원문의 字訓과 文理를 분석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원문에 현토를 하면, 원문의 글자가 어떻게 해석되며 원문의 구조가 어떻게 분석되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번역은 글의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의역이나 추가역을 지향하되, 원문에 현토를 함으로써 역자의 원문 파악 방식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퇴계와 정조의 편집 양상의 차이를 조망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주자대전』, 『주자서절요』, 『주서백선』 3종의 원문을 대조하고, 대조 결과를 별도로 첨부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朱子大全箚疑輯補』와 『朱子書節要集解』의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각주로 달아주어, 학습의 교보재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연구결과 역주 원고는 두 가지 방식으로 출판할 계획을 세웠다. 하나는 번역서로, 주자학과 조선시대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한문에 조예가 없어도 주자의 서신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하였다. 번역은 가능한 의역 혹은 추가역을 하고,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내용들을 각주로 달아주었다. 번역에 참고한 『주차집보』와 『주자서절요집해』는 번역이나 각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하였다.
또 하나는 강독용 교재로, 『주서백선』의 원문에 밀착해서 강독과 연구를 하고자 하는 전문가들을 위하여 내용을 구성하였다. 이 교재에는 우선 『주자대전』, 『주자서절요』, 『주서백선』 3종의 원문을 대조한 결과를 첨부하여 퇴계와 정조 사상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고, 『朱子大全箚疑輯補』와 『朱子書節要集解』의 내용을 모두 각주로 달아주어 독자가 조선조의 주석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조선조의 주석을 충실히 활용함으로써, 기존 번역의 오류를 수정한 경우도 많았다. 예컨대, 권1 「與陳侍郞」은 주자가 時事를 논한 글 중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편지이고, 여기에 “無復毫分忍痛含寃迫不得已之言, 以存天下之防者”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표현은 尤菴 宋時烈(1607~1689)이 북벌을 논하면서 이 표현을 자주 사용한 이후로, 청나라ㆍ일본ㆍ서양의 침략에 대하여 평할 때 조선조 학자들이 빈번히 인용하는 구절이 되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http://www.itkc.or.kr)에서 ‘忍痛含冤’을 검색하면 문집총간에서 289건이 검색되고, ‘忍痛含冤迫不得已’를 검색하면 134건, ‘忍痛含冤迫不得已八字’를 검색하면 70건이 나온다.(검색일: 2021. 11. 15)
여기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迫不得已’이다. 기존의 번역 모두는 이를 ‘절박한 말’로 풀이하였다. 이광수(1999)는 “털끝만치도 아픔을 참고 원한을 품어 절박한 말로써 천하의 방비가 되는 君臣之義와 父子之恩을 보존하려 하지 않으니”라고 하였고, 주자사상연구회(2000)는 “다시는 아픔을 참으며 원통함을 가슴에 품고 천하를 지켜 보존하기 위해 마지못해 하는 말의 절박함이 털끝만큼도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차집보󰡕에는 이에 대한 주석이 없지만, 󰡔주자서절요집해󰡕를 보면, “강화를 ‘부득이함에 핍박당하여(내몰려서) 한 것’으로 삼는 것이다.[以講和爲迫於不得已也]”라는 󰡔주자서절요강록󰡕의 주석이 실려있다. ‘迫於不得已’는 󰡔論語集註󰡕 「子張」 19장의 주석에도 실려있는 표현으로, ‘부득이한 상황에 내몰려 어쩔 수 없이 하게 됨’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忍痛含寃迫不得已之言’은 ‘원통함을 참고 원한을 머금은 채로 부득이한 상황에 내몰려 어쩔 수 없이 강화를 한다는 말’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迫不得已之言을 ‘절박한 말’로 번역하는 것은 정확한 번역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 표현은 조선조 문인들의 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번역사례를 검토해보면 迫不得已之言을 ‘절박한 말’로 번역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宋子大全󰡕 卷11 「辭職仍以金萬均事引咎疏」의 번역에서도 이를 “고통을 참고 원망을 품고서 절박한 심정에서 부득이하게 하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한국고전종합DB(http://www.itkc.or.kr) 검색.(검색일: 2021. 11. 15)
‘忍痛含冤迫不得已八字’라는 표현도 조선조 문집에 자주 나오는데, 그 번역을 검토해보면 오역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遜齋集󰡕 卷7 「晉湖問答」의 번역에서는 이를 “‘아픔을 참고 원한을 품어 다급해도 그만둘 수가 없다.’는 여덟 글자”라고 하였다. 한국고전종합DB(http://www.itkc. or.kr) 검색.(검색일: 2021. 11. 15)
본 연구의 결과물이 널리 보급된다면 이러한 오류도 함께 수정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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