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기초연구 / 공동연구과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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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코드 | |||
연구과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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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 안예리 | ||
공동연구자 | 신익철, 조융희, 서승희 | ||
연구기간 | 20220101 ~ 20221216 | 연구형태 | 공동연구 |
연구목적 및 배경 | 이 연구는 1900~1930년대 한국인들이 남긴 하와이에 관한 기록 중 여행기에 해당하는 글들을 찾아 한데 모으고, 이에 대한 역주 작업을 진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근대의 여행기에 대한 학계와 일반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추세이지만 하와이 여행기에 대해서는 아직 본격적인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 연구는 최초의 한인 집단 이주지이자 독립운동의 근거지로서 근대 한국에서 하와이가 갖는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보아 근대인들이 남긴 하와이 여행기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 ||
연구방법 및 내용 | 본 연구의 주된 내용은 제1부 <포와유람기(布哇遊覽記)>(1909)에 대한 역주 결과물과 제2부 1900~1930년대 신문과 잡지에 발표된 하와이 여행기 10편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하와이 입문서이자 여행 안내서로서의 <포와유람기>의 내용을 소개하고, 그 후 실제로 하와이를 방문했던 근대 한국인들의 여행 경로와 목적, 소감 등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 ||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머리말 제1부 현순의 <포와유람기>(1909) 1. <포와유람기> 현대어역 2. <포와유람기> 원문 제2부 근대 하와이 여행기 1. 강영승, 「포와시찰담」, 신한국보, 1909.3.16, 1909.3.30. 2. 김동성, 「포와행」(一)(五), 동아일보, 1921.11.21-25. 3. 산호성, 「태평양 건느는 길: 횡빈서 포항ᄭᅡ지」(一)~(十), 동아일보 1921.12.21-31. 4. 포와생, 「포와의 하」, 개벽 38, 1923.8.1. 5. 장덕수, 「미국 와서」 (十五)~(二十二), 동아일보, 1923.12.15-22. 6. 송진우, 「하와이 가는 길에」 (一)~(四), 동아일보, 1925.6.17-20. 7. 임영빈, 「호놀룰루의 하로, 도미 「스케취」」, 동광 5, 1926.9.1. 8. 용흥강인, 「도해만필: 태평양 우에서」(五), (六), (七), 조선일보 1926.12.2-5. 9. 황을수, 「올림픽 가는 길에 태양환에서」 (四)(五), 동아일보, 1932.8.17. 10. 정월, 「태평양 건너서 (구미유기 속)」, 삼천리 6(9), 1934.9.1. 부록 1. 지명 색인 2. 인명 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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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 본 연구 성과는 포와유람기 현대어역과 원문, 그리고 신한국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개벽, 개벽, 동광, 삼천리 등 근대의 신문 및 잡지에 수록된 하와이 여행기 10편에 대한 원문 및 주석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여행기에 등장하는 지명과 인명 색인을 부록으로 제시하였다. 연구결과물은 200매 원고지 기준 약 1,260매에 해당한다. | ||
참고문헌 | 고정휴(2013), 3ㆍ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의 숨은 주역 현순, 역사공간. 국립민속박물관(2003), 미국 하와이지역 한인동포의 생활문화, 국립민속박물관. 김대완(2007), 「하와이 초기 이민에 대한 연구」,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김동성 저, 김희진ㆍ황호덕 역(2015), 미주의 인상 조선 청년, 100년 전 뉴욕을 거닐다, 현실문화. 김미정(2014), 「하와이 견문록 『포와유람기』 고찰」, 어문연구 80, 99-125. 김용직(2009), 하와이에서 만주까지: 한국 초대교회 이경직 목사의 삶과 믿음 이야기, 성신여자대학교 출판부. 김재현ㆍ류명균ㆍ최선화(2020), 하와이 디아스포라 이야기, 키아츠. 나혜석 저, 가갸날 편(2018), 조선여성 첫 세계일주기, 가갸날. 로버타 장ㆍ웨인 패터슨 저, 이주영 역(2008), 하와이의 한인들: 사진으로 보는 미주 한인 100년사 1903~2003, 눈빛출판사. 문옥표ㆍ이덕희ㆍ함한희ㆍ김점숙ㆍ김순주 편역(2017), 하와이 사진신부 천연희의 이야기, 일조각. 박대성(2004), 「현순의 생애와 사상 연구」,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박인환 외 저, 리브로리브레 편(2021), 이상은 어떤 여행을 했을까 (근대작가여행기), 리브로리브레. 성석제ㆍ손석춘ㆍ오정희ㆍ은희경(2007), 100년을 울린 겔릭호의 고동소리: 미주 한인 이민사 100년의 사진기록, 현실문화연구. 안형주(2013), 1902년, 조선인 하와이 이민선을 타다: 안재창의 가족 생애사로 본 아메리카 디아스포라, 푸른역사. 오인환ㆍ공정자(2004), 구한말 한인 하와이 이민, 인하대학교 출판부. 웨인 패터슨 저, 정대화 역(2002), 아메리카로 가는 길: 하와이 한인 이민사 1896~1910, 들녘. 웨인 패터슨 저, 정대화 역(2003), 하와이 한인 이민 1세, 들녘. 이덕희(2003), 하와이 이민 100년 그들은 어떻게 살았나?, 중앙M&B. 이덕희(2013),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100년사, 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이선주ㆍ로버타 장(2014), 하와이 한인사회의 성장사 1903~1940: 초창기 이민자들과의 인터뷰,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2018), 여행기의 인문학, 푸른길. 한국이민사박물관 편(2016), (새롭게 보는) 하와이 韓人 독립운동 자료전, 한국이민사박물관. 한규무(2002), 「현순의 신앙과 활동: 3·1운동 이전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와 역사 16, 47-69. 한규무(2008), 「현순, 포와유람기」, 한국사 시민강좌 42, 141-158. Haley, J. L. (2015) Captive Paradise: A History of Hawaii. New York: St. Martins Press. Kirch, P. V. (2010) How Chiefs Became Kings: Divine Kingship and the Rise of Archaic States in Ancient Hawaii.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La Croix, S. (2019) Hawaiʻi: Eight Hundred Years of Political and Economic Change.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MacLennan, C. A. (2014) Sovereign Sugar: Industry and Environment in Hawaii.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Takaki, R. T. (1984) Pau Hana: Plantation Life and Labor in Hawaii, 1835-1920.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
전체 연구결과 요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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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1부에는 1909년 현순(玄楯, 1879-1968)이 단행본으로 발표한 포와유람기(布哇遊覽記)의 역주 내용을 담았다. 현순은 조선 후기 역관을 다수 배출한 천령 현씨 집안 출신으로, 어린 시절 전통적인 한학 교육을 받았다. 1897년 관립 한성영어학교에 입학해 영어를 배웠고 1899년 일본으로 유학을 가 도쿄에서 공부하다 1902년 귀국했다. 현순은 귀국 후 하와이 이민을 주선하던 동서개발회사에 통역 겸 조수로 채용되었는데, 당시는 대한제국 정부가 하와이 노동 이민을 추진하기 위해 제반 준비를 서두르던 때였다. 하와이는 한국 최초의 공식적 집단 이주가 이루어진 곳으로, 1903년 1월 13일 102명의 한인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것을 시작으로 1905년 8월까지 65회에 걸쳐 7,400여 명의 한인들이 노동 이민자로서 하와이 땅을 밟았다. 하와이 여러 섬의 사탕수수 농장에 흩어져 고된 노동에 종사하던 한인들은 점차 자체적으로 회(會)를 조직하고 신문과 잡지를 발행하였다. 동포들 간의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하던 하와이 한인 단체는 을사늑약 이후 미국 본토와 멕시코, 블라디보스토크 등 해외 각지의 한인 사회와의 연계 속에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서기 위한 독립운동 단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현순은 아내와 함께 제2차 이민단에 합류하여 1903년 3월 하와이에 입항했고 1907년 5월까지 하와이에 체류하며 한인들의 정착을 도왔다. 1909년 1월 20일에 발행된 포와유람기는 약 4년 2개월간의 하와이 생활을 토대로 기술한 것으로, 한국에 하와이의 지리, 역사, 문화 등을 소상히 알린 최초의 문헌이자 초기 하와이 이민자들의 생활상을 자세히 기록한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매우 크다. 총 58쪽으로 이루어진 포와유람기는 서두에 책의 목차와 하와이 지도가 실려 있고, 이어서 총론에 해당하는 제1장, 하와이의 지리를 다룬 제2장, 하와이의 역사를 다룬 제3장, 하와이의 경지를 다룬 제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포와유람기는 한문구가 많이 섞인 국한혼용문으로 작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하와이의 풍토, 물산, 제도에 대한 설명에 사용된 어휘, 그리고 지명 표기가 오늘날과 매우 다르기 때문에 독해의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포와유람기 전문을 현대어로 번역하고 내용의 이해에 필요한 주석들을 추가하여 자료의 활용도를 높이고자 하였다. 포와유람기는 제목에 ‘유람기’임을 드러내긴 했지만, 보통의 여행기가 시간의 순서에 따른 공간의 이동이라는 서술 체재를 취하는 것과 달리 일정한 주제를 다룬 상위 항목 아래 하위 항목들을 배열해 백과사전식의 서술 체재를 취하였다. 서두에서는 증기선이 호놀룰루항에 들어서는 장면으로 시작해 여행자로서의 감상을 적었지만, 그 이후의 서술은 여행기라기보다는 한인의 이민 약사(略史) 내지는 하와이 입문서에 가깝다. 한인들의 이주 현황을 생업, 교육, 종교, 단체, 출판물 등의 측면에서 서술하였고, 하와이 현지 정보도 위치와 면적, 기후, 동식물, 인종과 인구, 가옥과 음식, 언어와 문자, 전통문화, 상업, 군사력, 역사 등 여러 측면에서 소상히 밝혔다. 하지만 포와유람기의 내용이 객관적인 정보의 나열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서술 곳곳에서 미국의 영토로 편입된 하와이에 대한 현순의 관점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현순은 하와이인들의 타고난 품성이 하와이의 기후처럼 온유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게으르고 굼뜬 습성을 갖게 되어 국가가 쇠락해졌고 결국 미국에게 영토를 빼앗겼다고 하였다. 땅을 잃게 된 하와이 원주민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자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동정심을 표하는 한편, 하와이 왕조가 비록 전복되었지만 하와이가 자기의 주권을 이어간다면 훗날 왕조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포와유람기의 집필이 이루어진 시기가 바로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국권 침탈이 가속화되던 때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순의 이러한 서술은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된 하와이인에 대한 동병상련의 마음과 더불어 약소국의 국권 회복에 대한 희망을 표출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현순은 하와이의 기후가 하와이인에게는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지만 바로 그 기후 덕분에 사탕수수가 잘 자라 십여만 이민자들에게 생활의 활로와 무한한 행복을 주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생활이 편리한 지상의 낙원 하와이가 대한 동포들에게 제2의 고향이 되었다고 하며 자신이 실무 책임을 맡은 하와이 노동 이민의 성과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제2부에서는 1900~1930년대에 신문과 잡지에 실린 하와이 여행기 10편을 소개하였다. 신한국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신문과 개벽, 동광, 삼천리 등의 잡지에 하와이 여행기를 발표한 이들은 제각기 다양한 배경을 가졌지만, 한국의 근대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후일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장을 지낸 강영승은 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시찰 업무차 호놀룰루를 떠나 하와이섬으로 가는 여정을 글로 담았다. 김동성은 동아일보사 재직 시절 조선 기자 대표로서 호놀룰루에서 열린 제2회 만국기자대회에 참석했고, 후일 동아일보사 사장을 지낸 송진우는 제1회 태평양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호놀룰루를 향했다. 역시 근대의 대표적인 언론인 중 한 명인 장덕수는 미국 유학길에 하와이에 기착했고, 소설가 임영빈과 정치인 김태선도 미국 유학을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길에 하와이에 들렀다. 한편, 권투선수 황을수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출전하러 가는 길에 경유지 하와이를 여행했고,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작가였던 나혜석은 세계 일주를 마무리하며 하와이에 들렀다. 당시 서울을 출발해 하와이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간 뒤 부산에서 연락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너 도쿄에 가야 했다. 그리고 요코하마로 이동해 증기선을 타면 열흘간의 항해 끝에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근대인들이 남긴 하와이 여행기는 이 장거리 선박 여행에 대한 묘사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출발한 여행객에게도 삼등실의 열악한 시설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게 했고, 난생처음 겪어 보는 대양의 성난 파도와 뱃멀미는 심신을 지치게 했다. 매일 반복되는 망망대해의 풍경에 지루함이 깊어져 갈 무렵, 물안개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하와이는 “아― 육지를 본다는 것이 어쩌면 그리도 반가울까!” 하는 생경한 탄식을 불러일으켰다. 드물게 하와이섬이나 마우이섬을 여행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오아후섬의 호놀룰루에 체류했고, 민찬호 목사의 안내로 섬을 둘러본 경우가 많았다. 교민총회관, 한인 교회, 한인기독학원 등을 방문해 하와이에 사는 동포들을 만났고, 와이키키 해변, 카피올라니 공원, 다이아몬드헤드, 펀치볼, 누우아누팔리, 와이키키 수족관, 비숍 박물관 등 일찍이 현순의 포와유람기에 소개된 명소들을 구경했다. 이들은 기이한 모양을 한 꽃과 나무에 감탄하고 하와이의 다양한 인종들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호놀룰루에 온 근대 조선인들이 입을 모아 경탄을 표한 것은 도로에 즐비한 자동차와 그렇게 많은 차가 지나가도 먼지가 일지 않는 아스팔트 도로였다. 자동차가 많은 도시에서의 운전문화도 조선인 여행자의 눈에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민찬호 목사가 코너를 돌 때마다 이쪽저쪽으로 팔을 내밀어 수신호를 하는 모습을 기이하게 바라보다가 차가 많은 이곳에서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진행 방향을 알려야 할 것이라는 자각에 이르기도 하고, 아름답게 차려입은 여자가 몸소 차를 몰아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기도 했다. 가장 번화한 종로 거리라 해도 온종일 지나다니는 차가 수십 대에 불과하고, 차 한 대만 지나가도 먼지투성이가 되고 마는 조선의 도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호놀룰루의 반질반질한 아스팔트 도로는 조선인 여행자들이 처음 경험한 미국의 선진 문명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경험한 문명의 산물이 꼭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수많은 자동차와 깨끗한 도로 못지않게 여러 여행기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부둣가의 동전 던지는 장면은 발달된 문명을 가능케 한 자본이 “악마의 요술품”이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느끼게 해 주었던 것이다. 당시 태평양을 건너온 배들이 항구에 도착하면 하선을 기다리며 갑판에 서 있던 승객들이 바닷속으로 동전을 던졌고, 부둣가에서 대기하던 하와이 원주민들이 잠수를 해 그 동전을 건져 왔다고 한다. 어떤 원주민은 아예 배 위로 올라와 동전을 받은 뒤 바다로 다이빙을 했다. 누군가에게는 값어치 없는 동전으로 가볍게 즐기는 오락이지만 누군가는 그 동전이나마 벌어보겠다고 목숨을 건 묘기를 부리는 이 장면을 바라보며 식민지 조선인들은 깊은 비애를 느꼈다. 이 장면을 보며 조선의 여행자들이 느낀 울분은 사람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비인간성에 대한 분노였고, 이 분노의 감정을 매개로 여행객들은 피식민지 민족의 눈으로 미국령 하와이를 바라보게 된다. 하와이를 대하는 근대 조선인의 시각은 19세기 중엽 이후 하와이를 찾은 다른 국적의 여행자들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1860년대에 하와이를 여행한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은 마크 트웨인의 하와이에서 보낸 편지(Mark Twain’s Letters from Hawaii)에서 하와이와의 무역이 미국에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익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미국 정부에 대해 하와이의 경제적 가치를 최우선시하여 장차 하와이에 미국인을 이주시키고 그 이익을 더욱 극대화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1870년대에 하와이를 여행한 영국의 작가이자 지리학자인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 Bishop, 1832-1904)의 하와이 제도: 샌드위치 섬들의 야자수 숲, 산호초, 그리고 화산 속에서 보낸 6개월(The Hawaiian Archipelago: Six Months amongst the Palm Groves, Coral Reefs, and Volcanoes of the Sandwich Islands)에서는 선교사들이 하와이의 야만적인 문화를 문명화하였다는 서술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특히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를 통해 하와이 아동들의 취학률이 높아진 것에 큰 찬사를 보내며, 이들 덕분에 하와이가 대단히 문명화되고 있다고 감탄하였다. 야만에서 문명으로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서구의 종교와 문화의 침투를 긍정적으로 바라본 비숍은 미국을 통해 하와이가 문명화되었기 때문에 하와이에 미국식 관습이 널리 퍼지고 미국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였다. 또한 미국이 하와이 합병을 너무 서두르면 안 되겠지만 합병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고 하면서 미국의 영토 확장주의를 정당화하는 시각을 보여 주었다. 이처럼 근대의 하와이는 그 여행자의 배경에 따라 전혀 다른 인식을 가능케 하는 공간이었다. 산호성이라는 필명을 쓴 여행기의 필자가 열흘간의 항해 끝에 호놀룰루 항구에 도착한 뒤 이 이역만리에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 벅찬 그리움부터 느꼈던 것처럼, 근대 조선인들에게 하와이는 낯설기만 한 외국이 아니라 그 일부에 ‘우리’를 품고 있는 공간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단지 조선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따뜻한 환대를 받았고, 헤어질 때는 벅차오르는 마음에 눈물을 머금었다. 여행자들이 하와이의 한인들을 만나 가장 큰 감동을 받은 순간은 한인회관에 걸린 태극기를 봤을 때였던 듯하다. 1920년대에 하와이에 간 장덕수와 임영빈은 검열을 의식한 듯 태극기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내가 어려서 보던 기(旗)”가 높이 걸려 있었다거나 “내 입으로 15년 전에 한 번 불러 보던 이름, 한 번 보던 물건을 부르고 보았습니다.”라고 하며 그 감격으로 피가 끓어 오고 눈물이 철철 흘렀다고 고백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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