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기초연구 / 공동연구과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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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코드 | |||
연구과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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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 조융희 | ||
공동연구자 | 신익철, 박진성 | ||
연구기간 | 20220101 ~ 20221216 | 연구형태 | 공동연구 |
연구목적 및 배경 | 장서각 소장 『병후만록(病後漫錄)』은 최규서(崔奎瑞)의 일생 경력과 다양한 견문이 담긴 자전적 작품으로, 필사본이 유통되고 야사총서에도 수록되어 후대에 널리 읽혔다. 『병후만록』은 작자의 일생과 사유 세계가 총체적으로 응집된 작품으로서 조선 후기 당쟁사나 자전(自傳) 문학의 변모 양상을 고찰할 때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므로 시급히 역주될 필요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병후만록(病後漫錄)』에 대한 교감과 역주를 통해 최규서 개인에 대한 연구와 조선 후기 정치사 및 문학사 이해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 ||
연구방법 및 내용 | 『병후만록』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많고 당쟁과 얽힌 사건들이 다수 등장한다. 또한 이본 대비를 통한 교감 작업도 필요하다. 이에 2년의 연구 기간을 설정하여 역주와 교감 작업을 세밀하게 진행하고자 하였다. 1년차에는 1~78화까지 교감과 역주를 진행하였다. 역주 결과물은 원문에 대한 번역문과 교감 사항에 대한 주석‧주해가 중심이 되며, 두주의 원문과 번역문은 별도로 표시하였다. 총 3인의 연구자가 보조원 3인과 조를 이루어 각자 역주 작업을 진행하고 총 10차례 전체 연구자 회의를 진행하여 역주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함께 검토하였다. 당초 2년간의 목표로 삼은 최규서의 『병후만록』 155화 가운데 절반인 78화에 대한 번역과 주석 원고를 작성하였다. 학술적 교감과 상세한 주석을 붙인 최종 결과물은 200자 원고지 기준 944매(A4 111매) 정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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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 목 차 - 1. <뜰 안에 떨어진 이웃집 밤을 돌려준 일> 2. <최석정의 뛰어난 문장과 큰 뜻> 3. <남구만에게 이백의 시를 함께 배운 당대의 수재들> 4. <최규서‧최명길‧박태유의 어린 시절 소원> 5. <최규서가 윤휴에게 수학하지 않은 연유> 6. <어린 시절에 본 송준길의 풍모> 7. <어린 시절에 본 윤선거의 풍모> 8. <세 차례 접한 송시열의 모습> 9. <이유태의 호걸스러운 언변> 10. <윤증과의 네 차례 만남> 11. <박세채의 인품과 덕망> 12. <허목의 연천 거처> 13. <여섯 친구의 운수의 차이> 14. <가형·종형과 함께 연천에서 지낸 일> 15. <기유년(1669) 회시 합격에 얽힌 일화 > 16. <성균관 석채례(釋菜禮)와 「신덕왕후부묘소(神德王后祔廟疏)」를 올린 일> 17. <동경(東京)과 독갑(獨甲)이라는 별명이 붙은 연유> 18. <문화현 구월산을 유람한 일> 19. <용문산을 유람하며 겪은 일들> 20. <서호에서 함께 지낸 친구들> 21. <해주 일대를 유람한 일> 22. <대탄(大灘)을 건너다가 겪은 파선할 뻔한 위기> 23. <떡시루가 울고 나서 걸린 고질병> 24. <고질병을 통해 얻은 교훈> 25. <감제(柑製)가 있다는 뜬소문에 두 번 속은 이동암(李東馣)> 26. <병진년(1676) 증광시 초시에 합격한 일> 27. <정사년 회시의 문란함과 조현기・조형기 형제의 행실> 28. <남인의 고묘(告廟) 논의에 반대하는 상소에 참여한 일> 29. <연산에서 본 윤증의 풍모> 30. <은진에서 만난 귀양 가는 남구만의 모습> 31. <외조모의 병환과 상중에 겪은 일> 32. <전시 때 비가 내려 생긴 일> 33. <양부의 상을 당한 비통함> 34. <최규서의 재능을 알아준 신정> 35. <복명하지 못한 채 당한 부친상> 36. <서인의 분열과 그 징조> 37. <국상 때 대상을 치르는 것에 관한 이견> 38. <갑자기 가형을 잃은 슬픔> 39. <윤증의 편지에서 비롯된 서인의 분열> 40. <최규서와 강현의 비슷한 이력> 41. <승륙의 시말과 관직에 임하는 멸사봉공의 자세> 42. <무도한 환관을 처벌하여 생긴 일> 43. <친구 정제선에 대한 탄핵> 44. <족보를 위조한 자들에 대한 처벌> 45. <서북인 통청과 한구의 일로 인한 상소> 46. <평생에 통쾌했던 두 가지 일> 47. <양구현감 시절의 금강산 유람> 48. <양구현감 시절 치른 별시> 49. <사익을 취하지 않으려 했던 관직 생활> 50. <적모에 대한 조처> 51. <고을 사람들이 베풀어준 전별연> 52. <이징명의 상소에 대한 조언> 53. <유성운 통청에서 비롯된 논란> 54. <김창집이 전랑에 제수될 때의 일> 55. <김익훈의 신원을 반대한 일> 56. <노소로 갈라지기 전 시절에 대한 그리움> 57. <갑산으로 가는 길에 겪은 고초> 58. <북방의 눈에 대한 오해> 59. <함경도 어사를 지내면서 겪은 일> 60. <후주의 철폐에 대한 안타까움> 61. <공부가 부족하여 전강에서 겪은 곤란> 62. <당쟁의 폐단에 관한 상소를 올린 일> 63. <윤증의 일에 대한 송주석(宋疇錫)과의 대화> 64. <조사석 복상 문제로 진노한 숙종> 65. <영위사에 임명된 일> 66. <장자를 과거시제로 냈다가 체직당한 박태손> 67. <남구만의 이사명 구원 상소를 막은 일> 68. <양주목사로 나간 연유> 69. <요승 여환(呂還)의 옥사> 70. <원자의 명호를 정하려는 숙종에 반대한 조정 대신> 71. <임금께 형벌과 칭상을 분명히 해야 함을 아뢴 일> 72. <아버지의 죽음과 마지막 가르침> 73. <안성에서의 시묘살이와 기사환국> 74. <선조 비갈의 정비> 75. <궁리격물(窮理格物)의 한 가지 일> 76. <잠시 도적을 피해 아산에 우거한 일> 77. <청주 목사에 제수된 직후 체직된 일> 78. <숙모 상을 당하여 다녀온 경상도 노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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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 본 연구를 통해 최규서의 『병후만록』 155화 가운데 당초 목표로 삼은 78화에 대한 번역과 주석 원고를 작성하였다. 학술적 교감과 상세한 주석을 붙인 최종 결과물은 200자 원고지 기준 944매(A4 111매) 정도이다. 역주 결과물의 구성은 원문에 대한 번역문과 교감 사항에 대한 주석‧주해가 중심이 되며, 두주의 원문과 번역문은 별도로 표시하였다. 『병후만록』은 원문 가운데 이체자가 많을 뿐 아니라 두주에도 이체자와 난해자가 많아서 원문 입력에 다소 시간이 소요되었다. 아울러 타 이본과의 교감 작업도 병행하였기에 원문 입력에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번역에 있어서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매우 많고 당쟁과 관련된 정치적 사건이 다수 기록되어 있어서 인물 및 사건의 주석에 각별한 공력을 기울였다. 특히, 정치적 사건과 관련해서는 『승정원일기』나 조선왕조실록 같은 사료에 수록된 해당 기사들을 주석에 인용하거나 요약적으로 설명하였다. 총 3인의 연구자가 보조원 3인의 도움을 받아 각자 전공 분야의 참고자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역주 작업을 하고, 전체 연구자 회의와 최종 결과 발표회를 통해 역주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함께 검토하며 공동으로 해결을 모색하였다. 또한 역주 완료 시점까지 총 10차례에 걸친 월별 강독회와 최종 연구결과 발표회를 통해 역주 결과물의 정제성과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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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자료> ‧ 崔奎瑞, 『艮齋集』, 한국문집총간 161집. ‧ 崔奎瑞, 『病後漫錄』, 장서각소장본. ‧ 金鑢, 『한고관외사』 4책, 장서각소장본 ‧ 『패림』 8책(영남대도서관 소장본), 탐구당, 1969. <논저> ‧ 심경호, 『선인들의 자서전,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가서, 2010. ‧ 안득용, 『한국 고전 자기서사 연구』, 태학사, 2019. ‧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1·2, 동방미디어, 2000. ‧ 이재 지음, 신익철·조융희·박용만 역주, 『삼관기(18세기 노론계 문인 학자의 신변잡기)』,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9. ‧ 최황 저, 이봉래 역, 『간재연보 : 賢君 영조대왕의 큰 스승 忠貞公 崔奎瑞 一代記』, 2009. ‧ 김묘정, 「1697년 三使 연행시의 교류성 연구 -崔錫鼎·宋相琦·崔奎瑞의 작품을 중심으로-」, 『韓民族語文學』 78호, 한민족어문학회, 181-212, 2017. ‧ 김묘정, 「17세기 少論계열 지식인들의 聯句詩 고찰 - 吳道一·崔錫鼎·趙泰億의 시적 교류 양상을 중심으로」, 『石堂論叢』 78호,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20. ‧ 박진성, 「조선후기 자전문학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128-138, 2019. ‧ 신영미, 「南龍翼」의 『壺谷漫筆』 연구」,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7. ‧ 신병주, 「17세기 후반 소론학자의 사상: 윤증 · 최석정을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 13호, 한국역사연구회, 1994. ‧ 정우봉, 「조선 후기 自撰年譜 연구」, 『한국한문학연구』 59호, 한국한문학회, 108-111, 2015. ‧ 최영성, 「明齋 尹拯과 明村 羅良佐」, 『儒學硏究』 15호,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07. ‧ 최혜미, 「『병후만록』에 나타난 기억 서술의 양상과 그 의미」, 『語文論集』 74호, 민족어문학회, 2015, 69~98쪽. ‧ , 「최규서의 『병후만록』 연구: 생애시기에 따른 서술양상을 중심으로」, 『Journal of Korean Culture』 34호, 한국어문학국제학술포럼, 189-220, 2016. ‧ , 「官人 自撰年譜의 편찬 배경과 서술 의식 -『壺谷漫筆』과 『病後漫錄』을 중심으로-」, 『고전과 해석』 34호, 고전문학한문학연구학회, 166-183, 2021. |
전체 연구결과 요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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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자료인 『병후만록』은 조선 후기 문인 艮齋 崔奎瑞(1650~1735)의 자전적 필기잡록으로 3권 1책의 필사본이며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병후만록』의 국내 판본은 장서각본 외에도 『간재집』본(규장각 소장), 『한고관외사』본, 『패림』본 등 총 4종의 이본이 전한다. 이 가운데 장서각본은 유일하게 단행본 체재를 갖추고 있어 『병후만록』이 조선 후기에 따로 유통되었음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남다르다.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장서각본을 저본으로 삼아 <『병후만록(病後漫錄)』 역주 연구Ⅰ>을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병후만록』에 수록된 총 155화 가운데 절반인 78화를 교감 및 역주하였다. 이듬해 후속 연구를 통해 나머지 부분에 대한 교감과 역주 작업도 완료할 계획이다. 2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병후만록』 교감 역주본이 간행된다면 중요성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최규서 개인에 대한 연구는 물론이고, 조선 후기 정치사 및 문학사 연구의 토대 자료로 널리 활용될 것이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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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과제별 요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