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기초연구 / 모노그래프과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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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코드 | |||
연구과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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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 이완범 | ||
공동연구자 | |||
연구기간 | 20220101 ~ 20241216 | 연구형태 | 단독연구 |
연구목적 및 배경 | 먼저 연구 배경을 설명하면, 제2차 세계대전 후 40여 년간 국제질서는 냉전시대로 특징화할 수 있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 고르바초프가 등장한 이래 소련이 분해되어 사회주의 블럭이 붕괴하면서 1990년대에는 바야흐로 ‘냉전후시대(the post Cold War era)’ 또는 탈냉전시대(탈냉전기)라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前시대적 상황이 된 냉전을 과거의 ‘역사’로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30년 이상의 시차가 확보되었다. 독일 통일이라는 탈냉전시대의 대변혁이 몰고 온 세계적(global) 신질서가 국지적(local) 한반도의 긴장 완화에 어떤 형태로든 기여해 한반도의 남북한 통일이 달성될 것이라고 성급하게 예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시아지역 특히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적대적인 체제가 상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왜 한반도는 냉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가 하는 강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미·소 화해와 소련 몰락으로 냉전체제 자체가 와해 되었지만, 국제적 냉전체제의 산물이었던 한반도 분단(냉전)은 이미 뿌리 깊게 침투되어 독립적인 완결구조를 국내적으로 갖추었기 때문에 냉전체제 자체의 와해에 완전히 규정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세계적 차원의 냉전 몰락이 국지적인 한반도에서 완전히 관철되지 않음으로써 냉전을 극복할 수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듯 탈냉전으로 인해 국제체제는 재편되었지만 한반도에는 아직도 냉전의 유산인 분단이 잔존해 있다. 이른바 유럽과 한반도에서 ‘냉전 해체의 비대칭성과 비동시성’ 양상이 구현된 것이다. 북한은 소련방이 몰락해 위기에 봉착했지만 핵무장에 집중해 사실상 완성했으며 결국 미·중 신냉전이 도래할 때까지 버텨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사회주의권의 맏형 소련은 붕괴했지만 동아시아의 사회주의 국가 북한, 중국, 베트남은 붕괴하지 않았으며 이 지역의 냉전은 지속되고 있다. 미·소 냉전의 역사는 종언했지만 이어 미·중 신냉전의 체제경쟁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따라서 한국학계와 국제학계에서는 한반도 냉전의 종점에 대해서 암중모색의 상태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 한반도 냉전사를 면밀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또한 한반도 분단은 세계적 냉전의 산물이므로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냉전 연구가 필요하다. 분단원인 규명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한반도 냉전사 연구는 한국 정치 연구에서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냉전사 초기 국면인 냉전 기원 연구는 탈냉전기에도 한반도에 냉전이 잔존해 있다는 퍼즐을 풀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작업이다. 물론 기원(起源; origin)에 대한 연구에서 해답을 얻는다고 해서 현재 진행 중인 냉전을 끝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한반도 냉전체제가 지속되는 2024년 현재와 20세기 중엽 한반도 냉전 기원이 등장했을 때와는 시차가 있다. 따라서 지속 원인과 냉전 기원은 다를 수 있다. 여기서 ‘역사는 유동적’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인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 원인의 근원을 통해서 그 근본적인 본질 규명에 나설 수 있으며 분단 해소[냉전 종식]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할 수는 있다. 위와 같은 배경 아래 한반도 냉전의 기원을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둘러싼 갈등부터 한반도 분할까지의 1941년부터 1945년 8월까지로 한정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 개시 시점부터 시작된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둘러싼 갈등 초기 국면만 해도 동북아는 유럽에 비해 냉전의 주변부(periphery)였다. 그러나 1945년 8월 한반도 분할이 결정되어 미·소가 정면 대치하게 되어 냉전의 최전선(front)·중심(center)이 되었다.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둘러싼 갈등은 트루먼 미국 대통령의 원폭투하를 통한 소련견제[배제]로까지 이어졌으며 미국의 일본 독점을 위한 한반도 분할로 귀착되었다. 이 대목에서 38선 획정에 대한 일본요인설을 제기할 수 있는데 이는 일본의 미·소 이간책에 의한 38선 획정설까지 포함된다. 이러한 과정을 역사적 방법을 통해 원사료 등에 의거해 고찰하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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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 및 내용 | 방법론에 대해 언급하면 역사적 접근법(historical approach)을 채용하여 이 시기의 국제관계사를 재조명할 것이므로 사료의 분석을 통한 실증 이외에 다른 방법론의 적용은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국제관계사적 방법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을 원용할 뿐이다. 연구 내용을 서술하면, 한반도 냉전 기원 연구를 통해 동북아 냉전이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이 소련에게 제2전선 개설을 간청하고 소련이 미국의 요구에 대해 호응을 지연시키면서 배태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주로 1943년부터 논의된 한반도 신탁통치안이 소련의 한반도 독점을 방지하기 위한 미국의 구상이었다는 사실을 통해 한반도 냉전도 1943년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점에 그 기원이 형성되었음을 확인했다. 이에 더하여 1920년대 한반도에 유입된 사회주의 사조가 전후 냉전의 국내적 기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만약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지 않았다면 한반도 분단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사실적 가정에 의거해 일본이 한반도 분단에 근원적 책임이 있음을 지적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1945년 7월 16일 실험이 완료된 원자무기를 8월 6일 일본에 투하해 태평양전쟁을 소련 참전 이전에 조기에 종전시키고 동북아지역을 독점하려는 모험을 기도했다. 이러한 원폭 독점을 통한 소련 견제책은 동북아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독점 기도는 미국의 원폭 투하 직후 소련이 대일전에 참전하면서 실패했다. 그 와중인 1945년 7월 9월부터 15일 사이에 미국은 일본 4분할안과 한반도 4분할안을 대안으로 검토하다가 소련의 황급한 참전으로 인한 소련의 광범위한 남진을 막기 위해 일반명령1호를 기초했다. 결국 일본을 독점하기 위해 한반도와 일본의 4분할안을 포기하고 한반도의 반을 소련에게 넘기는 입막음을 단행해 38선 분할이 결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일본 단독점령을 더 선호했던 일본도 이를 의도했건 아니건 미·소 이간책을 통해 유도한 측면이 있다. 38선 분할은 소련의 남진을 정지시키는 최초의 봉쇄조치로 한반도 냉전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분할선 획정은 냉전의 기원사에서 냉전사로 전환되는 역사적 계기였으며 세계 냉전사에서도 획기적 사건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미·소 분할점령으로 인해 동북아에서 냉전의 최전방(the first front)이 되었던 한반도는 1945년 8월에 이미 냉전이 시작될 조짐이 보였으며 결과론적으로 보면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최전선은 냉전이 시작될 때 가장 먼저 냉각되며 냉전이 끝날 때에도 가장 늦게 따듯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는 폴란드 다음으로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냉전이라는 세계적 상황에 휘말렸다. ‘냉전 기원사’는 막을 내리고 전후 ‘냉전사’가 시작되었다. 일본의 항복 직후 미‧소 간의 평화는 위기에 봉착했고 동북아시아에서 냉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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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목차 Ⅰ. 서 론 Ⅱ. 유럽중심주의적 ‘냉전기원론’ Ⅲ. 동북아시아 냉전의 원초적 전개과정: 미국의 소련에 대한 태평양전쟁 제2전선 개설요구와 소련의 참전 대가 요구를 통한 지연작전, 1941년 12월~1945년 2월 Ⅳ. 한반도 냉전의 원초적 기원, 1917년~1945년 2월 V. 한반도 냉전 구도 형성 직전의 상황: 트루먼의 원폭투하를 통한 소련견제, 1945년 4월~1945년 8월 초순 VI. 일본분할을 회피하기 위해 미국에 의해 분할될 한반도: 강대국 권력투쟁의 희생양 VII. 냉전 시작 직전 상호견제책의 엇갈린 교차: 미국의 급격한 원폭 투하와 소련의 황급한 참전, 1945년 8월 6일~9일 VIII. 미국의 한반도 분할점령 확정에 따른 한반도 냉전의 시작, 1945년 8월 IX. 결 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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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 1945년 8월 38선 확정으로 인해 미·소 간 직접 대결이 지구상 처음으로 시작되었으므로 한반도는 냉전 기원 연구의 중심 지역이 되기에 충분하다. 유럽 냉전은 1945년 5월 히틀러의 몰락으로, 아시아 냉전은 그것보다 조금 늦은 일본의 몰락(태평양전쟁 종전)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냉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에 더하여 38선 획정의 여러 가설 중 ‘일본요인설’을 추가해 한반도 분단에 미친 일본 변수를 추적했다. 동북아시아 냉전은 1941년부터 그리고 한반도 냉전은 1943년부터 탐구해야 그 기원을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다. 소련의 대일전 참전이 검토된 직후인 1941년 12월부터 미·소 간의 견제심리에 바탕을 둔 신경전이 시작되어 동북아시아 냉전이 원초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이 지역 하위체제였던 한반도는 탁치안이 논의된 1943년부터 냉전이 태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對蘇 자신감의 표현이었던 루스벨트의 신탁통치 구상으로부터 對蘇 불신감의 표현이었던 트루먼의 독점전략과 분할점령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약소국 한반도가 소련의 독점적 영향권 아래 놓일 것을 계속 경계해왔다. 한반도에 대한 다국적 탁치안은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고 자국의 세력권을 넓힌다는 미국의 전략적 정책 의도에서 1943년경부터 본격적으로 구상되었다. 필리핀의 예에서 간접적으로 검증되는 바와 같이 미국의 탁치안은 인본주의적 외피를 가진 세력확보 복안이었다. 반면 소련은 자국에 우호적인 조선인을 육성하여 독립이 이루어질 때 활용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었다. 미·소의 상이한 정책 방향 때문에 갈등의 씨앗은 배태되었으며, 따라서 한반도 문제가 연합국 간에 논의될 때부터 이미 냉전이 잠재화되었던 것이다. 별다른 대책 없이 소련에게 넘겨버린 것처럼 인식되어질 수 있었던 한반도였으나 소련의 지배를 방지한다는 미국의 정책목표는 시초부터 확고히 수립되어 있었다. 1차적으로는 힘의 공백지대로 만들어 소련의 戰域구역으로부터 제외시키려 했으며, 이러한 방안이 추진된다 해도 소련과 인접한 한반도는 결국 소련의 점령지역이 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2차적으로 종전 직후의 군사작전(점령과 군정)에 미군이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검토되었다. 그런데 미국의 점령안은 소련의 한반도에 대한 단일적 지배를 견제하려는 의도에서 구상된 것이었으므로 모두 중앙집권적이며 단일단위의 다국적 점령과 군정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안이 미·소 간에 논의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미국이 ‘對韓政策面에서 준비가 없었다’고 주장할 정도로 한반도에 대한 세력확보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시진공계획’이 아닌 ‘전후점령계획’은 1943년경부터 일부인사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검토되었다. 그 당시에는 확고한 정책적 지향이 없었으므로 하나의 대안에 불과했지만 1945년 8월 9일 소련의 참전 이후 확고한 정책으로 고착화 되었다. 또한 한반도에 대한 여러 다양한 구상들이 1944년 이래로 꾸준히 검토되었으므로 미국 당국자의 책임회피적인 ‘준비부족론’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한국문제 전문가가 거의 없었으므로 전술적 차원에서의 구체적인 준비는 없었으나 전략적 세력확보 구상은 여러 각도에서 논의되고 있었던 것이다. 포츠담회담 개최 하루 전인 1945년 7월 16일 트루먼은 원자폭탄실험 성공에 대한 보고를 받은 후 힘의 對蘇우위를 확인하면서 從前 정책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소련이 대일전에 참전하기 전에 전쟁을 조기종결 시키려 했던 것이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소련참전을 원한다고 말하여 스탈린의 참전확답을 들었으나, 이는 소‧일 간의 밀약을 방지하기 위한 미국의 계략이 숨어있는 것이었으며 실질적으로는 원폭투하를 통한 조기 終戰에 따른 소련참전 배제를 비밀리에 추진하여 동북아시아를 적극적으로 독점하려 했다. 1945년 7월 24일부터 8월 9일까지 만주, 한반도 등 동북아시아에 관한 논의를 고의적으로 지연시키면서 내부적으로 독점을 준비했으며, 만약 독점이 실패할 경우 만주는 소련에게 넘기지만 한반도의 반은 점령한다는 것을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폭투하 직후 소련참전이 이루어져 미국의 ‘소련배제에 의한 동북아 독점구상’은 실패로 끝났으며 한반도의 반을 점유했으므로 반쪽의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은 독점 공작이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가지지는 못했었다. 따라서 이는 모험이었다. 미국은 소련의 세력권을 최소화하기 위해 38선 분할을 확정하고 일본에 대한 소련의 점령을 저지하는 등 대소견제 전략을 표면화했다. 미·소 협조의 전전(戰前) 시대는 끝나고 미·소 대결의 분위기가 이미 종전된 유럽은 물론 전후 동북아에서도 대두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급박하게 결정된 것처럼 보이는 분할선은 정치적 고려에 따라 그어졌으며 38선이라는 분할선 자체만이 편의에 의하여 졸속적으로 결정되었을 뿐이다.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입각하여 검토되었던 미국의 점령계획이 분할점령으로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군사적 편의설은 미국의 책임 은폐적인 사후변명일 뿐이라는 것은 본 연구에서 지적되었다. 미국은 한반도의 반을 확보한다는 막연한 정치적 목적에서 38선을 획정했던 것이다. 획정의 제일차적 목적은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는 것이었으므로 소련의 참전이 없었다면 분할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분할선 획정은 소련의 대일전 참전의 직접적 결과는 아니었으나 부산물이었으며 소련의 참전을 원했었던 미국이 자초한 결과였다. 미국의 38선 획정결정은 소련이 참전한 상황에서 그 팽창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책임전가하지만 근원적인 책임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미‧소 대립을 자초한 미국에게 있다. 한민족과는 아무 상관없었던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바로 38선으로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미·소 대립이 38선으로 귀결되었으므로 냉전 기원사 연구에서 미국의 한반도 분할선 획정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한반도 지역을 냉전의 포로가 되게 하여 단번에 냉전 중심지로 위치지웠으며 한반도 분단의 단초를 열었다. 이제 이 책을 매듭지으면서 한국 근현대사에 미친 일본요인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냉전의 중심에 한반도가 위치하게 되어 한반도가 냉전의 포로가 된 이유의 이면에는 일본을 독점하려는 미국의 계산이 자리한다. 상식적으로 보면 동북아 지역에서 적국 일본은 유럽의 적국 독일의 경우와 같이 연합국이 분할점령해 약화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일본 대신 적국의 식민지인 한반도를 분할시켰다. 따라서 한반도는 일본 대신 분할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한반도는 훗날 냉전 양진영의 리더가 되는 미·소 양국에 의해 분할되었으므로 냉전의 시작 국면에서부터 미·소 직접 대립의 최전선이자 가장 첨예한 대결의 현장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냉전사 연구나 그 기원 연구에서 38선 획정은 매우 중요한 주제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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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연구결과 요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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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냉전 기원 연구를 통해 동북아 냉전이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이 소련에게 제2전선 개설을 간청하고 소련이 미국의 요구에 대해 호응을 지연시키면서 배태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주로 1943년부터 논의된 한반도 신탁통치안이 소련의 한반도 독점을 방지하기 위한 미국의 구상이었다는 사실을 통해 한반도 냉전도 1943년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점에 그 기원이 형성되었음을 확인했다. 이에 더하여 1920년대 한반도에 유입된 사회주의 사조가 전후 냉전의 국내적 기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만약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지 않았다면 한반도 분단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사실적 가정에 의거해 일본이 한반도 분단에 근원적 책임이 있음을 지적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1945년 7월 16일 실험이 완료된 원자무기를 8월 6일 일본에 투하해 태평양전쟁을 소련 참전 이전에 조기에 종전시키고 동북아지역을 독점하려는 모험을 기도했다. 이러한 원폭 독점을 통한 소련 견제책은 동북아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독점 기도는 미국의 원폭 투하 직후 소련이 대일전에 참전하면서 실패했다. 그 와중인 1945년 7월 9월부터 15일 사이에 미국은 일본 4분할안과 한반도 4분할안을 대안으로 검토하다가 소련의 황급한 참전으로 인한 소련의 광범위한 남진을 막기 위해 일반명령1호를 기초했다. 결국 일본을 독점하기 위해 한반도와 일본의 4분할안을 포기하고 한반도의 반을 소련에게 넘기는 입막음을 단행해 38선 분할이 결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일본 단독점령을 더 선호했던 일본도 이를 의도했건 아니건 미·소 이간책을 통해 유도한 측면이 있다. 38선 분할은 소련의 남진을 정지시키는 최초의 봉쇄조치로 한반도 냉전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분할선 획정은 냉전의 기원사에서 냉전사로 전환되는 역사적 계기였으며 세계 냉전사에서도 획기적 사건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 |
세부과제별 요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