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과제구분,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연구책임자, 공동연구자, 연구기간, 연구형태, 연구목적 및 배경, 연구방법 및 내용,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연구결과, 참고문헌, 로 구성
과제구분 한국학중점연구 / 특정주제과제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 국문 : (AKSR2021-J03) 한국 고문서 정서, 역주 그리고 종합연구:고문서집성8-廣州安氏·慶州金氏篇, 고문서집성9-昌原黃氏篇, 고문서집성15-河回豐山柳氏篇(I)
  • 영문 : Translating and Examining Korean Historical Manuscripts
연구책임자 정수환
공동연구자 조현범, 김학수, 이대화, 유현재, 장유승, 김지영, 장경호, 김해인, 이병훈, 김영나, 이우진, 안병걸, 채광수, 정재영, 이현주, 정은주, 김덕수, 백영빈, 노인환, 이남옥, 김동건, 이혜정, 이은진, 함영대, 김문식, 김호, 어강석, 이광우
연구기간 20210324 ~ 20231216 연구형태 공동연구
연구목적 및 배경 이 연구는 고문서 자료에 대한 활용 요청이 증대함에 따라 자료 이용층을 확산하고 동시에 전문 연구를 지원할 필요성에 따라 기획되었다. 일찍이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전국에 산재한 고문서와 고서를 대규모로 수집하여 대표적 연구업적으로 한국 학계와 문화의 진흥에 기여했다. 이를 바탕으로 후속 연구를 기획하여 고문서를 수집한 성과를 심화하는데 목표가 있다. 그리고 <<고문서집성>>�이라는 특화한 연구성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선도한 연구 경향을 추수하고 있는 후속 연구 기관을 다시 선도하기 위한 연구 전환을 시도하는데에도 연구의 목적이 있다.
전국에 산재한 ‘기록문화유산’인 고문서를 수집한 성과를 심화하는데 일차 목표가 있다. <<고문서집성>>으로 자료 영인으로 규모의 성과를 달성한 현재 유사 연구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도전적인 연구 전환을 달성한다. <<고문서집성>>을 대상으로 정서와 번역을 실시하고 이들 결과를 활용하여 학문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학술 논문을 완성하여 성과의 심화 달성이 두 번째 목표이다. 이 연구는 현대역을 통해 고문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연구 성과는 최근의 연구 경향인 생활사에 적용함으로써 고문서 연구 방법론을 제시한다. 중·장기 적으로는 국내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해외한국학 연구자의 자료 이용 기회를 제공하고 공동연구를 위한 디딤돌을 마련한다.
연구방법 및 내용 대표적 성과인 고문서 분야와 관련한 도전적인 전환을 위한 방향은 크게 2가지이다. 먼저, <<고문서집성>>을 대상으로 정서와 번역을 실시했다. 그리고 정서와 역주 결과를 활용하여 학문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학술 논문을 완성하여 성과의 심화 달성했다. 첫 번째 요소와 관련해서, 현대역을 실현하여 대중과 전문 연구자들의 고문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 두 번째 요소에 대해서는 최근의 연구 경향인 생활사에 적용함으로써 고문서 연구 방법론을 고민하고 다시 제시한다. 특히, 이 연구를 통해 중·장기 적으로는 국내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해외한국학 연구자의 자료 이용 기회를 제공하고 공동연구를 위한 디딤돌을 마련한다.
연구 목적에 따라 연구내용 또한 2개 영역으로 설계했다. 1차 연구는 ‘정서 및 역주연구’분야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 학술 연구는 ‘심층 종합연구’로 2차 연구에 해당한다. ‘정서 및 역주연구’는 <<고문서집성>>을 대상으로 초서자료를 대상으로 정서(탈초)를 실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번역과 주석했다. ‘심층 종합연구’는 정서 및 역주 성과를 활용하여 학문 여러 분야 전문 연구자들이 학술논문을 완성했다.
연구 대상은 <<고문서집성>> 3책을 매년 1책씩 수행했다. 정서와 역주 연구이다. 1차년도는 <<고문서집성>>8집 광주안씨와 경주김씨 고문서이며, 다음해에는 <<고문서집성>>9집 창원황씨 고문서를 대상으로 하며, 마지막해에는 <<고문서집성>>15 하회 풍산류씨 고문서이다. 이들 자료는 가전 고문서로 분석의 가능성과 내용의 연결성을 갖추고 있어 정서·역주의 성과는 입체적인 종합연구로 이어질 수 있다. 심층 종합연구 이다. 1차 년도는 <<고문서집성>>8집의 광주안씨가 대상이며, 2차년도는 <<고문서집성>> 8집의 경주김씨이다. 그리고 3차년도는 <<고문서집성>> 9집의 창원황씨를 연구대상으로 한다. 이와 같이 정서 및 역주 성과를 바탕으로 다음연도에 심층 종합연구를 실시하여 여러 학문분야 연구 참여 기회를 마련했다.
계량적 연구내용은 매년 1책 분량의 정서·역주 원고를 온라인 ‘한국고문서자료관’ 공개를 위한 대본을 마련하고, 또한 학술 1책 간행을 위한 원고 대본을 확보하는 내용이다. ‘정서 및 역주연구’는 매년 정서 2,000매 내외와 역주 3,000매를 실시하여 3개년 총합 정서 원고 6,784매, 역주원고 9,000매를 목표로 했다. ‘심층 종합연구’는 매년 10편 내외의 학술논문을 연구 대상자료 별로 수행하고 3개년 총 30편 내외의 원고를 확보한다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연구 계획에 따라 '정서 역주 연구'와 '심층 종합연구'로 구분하여 연구 결과물을 구성한다.
가. 정서 및 역주
-2021년 1차년도: <<고문서집성>>8-창원황씨, 경주김씨편=정서 2,654매, 역주 3,368매/ 계획대비 112%이상 초과 완성
-2022년 2차년도: <<고문서집성>>9-창원황씨편=정서 2,782매, 역주 3,393매/ 계획대비 120%이상 초과 완성
-2023년 3차년도: <<고문서집성>>15-20-하회 풍산류씨편=정서 2,403매, 역주 4,034매/ 계획대비 115% 초과 완셩
=3개년도 정서 역주 연구 성과물은 정서 총 7,839매, 역주 총 10,795매를 완성하여 당초 계획대비 약 1205%를 초과 완성하였음.
나. 심층 종합연구
-2021년 1차년도: 10개 주제 연구 논문 계획 대비 연구논문 10편 완성으로 계획 완료
-2022년 2차년도: 10개 주제 연구 논문 계획 대비 연구논문 17편 완성으로 초과 달성
-2023년 3차년도: 10개 주제 연구 논문 계획 대비 연구논문 13편 완성으로 촤과 달성
=3개년도 정서 역주 연구 성과는 과는 당초 30개 연구논문 대비 40편을 완성하여 133%를 초과 완성하였음.
연구결과 연구결과물은 연구계획 및 세부 목차에 따라 정서 역주 연구와 심층 종합연구로 구분한다.

가. 정서 역주 연구: 당초 계획대비 초과 달성을 완료하고 "한국고문서자료관(https://archive.aks.ac.kr/) 온라인 공개를 완료하였음.
1) 1차년도 연구(2021년)
󰋯정서 자료 목표 초과 달성: 목표대비 112.5%
­신규 정서·탈초 원고 계획 초과 달성: <<고문서집성>>8-광주안씨·경주김씨편에 대한 신규자료 정서·탈초 목표는 970매였는데 1,264매를 수행하여 목표량 대비 130%를 초과 달성하였음.
­기존자료에 대한 교열과 검수 수행: <<고문서집성>> 자료에 1,390매에 대한 교열 검토를 통해 연구 대상 자료 보완하였다.
­신규 및 기존자료 종합: 신규 정서·탈초 원고 1,264매+원고’에 대한 교열 원고 1,390매를 포함하여 총 2,654매의 정서·역주 원고를 확보하여 계획대비 112.5% 초과 달성 완료.
󰋯역주 원고 초과 달성: 목표대비 112%
­<<고문서집성>>8-광주안씨·경주김씨편 전체와 <<고문서집성>>9-창원황씨 편 일부 고문서에 대한 역주원고 3,368매 완수로 계획 3,000매 대비 112% 초과달성 완료.
2) 2차년도 연구(2022년)
󰋯정서·탈초 연구: 전체 계획대비 정서 137%
­정서 자료 목표대비 137%를 초과달성하고, 신규 정서·탈초 원고에 대해서도 <<고문서집성>>9-창원황씨편 신규자료 정서·탈초 목표는 970매였는데 1,333매를 수행하여 목표량 대비 137%를 초과 달성하였음.
­기존자료에 대한 교열과 검수 수행: <<고문서집성>> 자료에 대한 원고량’에 해당하는 서 자료 1,058매에 대한 교열 검토를 통해 연구 대상 자료 보완하였다.
­신규 및 기존자료 종합: 신규 정서·탈초 원고 1,333매+수행 원고 1,058매에 대한 교열 원고=총 수행 2,782매로 계획대비 137% 초과 달성 완료.
󰋯역주 원고 초과 달성: 목표대비 113%
­<<고문서집성>>8-광주안씨·경주김씨편 일부와 <<고문서집성>>9-창원황씨 편 전체 고문서에 대한 역주 원고 3,393매 완수로 계획 3,000매 대비 113% 초과달성 완료.
3) 3차년도 연구(2023년)
󰋯도전적 정서 및 역주 대상 자료 확장
­당초 <<고문서집성>>15집 1책에 대한 정서를 기획하였으나, 이미 정서된 자료를 포함하여 확장하였음. 이 과정에서 자료 입력을 통한 향후 디지털 자료 활용 및 AI를 적용한 Deep-Leraning을 고려하여 정서 난이도가 높지 않은 자료까지 포괄하여 정서를 수행함. 이에 따라 <<고문서집성>>15∼19집까지 포함하여 모두 5책에 대해 수행하였음.
󰋯정서·탈초 연구: 전체 계획대비 정서 100.3% 달성 완료
­<<고문서집성>>� 하회 풍산류씨편 5책에 대해 정서 원고 1,426매와 신규원고 970매를 포함한 2,396매 정서·탈초 계획 대비 총 정서·탈초 원고 2,403매 달성하였음.
󰋯역주 원고 초과 달성: 목표대비 134.5%
­<<고문서집성>> 하회 풍산류씨편 5책에 대해 계획 3,000매 대비 4,034매 역주 완료로 134.5% 초과 달성을 완료하였음.

나. 심층 종합연구는 각 연도별 연구 논문을 완성하였음. 연차별 주요 연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1차년도 연구(2021년)
󰋯심층 종합연구: 10편 내외 연구 논문 계획 대비 10편 원고 완수
­연구 주제의 심화: ‘텃골 광주안씨의 사회활동과 고문서’(가제) 발굴
­‘연구계획’ 대비 공동연구 결과를 반영한 ‘연구성과’ 현황: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2개의 기획주제를 개발하고 총 10개의 연구 주제를 수정 및 보완하였음.
󰋯연구주제 구성과 성과 결과: 2개 대주제에 따른 10개 논문
­제1기획 “텃골 廣州安氏의 학문과 사회활동” 5개 논문: ‘광주안씨 순암종가의 가학 전승과 실학’, ‘안정복과 영남지식인과의 교유’, ‘안정복와 정조의 만남’, ‘광주안씨 고문서의 경학자료 연구’, ‘안정복 자료에 나타난 초기 천주교 신자들의 동향’
­제2기획 “텃골마을과 사람들의 일상과 고문서” 5개 논문: ‘광주시 중대동 텃골 광주안씨 종중의 어제와 오늘’, ‘조선후기 광주 광주안씨의 종계운영과 결속양상’, ‘편지를 통한 18세기 가족 공동체의 소통양상’, ‘18세기 후반 순암 안정복 가의 질병과 처방들’, ‘목천현감 안정복의 수령 통치와 그 성격’
2) 2차년도 연구(2022년)
󰋯심층 종합연구: 10편 내외 연구 논문 계획 대비 17편 원고 완수
­전체 심화연구 주제 발굴: 17개 주제를 3개 기획으로 구분하여 구성하고 전체 주제를 발굴함. 연구 주제를 고도화한 성과를 바탕으로 전체 주제 ‘보령·서산 경주김씨의 지역활동과 대외인식’을 개발함.
­‘연구계획’ 대비 공동연구 결과를 반영한 ‘연구성과’ 현황: 연구 진행 과정에서 공동연구진의 심화 연구에 따른 연구 주제 심화 의견을 반영하여 각 연구 제목을 조정하였음. 연구논문은 3개의 기획주제와 개별 17개의 연구 주제를 수정 및 보완하였음.
󰋯연구주제 구성과 성과 결과: 3개 대주제에 따른 12개 논문
­제1기획 “조선후기 보령 일대 사회 동향과 경주김씨” 5개 논문: ‘金龜柱의 정치적 역할과 유배생활의 실상’, ‘조선후기 서산지역 경주김씨의 성장과 위상’, ‘경주김씨의 충청도 이거와 경제적 배경’, ‘경주김씨 학주공파 소장 고문서자료로 본 입후(立後) 사례’, ‘19세기 말 ~ 20세기 초 보령 지역의 천주교 동향’
­제2기획 “왕실과 가족의 일상과 교육” 5개 논문: ‘영조대 옹주궁가 성립과 계승’, ‘순명효황후 언간의 텍스트 비정’, ‘19세기 경주김씨가의 유배 가족 지원 양상’, ‘경주 김씨의 교육사상’, ‘보령 경주김씨 학주공파 김면주 가문 소장 장서 분석’
­제3기획 “조선말 정국과 대외인식” 7개 논문: ‘1798년 무오 연행과 조선의 義理’, ‘金勉柱의 燕行詩軸 연구’, ‘鶴洲公派 秋史 金正喜의 연행과 서화교류’, ‘지역사회의 두 시선, 사족과 지방관료’, ‘보령 경주김씨 나와 김면주의 생애와 관직 활동’, ‘1891년 天津駐在從事官 金商悳의 파견과 관련 기록’, ‘김상덕의 현실인식과 사회활동(1852~1924)’
3) 3차년도 연구(2023년)
󰋯심층 종합연구: 10편 내외 연구논문 계획 대비 13편(총론 1편 포함) 원고 완수
­전체 심화연구 주제 발굴: 13개 주제를 개발하고 이를 기획하여 총론과 함께 2개의 기획주제로 구성하였음. 연구 심화와 성과에 따라 전체 주제 ‘고문서를 통해 본 조선시대 창원황씨 일족의 사회활동’을 기획함.
­‘연구계획’ 대비 공동연구 결과를 반영한 ‘연구성과’ 현황: 연구 심화에 따라 12편의 학술논문을 완성하고, 이들 논문의 논지 전개 내용과 연구대상 고문서의 활용성에 대한 총론 ‘고문서를 통해 본 조선시대 창원황씨 일족의 사회활동’ 1편을 확보하여 총 13편의 논문완성.
󰋯연구주제 구성과 성과 결과: 2개 대주제에 따른 12개 논문
­제1기획 “마을과 가계 그리고 인물” 6개 논문: ‘창원황씨 황신가(黃愼家)의 공간적 기반과 그 운용-공간의 이원적 경영과 주자학적 상징화-’, ‘창원황씨 황신 가계의 내력과 현실 인식’, ‘아술당(蛾述堂) 황진(黃璡)의 생애와 추숭 과정’, ‘지소 황일호의 행적과 그의 충렬에 대한 문학적 추숭’, ‘창원황씨 일문의 지역사회적 배경’, ‘종족조직의 구성과 운영방식의 변화: 창원황씨 귀암공파 화수회와 황씨동원각의 사례’
­제2기획 “고문서와 고서 그리고 사회문화 활동” 6개 논문: ‘1596년 조선의 跟隨陪臣 파견 배경과 黃愼의 활동’, ‘黃夏臣‧黃尙老 부자 관계의 재구성과 그 의미’, ‘정조 대 󰡔춘추좌씨전󰡕 간행에 대하여’, ‘18~19세기 昌原黃氏 가문 노비의 존재양상’, ‘조선 왕실 동뢰(同牢) 음식상의 구성과 배치의 특징’, ‘대원군 하야 후 서원 復設의 동향과 儒疏 활동-「請祠院復設疏疏廳錄」을 중심으로’
참고문헌 연구를 통해 확보한 연구 성과를 학계에 공개하여 검증한 성과는 다음과 같다.
정수환, 「18세기 廣州 廣州安氏 宗契 조직과 운영의 재구성」, 『장서각』48, 2022.10.
이광우, 「목천현감(木川縣監) 안정복(安鼎福)의 수령 통치와 그 성격」, 『역사와 실학』77. 2022.11.
조현범, 「순암 안정복의 기록에 나타난 조선 천주교의 초기 상황」, 『장서각』48, 2022.10.
김학수, 「安鼎福과 嶺南學人의 교유」, 『장서각』48, 2022.10.
함영대, 「광주안씨 고문서의 경학자료 연구」, 『장서각』48, 2022.10.
김동건, 「金勉柱의 『燕行詩軸』 연구」, 『청계사학』25, 2023.02.
정수환, 「지역사회의 두 시선, 사족과 지방관료」, 『청계사학』25, 2023.02.
이대화, 「19세기 충청도 양반 가문의 입후(入後) 사례연구」, 『한국학연구』68, 2023. 02.
장경호, 「김상덕의 현실인식과 사회활동 (1852~1924)」, 『청계사학』25, 2023.02.
어강석, 「순명효황후 언간의 작가문제와 작성시기 고찰」, 『청계사학』25, 2023.02.

연구요약문

연구요약문: 전체 연구결과 요약, 세부과제별 요약로 구성
전체 연구결과 요약
연구는 ‘정서 및 역주연구’와 ‘심층 종합연구’의 2원화로 구성하고 있다. ‘정서 및 역주연구’는 󰡔고문서집성󰡕을 대상으로 초서자료를 대상으로 정서(탈초)를 실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번역과 주석한다. ‘심층 종합연구’는 정서 및 역주 성과를 활용하여 학문 여러 분야 전문 연구자들이 학술 논문을 완성한다.
연구 대상자료는 3책으로, <<고문서집성>>8집 광주안씨와 경주김씨 고문서, <<고문서집성>>9집 창원황씨 고문서 그리고 <<고문서집성>>15 하회 풍산류씨 고문서이다. 이들 자료는 가전 고문서로 순차적 연구 대상에 해당한다. 각각 1년씩 이들 3책을 분석하고 연구한다.
연구 내용 중 ‘정서 및 역주연구’는 매년 정서 2,000매 내외와 역주 3,000매를 실시하여 3개년 총합 정서 원고 6,784매, 역주원고 9,000매를 목표로 한다. ‘심층 종합연구’는 매년 10편 내외의 학술논문을 연구 대상자료 별로 수행하고 3개년 총 30편 내외의 원고를 확보한다.
연구 결과물은 매년 1책 분량의 정서·역주 원고를 온라인 ‘한국고문서자료관’ 공개를 위한 대본을 마련하고, 또한 학술 1책 간행을 위한 원고 대본을 확보하는 내용이다.
연구계획대비 연구성과는 모두 초과달성을 완료했다. ‘정서 및 역주 연구’의 경우 3개년 총 정서 6,784매 대비 총 7,839매를 완성하여 115% 이상 초과 달성했으며, 역주는 3개년 9,000매 계획 대비 총 10,795매를 완료하여 119% 이상 초과 달성했다. 그리고 ‘심층 종합연구’ 분야도 3개년 총 30편 내외의 연구 논문 계획 대비 총 40편의 성과를 도출하여 계획 대비 133.3% 초과 달성을 완료했다. 연구성과는 연구계획에 매년 ‘한국고문서자료관’ 자료 공개를 위한 1책 분량의 대본과 1책의 학술서 원고 대본을 완전히 충족한다.
연구는 매년 <<고문서집성>> 1책씩, 3책을 연구대본으로 하는 계획을 초과하여 총 17책을 대상으로 수행했다. 이런 도전적인 추진으로 차년도 연구에 있어 ‘심층 종합연구’의 설계 및 추진의 동력을 미리 확보하였다. 또한 ‘심층 종합연구’의 성과 고도화를 위해 매년 이 분야 연구계획을 변경하여 전문 연구진으로 변경하고 내용 전문화를 달성했다. 계량적 연구성과의 초과 달성과 도전적인 연구 수행과 차년도 연구를 대비한 연구성과는 <<고문서집성>>을 이용한 연구 성과의 확산과 해외 한국학 영역으로의 발전에 이바지할 것이다.
세부과제별 요약
역주 및 정서 연구는 온라인 공개로 내용을 갈무리하며, 심층 종합 연구의 단계별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1차년도 심층 종합연구 결과 요약
ㅁ 전체연구주제: 텃골 광주안씨의 사회활동과 고문서
ㅁ 제1 기획 주제: 텃골 廣州安氏의 학문과 사회활동
-<연구주제 1> 광주안씨 순암종가의 가학 전승과 실학 : 고문서현대화연구의 기획 주제인 “廣州 廣州安氏 일족의 학문과 교유”의 한 꼭지로서 연구를 진행하였다. 순암 안정복 가문의 내력과 더불어 혼반을 중심으로 한 인적 구성을 살피고, 가학이라는 측면에서 순암의 학문과 활동, 그리고 자손들의 전승을 살폈다. <<책력일기>>와 <<고문서집성>>의 수록 간찰에는 다양한 인물들과의 교유양상이 확인된다. 순암의 매부 오석신과 사돈 남필복, 오석리, 권익언, 한광보와 그 아들인 남영, 권명, 한치건 등 순암 가문의 사위, 손서들도 문하에 자주 다녔다. 이처럼 경향 각지 광안 일족들의 출입이 빈번하였다. 특히 경상도 밀양과 영천에 세거하는 영남 종인들은 과거시험 응시 등 서울을 출입할 때에는 반드시 텃골에 들렀다.
-<연구주제 2> 안정복(安鼎福)과 영남지식인과의 교류 : 이 원고는 18세기 근기지역 성호학파의 심장부에 존재했던 안정복의 대 영남 교유관계를 분석하고, 그 의의를 진단한 것이다. 안정복의 영남학인과의 교유는 인조반정 이후 지속되었던 ‘경남’과 ‘영남’의 학문적 제휴의 틀을 수용하면서도 그 외연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고, 나아가 이것은 19세기 성호학의 적통이었던 허전이 영남지역에서 다수의 문인을 규합하며 성호학의 영남적 확산을 극대화 하는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성호학파 이해에 큰 시시점을 제공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연구주제 3> 안정복과 정조의 만남 : 본 논문은 안정복과 정조의 세 차례 만남을 개관하고 그 의의를 정리하였다. 첫 번째 만남은 동궁과 세자익위사 관리로서의 만남이었다. 두 번째 만남은 정조가 <<동사강목>>을 열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 번째 만남은 효장세자 책봉례 때였다. 안정복이 정조와 만날 때에는 체제공과 정지검의 결정적인 도움이 있었다. 이들은 정조의 측근 관리로 있으면서 국왕에게 안정복의 존재를 알리고 서로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하였다. 안정복은 정조가 학문과 정치력을 겸비한 국왕으로 성장하여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게 보좌하였다.
-<연구주제 4> 광주안씨 고문서의 경학자료 연구 : 이 논고는『고문서연구』 8집에 수록된 경학자료를 중심으로 그 삶의 저변과 그의 저술과 관련한 서목(書目)을 검토해 보았다. 이를 통해 기존 『순암집』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연구를 보완할 수 있는 학적 모색의 가능성 여부를 함께 고찰하였다. 그 내용의 충실성이나 풍부함에 있어 고문서 자료의 활용여부는 전략적으로 충분히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순암집』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수록할 수 없는 내용들을 생생하게 그 날것의 형태로 제시해 줌으로써 그 원형의 내용을 좀 더 본격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그 목록만을 우선 제시한 서목의 경우 순암의 저작과정의 자산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적 자원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주제 5> 안정복 자료에 나타난 초기 천주교 신자들의 동향 : 본고는 광주안씨 고문서, 안정복의 책력 일기, 그리고 안정복이 남긴 편지 등을 자료로 하여, 세 가지 논제를 살펴보았다. 먼저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후에 이벽이 주도하여 초기 공동체를 결성하는 과정을 안정복의 편지와 일기를 통하여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1785년 형조 관헌이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천주교 집회를 적발한 사건이 1785년 3월 9일(양력 4월 17일)에 있었음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안정복의 손자 안철중이 조부의 책력 일기에 적어 넣은 기록을 통하여 권일신이 1791년 11월 24일(양력 12월 19일)에 세상을 떠났음을 확인하였다.
ㅁ 제2 기획 주제: 廣州 텃골마을 사람들의 일상
-<연구주제 1> 광주시 중대동 텃골 광주안씨 종중의 어제와 오늘 : 20세기 초에 작성된 순암 종택 소장 고문서를 토대로, 『토지조사부』와 『임야조사부』를 추가 분석하여 광주안씨 광양군파 종중의 위상을 고찰했다. 이들은 인근에 세거하는 사족보다 사회적 위세가 높았음이 확실시된다. 선행연구에서 「종중문부」가 1855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했는데, 1915년으로 수정되어야 함을 밝혔다. 아울러 광양군파 종중은 순암 이전부터 많은 종중재산을 확보했지만, 전국적인 족적 결속을 강화하고자 입향조를 위한 종계를 종중과 별도로 조직하였음을 새로운 성과로 제시하였다.
-<연구주제 2> 조선후기 廣州 廣州安氏의 종계 운영과 결속양상 : 이 연구는 고문서를 활용하여 18세기 종계 운영의 실상을 정밀하게 재구성했다. 대상은 廣州 廣州安氏의 종계로서 자료는 󰡔宗契日記󰡕이다. 광주안씨는 18세기 종중 활동이 점증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종통의 위기에 대응이 필요했던 외부와 내부 양측 요인의 작용으로 텃골을 중심으로 종계를 조직했다. 종계의 실제는 <<종계일기>>의 기록과 고문서, 문집 그리고 일기를 활용한 종계 조직의 배경과 종계의 현장 등으로 재현했다.
-<연구주제 3> 편지를 통한 18세기 가족공동체의 소통양상 : 순암 안정복가의 가족간 편지 중에는 한문편지 옆에 병기된 한글편지 6통이 있었다. 이들 한글편지들은 가족의 질병 및 출산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처럼 순암 안정복가처럼 발신자나 수신자가 복수인 편지 형식은 대부분 가족 간의 편지에서 나타나는데, 떨어져 있는 가족구성원들이 각각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는데 효율적인 수단이다. 그리고 이는 한문을 알지 못하는 여성 가족구성원이 가족들이 공유해야할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연구주제 4> 18세기 후반 순암 안정복 가의 질병과 처방들 : 이 연구는 「화제」와 「단방문」을 중심으로 순암가의 질병과 처방들을 살펴보았다. 순암의 혈증은 일종의 소모성 질환으로 보이는데 이로 인해 평생을 쇠약한 상태로 지냈을 가능성이 높다. 순암은 허약한 신체의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다양한 식치요법을 활용했다. 또한 순암가에서는 약차와 같은 음료를 자주 만들어 마셨다. 순암가의 보약은 도가의 선미를 느끼게 하는 처방을 포함하여 그 수가 가장 많다. 순암가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의원 초빙이나 약재 구입에 상당한 재원을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오기접명단이라는 처방은 그 내용을 비밀에 부치도록 했다.
- <연구주제 5> 목천현감 안정복의 수령 통치와 그 성격 : 안정복은 1776~1779년 목천현감으로 재임하면서, 평소 이리동약 실시와 『임관정요』 편찬을 통해 구상했던 이상적인 향촌사회를 실현하고자 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안정복 재임 중 발표하였던 효유문과 동약 시행 및 방역소(防役所) 설치 등 그가 실시한 향촌 정책의 특징과 실제, 그리고 한계를 살펴보았다.


2) 2차년도 심층 종합연구 결과 요약
ㅁ 전체연구주제: 보령·서산 경주김씨의 지역활동과 대외인식
ㅁ 제1 기획 주제: 조선후기 보령 일대 사회 동향과 경주김씨
-<연구주제 1> 김구주(金龜柱)의 정치적 역할과 유배생활의 실상-경주김씨 정순왕후가(貞純王后家)의 정치적 부침과 굴곡: 김구주는 영조계비 정순왕후의 오라비로서, 영조말-정조초의 정국에서 왕실의 외척인 동시에 노론 벽파의 핵심으로 활동한 인물이었다. 송시열의 학통을 계승한 김구주는 탕평을 반대하는 노론 벽파의 입장을 고수하였다. 결국 김구주는 정조가 즉위하자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특히, ‘금성일기’에 나타나는 그의 유배생활은 철저한 경계와 감시의 나날이었다. 이는 죄인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적 타살의 장면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연구주제 2> 조선후기 서산지역 경주김씨의 성장과 위상 : 경주김씨는 김연이 입향한 이래로 향교 이건과 임란 의병활동 등의 활동을 통해 재지적 기반을 확립해갔다. 특히 김홍욱 이래로 사환과 왕실과의 혼인을 통해 중앙과 향촌에서의 위상이 제고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김홍욱을 제향하는 서산 최초의 서원인 성암서원이 건립되었고, 나아가 그의 부친 김적에 대한 향현사 追享도 진행되었다.
-<연구주제 3> 경주김씨의 충청도 이거와 경제적 배경: 경주김씨 가문이 충청도 서산을 택한 까닭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접근해 보았다. 먼저 지적할 수 있는 충청도 지역의 지역적 특성에 따라 재해로부터 비교적 안정적이었다는 점이다. 또한 충청도의 지역적인 장점은 조선후기 궁방전의 집중으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충청도 뿐만 아니라 경기도에도 궁방면세지가 집중되었다. 향촌 사족의 세거지로 충청도는 위와 같은 배경을 통해 확대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주제 4> 경주김씨 학주공파 소장 고문서자료로 본 입후(立後) 사례: 본래 조선의 법제상 입후는 적처와 첩에게 모두 아들이 없는 자가 동종(同宗)의 지자(支子)를 세울 때에만 가능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에는 첩자가 있는데도 입후하거나, 장자(長子)를 입후로 데려오는 등의 변화가 나타났다. 이에 경주김씨 학주공파 자료를 통해 18-19세기 입후에 관한 사례를 검토했다. 이 가문 역시 사후에 입후하거나 장자를 입후하는 등의 양상이 확인되었다.
-<연구주제 5> 19세기 말 ~ 20세기 초 보령 지역의 천주교 동향 : 본고는 1880년부터 1920년대까지 보령 지역의 천주교 동향을 다루었다. 먼저 보령 지역 천주교의 교세 확산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런 다음에 1900년 보령에서 천주교와 지방관 사이에 발생하였던 갈등, 즉 이른바 보령 교안에 관한 자료들을 소개하고, 사건의 진행 추이를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는 1866년 천주교 탄압 당시에 보령의 충청수영 근방에서 있었던 프랑스 선교사와 조선인 신자들의 처형 장소 갈매못이 순교지로 재발견되는 과정을 다루었다.
ㅁ 제2 기획 주제: 왕실과 가족의 일상과 교육
-<연구주제 1> 영조대 옹주궁가 성립과 계승 – 월성위궁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공주와 옹주 등 왕의 딸들은 결혼과 함께 궁을 떠난다. 공주 및 옹주 궁가는 왕자 궁가와 달리 사대부가로 귀속되며, 가문내 가계계승의 원리에 따라 승계되었다. 등록 및 관련 고문서를 바탕으로 영조의 첫 번째 사위 월성위(경주 김씨 김한신)의 결혼과 월성위궁의 성립과정을 면밀히 재구성하고, 월성위와 화순옹주 사후 한양 및 충청도 예산 월성위 궁가의 승계과정을 추적하여 궁가와 사가 운영상의 차별점을 발견하고자 했다.
-<연구주제 2> 순명효황후 언간의 텍스트 비정 : 이에 대한 연구는 어강석에 의하여 처음 이루어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서예사와 생활사 분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어강석의 처음 논의에 오류가 다수 있었으며, 이것이 이후의 연구에도 반복되고 있어 이에 대한 정정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이 연구에서는 순명효황후 언간의 면밀한 분석을 통해 선행 연구의 오류를 다소 확인하고 내용을 정정하였다. 또한 작성시기의 비정에서는 12편의 순명효황후 언간의 내용을 분석하여 1894년 10월부터 1904년 여름까지 작성한 내역을 새롭게 비정하였다.
-<연구주제 3> 19세기 경주김씨가의 유배 가족 지원 양상 -김노경과 김정희의 한글편지를 중심으로 : 조선 후기의 문신이면서 실학자이자 서화가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와 그의 생부인 김노경이 유배생활을 하면서 남긴 한글편지를 대상으로 19세기 사대부가의 유배 가족 지원 양상을 검토하였다. 김노경은 유배지 고금도에서 그의 며느리 및 서녀들에게 12건의 한글편지를 보냈고, 김정희는 그의 아내와 며느리에게 21건의 한글편지를 보냈다. 이들은 이 편지들을 통해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또 유배지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요청하였다.
-<연구주제 4> 경주 김씨의 교육사상 -추사 김정희를 중심으로 : 김정희가 지향하는 이상적 인간은 유학의 본래 정신인 ‘성인의 도’를 실현하는 인간이었다. 실사구시(實事求是)는 그러한 인간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었다. 그는 기존에 존재하였던 어떠한 학설을 절대적 가치로 추앙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설을 상대적으로 검토하여 그 내실을 구함으로써 자신의 주체적 성장을 도모하였다. 문이재도(文以載道)’를 ‘예이재도(藝以載道)’로 변경하였다. 결론적으로 김정희가 양성하고자 했고, 또가 그가 지향했던 인간은 ‘도덕과 예술의 일치, 즉 학예일치(學藝一致)’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 <연구주제 5> 보령 경주김씨 학주공파 김면주 가문 소장 장서 분석 : 김면주 가문에 소장된 서적은 163종 862책으로 조선본은 103종 237책이다. 필사본이 많으며, 전기류, 문집류가 중심이다. 중국본은 60종 625책으로, 목판본이 대부분이며 사서삼경, 역사서, 문집 등이 확인된다. 김계진, 월성위 김한신, 김노경, 김상덕, 김민제, 이종협, 이경철, 정동진, 공소혼 등의 장서인이 확인된다. 전체 서적 중 48종의 서적에 김상덕의 인장이 날인되어 있어 소장 서적 대다수가 김상덕이 구입한 것을 알 수 있다.
ㅁ제3 기획 7개 주제: 조선말 정국과 대외인식
- <연구주제 1> 1798년 무오 연행과 조선의 ‘義理’: 무오 연행사 일행은 1799년 1월 건륭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애도의 의례를 북경의 자금성에 치러야 하는 예외적 상황을 맞이했다. 이때 이들 사신 일행은 최선을 다해 조선이 예의지방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곡반에 참여한 이들은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고 애도했다. 조선을 대표하여 오랑캐 청에 파견된 이상 중화 문명의 가치를 드날리고 귀국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던 만큼, 정조가 바라는 바 ‘하지 않을 수도 그렇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의리를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조는 청을 비롯한 천하 사람들이 조선이 의리의 나라임을 알도록 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통치라고 생각했다.
- <연구주제 2> 金勉柱의 燕行詩軸 연구 : 지금까지 金勉柱 <<燕行詩軸>>은 김면주가 사행단의 부사로 1798년 10월 19일부터 이듬해 4월 2일까지 총 160일에 걸친 여정으로 연행을 다녀오면서 지은 시를 모은 것이다. 본고에서는 󰡔연행시축󰡕의 특징적 국면을 동료와 酬唱과 次韻, 건륭제의 사망과 대응, 귀국의 기대와 실망이라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았고, 연행에 대한 이중적 태도가 나타나는 원인을 분석하였다. 서유문이 지칭한 ‘燕行한 分義’는, 연행가서 북경을 구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말이다. 김면주 역시 이에 대해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이것이 국가의 이익을 가져오는 행동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연구주제 3> 鶴洲公派 秋史 金正喜의 연행과 서화교류 : 본문에서는 경주김씨 金弘郁(1602~1654)을 비조로 하는 鶴洲公派 7대손으로, 19세기 초 김정희는 연행에서 청조 학계에서 주도적 위치에 있던 고증학을 적극 수용하여 경서 및 금석, 전고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학문의 수준을 제고하는데 기여하였다. 따라서 김정희 일행의 연행노정을 살펴보고 현존 서화자료와 <<완당전집>>에 나타난 김정희와 옹방강, 옹수곤 부자, 완원, 주학년, 섭지선, 기타 淸儒의 교류 상황을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김정희의 서화 및 학문에 미친 상호 영향 관계를 파악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연구주제 4> 지역사회의 두 시선, 사족과 지방관료 : 이 연구는 지역사회 토착 엘리트가 지방관을 바라보는 시각과 지역사회의 행정관으로서 지방관이 지역사회에 대한 인식에 대해 비교를 시도했다. 먼저 지역 사족의 입장과 시각은 󰡔고문서집성󰡕 수록 민원자료를 활용하여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서산과 보령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민원활동을 지역 사족, 경주김씨의 시각에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19세기 지방관으로 홍성에 부임한 노상추의 생활일기를 활용하여 지역의 동향과 송사 등에 대한 수령의 입장과 징계에 대한 시각을 서술했다.
- <연구주제 5> 보령 경주김씨 나와 김면주의 생애와 관직 활동 : 조선 후기 정조와 순조 연간에 문신으로 활동한 懦窩 金勉柱는 1776년(정조 즉위년) 과거에 급제한 후에 정조 연간에는 춘추관기사관, 규장각의 각신, 승정원의 승지를 통해 정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관직 생활을 하였다. 淸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개성부유수에 임명되에 한 지방을 통솔하는 업무를 수행하였다. 순조 연간에는 긴급하게 평안도관찰사에 임명되어 업무를 수행하였고, 도승지와 이조참판으로 순조를 보필하였으며, 형조판서·공조판서·사헌부대사헌을 역임하였다. 이러한 김면주의 생애와 행적은 증손자 김상덕의 나와공 교지궤와 「나와공유사」를 통해 정리되었다.
- <연구주제 6> 1891년 天津駐在從事官 金商悳의 파견과 관련 기록 : 본고는 관찬 사료와 보령 경주김씨 소장자료 내 기록들을 통해 주진종사관으로 파견된 김상덕의 임면 과정, 업무와 관련하여 그가 특별히 관심을 기울였던 주제를 살펴본 것이다. 김상덕은 1889년 종사관으로서 천진에 파견되었으며, 1890년 초 김명규를 대신하여 서리주진독리가 되었다. 천진에 있는 동안에는 청 관원들의 정보를 파악 및 현행화하고, 특히 자신과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해외 주재 중국 영사에 주목했다. 그리고 천진성 지도에 주요 시설 및 교통편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기록했으며, 서양 종교의 유래와 교리에도 관심을 나타냈다.
- <연구주제 7> 김상덕의 현실인식과 사회활동(1852~1924) : 김상덕은 1880년대를 대표하는 관원이자, 청국에 파견되었던 외교관이었던 인물이다. 이 시기 그는 친청파이자 민씨 세력과 가깝게 지내면서 정부의 요직을 두루 겸임하였다. 인천부사를 맡으며 외교 업무를 이어나갔지만, 청일전쟁을 전후하여 일본의 압력으로 관직에서 물러났고, 명성황후시해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관직에 진출하지 않게 된다. 그는 고향인 홍주에 은둔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지만, 을사늑약을 계기로 홍주의병이 일어나고, 홍주성이 점령되자 참모장을 맡았다. 이후 고종에게 자수하였고, 곧 풀려나 홍주에서 생을 마쳤다.


3) 3차년도 심층 종합연구 결과 요약
ㅁ 전체연구주제(총론): ‘고문서를 통해 본 조선 시대 창원황씨 일족의 사회활동’
­창원황씨 고문서는 가계의 계통에 따라 세거지와 활동배경이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특징을 담고 있다. 이러한 특징에 따라 가계의 내력과 인물의 활동 내용을 고문서를 활용하여 기록에 따라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사실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문서를 이용하여 대외관계사, 역사, 문헌, 왕실의례 등 분야에서 사실의 보완이나 내용의 다양성을 보완할 수 있었다. 창원황씨 고문서는 그리고 대체로 고문서는 현장에서 적시에 작성된 성격에 따라 사건과 현장에 대한 확인과 묘사를 풍부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ㅁ제1기획 주제: 마을과 가계 그리고 인물
­<연구주제 1> ‘창원황씨 황신가(黃愼家)의 공간적 기반과 그 운용’: 창원황씨 황신 집안의 공간적 기반과 그 운용 방식을 분석하여 조선 후기 기호권 사대부가의 존재 양상을 규명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의의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먼저 그들이 추구했던 공간화의 개념은 철저하게 주자학적 틀과 규범 속에서 작동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부여의 분대리, 용당리, 의열사 및 공주의 창강서원에서 추출할 수 있는 가치는 곧 도학(道學)과 충효열(忠孝烈)로 귀결된다. 이들은 이러한 가치를 누군가에 의해 부여되었던 것이 아니라 고도로 기획되고 착실하게 짜인 가정 경영이었음을 보여준다.
­<연구주제 2> ‘창원황씨 황신 가계의 내력과 현실인식’: 창원황씨는 조선 중기에 황대수(黃大受)과 아들 황신(黃愼), 손자인 황일호(黃一皓) 3대에 걸쳐 문과에 합격하면서 관료 집안의 기반을 다져나갔다. 또한 황신은 성혼의 문인으로 활동하였고 조정에서도 큰 활약을 펼쳐감에 따라 서인 명문가로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다. 본고에서는 창원황씨가 중 특히 황신의 가게 구성원의 주요 활동, 혼인, 교유, 사승 관계와 황일호 추숭을 위한 황윤과 황진의 노력, 경종 대 위비 사건과 이후 신원 노력 등을 살피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이 가계가 성혼의 문인계열이지만 조선 후기 서인-노론계로 정위치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고자 하였다.
­<연구주제 3> ‘지소 황일호의 행적과 그 충렬에 대한 문학적 추숭’: 추포(秋浦) 황신(黃愼)의 아들인 황일호(黃一皓, 1588∼1641)는 병자호란 당시 강력한 척화를 주장하였고 의주부윤으로 역임할 당시, 청나라 태종을 암살하려다가 결국 피살되었다. 이후로 그의 의열에 대한 추숭은 사시(賜諡), 사당 배향, 치제, 문학적 형상화 등 여러 방면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포착하였다. 이에 황일호의 저술 및 조선 후기 국왕 및 사대부가 남긴 시문들, 창원황씨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전적 등을 통해 그의 행적과 그의 충렬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 양상 및 그 추이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연구주제 4> ‘아술당(蛾述堂) 황진(黃璡)의 생애와 추숭 과정’: 황진은 부친을 추숭하는 과정에서 당시 지배이념으로 급격히 부상하던 대명의리론에 편승하였다. 그는 송시열을 비롯한 노론계 주요 인사들에게 묘도문자를 받아 부친의 위상을 높이는 한편, 조부 황신을 비롯한 선조들의 추숭도 함께 추진하였다. 후손들의 추숭 작업이 조선 후기 계속되었고 그 결과 1816년 황일호와 황진은 각각 충효로 정려를 받았다. 추숭 작업도 계속되었는데, 황일호의 생부 황대수의 시호를 받거나 황하신, 황운조 역시 18세기에 꾸준히 추숭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창원황씨의 후손들이 가문의 위상을 재고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연구주제 5> ‘창원황씨 일문의 지역 사회적 배경’: 창원황씨 문중이 조선 후기로부터 최근까지 세거하는 동안에 ‘해당 지역 사회에서 어떠한 배경을 형성, 유지, 변화하였는가’라는 주제에 착안하고서 글을 서술하였다. 강화도 지역과 부여에 세거하였던 창원황씨 가문을 대상으로 하였다. 강화 월곶리에 세거한 창원황씨 가문은 강화도뿐만 아니라, 교동에도 세거하면서 이 일대 주요한 재지 사족의 지위를 확보하였다. 이러한 원인 속에서 현재 남겨진 18-19세기 창원황씨 고문서를 통해 이들의 활동이 20세기 초까지 어떻게 계승되고 변화되었는지 등 전근대와 근대를 단절시키기 않고 지역 사회의 변화상을 이해하고자 한다.
­<연구주제 6> ‘종족조직의 구성과 운영방식의 변화’: 종가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촌락사회의 종족조직과 이사회 같은 의결기구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도시 사회의 종족조직을 비교함으로써 사회변동에 대한 종족 구성원들의 대응과 실천이라는 맥락에서 종족조직이 운영되고 있음을 검토한 것이다. 특히 종자 중심의 문중 조직이라 할 수 있는 촌락사회의 화수회와 종친회의 성격을 담보하고 있는 도시 종족조직에 대한 사례연구를 위해 영주시 대룡산마을의 창원황씨 귀암공파 화수회와 대구시 ‘황씨동원각’의 사례를 조직의 구성과 운영, 그리고 종족조직에 대한 구성원들의 인식 태도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ㅁ제2기획 주제: 고문서와 고서 그리고 사회문화 활동
­<연구주제 1> ‘1596년 조선의 근수배신(跟隨陪臣) 파견 배경과 황신(黃愼)의 활동’: 황신은 성혼과 이이의 문인으로 1588년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관료이다. 그에게는 대표적인 저서들이 있는데, 『일본왕환일기(日本往還日記)』, 『막부삼차수창록(幕府三搓酬昌錄)』, 『추포집(秋浦集)』 등이 있다. 1596년 명나라 책봉사를 따라 일본에 가면서 저술한 사행록인 『일본왕환일기』에 주목하였다. 황신의 대일인식은 화이론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으나 객관적 시각으로 일본의 실상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는 일본의 풍속의 장점을 나름 일정했으며 일본의 영토가 조선보다 협소하다는 인식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기도 했다
­<연구주제 2> ‘황하신(黃夏臣)‧황상로(黃尙老) 부자 관계의 재구성과 그 의미’: 조선시대 부자(父子)는 혈연으로 연결된 가장 가까운 관계일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학문적으로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모습에 주목하여 창원황씨가에서 주목할만한 부자 관계를 살펴보았다. 황상로는 장남으로서 형제를 대표하여 외지에 머무르고 있던 아버지 황하신과 간찰로 소통하면서 집안의 대소사를 운영하거나 여러 가지 조언을 받았다. 특히 1723년에 황하신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비답 위조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때 황상로는 사건이 일어난 경위와 아버지의 신원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들 부자의 일상과 삶은 중요한 격변기를 지나고 있으며 여기서는 서로를 위한 행보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연구주제 3> ‘정조 대 󰡔춘추좌씨전󰡕 간행에 대하여’: 1796년 정조는 『춘추좌씨전』의 주해본이 없음을 한탄하면서 『자치통감강목』의 예를 본떠서 『춘추좌씨전』의 주해본을 새롭게 만들려고 시도하였다. 1797년 3월 3일에는 얼추 『춘추좌씨전』의 편찬이 완료되었다. 정조는 당시의 필체가 경박한 것을 경계하였고 서적을 간행할 때 누가 어떤 글씨체로 작성할 것인지까지도 고심하여 결정하였다. 그에 따라 창원황씨의 황운조와 조윤형 등 여러 인물이 책의 경문을 쓰게 하였다. 이 연구는 정조 대 󰡔춘추좌씨전󰡕 간행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둔 것으로 정조는 그 과정을 매우 꼼꼼하게 지시하면서 편집의 방향을 대신들과 의논하며 진행했다.
­<연구주제 4> ‘18~19세기 昌原黃氏 가문 노비의 존재양상’: 창원황씨 가문에 있는 호적자료를 호주에 따라 황운조 가문, 황택조 가문, 황백조 가문으로 나누어서 18~19세기 개인에게 소속된 노비의 여러 측면을 분석하여 그 존재 양상을 검토하였다. 창원황씨의 가문 노비의 규모와 나이, 거주 지역, 혼인과 가족의 지속성 등을 선행된 연구와 비교하였다. 특징은 노와 양녀의 혼인이 적었고 노비 가계가 지속적을 유지된 것 등 다른 가문과 차이가 있었다. 또한 19세기 노비의 거주 지역이 주인의 거주 지역 중심으로 축소된 점, 19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이미 사망한 노비도 호적자료에 살아 있는 것처럼 기재한 특징이 있다.
­<연구주제 5> ‘조선 왕실 동뢰(同牢) 음식상의 구성과 배치의 특징’: 동뢰는 혼례의 절차 중 하나로 신랑과 신부가 만나 서로 절하고 술과 음식을 함께 먹는 절차로 현재의 결혼식 의례에 대항한다. 동뢰연에 차려지는 음식 종류와 시대적 변화는 이미 식품영양학 분야에서 연구가 진행되어 왔으나 음식 종류 외에 혼례식에 사용된 음식의 배치나 방위, 기물 등 세세한 부분은 여전히 모호한 점이 많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단순히 차려지는 음식 종류를 제시하는 것을 넘어 동뢰연에서 각 음식상이 놓이는 구조와 행례 과정에서 놓이는 방식 음식상의 성격에 집중하여 분석하였다.
­<연구주제 6> ‘대원군 하야 후 서원 復設의 동향과 儒疏 활동’: 대원군의 서원 훼철에 관한 연구는 해명이 되었으나 대원군 하야 이후 복설 동향은 아직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대원군 하야 후 소수서원을 중심으로 전개한 서원 복설의 유소 과정을 탐색해 본 것이다. 1877년~1878년까지 영남 유림계 서원 복설소 활동의 전말을 기록한 『청사원복설소소청록(請祠院復設疏疏廳錄)을 활용했다. 대원군 하야 후 서원 복설의 동향을 살펴본 다음 소청록을 토대로 영남 유림계의 서원 복설 운동의 실상을 재구성하였다. 서원 연구에서 이 주제를 검토한 경우가 거의 없는 점에서 의미 있는 또 하나의 사례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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