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구분 | 한국학중점연구 / 호혜와 협동의 계보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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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코드 | |||
연구과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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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 심재우 | ||
공동연구자 | 김학수, 김건태, 정수환, 문숙자, 나영훈, 백광열, 조영준 | ||
연구기간 | 20210312 ~ 20231216 | 연구형태 | 공동연구 |
연구목적 및 배경 | 인간은 고립된 채 살아갈 수 없다. 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삶의 의의를 찾고 행복을 추구한다. 오늘날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와 신공공관리(new public management) 패러다임의 확산, 도시화, 자본주의의 심화에 따른 공동체의 와해는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공동체와 지역공동체의 복원 및 활성화에 관한 관심과 투자는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전통사회의 공동체, 각종 공동체 조직과 활동에 관한 연구와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채 다른 나라와 문화권에서 공동체, 사회적경제, 공유경제 관련한 정책, 법 및 제도를 답습하고 있는 실정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우리 사회에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화두는 마을공동체이다. 본 연구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기 위해 마을의 계에 주목하고자 한다. 조선시대 선조들은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다양한 정신문화적 자산과 전통을 축적, 계승해왔으며, 지역사회에서는 공동체적 문화와 전통이 강했다. 이는 다양한 종류의 계(契)가 활성화되었다는 점과 향약(鄕約)과 동약(洞約), 품앗이 등이 다수 운영되었다는 점에서 미루어 볼 수 있다. 하지만 계와 향약을 비롯한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각 사회조직의 구체적 운영 실태, 제 사회집단이 연대하고 결속하며 삶을 운위하던 제반 특징에 대해서는 여전히 충분한 이해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전통의 역사, 문화적 계보를 추적하고 그 사례를 축적하여 기존 연구에 대한 실증적 검토와 비판적 재해석이 요구된다. 예컨대 1980, 90년대 이래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어온 조선시대 향촌사회 및 촌락에 관한 연구는 한국사 연구의 발전적 체계화라는 역사학계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연구가 진행되어 사족(士族)의 향촌지배체제의 양상과 해체과정에 주목하였다. 이를 통해 향약, 계 등 지역별 사회조직, 조선후기 사회전반의 변화에 따른 촌락사회의 구조와 변동에 대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남겼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 소통과 통합의 요소, 촌락공동체의 실체 및 그 운영원리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주지하듯이 조선시대 군현과 촌락은 성리학적 이상이 구현된 공간이었다. 당시 촌락공동체의 운영과정에서 나타나는 사족, 농민 등 여러 구성원들의 존재 양상에는 내부의 자치적·평등적 요소와 계층·계급간의 미묘한 갈등과 균형 관계라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포함한다. 기존의 향촌사회사 연구에서 강조되어 온 조선중기 ‘사족지배체제론(士族支配體制論)’은 관치 행정과 별도로 사족 주도 지역사회에 대한 자치적 질서를 강조하고 있다. 자치는 공동체문화, 상호 신뢰가 전제가 되어야 그 성공을 기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시기 향촌사회의 조직과 규율, 공동체문화와 그 운영원리를 좀 더 다각적인 측면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본 공동연구는 전통시대 사람들간의 결속을 보여주는 가장 일반적인 조직 형태로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던 계(契)와 여러 향촌사회조직을 집중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조선시대 사회변동 과정에서의 향촌사회상을 해명하는 것이 목적이다. 계는 일단 “협의의 의미로 어떤 특정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합의, 약속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든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모임”(김필동, 1995)으로 정의될 수 있다. 조선시대 조직되었던 계의 유형과 명칭은 매우 다양했는데, 동계(洞契), 족계(族契), 상계(喪契), 금송계(禁松契), 갑계(甲契), 유계(儒契), 문생계(門生契), 동방계(同榜契), 학계(學契), 보민계(補民契), 제언계(堤堰契) 등이 몇몇 사례이다. 다만 본 연구에서의 분석대상 계는 마을과 문중 단위로 조직된 계가 중심이며, 가능한 범위에서 새로운 자료 발굴, 분석을 추진하고자 계획했다. 지금까지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각 지역에 위치한 국학자료 수집 전문기관(한국국학진흥원, 호남한국학진흥원, 한국유교문화진흥원) 등에서는 계와 향약을 포함한 다양한 지역사료들을 새롭게 수집, 발굴하여 연구자의 분석을 기다리고 있다. 그간 계에 대한 연구는 당시까지 알려진 한정된 사례를 연구하는 것에 그쳤기 때문에 수천 건에 달하는 다양한 목적을 지닌 계의 실체에 대한 접근이 한정적이었다. 이러한 연구사적 한계를 극복하고 조선시대 계와 사회조직에 대한 실증을 보강하여, 조선후기 향촌사회의 구조와 변동을 폭넓게 재구성해내는 작업이 본 공동연구의 최종 목표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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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방법 및 내용 | 1) 연구의 방법 전통시대 마을 공동체에 대해서는 편견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먼저 근대화론자들은 마을은 폐쇄적이고 낙후되어 있고 가난하고 무지한 어둠의 땅으로 그리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마을은 개명되어야 할 근대화 대상에 불과하다. 이와 정반대에 선 또 하나의 편견은 전통사회의 모습을 무조건 미화하여 조선시대 마을을 단순히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는 이상적 공동체로만 바라보는 시선이다. 본 연구는 이와 같은 극단적인 관점을 극복하고 실증적, 이론적으로 조선시대 마을 공동체의 모습을 재구성하려고 노력했다. 즉 마을을 연구의 단위로 하여 분석 대상 마을자료를 중심으로 공동체적 소통과 통합의 요소, 마을민의 사회적 관계, 마을의 역사와 전개양상 등의 제측면에서 다양한 모습을 추적하였다. 연구 방법으로는 현장 답사를 통한 마을문서 등 일차자료의 발굴, 여러 분야 연구자들의 상호토론을 통한 학제간 공동연구를 중시하였다. 특히 본 연구팀은 실증적 사례의 보강, 방법론과 역사상에 대한 전반적 재검토 두 가지를 동시에 염두에 두고 계와 향촌사회 분석을 시도하였다. 2) 연구의 범위 이상과 같은 목적과 방법하에 본 연구팀은 공동연구의 연구 중심축을 1) 각종 계, 2) 사회집단과 향촌사회 두 가지로 나누어 연구를 수행하였다. 이는 계 자료의 분석을 중심으로 향촌사회조직 전반에 대한 이해로 시야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아래의 표에 제시된 것처럼 공동연구진은 ① 역사사회학의 관점에서 본 계에 대한 검토를 시작으로, ② 관인과 계, ③ 마을과 계, ④ 문중과 계 등 각종 다양한 목적으로 조성된 계를 검토한다. 이어서 ⑤ 조선후기 향촌사회 인식과 지방통치론을 검토하고, ⑥ 가문, 학문공동체의 협력과 갈등, ⑦ 경주지역의 계와 향촌사회사, ⑧ 보부상 조직의 분석으로 세분화하여 검토한다. 각 차년별 연구는 연구자에 따라 혹은 시계열적인 흐름으로, 혹은 공간이나 분석대상의 변화에 따라 각각의 사례를 검토하여 조선후기 변화해가는 계 조직와 향촌사회상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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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 1차년도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1. 조선후기~식민지기 서민 조직으로서 계에 대한 인식과 연구사 - 동계(洞契)의 ‘단체성’을 중심으로 2. 16세기말 영남 관료 이정회(李庭檜)의 인적 교류와 동관계(同官契)의 실제 3. 두레 생성과 해체 원인 4. 16세기 族契의 성격과 이후의 전개 -周村李氏 족계의 사례를 통하여- 5. 다산 정약용의 향리집단 인식과 통제 전략 6. 세의(世誼)의 형성과 확산 장치로서의 계(契) 7. 조선후기 경주 옥산동과 여주이씨의 호혜와 협동 활동 연구 8. 조선후기 충청남도 지역의 보부상 단체에 대한 비교 연구 ■ 2차년도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1. 마을공동체와 계 전통 – 촌락공유림과 송계를 중심으로 2. 17세기 재경 영남 관료의 ‘동향계(同鄕契)’와 결속 배경 3. 민고, 계 그리고 왕토사상 4. 17‧18세기 영암 장암(場巖)의 남평문씨와 계(契) 5.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향약‧계 이해와 향촌자치 구상 6. 학맥 전승의 계제적(階梯的) 장치로서의 계(稧) 7. 경주 이조동계와 그 이면의 협동 8. 19-20세기 경상도 지역의 보부상 단체에 대한 비교 연구 ■ 3차년도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1. 학계(學契)에서 공립보통학교까지 2. 조선후기 방회(榜會)의 구성과 방임(榜任)의 사회적 위상 3. 문중, 동중 그리고 계 4. 파평윤씨 노종파(魯宗派) 사례로 본 조선후기 종약(宗約) 이념과 실천 5. 장서각 수집 계문서 현황과 계 조직의 성격 6. 문집간행을 통해 본 조선후기 지식인집단의 호혜성 7. 조선후기 경주 양동마을 동중(洞中)과 동회(洞會) 8. 조선후기 보부상 단체의 전국 분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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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 본 공동연구는 다양한 지역의 계(契; 禊; 稧) 사례에 대한 실증적 분석을 시도함으로써 답보 상태에 처해있는 조선후기 사회사, 특히 사회조직 및 사회변동 연구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각각의 개별 연구는 다양한 계의 사례에 대한 실증적인 검토를 통해 이들의 성격을 파악하였고, 또한 사회조직 등 관련한 종래의 통설적 이해에 대한 재검토를 시도한 두레와 보부상에 대한 연구, 근대전환기 지역 공유재산의 관리방식을 비교사적으로 접근한 연구와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향약·계 인식과 향촌자치 구상을 규명한 연구도 있다. 이들 연구는 ‘지배와 저항’의 시각에 경도된 조선후기사 연구에서 ‘협동과 연대’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함으로써 방법론과 시각의 확대를 도모한 점을 강조할 수 있다. 또한 전국 여러 기관에 산재된 계 자료를 조사하고 핵심 자료를 DB로 구축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물론 서울대학교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국사편찬위원회 등 유관 기관에 소장된 조선시대 생성된 계 자료를 조사하였다. 이 가운데 『조선시대사회사연구사료총서』 및 『한국사회조직사연구』 등에 수록된 규장각 소장 주요 계 자료와 기타 공동연구진이 필요한 자료 98점은 모두 정서·표점·번역·교열·해제 작업을 완료하여 DB로 구축하였고 추후 연구에 기여할 수 있게 하였다. 국내외적으로 ‘호혜와 협동’, ‘계와 공동체’에 대한 연구는 현대 사회가 직면한 정치, 사회질서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경제가 부각되고 있으며, ‘마을공동체 운동’은 새롭게 대두되는 화두이다. 이 연구는 종국적으로 한국 전통사회 계 조직과 마을 공동체의 운영원리를 탐구함으로써 ‘호혜와 협동’의 사례를 발굴하고 그 사회적 의미와 역사적 맥락을 탐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정치, 경제, 사회의 압축적 발전을 이룩하였지만, 그 지속적인 발전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더욱 학문적 가치를 가진다고 본다. 한국은 신뢰와 호혜, 협동의 문화전통이 강한 사회였지만 많은 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은 서구중심적 근대성을 잣대로 한국의 풍부한 역사·문화적 경험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음이 사실이다. 본 연구는 전통시대 계를 비롯한 마을조직, 마을 공동체에 대한 여러 측면에서의 실증적 내용을 보강하고 있으므로, 이에 더하여 이론적 분석이 효과적으로 수행된다면 궁극적으로 한국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을 구축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 학문적 기대효과 첫째, 조선후기에서 근대로의 역사상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다. 계(契)는 한국 전통사회의 독특한 인적 결합 방식을 보여주는 조직이라 할 수 있다. 계의 연원 또한 매우 앞선 시기로 소급할 수 있는데, 계가 조선시대 촌락사회에서 빠르게 성장, 분화해 갔으며 현대사회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 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계의 명칭은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는 우리나라 특유의 것으로서 계의 목적 또한 광범위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조선후기 계와 마을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조망함으로써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한국사 전개과정에 대한 이해를 제고할 수 있다. 둘째, 사례 조사를 위해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는 다양한 계 문서를 수집·DB화함으로써 차세대 연구자들에게 향후 한국적 마을공동체 연구 수행을 위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본 연구팀에서는 연구를 위해 다양한 마을문서를 수집할 뿐만 아니라, 규장각 중요 계(契) 자료에 대한 텍스트 입력, 탈초, 해제, 번역 작업의 성과도 공개할 예정이다. 이들 자료는 후발 연구자들의 연구 방향 설정에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셋째, 마을을 단위로 하여 수집한 향약, 동계, 송계, 어촌계 등 다양한 마을 조직을 분석하여 마을 공동체 연구성과를 축적함으로써 한국적 공동체 이론 정립과 모형 구축에 기여할 수 있다. 이는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주의적 시각 등으로 인해 한국적 맥락의 특수성과 보편성이 결여된 그동안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 교육적 기대효과 및 활용방안 첫째, 본 연구에서는 조선후기 사회경제사, 생활사, 고문헌에 관심을 가진 석·박사과정 연구보조원을 채용하여 연구의 진행을 돕게 하고, 역사자료 DB구축의 보조작업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관련 연구의 진행과 방법론을 체득할 기회를 제공한 바 있다. 석·박사과정에서의 이러한 경험은 향후 학위논문 작성, 학자로의 성장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둘째, 본 연구는 비단 한국사뿐만 아니라 인류학, 민속학, 사회학, 경제학, 행정학, 고문서학 등 다양한 학문과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본 연구의 결과물은 한국학대학원을 비롯한 여러 대학, 대학원의 강의와 연구에서 학제적 공동연구의 유익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계와 공동체, 마을조직, 사회적 경제, 공유 경제, 동양사상·철학, 지역문화·역사·전통과 같은 시민교육, 공무원 연수교육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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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연구결과 요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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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호혜와 협동의 계보학’ 연구사업의 하나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수행된 공동연구과제 “조선시대의 계와 향촌사회 연구”(과제번호: AKSR2021-RC01)의 연구결과물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호혜와 협동의 계보학 연구사업은 한국사회의 역사 문화적 자원에 대한 심층 연구를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을 탐구하고, 나아가 사회발전의 토대인 협동, 신뢰, 호혜 등에 대한 학제적 연구를 통해 현대사회의 양극화, 사회적 배제, 소수자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 모델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 바 있다. 이 사업은 최초 2018년부터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1단계 3년(2018-2020)을 거쳐, 본 결과물은 2단계 3년(2021-2023)의 성과에 해당한다. 이번 성과는 본 연구 사업단에 참여하는 전근대팀, 현대팀, 이론팀 등 3개 팀 가운데 조선시대를 연구하는 전근대팀 공동연구진 8명의 연구성과(3년간 24편, 계획대비 100%)와 구축된 계 DB자료(98점, 계획대비 192%)를 모은 것이다. 이번 조선시대사 연구팀의 연구는 1단계 3년의 연구경험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지역사와 사회조직 연구의 주제와 범위를 좀더 구체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과제를 진행하였다. 한국 전통사회의 다양한 목적계의 사례를 발굴하여 이들의 내용, 특징과 계 자료를 통한 사람들간의 사회적 결합의 제 양상을 살펴보고 향촌 사회의 운영과 그 변화상을 파악하는 사례 연구를 진행하였다. 특히 송계, 동관계, 동향계, 두레, 민고, 족계 등의 목적계와 향촌사회의 향리집단, 양반사족, 보부상단체 등의 각 사회집단의 차별과 연대 연구를 통해 조선시대 향촌사회변동을 거시적으로 조망해보고자 하였다. 이는 조선시대 계 연구가 구체적인 사례 분석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입장에서 다양한 목적계를 실증적으로 분석하여 조선시대 향촌사회조직의 성격과 사람들간의 공동체적 결속의 특징을 해명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전체 연구는 ‘계와 사회적 결속의 양상’이라는 주제에서 4명의 연구자가 각종 계의 구성, 조직 등을 실증적으로 탐구하고, ‘사회집단과 향촌사회의 변화’라는 주제에서 4명의 연구자가 사회집단의 연대와 배제의 문제에까지 확장, 접근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궁극적으로 종래의 향촌사회사, 사회조직 연구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조선시대 공동체적 삶의 양상을 분석하고 나아가 조선왕조의 사회성격과 운영원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해명하는 데까지 나아갈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8명의 연구 주제와 내용이 포괄하는 범위가 넓어 개별 연구가 다른 연구와 긴밀하게 연계되지 못한 부분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성과도 적지 않다고 판단한다. 먼저 다양한 지역 사례에 대한 실증적 분석을 시도함으로써 답보 상태에 처해있는 조선후기 사회사, 특히 사회조직 및 사회변동 연구의 중요성을 환기시킨 점을 들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사회조직 등 관련한 종래의 통설적 이해에 대한 재검토를 시도한 두레와 보부상에 대한 논문이 주목된다. 또한 근대전환기 지역 공유재산의 관리방식을 비교사적으로 접근한 연구와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향약·계 인식과 향촌자치 구상을 규명한 논문의 경우 역시 선행 연구의 재점검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연구시각의 정립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더욱이 ‘지배와 저항’의 시각에 경도된 조선후기사 연구에서 ‘협동과 연대’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함으로써 방법론과 시각의 확대를 도모한 점을 강조할 수 있다. 이는 그간 답보 상태에 있던 조선시대 향촌사회, 사회경제사에 대한 연구를 자극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국 여러 기관에 산재된 계(契; 禊; 稧) 자료를 조사하고 핵심 자료를 DB로 구축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물론 서울대학교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국사편찬위원회 등 유관 기관에 소장된 조선시대 생성된 계 자료를 조사하였다. 이 가운데 『조선시대사회사연구사료총서』 및 『한국사회조직사연구』 등에 수록된 규장각 소장 주요 계 자료와 기타 공동연구진이 필요한 자료 98점은 모두 정서·표점·번역·교열·해제 작업을 완료하여 DB로 구축하였고 추후 연구에 기여할 수 있게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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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과제별 요약 | |
(1) 1차년도 연구 결과 ① 연구주제 1: 조선후기~식민지기 서민 조직으로서 계에 대한 인식과 연구사 - 동계(洞契)의 ‘단체성’을 중심으로 - 본 연구는 한국 전통시대에 서민들이 어떤 사회적 조직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에 대한 관심에서, 서민 조직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였다고 이해되는 계(契)에 대해 그 인식 및 연구사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② 연구주제 2: 16세기말 영남 관료 이정회(李庭檜)의 인적 교류와 동관계(同官契)의 실제 - 사헌부 관료들의 인적 교류를 이정회를 중심으로 파악하여 동관계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었다. 특히, 기존 연구는 동관계가 존재하면 그들 상호간의 결속은 당연한 것이라고 전제했었던 사실이 실제에는 그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본 연구를 토대로, 동관계를 지속하여 연구하기 위해서는 계회도의 좌목뿐 아닌 주변 사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를 느꼈고, 이에 따라 2차년도 연구 방향 역시 다소 수정하였다. ③ 연구주제 3: 두레 생성과 해체 원인 - 두레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증적 차원에서 논쟁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먼저 두레의 발생 시기에 관한 문제이다. 그리고 해체 원인에 관한 문제이다. 기존의 두레 연구는 농민이 두레를 멀리했다는 점을 과소 평가 했다. 농민의 입장에서 두레를 바라본다면 연구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기존 연구가 농민의 입장에서 두레를 바라보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작성한 자료를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강진군 하고동, 장흥면 모산동과 자미동 두레에 주목하여 분석하였다. ④ 연구주제 4: 16세기 族契의 성격과 이후의 전개 -周村李氏 족계의 사례를 통하여- - 본 연구는 안동 주촌의 진성이씨가에 전래한 족계 문서를 통해 16세기 족계의 성격과 17세기 이후의 전개양상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글이다. 본 연구에는 族會·족계·族中이라는 용어가 완의·입의 등의 용어와 결합하면서 족친간의 일종의 합의 또는 계약으로 형태를 갖추어가는 시기가 16세기이므로 조선시대 족계에 관한 연구의 출발점 역시 16세기여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그리고 계에 관한 연구가 동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다보니 16세기 족계에 대한 평가 역시 동계와의 유사점이 강조되는 등 동계 중심으로 흘러갔다는 점 때문에 족계 문서 자체에 대한 텍스트 분석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결과적으로 돈목과 相救라는 보편적 기능과 그 속에 내재된 先祖에 대한 奉祀 공동체로서의 기능이 16세기 족계 설립기부터 문중의 형성이 본격화하는 17세기 이후까지 계승되었다고 볼 수 있다. ⑤ 연구주제 5: 다산 정약용의 향리집단 인식과 통제 전략 - 이 글은 조선시대 지방행정의 실무를 담당하며 후기로 가면서 그 역할이 더욱 증대되던 향리집단을 바라보는 다산 정약용의 시각, 그리고 이들의 부정부패에 대처하기 위해 그가 제시한 향리 통제 전략을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다산은 19세기 심화되고 있던 향리집단의 불법과 작폐에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이들 향리집단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없다면 향촌 사회질서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고통을 해소할 수 없을 것으로 보았다. 이는 현실 상황에 대한 경험과 진단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그가 수령의 향리 통제의 필요성과 세부 방안을 상세히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적절한 통제와 단속, 그리고 더 나아가 개선의 여지가 없는 원악향리(元惡鄕吏)에 대해서는 최후의 수단으로 처형하는 조치까지도 강구하라고 목민관들에게 조언하기도 했다. ⑥ 연구주제 6: 세의(世誼)의 형성과 확산 장치로서의 계(契) - 17세기 소론계의 대표적 학인이었던 박세당의 ‘세의’ 및 ‘세혐’ 인식은 당쟁이라는 정치적 상황이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직조하고, 또 유도하는 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세강계’는 숙종조 근기지역 소론계의 인적 구성 및 동향을 우회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그 속에 내재된 의미는 매우 컸다. 특히 ‘혐피록’은 혐원에 대한 구체적 사유를 명기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세전성을 강요하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조선후기 사회가 갖는 경직성 및 배타성을 통찰할 수 있는 장면으로 착상되었다. ⑦ 연구주제 7: 조선후기 경주 옥산동과 여주이씨의 호혜와 협동 활동 연구 - 이 연구는 조선후기 호혜와 협동의 사례 발굴을 목적으로 경주 옥산동의 여주이씨 마을을 분석했다. 옥산동은 이언적의 서자 이전인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는 마을로서 조선후기 동안 지역사회 참여와 사회활동에 제약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적손인 양좌동 여주이씨와 경쟁 및 갈등을 지속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옥산동 마을이 지역사회 참여와 갈등 대응을 위한 호혜의 가치 발굴과 이를 위한 협동의 노력을 16∼18세기 동안 계기적 흐름에 따라 추적했다. 이 연구는 조선후기 서파의 300년에 걸친 마을 개발과 지역사회 참여를 위한 호혜의 가치 발굴과 협동의 노력을 추적하여 서파마을의 사례를 발굴하였다. ⑧ 연구주제 8: 조선후기 충청남도 지역의 보부상 단체에 대한 비교 연구 - 조선후기의 충청남도 지역에 각 권역별로 결성되었던 보상·부상의 단체가 남긴 기록을 근거로 하여, 각 단체의 창설 시기, 관할 권역, 규모 및 변동, 인원 파악 및 관리의 방식, 포상과 처벌, 상호 부조의 규정 등에 대해 실증적으로 고찰하였다. 보상의 단체가 부상의 단체에 비해 훨씬 앞서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었으며, 부상의 단체는 늦게 창설되었을 뿐 아니라 지속성도 떨어져, 단명하거나 지속성이 약한 경향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료가 현존하는 세 권역 외에도 서부에 한 곳, 동부에 두 곳 등 최소한 세 곳 이상의 권역에 보상·부상의 단체가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충남 지역의 상인 단체에 가입한 멤버는 1천명에서 2천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며, 이는 전국의 보상·부상이 1만 명 이상이었으리라는 집계가 무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병구사장과 애경상조 등 호혜와 협동의 추구가 단체의 기능 중 일부였음이 분명하지만 구체적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의 논의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함이 드러났다. (2) 2차년도 연구 결과 ① 연구주제 1: 마을공동체와 계 전통 – 촌락공유림과 송계를 중심으로 - 근대전환기 촌락공유림을 소재로 해서 촌락의 인간결집, 공동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 과정에 송계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촌락공유림 소유권의 근대 이후 전개과정을 한일간 비교 시야에서도 살펴보았는데, 한국의 경우, 전통사회에서 ‘개인을 초월하는 단체’로서 총유적 공동체인 ‘촌락’이 존재했는가 하는 점을 간접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② 연구주제 2: 17세기 재경 영남 관료의 ‘동향계(同鄕契)’와 결속 배경 - 본 연구는 조선시대 관료들의 모임 가운데 지역적 인연을 기반으로 결성된 동향계의 한 사례를 검토하여 그 성격을 추출한 성과이다. 당시에는 다양한 동향계가 존재했는데 이 가운데, 1601년 당대 서울에서 관직 생활을 했던 영남 출신 인사들의 모임인 ‘영남동도회’를 검토하였고 이를 토대로, 당대 영남인들이 서울에서 회합한 목적과 의미를 추출하였다. ③ 연구주제 3: 민고, 계 그리고 왕토사상 - 조선후기에는 잡세 부과와 수취에 관련된 조직과 재원을 民庫라 했다. 지방 군현은 계를 활용해 민고를 운영했다. 군현에서 먼저 화포계, 망결계 등과 같이 개별 민고 이름을 딴 계를 설립하고, 호수(戶數)를 참작하여 계전[민고전]을 예하의 면에 분배하여 면 단위 계를 창설하도록 했다. 그리고 개별 면은 다시 그 계전을 예하의 동에 분배하고 동 단위 계를 창설하도록 했다. 그러면 동은 매년 분배금[원금]의 30∼60%에 해당하는 이자를 부세명목으로 면에 납하고, 면은 그 돈을 모아 군현에 상납했다. ④ 연구주제 4: 17‧18세기 영암 장암(場巖)의 남평문씨와 계(契) - 영암 장암의 남평문씨 집안에는 1667년에 설립된 장암동계(場巖洞契), 1673년(또는 1664년)에 설립된 문계(門契)와 18세기초에 시작된 소종계(小宗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의 족적이 문서로 전래해왔다. 남평문씨는 장암동계를 주도적으로 이끈 세력이지만 장암(현 영암읍 장암리)에 거주하기 전에 영보(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세거하다가 그 일부가 장암으로 옮긴 이력이 있다. 그 결과 장암동계와 비슷한 시기에 설립된 문계에는 영보와 장암의 문씨가 모두 소속되었고, 장암동계에는 장암으로 이주한 문씨만 소속되었다. 문계 중 장암의 문씨는 18세기에 소종계를 분파하였고 소종계 단위의 서재계와 문계 단위의 서재계가 동시에 활성화되어 있었다. ⑤ 연구주제 5: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향약‧계 이해와 향촌자치 구상 - 본 연구는 조선시대 사람들을 이어주는 사회결속 방식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이해를 위해 조선후기 대표적인 실학자들인 유형원(柳馨遠), 안정복(安鼎福), 정약용(丁若鏞)의 향약, 계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았다. 향약과 계는 조선시대 향촌 자치조직으로서 성행했는데, 세 사람 모두 지역사회에서의 교화와 자치를 위한 사대부 역할론에 주목하고 향약에 높은 관심을 갖은 점은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처한 현실과 시대변화에 따라 이들의 향약론은 조금씩 차이를 보였는데, 특히 정약용은 향약 시행을 신중히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⑥ 연구주제 6: 학맥 전승의 계제적(階梯的) 장치로서의 계(稧) - 본 연구는 계의 작동 및 효용성을 학맥의 전승이라는 학문·사회적 영역에 대입하여 분석한 것이다. 호혜와 협동의 측면에서 계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는 상당한 연구가 축적되었지만 학맥(學脈) 전승의 계제적 장치로서의 계의 효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검토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고에서는 정경세(鄭經世) 문인의 자손들이 기획한 ‘우복문인자손계(愚伏門人子孫稧)’의 설립 배경, 작동 양상을 분석하여 그것이 갖는 사회적 효용을 가늠하는데 연구의 초점을 맞추었다. ⑦ 연구주제 7: 경주 이조동계와 그 이면의 협동 - 조선시대 동계의 호혜와 협동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사례로서 경주 이조동의 동계를 분석했다. 이조동계는 1658년(효종 9) 창계하여 1784년(정조 8)까지 120여 년 동안 작동한 사실로 관련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동계의 조직과 운영과 관련해서는 동안을 비롯하여 동중중기 그리고 고문서를 통해 분석하였다. ⑧ 연구주제 8: 19-20세기 경상도 지역의 보부상 단체에 대한 비교 연구 - 본 연구에서는 경상도 지역의 보부상 단체 중에서 자료가 상대적으로 충실하게 남아 있는 창녕, 고령, 진주, 울산 등의 지역을 대상으로 하여 19-20세기에 걸쳐 단체의 운영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었는지를 면밀히 고찰하였다. 기존 연구에서 단편적으로 소개된 내용을 넘어서 실증적이고 계량적인 방법론에 입각하여 심층 분석을 수행한 결과, 경상도 지역의 보부상 단체는 권역 내의 각전이 상호 결합하는 형태로 운영되는 사례가 많았으며, 해당 군현에 국한되지 않고 인근 지역을 포괄하는 상권을 아우르는 방식이었음을 밝혔다. (3) 3차년도 연구 결과 ① 연구주제 1: 학계(學契)에서 공립보통학교까지 - 본 연구는 조선시대 학계(學契)의 전통으로부터 근대적인 교육체제의 성립기에 이르기까지 교육기관 설립 과정상의 특성들을 시기별로 살펴보고 이 과정에서 교육이라는 공적 영역을 담당한 주체들의 관계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사회의 역사적인 공/사 관계의 성격을 탐구해보고자 하였다. 일제는 이 같은 공/사 경계의 모호함과 조선인들의 경쟁적 교육열을 이용하여 큰 자금의 투입 없이 기존의 학교들을 식민지 교육기관으로 전환시켜 갔다. 일제의 식민권력이 주도하는 교육체제의 기저에 한국 사회 전래의 공/사 경계의 모호함이 여전히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② 연구주제 2: 조선후기 방회(榜會)의 구성과 방임(榜任)의 사회적 위상 - 본 연구는 조선후기 동방계인 방회의 구성을 통해 동일시험으로 관료에 입사한 이들의 연대 문제를 다루었다. 방회(榜會)는 동일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의 모임을 지칭하는 말이다. 보통 동년계(同年契), 동방계(同榜契)로도 불린다. 본 연구는 이러한 모임인 생원진사 합격자들의 공식 방회에 주목하여 그 임원인 방임들의 정치적, 사회적 위상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관료들의 한 결속 모임이었던 방회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③ 연구주제 3: 문중, 동중 그리고 계 - 본 연구는 조선후기 문중, 동중, 계의 사례를 토대로 마을의 연대와 결속력을 살폈다. 특히 19세기 전라도 장흥의 상금도 사람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상금동 수원백씨들은 일찍부터 족적 결속에 관심을 쏟았지만 동중 통합에는 오랫동안 별 관심이 없었다. 상금동 수원백씨들은 1887년에 가서야 동중 결속에 눈을 돌려 동계(洞契)를 창설했다. 상금동 수원 백씨들은 상층에 속하는 잡성(雜姓)들의 연대를 위해 동계를 창설했다. 다시 말해 하민을 통제하기 위해 동계를 조직했다. ④ 연구주제 4: 파평윤씨 노종파(魯宗派) 사례로 본 조선후기 종약(宗約) 이념과 실천 - 본 연구는 파평윤씨 노종파의 「종약」을 통해 친족질서에 대한 이념이 종약에 어떻게 반영되고, 그 이념이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살펴보려는 의도로 작성하였다. 파평윤씨의 「종약」은 17세기 중엽 선묘에 대한 제사와 족친간의 화합을 위한 이상적 모형으로 제정된 것이다. 즉 문중 조직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목표와 이상이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노종파 구성원들의 학문적 성향과, 병자호란 이후 고향에 집결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 오방파로 분파하면서 향촌에서의 세거 기반이 요구되던 종족 내부의 분위기 등은 「종약」의 이론적‧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⑤ 연구주제 5: 장서각 수집 계문서 현황과 계 조직의 성격 - 조선시대 계는 많은 지역에서 촌락의 중요한 사회조직의 하나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당대 촌락사회의 운영원리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본고는 장서각에서 수집한 고문서에서 조선시대 계문서를 선별하여, 모두 109건의 계의 유형과 내용을 검토하였다. 지역적으로는 경상도 지역이 71건을 차지할 정도로 많은데, 그 중에서도 안동에서 31건에 달하는 계조직이 확인된다. ⑥ 연구주제 6: 문집간행을 통해 본 조선후기 지식인집단의 호혜성 - 본 연구는 19세기 초반 영남의 대표적 문집간행 사례로 꼽을 수 있는 채제공의 번암집(樊巖集)(1824) 간행 과정에 함축된 지식인집단의 호혜성을 추출하여 그 의의를 규명하는데 주안점이 있다. 번암집 간행은 ‘경남’과 ‘영남’의 의리적 연대와 제휴라는 장치사회적 배경 속에서 추진되었고, 이 논의를 이끈 것은 류상조·류태좌 등 류성룡의 후손들이었다. 번암집 간행의 필수 요건은 인적인프라와 물적 자산이었다. ⑦ 연구주제 7: 조선후기 경주 양동마을 동중(洞中)과 동회(洞會) - 본 연구는 경주 양동을 대상으로 17∼18세기 동안 마을의 고유자산, 즉 공유자산에 해당하는 수리시설에 대한 호혜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마을의 협동 내용을 살펴보았다. 두 번의 전쟁 이후 경주 일대에 동계 등 마을 결사체가 설립되는 경향에 맞추어 양동에도 동계와 향약 등이 조직되었다. 향약이 혼상부조 등 다른 마을의 동계 활동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면, 동계는 동중(洞中) 구성원의 공유자산 이해를 대변하기 위한 활동이었다. ⑧ 연구주제 8: 조선후기 보부상 단체의 전국 분포 조선 후기의 보부상 단체가 충청과 경상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다양한 지역에 형성되었으리라는 가설을 설정하고, 이 연구는 보부상 단체가 남긴 차첩(임명장), 빙표(상업 허가증), 표지(배부 책자), 비문(기념비) 등 네 가지 유형의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했다. 이런 자료는 해당 지역에서 보상이나 부상 단체가 활동하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증거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