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과제구분,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연구책임자, 공동연구자, 연구기간, 연구형태, 연구목적 및 배경, 연구방법 및 내용,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연구결과, 참고문헌, 연구결과물로 구성
과제구분 한국학기초연구 / 공동연구과제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 국문 : (AKSR2020-C08) 조선후기 성호학파의 心學 논쟁 연구
  • 영문 :
연구책임자 한형조
공동연구자 정종모, 박재휘, 최정연
연구기간 20200101 ~ 20201216 연구형태 공동연구
연구목적 및 배경
실학 연구의 비평과 논점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실학의 규정에서부터, 학파의 분류, 그리고 개별학자들의 구체적인 사상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운 시각과, 속속 발굴된 자료들이 새로운 연구를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실학 연구는 다산의 사회개혁론이 중심이었다. 이 축을 중심으로 그의 새로운 종교적 흡입을 둘러싼 논란과 그가 성취한 과학과 기술이 보조적으로 주목되었다. 그렇지만 다산 자신은 그의 經學的 성과를 더 크게 자부했으며 이를 통해 유교 문명의 문법을 혁신하고자 했다. 이 부분의 연구도 그의 사회과학적 經世學 못지않게 활발하다.
모든 학문에는 연원과 맥락이 있기 마련이다. 그의 경학 작업만 해도 명청대의 고증학, 그리고 서학의 도입과 학습이 없었다면 아마도 불가능했거나, 적어도 지금과는 매우 다른 형태로 낙착되어 있을 것이다. 어디 중국과 서구에서의 자양뿐만인가. 다산은 그가 「自撰墓誌銘」에서 밝힌 대로, 성호의 저작을 보고 학문에의 뜻을 세웠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만큼 󰡔疾書󰡕시리즈를 비롯한 성호의 방대한 저술이 그에게 준 충격은 컸고 그 자신, 성호를 둘러싼 근기 남인 학단의 직간접적 교류를 통해 자신의 학문을 익혀 나갔다.
다산 사상의 실제를 더 깊이 알고 그 이해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도 ‘성호학파’의 본격적 연구는 더 활발해져야 한다. 그동안 성호학파를 보는 시각 또한 ‘실학’의 관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도날드 베이커 교수는 성호학단을 실학의 이름을 묶는 것에 곤혹과 문제를 제기한다. 가령 성호는 󰡔藿憂錄󰡕을 저술한 경세가이지만 사단과 칠정이라는 오래된 논쟁에 몰두한 전통주의자였으며, 순암은 󰡔東史綱目󰡕을 저술한 역사가이지만 「天學問答」을 통해서 서학의 침투와 종교적 전파를 극히 경계한 보수주의자였다.
본 연구의 목적은 성호학파의 ‘心學’을 연구하는 데 있다. 그동안 ‘實學’의 틀에서 성호학파를 읽어내는 기존의 독법을 벗어나, 그들이 끌어안고 고민한 철학적 문제의식과 치열한 논쟁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성호학파 또한 인간의 감정과 욕구를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의 배양이 가장 중요한 실존적 과제임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를 위해 심학이라 불리는 마음의 개발에 관한 방법을 중시했으며 마음의 본질과 작용에 대한 이론적 탐구를 게을리할 수 없었다. 그 대표적인 성과가 성호의 󰡔四七新編󰡕이다. 이 저작이 다시금 성호학단의 인물들 사이에서 철학적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성호학파는 기본적으로 정주학을 토대로 심학을 이해했지만, 이해의 과정에서 미진하거나 모순되는 지점은 재해석과 논쟁을 통해 정교하게 설명하며 보완하였다. 이들은 반성적 비판이나 보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순자설이나 양명학처럼 비주류 전통지식은 물론, 서양의 외래지식까지 선별적으로 원용하여 새로운 심학 전통을 창조해나갔다.
성호는 사칠론을 조선의 서인과 남인 모두 공명할 수 있는 지식체계로 설계하여 보편 논리를 제시하고자 했고, 실제로 그의 지식체계에 혼재된 방대한 개념과 이질적 논리들은 그의 문인들에 수용되고 재해석되어 학파 내부에 다양한 학문적 갈래를 형성하였다. 다산의 철학과 경학처럼 기존 성리학 사유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사유가 탄생한 것도, 성호학파의 개방성과 다양성 없이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번 연구는 심학의 차원에서 이 논점을 본격 검토해보고자 하였다.
이처럼 성호학파의 사칠 논쟁은 조선 후기 지식계에 사상적 전환과 새로운 사조의 탄생을 추동한 주요 이론적 배경이었음에도, 그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다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실학의 공식 계보를 중심으로 인물과 사상을 연구하는 학술 풍조에서는 계보에 누락된 인물들의 치열한 논쟁과 철학적 결과물은 자연히 사상되었다. 그동안 한국학계의 관심은 반계-성호-다산의 실학 계보에 집중되었고, 특히 성호나 다산의 독특한 사유는 서학과의 관계에서 형성되었다고 보는 관점이 압도적 주류를 이루어왔다. 때문에 성호의 사칠론에 촉발되어 논쟁의 장을 형성하고 다산의 학술을 탄생시킨 중국의 신유학자 및 성호학파 문인의 해석들은 두 거장에 밀려 논의의 중심부로 들어오지 못하였다.
둘째, 성호학파에 관련된 연구가 역사학이나 정치학에 편중되었던 것도 한 이유이다. 실학의 관점에서 성호학파를 조망하는 과정에서 성호와 다산, 순암을 각각 경세가, 개혁가, 역사가로 보는 관점이 주류를 이루었고, 자연히 이들에 관한 연구도 경세 분야에 집중되었다. 근래에는 이들을 제외한 성호학파나 주변 문인들의 문학작품을 분석하거나 그들의 심학과 사칠설을 다루는 연구도 조금씩 제출되고 있지만, 연구의 전체 비율로 보았을 때 여전히 적다고 할 수 있다.
셋째, 기본 원전 자료의 탈초 문제나 분량의 불균형이 성호학파의 심학 연구를 지연시켰다. 성호학파 문인들이 남긴 저작은 개인별로 분량의 편차는 크지만 그 총합은 결코 적지 않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그것들은 탈초와 교감이 필요한 필사본 상태로 남아 있어 연구자들의 접근성을 떨어뜨렸다. 게다가 성호학파 문인이 천주교와 연루되면서 이들의 저작 상당수는 소각되거나 유실되었다. 기본 원전 자료의 부족이라는 문제도 성호학파 내 논쟁을 다각도로 구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그럼에도 근래에는 필사본의 탈초와 교감, 부분 번역이 상당 정도 진행되었고, 학계의 관심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본 연구는 지금까지 단편적으로 제출된 극소수의 선행연구를 참조하면서 성호학파의 사칠 논쟁에 영향을 준 정호와 정이를 비롯하여, 성호, 하빈, 정산, 순암, 다산 등 성호와 그 문인들의 심학 논쟁을 학술사적 맥락에서 전면 재구성하였다. 특히 논쟁 과정에서 성호학파 내 서로 다른 해석들이 충돌하고 접변하며 기존 이론체계에 미묘한 균열을 일으키고, 그것을 국지적 혹은 본질적으로 변형시키며 새로운 지식체계를 만들어간 지점들을 섬세하게 포착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독자들은 조선 후기 사상계에 활력을 불어넣은 일군의 문인들 사이의 교류와 상호작용을 목격하고, 쇠락기에 접어들었다고 간주된 조선 후기 사상계에도 진지한 철학적 탐구와 지적 도전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연구방법 및 내용
연구는 성호의 󰡔사칠신편󰡕을 위시하여 사칠론에 관련된 성호학파의 핵심 저작을 공동 강독하며 논의를 진행해 나갔다. 참여연구자들은 주요 문인들의 문헌을 차례로 강독하고 이들의 이론에 독자적 시선으로 접근하여 저마다의 주장을 명확하게 파악하였다. 나아가 이 주장들이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이론이 만들어지는 지점들까지 포착하고, 그 현대적 의미까지 탐색하였다. 수행한 공동 연구의 구체적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공동 원전 강독
성호학파의 사칠논쟁을 주도했던 문인 5인의 관련 저작 및 서신을 격주로 강독하였다. 여기에는 이미 교감을 거친 번역본과 아직 필사본 상태로 남아 있는 원전 모두가 포함되었다. 또한 주요 부분에 대한 논점을 정리하고 주요 문제를 토론하며 개별 문인의 주장을 차례로 숙지하였다.

강독 원전 목록
1. 이익 저, 󰡔사칠신편󰡕 전편
2. 안정복 저, 󰡔순암선생문집󰡕 관련 서신 및 「의문」
3. 신후담 저, 󰡔하빈선생문집󰡕 제9권
4. 이병휴 저, 󰡔정산잡저󰡕 제10권
5. 정약용 저, 󰡔심경밀험󰡕, 󰡔중용자잠󰡕, 󰡔중용강의보󰡕, 󰡔매씨서평󰡕 등

성호의 󰡔사칠신편󰡕은 퇴계의 사칠론을 도학정통으로 확립하고, 이를 이론적 기반으로 삼아 조선의 사상계를 통합하려는 성호의 독창적 저작이다. 성호는 기존 조선 성리학의 철학적 개념과 논리는 물론, 주변부의 비정통 지식까지 총동원하여 퇴계 사칠설을 이론적으로 정교하게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종래에는 볼 수 없던 포괄적이고 이질적인 지식체계를 구축하였다.
이 이론은 성호의 철학적 고민을 반영한 것이지만 퇴계의 사유와 달라짐으로써 새로운 논란을 일으켰고, 성호 문인들의 철학적 고민을 심화시켰다. 그들은 성호의 주장을 소화·비판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이론을 각자 다듬어나갔다. 순암과 하빈, 정산 사이의 논쟁은 성호학파 전체에 확산되었고, 문인들은 저마다 직간접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였다. 적지 않은 논란이 지속된 상황에서 순암은 그것을 집대성하려는 작업을 시도하였고, 다산은 선배 문인의 성과를 토대로 서학 지식까지 수용하여 전통과는 단절된 새로운 사칠론을 탄생시킨다.
본 연구는 이상의 논의를 입증하기 위해 상기 제시한 저작들에 섬세하고도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였고, 참여연구자들의 토론을 통해 개별 인물의 주장과 그 주변 인물들의 반응을 입체적으로 구성하고자 하였다.

(2) 개별 주제 연구
참여연구자들은 다음의 일관된 연구방법론에 기초하여 개별 주제를 심화시켰다. 우선 저마다의 관심과 목적에 따라 각 연구원들은 사칠논쟁에 참여한 주요 문인을 연구대상으로 선택하였다.
다음으로, 매달 2회에 걸쳐 진행되는 공동강독회에서 연구대상 및 주변 인물의 핵심 저서와 서신을 강독하고, 심층 논의를 통해 주장의 맥락을 정밀하게 파악하였다. 참여연구자들은 강독회에서 자신의 연구대상은 물론 다른 연구자들이 선택한 인물의 철학적 관점과 입장을 동시에 파악하였다. 이러한 연구 방식은 성호학파 문인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견의 충돌과 접변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데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공동 강독과 논의를 거쳐 각 인물들의 주장을 다각도에서 이해한 다음에는 한 인물이 제시한 주장과 그에 대한 다른 문인의 반응을 연구자 각자가 선택한 연구대상의 입장에서 해설하고 비평하였다. 서로 다른 이해와 관점들이 서로 보완하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성호와 그 학파의 논쟁은 보다 뚜렷하게 시야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각 연구자들은 성호학단의 주요 인물 중 하나 혹은 둘을 골라 그들의 사유를 연구의 주 테마로 삼았다. 1) 성호 이익, 2) 순암 안정복 3) 정산 이병휴와 하빈 신후담, 그리고 4) 다산 정약용으로 분야를 갈랐다. 이 구성은 성호 이익을 종장으로, 순암, 하빈, 정산 등의 논란과 학파성을 거쳐, 다산으로 이어지는 사유의 역동적 궤적을 추적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각 연구자들은 개별 사상가 한둘의 주장과 논쟁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한편,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와 연계하여 분석을 심화하고 지식을 확장하였다.
사단칠정의 문제는 단순한 학파와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근본 에너지와 그 합리적 운용에 관한 영원의 철학적 관심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본 연구책임자를 포함 네 명의 학자들이 성호학파의 심학을 깊이 있게 점검하고, 그를 둘러싼 맥락 그리고 그 현대적 의미를 가늠해 보고자 하였다.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Ⅰ. 한형조: 󰡔四七新編󰡕 읽기: 사단칠정론에 대한 성호 이익의 독법, 그리고 순암 안정복의
의견
1. 책의 「서문」 읽기: 동기와 접근
2. 「重跋」, 略曰: 성호사칠론의 개요
3. 「후설」, 율곡학파에 대한 비판
4-1. 氣發은 없다, 오직 理發만 있다
4-2. 理가 주도한다! 다양한 비유들
5-1. 사단과 칠정의 서로 다른 맥락
5-2. 사단과 칠정은 두 길이다
5-3. 일원론의 도전에 맞서
6. 七情=氣發理乘에 대한 성호, 퇴계, 율곡의 서로 다른 해석
7. 성호 말년의 수정론 – 칠정에도 사단같은 理發이 있다.
8. 순암 안정복의 비평과 반발

Ⅱ. 정종모: 정산 이병휴의 공칠정 이론의 성리학적 연원과 윤리적 의미
1. 들어가며
2. ‘공칠정’ 이론의 송대유학적 연원
3. 성현의 ‘공칠정’에 대한 이병휴의 견해
1) 성호 이익의 ‘공칠정’ 이론에 대한 이병휴의 평가
2) 성현의 ‘공칠정’에 대한 이병휴의 분석과 근거
4. 이병휴 ‘공칠정’ 이론의 윤리적 의미
1) 고봉의 이론에 대한 비판과 그 윤리적 의미
2) 도덕정감론의 각도에서 본 ‘공칠정 리발설’의 의미
5. 나가며

Ⅲ. 박재휘: 다산 정약용의 人心道心論 연구

1. 머리말
2. 성호의 인심도심론
3. 다산의 인심도심론
1) 주자의 인심도심 해석
2) 다산의 인심도심 해석
3) 다산의 인심도심상쟁설
4. 다산의 인심도심론의 특징
5. 맺음말

Ⅳ. 최정연: 성호학은 주자학의 미분화적 사고를 탈피했는가-리 개념의 세분화 현상을 중
심으로

1. 서론
2. 리의 분화
1) 리의 명칭들
2) 리 개념의 특징
3. 통체태극과 만수태극
4. 구분의 이유
5. 결론
연구결과 본 연구팀의 연구자들이 개별 주제를 점검하여 도출한 결론의 공통점은 성호와 그의 문인들이 자신의 심학 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지식의 출처나 권위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호는 전통 가르침을 존중하면서도 이론적으로 서로 충돌되거나 시의에 맞지 않는 지식에 대해서는 질타를 무릅쓰며 질의하고 논쟁하는 ‘자득’의 자세를 중시하였다. 그의 이러한 학문적 태도는 학파 내부에 개방적 분위기를 조성하였고, 실제로 성호의 문인들은 스승의 가르침에 의문이 생기면 과감히 질문하고 스승과 다른 관점을 제시하며 의견을 구하였다.
성호의 문인 가운데 하빈과 정산은 기존에 볼 수 없는 독창적 생각을 보여주며 자신의 주장을 보완해 나갔고, 옛 가르침을 가장 중시했던 순암조차 스승과 동학에게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런데 성호와 하빈, 순암과 정산은 퇴계설을 심학의 정론으로 세우고 이를 보완할 목적으로 다양한 지식을 동원하여 성리학의 외연을 확장한 반면, 다산은 전통과 외래의 학문 영역을 종횡무진하며 성리학과 격절된 장대한 사상체계를 건설한다. 실제로 그는 필요하다면 율곡설이나 퇴계설과 같은 주류 지식은 물론, 청대 고증학과 일본 고학, 순자설과 양명설와 같은 비주류 전통지식이나 서양 외래지식까지 원용하는 거침없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학파와 문명을 월경하여 지적 자원을 활용하는 다산의 학문적 과감성은 동시대의 조선 지식인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진취적으로 성리학의 심학 체계를 넘어설 수 있던 동력은 성호학파의 개방적 분위기와 수십 년에 걸쳐 학파 내에 누적된 독창적 관점이나 아이디어에서 산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주제별 검토와 개별 성과의 공유를 통해 성호학파의 심학 논쟁이 심층적으로 확장되며 급기야 새로운 지식체계로 전환되는 지적 흐름의 일면을 상세히 그려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런 점에서 본 공동연구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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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성호학파의 심학 논쟁 연구 (성과 요약 탑재).hwp

연구요약문

연구요약문: 전체 연구결과 요약, 세부과제별 요약로 구성
전체 연구결과 요약

본 연구의 목적은 성호학파의 심학 논쟁 가운데 사칠설과 인심도심설에 주목하여, 학파 문인들의 담론을 재구성하려는 것이다.
성호는 퇴계의 사칠설을 재편하여 리발 중심의 독창적 지식체계를 구축하였다. 그의 문인들은 의심나는 지점에 주목하고 다각도로 문제를 제기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로 순암, 하빈, 정산, 다산을 꼽을 수 있다.
순암은 ‘칠정도 리발’이라는 성호의 주장을 근거로 공칠정을 사단과 동일한 도덕 충동으로 보는 하빈의 주장을 논박하며, 성호에게 ‘칠정은 기발’이라는 퇴계설을 고수할 것을 요청한다. 또 한편 그는 하빈이 요청한 공칠정-리발설이 퇴계의 입론에 배치된다고 판단하면서도, 공칠정이 리발일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는 그의 태도는 ‘사단, 리지발; 칠정, 기지발’이라는 퇴계학파의 공안을 ‘근수규구’하는 한편, 개인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감정을 육신과 도식적으로 연관시키기를 주저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연구)
순암이 공칠정-리발설의 수용에 주저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정산은 하빈의 주장에 적극 동조하며 공칠정을 다른 칠정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공적 분노를 의리의 발출로 본 이정 형제의 주장에 기초하여 사단과 칠정을 리발과 기발이 아닌, 공과 사의 해석 틀에서 이해하고, 공적인 칠정을 리발에 귀속시킬 것을 요청한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칠정이라는 일반 감정의 도덕적 기초를 마련한 것으로, 공칠정과 같은 도덕 정감을 육신에서 파생된 이차적 사태가 아니라 의리와 도덕에 근원적으로 결합된 ‘가치감’으로 본다는 점에서, 사칠설에 대한 그의 독창적 관점이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연구)
정산이 사칠설에서 칠정의 성격을 구분하고 일부를 도덕의 영역에 귀속시켜 성호의 사칠설을 칠정 중심의 이론으로 전환했다면, 다산은 퇴계부터 성호에 이어 정산까지 참여한 사칠설의 기본 구조를 폐기하고 전혀 다른 지식체계로 욕망의 발현과 제어를 설명했다는 점에서, 성리학 전통을 탈피했다고 할 수 있다.
다산은 인간의 감정이 사단과 칠정이라는 해석 틀에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다단하다고 보았다. 때문에 기존의 사칠설로 감정과 욕망을 설명하는 대신 마음의 대립적 경향에 근거한 인심도심론으로 인간의 욕망과 통제를 명료하게 설명한다. 예를 들어 그는 인간의 심에서 선을 실행하고 싶은 충동과 육신의 요청으로 악을 저지르고 싶은 충동이 끊임없이 충돌한다고 보고, 삶의 순간마다 선에 대한 의지로 악을 저지하는 긴장 상태를 지속할 것을 주장한다. 그는 인간의 심에 내재된 ‘기호’덕분에 심의 충동이 인심인지 도심인지 직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믿었고, 사적 충동을 체험하는 순간마다 이를 제어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세 번째 연구)
종합하자면, 성호는 정설을 이탈하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과감히 개념의 의미를 바꾸어가며 사칠설의 발현구조를 재편했다. 그는 퇴계설의 본의를 명료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그것을 자신의 독법으로 고쳐 읽는데 서슴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학문적 태도는 성호학파 내에 다양한 학문적 갈래를 조성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빈과 순암, 정산을 비롯한 성호의 후학들 역시 성호와 마찬가지로, 스승의 학설이라도 미진한 부분이 있거나 이해되지 않는 대목에는 거리낌 없이 이의를 제기하고 새로운 해석을 개진한 것이다. 회의와 자득에 기초한 이들의 학문관은 성호 사칠설의 심화와 확장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그 확장의 끝자락에서 다산은 또 다른 이론적 지평으로 넘어가게 된다. (네 번째 연구)
세부과제별 요약

Ⅰ. 한형조: 󰡔四七新編󰡕 읽기: 사단칠정론에 대한 성호 이익의 독법, 그리고 순암 안정복의 의견

성호는 조선 후기 기호 남인의 중심 물이다. 이 글은 성호가 퇴계의 心學을 어떻게 계승했는지, 그의 독창적 지점은 어디인지, 그리고 이 독창성에 대해 그의 학파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살펴 았다. 논제는 역시 조선 유학의 유구한 문제인 사단칠정이다. 성호는 이 문제를 비껴하려 했으나 오랜 숙고를 거치며 자신의 주장을 정리한 󰡔사칠신편󰡕을 저술했다.
1) 그의 새로운 논점은 인간의 모든 정이, 사단이든 칠정이든 모두 理發이라고 주장하면서 파란을 몰고 왔다. 그는 모든 氣의 활동이 기 자체의 동력이라기보다 理의 명령에 기반한다는 것을 역설했다. 기실 주자가 말한 수많은 언급에서 이 주장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물론 그 반대편의 주장도 허다하다.) 이는 율곡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뒤집어 놓은 것이다. 성호의 새로운 지점은 理가 실질적 주재자임을 확인하는 구절을 찾고, 여기 수많은 비유를 덧보탠 데 있다. 2) 그런데 문제는 성호가 여전히 사단=리발, 칠정=기발이라는 퇴계의 원론을 아울러 역설함으로써 야기되었다.
1)과 2)는 엇갈리는, 서로 모순되는 주장같아 보인다. 성호는 그러나 여기 모순은 없다고 변호한다. 칠정은 신체의 촉발이라는 점에서 氣發이라 할 것이나, 그 근본 동력은 역시 理가 맡고 있다는 것이다. 성호는 퇴계의 원론을 한편 확인하면서 한편 뒤흔들어 놓은 셈인데, 이 새로운 입론이 곧 분분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은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더 곤혹스러운 것은 성호가 자신의 입론을 ‘다시’수정했다는 것. 나중 성호는 하빈 신후담의 의견을 따라 “공적인 칠정은 理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표명했다. 이는 사단과 칠정이 뒤섞일 수 없다는 기존의 입장에 대한 큰 수정이다. 우물에 빠진 아이를 건지러 뛰어가는 가슴철렁한(惻隱) 마음이 理發이라면, 아이를 건지는 것을 보고 안도하고 ‘기뻐하는’ 마음은 왜 理發이라 아니할 것인가. 그래서 성호는 신체적 반응이라고 해도, 자신의 이해관계나 이기적 고려 없이 발출하는 ‘공적 희로’는 사단과 마찬가지의 자격을 갖고 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단이 逆境에서의 리발이라면, ‘공적 희로’는 順境에서의 리발이라 불러 좋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성호학파에서 논란은 처음의 것보다 지금 보듯 “공적 희노를 리발로 볼 것이냐”를 둘러싸고 불붙은 듯하다. 순암은 그 논쟁에 본격 뛰어들지는 않았다. 그는 성호의 초기 󰡔사칠신편󰡕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는 이보다 퇴계의 본지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 듯하다. 이 문제를 영남의 학자들에게 문의한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순암의 입론을 정리하면 이렇다.
“사단=리발, 칠정=기발이 정설이다! 사단에도 부중절이 있다고? 아니, 그것은 氣의 방해라 해야지, 理의 본령에 있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
그의 학문 자세는 ‘창견’을 강조하지 않고, ‘근수규구’ 옛 전통과 가르침을 충분히 소화시켜나가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녹암 권철신과 길을 달리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의 형이상학적 논쟁은 접고, 일상의 학문과 연마에 집중하자는 뜻에서 󰡔하학지남󰡕을 지었다. 그리고 한창 번성하는 서학의 확산을 위태롭게 여겨, 서학을 비판하고, 주자학을 옹호한 󰡔천학문답󰡕을 지었다. 그는 「擬問」이라는 저서에서, 본연지성은 동물이 가질 수 없고, 기질지성만 있다는 파격적 주장을 했다. 이 발상은 주자학의 본령인 연속적 사유와도 다르고, 서학의 인간중심주의적 생각이며, 다산 또한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순암은 나중 공희로 문제에 대해 또 다른 소리를 하면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퇴계의 생각을 자세히 살폈더니, 공희로는 理發이라고 한 듯도 한데...”

Ⅱ. 정종모: 정산 이병휴의 공칠정 이론의 성리학적 연원과 윤리적 의미

貞山 李秉休(1710~1776)는 星湖 李瀷(1681~1763)의 문인이다. 이 글은 그의 이론을 중심으로 星湖學派 내부에서 논의된 이른바 ‘公七情’논쟁에 접근하려 한다. 여기에서 공칠정 논쟁이란 성인의 정감을 理에 귀속시킬 수 있는가 여부에 대한 담론으로서, 이 논쟁은 조선 성리학사에서 멀게는 퇴계와 고봉의 논쟁에, 가깝게는 성호가 󰡔사칠신편󰡕에서 ‘성인의 칠정은 氣發에 속한다’고 규정한 것에 연원을 둔다. 문제는 논의 과정에서 河濱 愼後聃(1702~1761), 邵南 尹東奎(1695~1773), 順菴 安鼎福(1712~1791), 정산 이병휴 등이 참여하고, 그 과정에서 성호의 관점도 변화를 겪으면서 본격적인 학술 논쟁으로 확대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은 먼저 공칠정 담론의 성리학적 원류로서 북송유학에서 대두된 성인의 정감을 둘러싼 논의를 살피고, 그에 대한 해석의 맥락에서 정산 이병휴의 관점과 그 의미를 설명한다. 북송 유학에서 성인의 정감을 본격적인 철학적 주제로 끌어올린 인물은 邵康節이다. 그는 公과 私의 대립을 본성(性)과 정감(情)의 대립에 상응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의리에 따른 정감의 순화를 수양의 중요한 목적으로 간주했다. 덧붙여 성인은 정감을 지니면서도 정감의 편향에 얽매이지 않는 초월적 경지를 향유함을 강조했는데, 이러한 관점은 程明道와 程伊川의 철학에 영향을 주었다. 예컨대 정명도나 정이천은 성인의 분노는 일삼음이 없는 무위의 본연에 따른 것이며, 그리하여 대상 자체의 好惡에 따른 마음의 應物 작용만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논리에서 그들은 순임금이나 안회의 분노를 사적인 분노가 아니라 의리의 발출에 따른 공적인 분노로 해석했다.
이러한 북송 유학의 논의는 퇴계와 고봉 등을 거쳐 성호에 이르러 공칠정 담론으로 발전했다. 특히 정산은 기존의 사단칠정론과 공칠정 문제를 뒤섞지 말고 별도의 논제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이러한 접근은 사단칠정론을 우회하여 성인의 정감에 대한 북송유학의 논의에 접근한다는 이론적 의미를 지닌다. 한편, 공칠정 문제와 관련하여, 성호는 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공칠정은 기발이다’라는 󰡔사칠신편󰡕의 애초 논지를 고수했다. 하빈 신후담은 이러한 관점에 반대하면서 ‘공칠정은 리발이다’고 주장했는데, 정산은 하빈의 견해를 수용하면서도, 성호의 관점이 반드시 ‘공칠정은 기발이다’는 논지로 귀착한 것은 아니며, ‘공칠정은 리발이다’는 근본 취지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파악했다. 이를 통해 그는 소남 윤동규나 순암 안정복의 견해에 대항하여 성호-하빈-정산 노선의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정산의 관점이 갖는 의미는 사단보다는 ‘公喜怒’ 또는 ‘공칠정’ 개념을 앞세움으로써 ‘사단칠정론’ 체계보다 ‘칠정론’ 체계를 우위에 두었고, 칠정의 ‘소종래’로서 公과 私의 구별만을 ‘理發’과 ‘氣發’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로써 그는 ‘사단칠정론’을 ‘칠정론’으로 재편하는 파격을 감행했다. 또한 윤리학적 측면에서 그의 관점은 도덕정감을 일종의 파생된 이차적 사태가 아니라, 의리나 도덕과 근원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가치감’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창조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Ⅲ. 박재휘: 다산 정약용의 人心道心論 연구

이 글은 다산의 임심도심론이 성호의 인심도심론과 어떻게 다른지, 성호의 인심도심론과 비교해 보았을 때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살펴 보았다. 성호는 사칠설을 중심에 두고 인심도심론을 이해했다. 그는 신체적 요구 여부에 따라 사단과 칠정을 구분하고, 사단을 도심의 다른 이름으로, 칠정을 인심의 다른 이름이라고 보았다. 특별히 인심과 칠정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칠정이 인심에 속한다는 점에서 인심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본래 인심은 육체의 생리작용과 반응에 대한 인지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성호는 인심과 인욕을 구별하면서 인심이 위태로운 이유를 칠정의 不中節에서 찾았고, 인심이 도심의 명령을 들을 때 칠정은 중절하게 되고 선이 된다고 보았다.
다산은 주자가 사람의 마음을 지각의 내용에 따라 인심과 도심으로 구별한 것과 달리, 인간의 성을 두 가지 嗜好, 즉 기질지성과 천명지성으로 파악하고 육체적 욕망에 해당하는 기질지성에서 인심이 나오고, 윤리적 욕망에 해당하는 천명지성에서 도심이 나온다고 보았다. 천을 리가 아닌 상제로 보았던 다산은 성리학자들이 사용하던 본연지성 대신 천명지성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다산은 󰡔서경󰡕 「대우모」에 인용된 “人心惟危, 道心惟微”가 동물과 마찬가지로 形氣에서 발한 위태로운 인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늘에서 내려준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성품에서 유래한 은미한 도심을 보존하여 인심을 주재하지 못한다면 성인도 미치광이가 될 수 있고 사람도 동물과 같아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다산은 주자가 인심을 중립적으로 본 것과 달리 인심을 예비악, 즉 인욕과 다름없는 것으로 보았다. 형기에서 생긴 인심은 그 자체로 인욕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은 도심과 인심의 전쟁터라 할 수 있다. 이 실존조건은 보편적이다. 성인이든 어리석은 자든 누구나 구체적 상황 속에서 도심과 인심은 함께 발하게 되고 두 마음 사이에 교전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 어느 쪽이 이기느냐는 전적으로 나의 판단과 행동에 달려 있다. 이때 인심을 극복하고 도심을 따른다면 선을 행하는 것이 되겠지만 인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인심이 하고 싶은 대로 따른다면 악을 행하게 된다.
다산의 인심도심론을 성호의 인심도심론과 비교해 보면 두 가지 특징이 보인다. 첫째, 다산의 인심도심론은 성호와 달리 사단칠정론과 관계가 없다. 성호의 인심도심론은 사칠설에 기반하고 있어 인심과 도심의 관계에 대한 논의도 사단과 칠정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다산의 인심도심론은 성기호론에 기반하고 있어 인심과 도심의 관계에 대한 논의도 사단과 칠정의 범주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둘째, 다산은 성호와 달리 인심과 도심의 관계를 대치 관계로 본다. 성호는 인심을 중립적으로 보면서 인심이 위태로운 이유를 칠정의 부중절에서 찾는 한편 인심이 도심의 명령을 따르게 되면 칠정도 중절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는 그가 인심과 도심의 관계를 대치 관계로 보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다산은 인심을 인욕으로 보면서, 일이 있을 때 사람의 마음에서 인심과 도심의 전쟁이 벌어진다고 본다. 다산에 이르러 인심과 도심의 대치는 극에 달하는 것이다.
향후 성호의 제자 그룹의 인심도심론에 대한 연구가 추가로 진행된다면 성호학파의 인심도심론의 전모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성호와 다산의 인심도심에 대한 해석 차이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인지도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Ⅳ. 최정연: 성호학은 주자학의 미분화적 사고를 탈피했는가-리 개념의 세분화 현상을 중심으로

이 글은 성호학에서 理 개념이 분화된 구체적 실태를 검토하여 성호의 사유를 평가하는 기존 연구의 엇갈린 시선을 점검해 나갔다. 이를 위해 먼저 성호의 문집에 나타난 용례들을 취합하여 임의로 범주를 구분하고 그에 해당하는 명칭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성호의 관점에서 다시 이들을 분류하여 그가 자연과 心을 기준으로 리를 구분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성호는 리 개념을 대략 ‘자연에서 실현되는 리’와 ‘심에서 실현되는 리’로 구분했지만, 그의 리 개념에는 의미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성호의 리 개념에 포함된 의미들이 전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성호가 태극과 일리의 실체를 부정하고 개별 리만 인정했는지의 여부를 검토하면 곧 확인할 수 있다. 성호는 주자와 마찬가지로 태극과 일리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했다. 그의 사유에서 태극과 일리는 자기 복제를 통해 만물에 내재 되었고 만물은 통합된 질서에 제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단일한 유기체를 이루었다. 이는 성호학이 주자학을 탈피하려고 시도하거나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성호의 사유에 심의 유무를 기준으로 리의 의미와 기능을 구분하려는 시도가 뚜렷하게 나타난 것도 사실이다. 시도의 이유는 근대과학의 선취나 주자학적 사유의 이탈이 아닌, 그를 둘러싼 인문 환경이 조성한 학술 논쟁에서 찾을 수 있다. 원인은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그 후보 중 하나로 사칠 논쟁을 제안했다. 성호는 퇴계설을 보완하고 율곡설을 논박하는 것을 그의 학술적 과제로 삼았다. 자연과 심의 패턴의 차이에 기초해 육신과 심의 기능적 차이를 강조한 그의 주장은, 자신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한 이론적 기초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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