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과제구분,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연구책임자, 공동연구자, 연구기간, 연구형태, 연구목적 및 배경, 연구방법 및 내용,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연구결과, 참고문헌, 연구결과물로 구성
과제구분 한국학기초연구 / 공동연구과제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 국문 : (AKSR2020-C15) 일기(日記)의 문화사 : 동서문화 융합연구의 가능성 모색
  • 영문 :
연구책임자 김학수
공동연구자 한도현, 정치영, 신정수, 김정운, 이민주, John S. Lee, Holly Stephens
연구기간 20200101 ~ 20201216 연구형태 공동연구
연구목적 및 배경 ‘일기(日記)’는 그것이 어떤 지역에서 어떤 언어와 형식으로 작성되었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경험과 인식에 기초한 주관적 기록이다. 개인이 기록한 다양한 형식의 일기는 국가나 공공 기관에서 작성한 기록을 통해 포착하기 어려운 개인의 체험과 생각을 보여준다. 일기에 반영된 체험과 생각은 총체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시선에서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재구성한 것이다. 이러한 일기 자료의 특성에 주목하여 역사상에 접근한다면 개인들의 삶을 주제로 한 다른 방식의 역사를 구성해 볼 수 있다.
일기 자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일기 쓰기의 주체는 개인이다. 지금까지 역사에 대한 이해는 국가의 입장과 관점으로 해석되고 이해되었던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기는 개인의 시각으로 국가와 사회를 보고 기록한 것이므로, 국가 중심의 역사 이해를 넘어 개인을 중심으로 국가와 사회에 대한 다양한 인식을 할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서 국가 혹은 공동체 중심의 역사 이해에서 소홀했던 개인의 존재를 환기하고, 이를 통해 한국사 해석의 다양성에 접근할 수 있다.
둘째, 일기는 공간적으로 특정한 지역을 기반으로 한다. 일기가 개인의 구체적 삶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전통시대에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공간적으로 제한된 삶을 살았다. 자연히 그 삶은 그 지역의 특성이 반영되었다. 이 때문에 일기를 활용한 연구는 시공간을 넘어 다양한 지역을 대상으로 할 수 있다.
셋째, 법전이나 의례서 등에서는 볼 수 없는 실상을 담고 있다. 일기는 관념이 현실에서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적절한 자료이다. 이를테면 조선시대 의례가 󰡔가례󰡕에 근거하여 운영되었다고 통상 알고 있지만, 과연 현실에서 실제로 그랬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일기는 바로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이런 특징을 감안하여 같은 시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국가 정책과 그 실현 실태를 비교 고찰하여 역사 연구의 대상과 방법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
넷째, 서사성이 풍부한 기록이다. 일기는 매우 단편적인 정보를 담은 고문서와 같은 기록물이 가진 빈 곳을 메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관찬 사료가 갖는 장점 중 하나는 상황의 연속적 전개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런 관찬 자료의 특성은 다양한 종류의 민간 자료들이 보여주기 어려웠던 장점이다. 일기는 민간 자료 중에서 그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자료이다.
개인의 일상은 의식주와 지적 활동, 유람 여행, 자연 환경, 경제 활동, 사회적 관계망 등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을 담은 일기를 활용하면 일상 영역의 다양한 영역에 대한 문화적 접근이 가능하다.
연구방법 및 내용 일기에는 일상의 다양한 요소가 기록되어 있다. 인문사회 환경과 자연환경은 일기의 행간에 담겨 있다. 인류학, 혼인 가족과 사회학, 지리학, 복식과 의류, 건축과 거주 양식 등 시공간을 달리하며 살아간 사람들의 기록은 다양한 분과 학문의 접근이 가능하다.
󰡔인재일록(忍齋日錄)󰡕(조극선), 󰡔야곡일록(冶谷日錄)󰡕(趙克善), 󰡔야곡집(冶谷集)󰡕(趙克善), 󰡔매원일기(梅園日記)󰡕(金光繼), 󰡔고문서집성󰡕1(광산김씨편), 󰡔묵재일기(黙齋日記)󰡕(金磏), 󰡔여온일기(汝溫日記)󰡕(김선)와 󰡔과헌일기(果軒日記)󰡕(金純義), 󰡔미암일기(眉巖日記)󰡕(柳希春), 󰡔쇄미록(瑣尾錄)󰡕(吳希文), 󰡔묵재일기(默齋日記)󰡕(李文楗), 󰡔산중일기(山中日記)󰡕(丁時翰), 󰡔우담집(愚潭集)󰡕(丁時翰), 󰡔유행록(遊行錄)󰡕(權燮), 󰡔MY FIRST SUMMER IN THE SIERRA󰡕 등 일기 및 문집 등의 자료에서 문화적 요소를 탐색할 수 있는 사례 및 장면을 발굴하고 공유한다.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논문 1 : 지식 : 17세기 사대부의 지식문화인프라의 구축과 활용
논문 2 : 가족 : 일기로 본 사대부의 일상과 가족
논문 3 : 복식 : 일기로 본 조선 중기 복식의 유통문화
논문 4 : 교환 : 쇄미록에 나타난 16세기 조선 선비의 사회관계망의 구조와 실천
논문 5 : 여행 : 일기로 본 조선후기 여행문화
논문 6 : 환경 : Everyday Ecologies
논문 7 : 문화 : 존 뮤어의 일기 󰡔시에라에서 첫 번째 여름󰡕 연구
논문 8 : 경제 : Diaries in Economic History
연구결과 ‘일기의 문화사 : 동서문화 융합연구의 가능성 모색’ 대주제 하 8개 연구논문
1책, 8개 주제, 388쪽
200자 원고지 약 1517.0매
→ 일기의 문화사에 대한 8개 주제 연구 논문 집필(계획서 8개 주제 대비 100% 달성) 및 단행본 1책 원고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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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물 종결과제 결과물 연구결과물 제출[2020.09.17]1.hwp

연구요약문

연구요약문: 전체 연구결과 요약, 세부과제별 요약로 구성
전체 연구결과 요약

1. 17세기 사대부의 지식문화인프라의 구축과 활용
-조극선의 󰡔인재(忍齋)󰡕․󰡔야곡일록(冶谷日錄)󰡕에 나타난 지적(知的) 기호(嗜好)를 중심으로-

이 글은 조극선(趙克善, 1595-1658)의 일기 󰡔인재일록(忍齋日錄)󰡕(1609-1623)․󰡔야곡일록(冶谷日錄)󰡕(1624-1635)을 통해 17세기 사대부의 지식문화인프라의 구축 및 활용 양상을 지적 기호(嗜好)의 모색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는데 주안점이 있다. 본고의 핵심 텍스트인 조극선의 일기는 지성사(知性史) 분야의 새로운 사료의 발굴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17세기 사대부 지식인은 어떤 과정을 거쳐 양성되는가? 필자는 본고에서 이런 질문에 대한 가시적 해답에 접근했다. 사대부 지식인의 지식문화 인프라의 양대 축은 책과 문견이었다. 책은 크게 ‘가전본’, ‘수증본’, ‘자비본’으로 구성되었으며, 조극선의 경우 약 600책을 소장하고 있었다. 더욱 중요한 한 것은 책의 기획적 수집과 획득이었고, 그것은 학자적 방향 및 기호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었다. 조극선은 그가 사사했던 세 선생과의 문답‧청강을 통해 지식을 수렴하고, 학문적 와연을 확대했다. 그러나 세 선생의 주장과 담론은 서로 달랐고, 쏟아지는 정보를 어떤 시각을 취사할지는 오롯이 자신의 문제였다. 세 선생의 서로 다른 주장은 매우 정상적이다. 오히려 학파 또는 정파적 진영논리에 따라 의견이 획일적이라 예단하는 것이 비정상적 학문의 형태일 것이다. 선생의 주장은 조극선의 학적 지표 설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본디 그는 ‘우율인식’에 있어 이이보다는 성혼을 존신하는 입장이었지만 조익의 지속적인 율곡존신론적 단론은 조극선을 조익보다 더한 율곡혹모론자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조극선은 자기 시대의 다양한 학술정보를 수렴하여 학파와 정파에 치우치지 않는 학인을 꿈꾼 것 같다. 퇴계학 관련 텍스트의 광범위한 수렴과 퇴계학에 대한 침잠은 그 단적인 양상으로 포착되었다. 그의 이러한 퇴계학 학습행위는 17세기 초반의 사상계가 결코 폐쇄적이지 않았음을 웅변한다.
조극선은 태생적으로 서인 기호학파에 속한 인물이었다. 율곡학에 대한 학적 기호는 연원을 중시했던 사림들의 학자관을 반영하는 것이며, 그 또한 그런 궤도를 이탈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퇴계학과 율곡학의 보편적 수용을 통해 보다 큰 공부를 지향하려 했던 조극선의 의도는 조익이라는 스승과의 학문적 만남을 통해 일정한 궤도 수정이 불가피했다. 그는 세월이 진전될수록 율곡에 대한 학문적 경도의식을 보였고, ‘학자’‧‘관료’ 양변적 측면에서 이이를 훼손할 수 없는 ‘완인’으로 설정, 추앙했다. 이것은 기호학인이 극복하기 어려웠던 퇴행적 자정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제 일기는 생활사의 영역을 넘어서야 한다. 조극선의 일기는 지성사 연구에 있어 일기의 활용성을 증언, 증명하는 양질의 텍스트임이 이 글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일기는 개인의 주관이 개입된 자료이기 때문에 활용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한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료로 활용하고 있는 자료 가운데 저술‧편찬자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자료가 있는가? 실록은 이런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문집은 그런 오해로부터 빗겨갈 수 있는가? 주관성의 우려는 그 자료를 다루는 연구자의 학술적 솜씨의 영역이지 자료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닐 듯하다. 불필요한 학문적 기우의 양산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2. 일기로 본 사대부의 일상과 가족 - 김순의(金純義, 1645~1714)의 󰡔과헌일기󰡕를 중심으로-

이 글은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전반에 경상도에 거주하였던 사대부 김순의의 일기를 통해서 제사 설행의 실태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18세기 이후 제사의 특징과 그 의미를 검토한 글이다. 필자는 이 연구에서 김순의의 일상을 통해서 18세기 종자의 역할을 확인하였다. 저술에 따르면 김순의의 일기를 보면 그는 1년에 20여회에 걸쳐 기제사와 각종의 절제를 참여하였다. 과연 제사로 일상이 구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평균 한 달에 두 번은 기제사가 있었고, 명절 차례와 각종 상례를 포함하면 일상에서 상제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일상에서 매일 사당에 참배를 한다거나 제사의 앞두고 재계를 열심히 했다는 기록은 확인하지 못하였다. 너무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았거나, 하지 않았거나 둘 다 생각해 볼 수 있다.
김순의가 제사를 지내는 모습에서 18세기 경상도 지역에서 종자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제사를 담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김순의와 그의 친족들은 선조의 제사를 분담하였다. 이를테면, 김순의에게 증조가 되는 김해의 제사는 김순의와 재종이 분담하였다. 또 김순의의 고조 김부의의 제사는 삼종이 되는 김억이 제사를 담당해야할 차례가 있었다. 김순의는 고조 이하의 제사를 설행하는 데에 있어 독점적으로 제사를 거행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김순의와 친족들은 선조의 제사에 대해 역할을 분담하여 시행하였던 것이다. 덧붙여 당시 상속 경향을 고려하면, 점차 장남을 우대하고 딸에 대한 차등이 드러나면서도 상속에 대한 법 규정은 변함이 없었으며, 실제로 딸에게도 상속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부모로부터 재산을 상속받은 이들은 자녀로서 부모에 대한 역할을 분담해야 하는 의무에서 완전하게 배제되지 않았다. 이것은 제사를 아들 혹은 장자가 주로 봉행하면서도 부모 제사에 대해서는 윤행을 고수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3. 일기로 본 조선 중기 복식의 유통문화 - 󰡔미암일기󰡕와 󰡔인재·야곡일록󰡕을 중심으로-

이 연구의 필자는 조선시대 일기자료에 대한 관심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연행록이나 일본일기문학을 중심으로 한 비교 관점에서 본 복식연구와 사대부 일기를 통해 일상생활 속 복식문화를 추적하는 연구였기에 󰡔미암일기󰡕와 󰡔인재·야곡일기󰡕를 기본 텍스트로 하여 복식 관련 자료를 먼저 추출해 냈다. 둘째, 추출해 낸 복식관련 자료를 유통양상에 따라 하사(下賜)·매매(買賣)·대여(貸與)·수수(授受)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셋째, 이 과정에서 실물확인이 가능하거나 이해를 돕는데 도움이 되는 복식관련 시각자료가 있을 때에는 이를 적극 활용하고자 한다. 끝으로 󰡔미암일기󰡕와 󰡔인재․야곡일록󰡕을 통해 16세기와 17세기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복식문화가 있는지 찾아보고자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조선시대 다양한 복식문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후기의 복식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며, 조선중기의 새로운 복식문화를 통해 보다 풍성한 우리의 복식문화를 밝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하였다. 󰡔미암일기󰡕는 유희춘이 1567년부터 1577년까지의 기록으로 당시 전라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으며, 󰡔인재·야곡일록󰡕은 1609년부터 1635년까지의 기록으로 당시 충청도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는 자료이다. 특히 󰡔미암일기󰡕는 유희춘이 유배에서 벗어나 관리로서 복귀하는 시점으로 관리로서의 복식을 장만하는 과정이 비교적 상세히 드러나고 있으며, 󰡔인재·야곡일록󰡕은 조극선이 결혼을 하기 전과 후의 상황을 복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구체적인 복식을 장만하는 내용이 적혀 있어 복식의 유통과정을 하사(下賜), 매매(賣買), 대여(貸與), 수수(授受)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으며, 이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단령은 관리들의 상복(常服)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혼례 때만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하여 관복을 입도록 허용했다.
둘째, 사돈집과 화장실은 멀어야 하고 시집간 딸은 친정에 거의 올 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조선 중기의 상황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셋째, 유희춘은 관리로서 필요한 관복을 처음에는 빌려 입었으나 나중에는 직접 제작도 하고 구입도 했던 것으로 파악되며, 조극선의 경우도 결혼할 때 단령과 사모를 빌려서 착용했으며, 이후로는 주변에 바느질 솜씨가 좋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단령을 제작하였다.
넷째, 망건은 머리를 단정하게 걷어 올리기 위한 머리쓰개의 일종으로 사모나 갓을 쓰기 전에 필요한 물목이다. 지금까지 망건은 완성품으로 구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야곡일록󰡕에서는 머리띠만을 장만하고 그 위에 관자는 끈, 풍잠 등은 자신의 형편과 직품에 맞게 꾸민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섯째, 바느질의 주체가 여성에서 확대되어 󰡔야곡일록󰡕에서는 조극선이 상복이나 제복 등을 지었다는 기록을 자주 볼 수 있다.
여섯째, 지역별 복식의 명칭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며, 또 착장방식에도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4. 쇄미록에 나타난 16세기 조선 선비의 사회관계망의 구조와 실천: 약한 연대의 강함(Strength of Weak ties)

본고는 쇄미록 저자의 탁월한 선비모습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진주박물관에서 최근에 번역한 국역본을 자료로 하며 제1권 󰡔임진남행일록󰡕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기존연구들 가운데 Finch(2009) 등 권1만을 대상으로 분석한 것들이 있다. 제1권은 1591년 말-1592년 말에 이르는 기간에 대한 기록인데 본 연구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쟁점들이 아주 뚜렷이 드러나고 있기에 이 글에서는 권1 󰡔임진남행일록󰡕에 집중할 것이다.
쇄미록은 16세기 조선 선비의 사회적 관계망의 한 단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7년 전쟁의 피난 생활 속에서 조선 선비의 사회관계망, 구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연결망을 본다. 그 연결망은 연줄/폐쇄적 단합이라는 부정적 모습이 아니라 전쟁의 칼날 속에서도 삶을 가능케 하는 강력하고도 신비한 사랑의 방정식이다. 이 사랑의 방정식의 그래프를 만들어주는 수많은 점들이 ‘사회적 실천’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쇄미록은 16세기 조선 주자학의 황금 시대의 해부학이며 인류학적 ethnography이다. 제3자의 방관자적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치열한 기록이다. 열정,고통, 눈물로 쓰여진 쇄미록은 ego-document(Dekker 2002)로서 근대 서양의 일기류보다 자료로서, 작품으로서 가치가 더 높다고 할 것이다. Dekker(2002)는 ego-document의 특징을 문학적, 주관적, 체험적, 감정·생각·활동의 기록이라고 했다. 이것은 일기자료의 특징을 잘 말해주는데 아마도 쇄미록은 조선시대의 일기들 가운데 이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자료일 것이다.
쇄미록을 통해 주자학적 지식인의 새 유형을 발견할 수 있다. 경제활동, 가사업무, 정세분석, 놀이 등의 역동적, 사회적 존재로 선비가 등장한다. 2) 16세기 선비/사대부의 사회관계망과 그 실천을 통해 ’친족‘의 정태적 구조를 넘어서 역동적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16세기의 다층적, 양계적, 역동적 요소가 조선 후기에 갑자기 사라졌을까라는 의문을 던져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서 엄숙한 선비의 모습, 가부장적 폐쇄적 동족집단, 부계중심의 4대 봉사, 오복친 등은 더 공식화되어서 그 공식화된 모습이 조선사회의 표면을 덮게 된다. 그 표면이 너무 강하게 보여서 그 밑을 구성하는 다층적, 복합적 관계는 시야에서 사라져 간 것이 아닐까? 쇄미록은 16세기의 기록인데도 율곡이나 퇴계와는 너무 다르지 않은가? 표면에 드러난 사회구성의 심층을 구성하는 복잡계를 보면 그 실상은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쇄미록은 비판적 인류학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5. 일기로 본 조선후기 여행문화 - 󰡔山中日記󰡕와 󰡔遊行錄󰡕을 자료로-

본 연구는 일기를 활용하여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여행을 복원하고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여행 목적과 준비과정, 교통수단, 그리고 숙박과 식사, 여행 중의 활동 등 여행 행태를 전반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연구자가 주목한 자료는 조선후기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의 󰡔산중일기(山中日記)󰡕와 권섭(權燮, 1671~1759)의 󰡔유행록(遊行錄)󰡕이다. 두 일기는 장기간에 걸쳐 주로 여행 기록을 기록한 것으로, 일기와 유산기의 중간적 성격을 지닌 자료이다. 본 연구에서는 두 사람의 여행 일기인 󰡔산중일기󰡕와 󰡔유행록󰡕을 기초자료로 분석하며, 조선후기의 상황을 복원하기 위해 당시의 지리지와 지도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유산기도 활용하였다. 그리고 여정과 방문지의 특성을 확인하기 위해 현지 조사도 병행하였다.
정시한과 권섭이 여행에 나선 동기는 아름다운 산수와 문화역사유산을 감상하고, 심신을 수양하기 위한 목적 외에도 개인적인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였다. 오늘날과 달리 조선시대 여행은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졌기 때문에 여러 가지 준비과정이 필요하였고, 특히 식량 등 여행 물품의 조달이 중요하였다. 그 방법은 노비가 집을 오가며 수시로 가져오는 것, 여행 중에 친지로부터 물품을 제공 받는 것, 그리고 구입이나 물물교환으로 조달하는 것 등이었다. 그리고 여행의 동반자는 가족과 친지, 노비, 승려, 악공, 기생 등이었는데, 특히 노비와 승려의 역할이 컸다.
정시한과 권섭이 주로 이용한 교통수단은 말이었다. 말은 가격이 비쌌고 여행기간이나 여정에 따라 여러 필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친지나 관아에서 빌려 타는 사례가 많았다. 말의 관리를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했으며, 역과 주막을 적절히 활용하였다. 그러나 말 때문에 곤란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산을 유람할 때는 두 사람 모두 가마를 활용하였으며, 17-18세기 사대부를 위한 사찰의 가마 운영은 어느 정도 일반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배는 교통수단이라기보다는 유흥의 도구로 이용되었다.
여행 중의 숙박은 친지의 집, 사찰, 역, 서원 등의 장소에서 이루어졌으며, 민가가 없는 산에서는 모두 절에서 숙박하였다. 권섭은 유력한 친인척을 통해 형성된 인맥으로 관아에서 숙박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여행 중의 식사는 직접 취사를 한 경우, 친지나 승려에게 대접을 받은 경우, 그리고 사먹는 경우도 분류할 수 있는데, 산사에서 오래 체류한 정시한은 노비와 승려를 시켜 직접 취사하여 먹는 경우가 많았다. 밥을 사먹은 경우는 권섭에서 많이 발견되며, 대로변을 중심으로 주막이 급속하게 발달하기 시작한 시대적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 두 사람의 일기를 살펴보면, 당시 찾아온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은 관례였으나, 접대의 수준은 개인적 배경과 친소관계에 따라 차이가 컸음을 엿볼 수 있다.
사대부들은 여행을 하면서 독서, 시 쓰기와 그림 그리기, 제명(題名), 물놀이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으며,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할 정도로 관행화된 것이 많았다. 그렇지만 개인에 따라 기호와 편차가 커서 정시한은 여행의 주요한 활동 중 하나일 정도로 독서에 시간을 투여했으나, 권섭은 시를 쓰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6. Everyday Ecologies : Diaries as Sources for Environmental History

Environmental history is one of the fastest-growing subfields of the historical profession. This paper addresses the sources that historians have utilized to write environmental history, with focus on one source in particular – the diary. Within environmental history, diaries have largely been utilized to address contexts of weather and climate or as sources of intellectual history and perceptions of nature. I refer to cases from European, American, and East Asian history, particularly Korean history, to show how diaries can elucidate how ecologies were utilized and contested across different groups.
Diaries accordingly were sources of data regarding long-term climatic and economic shifts. diaries could provide insight how structural shifts affected the daily lives of people on the ground.
Settler diaries thus provide insight into an important aspect of environmental history: contestation. The embedded, multivariate nature of the diary, accounting the workaday nature of pre-industrial life while reflecting multiple temporalities of past, present, and future, can provide insight into how ecologies are contested in usage and meaning across social groups.
The Diary of Mukchae (Mukchae ilgi) and the Diary of Miam (Miam ilgi) from the sixteenth century allow historians to situate elite land-use patterns in the changing political and contexts of early-to-mid Chosŏn Korea. Both Mukchae Yi Mungŏn (1494-1567) and Miam Yu Hŭich’un (1513-1577) were high-level bureaucrats who retreated to the countryside during their careers after becoming embroiled in political conflict in the capital. Accordingly, both men leveraged their status to expand their estates and cement their power at the local level. Key to their power was the transformation of the local environment through reclamation, hunting, and logging.
Miam’s diary provides insight into how people understood and worked within the forestry system. Miam’s diary accordingly reveals a broader tension between fifteenth-century policies and sixteenth-century realities.
Yi Mungŏn’s diary reveals a similar pattern of elite brokerage, with the local environment serving as the critical site of contestation and exchange.
Mukchae assisted government officials in various aspects of tax and tribute collection; at the same time, he utilized government resources and laborers for his own interests. One curious role that he acquired was that of intermediary fur broker. The story of why he wanted the position—and why it was important—further elucidates how local elites facilitated new patterns of environmental change in sixteenth-century Korea.
Thus, through his diary, Mukchae reveals how he exploited local ecologies for both personal gain and in support of government policy
Mukchae’s diary is a lens into environmental change.
Up to this point, diaries have largely been the provenance of environmental historians interested in climate history and perceptions of nature.
While such studies are indeed valuable, they lack nuanced contours of conflict and change. When diaries are simply read as observations of weather and nature, they become monolithic data points and one-sided views of landscapes. I argue that diaries can offer more variegated perspectives into the contested nature of environmental change. Accordingly, diaries can enable historians embed the political and social in the environmental and perhaps can enrich dialogue regarding the politics of our current environmental crisis.

7. 존 뮤어의 일기 󰡔시에라에서 첫 번째 여름󰡕 연구: 환경, 지질, 순례를 중심으로

존뮤어(John Muir, 1838-1914)는 당시 자연주의 사상가들과 다른 점은 실제로 자연 속에서 오랫동안 살았으며 사회활동에 적극적인 지식인이었다. 20세기 초 헤츠헤치 계곡(Hetch Hetchy Valley) 댐 건설 논쟁이 일어났을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892년에는 환경보호단체 ‘시에라 클럽’을 결성하여 죽을 때까지 회장으로서 임무를 다했다. 뮤어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시에라 클럽은 현재 75만의 회원을 가진 비영리 환경 단체로 성장하였고 요세미티, 그랜드캐년 등 많은 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뮤어는 생전에 총 6권의 책을 내었고 사후에 다시 4권의 책이 나왔다. 본 연구에서는 이 중에서 󰡔시에라에서 첫 번째 여름󰡕(My First Summer in the Sierra, 이후 󰡔첫여름󰡕으로 표기)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한다.
본 연구에서 주목하는 것은 뮤어의 환경 사상이 방목 경험에서 형성되었다는 점, 요세미티 지역의 식생과 지질에 대한 뮤어의 자연과학적 탐구에 주목, 뮤어의 문학적 감수성과 과학적 탐구 정신이 궁극적으로 절대자에 대한 경외심 속에서 진행되었음을 밝힐 것, 마지막으로 뮤어의 일기는 산행을 하면서 자연에 관한 애정과 사색의 기록을 남겼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에 성행한 유산기 문학과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면 관계상 유산기 문학 전체를 검토할 수는 없으며 여기서는 뮤어의 일기와 가장 유사한 면을 보여주는 이상수의 「동행산수기」를 읽어보면서 논의를 진행하였다.
향후 거시적 맥락에서 미국의 자연주의 문학과 조선의 유산기 문학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 두 문학은 사용 언어와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 영문학과 한국문학이라는 지역 문학에서 연구되어 왔다. 그러나 두 나라의 지식인들은 모두 자연 속에 들어가 낯선 존재들을 관찰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세계의 근원으로서 자연을 인식하고 이 속에서 자연을 주재하는 절대자를 찾고자 하는 시도는 특정 지역이나 시대에 국한될 수 없는 인간의 활동이다. 그러므로 자연 중심의 동양과 신 중심의 서양이라는 종래의 이분법적 접근을 넘어서 자연을 인간 실존의 근원적 터전으로 보면서 신의 현현과 인간의 활동이 함께 나타나는 공간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 논문은 향후 진행되어야 할 동서양 지식인들의 자연주의 문학 연구에 대한 중요성을 제고하고 그에 따른 관심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한다.

8. Diaries in Economic History : Toward a Comparative Study of Korea and the West

Diaries offer a unique perspective into economic history.
As a foundation for future diary-based studies of Korean economic history, this paper will survey the state of the field of economic history research utilizing diaries as a major primary source, with a focus on research into European and American economic history.
Prospects for the Future Study of Korean Diaries in Economic History.
Firstly, as is the case with the usage of diaries in European and North American economic history, the significance of diaries as a primary source can only be considered in relation to the availability of alternative sources.
Since the publication of Suryang kyŏngjesa ro tasi pon Chosŏn hugi [A cliometric re-examination of the late Chosŏn period] in 2004, which used data from diaries to pioneer the quantitative analysis of late Chosŏn prices, wages, and markets, the availability of Chosŏn-era diaries has only increased, enabling the further development of these methods.
Nonetheless, despite their continued importance as primary sources, it is important not to overlook the limitations of diaries. In particular, historians engaged in the study of economic history through Chosŏn-era diaries cannot ignore the socio-economic context of their authors.
Scholars studying these diaries will therefore need to pay careful attention to the potential biases of the authors, their blind spots, and the particularity of their perspective. While microhistorical analysis of Chosŏn-era diaries may still be unable to achieve a “bottom up” perspective due to the background of the diaries’ authors, this may still reveal important aspects of the Chosŏn economy. The diary of Yu Hŭich’un (1513-1577, penname Miam), for example, reveals how, despite being officially prohibited, Miam was able to utilise “an array of personal networks lying outside the bounds of legally sanctioned, impersonal economic transactions…[which] provided access to resources technically accessible only through the mechanisms of the Chosŏn bureaucracy.”
Even more parallels may be drawn from diaries written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as Korea’s gradual incorporation into new networks of global trade and diplomacy after 1876 bear much relevance for research into the global impacts of capitalism, empire, and international trade.
Diaries thus offer the opportunity to reveal otherwise overlooked aspects of gender, culture, and the socio-intellectual context of economic activity, prompting the development of new comparative questions regarding economic change that grapple with both primary sources and the historiographical legacies which have shaped the field. If the goal of economic history is no longer to reduce events to contributions toward the development of capitalism or its absence, then it is equally important to consider what alternative conceptions of economic activity have existed.
In this regard, the work to make Chosŏn-era diaries available as primary sources can also prompt a new generation of comparative research into Korean economic history which is of significance for scholars of Korea and non-Korea a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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