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과제구분,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연구책임자, 공동연구자, 연구기간, 연구형태, 연구목적 및 배경, 연구방법 및 내용,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연구결과, 참고문헌, 로 구성
과제구분 한국학기초연구 / 공동연구과제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 국문 : (AKSR2020-C05) 문화적 다양성의 층위로 본 조선시대 밀양
  • 영문 :
연구책임자 정은주
공동연구자 이윤정, 정수환, 이래호, 김지현, 최진아, 이남옥
연구기간 20200101 ~ 20201216 연구형태 공동연구
연구목적 및 배경 1) 밀양 지역 토착성에 관한 심도 있는 추적
• 밀양은 조선시대 밀양도호부로서 웅부(雄府)였으며, 영남에 있어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특히, 영남문화와 관련하여 영남좌도와 우도의 특성을 규명한 선행연구에 의하면, 밀양은 영남좌도로서 안동, 경주, 상주와 함께 중요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따라서 진주와 산청을 포괄하는 영남우도와는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
• 그러나 현대 영남이 남북이라는 행정적 분리 과정에서 밀양은 경상남도에 속하게 되면서 조선시대 이전에 형성하고 있던 정체성과 괴리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궤적은 밀양이 지니고 있는 지역적 특수성에 대해 규명을 필요로 하였다.
• 밀양을 연구할 수 있는 문헌자료가 다수 소개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2000년 이후 밀양지역 사회, 특히 조선시대 사회상을 규명하기 위한 문헌 소장실태 조사를 실시하여 다수 소장처에 다량의 고문서, 고서자료가 현전하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 연구를 통해 10여 년 동안 집적된 자료를 연구 성과로 확산시킬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2) 밀양 지역사의 전통에 대한 현재적 의미 모색
• 밀양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궤적 분석을 통해 현대 밀양의 정체성, 그리고 현대 한국 사회를 이해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현대 ‘밀양’의 대외적 이미지는 갈등과 폭력이라는 부정의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지역사회의 정체성 찾기 노력 혹은 극복을 위해서는 토착사회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밀양 사례를 활용하여 내재된 지역적 에너지를 발굴하려 하였다.
• 17세기 이후 지역사회 내부에서도 여러 산송, 어량(魚梁), 소유권 등과 관련한 분쟁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추적하려 하였다. 이를 통해 갈등으로 점철된, 그리고 향전(鄕戰)으로까지 비화된 현상이 아닌 제도를 통한 갈등의 조율의 실제를 규명하려 하였다.

3) 문학과 언어의 밀양의 특성 재발견
• 조선 시대 밀양 지역 명승 문학과 관련하여 영남루를 읊은 시문에 대한 연구가 집적되었으며, 최근 금시정(今是亭)과 칠탄정(七灘亭)에 대한 제화시 등을 활용하여 밀양 지역 부분에 대한 문화 경관의 특징을 집중 규명하였다. 따라서 조선시대 밀양 지역에 대한 명승을 읊은 한시와 악부시, 누정기, 지리지 등을 중심으로 밀양 팔경이라는 밀양 명승의 시대성과 공간성을 추적한다. 이를 통해 밀양 지역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실존적인 생활공간으로서의 장소가 갖는 특징을 통합하여 현재 밀양 팔경 형성과 그에 대한 인식을 밝힐 수 있다. 이 연구를 통해 조선 시대 문인들의 눈에 비친 밀양 지역에 대한 인식과 그것이 통시적으로 형성되어 간 양상을 파악하려 하였다.
• 구비문학이 전승될 때 구연자의 언어 지식에 의해 발화되는데 구연자의 직업, 나이, 정착 지역 등 특정 지역의 방언으로 구술하게 된다. 따라서 밀양 지역의 전승 자료에는 그 지역의 언어적 특징이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이를 통하여 밀양 지역 언어의 특징을 연구하려 하였다. 또한 구비문학 자료는 전승 자료이기 때문에 구비 전승 자료에 담겨 있는 이름, 지명 등은 언어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에 밀양 지역의 구비 전승 자료를 중심으로 밀양 지역의 언어적 특성을 밝혀 밀양 방언이 경남 방언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살펴보고 밀양 언어의 특징적인 요소들이 중세국어와 근대국어에서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구명하려 하였다.

4) 밀양의 예술과 민속의 결합 양상 규명
• 손기양은 한강 정구(鄭逑)의 학맥을 이어 임란 때 밀양, 경주, 영천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하였고 서원과 향교의 재정립을 주도하였던 인물이다. 《칠탄정십육경도》는 1754년 손사익(孫思翼, 1711~1795)이 자신의 5대손인 손기양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이는 18세기 말부터 밀양의 재지사족을 중심으로 손기양을 향사하기 위한 본격적인 추숭이 시작되었던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재조명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밀양의 칠탄정(七灘亭)은 손기양(孫起陽, 1559~1616)이 소요하던 유지(遺址)에 그의 학행을 본받기 위해 1725년에 세운 진암서당(眞岩書堂)을 확장하여 진암계정(眞岩溪亭)이라 칭하고, 1748년 이를 다시 증축하여 개액(改額)한 누정이다. 칠탄정 일대를 그린 《칠탄정십육경도》의 제작배경을 당시 밀양의 재지사족들을 중심으로 한 손기양의 추숭 작업과 지역의 학맥을 단합시키기 위한 사업의 일환임을 보다 심도 있게 분석하였다.
• 성황신앙은 한국 전통사회에서 지역민의 결속을 강화하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의미를 지녀왔다. 성황신앙은 신라 말과 고려 초 사이에 중국에서 수용되어, 고려시대에 국가와 지방 토호세력에 의해 추앙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가치를 지니고 유지되었다. 밀양지역에서는 밀양손씨(密陽孫氏) 손긍훈(孫兢訓)을 추앙한 성황사가 고려부터 조선까지 지역공동체를 위한 수호신으로 인정받아왔다. 밀양지역에서 신앙되고 있는 손긍훈 장군 성황과 관련된 문헌자료와 현존하는 유물 및 유적자료를 중심으로 고려시대 추앙된 이후 조선시대에도 지역의 공인된 수호신으로 지속된 점을 주목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조선시대 밀양지역 지역공동체 수호신으로서의 위상과 타종교에 미친 문화적 영향력을 규명하려 하였다.
• 밀양 음악문화에 대한 연구는 민요를 대상으로 지역적 특징을 밝히는데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지역의 음악문화는 지역민들이 스스로 만들고, 연행하고, 향유하는 자족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다. 때문에 지역의 음악문화를 통해 지역성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지역민들의 다양한 음악을 살펴볼 필요성이 있으며, 이들이 앞으로도 지속되고 더욱 확대되어 나갈 수 있도록 음악문화의 다양성과 특징을 밝히려 하였다. 밀양음악의 역사를 통하여 이 지역의 음악문화가 지니는 가치를 파악하려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현 사회에서 전통성을 유지하면서 계승ㆍ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 모색하여 지역의 활성화뿐만 아니라, 지역민이 그 문화를 향유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에 본 연구의 목적을 두었다.
연구방법 및 내용 1) 문헌과 현장이 결합된 종합연구
• 조선시대 밀양 명승 시문에 형상화된 문인들의 체험 양상이 주로 분석되었다. 명승 유람의 배경 및 명승 노정의 특징, 명승 체험에 동원되는 정보, 명승 체험의 공시적ㆍ통시적 맥락화 방식 등을 검토하였다.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여지도서 등 역사서 및 지리지를 비롯하여 한국문집총간에 수록된 문집 속 밀양 누정시문(樓亭詩文)을 비롯한 밀양 관련 시문 분석을 통하여 밀양 지역에 대한 명승이 향유되었던 양상과 맥락 등을 비교하였다.
• 고문서자료와 현재도 존재하는 여러 유적과 유물 자료를 통해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연구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 문헌연구와 현장연구를 단계별로 진행하였다. 1차 선행연구로, 고문헌자료와 근현대 관련 문헌자료를 수집하여 그 내용을 정리하였다. 고문헌자료는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등과 읍지 및 문집자료를 활용하였다. 근현대 관련 문헌자료는 성황과 관련된 자료와 지역 인물신이 성황으로 추존된 연구, 마을공동체의 수호신으로 신앙되며 무격이 정기적으로 의례를 설행한 사례 등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였다. 2차로, 현장연구를 진행하였다. 이를 위해, 밀양의 추화산성에 존재하는 현충사(顯忠祠)·장군석(將軍石) 등의 유적과 청도 운문사에 대한 현장연구를 수행하였다.
• 밀양 음악문화 관련 전승 자료를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작업과 현지조사를 통하여 구술 자료와 연계시켜 밀양 민속음악의 역사적 전개를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밀양 민속음악의 전승 원리와 특성을 파악하려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밀양 민속음악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려 하였다.

2) 고문서를 활용한 미시적 분석
• 밀양 지역의 역사와 제도, 사회와 문화, 경제 등에 대해 미시적으로 접근하여 밀양 지역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밝히는 연구가 가능하였다. 밀양 지역의 사료와 현장 답사 결과를 근거로 사회문화적 역할과 가치, 자료의 역사적 비중, 풍부성 등을 고려하여 조선후기 밀양의 문화적 보편성과 특수성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집필하였다.
•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경상도 밀양의 지역사료, 특히 고문서를 발굴하여 고문서집성 70-밀양 의령남씨(오봉서원·의령남씨편)과 고문서집성 76-밀양 밀성박씨·덕남서원편 등 고문서집성 2책으로 간행하였다. 이들 자료는 밀양을 대표하는 사족과 서원의 고문서로 조선후기의 실상을 담고 있다.
• 따라서 고문서 자료 중 토지매매, 분재, 산송 등과 관련한 명문 문기류를 비롯하여 소지, 의송, 입안 등의 소·차·계·장류와 증빙류 고문서를 분석하였다. 양적 분석보다는 질적 분석을 통해 미시적 관점에서 사료를 분석하였고, 현지조사를 통해 구술이나 현장자료를 확보하여 연구 성과를 보완하였다.

3) 학제간 융합 연구
• 역사와 문화적 접근이라는 일반론적 연구 접근을 통해 밀양지역의 맥락을 추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음악, 미술, 민속, 언어학 분야의 연구와 접목함으로서 학제간 융합연구를 실현하려 하였다.
• 밀양 지역어의 언어적 특징을 밝히기 위한 기초 자료를 위하여 밀양 지역에 전승되어 오는 구비 자료를 활용하려 하였다. 그 대상 자료는 채록된 구비문학자료들이며, 제보자가 당시 자신이 사용하는 방언형으로 구술하고, 이것을 녹음하고 전사한 것이며, 여기서는 구술자료 중 구비문학에 포함되는 것만을 구축 대상으로 삼았다. 이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구축한 한국구비문학대계의 경남편 가운데 밀양 지역과 관련된 내용을 주 자료로 하며, 추가 자료를 위하여 직접 구비 자료를 채록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구축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밀양의 언어적 양상과 특징을 보이는 다양한 예문을 추출하여 문법적 연구를 진행하려 하였다.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1. 손기양 도맥의 상징과 현창,《칠탄정십육경도》
2. 조선후기 경상좌도 밀양 엘리트 집단의 형성과 분재 배경
3. 조선시대 밀양 지역 명승에 대한 인식과 형성 양상
4. 조선시대 밀양 지역 성황신앙의 위상과 문화적 영향력. -三韓壁上功臣 孫兢訓장군 성황을 중심으로-
5. 《오한집》 간행과 칠탄정 건립의 역사적 의미
6.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밀양 방언 자료와 언어의 특징
7. 밀양 향토민요의 분포양상과 음악적 특징
연구결과 1) 지역 문화의 다양성 조명
• 지역사회의 다양성을 밝히는데 기여할 수 있다. 밀양의 고문서의 발굴 성과를 토대로 밀양에 입향한 의령남씨와 창녕조씨의 밀양 지역 사회에 습합 과정을 가계의 역사를 통해 파악하고, 분재기에 나타난 가족관계와 밀성박씨를 대상으로 지역 사회와 인연을 맺은 엘리트 집단의 성격과 이들의 분재 양상과 특징을 분석함으로써 조선후기 경상좌도의 밀양, 그리고 경상우도와의 접경으로 인해 나타나는 혼인관계 및 분재 양상을 살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 조선시대 밀양 지역에 대한 명승을 읊은 한시와 악부시, 누정기, 지리지 등을 활용하여 문화적 특징을 규명함으로써 한국문화의 다양성을 확충할 수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한국 지역학 연구를 견인하는데 기여하는 것은 물론, 한국학 연구 자료를 세계 학계에 소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밀양 지역 명승 인식에 관한 연구는 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 밀양 명승 인식의 추이를 추적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 손기양 도맥의 표상화 작업으로써 《칠탄정십육경도》의 제작 과정에 참여한 인물들의 관계를 분석하여 남인들의 학현(學賢) 추숭의 관점에서 제작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칠탄정십육경도》는 실경산수화로서 갖는 단면적 이해보다 무이구곡도, 도산도의 상징성과 그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18세기 영남 남인계열에서 도맥의 이미지 표상화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2) 지역사 연구 성과 축적 및 연구 토대 마련
• 지역사료를 활용한 지역사 연구 성과는 지역문화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추진 중인 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 아직 밀양이 구축되지 않았으므로, 이 연구 결과물을 활용하여 주제에 뿌리를 둔 종합 콘텐츠 구축에 활용할 수 있다. 현재 구축된 플렛폼을 참고할 경우 지역의 역사와 예술은 물론 문화양상을 상징하는 유물과 유적을 망라하고 있어 이번 연구 성과를 밀양의 사례에 직접 활용할 수 있다.
• 고문서 발굴을 통한 연구자산 확보가 가능하다. 현지 조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수집한 자료 소장 정보 및 주요 자료 중에는 고문서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 현재 지역사회에서도 축적한 정보가 있으므로 협업을 통해 관련 정보를 확보함으로서 이 연구의 성과를 확산하고, 자료를 축적함으로서 지역사 연구에 기여할 수 있다.

3) 현대 지역사회 정체성 확립의 사례 제공
• 현대 한국의 지방자치의 전개에 따라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둘러싼 지자체간의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특정 인물과 사건에 대한 이해 충돌에서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이 연구를 통해 다층적이고 다양한 지역문화의 성격을 밝힘으로서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확립 할 수 있는 사례를 제공한다.
• 밀양지역 서원은 김종직의 추숭이라는 단일한 선입견을 벗어나 지역적 다양성을 확보 할 수 있다. 손기양을 중심으로 한 칠탄서원 설립 과정을 파악함으로써 조선후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밀양 지역 유림의 성향을 재론할 수 있고, 밀양 지역의 주요 사적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보존 가치를 제고할 수 있다.
• 밀양 지역의 구비 전승 자료를 정리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함으로써 밀양 관련 연구 자료를 축적하고, 다양한 밀양 문화 관련 자료 확충에 기여할 수 있다. 구비 전승 자료의 데이터베이스와 밀양 지역 언어의 특징과 변화 양상 연구의 성과는 한국의 방언 연구 등의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고, 밀양 관련 타 분야 연구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 밀양 음악의 역사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예전부터 해오던 방식을 현대적으로 계승함으로써 밀양 음악만의 특성을 유지하여 현대적 발전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현지조사를 통한 밀양의 전승 음악 중 소외된 것들을 전승할 수 있는 보호책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밀양만이 지니고 있는 민요의 분포양상과 음악문화의 특성을 파악하여 그 계승을 위한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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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요약문

연구요약문: 전체 연구결과 요약, 세부과제별 요약로 구성
전체 연구결과 요약
조선시대 밀양은 밀양도호부로서 영남좌도의 안동, 경주, 상주와 함께 영남에서 핵심 축을 담당하는 웅부(雄府)였다. 또한 진주와 산청을 포괄하는 영남우도와는 색다른 문화적 배경으로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의 행정적 분리 과정에서 조선시대 이전에 형성하고 있던 정체성과 괴리되고, 현대 밀양의 대외적 이미지는 정책적인 갈등 요소가 부각되는 안타까운 현실과 마주하기도 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2000년 이후부터 밀양지역 사회상을 규명하기 위해 이 지역의 문헌 소장실태를 조사하여 10여년에 걸쳐 밀양의 의령남씨, 밀성박씨 외에 지역 서원의 고문서와 고서 자료를 발굴한 바 있으며, 《한국구비문학대계》를 통해 삶의 현장 목소리를 채록해 오기도 하였다. 이에 집적된 자료를 연구 성과로 확산시킬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2020년도 연구 과제로 시작된 “문화적 다양성의 층위로 본 조선시대 밀양”의 공동연구에는 역사, 한문학, 국어학, 민속학, 미술사학, 음악사 등 총 7명의 연구자들이 참여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밀양이 지닌 역사적 궤적을 분석하여 현대 밀양의 정체성을 찾고, 이를 통해 밀양 지역의 전통에 대한 현재적 의미를 모색하려 하는데 목표를 두었다.
문헌과 현장이 결합된 연구를 지향하기 위해 2차례의 현장답사와 학술회의를 거쳐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역사ㆍ문화적 접근을 통해 학제 간 융합 연구를 실현하여 다음 소개할 7편의 논문이 결실을 맺었다.
정은주는 〈손기양 도맥의 상징과 현창, 《칠탄정십육경도》〉를 주제로, 밀양손씨 문중에 소장된 《칠탄정십육경화첩》의 시화를 창작한 인물들이 18세기 안산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점에서 손기양의 도맥을 이익(李瀷)을 비롯한 안산의 문인들과 근기(近畿) 지역까지 확대시키려는 의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히려 하였다. 《칠탄정십육경화첩》의 제작배경을 당시 밀양의 재지사족들을 중심으로 한 손기양의 추숭 작업과 지역의 학맥을 단합시키기 위한 사업의 일환임을 보다 심도 있게 분석하였다. 당시 밀양 재지사림의 손기양 추숭사업의 전개와 16경의 선정 등 《칠탄정십육경화첩》의 제작배경을 파악하고, 손기양의 추숭을 주도한 손사익(孫思翼)의 요청으로 화제시를 지은 이익과 강세황, 이현환과의 관계를 분석하여 화첩의 제작이 가진 문화적 함의를 모색하였다.
정수환은 〈조선후기 경상좌도 밀양 엘리트 집단의 혼인망과 분재(分財)〉를 주제로 조선후기 지역사회의 다양성을 추적하기 위해 시도하였다. 밀양도호부의 의령남씨, 창녕조씨 그리고 밀성박씨를 대상으로 지역사회와 인연을 맺은 엘리트 집단의 성격과 이들이 실시한 분재의 특징을 분석했다. 이를 위해 엘리트 집단, 이른바 재지사족가문들의 가전 고문서를 활용하여 가계의 내력은 물론 분재을 실시하는 내용물의 전승경위를 파악하였다. 밀양의 고문서의 발굴 성과를 토대로 밀양에 입향한 의령남씨와 창녕조씨의 밀양 지역 사회에 습합 과정을 가계의 역사를 통해 분석하고, 분재기에 나타난 가족관계와 밀성박씨를 대상으로 지역 사회와 인연을 맺은 엘리트 집단의 성격과 이들의 분재 양상과 특징을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토착 성씨의 가족 경영의 특징과 혼인관계와 분재를 통한 존재한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남옥은 〈《오한집》 간행과 칠탄정 건립의 역사적 의미〉를 주제로 《오한집》 간행과 칠탄정 건립 등의 과정을 통해 손기양의 학문적 권위가 형성되어간 과정에 대해 분석하였다. 손기양은 1588년 문과에 급제하고 이듬해 성주의 주학교수에 임명되어 정구와 빈번히 편지를 왕래하며 학문을 연마했다. 손기양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고 지방관으로 왜군을 막는데 힘썼다. 이 과정에서 경상좌도의 퇴계학파 인물과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밀양사림을 대표해 이언적의 문묘 종사를 촉구하는 등 향촌사회 질서를 안정시키고자 노력했다. 손기양의 사후 후손들은 손기양의 퇴계학파 내 위상을 정립하고 학문적 권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칠탄서원을 건립하고 손기양을 향사하는 과정에서 퇴계학파 중에서도 한강 정구 문인이자 밀양을 대표하는 학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음을 규명하였다.
최진아는 〈조선시대 밀양지역 성황신앙의 위상과 문화적 영향력〉을 주제로 밀양지역 성황신(城隍神)인 손긍훈을 지역 수호신으로서의 수호한 배경과 그의 위상을 살펴보고, 더 나아가 그가 지역에 미친 문화적 영향력을 논의하였다. 손긍훈은 지역의 토착세력가로서 견성전투에서 고려 태조를 도와 큰 공을 세운 인물로 삼한벽사개국공신 광리군(廣理君)에 추봉되었고, 후손들에 의해 지역 성황으로 추존되었다. 청도의 운문사에는 손긍훈의 진영이 조영전에 봉안되어 있다. 운문사에서는 그를 사찰의 수호신장으로 모시고 매년 중구절에 다례의식을 행하고 있다. 그의 지역적 위상은 조선시대 밀양부 지도에도 나타나는데, 추화산성에 성황봉대가 표기되어 위난 시에 지역을 보호해주는 성황의 직능을 잘 보여준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성황당을 산 정상에 건립함으로써 산신과 성황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민간신앙에서 동일시되어 수용되는 양상도 고찰하였다.
김지현은 〈조선시대 밀양 지역 명승에 대한 인식과 그 형성 양상〉을 주제로 조선시대 밀양의 명승에 대한 인식과 그 전개 양상을 살피기 위해 15세기 서거정의 「밀양십경」, 16세기부터 형성된 「금시당십이경」, 그리고 1808년 밀양에서 경주까지 여행한 영남 문인들이 남긴 『동남창수록』에 보이는 밀양의 명승과 명승시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서거정의 「밀양십경」 속에 보이는 우령산, 마암산, 응천, 삽포, 용두산, 율도, 산성산, 나현(날치고개), 삼문동 들, 남포 등의 장소와 「금시당십이경」에 보이는 산성산, 용두산, 무봉산(아동산), 마암산, 영남루, 밀양읍성, 그리고 율도, 삼문동은 모두 영남루를 중심으로 펼쳐진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19세기 밀양을 여행한 이들의 중심에도 영남루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영남루는 조선 전기에 이미 영남의 제일 누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18세기에 이르면 ‘嶺南第一樓’란 편액을 게액(揭額)하였다. 이는 밀양 명승의 제1경이 영남루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방증이자 밀양 명승을 읊은 작품의 중심에 결국 영남루가 있었음을 밝혔다.
이래호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밀양 방언 자료와 밀양 언어의 특징〉을 주제로 19세기 말 20세기 초 밀양의 방언을 반영하는 자료들을 소개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밀양 지역 출신이 작성한 『수겡낭자전』, 『동몽수독천자문(童蒙須讀千字文)』와 언간 자료를 소개하고, 밀양 방언의 모음 음운론적 특징으로, ‘ㅕ>ㅔ’, ‘ㅕ>ㅓ’의 단모음화, ‘ㅓ>ㅕ’, ‘ㅗ>ㅛ’, ‘ㅜ>ㅠ’의 이중모음화, ‘ㅔ>ㅣ’의 고모음화, ‘ㅡ’와 ‘ㅓ’의 합류, ‘ㆎ(ㅐ)’와 ‘ㅔ’의 변별을 제시하였다. 밀양 방언에서 ‘ㅕ>ㅔ’의 단모음화는 연구개음 뒤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하여 현대 밀양 방언에서와 같이 다른 어두음 뒤까지 확산되었다. 19세기 말 밀양 지역에서는 ‘ㅓ’와 ‘ㅡ’가 구별되었지만, 1925년대는 ㅓ와 ㅡ는 완전히 합류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ㅔ>ㅣ’의 변화는 일반적이지만 ‘ㆎ/ㅐ>ㅣ’의 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을 근거로 하여, 밀양 방언에서는 적어도 1930년대까지는 ‘ㅐ’와 ‘ㅔ’는 합류되지 않고 각각의 음운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이윤정은 〈밀양지역 민요의 분포양상과 음악적 특징〉을 주제로 밀양 지역 향토민요를 대상으로 분포양상을 파악하고, 이들의 음계나 박자구조 등을 통하여 밀양 향토민요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밀양 향토민요에서 나타나는 음계는 경상도지역 민요를 대표하는 메나리토리의 음계를 활용하고 있으나 기존 메나리토리와 달리 음계의 중간에서 곡을 마치지 않고 대부분 음계의 최저음을 활용하여 끝을 맺고 있다. 신세타령류의 민요인 〈어사용〉을 제외한 모든 민요는 규칙적인 박자를 지니고 있으며, 3소박4박의 박자구조 활용의 비중이 가장 높은 점에서 밀양의 향토민요는 우리나라 민요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음을 밝혔다. 또한 메나리토리에서 음계의 최저음이 반음 높아진 특징을 지닌 어사용토리는 밀양을 비롯하여 창녕이나 양산 등지에서 나타나는데, 이들 지역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어사용토리 활용 비율이 높음을 확인하였다.
이상의 공동 연구는 밀양의 역사, 문화, 민속, 예술, 언어 등 지역 문화의 다양성을 조명하고, 지역사 연구 성과를 축적하여 새로운 연구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현대 지역사회의 정체성을 확립시킬 수 있는 사례를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제공함으로써 밀양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학제 간 공동 연구 콘텐츠 개발을 통해 지역학 및 한국학 연구를 심화시킬 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세부과제별 요약
1. 조선후기 경상좌도 밀양 엘리트 집단의 혼인망과 분재
이 연구는 조선후기 지역사회의 다양성을 추적하기 위한 시도로서 경상좌도에 속했던 밀양도호부의 의령남씨, 창녕조씨 그리고 밀성박씨를 대상으로 지역사회와 인연을 맺은 엘리트 집단들의 성격과 이들이 실시한 분재의 특징을 분석했다. 이를 위해 이들 엘리트 집단, 이른바 재지사족가문들의 가전 고문서를 활용하여 가계의 내력은 물론 분재을 실시하는 내용물의 전승경위에 대해 서술했다. 밀양의 고문서의 발굴 성과를 토대로 밀양에 입향한 의령남씨와 창녕조씨의 밀양 지역 사회에 습합 과정을 가계의 역사를 통해 파악하고, 분재기에 나타난 가족관계와 밀성박씨를 대상으로 지역 사회와 인연을 맺은 엘리트 집단의 성격과 이들의 분재 양상과 특징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토착 성씨인 밀성박씨가 지역사회에서 존재한 양상을 혼인관계와 분재에서 가족 경영의 특징으로 살펴보았다. 이는 조선시대, 특히 조선후기 경상좌도의 밀양, 그리고 경상우도와의 접경으로 인해 나타나는 혼인관계 및 가족내의 사연을 살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2. 조선시대 밀양지역 성황신앙의 위상과 문화적 영향력
본 연구에서는 밀양지역 성황신(城隍神)인 손긍훈이 지역 수호신으로서의 수호배경과 그의 위상을 살펴보고, 더 나아가 그가 지역에 미친 문화적 영향력을 논의하였다. 손긍훈은 고려시대 태조와의 견성전투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삼한벽사개국공신 광리군(廣理君)에 추봉되고, 손긍훈은 지역의 토착세력가로서 견성전투에서 태조를 도와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고려시대 후손들에 의해 성황으로 추존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 고지도에도 추화산성에 성황봉대가 표기되어 위난 시에 지역을 보호해주는 성황의 직능을 잘 보여준다. 또한 산 정상에 건립함으로써 산신과 성황의 경계가 모호해져 조선 중기 이후에는 이 둘의 관계가 동일시되어 민간신앙 속으로 수용되는 현상이 나타난 점도 살펴보았다. 청도의 운문사에는 손긍훈의 진영이 조영전에 봉안되어 있다. 태조를 도와 운문사를 비호해주었다는 공이 인정되어 사찰의 수호신장으로 매년 중구절에 다례의식을 행하고 있다. 이 재(齋)는 진영 봉안 이후부터 현재까지 지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조선시대 밀양 지역 명승에 대한 인식과 형성양상
본고는 조선시대 밀양의 명승에 대한 인식과 형성양상을 살피기 위해 15세기 서거정의 「밀양십경」, 16세기~19세기까지로 추정할 수 있는 「금시당십이경」, 그리고 19세기 즉 1808년 밀양에서 경주까지 여행한 영남 문인들이 남긴 『동남창수록』에 보이는 밀양의 명승과 명승시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서거정의 「밀양십경」 속에 보이는 우령산, 마암산, 응천, 삽포, 용두산, 율도, 산성산, 나현(날치고개), 삼문동 들, 남포 등의 장소와 「금시당십이경」에 보이는 산성산, 용두산, 무봉산(아동산), 마암산, 영남루, 밀양읍성, 그리고 율도, 삼문동 들은 모두 영남루를 중심으로 펼쳐진 공간 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19세기 밀양을 여행한 이들의 중심에도 영남루가 있음을 보았다. 즉 밀양 명승을 읊은 작품들을 살펴본 결과 그 작품들 중심에는 결국 영남루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광한이 ‘영남의 빼어난 경관은 오로지 영남루에 있다.’라는 글에서 보이듯 조선 전기에 이미 영남의 제일 누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자연스레 영남루는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란 어휘를 사용하였으며, 18세기에 이르면 ‘嶺南第一樓’란 편액을 영남루 중앙에 걸기에 이른다. 이는 밀양 명승의 제1경이 영남루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4. 《오한집》 간행과 칠탄정 건립의 역사적 의미
《오한집》 간행과 칠탄정 건립 등의 과정을 통해 손기양의 학문적 권위가 형성되어간 과정에 대해서 분석한 것이다. 손기양은 1588년 문과에 급제하고 이듬해 성주의 주학교수에 임명되어 정구와 빈번히 편지를 주고받으며 학문을 연마했다. 손기양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고 지방관으로 왜군을 막는데 힘썼으며 이 과정에서 경상좌도의 퇴계학파 인물과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밀양사림을 대표해 이언적의 문묘 종사를 촉구하는 등 향촌사회 질서를 안정시키고자 노력했다. 손기양의 사후 후손들은 손기양의 퇴계학파 내 위상을 정립하고 학문적 권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칠탄서원을 건립하고 손기양의 향사하는 과정에서 손기양은 퇴계학파 그 중에서도 한강 정구 문인이자 밀양을 대표하는 학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5. 손기양 도맥의 상징과 현창, 《칠탄정십육경도》
본문에서는 《칠탄정십육경화첩》의 시화를 창작한 인물들이 18세기 안산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점에서 손기양의 도맥을 이익(李瀷)을 비롯한 안산의 문인들과 근기(近畿) 지역까지 확대시키려는 의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히려 하였다. 《칠탄정십육경화첩》의 제작배경을 당시 밀양의 재지사족들을 중심으로 한 손기양의 추숭 작업과 지역의 학맥을 단합시키기 위한 사업의 일환임을 보다 심도 있게 분석하였다. 당시 밀양 재지사림의 손기양 추숭사업의 전개와 16경의 선정 등 《칠탄정십육경화첩》의 제작배경을 파악하고, 손기양의 추숭을 주도한 손사익(孫思翼)의 요청으로 화제시를 지은 이익과 이현환, 강세황과의 관계를 분석하여 화첩의 제작이 가진 문화적 함의를 모색하였다.

6. 19세기 말 20세기 초 밀양 방언 자료와 밀양 언어의 특징
19세기 말 20세기 초 경남 밀양 방언을 반영하는 자료들을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료들에 나타나는 언어적 특징들을 통해 당시 밀양의 방언의 모음 음운론적 특징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연구에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밀양 지역(또는 주변)에서나 밀양 지역 출신이 작성하여 이 시기 밀양 언어를 반영하였다고 볼 수 있는 『수겡낭자전』, 『동몽수독천자문(童蒙須讀千字文)』, 언간 자료를 소개하고, 밀양 방언의 모음 음운론적 특징으로, ‘ㅕ>ㅔ’, ‘ㅕ>ㅓ’의 단모음화, ‘ㅓ>ㅕ’, ‘ㅗ>ㅛ’, ‘ㅜ>ㅠ’의 이중모음화, ‘ㅔ>ㅣ’의 고모음화, ‘ㅡ’와 ‘ㅓ’의 합류, ‘ㆎ(ㅐ)’와 ‘ㅔ’의 변별을 제시하였다. 밀양 방언에서 ‘ㅕ>ㅔ’의 단모음화는 연구개음 뒤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하여 현대 밀양 방언에서와 같이 다른 어두음 뒤까지 확산되었고, 19세기 말 밀양 지역에서는 ‘ㅓ’와 ‘ㅡ’가 구별되었지만, 1925년대는 ㅓ와 ㅡ는 완전히 합류된 것으로 보았다. 또한, ‘ㅔ>ㅣ’의 변화는 일반적이지만 ‘ㆎ/ㅐ>ㅣ’의 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을 근거로 하여, 밀양 방언에서는 적어도 1930년대까지는 ‘ㅐ’와 ‘ㅔ’는 합류되지 않고 각각의 음운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었다고 판단하였다.



7. 밀양지역 민요의 분포양상과 음악적 특징
본문은 밀양 지역 향토민요를 대상으로 분포양상을 살펴보고, 이들의 음계나 박자구조 등을 통하여 밀양 향토민요의 특징을 살펴보려 하였다. 밀양 향토민요에서 나타나는 음계는 경상도지역 민요를 대표하는 메나리토리의 음계를 활용하고 있으나 기존 메나리토리와 달리 음계의 중간에서 곡을 마치지 않고 대부분 음계의 최저음을 활용하여 끝을 맺고 있다. 신세타령류의 민요인 어사용을 제외한 모든 민요는 규칙적인 박자를 지니고 있으며, 3소박4박의 박자구조 활용의 비중이 가장 높은 점으로 보아 밀양의 향토민요는 우리나라 민요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메나리토리에서 음계의 최저음이 반음 높아진 형태의 특징을 지닌 어사용토리는 밀양을 비롯하여 창녕이나 양산 등지에서 나타나고 있었는데, 이들 지역은 낙동강을 주변 지역들로서,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어사용토리 활용 비율이 높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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