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과제구분,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연구책임자, 공동연구자, 연구기간, 연구형태, 연구목적 및 배경, 연구방법 및 내용,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연구결과, 참고문헌, 로 구성
과제구분 한국학중점연구 / 호혜와 협동의 계보학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 국문 : (AKSR2018-RC01) 조선시대 사회조직과 공동체의 운영원리 -호혜와 협동의 사례 탐구-
  • 영문 :
연구책임자 심재우
공동연구자 조영준, 김학수, 김건태, 정수환, 문숙자, 나영훈, 송치욱, 송양섭, 손병규, 김호, 백광열
연구기간 20180404 ~ 20201130 연구형태 공동연구
연구목적 및 배경 ○ 연구의 입론
이 연구는 한국 전통사회에서 ‘호혜와 협동’의 사례를 발굴하고 그 사회적 의미와 역사적 맥락을 탐색하기 위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호혜와 협동’에 대한 연구는 현대 사회가 직면한 정치, 사회질서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퍼트넘(R. Putnam)이나 폴라니(K. Polanyi)와 같은 서구의 학자들은 일찍이 역사 속에서 ‘호혜와 협동’의 사례를 발굴하고 그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이들은 협력적 행위를 촉진시켜 사회적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조직의 속성인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호혜와 협동’의 원리에 주목한 것이다. 아울러 이들은 공동체 질서의 갈등과 위기를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자발적 협력은 호혜성의 규범과 시민적 참여(civic engagement)의 네트워크 등의 사회적 자본이 충분히 축적된 공동체에서 더 쉽게 달성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정치, 경제, 사회의 압축적 발전을 이룩하였지만, 그 지속적인 발전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사회에 있어 더욱 의미를 가진다. 서구의 시장경제와 서구적 민주주의의 원리는 한국의 역사 · 문화적 기반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발전시킬 필요가 있으며, ‘호혜와 협동’과 같은 사회적 자본이나 공동체에 대한 연구는 이에 대한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 한국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공정한 분배를 위해 사회자본과 신뢰, 호혜 등을 비롯한 사회문화적 자원이 중요하며, 한국사회가 독자적인 지속발전 모델을 모색하기 위해 사회와 경제 발전의 인문학적 토대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요구된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학계에서는 한국 전통사회에 있었던 ‘호혜와 협동’의 사례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그 가치를 분석하는 작업에는 소홀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이제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와 관련해서도 경제학적 연구뿐 아니라 역사·문화적 기반에 대한 연구 등 다양한 접근이 모색되어야 할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전근대 한국사회에서 신뢰에 바탕을 둔 호혜와 협동의 문화적 전통 발굴을 통해 현대사회가 직면한 과제에 대해 성찰하는 일은 더 없이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 조선시대 향촌조직과 지역공동체 문화에 대한 조망의 필요성
주지하듯이 조선시대 선조들은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다양한 정신문화적 자산과 전통을 축적, 계승해왔다. 당시 사회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의 문화적 전통이 강했다. 다양한 종류의 계(契)가 활성화되었다는 점과 향약(鄕約)과 동약(洞約), 품앗이 등이 다수 운영되었다는 점으로 볼 때 한국사회의 호혜성에 기초한 신뢰와 협동의 문화가 내재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전통의 역사, 문화적 계보를 추적하고 그 사례를 축적하여 기존 연구에 대한 실증적 검토와 비판적 재해석이 요구된다.
1980, 90년대 이래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어온 조선시대 향촌사회 및 촌락에 관한 연구는 한국사 연구의 발전적 체계화라는 역사학계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연구가 진행되어 사족(士族)의 향촌지배체제의 양상과 해체과정에 주목하였다. 이를 통해 향약, 계 등 지역별 사회조직, 조선후기 사회전반의 변화에 따른 촌락사회의 구조와 변동에 대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남겼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 소통과 통합의 요소, 촌락공동체의 실체 및 그 운영원리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조선시대 군현과 촌락은 성리학적 이상이 구현된 공간이었다. 당시 촌락공동체의 운영과정에서 나타나는 사족, 농민 등 여러 구성원들의 존재 양상에는 내부의 자치적·평등적 요소와 계층·계급간의 미묘한 갈등과 균형 관계라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포함한다. 기존의 향촌사회사 연구에서 강조되어 온 조선중기 ‘사족지배체제론(士族支配體制論)’은 관치 행정과 별도로 사족 주도 지역사회에 대한 자치적 질서를 강조하고 있다. 자치는 공동체문화, 상호 신뢰가 전제가 되어야 그 성공을 기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시기 향촌사회의 조직과 규율, 공동체문화와 그 운영원리를 좀 더 다각적인 측면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藏書閣) 등에서 새롭게 수집, 발굴해냈으나 아직까지 연구에 활용되지 못했던 다양한 문중 및 고문서 자료의 분석을 통한 다양한 사례 수집 및 심층적인 연구가 절실히 요구된다.
연구방법 및 내용 ○ 연구의 범주와 문제의식
조선시대 향촌사회조직과 지배기구, 그리고 지역사회 공동체적 운영 원리의 탐구를 목표로 한 본 연구는 크게 네 개의 주제로 나누어 각 주제별로 각각 3명의 연구진이 집필에 참여하였다. 먼저 1부 ‘향촌 사회조직과 결사의 성격’에서는 향촌사회에 존재했던 향약·계를 비롯한 향촌 사회조직의 특징과 집단의 인적 결합의 양상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2부 ‘사회적 네트워크와 연대의 양상’에서는 혈연에 기반한 가족·친족 네트워크가 조선시대 사회의 인적 결합과 결속에 끼친 영향을 다룬다. 3부 ‘유학의 호혜 전통과 실천’에서는 조선시대 지배 이념으로 기능한 성리학 사상에 내재된 공공성, 호혜성의 가치를 음미하고, 유학자들이 공동체의 상생과 협력을 위한 사회적 실천 모습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4부 ‘부세와 촌락사회의 대응’에서는 조선시대 공동체적 삶의 단위가 되는 촌락의 존재양태를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부세제도는 지역 지배의 구체적 내용을 구성할 뿐 아니라 촌락과 촌락민의 삶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전제하에 이를 매개로 촌락과 지역사회의 접점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양상이 분석 대상이다.

○ 연구의 방법
첫째, 사회 운영원리 속 ‘호혜와 협동’의 문화에 대한 조명을 목표로 한다.
향촌사회 지배질서와 운영의 양상을 해명하기 위해 그동안 지역사회 수령의 지방통치 운영의 특징, 아전의 역할과 조직, 재지사족의 기구, 촌락민 조직 등 다양한 측면에 대한 분석이 진행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수령제 운영, 사족의 촌락지배, 농민의 존재양태 등 대략 세 층위에서 지금까지 진행된 연구를 정리하면서 지역공동체 내의 수령, 아전, 사족, 민들의 갈등과 연대의 구조를 재해석하고자 한다.

종래의 조선시대 향촌사회사 연구에서는 사족의 민에 대한 신분적 통제를 강조한 나머지 공동체적 협력과 소통의 측면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도의적 공동체(moral economy)로서 향촌사회를 주목하고 그 운영원리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족들은 향약(鄕約)이나 사창(社倉) 운영을 주도하며 지역사회의 ‘자율적 도덕공동체’를 구축하고자 했다. 기존의 연구가 향약이나 계를 향촌 사족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이해했다면, 본 연구는 이와 동시에 성리학에 내재된 공공성, 호혜성의 가치 또한 주목하고자 한다.

둘째, 균형잡힌 시각에서의 향촌사회 연구를 지향한다.
촌락을 중심으로 한 종래의 향촌사회사 연구는 국가에 의한 통치, 그리고 지역 사족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연구가 집중되었다. 이러한 시각은 ‘위로부터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공동체 변화의 원리를 ‘아래로부터(Bottom Up)’의 시각에서 지역사회의 풍부한 실상을 밝혀내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지금까지 촌락에 대한 주목할 만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상의 선정이나 연구가 개별적이고 소재적인 측면에 머물고 있다. 마을 공동체 내부의 운영 원칙에 있어 시스템과 구조를 분석할 자료의 부족으로 연구의 교착상태에 직면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고문서집성󰡕을 비롯한 새로 발굴한 다양한 연구 자료를 분석한다.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 1권 : 조선시대 사회조직과 공동체의 운영원리(1)

1부 : 향촌 사회조직과 결사의 성격
① 조선시대 향촌사회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향약, 계에 관한 성과를 중심으로
② 조선시대 마을 공동체의 제도 개발
③ 예덕상무사(禮德商務社)의 조직과 지속

2부 : 사회적 네트워크와 연대의 양상
④ 유교적 예치(禮治)와 가산제(家産制) 사이에서
⑤ 조선후기 가계(家系)의 영속성을 위한 유대와 협동 양상
⑥ 조선후기 관상감(觀象監) 관원의 친족 네트워크와 결속

3부 : 유학의 호혜 전통과 실천
⑦ 16세기 지방의 의서 편찬과 환난상휼(患難相恤)의 토대
⑧ 호혜와 협동의 유학적 전통과 그 실천
⑨ <인재일록(忍齋日錄)>을 통해 본 호혜와 협동의 공동체문화

4부 : 부세와 촌락 사회의 대응
⑩ 18~19세기 동래부 동하면의 ‘면중(面中)’과 잡역운영
⑪ 조선후기 마을위상과 전세량의 관계
⑫ 17~20세기 초, 집성촌 형성의 요인



○ 2권 : 조선시대 사회조직과 공동체의 운영원리(2)

1부 : 향촌 사회조직과 결사의 성격
① 조선시대 훼가출향(毁家黜鄕)의 전개 양상과 향촌사회
② 조선후기 경주 방어리(防禦里) 사계(射契)와 동계(洞契)의 호혜와 협동 가치
③ 저산팔읍상무우사(苧産八邑商務右社)의 조직과 지속

2부 : 사회적 네트워크와 연대의 양상
④ 조선후기 호혜 조직으로서 친족의 범위와 관념
⑤ 조선시대 양반 문중의 빈민구제와 명망의 교환
⑥ 조선후기 의과 입격자의 친족 네트워크와 결속

3부 : 유학의 호혜 전통과 실천
⑦ 환난상휼(患難相恤)의 실천, 16~17세기 향촌 사족들의 지방 의국(醫局) 참여
⑧ 국가실패와 향촌공동체의 대응-향촌의 자치질서와 국가의 통치질서-
⑨ 호혜와 협동 인프라의 설계와 운영의 실제 :합천현 이사 마을을 중심으로

4부 : 부세와 촌락 사회의 대응
⑩ 19세기 거제 구조라리의 부세 분정과 ‘동전(洞錢)’의 운영
⑪ 조선후기 마을 조직의 생성, 통합, 분열
⑫ 거주이동과 혈연적 연대의 관계



○ 3권 : 조선시대 사회조직과 공동체의 운영원리(3)

1부 : 향촌 사회조직과 결사의 성격
① 조선후기 밀양 밀성박씨 인당공파의 종계 운영과 문중 활동
② 18~19세기 경주 갓뒤마을 말림갓의 호혜와 협동 가치
③ ‘저산팔읍상무좌사(苧産八邑商務左社)’의 조직과 지속

2부 : 사회적 네트워크와 연대의 양상
④ 근대전환기 신흥민중종교운동의 경제활동과 사회조직
⑤ 遠祖에 대한 제사의 강화와 친족 네트워크의 발달
⑥ 조선후기 律科入格者의 친족 네트워크와 결속

3부 : 유학의 호혜 전통과 실천
⑦ 조선의 지방 의국(醫局) 재론 : ‘공공의료’의 관점에서
⑧ 전통시대 지역사회의 호혜적 관계와 그 특징에 관한 소고
⑨ 호혜와 협동의 가적(家的) 실제에 대한 고찰

4부 : 부세와 촌락 사회의 대응
⑩ 19세기 거제(巨濟) 구조라리(舊助羅里)의 부세운영과 촌락사회의 동향
⑪ 19세기 공동납의 실상
⑫ 20세기 전반 농촌 가족의 거주이동
연구결과 1) 공동연구 성과물

○ 1년차 연구결과

가. 1부 : 향촌 사회조직과 결사의 성격

① 연구주제 1: 조선시대 향촌사회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향약, 계에 관한 성과를 중심으로
- 연구내용: 본고는 사회사 연구의 성과 가운데 조선시대 사람들 상호간의 호혜성이나 상호부조의 실천 모습을 잘 보여주는 향촌 사회조직으로 오래 전부터 사회과학자들로부터 조명되어 온 향약(鄕約)과 계(契) 연구의 성과를 정리하고 향후 과제를 살폈다. 연구사의 흐름은 일제시대, 해방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1980·90년대, 2000년 이후 등 크게 네시기로 구분했다. 기존 연구는 향촌사회를 주로 향약과 계를 향촌지배기구로 파악하여 지배구조를 중심으로 파악했다면 2000년대에는 이와 같은 사족 주도의 향약과 계에 대한 관점을 일종의 호혜관계로 보는 문제의식이 제기되었다. 결론적으로 본 과제의 문제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호혜성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사료검토와 사례연구가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② 연구주제 2: 조선시대 마을 공동체의 제도 개발
- 연구내용: 상동계 고문서는 17세기에서 18세기까지 그리고 19세기 이후에도 연계되면서 연속적으로 작성된 동계 문서로서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분석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자료는 인근의 양동마을 동계 문서 사례와 차별성이 있다. 양동 마을 사례는 공동체 구성원 간의 결합과 갈등 양상을 규명하여 동계 연구의 전형이 되었다. 그러나 이 자료는 공동체가 상사(喪事)에 협동하고 이를 위해 호혜적인 제도를 구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17세기 말 동전의 유통이라는 사회적 제도의 변화가 마을 공동체의 공유자산 운영 원리에 끼친 파장을 담고 있다. 이러한 사례에서와 같이 이 연구는 국가단위의 제도 변화와 마을 공동체의 공유자산 운영을 위한 제도변화의 연관성은 물론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대응과 계승하고자 했던 가치에 대해 분석하였다.

③ 연구주제 3: 예덕상무사(禮德商務社)의 조직과 지속
- 연구내용: 본 연구에서는 조선후기 예산・덕산・면천・당진 지역의 보부상이 남긴 소속 구성원의 명단을 활용하여 조직의 구성 원리와 실체 및 지속 여부에 대해 분석하였다. 이는 지역 상인의 조직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기초 작업에 해당하는 것이다. 종래에는 조직에의 출입 상황, 즉 가입과 탈퇴의 실태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이루어진 바 없기 때문이다. 전체 인원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직책별 분석이나 지역별 분석을 통해 예덕상무사의 경우 느슨한 조직 운영을 하고 있었음을 확인하였고, 이는 결국 조직 내의 구성원에 대한 상호부조적 기능은 소홀해진 것으로 결론하였다. 이는 그간 ‘규정’을 통해 입증된 보부상의 호혜성에 대해 재론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지적이다.

나. 2부 : 사회적 네트워크와 연대의 양상

④ 연구주제 4: 유교적 예치(禮治)와 가산제(家産制) 사이에서
- 연구내용: 상층양반의 친족네트워크가 정치에 미친 영향과 한계를 살폈다. 본 연구에서는 정치영역에서의 상호성의 정치를 일종의 ‘호혜성’으로 이해하여 조선후기 상층양반 특히 19세기 김조순 가문을 중심으로 이와 같은 갈등 통합 양상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19세기 세도정치기의 김조순의 가계는 개인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사회 통합의 원리도 도모했다고 여겨졌다. 이로한 가족과 국가를 연속으로 하는 사회통합 모형은 그 자체는 과거의 것이지만 획일화된 오늘날의 대중사회가 가져오는 부작용을 성찰하는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⑤ 연구주제 5: 조선후기 가계(家系)의 영속성을 위한 유대와 협동 양상
- 연구내용: 조선전기에는 형망제급(兄亡弟及)에 따라 봉사(奉祀)가 이루어졌으므로 양자 입양이 거의 없었으나, 16세기 중반 이후부터 양자를 입양하여 대를 잇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조선의 양자 입양이 중국의 종법적 가계계승과 다른 것은 대종(大宗) 뿐 아니라 모든 형제의 후손이 끊어지는 것을 막는다는 것이었다. 즉, 조선에서는 대를 잇기 위해 동일 세대 형제들의 호혜와 협동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이는 자신들 모두의 代가 끊어지는 것을 막고, 각 가계가 모두 존속하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해남윤씨와 부안김씨의 양자 입양과 가계계승 사례를 통해 이와 같은 친족관계를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주자가례나 종법과 같은 중국적 유교질서 하의 가계구조와 달리 종가와 지차(之次)가 서로 화합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국과는 다른 조선시대만의 가족구조임을 밝혔다. 즉, 조선시대의 혈연적 배타성은 인정되지만, 그 공동체 내부에서 작동했던 협동의 표출 양상을 확인한 것이다.

⑥ 연구주제 6: 조선후기 관상감(觀象監) 관원의 친족 네트워크와 결속
- 연구내용: 잡과 전문직 중인 집단 가운데 특히 음양과를 대상으로 주요한 가계와 네트워크를 분석하여 그들의 결속을 확인하였다.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운관선생안(雲觀先生案)』을 통해, 운관 집안 결속을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관상감 관원의 강력한 친족 네트워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누대에 걸쳐 음양학을 전공했고, 동일한 전공 범위에서 통혼이 이루어지며 강력한 결속을 다졌다. 이들의 이와 같은 상호 결속은 결국 관직의 독점이란 폐쇄적 결과를 불러오기도 했지만, 전근대사회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기술지식과 전승, 동일 지식군의 협력적 지식 공유를 통해 천문학과 지리학을 아우르는 음양학 전문 지식을 계승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는 친족 단위의 결속과 그 내부의 호혜성이 국가사회발전에 기여하고 있던 전통사회 협동체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다. 3부 : 유학의 호혜 전통과 실천

⑦ 연구주제 1: 16세기 지방의 의서 편찬과 환난상휼(患難相恤)의 토대
- 연구내용: 이 논문은 16세기를 중심으로 지방관과 지방의 유의(儒醫)들이 편찬한 의서를 중심으로 이들이 구축한 환난상휼의 토대를 정리하였다. 일차적으로 의학에 관심이 많았던 지방관들과 의술에 밝은 향촌 사족[儒醫]들의 의료 활동과 의서 편찬을 망라하여 정리하였다. 16세기에 이들 이른바 유자들이 의서를 편찬한 것은 지방관이나 향촌 사족들은 모두 공공의 의료 활동을 성리학의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실천하는 주요 방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16세기 중엽 이래로 이와 같은 양생의 의학은 퇴계와 같은 도학자들의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지만, 환난상휼의 토대로서 양생의 공공성은 더욱 강조되었다.

⑧ 연구주제 2: 호혜와 협동의 유학적 전통과 그 실천
- 연구내용: 이 연구는 유학에서의 ‘호혜와 협동’의 이념적 전통을 고찰하고 그 실천의 한 사례인 사창(社倉)제도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우선 ‘호혜와 협동’에 대한 이론적 검토를 위해 퍼트넘(R. Putnam), 샌델(M. Sandel) 등과 서구 학자들의 논의를 검토하여 그 주요한 특징을 요약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유학의 주요 개념인 인(仁), 예(禮), 충서(忠恕), 혈구지도(絜矩之道) 등을 통해 ‘호혜와 협동’이 가진 공동체적인 성격을 확인하였다. 공동체적 국가관의 성격이 강한 유학에서 환과고독(鰥寡孤獨)과 같은 빈민이나 가뭄이나 기근 등 백성들의 안정적인 삶을 위협하는 환난에 대해 적극적인 정책을 펼쳤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인 사창(社倉)을 통해 ‘호혜와 협동’의 실천 사례를 살펴보았다. ‘사창’은 국가의 구휼제도이자 유학의 ‘호혜와 협동’ 이념이 향촌사회에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주자의 사창론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사창론을 검토함으로써 ‘호혜와 협동’의 실천적 사례를 살펴보았다.

⑨ 연구주제 3: <인재일록(忍齋日錄)>을 통해 본 호혜와 협동의 공동체문화
- 연구내용: 본 연구는 ‘17세기 초반’이라는 시간, 충청도 ‘덕산(德山)’이라는 공간에서 전개된 호혜와 협동의 양상을 인간 ‘조극선(趙克善)’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 논문에서는 <인재일록(忍齋日錄)>을 통해 호혜와 협동의 장치와 작동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호혜와 협동의 장치로서 덕산현에 나타난 계와 회, 놀이공간은 상당히 다양하였다. 계는 주로 상조와 친목을 목적으로 하였고 회는 다양한 목적을 지닌 모임이었다. 호혜와 협동의 작동으로서 덕산현에는 대동계(大同契)가 작동하여 양반부터 하인까지 합동으로 모임을 가졌고, 마을의 세배문화가 있어 공동체의 예법으로 작용했고, 복상과 탈상에 대한 ‘위문’ 활동도 보편화되어 있었다. 또한 불규칙적인 관행으로서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는 사례(射禮)와 사은(謝恩) 역시 관행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하나의 사례로서 조극선의 덕산현 공동체문화를 살펴보았지만 이러한 사실을 통해 전통시대 지역사회의 호혜와 협동의 문화가 작동한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라. 4부 : 부세와 촌락 사회의 대응

⑩ 연구주제 4: 18~19세기 동래부 동하면의 ‘면중(面中)’과 잡역운영
- 연구내용: 이 글은 동래부 동하면의 사례를 통해 면의 독자적 기능과 이와 관련된 지역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살폈다. 동래부 동하면은 예하 각동의 행정 중간거점으로서 위의 지침을 시행하는 한편 예하 동리의 민원을 조정하는 접점으로 역할을 수행하였다. 동하면의 면임층은 효과적 업무수행을 위해 상호결속을 다지고 있었고 논의기구도 갖추고 있었기에 ‘면중(面中)’의 역할은 중요하였다. 특히 동하면은 관우(官牛) 대출과 사료조달, 해운대 유람 사객 지공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민의 이해를 논의하는 역할을 하였음을 밝혔다. 또한 잡역의 분정 및 운영과 관련한 규정이 명료치 않은 경우 각동의 의견을 수렴하여 조정하였는데 이는 면리제 내부의 층위별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공정한 호혜의 원칙이 있었다.

⑪ 연구주제 5: 조선후기 마을위상과 전세량의 관계
- 연구내용: 이 글은 조선시대에 동리(洞里 : 마을)의 경계를 명확히 그릴 수 있는가의 문제와 전결세를 책정할 때 동리의 위상을 고려하였는가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광무양안과 토지대장의 토지를 매 필지별로 연결하여 두 장부의 내용을 비교하였다. 즉, 광무양안과 토지대장의 엑셀을 입력하고, 지적원도의 디지털화와 광무양안과 토지대장 필지를 연결하여 결과물을 산출하였다. 그 결과 19세기 초까지 전세수취에 있어서 동리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동리의 경계도 애매하였고 호적을 작성할 때에도 동리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이는 정부에서 사람들 간의 수평적 연대를 방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람간의 연대감을 없애고 고립된 개인으로 존재시켜 지배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⑫ 연구주제 6: 17~20세기 초, 집성촌 형성의 요인
- 연구내용: 이 연구는 집성촌의 형성 요인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호구파악에 근거한 군역 및 호역의 징수와 관련하여 주로 양반 가족의 대응방법을 추적하였다. 그 결과 조선왕조의 행정구역은 자연지리적인 경계보다는 거주하는 주민의 사회관계에 근거하여 구분되었으며, 이것은 또한 국가의 호구정책에 대한 주민의 대응에 기초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지역의 사회조직화와 인간관계가 지방통치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특히 ‘집성촌’으로 불리는 마을과 그 주변의 사회구조는 용어상의 개념과 달리 특정 부계혈연집단에 한정되거나 그 가운데 계층적 배타성을 갖는 지역공동체로 형성될 수는 없었다. 지역공동체가 단일 부계집단으로 형성되는 것은 20세기에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 2년차 연구결과

가. 1부 : 향촌 사회조직과 결사의 성격

① 연구주제 1: 조선시대 훼가출향(毁家黜鄕)의 전개 양상과 향촌사회
- 연구내용: 이 논문은 향촌사회에서 중대한 죄를 범한 경우 집을 부수고 당사자를 고을에서 쫓아내는 처벌인 훼가출향(毁家黜鄕)의 시기별 양상과 의미를 추적한 글이다. 글에 따르면 조선전기 수령권을 강화하기 위해 시행된 세종대 부민고소금지법(部民告訴禁止法)에서 관주도 향촌통제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훼가출향이 16세기 사족들의 성장과 함께 향풍(鄕風) 유지를 명목으로 행사하는 향벌(鄕罰)로 변질되었다는 점, 결국 사족들의 훼가출향이 금지되면서 국가의 공식적인 파가저택(破家瀦澤)만이 남게 된 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저자는 조선중기 사족 주도 향촌운영은 집권적 관료체제를 지향한 조선왕조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했음을 강조하여 기존의 사족지배체제론에 대한 보완 작업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② 연구주제 2: 조선후기 경주 방어리(防禦里) 사계(射契)와 동계(洞契)의 호혜와 협동 가치
- 연구내용: 이 논문은 17~19세기 경북 경주시 외동읍 방어리[府南 지역]을 중심으로 한 마을에서 행해진 동계를 대상으로 계의 운영원리와 규약의 변화 추이를 분석한 글이다. 필자의 주된 관심은 이 조직을 오랫동안 지속, 가능하게 했던 구성원간의 협동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를 추적하기 위해 그는 첫째, 호란 이후 출현한 사계(射契) 조직의 성격과 규약을 분석하였고, 둘째, 무인들의 사계를 흡수하여 운영했던 상동계(上洞契)의 목적과 공유자산의 운영의 특징을 살폈다. 이를 통해 당시 이 지역에서 길흉사에 상호 부조를 수행하고 공동 자산을 구축, 운영하는 조직의 호혜성을 찾아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③ 연구주제 3: 저산팔읍상무우사(苧産八邑商務右社)의 조직과 지속
- 연구내용: 이 논문은 부여, 홍산, 한산, 임천, 서천, 비인, 남포, 정산 등 모시를 주로 생산하는 8개 지역, 즉 저산팔읍 중 우사(右社)의 보부상 명단을 분석한 글이다. 우사의 인원은 아직 공개된 바 없는 청금록(靑衿錄)이라는 자료에 기록되어 있는데, 필자는 본 책에 수록된 구성원 전체에 대한 DB화를 통해 19세기 후반에 보부상 조직이 전국적으로 정치 세력화하면서 성격이 변질되었고, 구성원에 대한 상호부조와 의례 등이 소홀해졌음을 실증하였다. 이로써 기존의 실증이 뒷받침되지 못한 보부상 연구의 한계를 명확히 읽어낼 수 있으며, 보부상을 서양의 상인 길드로 단순화하여 이해해서는 곤란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나. 2부 : 사회적 네트워크와 연대의 양상

④ 연구주제 4: 조선후기 호혜 조직으로서 친족의 범위와 관념
- 연구내용: 이 논문은 친족관계를 매개로 하여 인간들이 연대의 관계를 맺는 실제사례를 조선후기 전라도 해남 지방에 살았던 해남윤씨 윤이후의 일기 󰡔지암일기󰡕를 분석하여 살펴보았다. 필자는 인간관계에서 친족관계는 가장 기본적인 호혜성의 단위로 이해하고, 윤이후의 인간관계에 관한 상세한 일기 자료를 분석한 후 다음 두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첫째, 윤이후에게 친족관계는 단순한 혈연적 정, 이끌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 사회를 이루는 인간관계의 미시적인 기초였다. 둘째, 친족관계의 기본규범의 출발점인 가례(家禮)와 효제(孝弟)의 정신은 전체 사회를 통합시키는 윤리로 기능하고 있었다.

⑤ 연구주제 5: 조선시대 양반 문중의 빈민구제와 명망의 교환
- 연구내용: 이 논문은 전라도 해남 연동 지역의 해남윤씨 종가와 지역민의 관계에 대한 기억의 전승을 추적한다. 구체적으로 필자는 해남윤씨 종가가 가계운영과 관련하여 오랫동안 회자되는 지역 주민과 얽힌 미담 3가지를 소개하고 그 의미를 살폈는데, 하나는 해남 입향조(入鄕祖) 윤효정이 세 번 옥문을 열어 빈민을 구했다는 삼개옥문(三開獄門) 일화, 둘째는 윤효정의 현손 윤선도의 간척사업을 통한 빈민구제 일화, 셋째는 윤선도의 증손 윤두서의 자염을 통한 빈민구제 일화이다. 필자는 이들 행위를 단순히 일방이 일방에게 시혜를 베푼 행위로 보지 말고, 상호호혜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사안으로 볼 수 있음을 지적한다. 즉 해남윤씨가 지역민에게 경졔적 시혜를 베풀고 사회적 명망을 얻었다는 점에서 이를 ‘명망과 이득의 상호교환’으로 보았다.


⑥ 연구주제 6: 조선후기 의과 입격자의 친족 네트워크와 결속
- 연구내용: 이 논문은 조선시대 전문직 중인이었던 의과 합격자의 혈연적 결속 양상을 분석하였다. 대상 자료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의과선생안(醫科先生案)󰡕이며, 대상인물은 1623년부터 1870년까지 의과에 합격한 1,100명이다. 필자는 해당 선생안 수록 인물의 부계 친족 가계 및 인물들의 통혼관계를 통해 의과 합격자들이 친족적으로 강력한 결속을 지닌 실체를 실증적으로 확인하였다. 아울러 이같은 사실은 지식과 경험의 전수가 필수적인 당대 전문직 집단의 불가피한 측면임을 강조하여, 이들의 친족적 결속, 협력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하였다.

다. 3부 : 유학의 호혜 전통과 실천

⑦ 연구주제 1: 환난상휼(患難相恤)의 실천, 16~17세기 향촌 사족들의 지방 의국(醫局) 참여
- 연구내용: 이 논문은 16~17세기 여러 지역을 사례로 하여 이들 지역 사족들의 향촌 유의(儒醫)로서의 활동에 주목하였다. 이 글에서 주목한 사례는 경상도 영주 지역 이석간(李碩幹) 및 의국 제민루와 관련한 박종무(朴樅茂)의 활동, 충청도 청주 지역의 이득윤(李得胤)과 박춘무(朴春茂), 전라도 광주 지역의 경우 호남 의병으로 활동했던 송제민(宋濟民) 등이다. 필자는 이들 유의들의 활동을 새로 발굴한 자료를 중심으로 정리하였으며, 결론적으로 사족들의 의료 활동은 성리학의 정치론과 관련할 때 환난상휼의 실천 운동으로서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평가하였다.

⑧ 연구주제 2: 국가실패와 향촌공동체의 대응-향촌의 자치질서와 국가의 통치질서-
- 연구내용: 이 논문은 임진왜란 때의 향촌공동체의 거병, 의병과 관군의 관계 등에 대한 기존의 연구성과를 호혜와 협동, 거버넌스(governance) 개념으로 재해석하려한 시도이다. 필자는 임진왜란기 국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향촌의 유학자들이 중심이 된 의병이 전쟁 극복의 원동력이 된 사실에 주목하여 그 이유를 향촌사회와 국가 레벨에서 각각 조망하였다. 특히 필자는 향촌 자치규범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는 임진왜란 당시 국방과 관련한 국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의병을 조직하고 국란 초기에 효과적인 힘을 대응할 수 있는 힘이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⑨ 연구주제 3: 호혜와 협동 인프라의 설계와 운영의 실제 :합천현 이사 마을을 중심으로
- 연구내용: 이 논문은 양보와 타협, 협력과 공존의 요소가 조화를 이룬 조선시대 마을 공동체의 한 사례로 경상도 합천현 이사 마을을 분석하였다. 이곳은 고령박씨 박인(朴絪)의 자손들이 400년 세거하는 마을로 임란 이후 양반을 중심으로 평민과 천인이 혼거하는 모습으로 편제된 곳이다. 필자는 마을의 연혁, 환경 등을 개관한 후 마을민 상호간의 사회경제적 협력을 위한 다양한 조직을 분석하였다. 양반에서 천인까지 종적 호혜의 장치로서의 동계(洞契), 박씨 집안 상호간의 상조를 위한 횡적 협력의 시스템으로서의 의계(義契), 족계(族契) 등을 통하여 마을 운영이 신분적 개방성과 절차적 공정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라. 4부 : 부세와 촌락 사회의 대응

⑩ 연구주제 4: 19세기 거제 구조라리의 부세 분정과 ‘동전(洞錢)’의 운영
- 연구내용: 이 논문은 현재 경상도 거제 구조라 마을회관에 소장되어 있는 문서를 분석하여 연해 포구 민촌마을의 19세기 사회경제적 동향을 조망한 글이다. 저자는 기존 구조라리 연구가 당시의 호구(戶口) 파악과 부세운영의 실상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비판하고, 왕조 지배권력이 국가 최하위 통치단위까지 어떠한 방식으로 관철되는지를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구조라리는 촌락의 존속을 위협할 정도의 강한 압력으로 가해지는 부세부담에 대응하기 위하여 주변 촌락과 공동으로 대응하였으며, 마을의 대소사를 주관하고 처리하는 ‘동중(洞中)’을 중심으로 마을 자체의 공유재로 ‘동전(洞錢)’을 조성하여 운영하였음을 밝혔다.

⑪ 연구주제 5: 조선후기 마을 조직의 생성, 통합, 분열
- 연구내용: 이 논문은 19세기 후반 전라도 장흥의 모산동 사람들이 남긴 계 자료를 활용하여 계의 특징과 구성원의 관계 맺기의 양상을 분석한 글이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조선시대 계 연구가 계의 개념, 계와 관련된 사람들의 상호관계와 그 성격에 대한 고찰이 부족했음을 비판하고, 장흥군에서 어떤 동보다도 풍부한 계 자료를 남긴 모산동 계의 조직과 임원, 수입과 지출 등 재정 현황의 검토를 바탕으로 계의 성격을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계의 가입과 탈퇴는 개인의 자유의사에 맡겨졌으며 정부의 호적정책에 따라 사람들의 관계 맺기가 상당히 자유로웠는데, 이는 중세 유럽의 장원이나 일본 에도시대 무라 사람들과의 큰 차이라고 파악하였다.

⑫ 연구주제 6: 거주이동과 혈연적 연대의 관계
- 연구내용: 이 논문은 조선후기 마을을 단위로 하는 공동체적 결합의 특징을 밝히기 위하여 단성현 합천이씨 계파를 추적하였다. 자료는 󰡔단성현호적대장󰡕과 합천이씨 족보를 활용하였으며, 특히 ‘가족의 재생산 전략’에 주목하여 제사의 계승, 거주와 전답의 상속, 분가(分家) 문제, 장남의 부모 곁 잔류 혹은 복귀 여부 등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단성현 합천이씨 가족들은 세거지의 형성을 강하게 열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반적 예상과 달리 타 지역으로의 이동도 빈번하여 부계혈연적 유대관계가 견지되기 어려웠고, 가계의 지역적 분산이 심화되는 모습을 띠었다.

○ 3년차 연구결과

가. 1부 : 향촌 사회조직과 결사의 성격

① 연구주제 1: 조선후기 밀양 밀성박씨 인당공파의 종계 운영과 문중 활동
- 연구내용: 이 글은 경남 밀양시 초동면 신호리 밀성박씨 인당공파 박수견(朴守堅) 후손가에 전해져 오는 고문서 분석을 바탕으로 이들의 조선후기 지역사회 내에서의 위상과 후손들의 문중활동에 대해 검토하였다. 인당공파는 임란 이후 여타 영남지역 양반가와 유사하게 관직이 막히고 재지사족으로서 삶을 영위해간다. 이 집안의 문중 활동 양상은 영남 지역사와 여러 성씨의 동향을 이해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인당공파는 조선후기 중앙관직 진출이 좌절되었지만 파조의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 박수견의 시묘살이를 통한 효의 실천 등으로 밀양 내에서의 영향권을 확보하였다. 인당공파는 일찍부터 종계가 조직되어 후손들의 결집을 도모하였고, 모선정을 중심으로 박수견 후손들은 혈연의식을 공유하고 연대와 결속을 다졌다. 또한 다른 박씨 여러 파와 다양한 위선활동에 참여하면서 문중의 사회적 위상을 제고하는데 기여하였다.

② 연구주제 2: 18~19세기 경주 갓뒤마을 말림갓의 호혜와 협동 가치
- 연구내용: 경주 갓뒤마을 말림갓의 사례를 통해 조선후기 마을에서 공유자산인 임수(林藪)를 관리한 내력을 분석하였다. 갓뒤마을에는 임수의 조성과 관리를 담은 동계가 있어서 마을의 호혜를 위한 협동의 내력을 파악할 수 있다. 그간 임수에 대해서는 향촌사회의 갈등을 중심으로 연구되거나 이권의 다툼에 대한 시각에서 접근하였으나 본 연구는 마을 공동체의 공동 이익을 위해 관리한 사례를 발굴하면서 공유자산의 유지 및 지속에 대해 분석하였다. 우선 갓뒤마을의 숲의 성격을 확인하고 18세기 동계에서 식목을 결의한 배경과 절목의 내용을 분석하였다. 이 연구는 조선시대 공유자산인 임수의 유지와 분배를 위한 제도 개발의 가치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조선시대 호혜와 평등의 원리를 확인하는데 의의가 있다.

③ 연구주제 3: ‘저산팔읍상무좌사(苧産八邑商務左社)’의 조직과 지속
- 연구내용: 연구 분석 대상은 저산팔읍의 보부상 명단 중에서 ‘좌사’가 남긴 것이다. 좌사의 인원은 󰡔청금록(靑衿錄)󰡕, 󰡔소임책(所任冊)󰡕, 󰡔선생안(先生案)󰡕 등 자료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 자료에 기재된 구성원 전체에 대한 DB화를 통해 실증적으로 분석을 진행하였다. 기존에 우사가 보상이고 좌사가 부상이라는 이해를 하고 있으나 저산팔읍의 사례를 보면 우사는 정주상인, 좌사는 이동상인이었다. 좌사의 성립시기는 우사에 비해 늦은 시기였다. 좌사와 관련된 최초의 자료는 1879년에 확인된다. 본 연구는 이처럼 보부상 좌상의 인원과 조직에 관한 실증적 이해를 도모하였다.

나. 2부 : 사회적 네트워크와 연대의 양상

④ 연구주제 4: 근대전환기 신흥민중종교운동의 경제활동과 사회조직
- 연구내용: 전통적인 결사인 계조직의 발전을 포함하여, 한국사회에는 근대적인 방식의 인적 결합이 등장해가고 있었고, 이러한 인적 결합에서 사회생활을 영위해 가고 있었다. 계의 조직은 결사체를 운영하는데 있어 전통적인 인간관계가 실마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도시화, 대규모화 되어가는 근대적 사회에서는 다른 결사 문화가 생길 필요가 있다. 특히 원불교의 사례에서 새로운 결사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원불교는 교조의 표명이나 초기 참여자의 계급적 성향, 교리와 사업의 지향 등을 볼 때 조선말 민중종교의 정신을 잇고 있다. 대체로 일제강점기 폭압적 권력 하에서도 정치적 지향보다는 노동과 내성 윤리를 통한 민중구제의 길을 걸었다. 아래로부터의 단계적 적립을 통한 사업의 완성을 강조하여 조선말 이래 민중운동의 또 하나의 경로를 걸었다.

⑤ 연구주제 5: 遠祖에 대한 제사의 강화와 친족 네트워크의 발달
- 연구내용: 조선시대 일기자료에 나타난 묘제(墓祭)의 정착시기, 수행방식, 의미를 고찰하여 묘제가 16~17세기에는 비정형화된 형태로 전승되다가 18세기로 접어들며 묘제 정식이 수립되거나 조항이 마련되는 등 원칙이 정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기제사는 윤회봉사 방식이지만 묘제는 장남과 장손으로 이어지는 혈통을 중심으로 계승되며, 일정한 구심점으로 형성하게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친족의 결속을 강화하는 매개로 작용했던 점을 확인하였다. 적어도 19세기까지 묘제가 각 묘위별로 설행되었다. 7대조 묘제에 그 후손들이, 6대조 묘제에도 또 그에 해당하는 후손들이 결집하는 구조로, 소규모 친족집단 단위가 수평적으로 결합하는 친족 네트워크가 발달하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중국 종법과 다른 조선 사회 나름의 친족제 발전 방향이었다.

⑥ 연구주제 6: 조선후기 律科入格者의 친족 네트워크와 결속
- 연구내용: 조선후기 율과입격자의 친족 네트워크를 통해 이들의 결속을 확인하고 그 배경을 파악하였다. 그간 율과입격자는 다른 잡과에 비해 결속이 약했을 것이라는 이해를 부정하고 율과입격자도 공고한 네트워크를 지니고 있음을 실증하였다. 특히 동성 부계친족의 종적 결속과 통혼 친족의 횡적 결속을 아울러 검토하여 친족 네트워크가 양방향 모두에서 강력한 결속을 이루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들의 결속 배경으로는 율관이 지닌 전문성에서 찾았다. 율관들은 형조 내에서 율학청이라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고 여기에서 지식을 계승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율관들의 법률해석이 사대부의 법률 판단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넘어 사법적 판단까지도 율관들에 의해 좌우될 정도로 권한이 강해지면서 율관들을 자신들의 지식을 집단화하고 전문성을 강화해갔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이러한 친족 네트워크와 결속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다. 3부 : 유학의 호혜 전통과 실천

⑦ 연구주제 1: 조선의 지방 의국(醫局) 재론 : ‘공공의료’의 관점에서
- 연구내용: 본 연구는 이규대의 독보적인 연구인 1603년 강릉의 약국계에 대한 재검토이다. 기존 약국계에 대한 이해는 “약국의 설립은 관주도적으로 운영되어 오던 것을 활성화하는 형태였으며 약국계의 출현은 약국의 운영 주체가 관에서 재지사족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며 약국이 공공의 이익을 대변한 것으로 덧붙였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강릉약국계는 사족들의 친목이 아닌 公局으로서의 역할이 있다고 보았다. 강릉약국계는 강릉도호부의 관할 하에 있던 공립 의약국으로 강릉 지방의 약재를 진상하게 의한 창구인 동시에 지역민들을 위한 공공 의료 서비스를 담당하였던 것이다. 국가에서 의국을 설치하고 운영은 재지사족이 담당하는 민-관 협동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기왕의 ‘사족지배체제’라는 개념에는 주의가 필요하며 조선후기에도 여전히 지방관의 위상은 부정된 바 없고, 관과 협응하는 재직세력의 정체가 중요하다.

⑧ 연구주제 2: 전통시대 지역사회의 호혜적 관계와 그 특징에 관한 소고
- 연구내용: 이 연구는 전통시대 지역사회의 호혜적 관계를 살펴보고 그 특징에 대해 논의하였다. 특히 남명학파의 문인들의 호혜와 협동의 결과물인 경상우도 지역의 덕천서원을 중심으로 살폈다. 서원은 지역사회의 다양한 호혜적 관계가 응축되어 있는 공간이다. 선현에 대한 제향과 강학 공간으로서 여러 문인간의 관계가 얽혀있다. 또한 서원은 혈연 중심의 가(家)의 관계망과, 국가 차원의 관계망이 얽혀 있는 공간으로서 당시 지식인들이 개인에서 출발하여 국가로 나아가는 사회화 과정에 위치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덕천서원은 남명학파 중심의 강고한 연대를 이루는 역할은 하였지만, 남명학파의 범주를 넘어서는 사회화에는 실패하였다. 서원만의 강고한 사회적 연대만으로는 공적 성격을 확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⑨ 연구주제 3: 호혜와 협동의 가적(家的) 실제에 대한 고찰
- 연구내용: 본 연구는 호혜와 협동의 작동 양상을 ‘가(家)’에 포커스를 맞춰 분석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유교적 국가 운영의 양대 윤리가 ‘충효’라면, 가(家)라는 혈연 공동체는 마을이라는 지역공동체와 함께 효의 윤리가 가장 치열하게 실천되는 공간이다. 본 글은 이를 해명하기 위해 가족의식, 적서협동(嫡庶協同), 노주상생(奴主相生), 빈부상휼(貧富相恤)의 가치에 주목하였다. 오희문가의 사례에서 가족의식의 실상이 확인되며, 이원익가와 하증가에서는 적서상생을 위한 가장의 역할이 확인된다. 이형상가에서는 두 대상 간에 이루어진 수로보공(酬勞報功)의 호혜성의 의미를 진단하며 류복기가의 사례에서는 빈자에 대한 종족적 구휼을 확인하였다. 이들 가문은 저마다 양상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가의 유지나 가적 결속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호혜와 협동의 실상과 관련한 많은 점을 시사한다.

라. 4부 : 부세와 촌락 사회의 대응

⑩ 연구주제 4: 19세기 거제(巨濟) 구조라리(舊助羅里)의 부세운영과 촌락사회의 동향
- 연구내용: 이 연구는 구조라 문서에 대한 기존연구가 호구파악 및 부세운영에 대한 구체적 이해가 미흡한 채로 진행되어 문서 본연의 내용에 대한 실체적 이해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인식 아래, 구조라리 일대 지역사회에서 전개된 진상과 잡역 부과, 그리고 이행의 실태와 그에 대한 촌락사회의 대응 양상을 체계적으로 살폈다. 이를 통해 국가와 촌락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틀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연구가 국가 기구 및 정책의 제도적 실천 양상이나 촌락 단위의 독자적이고 완결적인 질서를 읽어내던 자리에서, 이 연구는 구조라리와 인근 지역사회의 복잡하고도 독특한 사회상에 대한 세밀한 파악을 토대로 국가 기구 및 그 행정관료와 구조라리 사이 그리고 구조라리와 인근 촌락들 사이의 집요하고 끈질긴 협상과 타협의 공간을 찾아냈다.

⑪ 연구주제 5: 19세기 공동납의 실상
- 연구내용: 본 연구는 전남 장흥의 촌락 자료를 활용하여 19세기 마을 차원의 공동납의 실상에 대해 분석하였다. 조선후기 공동납의 시행은 상식적인 부분이지만 실제로 그 최하위 단위인 마을에서 어떤 방식으로 공동납이 이루어졌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19세기 후반 전남 장흥의 모산동은 모든 인두세를 공동으로 납부하였다. 동중에서는 동민들의 경제적 능력을 세밀히 따져서 재화를 수합하였다. 동중은 큰 어려움 없이 동민들에게 재화를 수합하였는데 이는 19세기 후반 높은 수준의 마을 자치가 실현된 사례라 할 수 있다. 공동납 체제가 활성화되면서 동중을 압박하는 외부의 힘은 강해졌다. 여러 기관과 다양한 관속, 원근 유력자 등은 수시로 각종 납부를 강요했다. 이들의 높은 수준의 자치는 외부 요구에 대한 대비에서 마련되었다. 동중은 내부적으로 생산과 관련된 일체의 논의는 하지 않았다. 이들은 지출을 감당한 재화를 거두기에만 급급했다. 정부는 공동납 체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호적 등 각종 장부도 바꾸었다. 이는 모두 부세 부과를 위함이었다. 또한 향약을 통하여 공동납 활성화를 독려하였다.

⑫ 연구주제 6: 20세기 전반 농촌 가족의 거주이동
- 연구내용: 본 연구는 경상도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의 ‘신적부’와 ‘토지대장’을 이용하여 단계리 가족들의 계층적 혈연적 구조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20세기초 거주이동의 성격을 규정하였다. 이 논문은 20세기 전반 가족의 거주이동을 통해 ‘동성촌락’주민들의 계층적, 혈연적 관계를 분석하였다. 여기서 ‘동성촌락’으로의 결집도가 약하기 때문에 마을 내의 동성동본 성씨들의 ‘부계혈연집단’의 결집이 강조되었을 가능성을 보았다. ‘지역공동체’의 약한 결집력, 유동성은 20세기의 사회변동에 따라 심화되었을 것이며, 그에 대한 반작용이 지역을 넘어서는 친족 네트워크의 연대 강화와 종족집단의 형성을 부추겼다고 보았다.



2) 자료 구축 내역

○ 계획 대비 성과
자료선별 작업은 계획을 100% 달성했다. 자료구축팀은 2018년에 『고문서집성』 001~121 및 장서각 소장 향약·계문서를 전수 조사했다. 이에 385점의 자료를 목록화했다.
또한 본격적인 자료구축 작업은 당초 계획했던 161점(2018~2020년)을 134% 초과하여 215점으로 구축했다. 자료구축팀은 215점의 문서에 대한 정서·역주·교열·해제를 총 932개의 파일로 구축했으며, 계문서 외에 각 지역의 여러 형태의 호혜문서(향약·동약, 향안·동안·족안, 치부책·추수기 등)를 발굴하여 자료로 구축했다. 아울러 당초 계획에는 없는 공동연구진이 지역 사례 연구를 위해 의뢰한 24점의 문서에 대한 정서·역주·교열·해제 자료를 구축하여 제공했다.

○ 자료 정리 과정
자료구축 작업에는 전통 한학자 및 초서 연구자, 국어학자, 향토문화 연구자 등 총 42명의 연구진이 참여했다.([표1] 참조) 연구진은 초서나 행서로 작성된 원전자료를 활자로 정서하고 이를 역주했으며, 마지막으로 해제를 작성했다. 또한 각 단계마다 정서교열·표점교열·국역교열을 실시함으로써 자료구축의 공정을 고도화하고 결과물의 완성도를 극대화하였다.([그림1] 참조)

2020년(3차년도) 자료구축 작업을 완료함으로써 『고문서집성』 1~121 전책(全冊)과 ‘고문서집성 외 연구결과물’ 등 장서각이 편찬·발행한 주요 향약·계문서를 모두 정서·표점·번역·교열·해제하게 되었다. 자료구축팀이 구축한 자료 중 한글고문으로 작성된 ‘재령이씨 평천민 상계문서’는 국어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문서임은 물론, 조선 후기 하층민계의 실제 운영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순암 안정복(1712~1791)이 작성한 ‘광주부 경안면 이리동약’은 총 100여 쪽에 달하는 동약 문서로서 서문, 약헌신규, 동회의식, 하계에 효유하는 글, 거향잡의, 향사례 홀기(鄕射禮 笏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리동약은 조선 후기 유학자가 인식하고 있었던 향촌 규약과 교화, 운영의 실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장암동계와 관련한 13점의 문서는 전남 영암지역의 호혜 모습을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시계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밖에 1582년(선조 15) 임오년 사마시 급제 동기들의 모임을 기록한 임오사마방회지도(壬午司馬榜會之圖), 1577년(선조 10) 정축생 동갑들의 의기투합 자료인 정축생계첩(丁丑生契帖) 등 조선시대 상호 협동과 교류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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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요약문

연구요약문: 전체 연구결과 요약, 세부과제별 요약로 구성
전체 연구결과 요약
본 연구과제는 <호혜와 협동의 계보학>이라는 주제를 심층 연구하여 한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모색한다. 본 과제는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1차년도부터 3차년도까지 3개년에 걸쳐 조선시대 향촌 사회조직, 지역 공동체의 운영 원리를 연구하고, 호혜·협동 관련 사료의 체계적인 구축을 시도하고자 하였다. 매년 12명의 공동연구진이 1편의 학술논문을 도출하여 3개년 도합 36편의 연구를 진행하고, 조선시대 호혜와 협동의 사례를 고문서와 고서를 통해 발굴하여 정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학술연구’는 매년 12개의 학술연구를 도출하여 3년간 3편개의 학술논문을 발표하였다(계획대비 100%).
‘자료구축’은 자료를 선별하는 작업을 수행하여 『고문서집성』1~121권에 수록된 호혜와 협동 관련 자료 목록을 작성하고, 이들 목록을 토대로 3년간 당초목표 161점을 초과 달성하여 215점의 자료를 구축하였다(계획대비 134%).
세부과제별 요약
연구는 학술연구와 자료발굴로 크게 구분하여 진행하였다.
‘학술연구’는 전근대 한국 전통사회에서 상호성과 호혜의 사회적 실천양상의 해명이 소홀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향촌사회를 대상으로 호혜와 협동의 역사/문화적 사례를 추적하였다. 1부 ‘향촌 사회조직과 결사의 성격’, 2부 ‘사회적 네트워크와 연대의 양상’, 3부 ‘유학의 호혜 전통과 실천’, 4부 ‘부세와 촌락사회의 대응’이라는 4개의 소주제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자료구축’은 먼저 『고문서집성』에 수록된 향약, 계와 관련된 자료를 조사하고 목록작업을 진행하였다. 이어 이들 자료 가운데 중요하다고 판단된 사료를 선별하고 정서/역주/교열/해제 자료로 구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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