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과제구분,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연구책임자, 공동연구자, 연구기간, 연구형태, 연구목적 및 배경, 연구방법 및 내용,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연구결과, 참고문헌, 로 구성
과제구분 한국학기초연구 / 모노그래프과제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 국문 : (AKSR2018-M01) 고려후기 직물생산 및 원제국과의 교역
  • 영문 : Textile Production in the 13th∼14th centuries Goryeo, and textile trades with the Mongol Yuan Empire
연구책임자 이강한
공동연구자
연구기간 20180404 ~ 20201130 연구형태 단독연구
연구목적 및 배경 1) 고려-원제국 관계에 대한 새로운 조망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고려와 원제국의 관계에 대해서는 ‘원제국의 고려에 대한 간섭과 침탈 양상’에 주목하는 관점이 오랜 기간 존재하였다. 20세기말까지의 여러 다양한 연구를 통해 13세기후반 고려가 원제국으로부터 받은 심각한 정치 압박과 경제적 약탈이 규명되었다. 다만 100여년 넘게 지속된 이 시기에 고려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양상만 지속되었을 것이라 단정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에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 시기 존재했던 양국 관계의 다양한 양상을 발굴하려는 시도도 꾸준히 진행되었다. 공존을 모색하고 영향도 수용하며, 그를 기반으로 이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여러 자구책과 개혁방안도 모색한 정황들에 주목한 최근의 여러 연구들이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미 정치제도, 경제분야, 지방제도와 군사제도, 전례(典禮)와 의식의 문제 등에서 고려인들이 원제국 치하 중국의 제도나 몽골의 관행을 어떻게 인식했고 그를 어떻게 활용했으며, 그러한 노력으로 인해 14세기 한반도에서 양국(고려와 원제국)의 문물이 서로 어떻게 조합, 절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일련의 연구가 발표돼 있다. 심지어 예술의 영역인 도자기 분야에서도 어떤 영향이 원제국으로부터 유입되었고 그 결과 고려의 자기가 어떤 변모를 거쳤으며 고유의 면모들은 얼마나 남았는지 또한 검토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직물’이라는 분야에서 비슷한 시도를 하고자 한 것으로, 예술계, 산업계, 일상생활 모두와 깊은 관계를 맺었을 ‘직물’의 분야에서 고려인과 조선인들이 외부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어떤 새로운 방안들을 찾아나갔는지를 제대로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본 연구를 추동한 첫 번째 동기라 할 것이다.

2) 고려-원제국 교역사의 보완
고려와 원제국의 교역의 역사는 실로 오랜 기간 검토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20세기말까지의 연구 관점으로 인해, 고려와 원제국 간에 통상적 의미의 무역이 존재했을 리 없다는 무근거한 통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선험적 단정이 오랫동안 학계를 지배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와 중국, 그리고 한반도와 세계 간에는 언제나 일정 규모의 무역이 존재하였고, 그 결과 형성된 물류 역시 한반도와 세계 양쪽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한 문제의식 아래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고려와 원제국 간의 물물교류 및 교역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그런 노력에 힘입어 양측의 무역정책 및 그에 기반한 양국간 물류의 시기별 추이 등이 최근에야 비로소 규명되었다.
다만 정책과 물류의 문제는 다뤄졌던 한편으로, 물류의 구체적 내용이기도 했던 당시의 ‘무역품’들에 대한 각론적 연구는 여전히 미흡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물론 인삼, 종이, 자리 등은 비록 원제국에 활발하게 판매됐으되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연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물들이 다수 남아 있는 도자기 분야와 문헌기록 상의 언급이 많은 직물 분야는 다른 문제다. 전자의 경우 자기학계 및 역사학계 등에서 이미 여러 다양한 연구가 발표되어, 원제국과의 무역품으로서의 고려산 자기에 대한 검토가 어느 정도 이뤄진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직물의 경우 직물학계, 미술사학계에서는 연구가 왕성했으되, 역사학계에서는 거의 검토가 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문헌사학적 견지에서 고려후기-조선전기 한반도산 직물의 생산 및 수출 양상에 대한 검토가 시급한 셈으로, 이러한 문제의식이 본 연구를 추동한 두 번째 동기로 작동하였다.
연구방법 및 내용 이 연구의 검토대상 및 범위는 다음과 같다.

1) 검토 시기의 문제
본 연구에서는 13세기 후반-14세기 전반을 1차적 검토 대상으로 삼되, 이 시기 한반도의 직물생산 및 수출 정황이 이전, 이후 시기와는 어떻게 달랐고 어떤 점에서는 비슷했는지를 가늠하는 차원에서 검토 대상 시기를 이전(고려 전·중기)과 이후(조선전기)로도 확장하였다. 이전의 어떤 추세들이 계승됐고 어떤 양상들이 새로이 출현했으며, 그 중 어떤 부분들이 이후 시기로도 이어졌는지를 검토하는 차원에서 10세기초 이래 13세기전반까지는 물론 이후 14세기후반-15세기전반의 상황까지도 검토한 것이다.
13세기 중엽까지의 상황에 대한 검토 결과는 1장, 2장, 3장의 서두에 녹여냄으로써 13세기 후반 이후 15세기 전반까지 여러 직물들이 보였던 동향들이 이전의 생산 및 수출 경험과 무관하지 않았음을 제시하였다. 또 14세기 중엽까지의 상황은 1장에서, 그리고 14세기 후반 이래 15세기 전반까지의 추이는 2장과 3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룸으로써, 고려후기의 유산이 여말선초는 물론 조선전기에도 여러 ‘변용’ 시도들로 이어졌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였다.

2) 검토 공간의 문제
종래의 한국 대외무역사 연구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다룬 지역은 중국이었다. 이는 한반도와 중국의 교역이 한반도-동북아시아 제 지역 간 교역의 전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고에서 다룬 고려시대의 경우 한반도가 동북아시아 뿐 아니라 인도 및 이란 등지로도 열려 있던 시기이고, 고려 직물의 유산을 물려받은 조선 또한 일본을 넘어 동남아시아 제지역과 교류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도 중국 중심의 무역사 연구를 넘어, 중국으로서는 서역(西域) 및 남양(南洋)에 해당하는 지역에도 시선을 돌려 보았다.
그 결과 본 연구가 다룬 지역들의 공간적 범위는 중국을 넘어 이 시기(13-15세기) 중국과 교역했던 모든 지역들, 즉 중국의 남쪽으로는 인도차이나반도와 동남아시아 제 지역(류큐와 일본 포함), 그리고 서쪽으로는 인도와 아랍권(해상) 및 중앙아시아(육로)까지 망라하게 되었다. 물론 제한된 지면에서 이들 지역에서 생산된 직물들 전체를 살피거나 이 지역들이 직물을 활용해 전개한 대외교류 전체를 살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반도와 관련된 부분, 또는 비교가 될 만한 지점들에 검토를 집중하였다.

3) 검토 직물의 종류
직물교역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글인 만큼 본 연구에서는 특정 직물에 검토를 국한하지 않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직물들의 물류 추이를 다루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한반도산 직물로는 우선 견직물을 들 수 있고, 다음으로 인피직물을 꼽을 수 있으며, 피화와 모직은 물론 목면까지도 검토대상으로 설정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들 직물 모두를 대상으로, 10세기 이래 15세기까지의 관련 사료들을 두루 검토하여 그 생산 및 수출 양상을 재구성해 보았다. 아울러 외국산 동종 직물들의 추이 및 그들의 한반도 유입 또한 살핌으로써, 외부 직물로부터의 영향이 국내 동종 직물의 생산 및 수출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또한 살펴보고자 하였다.
한편 검토의 결과를 직물별로 나열하는 것은 각 직물의 추이가 다른 직물의 추이에도 영향을 미쳤던 당시의 실상을 환기하는 데 적절한 방식이 아닌 듯하여, 장 별로 특정 직물을 차례로 논의하는 방식은 피하였다. 대신 외부로부터의 영향에 대응하여 한반도 직물업계가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결과로 보이는 특정의 직물상품을 세 가지 설정하여, 3개의 장에서 이들의 배경과 전개, 생산 및 수출, 그리고 그 결과와 유산을 살펴보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 시기 직물생산 및 수입·수출의 역사를 복합적으로 재구성하고, 그 진화상을 환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4) 검토자료와 연구
자료와 관련해 한반도측 자료로는 우선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圖經󰡕 및 󰡔朝鮮王朝實錄󰡕의 15세기 기록, 각종 문집, 그리고 󰡔世宗實錄地理志󰡕, 󰡔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의 지리지 자료를 검토하였다. 중국측 자료로는 󰡔宋史󰡕, 󰡔遼史󰡕, 󰡔金史󰡕, 󰡔元史󰡕, 󰡔明史󰡕 등의 정사류를 통해 직물별 동태를 확인하고, 특히 12-14세기 중국 강남항구 지방지(󰡔寶慶四明志󰡕, 󰡔大德南海志󰡕, 󰡔至正四明續志󰡕), 원대 법전자료(󰡔通制條格󰡕, 󰡔大元聖政國朝典章󰡕, 󰡔至正條格󰡕), 그리고 원·명대의 동남아시아 여행기록들(󰡔諸番志󰡕, 󰡔島夷志略󰡕, 󰡔瀛涯勝覽󰡕, 󰡔星槎勝覽󰡕)을 두루 섭렵하였다. 연구와 관련해서는 국내 직물학계의 연구성과는 물론, 세계 여러 지역(아랍, 인도,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의 직물에 대한 외국 직물학계의 연구성과들을 심층 검토하였다.

5) 장절의 구성
1장에서는 14세기 한반도 직금인피 제품의 생산 및 수출을 살펴보았다. 13세기후반 원제국산 직금제품의 한반도 유입이 국내 자수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던 상황에서, 한반도의 전통 인피직물에 외래 직금기법을 결합시켜 새로운 직물로서의 직문저포를 기획, 생산, 양산하고 급기야 중국 및 서역에 수출하던 정황을 살펴보았다.
2장에서는 14-15세기 한반도 피화제품의 생산 및 수출을 살펴보았다. 중국에 명이 등장하면서 직금은 여전히 왕성하게 생산됐고 중국내 인피직물 생산은 재활성화되면서 한반도가 인피가 아닌 별도의 제품으로 수출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었고, 그 와중에 피화 수출 또한 유용한 대안으로 떠올랐음을 살펴보았다.
3장에서는 고려시대 그 자취가 발견되나 생산 및 수출은 조선전기에 접어들어 본격화된 이른바 ‘교직물’들을 살펴보았다. 견직물과 인피직물의 혼직인 ‘교기’, 견직물과 목면직물의 합직인 ‘면주’를 검토하였다. 주, 면, 목면, 기 등 고려시대부터 생산돼 온 직물들이 고려후기 어떤 변동을 겪었고, 그 변동에 국내외적 요소들이 어떻게 작용했으며, 그것이 조선전기 어떤 상황으로 귀결된 결과, 기존의 직금기법을 대체하여 교직이라는 전략이 새로이 시도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1장. 고려후기 원제국과의 직물교역
- 직금견의 수입, ‘직금인피’의 생산과 수출

1장1절. 13세기후반 제국 직금의 유입 및 토산 저·마의 상황

1장1절1항. 고려의 자수 전통 및 후기의 변화
1장1절1항1목. 13세기 이전 고려의 자수 전통과 중국의 상황
1) 고려 전·중기의 자수
2) 송·요·금대 중국의 자수
1장1절1항2목. 원제국 직금의 고려 유입 및 영향
1) 원제국의 자수 및 새로운 ‘직금’ 생산
2) 원제국 직금의 한반도 유입
3) 고려후기의 자수 위축

1장1절2항. 고려의 저·마 생산 및 대원(對元) 수출
1장1절2항1목. 고려의 저·마 생산과 중국의 상황
1) 고려 전·중기 한반도의 저·마포 생산 및 수출
2) 송·요·금대 중국 저마 생산 현황
1장1절2항2목. 고려 저·마의 대원 수출-후기 저·마포 생산의 원제국 대비 우위
1) 원제국의 저·마 생산 및 유통의 부진
2) 고려후기의 저·마 생산
3) 고려후기의 저·마 수출: 충렬왕대의 상황

1장2절. 14세기전반 고려 직금의 제작과 수출

1장2절1항. 충선왕대 직금인피의 기획 및 생산
1장2절1항1목. 고려후기 한반도의 직금 생산
1) 자체 직금 생산 이전의 상황: 제국산 직금 유입의 감소
2) 자체적 직금 생산
1장2절1항2목. 14세기의 고려 저·마: 생산과 수출
1) 14세기전반 저포의 동향: 원의 고려 ‘직문저포’ 징발
2) 고려후기 마포의 동태
3) 고려 저·마포 및 직금 저·마포의 경쟁력과 상품성
1장2절1항3목. 직문저포의 개발: 계기와 의미
1) 1290년대후반 인도직물과 조우
① 금수수박의 실체
② 토포의 실체
③ 충선왕의 선택
2) 주력상품의 제작 기구 출범: 직염국
① 1300년대의 상황
② 직염국의 설치
3) 주력상품 직문저포(직금인피)의 독창성 및 수출 잠재력
① 직염국에서 생산된 직물의 실체: 직금인피
② 고려 직금인피의 독창성

1장2절2항. 충혜왕대 직금인피의 양산 및 수출
1장2절2항1목. 중국 및 서역, 남양시장의 변화
1) 14세기전반 중국과 이란의 교류
① 태정제와 일칸국의 교류
② 견직물 물류의 방향성: 중국에서 아랍권으로
③ 태정제 사후의 변화
2) 일칸국의 고려 접촉
① 일칸국 직물의 한반도 도래
② 고려인들의 반응
3) 중국 직물시장 내부의 상황 변화
① 잠재의 발생
② 해외산 직물의 중국 유입 추이
1장2절2항2목. 직문저포의 대량생산 및 수출
1) 충혜왕의 직물대량 생산: 삼현신궁
① 삼현신궁의 내부, 그리고 위상
② 삼현신궁에서 제작된 직물의 실체
2) 직문저포의 중국으로의 수출
① 충숙왕대의 수출 부진
② 원제국의 주문, 충혜왕의 직물 수출
3) 직문저포의 대서역 수출
① 서아시아 린넨 시장의 상황
② 동아시아적 문양의 익숙함

2장. 고려말, 조선초 직물 수출 양상의 변화 – 피화의 응용

2장1절. 조선초의 직금생산 추이 및 기존 저·마 위상의 변화

2장1절1항. 조선초 직금시장의 변화
2장1절1항1목. 명대 직금의 확산
1) 명의 직금 및 금사자수류 생산
2) 명의 직금문기 대외수출
2장1절1항2목. 명대 직금의 조선 유입 및 조선 직금의 위기
1) 명대 자수·직금의 한반도 유입
2) 조선전기의 자수와 직금

2장1절2항. 조선초 저·마 위상의 변화
2장1절2항1목. 고려말∼조선초 한반도의 저·마 생산
1) 14세기 후반 고려의 저·마 생산
2) 15세기 전반 조선의 저·마 생산
① 저·마의 국내유통 및 수출
② 마포의 부상
2장1절2항2목. 명대 저·마 생산의 증가 및 해외인피의 중국유입 증가
1) 명대의 저·마 생산 증가
2) 해외인피의 중국 유입
① 동남아산 죽포와 초포
② 동남아 및 인도산 필포
③ 점성산 화포
④ 류큐산 잡저

2장2절. 조선전기 피화의 생산 및 수출

2장2절1항. 고려시대 피화생산 및 중국의 수요
2장2절1항1목. 고려 피화의 생산과 수출
1) 고려 중기의 피화
2) 고려 후기의 피화
2장2절1항2목. 중국 송·요·금·원대의 모·피 생산 및 유통
1) 송·요·금대
2) 원제국시기

2장2절2항. 조선전기의 피화생산 및 명의 수요
2장2절2항1목. 중국 명대의 피화 생산 및 유통
2장2절2항2목. 조선피화의 생산과 수출
1) 모직: 외부로부터의 유입
2) 조선 피화의 생산과 수출
① 피화의 생산 및 유통
② 조선피화의 대명 수출
3) 조선산 ‘직금피화’의 등장
4) 해외 모피의 중국유입, 조선 피화의 경쟁력 약화
① 류큐의 모직·피화
② 섬라의 모직·피화
③ 기타지역의 모직·피화

3장. 조선전기의 명조와의 직물교역 – 교직의 생산 및 수출

3장1절. 조선의 교기

3장1절1항. 고려와 조선의 기: 중국산 금기 및 직금문기와의 경쟁
3장1절1항1목. 고려의 기
1) 고려의 기와 송·요·금 금기
2) 원제국 기의 유입, 고려 기의 위축
3장1절1항2목. 조선의 기 - 명대 문기와의 경쟁
1) 명대 문기의 성행 및 한반도로의 다량 유입
2) 해외 직금, 가금류 제품의 명대 유입

3장1절2항. 고려시대 이래 한반도의 교직
3장1절2항1목. 고려 교직의 역사 – 중국, 해외와의 차이
1) 중국의 상황
2) 해외의 상황
① 견사-면사
② 견사-모섬유
③ 견사-인피섬유
④ 기타
3장1절2항2목. 고려 교직의 생산 여건
1) 지역별 재배직물조합 정리
① 상/마
② 상/마/저
③ 상/마/저/목면
④ 상/마/목면
⑤ 마/목면
⑥ 저/마/목면
⑦ 저/마
2) 지역별 교직 가능성의 진단
① 교직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이는 경우
② 교직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우
3장1절2항3목. 조선의 교직과 교기
1) 조선전기의 교직 생산
2) 조선의 ‘교기’


3장2절. 조선의 면주

3장2절1항. 고려시대의 주
3장2절1항1목. 고려 전·중기의 주
3장2절1항2목. 송·요·금대 및 원제국시기 중국의 주
3장2절1항3목. 고려후기의 주: 위기를 넘어선 고급화의 정황

3장2절2항. 고려시대의 면
3장2절2항1목. 동물성 면: 전,중기 고려와 송·요·금·원대 중국의 견직물성 면
1) 고려의 동물성 면
2) 중국의 동물성 면
3장2절2항2목. 식물성 면: 한반도의 초면(백첩), 인도목면(길패)의 송,원대 중국전파
1) 고려초의 식물성 면
2) 중국 송, 원대의 식물성 면
3장2절2항3목. 한반도로의 목면 유입 및 국내 면 시장의 동요 - 한반도산 면 제품의 특성화 필요 대두

3장2절3항. 면주의 탄생: 고려시대 발생에서 조선시대 양산으로
3장2절3항1목. 고려의 면주
3장2절3항2목. 조선의 주: 품질의 추가 제고 - 명 문주와의 경합
1) 조선의 주
2) 명대의 주
3장2절3항3목. 조선의 면과 목면: 보급의 확대, 품질의 제고
1) 동물성 면
① 중국으로부터의 면포 유입
② 조선의 면포 생산 및 유통
2) 식물성 면
① 중국으로부터의 목면 유입
② 조선의 목면 생산 및 유통
3장2절3항4목. 조선의 면주
1) 조선의 면주
2) 면주 개발의 배경: 중국산 및 해외산 면에 대한 대응

맺음말
연구결과 1장에서는 13-14세기를 배경으로 고려와 원제국 간 직물 교역을, 원제국산 ‘서금(西錦, 직금 또는 금사자수)’의 고려 유입 및 한반도산 ‘직금인피’의 대중국, 대서역 수출을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1절에서는 13세기 후반 고려와 중국 양쪽의 상황을 ‘자수와 직금’(1항), 그리고 ‘인피직물’의 생산과 유통(2항)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1항에서는 중국의 전통적 자수와는 달랐던 금·은사 활용술로서의 ‘직금’ 기법이 원제국시기 중국에 유포되어 관련 제품들이 성황리에 생산되고 한반도에도 다량 유입됐음을 검토하였다. 1목에서 먼저 직금기법의 확산 이전 고려와 송·요·금대 중국에서 생산된 ‘자수’제품들을 살펴보고, 2목에서는 본격적으로 원제국 직금의 생산 및 한반도 도래, 그리고 그로 인한 한반도 자수 문화의 위축 가능성 등을 언급하였다. 한편 2항에서는 인피직물, 구체적으로는 ‘저·마(모시와 마포)’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1항에서 자수와 직금 등 ‘기법’의 문제를 살폈다면 2항에서는 기법이 아닌 ‘직물 재료’로서의 인피직물을 살펴본 것인데, 1목에서는 우선 전·중기 고려와 송·요·금대 중국의 저·마 생산현황을 비교하고, 2목에서는 원제국과 고려의 저·마 생산 정도를 비교하였다. 고려의 경우 충렬왕대의 활발한 대원(對元) 저마 수출에서도 확인되듯이 한반도의 인피직물 생산이 13-14세기에도 여전히 활발했지만, 중국의 경우는 그와 반대로 원제국시기에 들어와 그 생산이 저조해졌음을 검토하였다.
2절에서는 14세기에 등장한 한반도산 ‘직금 인피(인피직물에 직금기법이 적용된 사례)’ 또는 ‘금사자수 인피(인피직물에 금·은사로 자수가 이뤄진 사례)’의 존재를 집중 검토하였다. 13세기말 한반도에서도 직금제품이 제작되기 시작한 데 이어 인피직물에 금·은사 시문 기법을 적용하는 새로운 시도가 등장했으며, 급기야 14세기 중엽에는 그런 제품들이 외부로도 수출되게 되었음을 살펴보았다.
1항에서는 14세기초 충선왕대의 상황을 검토하였다. 1목에서는 충선왕의 즉위를 전후하여 중국 직금제품의 한반도 유입이 감소한 정황과, 그에 따른 현상이었을 가능성이 큰 고려 측의 자체적 직금 생산 추이를 살펴보았다. 2목에서는 14세기 전반 고려 인피직물의 동향을 저포와 마포로 나눠 살펴보는 동시에, 그 경쟁력과 상품성의 문제도 논의하였다. 그리고 3목에서는 ‘직금인피(또는 금사자수 인피)’ 제품으로서의 이른바 ‘직문저포(織紋苧布)’가 개발된 경위를 본격적으로 검토하였다. 충선왕이 1290년대 중반 여러 인도산 직물[금수수박(金繡手箔)과 토포(土布)]과 조우하게 된 사건이 그의 직물제품 기획생산에 나름의 영감을 주었고, 그것이 복위 후인 14세기초 직염국(織染局)의 설치로 이어졌으며, 그를 배경으로 직문저포의 생산이 시작되었을 가능성을 논의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제품의 수출 전망에 대한 논의를 위해 중국 및 해외에 유사 제품이 존재했는지의 여부를 검토하였고, 그를 통해 고려측 직금인피(금사자수 인피) 제품들이 나름의 희소성과 독창성을 갖췄을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2항에서는 14세기 중엽 충혜왕대의 상황을 검토하였다. 충선왕이 위의 직금인피류 직물들을 기획하고 그 생산 또한 시작했다면, 충혜왕의 경우 그런 제품들의 대량 생산 및 수출을 도모했음을 살펴보았다. 1목에서는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직물 무역의 동태를 살펴봤는데, 14세기 전반 원 황제들의 무역정책 변동이 중국과 서역 일칸국 사이의 교역(이란의 중국 견직물 수입)을 교란시키는 한편으로, 1331년까지 5년여간 이어진 중국내 ‘잠재(蠶災)’는 양잠의 부진 및 원사 조달가의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그런 상황을 악화시켰음을 살펴보았다. 2목에서는 충혜왕의 직물 생산 및 수출 추이를 각론별로 살폈는데, 우선 직문저포 생산의 무대였던 삼현신궁(三峴新闕)이 아랍권의 관영 티라즈 생산시설(Tiraz workshop)들을 모방하거나 그에 영감을 받아 설치된 것이었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그에서 생산된 직물의 실체가 인피직물인 동시에 중국의 시문기법을 전범으로 삼아 제작됐음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충혜왕이 앞서 언급한 서역의 요구 뿐 아니라 중국측의 한반도 직물 수출 요구에도 적극 부응하여 중국 견직물 수입 및 직문저포 수출에 나섰음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충혜왕이 중국 뿐 아니라 회회인에게도 직물을 판매한 것을 그의 대서역 직물 수출로 규정하는 동시에, 그러한 시도의 현실성을 서아시아 린넨시장의 상황 및 현지 시장의 동아시아 문양에 대한 인지도 등을 토대로 살펴보았다. 아랍 현지에서도 인피직물이 광범위하게 소비된 만큼 충혜왕의 무역전략이 현지 인피직물의 ‘희소성’ 보다는 현지 소비환경의 ‘인피 친연성’을 겨냥하는 동시에, 문양상의 친숙함 및 ‘인피직물 상의 직금기법 적용’이라는 특수성(이질성) 또한 무기로 삼았을 것으로 보았다. 그 결과 고려의 직문저포가 현지에서 나름의 경쟁력과 상품성을 충분히 발휘했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다음 2장에서는 고려말과 조선초를 대상으로 한반도산 피화의 대외 수출을 살펴보았다.
1절에서는 피화가 주요 대외수출품으로 대두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고려말-조선초 한반도 직금 생산의 추이 및 저·마의 위상 등에 변화가 발생한 상황을 살펴보았다. 1항에서는 직금시장의 변화 양상을, 그리고 2항에서는 저·마의 위상 변화를 검토하였다. 직금시장의 변화와 관련해서는 명대 자수 및 직금 생산의 융성을 살펴보고(1목), 다음으로 그러한 명나라산 직금이 인근지역에 살포되는 와중에 조선으로도 유입되어 한반도 직금에 상당한 위협이 되었음을 살펴보았다(2목). 한편 15세기 전반 동북아시아 인피직물의 생산 추이와 관련해서는 우선 고려말-조선초 한반도 저·마의 생산 및 수출이 여전히 왕성했음을 살펴본 후(1목), 다만 동시기 전개된 명대 중국의 인피직물 생산 증가 및 해외산 인피직물의 중국 유입 등으로 인해 한반도 인피직물로서는 중국 시장의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아진 상황이기도 했음을 검토하였다(2목).
2절에서는 본격적으로 이 시기 한반도의 피화 생산 및 수출을 검토하였다. 우선 1항에서는 고려후기까지의 한반도 모직·피화의 생산 및 유통 실태(1목), 그리고 송·요·금대는 물론 원제국시기까지의 중국내 모직·피화 생산 및 유통 실태를 살펴보았다(2목). 다음 2항에서는 명대 중국의 모직·피화 생산 및 유통 실태를 살펴본 후(1목), 마지막으로 조선전기의 피화 생산 및 대중국 수출 양상을 살펴보았다(2목). 모직의 경우 한반도산 제품의 수출보다는 중국산 제품의 수입이 더 많았던 반면, 한반도산 피화에 대해서는 중국 측의 다대한 수요가 이미 고려후기 이래 확인된다. 송대로부터 명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모직제품으로는 유명했으되 피화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았던 듯하며, 이에 한반도는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에도 중국에 피화를 활발하게 수출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조선이 일반 피화제품 수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전까지의 수출전략에서 긴요하게 활용돼 온 금사자수 또는 직금 기법을 피화에도 적용해 보려 했을 가능성(“금사 장식된 청사피 재질의 녹피화”)이 포착된다. 고려말 공민왕대의 시문처리된 표범 가죽 사례를 연상시키는 이 사례는 한반도산 직금상품의 바탕직물이 이전의 인피에서 새로이 피화로도 확대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더 이상의 사례들은 확인되지 않아 현재로서는 그러한 제품들이 얼마나 일반적으로 생산됐는지 가늠하기 어렵고, 해외에서는 피화 자수 또는 직금 사례가 심심찮게 관찰되어 한반도산 직금 피화의 경쟁력도 불분명했다 할 것이며, 명대에 들어와 해외(인도차이나반도, 동남아시아, 인도 및 아랍) 피화 제품의 중국 유입이 계속된 결과, 조선 피화의 중국 시장내 점유도 제고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었을 가능성이 감지된다. 즉 피화가 한반도 대외 수출 전략의 핵심에 오래 머무르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3장에서는 조선전기 명과의 교역을, 조선시대 한반도산 ‘교직물’의 활발한 대중국 수출을 매개로 살펴보았다.
고려시대와 조선전기 한반도의 대중국 직물수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인피직물과 피화를 각기 1장과 2장을 통해 살펴봤다면, 3장을 통해서는 견직물과 면직물을 살펴보려 하였다. 아울러 1장과 2장의 검토에서 한반도산 직물의 특화전략이었던 ‘직금’, ‘금사자수’ 등에 검토의 초점을 맞췄다면, 3장에서는 한반도인들이 외부에서 들여온 기법이 아닌, 종래 자체적으로 가꿔 온 것으로 보이는 ‘교직’ 기법을 살펴보았다.
한국의 중세 시기 한반도산 순수 견직물의 적극적 대외 수출은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고려시대 이래 존재해 온 이종(異種) 직물간 혼직(混織) 관행으로서의 ‘교직(交織)’의 산물이라 할 ‘변형 견직물’들이 조선초 활발히 생산되고 대외 수출까지 되었음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이에 “견직물+인피직물 합직물”로서의 이른바 ‘교기(交綺)’와, “견직물+목면사 합직물”로서의 ‘면주(綿紬·緜紬)’를 각기 3장의 1절과 2절에서 검토하였다.
우선 1절에서는 교기의 생산 및 수출을 살펴보았다. 1항에서는 교기의 주축이 된 ‘기’의 문제를 먼저 다루었는데, 중국으로서는 송·요·금·원대, 그리고 한반도로서는 고려시대까지의 기를 1목을 통해 살펴보고, 명대 ‘문기(紋綺·文綺)’의 왕성한 생산 및 해외전파가 주변 지역과 특히 조선에 미친 영향을 2목을 통해 살펴보았다. (한반도산 기의 품질의 우수함을 엿볼 수 있었다.) 2항에서는 조선초의 활발한 교기 생산이 가능했던 배경을 검토하는 차원에서 한반도의 교직문화를 우선 살펴보았다. 한반도 교직문화의 특수성을 살피기 위해 먼저 1목에서 중국 및 해외의 유사문화 여부를 검토했는데, 한반도에 비해 희소하거나 그 본격화 시점이 뒤늦음을 확인하였다. 2목에서는 한반도의 교직물 생산 여건이 본격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고려시대의 상황을 조선초의 지리지 기록들을 통해 확인하였고, 3목에서는 조선전기 정부의 대외교섭에 활용된 여러 교직물들(사마교직포[絲麻交織布], 사저교직포[絲苧交織布])을 살펴봤으며, 그와 동시기 함께, 또는 맞물려 등장했던 ‘교기’의 생산 및 수출사례들까지 검토하였다. 2목에서 확인되듯이 한반도내 다양한 지역에 존재한 것으로 확인되는 교직의 전통으로 말미암아, 3목에서 살펴본 조선 측의 대명(對明) 진상 및 수출량을 충족하고도 남을 견+인피 교직물로서의 ‘교기’가 생산된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2절에서는 ‘교기’와 유사한 경우이되 그와는 또 달랐던 ‘면주’의 생산 및 수출을 살펴보았다. 면주의 경우 견사와 인피직물이 결합된 교기와는 달리, 견직물로서의 주(紬)에 또 다른 식물성 섬유인 면사(綿絲·緜絲)가 혼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한 검토를 위해 1항에서는 ‘주’의 문제, 2항에서는 ‘면’의 문제, 그리고 마지막 3항에서 ‘면주’ 관련 기록들을 본격 분석하였다. ‘주’의 역사와 관련해서는 고려 전·중기까지의 한반도산 주(1목), 원대까지의 중국산 주(2목)를 살펴본 후, 고려후기 한반도산 주의 고급화 가능성을 3목에서 살펴보았다. ‘면’과 관련해서는 1목과 2목을 통해 고려시대의 동물성 면 및 식물성 목면, 중국 송·요·금·원대의 동·식물성 면을 검토하고, 3목은 중국산 목면 및 면포 유입이 국내 면 시장에 미친 영향 검토에 활용하였다.
마지막으로 3항에서는 ‘면주’의 탄생 및 생산, 수출 등을 집중 검토하였다. 조선시대 이전의 한반도와 중국에서 발견되는 ‘면주’는 이후의 면주와는 별개의 것으로 보여 그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고, 다음 2개의 목을 통해 조선의 ‘주’, ‘면직물’ 및 ‘목면’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조선의 주, 면, 목면 모두 중국의 ‘문주(文紬)’, 면직물 및 목면제품들과 경쟁하는 데 버거운 바가 있었지만, 한편으로 조선 주의 품질이 상당했고 면 역시 전에 비해 개선된 제품들이 중국 등지로 수출됐으며, 조선의 목면 또한 상용화를 넘어 명 사신의 요구사항이 될 정도로 수준이 제고됐음을 확인하였다. 직물별로 단독 수출되기에는 주, 면, 목면 모두 품질상 미흡한 바 없지 않았지만, ‘결합’이 될 경우에는 상황이 또 달랐을 수도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에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해법이었을 수도 있을 조선시대 면주에 대해 4목에서 본격적으로 검토하였다. 면주가 대명 주요 진상품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중국 문주 및 목면과의 경합 과정에서 절실한 과제로 떠오른 조선 주, 조선 면 제품의 특성화 필요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면주의 고안 자체가 조선의 주와 목면이 각기 지니고 있던 경쟁력을 한 데 합쳐 추가 특성화를 도모하려 한 결과였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면주 형태의 직물을 생산한다는 전략이 여러 중국산 및 해외산 유사제품들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것이기도 했을 가능성을, 해외산 ‘번면주(蕃綿紬)’ 및 조선 국내 회회인들의 존재에서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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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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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史󰡕 󰡔遼史󰡕 󰡔金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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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미, 2011 「자운사 불복장직물의 특성」 󰡔아시아민족조형학보󰡕 9, 아시아민족조형학회
손영문, 2011 「海印寺 法寶殿 및 大寂光殿 木造毘盧遮那佛像의 연구」 󰡔미술사학연구󰡕 270
심연옥, 2012 「고려불화 수월관음도의 복식직물과 문양」 󰡔미술사학연구󰡕 273, 한국미술사학회
김문자, 2012 「고려 시대 장신구에 대한 연구」 󰡔한복문화󰡕 15(3)
박윤미, 2014 「해인사 비로자나불복장 섬유류 유물에 관한 고찰」 󰡔복식󰡕 64(5)
정은우, 2015 「고려시대 불복장의 특징과 형성배경」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286, 한국미술사학회
이승혜, 2015 「고려시대 佛腹藏의 형성과 의미」 󰡔미술사학연구󰡕 285, 한국미술사학회
심연옥, 2015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복장유물의 직물 분석과 제작의미」 󰡔미술사연구󰡕 29
정은우, 2015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과 복장유물의 내력과 특징」 󰡔미술사연구󰡕 29
최연식, 2015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의 신앙내용과 제작 주체: 발원문 내용의 검토를 중심으로」 󰡔미술사연구󰡕 29
신은제, 2015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의 복장 발원문과 발원자들」 󰡔미술사연구󰡕 29
정은우·유대호, 2017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의 특징과 제작시기」 󰡔미술사논단󰡕 45

⑤ 조선 일반
김동욱, 1961 「이조초의 복식 금제」 󰡔중앙대학교 논문집󰡕 6
김병하, 1969 「이조 전기의 직물 생산과 대일 수출」 󰡔논문집󰡕 6
심연옥, 1984 「조선시대 직물연구」 국민대 석사논문
조효순, 1984 「조선의 지방 특산 의료(의류?)」 󰡔전통문화연구󰡕 2
현진숙·민길자, 1985 「조선시대의 의생활규범에 관한 연구-문헌을 중심으로」 󰡔한국의류학회지󰡕 9권 2호
심화진, 1996 「조선시대 의복재료의 생산과 유통에 관한 연구」 󰡔대한가정학회지󰡕 34-1
김영숙, 1997 󰡔조선전기 불복장직물의 이해(흑석사 아미타불 복장직물)󰡕 미술문화
박윤미, 1997 「불복장 유물을 통하여 본 조선시대의 직물 연구」 경상대 석사논문
심연옥·민길자, 1997 「조선전기 출토 직물의 종류와 제직기구에 대한 고찰」 󰡔한국복식󰡕 15
박윤미·정복남, 1998 「불복장 직물을 통하여 본 조선시대의 직물 연구(1)」 󰡔복식󰡕 36
박윤미·정복남, 2001 「불복장 직물을 통하여 본 조선시대의 직물 연구(2)」 󰡔복식󰡕 51(8)
조효숙, 2001 「장기 정씨(1565-1614)묘 출토 직물의 특성」 󰡔복식󰡕 51(4)
조효숙, 2001 「인평대군파 의원군 일가 출토직물에 관한 연구」 경기도박물관
장현주, 2002 「조선시대 교직물 연구」 󰡔복식󰡕 52(5)
조효숙·안지원, 2002 「의원군 묘 출토직물에 관한 연구」 󰡔한국의류학회지󰡕 26(9)
이자연, 2002 「조선전기 조선통신사와 일본사신 간의 교역품을 통하여 본 복식문화연구: 일본으로부터의 수입품을 중심으로」 󰡔복식󰡕 52(4)
이자연, 2003 「조선의 사절과 일본 사신간의 교역품을 통하여 본 조선 전기의 직물 문화」 󰡔복식문화연구󰡕 11(6)
이자연·박춘순, 2003 「조,일간의 교역품이 조선의 복식문화에 미친 영향(1)」 󰡔한국의류산업학회지󰡕 5(4)
이자연, 2003 「조선전기 조일간의 교역품을 통하여 본 복식문화(Ⅱ): 조선에서의 수출품을 중심으로」 󰡔복식󰡕 53(7)
조효숙, 2003 「변수묘 출토직물의 제직 특성 연구」 󰡔생활문물연구󰡕 11
조효숙, 2003 「여흥민씨묘 출토직물과 17세기 의궤직물명칭의 비교연구」 󰡔한복문화학회󰡕 6(3)
조효숙·임경화·김지연, 2003 「조선시대 출토복식 중 포류(袍類)에 사용된 직물유형 연구」 󰡔복식󰡕 53(4)
조효숙, 2003 「驪興閔氏墓 출토직물과 17세기 『儀軌』 직물명칭의 비교연구」 󰡔한복문화󰡕 6(3)
조효숙, 2004 「청송심씨 수윤(1534-1589)묘 출토직물에 관한 연구」 󰡔한복문화󰡕 7(2)
임현주·조효숙, 2004 「조선시대 16-17세기 출토복식의 직물유형 및 문양에 관한 연구」 󰡔복식󰡕 54(8)
조효숙, 2006 「탐진최씨 원립(1618-1690)묘 출토 직물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조효숙, 2006 「파평윤씨묘 출토 직물의 제직 특성 연구」 󰡔복식󰡕 56(1)
조효숙, 2007 「진주류씨합장묘 출토직물에 관한 연구」 󰡔대한가정학회지󰡕 45(2)
조효숙·배순화, 2007 「인천시 석남동 출토 직물에 관한 연구」 󰡔복식󰡕 57(10)
장현주, 2007 「16-17세기 송휘증, 순흥안씨묘 출토직물의 유형과 특성」 󰡔한복문화󰡕 10(3)
조효숙, 2008 「조선시대 직물의 시기감정을 위한 꽃무늬 조형특성 연구」 󰡔복식󰡕 58(5)
심연옥·이선용, 2009 「조선전기 불복장 직물의 구성과 특징에 관한 연구」 󰡔한국의류학회 학술발표논문집󰡕 2009권 1호
최인선, 2009 「『造像經』과 現代의 佛腹藏 : 담양 용화사 수진스님 불복장을 중심으로」 󰡔문화사학󰡕 31
조효숙, 2009 「낙산사 공중 사리탑 복장직물의 조형특성 및 시기감정」 󰡔복식󰡕 59(6)
조효숙, 2009 「김확[金穫]부인 동래정씨[東萊鄭氏]묘 출토직물 연구」 󰡔복식󰡕 59(8)
조효숙·이은진, 2011 「김확(金穫) 묘 출토직물 제직 특성 연구」 󰡔복식󰡕 61(2)
심연옥·금종숙, 2013 「우리나라와 중국 명대의 직물 교류 연구Ⅰ: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보낸 직물을 중심으로」 󰡔한복문화󰡕 16(2), 한복문화학회
이선용, 2016 「우리나라 불복장의 특징」 󰡔미술사학연구󰡕 289
송미경·진덕순·김진경, 2016 「최경선(1561-1622) 묘 출토복식 연구」 󰡔복식󰡕 66(4)

2) 견직물

① 고대
민길자, 1982 「한국 고대 직물 연구-견직물을 중심으로」 󰡔교육논총󰡕 2
최병희, 1985 「한국 고대 실크 제조 기술 고찰」 󰡔서울대 농학 연구󰡕 10(2)
박일록, 1994 「삼국시대의 견문화의 연구」 󰡔대한가정학회지󰡕 32(3)
박일록, 1995 「신라 견(絹) 문화의 연구」 󰡔論文集󰡕 Vol.29 No.2
박선희, 1999 「고대 한국의 絲織」 󰡔백산학보󰡕 53
장현주·권영숙, 2001 「한국 고대 라직물의 유형과 특성」 󰡔복식󰡕 51(1)
권영숙 외 2인, 2003 「한국 고대 나직물의 유형과 특성 2」 󰡔복식󰡕 53(3)
박윤미, 2004 「加耶와 日本 古墳時代의 絹織物의 比較硏究」 󰡔아시아민족조형학회 국제학술회의자료집󰡕
심연옥, 2012 「불국사 석가탑 내 발견 금직물(錦織物) 고찰」 󰡔복식󰡕 62(3)
김지수·나영주, 2017 「고대 경금의 아름다움과 색동과의 상관성에 대한 탐색」 󰡔한국감성과학회 춘계학술대회 자료집󰡕

② 고려
조규화, 1976 「정창원의 고려금」 󰡔대한가정학회지󰡕 14(1)
조효숙, 1990 「고려시대의 견직물과 그 제직에 관한 연구」 󰡔복식󰡕 15
조효숙, 1992 󰡔한국 견직물 연구-고려시대를 중심으로󰡕 세종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조효숙, 1993 「고려시대 견직물의 실증적 연구」 󰡔복식󰡕 20
심연옥·이선용·박기찬·이희진, 2015 「전통 수공문직기의 복원과 고려시대 남색원앙문직금능 재현」 󰡔한복문화󰡕 18(3)
심연옥, 2015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복장유물의 직물 분석과 제작의미」 󰡔미술사연구󰡕29

③ 조선
조효숙, 1996 「조선전기의 견직물 발달에 관한 연구Ⅱ: 14세기와 15세기 복장직물의 비교」 󰡔아시아문화연구󰡕 1,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장현주·권영숙, 1998 「조선시대 견직물의 생산과 유통」 󰡔복식󰡕 40
조효숙, 1999 「조선 전기 견직물 발달에 관한 연구」 󰡔복식󰡕 45
장현주, 1999 󰡔조선시대 견직물 연구󰡕 부산대 박사논문
장현주·권영숙, 2000 「조선시대 중조직 견직물에 대한 실증적 고찰: 통도사 소장직물 26 점을 중심으로」 󰡔복식󰡕 50(8)
권영숙·장현주, 2001 「조선 중,후기 사찰 견직물에 나타난 특성」 󰡔복식󰡕 51(8)
장현주, 2002 「조선시대 출토 견직물의 특성」 󰡔복식문화연구󰡕 10(5)
조효숙·이은진, 2003 「탁지준절에 기록된 조선말기 평견직물에 관한 연구」 󰡔복식󰡕 53(5)
조효숙·이은진, 2013 「17세기 한국 능(綾)직물 연구」 󰡔복식󰡕 63(4)

④ 일반
김문협·김윤식·박광의·이상풍, 1972 「잠병(蠶病)이 잠작(蠶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조사연구」 󰡔한국잠사곤충학회지(구 한국잠사학회지)󰡕 14권 1호, 한국잠사학회
임화원, 1987 「한국 전통 견직물의 연구-견직물 명칭을 중심으로」 성신여대 석사논문
민길자·송석규, 1987 「전통견직물과 유사합섬직물의 물리적 성질에 관한 연구(Ⅰ)」 󰡔한국섬유공학회지󰡕 24권 1호
민길자·송석규, 1987 「전통견직물과 유사합섬직물의 물리적 성질에 관한 연구(Ⅱ)」 󰡔한국섬유공학회지󰡕 24권 5호
정완섭, 1987 「우리나라 織物에 關한 硏究: 絹織物을 중심으로」 󰡔關大論文集󰡕 Vol.15 No.2
정완섭, 1988 「우리나라 織物에 關한 硏究: 絹織物을 중심으로-2」 󰡔關大論文集󰡕 Vol.16 No.2
민길자, 1990 「한국 전통 문직물의 조직에 대한 고찰 1-금,기의 조직적 분류와 명명」 󰡔교육논총󰡕 10
정완섭, 1992 「직물에 있어서 금의 역사와 종류」 󰡔관대논문집󰡕 20(2)
민길자, 1993 「한국 전통 문직물의 조직에 대한 고찰 2-능의 조직적 분류와 명명」 󰡔교육논총󰡕 13
민길자, 1994 「한국 전통 문직물의 조직에 대한 고찰 3-라, 사의 분류와 명명」 󰡔교육논총󰡕 14
민길자, 1996 「한국 전통 문직물의 조직에 대한 고찰 4-단의 분류와 명명」 󰡔생활환경연구󰡕 1
민길자, 1999 「우리나라 박물관에 소장된 전통직물 유품 조사-織金을 중심으로」 󰡔생활환경연구󰡕 4

3) 저직물·마직물

① 고대
박선희, 1999 「고대 한국의 마직물」 󰡔선사와 고대󰡕 13, 한국고대학회
박윤미, 2003 「伽倻와 古墳時代의 麻織物의 비교연구」 󰡔아시아민족조형학보󰡕 4, 아시아민족조형학회
박윤미, 2003 「加耶의 靭皮纖維織物에 관한 연구」 󰡔민속학연구󰡕 13, 국립민속박물관

② 고려
안명숙, 1984 「문수사 유물 포와 직물에 관한 연구」 동국대 석사논문
민길자·이순미, 1984 「우리나라 직물 제직 기술에 대한 연구(1)-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대마와 저마 직물을 중심으로」 󰡔한국의류학회지󰡕 8(2)

③ 조선
조효숙 외 2인, 2003 「조선시대 출토 직물 중 포류에 사용된 직물 유형 연구」 󰡔복식󰡕 53(4)

④ 일반
정완섭, 1985 「강릉지역의 전통마직물에 관한 연구」 󰡔대한가정학회지󰡕 23(3)
김병미, 1999 「전통 직물 춘포에 관한 연구(1)-춘포의 제작방법과 특성을 중심으로」 󰡔한국전통생활문화학회지󰡕 2(2)
김병미, 2000 「전통 직물 춘포에 관한 연구(2)」 󰡔한국전통생활문화학회지󰡕 3(2)
김호상, 2013 「삼베의 연구현황과 생산과정」 󰡔경주사학󰡕 37
이순임·김재숙 2006 「모시 소재의 문양에 따른 감성 이미지 평가」 󰡔服飾文化硏究󰡕 14-6
심연옥, 2012 「고려불화 수월관음도의 복식직물과 문양」 󰡔美術史學硏究󰡕 273
김성희·조효순 2000 「우리나라 苧麻 공예와 한산모시 길쌈에 대한 재고찰」 󰡔韓服文化󰡕 3-3
이덕래·임진모, 1996 「면/저마 혼방편성물의 드레이프성에 관한 연구」 󰡔論文集󰡕 42
정인모·이용우·우순옥·이광길·최해경, 1996 「蘇木에 의한 견 및 저마 염색」 󰡔한국잠사곤충학회지󰡕 38-2
김길순, 1961 「忠南韓山모시의 生産實態」 󰡔綠友會報󰡕 3

4) 면직물

① 고대
민길자, 1980 「한국 고대 직물 연구-면직물과 염직물을 중심으로」 󰡔국민대학교논문집󰡕 17
박선희, 1999 「고대 한국 면(棉)의 기원과 발달」 󰡔사학연구󰡕 58·59

② 고려
박성식, 1979 「여말선초의 목면업에 대하여」 󰡔대구사학󰡕 17
이재호, 1982 「“乙支文德”과 “木綿”의 異論에 관한 일고찰」 󰡔한국사연구󰡕 39
민길자, 1988 「白疊布, 白氎布考」 󰡔교육논총󰡕 7
최영호, 1990 「고려말 경상도지방의 목면 보급과 그 주도세력」 󰡔고고역사학지󰡕 5·6합집
김성준, 1993 「문익점(文益漸)과 목면전래(木綿傳來)의 역사적 배경」 󰡔동방학지󰡕 79
문경현, 2003 「문익점의 사행과 목면 전래」 󰡔복현사림(경북사학)󰡕 26, 경북사학회
김형수, 2005 「공민왕 폐위(廢位)과 문익점의 사행」 󰡔한국중세사연구󰡕 19
최연주, 2007 「공민왕 개혁과 임박(林樸)의 정치활동」 󰡔석당논총󰡕 39
이옥희, 2016 「문익점 목면 전래에 관한 문헌자료와 구비자료의 담론 양상과 의미」 󰡔남도민속연구󰡕 32, 남도민속학회
최덕경, 2016 「원대 농업의 발달과 고려에 끼친 생활상의 영향」 󰡔비교민속학󰡕 60

③ 조선
이용범, 1977 「목면업구조의 성격」 󰡔한국문학연구󰡕 2,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민성기, 1986 「사시찬요의 종목면법에 대하여」 󰡔Cogito󰡕 29,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김용섭, 1988 「농사직설과 사시찬요의 목면경종법 증보」 󰡔동방학지󰡕 57
문중양, 1992 「조선시대 농서에 나타난 목면(木綿) 재배기술」 󰡔한국과학사학회지󰡕 14-2
권영국, 1998 「조선초기 수공업 연구」 󰡔한국역사연구회회보󰡕 33, 한국역사연구회
조효숙, 1999 「조선 전기 면직물 발달에 관한 연구」 󰡔복식󰡕 45
허정희·이애련, 2013 「실록에 나타난 세종대 정책과 목면 고찰」 󰡔한복문화󰡕 16(3), 한복문화학회

④ 일반
이순홍, 1981 「직물의 역사적 고찰-우리나라의 면직물을 중심으로」 󰡔복식󰡕 5
민길자, 1984 「綿織物製織年代에 關한 硏究」 󰡔교육논총󰡕 Vol.3
민길자, 1988 「백첩포, 백첩포고」 󰡔국민대 교육논총󰡕 7(1)
안혜송, 1992 「우리나라 면직물 발달에 관한 연구」 관동대 석사논문
임성휴·신인수, 1996 「우리나라 면직물의 사적 고찰」 󰡔논문집󰡕 17
박선희, 2010 「생태계의 차이로 본 동아시아 면직물 비교」 󰡔비교민속학󰡕 Vol.41
이옥희, 2015 「진도 지역 면화(綿花) 관련 민속의 사회 문화적 맥락 고찰」 󰡔남도민속연구󰡕 30, 남도민속학회

5) 모직물

① 고대와 고려
은영자, 1973 「고려시대의 裝身具에 관한 연구」 󰡔과학논집󰡕 1 계명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박순지·이춘계, 1993 「명칭으로 본 모직물의 발달: 고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복식󰡕 21
박순지·이춘계, 1994 「고대부터 고려까지 모피물에 관한 고찰」 󰡔복식󰡕 22
박선희, 1998 「고대 한국의 복식 재료-가죽과 모직」 󰡔사학지󰡕 31

② 조선
민길자, 1992 「조선시대의 皮, 毛物에 대한 연구」 󰡔교육논총󰡕 11
박순지·이춘계, 1996 「조선시대 모직물에 관한 고찰」 󰡔복식󰡕 28
이춘계·박순지, 1996 「조선시대의 피물에 관한 고찰」 󰡔복식󰡕 29
김주영, 2003 「朝鮮時代 철릭의 피륙(織物) 연구」 단국대 석사논문

③ 일반
민길자, 1992 「한국 전통 섬유 제품의 발굴1-모제품을 중심으로」 󰡔복식󰡕 18
장현주, 2004 「한국 전통 모직물의 유형과 특성」 󰡔복식󰡕 54(8)
김주영·김은정, 2005 「경기도 파주 출토 진주 강씨 유물의 피륙 연구」 󰡔한국복식󰡕 23
안보연, 2008 「우리나라 모피와 피혁 복식의 제작과정과 기술」 󰡔복식󰡕 58(8)

6) 기타

① 염색
소황옥, 1982 「한국 전통복색과 염채에 관한 연구」 󰡔복식󰡕 6
조효숙, 1983 「朝鮮時代의 傳統染色法 硏究」 이화여대 석사학위논문
민길자, 1990 「한국전통염색종류의 범주에 관한 연구-防染技法을 중심으로」 󰡔교육논총󰡕9
조효숙, 1990 「고대 한국염색과 중국염색의 비교 연구」 󰡔복식󰡕 14
주영주·소황옥, 1990 「자초염의 매염에 관한 실험연구」 󰡔복식󰡕 14
장경희, 1991 「14세기의 高麗 梁織 연구」 󰡔미술사학연구󰡕 190·191
소황옥, 1991 「치자염의 염색과정이 염색견뢰도에 미치는 영향(Ⅱ)」 󰡔복식󰡕 16
이양섭, 1995 「13-15세기 한국직물의 색채 고찰」 󰡔한국색채학회논문집󰡕 4, 한국색채학회
조영미, 1995 「한국 전통 남염색에 관한 연구」 숙명여대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소황옥, 1999 「우리 나라 전통천연염색에 관한 연구」 󰡔비교민속학󰡕 16
박지희·소황옥, 2004 「한ㆍ중ㆍ일 남염(藍染)의 비교연구」 󰡔한복문화󰡕 7(1)
양경애, 2004 「고구려 고분벽화에 표현된 점문양 복식의 염색 연구」 󰡔복식󰡕 54(7)
장현주, 2006 「고구려의 염색문화 연구」 󰡔복식󰡕 56(3)
심화진, 2006 「우리나라 천연염료와 매염제에 관한 연구」 󰡔한복문화학회학술대회자료집󰡕

② 직금
장현주, 2006 「조선시대 복식에 사용된 금장식 기법의 유형과 특성」 󰡔복식󰡕 56(4)
최규순, 2007 「중국의 초기 직금 연구」 󰡔복식󰡕 57(5)
장현주·고순희, 2007 「중국직물에 사용된 금장식 기법의 유형과 특성」 󰡔복식󰡕 57(9)
朴文英, 2000 「唐代織錦」 󰡔亞細亞文化硏究󰡕 Vol.4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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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요약문

연구요약문: 전체 연구결과 요약, 세부과제별 요약로 구성
전체 연구결과 요약
이상의 검토에서 13세기 이래 14세기를 거쳐 15세기 전반까지를 배경으로, 고려후기의 직물 생산 및 원제국과의 교역양상, 조선초의 직물 생산 및 명과의 교역실태를 차례로 살펴보았다. 한반도산 인피(靭皮) 직물과 피화(皮貨) 제품, 그리고 견직(絹織) 및 면직(綿織·棉織)의 합직품들이 생산·판매된 양상을 살펴보는 동시에 수출품 특성화 전략의 일환으로서 직금(織金) 기법과 교직(交織) 기술이 고려후기 숙성되어 조선전기로 이어졌음을 살펴보았다.

1장에서는 먼저 13-14세기를 배경으로, 고려와 원제국 간 직물 교역을 원제국산 ‘서금(西錦)’의 고려 유입 및 한반도산 ‘직금인피’의 대중국·대서역 수출을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1절에서는 우선 13세기 후반을 배경으로, 고려와 중국 양쪽의 상황을 ‘자수와 직금 문화’(1항), 그리고 ‘인피직물의 생산과 유통’(2항)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1항에서는 중국의 전통적 자수와는 달랐던 금·은사 활용술로서의 ‘직금’ 기법이 원제국시기 중국에 유포되어 관련 제품들이 성황리에 생산되고 한반도에도 다량 유입됐음을 검토하였다. 1목에서 먼저 직금기법의 확산 이전 고려와 송·요·금대 중국에서 생산된 ‘자수’ 제품들을 살펴보고, 2목에서는 본격적으로 원제국 직금의 생산 및 한반도 도래, 그리고 그로 인한 한반도 자수 문화의 위축 가능성 등을 언급하였다.
1목에서는 우선 고려측 기록에서 확인되는 일반 자수품, ‘금수(錦繡)’ 등의 용례, 그리고 11-12세기에 단행된 여러 자수품의 생산·사용 금지조치 등을 통해, 한반도의 자수 제품 제작이 활발했음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한-중 간 직물 왕래 과정에서 중국 측의 어떤 자수제품들이 한반도에 들어왔고, 고려는 그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도 가늠해 보았다. 송대의 경우 일반 자수와 ‘금수’, 그리고 금사를 사용한 제품들이 다양하게 관찰되며 그 점은 요, 금대에도 마찬가지여서, 13세기까지도 중국의 자수, 금수 문화가 번성했으며 직금과 비슷한 제품 또한 일부 생산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한-중 간에 전개된 활발한 교역을 감안하면 그런 중국산 제품들이 적지 않은 규모로 한반도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 영향이 그리 파괴적인 수위의 것은 아니었음은 고려관료들이 해외직물의 국내사용 금지를 제언하는 빈도가 현저히 떨어진 점에서 유추된다. 반면 고려 토산 자수, 금수에 대한 언급이 계속된 점을 통해 외국산 자수의 유입에도 불구하고 국내 생산 역시 지속됐음을 엿볼 수 있다.
다만 이후 원제국으로부터 새로운 직금형 제품들이 한반도에 유입되면서 그런 상황은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이에 2목에서는 원제국산 ‘나시즈(Nasij)’ 형 직금의 생산 정황 및 그 특성에 대한 검토에 이어, 그것이 ‘서금(西錦)’ 등의 이름으로 고려후기 한반도에도 몰려든 결과 한반도의 자수문화 또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도전에 직면했음을 살펴보았다. 원제국의 직금은 이전의 여느 중국 직금과는 달리 고려의 자수 및 금수 문화에 상당히 위협적이었으며, 그러한 위협은 결국 고려의 자수문화 및 자국산 제품의 국내 유통 위축으로, 더 나아가 사료상의 출현 실종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13-14세기 고려측 기록에서 자수 출현 빈도가 급감함이 주목되는데, 14세기후반에나 고려 자수가 사료에 다시 등장하기 시작함을 감안하면, 원제국 직금 제품의 쇄도로 인해 침체에 빠진 고려의 자수문화가 14세기말에나 회복기에 접어들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2항에서는 인피직물, 구체적으로는 ‘저·마(모시와 마포)’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1항에서 자수와 직금 등 ‘기법’의 문제를 살핀 데 비해 2항에서는 기법이 아닌 ‘직물 재료’로서의 인피직물을 살펴본 것이다. 1절의 이러한 구성은, 뒤 2절에서 다룰 주제가 한반도산 ‘직금 인피’, ‘금사자수 인피’ 등 <직금과 인피직물의 결합>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1목에서는 우선 전·중기 고려와 송·요·금대 중국의 저·마 생산현황을 비교하고, 2목에서는 원제국과 고려의 저·마 생산 정도를 비교하였다. 고려 충렬왕대의 활발한 대원(對元) 저·마 수출에서도 확인되듯이 한반도의 인피직물 생산은 13-14세기에도 여전히 활발했지만, 중국의 경우는 그와 반대로 원제국시기에 들어와 그 생산이 저조해졌음을 살펴보았다.
1목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의 인피시장 내 상황은 송·요·금대만 하더라도 저·마의 생산, 소비, 수출이 왕성했던 고려와 비슷하였다. 그러나 2목의 검토가 보여주듯 원제국시기에는 중국 인피직물의 재배와 유통이 약화되어 한반도 인피시장의 중국 인피시장 대비 상대 우위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원제국의 경우 정사류 자료를 보면 저·마포 생산의 위축이, 그리고 지방지를 보면 고려산 저·마에의 의존도를 엿볼 수 있다. 반면 한반도에서는 상기한 비교우위를 활용하여 충렬왕이 저포의 조달 및 수출에 적극 나서고 있었으며, 14세기 기록을 통해서는 고려 저·마의 상품성이 해외시장에서도 통할 정도로 탁월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당시 고려는 기존의 상품을 수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특화된 인피직물의 수출을 통해 더 많은 이윤을 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2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특이 제품’들이 실제로 14세기전반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고려의 경우 원제국의 영향을 받아 새로이 직금 견직물을 생산하게 되었지만, 그를 대외수출품으로까지 내세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원제국 직금의 수준이 월등히 우월했을 뿐 아니라, 고려로서는 직금 견직물 제작에 필요한 금·은사의 조달 자체에 무리를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해외 수출품 제작에 있어서는 제작단가의 감축을 위해서라도 기존의 직금과는 다른 제품을 생산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중국 시장에서 원제국 직금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사실 직금기법 자체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어서, 대안으로 고려산 직금제품의 ‘바탕직물만 교체’하는 해법을 취했을 가능성이 포착된다. 한반도에서 쉽게, 그것도 우수품으로 조달할 수 있었던 저·마 등의 인피직물에 직금 기법, 금사자수 기법을 적용한 듯한 유물들이 현전하기 때문이다.

2절에서는 예고한 바와 같이 14세기에 등장하는 한반도산 ‘직금 인피(인피직물에 직금기법이 적용된 사례)’, 또는 ‘금사자수 인피(인피직물에 금·은사로 자수가 이뤄진 사례)’의 존재를 집중 검토하였다. 13세기말과 14세기 전반을 배경으로, 한반도에서도 직금제품이 제작되기 시작한 데 이어 인피직물에 금·은사 시문 기법을 적용하는 새로운 시도가 등장했으며, 급기야 14세기 중엽에는 그런 제품들이 외부로도 수출되게 되었음을 살펴보았다.
1항에서는 우선 14세기초 충선왕대의 상황을 검토하였다. 1목에서는 충선왕의 즉위를 전후하여 중국 직금제품의 한반도 유입이 감소한 정황과, 그에 따른 현상이었을 가능성이 큰 고려 측의 자체적 직금 생산 추이를 살펴보았다. 2목에서는 14세기 전반 고려 인피직물의 동향을 저포와 마포로 나눠 살펴보는 동시에, 그 경쟁력과 상품성의 문제도 논의하였다. 그리고 3목에서는 ‘직금인피(또는 금사자수 인피)’ 제품으로서의 이른바 ‘직문저포(織紋苧布)’가 개발된 경위를 본격적으로 검토했는데, 충선왕이 1290년대 중반 여러 인도산 직물[금수수박(金繡手箔)과 토포(土布)]과 조우하게 된 사건이 그의 직물제품 기획생산에 나름의 영감을 주었고, 그것이 복위 후인 14세기초 직염국(織染局)의 설치로 이어졌으며, 그를 배경으로 직문저포의 생산이 시도되었을 가능성을 논의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제품의 수출 전망에 대한 논의를 위해 중국 및 해외에 유사 제품이 존재했는지의 여부를 검토하였고, 그를 통해 고려측 직금인피(또는 금사자수 인피) 제품들이 나름의 희소성과 독창성을 갖췄을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이전에도 고려 자수 제작자들이 금속사를 더러 사용하긴 했지만, 13세기 후반-14세기 전반에는 금·은사를 활용한 직물 시문(施文)이 고려에서도 본격화되었다. 몽골인들에게도 진상할 정도로 뛰어났던 이전부터의 ‘가금(加金)’ 기술을 기반으로, 그간 원제국산 ‘서금(西錦)’의 유입으로 인해 조성돼 있던 고려내의 직금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려인들이 유사제품 생산에 적극 나선 결과로 생각된다. 중국산 직금 유입량이 줄어든 14세기전반 고려인들이 직금의 자체생산을 본격화하였음은 여러 유물 및 문헌기록, ‘축금(蹙金)’의 사례, 그리고 견직물 생산으로 유명했던 안동지역에 세워진 원성전의 소유주 제국대장공주의 고려 금·은에 대한 관심 등에서 확인된다. 그런 정황들이 축적되어 마침내 원제국의 직금 견직물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모시 자수’라는 변용에 이어 충선왕대의 ‘모시 직금’이라는 새 제품도 등장한 것이라 생각된다.
충선왕이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 데에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작동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가 고려왕으로서는 처음으로 인도 사절로부터 방문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를 계기로 인도산 직물과 조우할 기회를 가진 것이 원제국과의 교역에서도 직물을 전면에 내세워 볼 수 있겠다는 발상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한데, 그가 인도측 사절로부터 선물로 받은 인도산 직물은 목면 또는 인피직물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인도측의 방문은 인도산 직물의 대중국 수출 대행을 고려에 부탁하거나 인도산직물의 대고려(對高麗) 판매를 위해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가 인도산 직물을 매입해 중국으로 수출하는 중개무역에 나섰을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상정하기 어려운 반면, 인도산 직물을 매입하려 했을 가능성은 ‘저포’류 직물로 묘사된 외국산 직물로서의 ‘수건’이 이후 충숙왕대 고려 궁정에서 즐겨 사용된 점에서 제한적으로나마 상정된다. 다만 당시 인도와 중국 사이에 전개되던 무역 불화(不和)를 인지했던 충선왕으로서는, 인도측의 요청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넘어 인도산 직물의 대중국 수출 공백을 틈타 한반도산 직물의 대중국 수출 증량을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14세기초 복위 직후 직염국을 설치해 특수 직물 제작준비를 갖추는 등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으로, 이 직염국에서 제직된 직물들이 바탕직물은 저포이되 시문에는 직금 기법을 활용한 일종의 ‘모시 직금(직금 인피, 금사자수 인피)’ 사례였을 가능성은 현전하는 여러 유물들에서 확인된다. 원제국의 직금기법을 차용하되 바탕직물로는 중국에서도 명성이 높았던 고려산 모시나 심지어 ‘사(絲)-저(苧) 교직(견+인피)’을 사용함으로써 고려제품의 차별성, 특수성을 극대화한 사례는 현재 복수의 유물에서 관찰되며, 그 희소성과 독창성은 해외 여러 유사 직물들과의 비교에서도 드러난다.
다음으로 2항에서는 14세기중반 충혜왕대의 상황을 검토하였다. 충선왕이 위의 직금인피류 직물들을 기획하고 그 생산 또한 시작했다면, 충혜왕은 그런 제품들의 대량 생산 및 수출을 도모한 것으로 보이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1목에서는 우선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직물 무역의 동태를 살펴보았다. 14세기 전반 번성했던 중국과 이란 일칸국 간의 직물교역(중국산 견직물의 대서역 수출)은 14세기 중엽에 접어들며 몇 가지 장애에 직면하였다. 원 황제들의 무역정책 변동이 중국과 서역의 교역을 단기적으로 교란했다면, 1331년까지 5년여 간 이어진 중국내 ‘잠재(蠶災)’는 양잠 부진 및 원사 조달가의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해외의 중국산 견직물 구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일칸국 사절의 돌연한 충혜왕 예방은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확인되는데, 일칸국의 이런 갑작스러운 고려 접촉은 중국 견직물의 수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동북아시아의 다른 세력들을 접촉해 간접 수입이나마 시도한 결과로 다가오는 바가 있다. 실제로 이 시기 충혜왕이 중국 견직물을 다량 수입하기도 했던 바, 중국산 견직물을 확보한 후 그를 서역 쪽에 재수출함으로써 일칸국의 요청에 부응하려 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그 과정에서 고려가 상당한 적자를 볼 위험도 없지 않았다. 적자를 피하는 동시에 중국 견직물 수입 비용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고려산 직물의 대외 판매를 늘려야 했다. 그런데 마침 이 시기 중국으로 유입되는 해외산 인피직물의 총량이 감소추세를 보였고, 한반도 직금인피가 중국시장에서 다른 직물들로부터 받았을 압박의 감소로 이어졌을 수 있는 이런 상황에서 충혜왕은 실제 중국을 대상으로 ‘포’를 수출하였다. 필자는 그러한 정황을 토대로 상기한 고려산 ‘직문저포’를 지렛대 삼아 중국의 견직물을 수입한 후 그를 서역에 재수출하려 했을 가능성을 상정해 보았다.
그리고 2목을 통해 충혜왕의 직물 생산 양상 및 수출 추이를 각론별로 살펴보았다.
우선 직문저포 생산의 무대였던 삼현신궁(三峴新闕)이 아랍권의 관영 티라즈 생산시설(Tiraz workshop)들을 모방하거나 그에 영감을 받아 설치된 것이었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그에서 생산된 직물의 실체가 인피직물이었던 동시에 중국의 시문기법을 전범으로 삼아 제작됐음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수출정책이 부재했던 충숙왕대와는 달리, 충혜왕의 경우 앞서 언급한 서역의 요구 뿐 아니라 중국측의 한반도 직물 수출 요구에도 적극 부응하여 중국 견직물 수입 및 직문저포 수출에 나섰던 것임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충혜왕이 중국 뿐 아니라 회회인에게도 직물을 판매한 것을 그의 대서역 직물 수출로 규정하고, 그러한 시도의 현실성을 서아시아 린넨 시장의 상황 및 현지 시장의 동아시아문양에 대한 인지도 등을 토대로 살펴보았다. 아랍 현지에서도 인피직물이 광범위하게 소비된 만큼 충혜왕의 무역전략이 현지 인피직물의 ‘희소성’ 보다는 현지 소비환경의 ‘인피 친연성’을 겨냥하는 동시에, 문양상의 친숙함 및 ‘인피직물 상의 직금기법 적용’이라는 특수성(이질성) 또한 무기로 삼았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 결과 고려의 직문저포도 현지에서 나름의 경쟁력과 상품성을 충분히 발휘했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2장에서는 고려말과 조선초를 배경으로 한반도산 피물(皮物)의 대외 수출을 살펴보았다.

1절에서는 피화(皮貨)가 주요 대외수출품으로 대두하게 된 배경을 검토하는 차원에서, 고려말-조선초 한반도 직금 생산의 추이 및 저·마의 위상 등에 변화가 발생한 상황을 살펴보았다.
1항에서는 직금시장의 변화 양상을, 그리고 2항에서는 저·마의 위상 변화를 검토하였다. 직금시장의 변화와 관련해서는 먼저 명대 초엽 자수 및 직금 생산의 융성을 살펴보고(1목), 다음으로 그러한 명나라산 직금이 인근지역에 살포되는 와중에 조선으로도 유입되어 한반도 직금에 상당한 위협이 되었음을 살펴보았다(2목). 한편 15세기 전반 동북아시아 인피직물의 생산 추이와 관련해서는 우선 고려말-조선초 한반도 저·마의 생산 및 수출이 여전히 왕성했음을 살펴본 후(1목), 다만 동시기 전개된 명대 중국의 인피직물 생산 증가 및 해외산 인피직물의 중국 유입 등으로 인해 한반도산 인피직물로서는 중국 시장의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아져 있었음을 검토하였다(2목).
이 두 상황을 조금 더 상술하면 다음과 같다. 14세기말의 회복세를 이어받아 15세기 전반에도 조선에서는 자수와 직금 생산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명대의 직금 생산이 원제국시기 못지 않게 왕성하였고, 게다가 명나라산 문기가 홍무와 영락연간 해외시장에 다량 뿌려진 것이 문제였다. 한반도로도 막대한 양이 유입됐음은 15세기 조선의 기록을 통해 확인되는데, 당시 중국산 직금의 한반도 유입량이 14세기에 비해 객관적으로 증가한 것이었는지의 여부까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13세기말 유입된 원제국 직금이 한반도 자수시장을 위축시켰던 것과 유사한 현상이 재연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와중에, 고려후기 한반도산 ‘직금인피(금사자수 인피)’의 차별성을 근저에서 위협한 또 다른 변수도 출현하였다. 고려 직문저포가 원제국산 직금 견직물과 경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으로서의 직물 재질, 즉 바탕직물로서의 한반도산 인피직물의 중국 대비 배타적 우위가 위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초의 저와 마 생산은 이전 시기(고려후기)를 이어 여전히 왕성했던 바, 조선이 직금인피를 계속 생산, 조달하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명대에 접어들어 중국의 인피직물 생산이 원제국시기에 비해 활성화되는 동시에, 동남아시아산 죽포와 초포, 인도산(동남아시아산) 필포, 점성산 화포, 류큐산 잡저 등이 중국에 들어오면서 중국내 인피직물 시장이 매우 혼탁해졌고, 그 결과 한반도로서는 자국산 저·마 제품들이 그간 대중국 수출 과정에서 누려온 ‘조달비용 차원의 중국대비 상대 우위’가 전만 같지 못한 상황에 직면한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중국에서 유사 모방품(포선, 백금금저)마저 등장하는 상항에서, 조선으로서는 자국산 직금제품의 바탕직물로 저포와 마포를 계속 사용하는 것의 적절성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을 가능성이 높다. 기존의 직금인피 제품들을 대중국(또는 그를 넘어서는 지역까지도 대상으로 한) 수출전략의 핵심으로 유지하기에는 힘든 상황이었으며, 결국 또 다른 제품의 수출을 고민한 결과, 피화가 (물론 전부터도 해외에 많이 수출되고 있었지만 이 때 이르러 새삼) 부상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에 2절에서는 본격적으로 이 시기 한반도의 피화 생산 및 수출을 검토하였다.
우선 1항에서는 고려후기까지를 배경으로 한반도산 모직·피화의 생산 및 유통 실태(1목), 그리고 중국을 대상으로는 송·요·금대는 물론 원제국시기까지의 중국내 모직·피화 생산 및 유통 실태를 살펴보았다(2목). 다음 2항에서는 명대 중국의 모직·피화 생산 및 유통 실태를 살펴본 후(1목), 마지막으로 조선전기의 피화 생산 및 대중국 수출 양상을 살펴보았다(2목).
모직의 경우 한반도산 제품의 대외수출보다는 한반도의 중국제품 수입이 더 많았지만, 피화의 경우 반대로 한반도산 물화에 대한 중국의 수요가 컸다. 이미 고려후기 이래, 중국에서 한반도의 피화를 적극 구매해 갔음이 확인된다. 중국의 경우 송대로부터 명대에 이르기까지 비록 모직은 유명했으되 피화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며, 그 결과 한반도에서는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도 왕성한 피화생산 및 대중국 수출이 이어졌던 것이다.
본 책에서는 아울러 조선의 경우 일반 피화제품을 수출하는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전까지의 수출전략에서 긴요하게 활용돼 온 금사자수 또는 직금 기법을 피화에도 적용해 보려 했을 가능성도 살펴보았다. 조선정부가 명 사신에게 제공한 ‘금사 장식된 청사피 재질의 녹피화’가 확인됐기 때문인데, 필자는 그것이 ‘직금 피화’ 또는 ‘금사자수 피화’ 사례에 해당할 가능성에 주목해 본 것이다. 실제로 고려말 공민왕대에도 시문처리된 표범 가죽의 사례가 관찰되는 만큼, 한반도에 그런 사례가 이전부터 있어 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런 사례들을 직금 또는 금사자수를 통해 시문 처리된 피화로 간주한다면, 고려후기 고안된 한반도산 직금인피의 상품성이 위협을 받던 명대에 들어와, 조선인들이 ‘피화에 금사자수 또는 직금처리를 하는’ 새로운 시도를 한 셈이 된다. 한반도 직금상품의 바탕직물이 이전의 인피에서 새로이 피화로 확대되었을 가능성도 상정해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더 이상의 사례들은 확인되지 않아, 현재로서는 그러한 제품들이 얼마나 일반적으로 생산됐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중국의 경우 원대에 ‘모직물 직금’ 금지 조치는 내려져도 피화를 대상으로 한 조치는 보이지 않으므로, 한반도산 제품(피화에 금사를 결합시킨)들의 경쟁력을 상정해 볼 수는 있다. 다만 한편으로, 해외에서는 피화 자수 또는 직금 사례가 심심찮게 관찰된다. 즉 고려산 피화의 품질 자체는 분명했어도, 과연 한반도산 직금 피화가 상품성을 넘어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중국에서 발휘했을지는 미지수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명대에 들어와 계속된 해외(인도차이나반도, 동남아시아, 인도 및 아랍) 모직 및 피화 제품의 꾸준한 중국 유입이, 조선 피화의 중국 시장내 점유도를 끌어올리는 데에 추가적 악재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감지된다. 이와 관련해 특히 류큐와 태국(섬라)의 동물가죽과 모직물이 주목되는데, 기타지역으로부터의 모직·피화가 중국에 유입되는 통에 한반도 피화의 중국시장 점유율 확대에 한계가 발생하면서, 상기한 차별화·특화(“직금피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화가 한반도 대외 수출 전략의 핵심에 오래 머무르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3장에서는 조선전기 명과의 교역을, 한반도산 ‘교직물’의 활발한 대중국 수출을 매개로 살펴보았다.

앞서 1장과 2장을 통해 고려시대와 조선전기 한반도의 대중국 직물수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인피직물과 피화를 각기 살펴봤다면, 3장을 통해서는 견직물과 면직물의 경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았다. 아울러 1장과 2장의 검토에서 ‘직금’이나 ‘금사자수’ 등을 당시 한반도의 특화직물 생산전략으로 살펴봤다면, 3장에서는 조선전기의 특화직물 생산전략으로 간주할 수 있으되 외부에서 들여온 기법은 아니었던, 즉 고려후기 이래 자체적으로 육성돼 온 것으로 보이는 ‘교직’ 기법을 살펴보았다. 순수 견직물의 대외 수출은 확인되지 않지만, 견사를 다른 이종(異種) 섬유와 혼직(混織)한 ‘교직물(交織物)’의 수출 사례는 조선초 왕성하게 확인되기 때문이다. 이에 “견직물+인피직물 합직물”로서의 ‘교기(交綺)’와, “견직물+목면사 합직물”로서의 ‘면주(綿紬·緜紬)’를 각기 1절과 2절에서 검토하였다.

우선 1절에서는 교기의 생산 및 수출을 살펴보았다. 혼직물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위해 우선 1항에서는 교기의 주축이 된 ‘기’의 문제를 먼저 다루었는데, 중국으로서는 송·요·금·원대, 그리고 한반도로서는 고려시대까지의 기를 1목을 통해 살펴보고, 명대 ‘문기(紋綺·文綺)’의 왕성한 생산 및 해외전파가 주변 지역(특히 조선)에 미친 영향은 2목을 통해 살펴보았다.
고려 전·중기의 한반도산 기(綺)는 동시대 송·요·금대의 중국산 기(“錦綺”)와 경쟁·공존하다가, 직금 처리된 원제국산 기(“織金綺”)에 압도당해 그 생산이 일정 기간 교란을 겪게 된다. 그러다가 이후 고려말 회복세를 보이며 조선초로 이어졌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명대 기(“[직금]문기”)는 물론 다른 지역산 유사직물(중앙아시아산 환기[紈·綺] 등)과도 경쟁해야 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은 한반도인들로 하여금 그간 생산돼 온 한반도산 기 직물의 차별화 필요성을 느끼게 했겠지만, 동남아시아·인도·아랍 등지에서 생산된 여러 금사 자수 또는 직금·가금류 제품들이 중국에 유입되던 상황에서, 기법의 개선만으로는 그 차별화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조선 측은 인피직물 또는 피화가 등장할 당시의 전략이기도 했던 ‘바탕직물 다변화’ 차원에서, 다만 또 다른 단종(單種) 직물을 동원하는 대신 기존 직물종(織物種)들 사이의 결합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전통 ‘교직(交織)’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기의 생산, 즉 ‘교기(交綺)’의 생산을 통한 기 차별화 전략이 그것이었다.
이에 이어지는 2항에서는 조선초 교기의 생산이 가능했던 배경을 설명하고자, 한반도의 교직문화를 검토하였다.
우선 1목에서는 한반도의 교직문화와 중국 및 해외의 유사문화를 비교 검토했는데, 외국의 경우 한반도에 비해 그 문화가 다르거나 그 본격화 시점이 뒤늦었음을 확인하였다. 중국산 교직물의 한 사례였을 가능성이 있는 ‘사포’는 목면으로 판단되고, 당시 중국에 유입되었을 여러 해외산(인도차이나, 동남아시아, 인도, 아랍권) 교직물들의 경우 ‘견+면’, ‘견+모’, ‘면+인피’, ‘면+모’, ‘모+인피’ 교직물들은 더러 관찰돼도 (14-15세기 한반도에서 생산하던 것과 같은) “견+인피” 교직물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당시 한반도산 ‘견-인피 혼직물’이 해외시장에서 일정한 경쟁력을 발휘할 만한 제품이었으며, 수출전략의 핵심으로 활용될 잠재력을 가진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으로 해석된다.
다음으로 2목에서는 한반도의 교직물 생산 여건이 본격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고려시대의 상황을 조선초의 지리지 기록들을 통해 살펴보았다. 뽕나무 및 인피직물이 동시에 재배된 지역들을 추출함으로써 한반도 교직물 생산의 토대를 지역별로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또 3목에서는 조선전기 정부의 대외교섭에 활용된 교기는 물론, 그와 같은 시기 함께 진상되고 있던 여러 교직물들(사마교직포[絲麻交織布], 사저교직포[絲苧交織布])을 검토하였다. 특히 양자(교직포와 교기)는 사료에 교차하여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양자가 서로 상보적 관계, 또는 동종, 대체, 호환의 관계에 있었던 탓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검토를 통해, 한반도 내 다양한 지역에 존재한 교직의 전통에 힘입어 조선 측의 대명(對明) 진상 및 수출량을 충족하고도 남을 견+인피 교직물로서의 ‘교기’가 15세기에 생산될 수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물론 ‘교기’에 대한 종래의 견해 중에는 그것을 혼성 견직물이 아닌 ‘순수 견직물’로 보는 견해가 있고(‘굵기가 다른 잠사를 경사와 위사로 사용하여 직조한 기일 따름’이라는 입장), 동시에 중국 명대의 경우 중국측의 기 생산이 쇠퇴하는 중에 있었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이 두 입장을 엮을 경우 “명대 기(綺) 생산이 위축되는 와중에 조선이 [과거의 중국산과 유사한] ‘전통 기(綺)’로 [수출의] 승부를 걸었다”는 가설도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명사󰡕의 각종 문기 기록을 보면 적어도 15세기에는 그것이 쇠퇴하는 중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바, ‘교기’라는 명칭 자체가 ‘실 굵기’를 넘어선 경·위사간 차이(예컨대 실의 재질)를 전제로 한 명칭이었을 것이라는 관점 하에, 필자의 경우 조선인들이 ‘변형된 기’로서의 교기를 갖고 중국시장의 문을 두드린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이상의 검토를 통해, 교직 전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중국시장을 상대로 조선인들이 한반도의 특화상품을 팔아 수입을 거두고자 한 것이 이른바 ‘교기’의 적극생산 및 수출로 이어진 것이라 판단된다. 아울러 그런 교직 견직물들이 조선초 활발하게 등장할 수 있었던 것에는 이전부터의 생산여건이 크게 기여했던 바, 필자 역시 고려후기의 직물생산 및 수출 노력이 이후로도 이어져 조선초 한반도산 직물의 대외수출을 견인한 것으로 당시의 정황을 해석하였다.

다음으로 2절에서는 ‘교기’와 유사한 경우이되 그와는 또 달랐던 ‘면주’의 생산 및 수출을 살펴보았다. 면주의 경우 견사와 인피직물이 결합된 교기와는 달리, 견직물로서의 주(紬)에 또 다른 식물성 섬유인 면사(綿絲·緜絲)가 혼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한 검토를 위해 1항에서는 먼저 그 주요 구성요소 중 하나인 ‘주’의 문제를 살피고 2항에서는 다음으로 ‘면’의 문제를 살폈으며, 두 항의 논의를 수렴하여 마지막 3항에서 ‘면주’ 관련 기록들을 본격 분석하였다.
1항에서는 ‘주’의 역사를 검토함에 있어 고려 전·중기까지의 한반도산 주(1목), 원대까지의 중국산 주(2목)를 살펴본 후, 고려후기 한반도산 주의 고급화 가능성을 살펴보았다(3목).
고려 전·중기의 주 생산을 살펴본 결과, 당시 저급품으로서의 주만 있었던 것은 아님을 고려측 관련기사 속 정황들은 물론 13세기 중국 항구지역 지방지에 한반도산 주가 고려의 대중국 주요수출품으로 기록된 사실 등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송·요·금대의 주 역시 고급, 중급, 하위 품질을 다양하게 노출했고, 무엇보다도 원제국시기에 들어오면서 등장하는 고급화된 주(‘선주’, ‘직금주’[나시즈형 주])는 고려 주에 상당한 위협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가 고려후기에 접어들어서는 전·중기에 비해 그 품질 및 상품가치가 상당히 개선된 듯한 주가 등장하는데, 오랜 세월 중국 주와의 경합 및 공존을 거친 결과가 아닌가 추정된다. 물론 기의 경우와 유사하게 고려의 주 또한 일정기간 침체 또는 위축을 겪었을 가능성이 󰡔고려사󰡕나 14세기 중국 지방지 사료에서 고려 주 기록이 잠시 실종됨에서 유추되는 바 있지만, 그러한 어려운 상황도 이후 점차 개선되어 조선초에는 다시금 주가 활발히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
다음 2항에서는 ‘면’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면’이라는 것에는 잠사로 만든 동물성의 면(綿) 외에 식물성 면(緜), 즉 목면(棉, 木棉) 또한 존재했던 바, 면주의 면을 목면사로 볼 것인지 견직물성 면사로 볼 것인지의 문제가 존재하는데, 이에 대해 학계에는 아직 두 견해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이에 필자는 1목과 2목을 각기 고려와 중국(송·요·금·원대)의 동물성 면, 그리고 고려와 중국의 식물성 목면 검토에 할애하였다. 마지막으로 3목에서는 목면 유입이 국내 면 시장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동물성(견직물성) 면의 경우 고려 전·중기의 그것과 송·요·금·원대의 그것 모두 품질이 비슷했던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어느 한 쪽이 다른 한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상정하긴 어려운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이후 중국의 면직물이 고려 마필 구매 비용 등으로 고려에 들어오면서, 물량의 차원에서 고려 면직물 시장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은 포착된다. 한편 식물성 면의 경우는 또 다른 문제였다. 고려에서는 초기 토착 초면(草棉, 백첩[白疊·白氎])이 생산되기도 한 듯하나, 결국 송대와 원제국시기 중국에 보급된 인도산 면[이른바 ‘중면(中棉, 길패[吉貝])’]이 문익점 등을 통해 고려후기 한반도에 유입되면서 고려의 면직물 시장을 완전히 바꿔 놓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중국측 동·식물성 면직물의 한반도 유입 기간이 매우 길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직물 형태의 목면 유입은 󰡔노걸대󰡕의 ‘면자’가 암시하듯 문익점이 활동하던 14세기 후반보다는 훨씬 전인 1340년대 이미 관찰되고, 원제국 황실로부터 고려 노복들에게까지 목면이 하사된 ‘13세기말’이나 회회인들이 서역산 목면을 들고 왔을 수 있는 13세기 후반까지도 외부 목면의 한반도 유입 상한으로 상정될 수 있으며, 그에 더하여 14세기후반을 넘어 14세기말까지는 다량의 중국산 동물성 면직물 또한 고려에 유입됐기 때문이다. 이렇듯 원제국산 식물성 목면이 우수한 복식재료로서 국내 의류계를 새로이 재편하고, 명나라산 견직물성 면 역시 국내시장을 잠식하던 14세기말-15세기초의 상황이야말로, 한반도가 자체산 면의 특성화를 추진하게 된 가장 큰 배경 중 하나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3항에서는 ‘면주’의 탄생 및 생산, 수출 등을 집중 검토하였다. 조선시대 이전의 한반도와 중국에서도 ‘면주’ 용례가 등장하는 만큼 그를 먼저 간략히 검토했지만(1목), 용례의 출현빈도가 극히 낮아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웠던 바, 그리 일반화되지는 못했던 직물로만 간주하고 본 책의 논의는 조선시대 이후의 면주 검토에 집중하였다.
우선 조선의 면주를 본격 논의하기에 앞서, 2목과 3목을 통해 조선의 ‘주’와 ‘면직물’, 그리고 ‘목면’을 검토하였다. 그 정확한 위상을 확인하기 위해 동시대 명나라의 주, 면, 목면과 비교하는 방식을 취해 보았다. 그 결과 조선의 주, 면, 목면 모두 중국의 ‘문주(文紬)’, 면직물 및 목면제품들과 경쟁하는 데 버거운 바가 있었지만, 한편으로 조선 주의 품질이 상당했고 면 역시 전에 비해 개선된 제품들이 중국 등지로 수출됐음이 확인되며, 조선의 목면 또한 상용화를 넘어 명 사신의 요구사항이 될 정도로 수준이 제고됐던 바, 한-중의 주·면 제품들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상황이긴 했음을 확인하였다.
다만 한편으로, 품질이 개선된 주와 면이든 나름 상용화한 목면이었든 수출품으로까지 적극 활용되기에는 그 모두가 다소의 한계 또한 노출했을 것이다. 이에 조선인들도 그들을 각기 따로 수출하기보다는 그들 서로를 결합시켜 그 품질을 극대화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 결과로 보이는 조선시대의 면주의 제면모를 필자는 4목에서 본격적으로 검토하였다. 현재 학계에는 면주를 ‘견직물’로 보는 경우와 그를 ‘목면과 견사의 합직’으로 보는 경우가 공존하지만, 필자는 후자였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논의를 전개하였다.
고려의 면 시장이 중국 면과 목면에 의해 점령되고 명의 문주마저 밀려들어오는 상황에서, 국내생산용 면과 주를 자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해외에 내다팔기 위해서는(또는 대명 수출용 진상품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를테면 견직물성 면 또는 식물성 면의 증산을 도모하거나 주의 경쟁력을 높여야 할 상황이었으며, 실제로 주와 면, 목면 등의 증산 및 품질개선이 확인되기도 한다. 다만 그러한 노력으로 내부유통분의 자급, 조달은 가능했을지언정, 해외수출의 문제는 별개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까지도 가능케 했을 특성화의 양상은 적어도 개별 직물의 동태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면주는 결국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면과 주 어느 한쪽만 활용해서는 활로가 타개될 여지가 적었던 바, 같은 시기 기(綺)의 특성화과정에서 활용된 기법인 교직을 면과 주를 대상으로도 활용하여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한 것이 아닌가 한다. 양적으로 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면과 주를 결합시켜 질적으로도 양 직물의 속성과는 또 달랐던 특화직물을 제작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라는 얘기이다. 물론 면주의 생산이 주의 특성화에 좀 더 방점이 찍힌 시도였는지 또는 면의 특성화를 좀 더 기도한 소치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결과는 동일하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조선의 면주는 중국시장의 일반 면, 목면 또는 주와는 차별화된 직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비록 기존의 연구에서 면주를 이른바 ‘토주’보다도 거친 직물로 보기도 하나, 그렇게 볼 경우 󰡔조선왕조실록󰡕 등에 등장하는 면주의 활발한 대명진상을 설명하기 어렵게 된다.
한편 마지막으로, 조선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이 당시 중국 시장 안팎의 상황까지도 고려한 것인지 점검하고자 하였다. 마침 원제국 시장에서 ‘면주’가 유통되었음이 󰡔노걸대󰡕에서 확인되고, 명대에는 비중국지역에서 명 조정에 ‘번면주’를 진상한 사실 또한 확인되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다른 문헌에서는 일체 언급되지 않아 후자의 경우처럼 외국산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럴 경우 이 외국 면주는 중국 시장에서는 조선 면주의 경쟁자 노릇을 했을 법한 존재라고도 볼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조선초의 왕성한 면주 생산이 다소 의아하게 다가오는 바가 없지 않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하면, 외국 면주의 존재는 조선인들로 하여금 유사상품의 판로가 중국내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일 수 있었으며, 외국 면주와는 또 다른 조선만의 면주로 승부를 걸 경우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조선의 담당자들에게 섰을 가능성도 상정된다. 심지어 조선에게는 이런 번면주 등이 유사목면 제품 또는 준(準) 목면 제품으로서 자국산 제품의 차별화, 특성화와 관련된 단서와 영감을 주는 것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이 시기 중국시장에는 중국산 목면 뿐 아니라 다양한 해외산 목면도 난립했던 것으로 짐작되는 바, 조선의 면주가 그러한 제품들의 특성에 착목해 개발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조선초에도 수정(水晶) 무역 등을 이유로 조선 내에 체류하며 조선-서역 교역을 주도하던 회회인들을 통해 아랍 목면 및 동남아시아 번면주 등이 조선에 유입돼 한반도 면주 제작 및 업그레이드에 도움을 주었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렇듯 교기와 면주 등이 주요 대명진상품으로 등장하는 등 여러 교직물들이 외부로 활발히 수출되던 조선초의 상황은, 15세기에 접어들어 한반도가 종래의 인피직물, 피화에 더해 -비록 변용, 혼성이긴 하였으나- 견직물로도 승부를 걸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바가 있다. 아울러 인피직물과 피화의 특성화에 기여한 ‘직금(금사자수)’ 기법이 원제국으로부터 도입된 것이었다면, 교기·면주 제작의 교두보가 된 교직의 전통은 이미 고려 때부터 한반도 내에 축적돼 온 자립적 전통이었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상에서 살펴본 13-15세기 고려와 조선의 직물 생산·소비·수입·수출의 역사가 갖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한반도가 인피직물, 피화, 준 견직물 등 여러 제품으로 해외 직물시장을 공략했다는 의미도 있고, 처한 난관마다 새로운 전략(직금, 교직)으로 한반도산 직물의 차별화를 모색해 갔다는 의미도 크다. 고려가 적어도 후반기에는 동북아시아 제지역은 물론 동남아시아, 인도, 아랍권으로도 열려 있었음을 환기하는 효과도 있고, 조선전기의 활발한 대외무역에 고려의 경험과 유산이 가장 큰 기반이 되었음을 우리에게 새삼 일깨우는 효과도 있다. 무엇보다도 당시 한반도와 동아시아, 한반도와 세계가 직물을 매개로 소통하고 있었음을 확인한 것이야말로, 이 연구를 진행하며 필자가 느낀 가장 큰 보람이라 할 것이다.
물론 그 소통이 때로는 긍정적인, 그리고 때로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다만 그 결과의 맥락을 떠나 그런 추이 자체는 한반도 당시 역사의 중요한 일부분에 해당한다. 전 세계 직물의 물류(物流)가 여러 방향, 온갖 갈래로 분기하는 와중에, 한반도는 과연 어떤 위치에 있었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반드시 규명돼야 할 필요가 거기에 있다. 본고에서 밝힌 바가 도자기의 문제와 더불어 13-14세기 고려시대 대외무역사 연구를 보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논의가 미진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별고를 기약한다.
세부과제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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