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바로알리기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저는 주로 미국 대학 수업에서 사용할 세계사 입문 교재를 집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희 방문단에는 역사교육 전문가인 로라 J. 미첼(Laura J. Mitchell)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제 교재의 공동 저자이기도 했습니다. 로라는 이후 부득이하게 집필 프로젝트에서 하차했으며, 현재 수상 경력이 있는 세계사 전문 학술지 『세계사저널(Journal of World History)』의 편집장을 맡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캘리포니아주 피처대학교(Pitzer College)의 역사학자 우르미 엔지니어 윌러비(Urmi Engineer Willoughby)가 집필에 합류해 저와 함께 두 권으로 구성된 세계사 교재 『파노라마: 세계사(Panorama: A World History)』를 완성했습니다. 이 책은 2026년 2월 블룸즈버리 아카데믹(Bloomsbury Academic)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설명: 로스 에드먼즈 던(Ross Edmunds Dunn)과 우르미 엔지니어 윌러비(Urmi Engineer Willoughby)의 『파노라마: 세계사』(Panorama: A World History) 전 2권. 블룸즈버리 아카데믹(Bloomsbury Academic), 2026년 2월 출간.
『파노라마』에는 다채로운 사진과 지도가 다수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저희를 맞이했던 김다희 전문위원에게 책에 실을 한국 관련 이미지를 제공해 줄 수 있는지 문의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희는 여러 차례 유익한 의견을 주고받았으며, 그 결과 두 장의 이미지를 선정해 책에 수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경주 신라 왕릉의 장엄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전쟁 당시 피란길에 오른 한 가족의 가슴 아픈 모습을 담은 사진입니다.
설명: 2019년 4월, 한국학중앙연구원 김다희 전문위원과 미국 교육자 4명의 신라 왕릉 답사. 왼쪽부터 로스 던(Ross Dunn), 로라 미첼(Laura Mitchell), 로저 벡(Roger Beck), 브램 허벨(Bram Hubbell), 김다희.
설명: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의 고분군. 신라 통치자들의 무덤으로, 『파노라마』 제1권에 수록된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파노라마』는 세계사를 개괄하는 입문서로서 독특한 서술 방식을 취합니다. 기존의 세계사 입문서는 대체로 두 가지 방식으로 구성되어 왔습니다. 하나는 문명이나 광역 지역을 중심으로 장을 나누어 각 지역의 역사를 차례로 다루면서, 그 과정에서 지역 간 교류와 상호작용도 함께 살펴보는 방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정치·경제·문화 등 주제별로 장을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이에 비해 『파노라마』는 세계사의 시대적 흐름에 따라 각 장을 구성합니다. 각 장은 반구적 또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을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지역별 또는 주제별 관점에서 동일한 시대를 여러 차례 반복해 다루는 대신, 『파노라마』는 하나의 선형적인 세계사 연표를 따라 서술을 전개합니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독자들이 특정 시대에 서로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변화를 비교하고, 사회들 사이의 상호 연관성을 파악하며, 지역 간 및 전 지구적 차원에서 세계사의 “큰 그림”을 조망하도록 돕습니다.
물론 두 권으로 구성된 세계사 입문서에서도 여러 지역과 국가, 제국, 민족 집단을 다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구석기시대부터 현대에 가까운 시기까지 인류의 역사를 폭넓게 다루는 『파노라마』는 개별 사회의 역사를 세세하게 살펴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바로알리기사업에 참여한 경험을 통해 『파노라마』에서 한반도 역사를 다루는 부분을 확대하고 관련 내용을 더욱 충실하게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의 논의는 근대 이전 한국사를 아프로유라시아(Afroeurasia), 즉 아프리카와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거대한 육지권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바라보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파노라마』가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사를 다루는 방식을 한 가지 예로 살펴보겠습니다.
『파노라마』 제1권에서는 기원전 1천 년기부터 아프로유라시아 전역에 걸쳐 있는 여러 주요 해역을 무대로 장거리 교역망이 점차 발달했다고 설명합니다. 『파노라마』에서는 이처럼 여러 바다를 연결하며 형성된 교역망을 ‘바다의 연결망(chain of seas)’이라고 부릅니다. 때로 대규모 조직을 이루기도 한 해상 상인 집단은 이 연결망을 따라 아프로유라시아의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상품을 전달했습니다. 이 연결망에는 모두 열한 개의 바다가 포함되며, 해협과 일부 육상 경로를 통해 동해에서 북유럽의 발트해까지 이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기원전 1세기에는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된 귀한 향신료가 로마 제국의 유럽 속주에 있는 시장에까지 전해졌습니다.
설명: 아프로유라시아의 바다의 연결망(지도).
서기 1천 년기 초반에 이르러 연결망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두 해역인 동해와 동중국해는 해상 및 육상 교역과 인구 이동, 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부상했습니다. 이 두 해역은 중국과 한국, 일본을 서로 연결했을 뿐 아니라, 점차 동남아시아와 연결망을 따라 더 서쪽에 위치한 지역들까지 이어 주었습니다. 동해와 동중국해의 해상 교통로를 통해 벼농사, 철 제련 기술, 양잠, 직물 제작 기술, 문자, 중앙집권적 통치 방식, 불교 등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해졌으며, 다시 한반도에서 대한해협(약 125마일, 약 200km)을 건너 일본으로 확산되었습니다. 한반도를 통일한 최초의 토착국가인 신라(668~935년) 시대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 사이의 교역과 왕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9세기 아랍어 기록에 따르면, 서기 1천 년기 후반 중국의 항구를 찾은 무슬림 상인들은 한국산 칼과 비단 직물, 자기 등을 구입해 동남아시아와 인도로 운송했으며, 아라비아해 연안 지역까지도 이를 가져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후 수세기에 걸쳐 바다로 이어지는 교역망을 통해 한국과 아프로유라시아의 다른 지역 간 연결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에서는 세계사 교육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여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교육 모델이 국내에 도입된 영향도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 다룬 것처럼 한국의 과거를 초지역적·세계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는 관점은 이제 점점 더 많은 한국의 세계사 연구자들에게도 매우 친숙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21년 서강대학교는 임지현 교수의 주도로 비판적 글로벌학(Critical Global Studies) 프로그램을 설립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초국가적·초지역적·초학제적 교육을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프로그램 소개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인문학의 비전은 국가, 계급, 젠더, 인종, 문화, 문명, 종교와 같이 인간을 구분하는 인위적인 경계를 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인류 전체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https://cgsen.sogang.ac.kr/cgsen/whatis.html).
최근 한국 학자들은 1980년대 미국에서 설립된 국제 학술단체인 세계사협회(World History Association)의 연례 학술회의를 인천에서 개최함으로써 세계적 차원의 교육에 대한 의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아쉽게도 이번 학술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참석했다면 네 번째 한국 방문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번 행사의 기획과 성공적인 개최에 기여한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