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농촌개발, 국제개발 그리고 한국학

정수환 사진
정수환
장서각 고문서연구실장

한국은 한국문화의 가치를 발견하고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일제강점기 “아와 피아의 투쟁”이라는 민족주의 발로로 ‘국학’운동을 전개하여 민족 결속을 성취했다. 독립으로 빛을 되찾자, 식민사학의 낙인을 벗어 던지려 민족문화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국학’에 집중했다. 고도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한국문화의 정수’를 연구하여 ‘민족문화 창달’을 위한 한국학 연구를 했다. 국학을 한국학으로 승화하기 위한 도전이었지만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는 국학이었다. 이제, 21세기 ‘한국학’의 외연 확장을 위해 세계와 인류에 이바지하는 차원에서 농촌 개발과 국제개발을 연계한 한국학을 고려할 수 있다.


지구 각지에서 한국인과 현지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도 한국학이다. 한국 안에서 한국인이 이룩한 역사와 문화를 해외에 알리고, 또 해외 연구자가 이러한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는 영역은 당연히 한국학이다. 그리고 비록 이민사가 있지만 해외에서 일어나는 한국인과 현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은 1970년대 농촌개발로 농촌 빈곤과 소득증대를 실현한 성과를 평가받으면서 21세기 국제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을 수출하고 있다. 국제개발 현장 중 농촌지역에는 많은 개발 봉사자들이 현지 주민과 호흡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지의 토착문화에 대한 이해 차이로 주민과 상호 혼란이 발생하기도 한다.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 계 문서, 1970년대 마을 개발 계획서,아프리카 주민 활동 그리고 남미 마을 조사(상좌부터 시계방향)

조선시대 계 문서, 1970년대 마을 개발 계획서,아프리카 주민 활동 그리고 남미 마을 조사(상좌부터 시계방향)


국제개발 프로그램 중 농촌개발 현장에서는 사업 관리가 우선하면서 현지 토착문화에 주목하기 어렵다. 봉사자들은 현지 농촌에서 환경개선과 소득증대를 위해 한국의 경험과 지식을 전수하는 사업을 설계하고 성과를 관리하는 업무에 집중한다. 이러한 현실은 토착문화를 존중하기 어렵게 하고, 사업 관계자는 현지의 지식을 참고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되돌아보는데 한계가 있다. 국제개발 프로그램의 안정화를 위해서도 현지 개발사업 진행에 앞서 현지 토착문화에 관한 관심과 연구를 선행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국학을 위해서도 이러한 현지의 토착문화에 대한 탐구를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가치를 발견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수원국에 대한 농촌개발 프로그램은 한국의 1970년대 농촌개발 운동에서 출발하지만, 그 저력은 한국 토착 농촌의 가치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마을 단위로 전개한 농촌개발 운동의 동력은 조선시대 마을에서 조직하고 작동했던 각종 계에 있다. 주민들이 공동 이익을 위해 협동하면서 호혜의 지속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경험적 유산의 작동이었다. 이런 농촌 마을의 가치는 아시아의 ‘핰(Haq)’, 아프리카의 ‘우분투(Ubuntu)’, 남아메리카의 ‘수막 카우사이(Sumak Kawsay)’와 같은 지구 남반구 지역 토착 지식의 사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부분은 한국의 토착 가치도 지구와 인류의 문화와 연대 속에서 비교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렇기에 국제개발로서 수원국 농촌개발 사업에 착수하기에 앞서 인문학 관점에서 토착 지식에 관한 관심을 기울이는 노력은 한국 토착문화의 가치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성과는 국제개발 사업의 안정성을 담보할 뿐만 아니라 인류문화의 다양성을 탐색하는 한국학이 된다.


한국학은 이제 한국과 한국인 그리고 민족이 주인공이 되는 학문보다는 세계사와 인류의 문화 다양성 발견에 기여하는 학문에 도전하고 있다. 한국 농촌 마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가치는 지구 남반구 농촌에 관한 연구로 발견할 수 있다. 그 디딤돌은 국제개발로서 농촌개발 프로그램 과정에서 수원국 농촌의 토착문화를 향한 관심이고, 현지 봉사자와 주민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도 지금 관점에서의 한국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