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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소식지 6월호 A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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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S 이 땅의 문화를 찾아서
 
이 땅의 문화를 찾아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홈페이지 바로가기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은 전국 230개 시·군·구 지역의 다양한 향토문화 자료를 발굴․수집, 연구․분석하여 체계적으로 집대성하고, 이를 디지털화하여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정보 통신 매체를 통해 서비스하며, 이용자가 또 새로운 지식의 생산자가 되는 순환형 지식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대규모 문화 콘텐츠 편찬사업입니다. 이는 그간 미진했던 전국의 향토문화 자료의 보존 및 계승의 대책 마련과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지역문화 정리사업의 필요성에 의해 추진되는 사업으로서, 지식·문화산업의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 간 균형 발전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며, 인터넷을 통해 전국 향토문화의 세계화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Tip.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이란? 디지털포천문화대전 홈페이지 바로가기 [사진] 창옥병 4. 창옥병(蒼玉屛) 영평 8경 중 제3경으로,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 영평천 변에 있는 병풍바위이다. 창옥병이란 이름처럼 푸른색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하천을 둘러싸고 있다. 창옥병의 폭은 수백 m나 되고 높이는 12~15m에서 수십 m로 깎은 듯한 절벽인데, 절벽에는 고저(高低)·굴곡(屈曲)이 있고 암혈이 있으며, 동물 모양을 연상시키는 바위들이 튀어나와 있다. 절벽에는 야생화와 소나무 등 나무가 자라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창옥병에는 암각문이 남아 있는데, 한호의 글씨와 선조가 박순에게 내린 글, 곡운 김수증이 쓴 박순의 시 등 11점이 남아 있다. [사진]창옥병 암각문 1931년에 암벽을 깎아서 터널을 뚫어 도로를 만들어 통행하였으나 최근에는 우회 도로가 생겨 현재는 일부 차량만 통행하고 있다. 창옥병 암각문 연결 항목 5. 낙귀정(樂歸亭) 터 영평 8경 중 제4경으로,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거사리의 낙귀정이라는 정자가 있던 자리이다. 지금은 정자 터에 주춧돌만 남아 있다. 이 정자의 유래에 대해서는 설화만이 전한다. 영의정으로 등용된 일이 있는 중신(重臣) 황 씨가 관직을 떠나 고향에 돌아와서 자기 집 근처에 정자 하나를 짓고 낙귀정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데, 그 뒤 황 씨는 나라를 배반한 신하로 혐의를 받아 사약을 받고 죽었다고 한다. [사진] 낙귀정 터 낙귀정의 유래나 이후의 관련 일화를 전하는 기록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지만 박순의 칠언 절구와 칠언 율시 각 1수씩 전해지고 있으며, 지천(芝川) 황정욱(黃廷彧)[1532~1607]의 칠언 절구 「제귀낙정(題樂歸亭)」 1수가 남아 있다. 6. 선유담(仙游潭) 영평 8경 중 제5경으로,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백운동 계곡에 있는 연못이다. 이름 그대로 신선이 놀던 연못이라고 할 정도로 경관이 아름답다. 백운산 기슭을 끼고 돌며 굽이치는 영평천 상류 계곡 주변에 깎아지른 암벽이 서 있다. [사진] 선유담 암벽에 ‘선유담(仙游潭)’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임진왜란 때 양사언이 썼다고 전해진다. 『농암집』에는 김창협이 지은 「선유담」이란 시가 실려 있다. [사진] 선유담 암각문 선유담은 조선 후기 김창협(金昌協), 김창흡(金昌翕), 김창업(金昌業), 이현익(李顯益), 성해응(成海應), 이항로(李恒老) 등 여러 학자들의 시, 기행문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특히 김창협, 김창흡, 김창업은 노론의 영수인 김수항(金壽恒)의 여섯 아들 ‘이른바 육창(六昌)’ 가운데 세 명으로, 김수항 일가는 포천과 연고가 있었다. 김수항과 그의 형 김수증(金壽增), 김수항의 아들 육창이 모두 영평에 은거하거나 빈번히 왕래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김창협, 김창흡, 김창업의 문집(文集)에서 선유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현익 또한 김창협의 제자이다. 선유담 암각문 연결 항목 7. 와룡암(臥龍岩) 영평 8경 중 제6경으로,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수입리 산내지동 영평천과 수입천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약간 하류에 있다. 와룡암은 바위의 기이함보다는 주위 풍경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특히 6월에 철쭉이 피면 그 경관이 아름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와룡암 와룡암이라는 이름은 바위의 모습이 누워 있는 용처럼 생겼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바위의 이름은 고려 시대의 문헌에도 나와 있다. 용의 상체는 수면 위로 떠 있고 꼬리에 해당하는 바위는 길이가 50m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홍수 예방 조치로 물속에 잠겨서 바위를 더 이상 볼 수 없다. 8. 백로주(白鷺洲) 영평 8경 중 제7경으로,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거사리 한내천 하류에 있는 바위와 그 주변이다. 백로주는 바위라기보다는 조그마한 바위산이라 할 수 있는데, 전체가 하나의 바위로 이루어져 마치 백로가 물속에 서서 사방을 바라보는 형상을 연상시킨다. 백로암이라는 이름이 약 400년 전 문헌에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훨씬 전에 지어진 이름으로 여겨진다. 최근 백로주 북쪽 하천 부지에 잔디와 나무를 심고 유원지를 조성하였다. [사진] 백로주 백로주는 양사언, 양만고, 조경, 송시열 등 포천 지역의 명사들이 와서 배를 타고 즐겨 놀던 곳이며, 현재도 포천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다. 바위에는 당나라 시인인 이백(李白)[701~762]의 「등금릉봉황대(登金陵鳳凰臺)」의 제5, 6구가 새겨져 있다. 이밖에도 4점의 암각문이 새겨져 있다. 백로주 암각문 연결 항목 바로가기 [사진] 백로주 암각문 백로주 유원지 연결 항목 9. 청학동(靑鶴洞) 영평 8경 중 제8경으로,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금주리에 있는 계곡이다. 일동면으로부터 흘러내려온 물을 암석 병풍과 같은 형태의 절벽이 둘러싸고 있다. 큰 바위와 절벽이 있이 하천과 함께 어우러진 경치를 보여준다. 청학동의 명칭과 관련해서는 설화가 전한다. 어떤 가난한 효자가 아버지의 시신을 모시고 이장하기 위해 자리를 잡고 한 삽을 뜨는 순간 그 속에서 청학 한마리가 나와 슬프게 울며 창공에 원을 그리면서 날아가서 효자가 그곳에 산소 쓰기를 단념했다고 한다.
암벽 낭떠러지에는 ‘청학동(靑鶴洞)’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사진] 청학동
연구원 홈페이지 한국문화교류센터 Newsletter 한국학진흥사업단 Newsletter 관리자에게
「디지털포천문화대전」속으로의 여행(1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대표적인 전자 편찬 사업『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그 중 경기도 포천 지역 정보를 총망라한「디지털포천문화대전」을 소개합니다. [사진] 디지털포천문화대전 홈페이지 그럼 포천에 대해 알아보는 여행을 떠나보실까요? 경기도 북부에 있는 포천은 산줄기로 둘러싸이고 물줄기가 흘러지나는 천혜의 관광지이다. 동쪽으로 국망봉, 백운산, 청계산 등과 접하고, 서쪽으로 천보 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다. 또한 영평천이 백운산에서 흘러나와 동쪽으로 흐르고, 한탄강이 관인면·영북면을 거쳐 합류해 임진강의 상류를 흐른다. 특히 한탄강 주변은 포천을 대표하는 명소로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예전부터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 감흥을 문학 작품으로 남기기도 하였다. 한탄강 주변은 조선 시대에는 영평현(永平縣) 지역이었는데, 이들 지역 중 특히 아름답고 유서 깊은 곳 여덟 곳을 일컬어 영평 8경이라 불렀다. 이를 중심으로 포천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해보자. 영평천과 한탄강의 지천을 끼고 계곡들이 발달하여 백운 계곡, 지장산 계곡, 깊이울 계곡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 덕에 예전부터 풍광이 아름다운 곳으로 널리 알려졌고 최근에는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로 근교의 주말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포천 영평 8경으로 떠나는 여행 1. 영평 8경이란 ‘영평’이란 지명은 조선 태조 때인 1394년 영흥현(永興縣)이 영평현으로 개칭되면서 비롯되었다. 영평 8경은 국사봉에서 발원한 산내천과 서쪽으로 흐르는 영평천이 한탄강으로 흘러들면서 우거진 숲, 맑은 물, 기암괴석, 병풍같이 우뚝한 절벽 등의 명승을 자아내어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사암(思菴) 박순(朴淳)[1523~1589],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 보만재(保晩齋) 서명응(徐命膺)[1716~1787] 등을 대표적 인물로 들 수 있다. [사진] 박순 묘와 신도비 특히 박순은 선조 때 영의정을 14년이나 지낸 인물로, 이곳에 쉬러 왔다가 아예 머물러 살게 되었다. 그의 행장에 “선조 19년[1586] 가을, 휴가를 받아 영평(永平)의 초정(椒井)에 목욕하러 갔다. 이때 영평현의 백운계(白雲溪)에 은거할 배견와(拜鵑窩)와 이양정(二養亭)을 짓고, 백운계·청령담(淸泠潭)·토운상(吐雲床)·창옥병(蒼玉屛)·산금대(散衿臺)·청학대(靑鶴臺)·백학대(白鶴臺) 등의 명호(名號)를 제(題)하였다”는 기록이 있다.박순은 실제로 벼슬을 그만둔 후 창옥병 건너 언덕에 집을 짓고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근처에 그를 배향한 옥병 서원이 있다. [사진] 옥병 서원 박순의 일화를 보면, 영평 지역의 아름다움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와 같이 명승 유람차 발길을 돌렸다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머물렀던 시인묵객들이 많았을 것이다.
영평 팔경은 화적연, 금수정, 창옥병, 낙귀정, 선유담, 와룡암, 백로주, 청학동이 포함된다. 2. 화적연(禾積淵)

영평 8경 중 제1경으로, 한탄강에 있는 큰 바위와 깊은 연못으로 이루어진 절경이다.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와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사정리 경계에 있으며 수면 면적은 1,300여 ㎡이다. 화적연은 한탄강 물이 휘돌아가며 형성된 깊은 연못과 수면 위로 솟아 있는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은 대보 화강암[중생대 백악기 화강암]을 뒤덮은 현무암층과 현무암 주상 절리[뜨거운 용암이 굳을 때 부피가 수축되면서 돌기둥 모양으로 발달한 나란한 결], 화강암 암반, 상류에서 내려와 쌓인 모래와 자갈 등 다양한 지형들을 함께 볼 수 있다. 이러한 지형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강물과 비바람에 깎여 나가 기암괴석을 이루고 있으며 서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보여 주고 있다. 현재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 화적연 마치 볏짚 단을 쌓아올린 것 같은 형상이어서 화적(禾積)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또다른 이름으로 유석향(乳石鄕), 귀룡연(龜龍淵)으로 불렸다. 조선 시대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여지도서』 경기도 영평현조에는 기우제단 두 곳 중 하나로 화적연이 나오고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에도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사를 종종 확인할 수 있다. 포천 화적연 연결 항목 3. 금수정(金水亭)
영평 8경 중 제2경으로,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 영평천 변에 있는 정자이다. 1989년 복원되어 포천시 향토 유적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이 정자는 울창한 숲속에 자리 잡고 있어 앞에 흐르는 맑은 물과 숲이 아름답게 어울리고 맑은 물에 낚시를 담그는 풍류가 서려 있는 곳이다. 세종 때 김명리가 이곳에 작은 정자를 세우고 우두정(牛頭亭)이라 했는데, 정자가 있는 곳의 모습이 소머리를 닮아서 이러한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정자 주변을 흐르는 물도 두우연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 후 김명리가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에게 이 정자를 주었고, 양사언이 정자의 이름을 금수정으로 고치고 편액도 갈아 달았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이후 안동 김씨의 소유로 전해오면서 몇 차례 중수되었으며 6·25 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89년 복원되었다. [사진] 금수정 [사진] 금수정 현판 정자 현판은 양사언의 글씨이며 정자 옆에는 그의 시조 비인 “태산이 높다하되…”가 서 있다. 주변에 여러 암각문이 남아 있는데 양사언과 석봉 한호(韓濩)의 것도 포함되어 있다. 금수정 연결 항목 바로가 「디지털포천문화대전」에 담긴 정보와 자료들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사이트 및 지역별 사이트(포천문화대전), 대형 민간 포털(네이버, 다음, 구글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11년 3월부터 2013년 9월까지 약 2년에 걸친 작업 기간을 통해 원고 집필, 멀티미디어 제작, 서비스 시스템 구축 사업이 진행되었고, 총 1,983개의 항목, 원고지 10,470매, 사진과 동영상 등 총 3,500종의 멀티미디어 자료를 담고 있습니다.  2011년 3월 포천시와의 협약을 통해 추진된 이 사업은 2011년 6월부터 11월까지 ①기초 조사 연구를 통해 포천시의 향토문화 자원을 조사ㆍ분석하는 작업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②원고 집필 사업(2011년 12월~2012년 9월, 국민대학교), ③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 사업(2011년 12월~2012년 11월, 포천문화원), ④원고 윤문․교열 사업(2013년 3월~5월, ㈜지식공학), ⑤XML 데이터 제작 사업(2013년 4월~6월, ㈜나라지식정보), ⑥서비스 시스템 개발 사업(2013년 5월~6월, ㈜올인텍아이엔씨)이 수행되었습니다. 「디지털포천문화대전」(http://pocheon.grandculture.net)은 경기도 포천시의 디지털 백과사전으로, 포천시의 지리, 역사와 문화를 비롯해 정치·경제·사회의 발전상 등에 관한 다양한 자료와 정보를 집대성해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게 제작되었습니다. 불일폭포 연결 항목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