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보기 맨위로
 
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소식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소식지 4월호 AKS
 
커버스토리
한중연소식
옛 사람의 향기
이 땅의 문화를 찾아서
한국학 연구동향
세계와 함께하는 한국
새로 나온 책
뉴스 라운지
되살리는 기록유산
틀린 그림 찾기
한국학중앙연구원 페이스북 페이지 한국학중앙연구원 트위터
AKS 옛 사람의 향기
 
연구원 홈페이지 한국문화교류센터 Newsletter 한국학진흥사업단 Newsletter 관리자에게
한산이씨 수당고택,『조선사연구초』, 안확의「悼申丹齋」 [사진] 허원영(고문서연구실 연구원) 오늘도 장서각 수장고 철문 앞에 선다. 얼핏 보기에도 출입을 쉽게 허락하지 않을 듯한 위용이다. 보안장치를 해제하고, 육중한 철문을 연다. 그리고도 다시 두 내문의 잠금을 풀고 나서야 비로소 수장고는 자신이 품고 있는 전적들을 보여준다. 높은 천장, 넓은 공간에 가득 찬 서가와 전적들. 고서와 고문서들에서 풍겨오는 오래된 종이향기,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가동되는 설비들의 낮은 진동소리. 평안한 수장고의 풍경은 관리하는 사람의 마음도 편안하게 한다. 서가 사이를 거닐며 자료를 찾는다.“예산 한곡 한산이씨 수당고택 전적”.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제6대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한 이문원선생이 맡긴 자료들이다. 1997년과 2002년에 걸쳐 3천 8백여 점을 조사하여 수집한 이래 장서각에서 관리하고 있다. 전량을 정리하여 촬영하였고, 주요 자료들을 대상으로 2002년에『고문서집성 61』과 2005년에 『한국간찰자료선집 8』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예산 한곡의 한산이씨는 고려 말의 문신이자 학자로 이름 높은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과 선조조 북인의 영수로 영의정을 지낸 조선 중기의 문신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1539~1609) 등을 선조로 하는 조선의 명문가이다. 특히 이문원선생의 증조부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 1855~1907)로부터 조부 이충구(李忠求, 1874~1907), 부친 이승복(李昇馥, 1895~1978), 그리고 형 이장원(李章遠, 1928~1951)까지의 4대가 일제강점과 6·25전쟁의 국난극복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으며, 서울국립현충원에 모셔진 대한민국 최고 명문가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지난 4월 21일 “2016년 6·25 전쟁영웅 선정패 수여식”이 전쟁기념관에서 개최되었다. 이장원선생이 이 가운데 한 분으로, 11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되었다. 이문원선생이 유족으로 참가하였고, 겸사겸사 장서각에 들러 자료 일부를 찾아가길 원하였다. 조상들의 손길이 담긴 전적들을 일부라도 곁에 두고 간직하고자 하는 바람이었다. 건네진 목록에는 조상의 행적을 담은 가장(家狀)과 연보(年譜)를 비롯하여 유고(遺稿), 필적(筆跡) 등 선조들의 묵향 가득한 자료 50여 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3천점이 넘는 자료를 확인해 나간다. 하나하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순백의 장갑은 오랜 세월 묵은 먼지에 금방 얼룩진다. 냄새와 먼지들이 마스크로 가려진 코와 목을 간지럽힌다. 20세기 전반기에 제작된 듯한 색 바랜 작은 책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표제가 붙어 있어야 할 자리는 흔적만이 남아 있다. 상대적으로 최근의 책임에도 산화되어 부서지기 쉬운 책들이다. 더 조심해서 첫 장을 넘긴다.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라는 제목이 드러난다. 『조선사연구초』는 독립운동가이자 대표적인 민족주의 사학자인 단재 신채호(申采浩, 1880~1936)가 1924~5년의 시기에 『동아일보』에 연재한 6편의 논문을 묶어서 1929년에 간행한 책이다. 이 책은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와 더불어 1920년대에 집필된 신채호의 대표적인 역사학 저술이다. 신채호의 역사학은 중세사학을 극복하는 근대사학의 시작이자 식민주의 사학을 극복하는 민족주의 사학으로서의 대표성을 인정받고 있다. 신채호는 일찍이 이남규 문하에서 수학한 바 있다. 신채호가 20세 무렵 성균관에 입학하여 공부할 때 이남규는 성균관 교수로 경학을 가르쳤으며, 이남규가 제1제자로 꼽던 인물이 신채호였다 한다. 수당고택의 『조선사연구초』가 갖는 의미가 각별해 지는 이유이다. 『조선사연구초』를 조심스레 넘기고, 마지막 판권지를 살펴본다. 1929년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발행한 초판본이다. 그런데 판권지 앞면의 시구가 기록된 것이 눈에 들어온다. 제목은 “도신단재(悼申丹齋)”, 즉 신채호의 죽음에 대한 애도사이다. 작자는 “안자산(安自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일제강점기 국학자이자 국어학자, 역사학자, 문학가, 독립운동가로 이름을 남긴 자산 안확(安廓, 1886~1946)이다. 일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신채호가 사망한 1936년 2월 무렵일 것이다. 悼申丹齋
文星이 ᄯᅥ러지니 하눌빗이 뒤집힌다
胡地가 夜台되야 申丹齋가 가단말가
사람이 擾擾헌 中에 恨이 限이 업구나.
				安自山

    嗟라. 先哲의 뒤를 이음
          그 누가 잇으랴. 한산이씨 수당고택 전적 중『조선사연구초』판권과 안확의 “悼申丹齋” 부분 [사진 자료] 한산이씨 수당고택 전적 중『조선사연구초』 판권과 안확의 “悼申丹齋” 부분 신채호는 1929년 5월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되어 10년형을 언도받고 뤼순감옥에 수감되었고, 1936년 2월에 뤼순감옥의 독방에서 뇌일혈 및 고문 후유증 등의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 이 시기는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의 무단통치가 점점 심해지던 시기였다. 안확 역시 이때 식민지 조선에서의 활동에 한계를 느끼고 만주와 중국, 노령의 연해주 지역을 전전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암흑기에 전해진 신채호의 옥사 소식에 대한 비분을 이렇게 기록했으리라. 단재 및 자산과 시대와 정신을 함께한 수당고택가의 인물은 이승복이다. 1907년 13세의 나이로 조부와 부친을 동시에 일본군의 손에 잃은 이승복은 3년상과 서울에서의 신학문 수학 후 1913년 19세의 나이로 러시아 망명길에 오른다. 이후 국내외를 넘나들며 독립운동에 매진, 언론활동과 신간회 당의 창설과 운영, 재만동포 구호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그 길에서 단재, 자산과 공감하고 함께 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한산이씨 수당고택에 가전된 신채호의『조선사연구초』한 권, 그리고 그 여백에 쓰인 안확의 애도의 글을 살핀다. 이남규와 그의 손자 이승복, 신채호와 안확의 몸은 비록 떨어져 있었으되 그 활동과 바람이 이와 같이 한결같았음을 이 한 권의『조선사연구초』를 통하여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