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 한국학
해외 한국학자를 만나다: 체코 팔라츠키 대학교
- Palacký University Olomouc, Czech Republic -
Q1. 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 소식지 독자들을 위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체코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고, 팔라츠키대학교에서 한국학 분과를 책임지고 있는 오스트리아인 한국학자 Andreas Schirmer라고 합니다. 원래 저는 독문학과 철학을 전공했고, 박사학위는 독문학으로 취득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비엔나에 살고 있던 한국인들과 교류하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어 생각지도 못했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1990년대 비엔나 대학교의 한국학은 비록 당시에는 정규과정 전공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이미 놀라울 정도로 잘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학 책임자로 근무했던 분은 1962년에 오스트리아에 오신 이상경 교수입니다. 비록 아주 적은 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했지만 매년 초급, 중급, 고급 과정으로 나눠 한국어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여러 명 있었습니다. 또한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파견된 객원 교수 몇 분의 강의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분이 바로 김광규 시인입니다. 결국 저는 여러 출간 프로젝트에서 이상경 교수를 돕기 시작했고 도서관 한국학 관련 자료의 분류 및 디지털화를 위해 사서로 고용되었습니다.
  1995년에 “견학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한국을 방문한 후 몇 차례 더 한국을 방문했는데요, 매번 여름이었습니다. 2005년 이 프로그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한 연령에 거의 다 다를 무렵, 한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입학허가를 받았습니다. 제 계획은 문학에서 문화인류학으로 전공을 바꿔 한국의 현대구술문학(구체적으로는 농담담화)을 주제로 논문을 쓰는 것이었는데, 결국은 국어국문학과에서 고전구비문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박사과정 수료 후 저는 한국문학번역원과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교수로 바쁘게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 비엔나대학교의 고용 제안을 수용해 저는 한국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높임을 받지 못한다.”라는 옛 지혜를 생각했어야 했는데 말이지요. 비엔나 대학에서는 2017년까지 강의했습니다. 그런데 2015년부터 비엔나 북동쪽으로 약 170 km 정도 떨어진 체코의 올로모우츠가 제 활동의 무게중심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Q2. 현재 체코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나 한국학 연구, 교육 현황은 전반적으로 어떠한가요?
  체코의 한국학은 뿌리가 깊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라하가 독일 보호령의 수도였을 당시, 이미 프라하의 카를대학교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쳤습니다. 그때 가르쳤던 분이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한 고고학자로 1948년에 북한으로 간) 한흥수교수였는데 한 학생을 발굴해 그와 함께 아주 많은 성과를 냈습니다. 그 학생이 알로이스 풀트르 교수로 프라하 최고의 한국학자가 되었습니다. 한흥수교수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운데, 자세히 알아보길 원한다면 구글(Google)에서 '한흥수'라는 이름과 프라하를 검색해 보세요.
  오늘날까지도 체코에서는 작은 언어권 치고 놀라울 정도로 한국어가 체코어로 많이 번역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한국과 체코 사이에는 수십 년간 쌓아온 매우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지금 체코 젊은이들의 한국에 대한 치솟는 관심은 이런 과거에서 비롯된 관계로만 설명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글로벌한 현상이니까요. 체코는 아마 현재의 한류에 대한 열광에서도 유럽의 선두에 위치하고 있을 것입니다. 한류가 그 비밀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K-팝이나 K-드라마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저희 응시자들 다수는 이미 십대 고등학생 시절부터 한국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 시작했고 입학할 무렵에는 이미 여러 K-부문들 중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단순히 아이돌에 열광하는 것에서 벗어나 여러 방면에서 “감식가”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누군가는 한국 웹툰에 빠져있고, 누군가는 버라이어티 쇼나 또는 (이제는 종영된) 개그 콘서트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한국어를 가르치는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있습니다.
  체코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저희 한국학과의 인기나 지원자들의 경쟁률 등은 사실상 체코에서의 한국학 붐을 확인시켜 주는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에 열광하는 모든 이들이 한국학과를 선택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년간 저희 올로모우츠에는 해마다 2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립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프라하에서도 유사한 상황입니다. 한국학이 잘 발달한 두 곳이 있다는 것은 체코 같은 규모의 나라로서는 비교적 괜찮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라하와 올로모우츠 외의 다른 곳에서도 한국어 강의가 열리고 있습니다. 또한 한 고등학교에서는 한국어가 필수 제2외국어 교과의 선택과목 중 하나로 채택되어 있습니다. 다른 여러 학교들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어 수업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한국 기업 활동이 체코 사람들로 하여금 한국인과 대한민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일정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당장 프라하 국제공항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안내가 4개 국어로 표시되고 있는데 과연 어떤 언어가 제공되고 있을까요?... 체코어, 영어, 중국어 그리고 바로 한국어입니다!
Q3. 팔라츠키대학교에서 진행되는 한국학 연구, 교육 활동 및 그 결과나 성과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올로모우츠 팔라츠키대학교에서 처음 한국어 강의가 이루어진 것은 2003년도였습니다. 그리고 2015년, 마침내 아시아 학문 분과에서 응용경제학부와 협동과정으로 비즈니스를 위한 한국학 학사학위 프로그램을 출범시키게 되었습니다. 2022년에는 한국학이 완전한 독자적인 전공으로 거듭나게 되어, 이미 훨씬 오래전부터 확고하게 자리 잡은 일본학이나 중국학과 마찬가지로 언어학, 문화학 및 지역학과 결합된 성격으로 커리큘럼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림 1] 팔라츠키대학교 한국학과 학생들 대상의 강연 사진 (2022. 12.)
  2023년 가을부터는 한국학과 관련한 두 가지 학사과정을 제공하게 되어, 단순히 수강생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각 강의 당 수강인원을 줄여 질 높은 수업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2023년 가을부터 저희 한국학 강사진은 다섯 명의 교수(한 명이 출산 휴가 중이기는 합니다만)와 다수의 강사들(이 가운데 두 명은 조만간 교수 지위로 승격될 것으로 봅니다)로 구성됩니다. 2024년에는 가칭 “실용 한국어”로 3번째 학사과정을 출범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더 나아가 저희는 석사과정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고 현재 두 명의 박사 과정생이 있으며 곧 세 번째 박사과정생이 들어올 것 같습니다. 연구의 측면에서 보자면, 교수진 대부분은 언어학, 언어습득 혹은 번역학 전공자들이기는 하지만 전근대사나 현대사, 문화인류학 및 전근대 문학에 관한 연구성과도 있습니다. 커리큘럼 구성에서 보면 언어 습득이 중심에 있기는 하지만 역사, 문화 및 사회에 관한 여러 가지 다양한 수업을 추가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커리큘럼은 한국학 강의로만 짜여 있는 것이 아니고 학생들이 동아시아학 학제적 연구를 위해 개설된 수업도 듣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 부분은 외국에서 객원으로 오는 동료들의 강의입니다.
  저는 저희 학생들이 때때로 새로운 대안 지식을 통해 지평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되었던 씨앗형 초기 단계 사업 덕분에 그리고 EPEL(AKSE가 운영하고 AKS가 재정 지원) 및CEEPUS(중동부 유럽대학 연구 교환 프로그램) 네트워크를 통해 저는 해마다 십여 명의 객원교수들을 올로모우츠로 초청할 수 있었습니다.
Q4. 2022년부터 해외한국학씨앗형 발전단계 사업에 참여하면서 현재까지 과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업이 시작된 지 이제 겨우 7개월이 지났을 뿐이고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부문과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에는 아직 시기 상조인 듯합니다. 이 프로젝트와 관련해 저희가 주력한 “디지털 인문학 도구” 집중 워크숍이 올로모우츠 학생들, 프라하에서 온 학생들, 포츠난에서 온 학생들이 함께 한 가운데 개최되었습니다.

[그림 2] (좌)러닝캠프에 참여한 선생님들, 포츠난과 프라하 및 올로모우츠 학생들의 단체 사진. (우)한국학진흥사업단 씨앗형 사업(발전단계)의 핵심 행사 중 하나인 올로모우츠대학에서 개최한 러닝캠프 모습 (2023. 2.)
  사업의 여러 다양한 부문들 중 하나가 제 연구분야인 “한국에서의 오디오북 시장과 책 낭독 문화”입니다. 이 주제는 제가 몇 년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였는데 그동안 제대로 연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디지털화와 깊은 관련이 있고 디지털 인문학과도 연계될 수 있기 때문에 이제 저에게는 이 주제를 탐사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생긴 것입니다.
Q5. 해외한국학사업을 추진하면서, 혹은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장기적 목표나 바람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모든 학습 세대는 (적어도 외국어 습득에 있어서는) 이전 세대보다 더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론 기대수준도 같이 높아지기는 하겠지만요. 디지털 인문학은 확실히 한국학 발전에 대단히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디지털화는 다방면에서 활력을 주고 있습니다. 한때 일제강점기 시대 신문을 보려면 사진자료화된 마이크로필름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날들이 있었음을 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모든 정보가 잘 가공되고 검색이 가능하도록 디지털화되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체코에 있는 저희가 이 방대한 데이터를 디지털화하는 데 기여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배움이나 연구 두 방면에서 학생들이 유용한 최신 도구(tool)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입니다. 또 저희가 달성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가르치는 분들이 교수법 차원에서 이런 도구에 대한 활용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Q6. 마지막으로, 한국과 체코의 한국학 연구를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어떤 협업도 저는 환영입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우정만으로는 사업을 진행하기 어렵습니다. 재정적인 뒷받침과 구체적인 지원 사업의 포맷이 없으면 어떤 일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과 체코 간에 공동 프로젝트를 위한 포맷이 있기는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양국 대학 간 자매결연이 더 많이 이루어진다면 양측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조금 주제넘지만 한 가지 바람을 더 말하자면 한국학 자료 접근 권한에 관한 것입니다.
  한국학과 같은 분야에서 부유한 지역과 덜 부유한 지역 사이의 가장 심각하고 비생산적인 차별은 데이터베이스 접근 권한에서 발생합니다. 저희 학생들이 좋은 자료가 있는데도 무료 다운로드가 불가능해서 그 자료를 포기하는 걸 보게 되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때로는 학생들이 쓸만한 참고문헌이 너무 부족해 접근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제가 대신 비엔나대학 도서관을 찾아야 할 때도, 이런 차별적인 현실이 자각되어 좀 화가 납니다.
그곳의 자료들로 학생들을 도울 수 있는 경우도 많이 있었지만, 비엔나 도서관이라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관련 자료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전 세계의 학술적인 발전을 위해 막대한 수익을 누리며 자료 접근권을 통제하고 있는 DB 제공회사들의 권력이 제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나서 세계 모든 대학들에게 동등하게 전체 데이터 베이스에 대한 완전한 접근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렵기에 저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전 세계 대학에 한국학 관련 자료(책이나 논문 등)를 포함한 모든 데이터베이스(EBSCO, RISS 등)를 구독해서 플랫폼을 만든 후에 해외 한국학자들에게 VPN 접근 권한을 부여하면 어떨까 하는 큰 바램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