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이행기 정의의 개념 정립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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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훈
책임연구원

   이 글의 의도는 그 학문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원칙과 내용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연구주제에 따라 임의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의 기본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는데 있다.

이행기정의    한국 현대사는 “식민지 지배로부터 비롯된 반민족세력의 유산 청산, 남과 북의 분단과 사상, 이데올로기적 대립에서 비롯된 민족 내부의 갈등과 분단체제의 유산, 그리고 남한 내부의 독재로부터 비롯된 반민주ㆍ반인권적 유산 청산이라는 3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1)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이행기 정의의 맥락에서 1996년에서 2006년까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등 과거사위원회들을 설치해 이른바 과거 청산 작업을 진행했고, 학계에서도 이행기 정의의 관점에서 과거사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학계 차원에서의 과거 청산을 위한 지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행기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 결여로 인해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이행기 정의를 이론적으로 개념화하기 위한 노력의 부족이 그 이유의 하나일 수 있다. 현재 개념적 측면에서 이행기 정의를 다룬 논문이나 저서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개별 연구 몇 편 정도만이 파악되는 수준이다. 그것도 법 위주의 접근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학문과 실천 모두에 해가 될 수 있는”2) 법 우위의 시각이 이행기 정의를 특징짓고 있다는 것이다. 피상적 수준에서 이행기 정의를 바라보는 지금의 연구경향도 문제다. 이와 같은 연구경향이 현재 국내 과거사 연구주제의 편향성과 한정성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개념’은 연구주제의 범위와 틀, 그리고 연구방향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일 뿐만 아니라 연구자들 사이에 지식 공유를 가능케 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3) 특히 이행기 정의를 흔히 과거 권위주의체제가 자행한 국가폭력, 인권 침해 등 범법행위를 청산하기 위한 공식적인 시도들을 통칭하는 용어4)로 받아들일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이행기 정의의 적정 기준은 무엇인지, 무엇이 이행기 정의의 일반적인 원칙과 기준인가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답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이는 결국 이행기 정의가 무엇을 요구하는가에 대한 이론적 정립으로 귀결된다.
이행기 정의의 기본적인 의미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못한 국내 현실에서 한국의 과거사 청산을 위해서는 보다 정교하고 세분화된 이행기 정의 개념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거듭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5)



1) 정병준. (2005). 한국의 과거사 유산과 진상규명작업의 역사적 의미.「민주주의와 인권」, 5(2): 203-231.
2) Kieran McEvoy. (2007). Beyond Legalism: Towards a Thicker Understanding of Transitional Justice. Journal of Law and Society, 34(4): 411-440, p. 411.
3) Susanne Buckley-Zistel, Teresa Koloma Beck, Christian Braun & Friederike Mieth. (2014). Transitional Justice theories: An introduction. In Susanne Buckley-Zistel, Teresa Koloma Beck, Christian Braun & Friederike(eds.), Transitional Justice Theories, 1-16. New York: Routledge.
4) 최정기. (2006). 과거청산에서의 기억 전쟁과 이행기 정의의 난점들: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보상과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중심으로.「지역사회연구」, 14(2): 3-22; Oleksii Plotnikov. (2017). Defining Transitional Justice: Scholarly Debate and UN Precision. Lex Portus, 1(3): 50-63.
5) 이영재. (2015). 다층적 이행기 정의의 포괄적 청산과 화해 실험: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ㆍ화해모델을 중심으로.「정신문화연구」, 38(4): 121-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