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연 사람들

인문학의 본질인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은 변함이 없고, 이는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는 2021년 9월 1일 많은 신임 교수님들이 임용되는데 그 중 한 분을 먼저 만나보았습니다. 문화예술학부 인문정보학 전공 김바로 박사님입니다


김바로 사진

독자들을 위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십니까!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는 김바로라고 합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인문정보학과에서 근대 교원 임명 기록을 중심으로 인사와 제도의 관계성을 탐색하여 박사를 졸업했습니다. 그 후 중앙대학교 HK+인공지능인문학사업단에서 HK연구교수로 인공지능과 인문학을 융합하는 연구를 수행하였고,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A유형)로 역사 인물 온톨로지 설계와 시맨틱 데이터 구축 및 서비스를 연구했습니다.


한국학대학원 인문정보학 전공을 졸업하셨는데 전공이 다소 생소해 보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을 위해 전공에 대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 학창시절 기숙사(2013.09.21.)

- 학창시절 기숙사(2013.09.21.)

인문정보학 전공은 정보기술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방식으로 수행하는 인문학 연구와 교육, 그리고 이와 관계된 창조적인 저작 활동을 탐색하는 전공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디지털 기술과 인문학을 융합하는 전공입니다. 인문학 본연의 인간에 대한 호기심은 유지한 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다른 방식으로 인간에 대해서 접근합니다. 이를 통해 기존의 인문학 연구에서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수행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연구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기존 인문학이 연구자 개인이 한 생애에 다 이루지 못했던 연구업적을 다음 세대에 계승하여 연구를 이어나갔다고 한다면, 디지털 인문학은 별개로 존재했던 동시대의 여러 연구자들이 시간적, 공간적 벽을 허물고 함께하는 융합연구가 가능하도록 계기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CBETA(中華電子佛典協會) 불경 DB는 총 263,455,683자이고,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263,455,683자는 1초에 1자씩 읽는다고 했을 때, 잠시도 잠들지 않는다고 하여도 8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그 뜻을 모두 이해하고자 한다면, 한 인간이 평생을 쏟아 부어도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 2억 6천만여자의 글을 데이터로 만들 수 있고, 데이터로 만들게 되면 검색은 물론이고, 다양한 디지털 분석 및 시각화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디지털 기술을 통해 연구자 개인의 힘으로 접할 수 있는 나무뿐만이 아닌 그 너머의 숲도 바라볼 수 있게 하며, 이러한 방법과 내용을 알 수 있는 곳이 인문정보학 전공입니다.


한국학대학원 입학 전에는 중국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들었는데 어디서 무엇을 공부했는지 중국에서의 생활에 대하여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중국 북경대학교에서 중국고대사로 학사를 다니고, 동 대학교에서 북방소수민족사 전공으로 석사를 다녔습니다. 중국에서 역사학도로 치열한 시기를 보내며 기본기를 다진 만큼 이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문정보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학문을 접할 때도 큰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었고, 이는 박사 논문의 문제의식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중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한국인으로서 외부인의 시각을 가지고 중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고찰과 사색을 블로그에 담아내었고, 역사 공부를 하면서 사서오경, 자치통감, 묘지명 등 다양한 원전 사료에 매료되어 읽었던 것이 학창시절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러면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중국 북경대학교에서 석사를 졸업하고 30살의 늦은 나이에 일반 사병으로 입대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들어간 군대에서 앞으로의 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이 때 큰 힘이 된 것은 아버지의 격려였습니다. 인문학에 관심이 많으셨던 아버지께서는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고 말씀해 주셨고, 좋은 논문들과 여러 훌륭한 선학분들에 대해서도 알려주셨습니다. 그 때 운명처럼 박사 지도교수인 김현 교수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김현 교수님의 논문과 자취를 좇으면서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 속 역사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확신으로 이어져, 제대를 앞두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한국학대학원에 인문정보학 전공에 입학하면서 공부하는 방법과 내용이 많이 바뀌었을 것 같은데 주로 하신 연구는 어떤 것들이죠?


북경대학교 석사과정에서는 기본적으로 문헌 중심의 공부를 진행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제 전공이 북방소수민족사였기에 사료가 부족한 측면을 고고학, 언어학, 종교학, 민속학, 인류학 등 인접 학문을 통해서 보완해야 했습니다.

한국학대학원 인문정보학과에서는 그동안의 다학제적 연구 방법론 탐색에 정보공학 영역이 추가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의 사유를 데이터로 설계‧구축‧분석‧시각화 하기 위한 다양한 디지털 기술들은 분명 기존의 인문사회계열의 방법론과는 결이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디지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정보공학의 방법론도 결국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방법론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인문사회계열의 방법론과 본질적인 차이는 크지 않았기에 비교적 쉽게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역사와 정보학을 접목하는 연구를 주로 하신 것 같은데 앞으로의 포부나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세상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디지털 기술을 생활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과거의 인문학 연구자들은 원고지에 글을 썼지만, 현재의 인문학 연구자들은 컴퓨터를 통해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인문학은 아직 디지털 기술과 일정한 거리가 있습니다.

'디지털 조선왕조실록'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사료의 전산화의 효용성을 알게 되었기에 수많은 사료가 데이터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자들이 데이터 관련 기술에 미숙하여 사료의 데이터 전환 작업을 인문학을 잘 모르는 기술 전문가에게 용역을 주고는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안타깝게도 인문학의 사유와 연구 성과가 온전히 데이터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연구 방법론의 측면에서도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는 강점이 있는 디지털 분석 방법을 활용하지 못하고, 기존의 방식 그대로만 접근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존의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문학 본연의 연구 방법론으로서 “기본”에 대한 공부는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만, 인간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다면, 새로운 방법론을 배척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디지털 시대에 인문학도도 데이터를 설계‧구축‧분석‧시각화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구자마다 필요로 하는 디지털 기술의 수준은 다릅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메일 알고리즘을 모르지만, 이메일을 활용하듯이 최소한의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디지털 문해력)를 습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문학이 디지털 리터러시를 갖추게 된다면, 내용 없이 형식으로만 폭주하고 있는 정보공학에 비하여 인문학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학대학원에서 생활하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교수님이나 동료가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팀 경주 답사(2017.09.19.)

-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팀 경주 답사(2017.09.19.)

여러 존경하는 선생님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조선왕조실록전문사전 책임자이셨던 원창애 선생님입니다. 저는 원창애 선생님 아래에서 조선왕조실록전문사전팀 사업을 함께 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박사 졸업도 하지 않았던 대학원생에 불과했던 저에게 디지털 관련 사항의 전권을 위임해주시고, 사고(史庫)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서비스, 디지털 대동여지도를 토대로 하는 조선의 도로망, 실록사전WIKI 등 색다른 시도를 하실 수 있도록 믿어 주셨습니다. 원창애 선생님께서 저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시고 따뜻한 리더십으로 이끌어주셨기에 두려움 없이 여러 도전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에 기반한 인문학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학중앙연구원 분위기에서 인문정보학은 어떤 위치라고 생각하세요?


전통적인 인문학 방법론 중심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문정보학은 분명 이질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학중앙연구원 설립의 벤치모델 중의 하나인 타이완 중앙연구원을 생각하면 이런 점이 아쉽습니다.

타이완 중앙연구원은 인문사회계와 이공계가 하나의 기관에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사이에서 다양한 융합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와 달리 인문사회계열 연구 중심인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이공계열 연구 중심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두 영역 사이의 융합연구가 부족한 현실입니다.

전 세계는 물론 한국에서도 융합이 발전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한 것은 오래전의 일입니다. 아쉽게도 이공계라는 거대한 이질적 집단이 없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인문정보학이 한국의 인문학과 이공계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여 융합 전공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입니다. 인문정보학과는 앞으로 좀 더 분발하여 대한민국 인문학과 이공계의 융합연구를 이끌며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위상을 더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대학원 재학 중이나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있을 때 특별히 기억나는 것, 자랑하고 싶은 것 등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 웨딩 사진(2015.10.12.)

- 웨딩 사진(2015.10.12.)

- 기숙사 바베큐 파티(2014.10.19.)

- 기숙사 바베큐 파티(2014.10.19.)

한국학대학원에 입학하여 디지털인문학과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던 해에 당시 국어학 전공으로 입학한 제 평생의 반려자 역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박사과정의 결실인 졸업논문과 함께 저희의 첫째 딸이 찾아왔습니다. 졸업논문 집필이라는 힘든 작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선생님들의 가르침 덕분이기도 하지만, 한결같은 아내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또 학업에 매진하던 다른 학우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바베큐 파티 행사를 기획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도 즐거운 추억입니다. 학생들의 갑작스러운 기획에 도움을 주신 교학실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혹시 좋아하는 취미가 있습니까?


독서는 저의 오래된 취미이지만 생활 그 자체가 되어 버렸기에 취미라고 하기는 어려워진 듯합니다. 이제는 연구와 독서 사이에서 아이들과 보내면서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우주의 경이이자 인생의 크나큰 즐거움입니다.


독자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인문학은 문사철에서 다양한 전공으로 분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방법론들이 영멸을 반복하였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의 본질인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은 변함이 없고, 이는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방법론이 아닌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인간”은 닿을 수 없는 지평선일지 모르지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知其不可而爲之) 입니다. 오늘도 우리 모두가 하나의 앎과 하나의 생각이라도 얻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