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읽는 재난 서사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

서승희 사진
서승희
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조교수

올여름 한국 문학계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윤고은 작가가 쓰고 리지 뷸러(Lizzie Buehler)가 번역한 장편 소설 『밤의 여행자들』 영어판이 대거상(The CWA Dagger) 번역추리소설(Crime Fiction in Translation Dagger) 부문을 수상했다는 소식이다.


영국추리작가협회(Crime Writers Association(CWA))에서 주관하는 대거상을 아시아 작가가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 출판 지원이 맺은 결실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국내 언론들은 저마다 ‘최초’에 무게를 실어 수상 소식을 전하는 한편 ‘K-문학’의 해외 진출에 관한 낙관적 기대를 표했다. 독자들도 ‘오래된 새 책’을 발견한 기쁨으로 2013년 출간된 『밤의 여행자들』을 새삼스레 눈여겨보는 분위기다.


영어판 제목인 The Disaster Tourist(Serpent's Tail, 2020)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듯이 『밤의 여행자들』의 핵심 키워드는 ‘재난’이다. 사실 문학과 재난의 공생 관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20세기 문학은 초엽부터 근대가 몰고 온 재난과 그 이후에 대한 사유로 점철되어 있었다. 식민지 근대를 거쳐 냉전의 최전선에서 반공 국가를 꾸렸고 산업화를 일궈낸 한국의 문학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로 리얼리즘적 재현과 전망 속에서 그려지던 재난이 세계관과 미학을 달리해 문학 속에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이후부터다. 이 시기부터 한국 소설은 상상된 재난을 적극 도입하며 현실을 다르게 말하는 방식을 고민했고, 장르 문학과 순문학을 가르던 경계를 넘어서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밤의 여행자들』 역시 이 계보에 속하는 소설이다. 가상의 섬 ‘무이’를 둘러싼 두려운 비밀은 무엇인가? 재난 여행사 수석 프로그래머 요나는 과연 이 섬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인가? 소설 읽기를 추동하는 이와 같은 질문들은 작가 자신이 그다지 장르를 의식하고 쓰지 않았다는 이 소설이 왜 추리문학상 수상작이 되었는지를 알게 해 준다.


또 하나의 특징은 반드시 한국적 맥락으로 수렴되는 소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소설은 편재하는 자본주의의 역학에 주목한다.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하라는 것이 우리 시대의 정언명령이다. 재난을 사고파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소설은 냉정하게 답한다. 연민, 공포, 위안, 감사, 책임감, 우월감 등 감정의 버라이어티를 누릴 수 있는 재난 여행이야말로 최고의 상품이라고. 이처럼 거대 자본의 먹잇감이 된 다크투어리즘은 자기 보존 욕망으로 귀결될 뿐 결코 타자와의 상호주체성에 도달하지 못한다.


『밤의 여행자들』이 특히 집중해서 그려내는 것은 시스템에서 잉여로 지목된 존재들이 대거 축출되는 과정이다. 재난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팔려는 기업의 시나리오 속에서 섬 사람들은 산 자든 죽은 자든 고유명 없이 일련번호로 존재한다. 각본대로 연기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의 말로는 바우만의 통찰대로 “쓰레기가 되는 삶”에 내몰린 현대인의 음화라 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초국적 자본의 기획은 초국적으로 바다를 떠돌던 거대한 쓰레기의 역습으로 날아간다. 이로써 가짜 재난은 무산됐지만 초토화된 무이 섬은 실로 완벽한 재난 여행지로 거듭난다. 생존자를 지켰던 맹그로브 숲의 야생성과 생명성은 여전하나, 이것마저 경이로운 촬영 대상으로 소비된다. 이곳을 구원할 영웅은 없다. 사랑도 완성되지 못한다.


코로나 팬데믹의 와중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영화, 드라마, 웹툰, 소설 등 거의 모든 이야기 시장에서 재난 서사가 활발히 생산되고 있는 요즘이다. 흔히 ‘한국형’이라 일컬어지는 재난 서사가 방출하는 스펙터클과 카타르시스는 이제 지나치게 낯익다. 반면 『밤의 여행자들』은 재난을 탐욕적으로 이용하는 자본주의를 눈물과 감동 없이 응시했다. 쉬운 낙관을 허하지 않되 폐허에 정지해 있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 이 소설은 재난 그 자체는 물론, 작금의 재난 서사 이후에 대해 생각게 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