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한중연의 인연과 인물 데이터베이스

장신 사진
장 신
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조교수

2020년 가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부임했지만 연구원과의 인연은 짧지 않다. 오래전부터 교류한 동학들을 통해 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을 접했고 한국학진흥사업단의 토대지원사업으로 2년간 연구원을 드나든 적도 있었다. 최근에는 2016년부터 3년 동안 한국교원대 한국근대교육사연구센터 소속으로 <근대 한국의 학력엘리트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업에 참여했다. 올해부터 한국학진흥사업단의 성과포탈을 통해 그 결과물을 볼 수 있는데 이 자리를 통해 간략히 소개한다.


이 사업은 1945년 이전 한국인의 학적(學籍) 사항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엘리트를 중등(정도) 이상의 학교를 다닌 사람으로 정했다. 당시는 중학교(또는 고등보통학교)가 5년제여서 지금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한다.


일본의 근대가 학력을 바탕으로 한 사회였고 식민지인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사회 교육열의 근원을 찾으면 일제강점기와 맞닥뜨린다. 지성사든 교육사든 생활사든 학교와 학력을 빼놓고 근대를 설명하기 힘들다. 어떻게 접근하든지 학교와 학력은 연구의 시작인데 정작 관련 자료의 미비로 조사가 어렵다. 이 시기 학제가 매우 복잡한데다가 해방 후 인명록이 부정확한 까닭에 믿을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자는 게 이 사업의 목적이었다.


데이터베이스에서 확인 가능한 내용은 이름, 학교, 재학 또는 졸업 여부, 본적(주소), 직장(주소), 학과, 출신학교 등이다. 여성의 경우 결혼 여부를 따로 표시한 경우도 있다. 매우 단편적인 정보이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듯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한 덕에 유용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학문적 목적이 아니라도 재미삼아 조부모의 학력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자료는 학적부였지만 수집도 공개도 쉽지 않았다. 그 대신에 공적 자료로서 학교에서 생산한 각종 일람(요람, 총람)류, 교우회 또는 동창회에서 만든 교우회(잡)지와 회원명부를 적극 활용했다. 일람은 고등교육기관(전문학교 이상) 정도의 관ㆍ공립학교가 주로 생산하였다. 교우회지는 중등 이상의 거의 모든 학교에서 간행했는데 여기에 학생(생도) 명부와 졸업생 명부를 실었다. 회원명부는 동창회(교우회)를 구성해서 이익을 볼 수 있는 집단에서 주로 만들었다. 이런 자료조차 만들 형편이 되지 않는 학교도 수두룩했다. 그런 학교의 경우 졸업앨범의 졸업생 명단을 이용했다.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졸업생명부도 일부 입력했다. 모두 13만 5천여 건이다.


3년간 국내ㆍ외 도서관을 샅샅이 뒤졌지만 자료의 편중은 피할 수 없었다. 북한, 사립, 여성, 실업, 미션 계통의 학교 자료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사립의 경우 학교의 존립 자체가 중요했기에 학생모집을 위한 팜플렛 등을 만들 여유가 없었다. 북한 지역의 경우 해방 직후부터 월남한 평안도나 황해도보다 한국전쟁 때 내려온 함경도 지역의 자료가 더 귀했다. 이런 자료 사정 때문에 이름으로 검색하면 어떤 사람은 열 번 이상 나오고 어떤 이는 한 번도 나오질 않는다.


입력하는 과정에서 원문 오류를 적지 않게 찾았다. 특히 일본인이 만든 자료는 한국의 인명과 지명에 익숙지 않아서 오탈자가 많았지만 원문 그대로 입력했다. 유명인의 경우 바로 오자임을 알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경우 여러 자료를 통해서 검색자가 판단하도록 했다. 자료의 수집 여건이 항상 좋지만은 않아서 자료 소장처에서 노트북으로 바로 입력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원문을 함께 제공하지는 못하는 데 이 점이 매우 아쉽다.


많은 성과가 축적된 조선시대의 역대 방목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근현대 인명 정보로서는 가장 정확하고 많은 인명 정보를 포함하였다. 연구 외에도 사전류 편찬의 기본인 근현대 인물의 정확한 학력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근현대인명록 자료보다 많이 이용되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