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주요사업
  • 연구
  • 성과공개 (2020 ~)

성과공개 (2020 ~)

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연구결과 개요 보고서: 과제구분,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연구책임자, 공동연구자, 연구기간, 연구형태, 연구목적 및 배경, 연구방법 및 내용,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연구결과, 참고문헌, 로 구성
과제구분 한국학기초연구 / 공동연구과제
과제코드
연구과제명
  • 국문 : (AKSR2023-C15) 목단강-송화강 권역의 생태 환경과 발해 문화
  • 영문 : Ecological Environment and Parhae Culture in the Area of Mudan river and Songhua river
연구책임자 구난희
공동연구자 이병건, 정석배, 윤재운
연구기간 20230101 ~ 20231216 연구형태 공동연구
연구목적 및 배경 발해는 우리 역사상 넓은 영역을 영위하고 다양한 종족을 아울렀던 왕조이므로 이들이 경험한 문화접변 그리고 이들이 재창조해낸 혼종의 문화는 여느 왕조보다 다양했다. 기후 면에서 보더라도 발해는 온대와 냉·한대 지역을 포함하고 있으며 지리적으로도 평원, 고원, 동토의 황무지, 연해 지역 등 다양한 생태환경을 포괄하고 있다. 하지만 발해 문화에 관한 해석은 각국마다 서로 다른 성격을 지향하고 있으며 연구대상면에서도 5경 특히 상경, 중경, 동경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발해문화가 포괄하는 여러 요소에 대한 좀 더 유연한 연구를 추진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 연구과제는 최근 여러 분야에서 회자되는 생태환경과 접목하여 발해문화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새롭게 모색하였다. 생태환경의 시각은 발해 역사가 전개되었던 과거의 물리적 기반 뿐만 아니라 발해 연구가 봉착한 현재의 연구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예컨대 중국학자들은 발해문화의 말갈적 기반과 당나라 영향에 시각을 고정하는 반면, 남북한과 일본 학자들은 고구려적인 요소에 더 주목한다. 이에 비해서 러시아 학자들은 연해주 지역성에 주목하고 발해문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인을 구미대로 취선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간의 다른 견해는 궁극적으로 연원과 귀속 논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의 탈피를 위해 이 연구는 수계를 중심으로 ‘권역’이라는 개념을 설정하고 발해의 활동 무대였던 목단강과 송화강, 압록강과 두만강, 그리고 우수리강과 수분하의 3개 권역으로 구분하고 순차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중장기 연구 전망을 지향하였다. 이 연구는 그 첫 번째 단계로 목단강-송화강 권역을 대상으로 삼았다.
연구방법 및 내용 본 연구는 그간의 발해 연구가 5경 특히 상경, 중경, 동경을 중심으로 하는 가운데 발굴 유적을 단위로 이루어져 왔던 것과 달리 생태환경을 접목한 광역개념의 지역을 설정하였다. 참여 연구진은 도성중심의 구분이 아닌 생태환경의 주요 근간이 되는 수계를 중심으로 권역을 설정하였다. 즉 목단강과 송화강, 압록강과 두만강, 그리고 우수리강과 수분하 권역으로 나누고 이를 지도로 작성하고 2023년 연구에서는그 첫 번째 단계로 목단강-송화강 권역을 대상으로 하였다.
4명의 연구자는 각각 이 지역의 생태환경과 연계하여 ‘환경과 생업’, ‘지방운용과 대외연결망’, ‘환경과 주민구성’, ‘주거문화’로 세부 주제를 분담하고 주요 집단과 세력 관계, 생업, 주거 및 건축, 주민구성의 지역별 특성의 관점에서 공동 연구를 진행하였다. 일차적으로는 문헌과 고고학 자료에 보이는 생태환경적 내용을 수집,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지역적 특성을 확인하기 위해 구글얼스 분석을 현장 답사로 대체하면서 수시로 공동 검토하였다.
연구결과물 세부 목차 서 언
Ⅰ. 목단강·송화강 권역의 생태환경과 발해의 지방지배
1. 머리말
2. 목단강, 송화강 수역과 생태 현황
3. 목단강·송화강 일대의 발해 유적과 지방 통치
4. 목단강·송화강 일대의 북방제족
5. 맺는말

Ⅱ.. 목단강·송화강 권역 발해의 주민구성 시론 - 유적 분석을 중심으로 -
1. 머리말
2.목단강·송화강 권역 발해유적의 현황
2-1. 목단강 수계
2-2. 송화강 수계
3.목단강·송화강 권역 발해유적의 계통 구분
4. 목단강·송화강 권역 유적 분포양상과 주민구성 문제
4-1. 목단강 수계
4-2. 송화강 수계
4-3. 목단강·송화강 권역
5. 맺음말

Ⅲ.. 발해시기 목단강·송화강 권역의 환경과 생업
1. 머리말
2. 농업-농경, 곡식, 가축
3. 수공업-제철, 요업
4. 수산업과 수렵
5. 맺음말

Ⅳ.. 목단강·송화강 권역 발해 구들유적 현황과 상경성 왕실 주거문화 탐색
1. 머리말
2. 목단강·송화강 권역 발해 구들유적
3. 상경성 궁성 내 주거유적 발굴결과
4. 왕실 주거유적 발굴결과 분석
4-1. 배치 및 평면
4-2. 건물구조 및 건축기술
5. 맺음말
연구결과 이 과제는 발해 문화를 생태 환경과 결합하여 발해의 건국 및 영역 확장의 주요 배경이 된 목단강과 송화강 권역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연구 참여진은 각각 지방운용, 주민구성, 생업, 주거문화의 세부주제를 분담하고 연구를 수행하였다. 지방운용과 주민구성을 다룬 연구에서는 목단강을 포함한 송화강 권역의 지역적 차이를 밝힘으로써 발해의 사회 발전과 운영 과정을 생태환경과 접목할 수 있었다. 한편 생업과 주거문화는 생태환경에 적응하고 활용하는 발해 문화를 추적하고 정리할 수 있었다. 송화강을 이용하여 수렵과 수산업을 발전시키는 한편 목단강 중류의 중심부에서는 농업과 함께 천연자원을 이용한 수산업이 발달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더불어 주거문화에서는 구들 문화의 분포와 변화를 정리하고 특히 궁궐 내 온돌 유적의 시설과 발전 과정을 논증하였다.
참고문헌 (사료)
『三國志』 , 『後漢書』, 『新唐書』, 『續日本紀』, 『遼史』
『東史綱目』, 『我邦疆域考』, 『海東繹史續』 , 『大東地志』, 『方輿總志』
『盛京通志』, 『满洲源流考』, 『渤海國志長篇』

(국문)
E.V.샤브꾸노프 편 / 송기호․정석배 역, 『러시아 연해주와 발해 역사』, 민음사, 1996.
H. H. 램 지음, 김종규 옮김, 『기후와 역사』, 한울아카데미, 2004.
고구려연구재단 편, 『새롭게 본 발해사』, 2005.
구난희 외, 『요금시대의 발해인과 발해문화』,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21.
국립민속박물관, 『천연섬유와 모피 식별 아틀라스』, 2005.
김진광, 『북국발해탐험』, 박문사, 2012.
方學鳳, 『발해경제연구』,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2001.
, 『발해의 강역과 지리』, 정토, 2012.
, 『발해의 강역과 행정제도에 관한 연구』, 연변대학출판사, 1996.
, 『발해주요유적을 찾아서』, 연변대학교출판사, 2003.
, 『발해건축연구』, 연변대학출판사, 1995.
동북아역사재단 편, 『발해의 역사와 문화』, 2007.
리화선, 『조선건축사』(1),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89.
림호성, 「발해의 기본 주민은 고구려 유민」, 『고조선․고구려․발해 발표 논문집』, 고구려연구재단, 2005.
張起仁, 『韓國建築辭典』, 普成閣, 2005.
볼프강 베링어 지음, 안병욱·이은선 옮김, 『기후의 문화사』, 2010.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고조선고고학개요』,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77.
사회과학원출판사, 『중국 동북 지방의 유적 발굴 보고』, 평양종합인쇄공장, 1966.
서병국, 『발해사4(발해의 역사지리)』, 한국학술정보, 2006.
송기호, 『한국 온돌의 역사』,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9.
, 『발해사학사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21.
, 『발해정치사연구』, 일조각, 1995.
, 『한국 고대의 온돌 북옥저, 고구려, 발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이병건, 「발해 흑수도 노선상의 평지성 유적 현황과 조영 특징」, 『고구려발해연구』 63, 2019.
이효형, 「한국의 발해사 연구 현황과 방향 모색」, 『동아시아의 발해사 쟁점 비교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09.
임상선 편역, 『발해사의 이해』, 신서원, 1990.
장국종, 『발해사 연구』 1, 1997.
장상렬, 「발해건축의 력사적위치」, 『고고민속론문집』(3), 사회과학출판사, 1971.
정석배·구난희·이병건·윤재운·김은옥·김영길·최슬기·최재경, 『발해유적총람Ⅱ-중국지역2』, 예지안, 2023.
정석배··구난희·이병건·윤재운·김은옥·김영길·최슬기·최재경·신기라, 『발해유적총람Ⅰ-중국지역1』, 예지안, 2023.
조선유적유물도감 편찬위원회, 『조선유적유물도감 8(발해편)』, 1991.
주영헌, 『발해문화』, 사회과학출판사, 1971.
중앙문화재연구원, 『발해 고고학』, 진인진, 2021.
최덕경, 『중국고대 산림보호와 환경생태사연구』, 신서원, 2009.

구난희, 「渤海의 水路 體系에 관한 試論的 考察-중국 黑龍江省을 중심으로」, 『高句麗渤海硏究』49, 2014.
, 「발해의 日本 行路와 出羽 北陸 山陰의 고대교통」, 『高句麗渤海硏究』 69, 2021.
김동우, 「발해의 지방통치체제의 운영과 그 변화」, 『한국사학보』 24, 2006.
方學鳳, 「발해의 농기구에 대하여」, 『발해사연구8』, 연변대출판사, 1999.
, 「발해의 농작물 小考」, 『白山學報』65, 2003.
, 「발해의 토지제도」, 『국학연구』6, 국학연구소, 2001.
, 『발해경제 및 주요 교통로 연구』, 신성출판사, 2005.
王承禮 저·宋基豪 역, 『발해의 역사』,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1987.
박규진·이동건, 「발해시기 농업의 전개와 성격 -철제 농기구와 식물유체 분석을 중심으로-」, 『高句麗渤海硏究』71, 2021.
박시형 저 송기호 역, 『발해사』, 이론과 실천, 1991.
박정재, 2021, 『기후의 힘: 기후는 어떻게 인류와 한반도 문명을 만들었는가?』, 바다출판사.
방학봉, 「발해의 농업이 발전된 정황과 그 원인」, 『국학연구』7, 국학연구소, 2002.
송기호, 「발해의 지방통치와 그 실상」, 『한국고대사연구』 11, 1997.
양시은, 「말갈 문화에 대한 고고학적인 검토」, 『고구려발해연구』65, 2019.
윤재운, 「8~10세기 동유라시아 모피 무역의 실상」, 『동방학』46, 2022.
, 「발해 도성의 생산 및 유통」, 『역사문화연구』52, 2014.
, 「발해사절의 문학교류와 의미」, 『한국고대사탐구』40, 2022.
, 「발해의 역참제와 교통로」, 『高句麗渤海硏究』�53, 2015.
이병건, 「渤海 上京城의 建築 造營과 形式」, 『高句麗渤海硏究』45, 2013.
, 「발해 도성과 궁전유적의 건축형식 연구」, 『白山學報』78, 2007.
, 「발해 상경성 궁성 내 제5궁전지의 건물성격 추론」, 『高句麗渤海硏究』71, 2021.
, 「한반도 성곽유적에서 추정해 본 발해 상경성 성곽시설 여장의 복원적 고찰」, 『白山學報』, 2020-12.
, 「발해 거란도 노선 연구」, 『高句麗渤海硏究』 60, 2018.
, 「발해 구국과 동모산의 위치에 대해」, 『高句麗渤海硏究』73, 2022.
, 「발해 마을유적 소고-방어시설이 없는 일반마을을 중심으로」, 『高句麗渤海硏究󰡕 第47輯, 2013.
, 「발해 상경성의 도시계획」, 『高句麗渤海硏究󰡕 第45輯, 2013.
, 「발해의 가마(窯)에 대한 일고찰」, 『선사와 고대』 43, 2015.
, 「발해의 북방경계에 대한 일고찰」, 『高句麗渤海硏究』 54, 2016.
, 「발해의 북방-서역루트 ‘담비길’ 연구」, 『高句麗渤海硏究』63, 2019.
, 「발해의 서북쪽과 북쪽 경계에 대해 –고고학자료를 중심으로-」, 『高句麗渤海硏究』 67, 2020.
, 「발해의 성벽 축조방법에 대해」, 『선사와 고대』 54, 2017.
, 「연해주 발해시기의 유적 분포와 발해의 동북지역 영역문제」, 『高句麗渤海硏究』40, 2011.
, 「유물로 본 발해와 중부-중앙아시아지역 간의 문화교류에 대해」, 『高句麗渤海硏究』 57, 2017.
, 「흑수말갈 나이펠드-동인문화 1단계의 유적과 흑수주 치소 문제」, 『高句麗渤海硏究』 76, 2023.
정석배·볼딘 V.I., 「발해의 가마(窯)에 대한 일고찰」, 『선사와 고대』�43, 2015.
채태형, 『발해사』�3-경제, 사회과학출판사, 1998.
클라이브 폰팅 지음, 이진아·김정민 옮김, 2019,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 세계사: 위대한 문명의 붕괴로 보는 환경과 인간의 역사』, 민음사.
홍희유, 『조선중세수공업사연구』�, 과학백과사전출판사.

(중문)
党连文, 『中国河湖大典黑龙江、辽河卷』, 中国水利水电出版社, 2014.
向南, 『遼代石刻文編』, 河北敎育出版社, 1995.
黑龍江省文物考古硏究所 編著, 『渤海上京城 -1998~2007年度考古發掘調査報告-』, 文物出版社, 2009.
·吉林大學考古學係, 『河口與振興 - 牡丹江蓮花水庫發掘報告』, 科學出版社, 2009.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編, 『楡樹老河深』, 文物出版社, 1987.
·敦化市文物管理所, 『六頂山渤海墓群 -2004~2009年淸理發掘報告』, 文物出版社, 2012.
吉林省文物志编委会, 『撫松縣 文物志』, 1987.
, 『樺甸縣 文物志』, 1986.
, 『磐石縣 文物志』, 1987.
吉林省文物志編纂委員會, 『農安縣文物志』, 1986.
李殿福·孫玉良, 『渤海國』, 文物出版社, 1987.
譚其驤, 『中國歷史地圖 第5冊』 釋文彙編·東北卷, 中國地圖出版社, 1982.
, 『中國歷史地圖 第5冊』, 中國地圖出版社, 1988.
王禹浪·王宏北,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滙編』, 哈爾濱出版社. 1994.
魏国忠·朱国忱·郝庆云, 『渤海国史.』, 中国社会科学出版社,2006.
張桂修‧賴靑壽 編, 『遼史地理志匯釋』, 安徽敎育出版社, 2001.
張馭寰, 『吉林民居󰡕, 中國建築共業出版社, 1983.
趙虹光, 『渤海上京城考古󰡕, 科學出版社, 2012.
中國社會科學院考古硏究所 編著, 『六頂山與渤海鎭-唐代渤海國的貴族墓地與都城遺址-』, 中國大百科全書出版社, 1997.
范晓娜‧李云鹏, 『松花江流域水循环水质监测站网设计与实践』, 中国环境出版社, 2014.

梁玉多·黃巍, 「渤海漁業考」, 『北方文物』3, 2013.
Boldin V.·Nikitin Y., 「Kraskinskoye古城的渤海屋面瓦窯」, 『古陶瓷科學技術』-1999年度國際討論會論文集, 上海科學技術文獻出版社, 1999-4.
K.A.熱列玆涅柯夫 / 孫秀仁 譯, 「阿什河下流河灣地帶考古調査收穫」, 『黑龍江文物叢刊』 2, 1983.
安文荣·徐廷, 「吉林省圖們市磨盤村山城考古工作的重要收穫」, 『中國文物報』 2020-12, 2020.
保中, 「渤海國農牧業初探」, 『農業考古』1, 1995.
丹化沙, 「渤海历史地理研究情况述略」, 『黑龙江文物丛刊』1982-1, 1982.
單慶麟, 「渤海舊京城址調査」, 『文物』 1960-6, 1960.
范忠譯, 「黑龍江省羅北縣都魯河下流文物普査簡報」, 『北方文物』 2, 2005.
方學鳳, 「關于渤海植綿問題」, 『學習與探索』6, 1984.
, 「略談渤海的農業生産發展」, 『吉林省考古學年會討論考』, 1981.
, 「渤海國農業生產發展資料的輯述」, 『延邊大學學報(哲學社會科學版)』3, 1981.
冯恩学·安文荣, 「磨盘村山城早期遗存研究」, 『考古』 2023-9, 2023.
馮家昇, 「述肅愼系之民族」, 『禹貢』 3-7, 1935.
付燕羽, 「赫哲族渔业文化及其成因」, 『中国民族文博』 2013-5, 2013.
國出牆, 「淺述渤海國物產與生業中的科學技術」, 『黑龍江史志』11, 2012.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 黑龍江分冊』, 文物出版社, 2015.
黑龙江省文物考古研究所, 「黑龙江萝北县团结墓葬发掘」, 『考古』 8, 1989.
, 「黑龍江寧安縣鶯歌嶺遺址」, 『考古』, 1981-6, 1981.
, 「黑龍江海林市興農渤海時期城址的發掘」, 『考古』 3, 2005.
, 「綏濱縣東勝村魏晉至四明淸時期遺址」, 『中國考古學年鑒』 2016.
, 「渤海上京宮城內房址發掘簡報」, 『北方文物』1987-1.
, 「渤海磚瓦窯址發掘報告」, 『北方文物』1986-2,
, 「黑龍江哈爾濱市李家馬架子遺址發掘簡報」, 『北方文物』 4, 2018.
, 「黑龍江省賓縣索離溝遺址發掘簡報」, 『北方文物』 1, 2010.
, 「黑龍江省海林木蘭集東遺址」, 『北方文物』 2, 1996.
, 「黑龍江省牡丹江樺林石場溝墓地」, 『北方文物』 4, 1991.
, 「黑龍江省寧安市虹鱒魚場墓地的發掘」, 『考古』 2, 1997.
, 󰡔寧安虹鱒魚場-1992~1995年度渤海墓地考古發掘報告』, 文物出版社, 2009.
黑龍江省文物考古硏究所·吉林大學邊疆考古硏究中心, 「黑龍江海林市細麟河遺址發掘報告」, 『北方文物』2018-1.
侯莉閩, 「渤海的造船業」 『延邊史地』2,3, 1985.
侯莉閩·李强, 「渤海初期通往日本陸路部分的硏討」, 『北方文物』 1994-4, 1994.
吉林大學邊疆考古硏究中心·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吉林敦化市敖東城遺址發掘簡報」 『考古』 2006-9, 2006.
, 「吉林敦化市永勝金代遺址一號建築基址」 『考古』 2007-6, 2007.
吉林省考古硏究所, 『楡樹老河深』 39·40, 文物出版社, 1987.
吉林省文物考古研究所, 「吉林抚松新安遗址发掘报告」, 『考古學報』 3, 2013.
·延边朝鲜族自治州文物保护中心, 「吉林省图们市磨盘村山城2013~2015年发掘简报」, 『边疆考古研究』24, 2018.
, 「吉林图们市磨盘村山城遗址2019年调查与发掘」, 『考古』 2023-1, 2023.
·浙大城市学院·延边朝鲜族自治州文物保护中, 「吉林图们市磨盘村山城遗址2021年北区发掘简报」, 『北方文物』2023-1, 2023.
, 「吉林永吉査里巴靺鞨墓地」, 『文物』 9, 1995.
吉林市博物馆, 「吉林省蛟河市七道河村渤海建筑遗址清理简报」, 『考古』 2, 1993.
, 「吉林永吉縣學古東山遺址試掘簡報」, 『考古』 1981-6, 1981.
佳木斯市文物管理站, 「佳木斯市郊鳳凰山遺址調査」, 『北方文物』 1, 2005.
李賓泓, 「歷史時期松花江流域農業開發與變遷」, 『歷史地理』10, 2023.
李辰元‧李延祥‧傅佳欣‧賈瑩, 「六道溝銅礦冶遺址冶煉技術研究」, 『江漢考古』2, 2018.
李辰元‧李延祥‧趙哲夫, 「渤海上京城出土金屬及冶煉遺物科技分析」, 『北方文物』2, 2018.
李健才, 「東北的文明故國-夫餘」, 『文史知識』 1994-6, 1994.
, 「夫餘的疆域和王城」, 『社會科學戰線』 1982-4, 1982.
李强, 「渤海舊都卽敖東城置疑-兼對熬東城周長的考訂」, 張志立 編, 『東北亞歷史與文化-慶祝孫進己先生六十誕辰文集』, 遼沈書社, 1991.
李瑩, 「從金代遺存看女真冶鐵業的發展」, 『黑龍江史志』11, 2011.
李宇峰, 「略述東北古代少數民族的農牧與漁獵經濟」, 『古今農業』2, 1990.
李宗勛, 「渤海國對圖們江地域開發與東北亞經濟文化發展之路」, 『延邊大學學報(社會科學版)』1, 2015.
梁玉多, 「渤海國的畜牧業考」, 『黑龍江檔案』5, 2018.
, 「渤海農作物品種考」, 『渤海史論集』, 中國文史出版社, 2013.
, 『渤海國經濟研究』, 黑龍江大學出版社, 2015.
梁玉多·黃巍, 「渤海漁業考」, 『北方文物』3, 2013(『국외 간행물수록 발해 고고학 논문 해제집』Ⅰ, 국립문화재연구소, 2020).
梁玉多·辛巍, 「勿吉的農業及相關問題研究」, 『黑龍江社會科學』2, 2012.
劉曉東·祖延笭, 「南城子古城牧丹江邊牆餘渤海的黑水道」, 『北方文物』 1999-2, 1999.
劉忠義·馮慶余, 「渤海東牟山考」, 『松遼學刊』 1, 1984.
盧偉, 「渤海國湖州治所及湄沱湖問題」, 『北方文物』2006-4, 2006.
, 「渤海國農牧漁獵業發展研究」, 『安徽農業科學』2, 2009.
, 「渤海國物產考」, 『農業考古』6, 2008.
孟慶瑛, 「中藥營銷發展史略」, 『商業研究』7, 1993.
牡丹江市文物管理站, 「牡丹江市郊江西遺址調査簡報」, 『北方文物』 1, 1997.
邵海洋, 「渤海國手工業遺存類型及相關問題研究」, 內蒙古師范大學 碩士, 2015.
申佐軍, 「牡丹江地區金代古城述略」, 『北方文物』2006-2, 2006.
宋承吉, 「黑水靺鞨、渤海國使東北人參榮登藥物殿堂」, 『人參研究』3, 2016.
蘇亮, 「渤海國畜牧業淺議」, 『黑龍江史志』8, 2015.
陶 炎, 「歷史上東北民族與森林的關係」, 『東北地方史硏究』4, 1985.
佟大群, 「论松花江流域渔业文化的历史变迁」, 黄松筠主编, 『东北地域文化与生态文明研究』, 2022.
王貴明, 「率賓之馬考」, 『黑龍江史志』15, 2015.
王培新, 「唐代渤海國的農牧業」, 『農業考古』1, 1997.
·付佳欣·張殿甲, 「吉林渾江永安遺址發掘報告」, 『考古學報』 2, 1994.
·楊建華·張偉, 「1996年海林細鱗河遺址發掘的主要收穫」, 『北方文物』 4, 1997.
王旭, 「淺議渤海國對東北地區開發所做貢獻」, 『才智』27, 2013.
王勇‧秦利, 「東北亞絲綢之路的歷史演變與柞蠶產業發展的思考」, 『蠶業科學』6, 2017.
楊雨舒, 「渤海國時期吉林的鐵器述論」, 『北方文物』3, 2005.
姚玉成, 「渤海俗所貴者“太白山之菟”考辨」, 『史學集刊』2, 2008.
尹郁山, 「吉林永吉縣査里巴村發現二座渤海墓」, 『考古』 1, 1990.
英德, 「唐代渤海長領府考」, 『社會科學戰線』 1982-3, 1982.
方學鳳, 「渤海“顯州之布”·“沃州之緜”辨析」 『延邊大學學報(社會科學版)』4, 1982.
張福有·于海民·于化冰, 「敦化官地東山頭和崗子遺址調査簡報」, 『學問』 6, 2016.
張泰湘, 「海林市三道鄕鷹嘴峰C遺址」, 『中國考古學年鑒』, 1994.
張永春, 「渤海國農作物發展初探」, 『哈爾濱學院學報』10, 2016.
趙春蘭, 「松子貢品探微」, 『北京林業大學學報(社會科學版)』3, 2016.
趙永軍·趙虹光, 「黑龍江海林市渡口遺址的發掘」, 『考古』 7, 1997.
趙哲夫·韓亞男, 「渤海國“暗摸靴”研究」, 『北方文物』2, 2009.
鄭永德·雲樵, 「渤海諸城考」, 『四平師範學院報(哲學社會科學版)』, 1981-4, 1981.
支雲霞, 「渤海國手工業成就綜述」, 『牡丹江師院學報(哲學社會科學版)』3, 1987.
朱国忱, 「渤海龙州三县考」, 『求是学刊』 1986-5, 1986.
黑龙江省文物考古研究所, 「黑龙江牡丹江市渤海时期城址调查简报」, 『北方文物』 2023-05, 2023.
, 「黑龙江穆棱市渤海时期城址调查简报」, 『北方文物』 2022-05, 2022,

(일문)
東亞考古學會,『東京城』渤海國上京龍泉府址の發掘調査, 東亞考古學會, 1939.
和田淸, 『東亞史硏究(滿洲編)』, 東洋文庫, 1955.
三上次男, 「渤海の押字瓦とその歷史的性格」, 󰡔和田博士古稀記念東洋史論叢』, 講談社, 1961.
三宅俊成‧齋藤甚兵衛‧山本守, 『琿春·敦化』, 滿洲事淸案內所, 1943.
蓑島榮紀, 『‘もの’と交易の古代北方史-奈良⋅平安日本と北海道⋅アイヌ』, 勉誠出版, 2015.
中澤寬將, 『北東アジア中世考古學の硏究-靺鞨·渤海·女眞』, 六一書房, 2012.
佐々木史郎, 『北方から來た交易民-絹と毛皮とサソタソ人』, NHKブックス, 1996.

地內宏, 「肅愼考」, 『滿鮮史硏究(上世編)』, 吉川弘文館, 1951.
津田左右吉, 「渤海考」, 『滿鮮地理歷史硏究報告』1 1915.
具蘭憙, 「8世紀後半日本の對外關係に關する考察-渤海との關係を中心に」, 『史學』76, 2007.
李美子, 「渤海國の社會經濟-史料の檢討を中心として-」 , 『年報朝鮮學』7, 1999.
小嶋芳孝, 「渤海の産業と物流」, 『アジア遊學』 6, 1999.
, 「渤海の金屬生産」, 『Movement in Medieval North-East Asia-people, material goods, technology󰡕, Vladivostok International Symposium 2005, Far Eastern Division of the Russian Academy of Science, 2005.
中村亞希子, 「渤海の瓦」, 『古代』129·130, 2012.

(노문)
Пискарева Я.Е., Асташенкова Е.В., Прокопец С.Д., Сергушева Е.А., Ивлиев А.Л., Дорофеева Н.А., Лящевская М.С., Базарова В.Б., Пшеничникова Н.Ф., Комплексные исследования на Новоселищенском городище в Ханкайском районе Приморья // Мультидисциплинарные исследования в археологии. № 1, 2019.

연구요약문

연구요약문: 전체 연구결과 요약, 세부과제별 요약로 구성
전체 연구결과 요약
이 연구는 발해사회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생태환경적 요소와 결합한 새로운 시도로 주요 하천을 중심으로 하는 권역의 개념을 접목하여 발해 문화 요소를 재검토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이번 연구는 그 첫 출발로 목단강과 송화강 권역을 대상으로 하여 지방운용, 종족, 생업, 건축문화 등 연구참여자의 세부 관심 영역을 분담하여 다루었다.
발해의 지방 운용을 목단강과 송화강 권역으로 분류해보면 목단강 상류는 발해 건국의 기반이었고 상경천도 후 중류 지역이 발해의 중심지가 되었다. 하류는 흑수대비의 방어지역이라기 보다는 상경과 북동 외곽을 연결하는 지방 운용의 거점이 되었다는 데 주목하였다. 한편 송화강의 경우 목단강 일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반농반업 지역이었고, 특히 동류 송화강 일대는 철리, 불열, 월희말갈을 장악하고 철리부, 회원부가 형성되었음을 지적하였다.
이는 고고학 유적의 계통과 시기를 검토하고 주민 구성과 분포 양상을 살핀 두번째 연구의 맥락과도 이어진다. 고구려계 주민은 북으로 동류 송화강 하류 지역까지 거주하였고, 목단강 유역에 특히 밀집 거주하였다. 또한 북류 화강의 상류와 중류 지역에서도 상당히 많이 거주한 반면 북류 하류 지역에는 고구려계 주민의 밀도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동류 송화강 상류와 중류 지역에서는 고구려계 주민의 거주 흔적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곧 발해의 중심 지역과 지방 말갈거점의 운용과 결을 같이 하는 것이다.

생업과 건축문화를 다룬 두 연구는 이 권역의 자연 환경과 조우하고 이를 활용하는 발해인들의 생활 유산을 살피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송화강-목단강 권역의 주된 생업은 수렵과 수산업이었으며, 그 다음으로 수공업과 농업 순으로 구성되는데 목단강 중류 지역을 중심으로 대량 생산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건축문화에서는 발해 구들 유적과 궁전 주거문화에 주목하면서 발해는 고구려의 구들 문화를 계승 발전하였고 동북아시아 왕조 중 유일하게 궁궐에 온돌을 채용하였으며, 구들 고래를 확대하면서 온통 구들로 정착시졌음을 지적하였다.
세부과제별 요약
첫 번째 주제는 발해의 지방 운용을 다루되 연구의 전제로 牧丹江과 松花江의 권역에 대한 생태환경을 다룸으로써 이 권역의 기초 이해 기반을 제공하였다.
목단강 권역은 『後漢書』 挹婁專 및 『三國志』 挹婁專, 『太平御覽』 肅愼國記를 참고하면 일찍부터 농업과 목축이 이루어지고 일정한 정착 공동체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목단강수역은 다시 3개 권역으로 구분되는데 상류는 구국, 중류는 상경용천부의 기반이며 하류는 발주 지역을 중심으로 교역과 방어 역할을 담당하였다. 지금까지 발주 지역은 상경의 운영 체제보다는 흑수를 대비하는 방어적 역할에 주목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 연구에서는 최근 소개된 해랑하와 목단강의 합수 지역에 薩爾虎城 등의 연구 성과에 주목하고 이 일대가 교역과 물산의 중심지로 상경과 외곽을 연결하는 지방 운용의 거점으로 이해하였다.
송화강은 북류송화강과 동류송화강으로 구분되는데 목단강 권역과는 달리 반농반업 내지는 어업이 발달한 지역이었다. 발해의 동류 송화강 일대 운용은 철리, 불열, 월희 말갈을 장악한 뒤 철리부, 회원부가 형성과 맞닿아 있다. 특히 철리부의 경우 의란 일대를 중심으로 송화강 중하류를 기반으로 하면서 발해 조정의 영향력 내외를 오갔지만 일본 사료에 등장하는 기사로 짐작하건데 발해는 이들을 대일 사행에 참여시킴으로써 지역적 특성을 활용하는 가운데 이 일대의 장악력을 확보하였을 것으로 이해하였다. 한편 북류 송화강 일대는 영주도의 중심인 소밀성이 일찍부터 주목되었는데 이 밖에도 휘발성, 나단블록성, 하류가고성, 소성자고성 등이 연이어져 있으므로 휘발하의 중상류 구간을 중심으로 부여의 옛 땅을 장악하고 부여부와 막힐부를 운영하였음을 재확인하였다. 다만 하류 구간으로 갈수록 발해의 장악력은 완화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두 번째 주제에서는발해의 유적에서는 고구려계와 말갈계의 유구와 유물이 발견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고고학 자료를 통해 우선 목단강·송화강 권역의 발해 주민구성 문제를 재검토하였다. 먼저 유적들의 계통과 시기 문제를 검토하여 고구려계 유적 185개소, 말갈계 유적 34개소, 고구려계와 말갈계 문화 요소가 함께 보이는 고구려계+말갈계 혼합 유적 55개소, 고구려계인지 말갈계인지 계통이 구분되지 않는 고구려-말갈 계통 미확인 유적 6개소, 고구려 시기인지 발해 시기인지 시기가 구분되지 않는 고구려-발해 시기 미구분 유적 9개소, 요금 시기의 특징을 가졌지만 발해 때에도 사용되었다고 주장은 되나 근거가 분명하지 못한 발해-요금 시기 미구분 유적 51개소가 각각 구분하였다. 다음으로 계통 단위 주민의 구성과 분포양상을 목단강·송화강 권역을 대상으로 분석하였다. 그 결과 고구려계, 말갈계, 고구려계+말갈계 혼합 유적 274개소 중 고구려계는 185개소 67.5%를, 말갈계는 34개소 12.4%를, 고구려계+말갈계 혼합 유적은 55개소 20.1%를 각각 차지하는 것이 확인되었고 이를 각 계통 주민의 구성 비율을 반영한 것으로 연결지어 해석하였다. 그 결과, 발해 영역 중 적어도 목단강·송화강 권역에는 고구려계의 발해 주민이 월등하게 다수였다. 다만 이 권역 전 지역에 걸친 양상은 아니다.
각 계통 단위 유적 분포를 통해 볼 때 목단강·송화강 권역에서 고구려계 주민은 북쪽으로 동류 송화강 하류 지역에서까지 거주하였고, 목단강 유역에 특히 밀집 거주하였으며, 북류 송화강의 상류와 중류 지역에서도 상당히 많이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북류 하류 지역에는 고구려계 주민의 밀도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동류 송화강 상류와 중류 지역에서는 고구려계 주민의 거주 흔적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말갈계 주민은 목단강 유역에서는 중류와 하류 지역에 고구려계 주민과 뒤섞여 혹은 개별적으로 거주하였을 것으로, 특히 연화수고 일대에 말갈계 주민의 밀도가 높았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북류 송화강 상류와 중류 지역에는 말갈계 주민의 밀도가 매우 낮았고, 하류 지역으로 가면서 그 밀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동류 송화강 상류와 중류 지역에는 말갈계 주민들만 거주한 것으로 파악되었고, 하류 지역에는 고구려계 주민도 섞여 있기는 하나 말갈계 주민이 다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세 번째 주제는 발해 성립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여 이 권역의 생업을 살펴 보았다. 먼저 농업은 목단강 권역의 마을 유적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그 입지는 강가이고, 규모는 대형ㆍ중형ㆍ소형이 다 있었고, 생업과 관련된 여러 유물이 나옴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농업 생산력과 관련된 철제농기구는 고구려의 것과 비교하여 상호 계승 또는 변화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고구려와 발해 주력 농업지대의 생태환경의 차이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았다. 식물유체는 밭작물 위주였음도 확인하였다. 그리고 말, 소, 돼지, 개를 목축하였음도 논증하였다.
수공업과 관련해서는 제철업과 요업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송화강-목단강 권역의 철 생산 유적은 무송의 신안제철 유적과 신안고성, 그리고 상경성 3호문 건축유지가 있는데, 무송은 압록부 豐州의 치소이며, 상경은 발해의 도성으로 철광석을 가공한 유적으로 판단된다. 가마터는 송화강-목단강 권역의 杏山과 上屯 유적이 확인되는데, 이곳은 대량적ㆍ장기적인 수요를 위해 설치한 유형으로 파악되었다.
수산업에서 가장 많이 수확한 어종은 민물고기 그 가운세도 붕어로 추정하였으며, 振興유적에서 나온 骨制 그물용 어구를 통해 그물이나 가마우지를 이용해 잡았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마지막으로 수렵은 모피에 주목하여 보았는데 발해 이전의 挹婁貂, 발해 이후의 索倫貂로 대표되는 黑貂, 즉 검은 담비 모피가 이 권역의 주요 산물이었음을 확인하였다. 결국 송화강-목단강 권역의 주된 생업은 수렵과 수산업이었으며, 그 다음으로 수공업과 농업 순으로 구성되었다고 보았다.

네 번째 주제는 목단강·송화강 권역의 발해 구들유적의 현황을 파악하고 발해 상경성의 주거유적인 ①서구침전지, ②제4궁전지, ③제4-1궁전지, ④제4-2궁전지를 대상으로 유적의 발굴결과를 분석하였다.
서구침전지는 1930년대 일본이 처음 발굴을 진행하였고, 1960년대 북한과 중국이 다시 발굴을 진행하였다. 제4궁전지는 일본에 이어 중국이 1990년대에 재발굴을 하였다. 제4-1궁전지는 1990년대 중국이 처음 발굴을 진행하여 많은 건축적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고, 제4-2궁전지는 일본이 진행한 내용이 거의 대부분이고, 1990년대 중국은 그 이외의 곁채를 대상으로 부수적인 공간을 발굴하였다.
연구의 진행은 제Ⅱ장에서는 4개소의 유적을 대상으로 발굴 결과를 각각의 발굴보고서를 통해 정리해 보았다. 제Ⅲ장에서는 결과를 토대로 배치 및 평면형식과 구조 및 건축기술인 기초·기단, 주춧돌, 바닥, 기둥, 벽, 공포, 지붕으로 나누어 분석해 보았다. 연구를 통해 얻어진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연구대상 4개소의 왕실 주거유적은 모두 3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가운데 방을 중심으로 동서쪽에 각각 방이 있었다. 가운데 방은 다용도실과 의전 준비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4개소 유적 모두 가운데 방은 집 정면에서 직접 출입할 수 없고, 뒤편이나 동서 방에서만 출입구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건물 평면구조는 겹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속칸을 겉칸인 회랑이 둘러싸고 있어 실내에서 추위와 비 피해를 최소화하였다.
2. 방 바닥과 벽은 회를 칠해 방수와 동시에 실내를 아름답게 꾸미려 하였다. 더욱이 벽에 채색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3. 온돌은 부여, 옥저, 고구려 등 우리 민족의 독특한 바닥 난방 기술이다. 발해는 「ㄱ」자형의 쌍고래 구들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구들 고래 수를 점차 확대하고, 형태를 다양화하는 등 이를 잘 계승 발전시켜 고려에 온통구들로 정착되게 하였다. 동북아시아 국가 중 궁궐에 온돌을 채용한 나라는 당시까지 발해밖에 없었다. 그만큼 배연기술에 자신감이 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오늘날 온통구들로 발전된 것도 아마 발해인의 공헌이 크다고 하겠다. 난방은 온돌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동시에 상경성 지역의 원래 주민이었던 말갈족의 화롯불(火塘) 시설도 병존시켜 고구려와 말갈족 간 주거문화 통섭도 진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4. 상경성 주거유적에 채택된 기초 및 기단 보강방법은 돌과 돌을 퇴를 물려 들여쌓기를 하였고, 흙을 함께 메워 넣어 보강하였으며, 긴 돌을 속까지 물리게 하였으며, 밀리지 않도록 여러 모양의 멈추개돌을 사용하였고, 석재 또는 벽돌로 돌못을 박아 보강하였으며, 비와 눈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낙수받이를 바닥에 까는 등 여러 건축기술이 적용되었다.
TOP
전체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