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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커스

한국 신화 개관 - 5

한국의 대표적 신화

한국인과 함께하는 무속신들의 이야기

1. <바리공주>
<바리공주>는 죽은 사람을 위로하고 저승으로 잘 보내기 위해 치러지는 제의에서 불려진다. 바리공주의 일대기를 다룬 이 신화는 한국의 대표적인 무속신화이다. <바리공주>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바리공주 한 나라의 왕이 있었는데 점치는 사람(卜者)이 정한 날짜를 어기고 앞당겨 결혼을 하였다. 이로 인해 저주를 받아 왕부부는 공주만 여섯을 낳고 왕자를 낳지 못했다. 마지막 일곱째를 임신하였고 왕은 왕자이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결국 또 공주가 태어났다. 실망한 왕은 일곱째 공주인 바리공주를 버린다. 태어나자마자 죽을 위험에 빠진 바리공주를 천상의 신이 불쌍히 여겨 신선 부부에게 입양하여 키우라고 명령하였다. 바리공주는 이 부부에 의해 잘 성장하였다. 세월이 흘렀고 왕이 병에 걸렸는데 온갖 약을 써도 소용이 없었다. 예언자가 나타나 아기를 버린 죄값이라며 신선세계의 약수를 먹어야 낫는다고 예언하였다.
여섯 딸들은 모두 약수 구하기를 거부하였다. 이때 한 신하가 나와 일곱째 공주를 찾아 부탁하겠다고 나섰다. 신하는 인간들이 통과할 수 없는 곳을 지나 바리공주가 살고 있는 신선세계에 도착하였다. 신하를 만나 그간의 사연을 들은 바리공주는 친부모를 만나기 위해 궁으로 향했다. 마음씨 착한 바리공주는 부모를 만나자 반갑고 불쌍하여 약수를 구하기로 마음먹고 여행에 나섰다. 산 사람이 통과할 수 없는 저승세계를 신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통과하였다. 저승세계를 통과하면서 불쌍한 망자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 주었다. 바리공주는 약수가 있는 신선세계에 당도하였다.

그곳에서 약수를 지키는 무장승을 만나 약수 값으로 나무 3년, 불 3년, 물 3년의 일을 해주고 이어서 무장승과 결혼하여 아들 7형제를 낳았다. 바리공주는 비로소 약수를 얻었다. 바리공주를 기다리던 왕이 죽어 장례를 지내려고 할 때, 바리공주가 약수를 가지고 나타나 죽은 아버지를 살려냈다. 살아난 왕은 바리공주에게 소원을 묻자, 저승세계에서 본 불쌍한 망자들의 혼을 위로하고 천도하는 신이 되게 해달라고 말하였다. 왕은 바리공주의 소원대로 그녀가 무신(巫神)이 되어 무당의 제향을 받아먹도록 하고 함께 온 바리공주의 가족 모두 신이 되게 해주었다.

이 신화는 무조신(巫祖神)의 일대기를 다룬 것으로 한반도 전 지역에서 전해지고 있다. 바리공주는 왕의 딸로 태어났지만 버림받는 비운의 인물이다. 하지만 자신을 버린 부모를 살리기 위해 힘겨운 약수 구하기 과제를 마치고 종국에는 신이 된다. 이 신화는 주인공의 공간이동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구성되는데, 각 공간별 특징을 통해 한국인들의 세계관을 살필 수 있다. 부왕(父王)이 다스리는 인간세계가 있고, 그 인간세계 너머에는 신성한 공간인 신선세계가 있다. 그 사이에는 인간들이 통과할 수 없는, 이른바 경계공간이 존재한다. 바리공주는 인간세계와 신선세계 사이에 있는 저승세계를 통과하였다. 바리공주는 이승인 인간세계에서 태어나 신선세계에서 거주하다가, 다시 인간세계로 왔다가 저승세계를 거쳐 약수가 있는 신선세계로 이동하였다가 인간세계로 최종 귀환한다. 이러한 주인공의 여정은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것을 의미하며, 결국 바리공주는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인간들을 인도하는 신이 된다. 이처럼 <바리공주>는 한국인이 사유한 이승을 중심으로 한 다른 세계들에 대한 신화적 사고가 잘 나타난다.

다음으로 이 신화에서 잘 살펴야 할 것이 주인공 바리공주를 통해 형성되는 가치체계이다. 이 이야기는 바리공주와 그의 아버지가 선명하게 대립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우선 부왕은 한 국가의 왕이자 가장(家長)이다. 즉 지배자이며 남성인 것이다. 이와 반대로 바리공주는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버림을 받는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된다. 특히 그녀의 이름은 '버리다'는 의미로 부왕이 딸을 버릴 때 신하의 강요에 의해 대충 지어준 이름이다. 바리공주가 약수 값으로 수행했던 과제는 나무하기, 물긷기, 불때기 등 전형적인 가사노동으로 가정 내에서도 약자임이 드러난다.

이처럼 바리공주는 사회적으로는 피지배자이거나 열등한 존재이지만, 부왕에게 결핍된 것을 갖고 있다. 부왕은 인간을 다스리며, 사람을 신으로 변화시켜 줄 만큼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지만 병에 걸려 죽게 되는 인물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권력이 강하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인 것이다. 반면 바리공주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고비를 넘기고 부모를 살리기 위해 저승세계를 통과한다. 그녀의 삶은 시종일관 죽음과 마주침의 연속이라 할 수 있으며 결국 그녀는 죽음을 극복하고 불멸의 존재가 된다.

바리공주는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인상이자 인간상을 구현하고 있다. 그녀 스스로 뛰어난 술법을 부리지도 않았고 특별한 지혜나 힘을 소유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을 버렸지만 그래도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위해 효심을 발휘하였다. 여성으로서 요구되는 가사노동과 출산을 묵묵히 수행하였다. 여기에 더해 그녀는 망자를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였다. 한국의 전통사회는 가부장제였으며 그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여성은 늘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여성들은 출산과 가정 돌보기라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이러한 역할이야 말로 죽은자를 살리고, 죽은자를 천도하는 가장 신성한 임무와 상통한다는 것을 이 신화가 역설(力說)하고 있다.

2. 세경본풀이
이 신화는 제주도에 전하는 농경신의 일대기를 다룬 것이다. 농경신뿐 아니라 목축신의 유래도 함께 등장한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부자집에 돈을 많으나 자식이 없어 근심이 많았다. 하루는 한 중이 찾아와 자신의 절에 시주를 하면 자식을 얻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부자는 중이 시킨 대로 제물을 준비하여 절에 시주하러 떠났는데, 도중에 다른 중이 자신의 절로 가야 제대로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꼬드겨 다른 절로 가게 되었다. 이후 부부가 아이를 얻었는데 딸이었고 이름을 자청비라 하였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그 집의 여종이 아들을 낳았고 이름을 정수남이라고 하였다. 자청비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어여쁘게 성장하였다.
하루는 자청비가 여종에게 피부가 고와진다고 속아 대신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때 천상세계의 왕자인 문도령이 글공부하러 가다가 자청비와 만났다. 자청비는 문도령에게 반해 남장을 하고 그와 함께 3년간 동숙하면서 공부하였다. 공부 기한이 끝나는 날 자청비는 자신의 정체를 문도령에게 알려주자, 자청비에 반한 문도령은 자청비 집으로 와서 함께 지냈다. 시간이 흘러 문도령이 하늘나라로 돌아가게 되자 자청비는 문도령을 다시 만나기만을 기다리며 있었다.
하루는 정수남이가 소와 말을 먹이러 나갔다가 낮잠을 자는 바람에 소와 말을 모두 죽고 말았다. 정수남이가 소와 말을 모두 먹어치우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산 속에서 문도령이 선녀들과 노는 것을 보다가 소와 말을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자청비는 정수남이를 앞세워 문도령을 찾아 산으로 갔다. 깊은 산 속에서 정수남이가 자청비를 겁탈하려고 하자 자청비는 꾀를 내어 정수남이에게 쉴 곳을 만들게 하여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정수남이를 죽이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청비를 혼내고 정수남이를 살려낼 것과 집을 나가라는 것을 명령한다.
남장을 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사라대왕이라는 신의 집에 묵게 된다. 그 집의 골칫거리였던 새를 잡아주어 능력을 인정받은 자청비를 사라대왕이 사위로 삼고 싶어 하였다. 자청비는 공부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둘러대고 그 집에 있던 환생꽃을 얻어 집을 나왔다. 본가로 돌아와 환생꽃으로 정수남이를 살려내고 문도령을 찾아 다시 길을 떠났다.
자청비가 방황하던 중 천상세계 왕에게 비단을 짜서 바치는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할머니 대신 비단을 짜서 천상 궁전에 비단을 바치게 되었는데 솜씨가 좋아서 칭찬을 받았다. 하루는 할머니가 문도령을 초대해서 자청비를 만나게 해 주고자 하였다. 문도령은 자청비인 줄 모르고 방을 엿보려다가 자청비가 문도령이 엿보려하는 줄 모르고 손가락을 바늘로 찌르는 바람에 화가 나서 궁으로 돌아가 버렸다. 자신의 초대가 엉망이 되자 화가 난 할머니는 자청비를 내쫓았다. 길을 나선 자청비가 선녀들이 깨진 물동이로 물을 푸는 벌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겨 도와 주었다. 그러자 선녀들이 감사하여 자청비의 소원을 들어주어 문도령이 있는 궁으로 안내하였다.
문도령이 자청비를 알아보고 반가워하여 부모에게 부탁하여 결혼을 승낙 받았다. 그런데 예전에 부모끼리 정혼하였던 문도령의 약혼녀가 자살을 하자 자청비가 미움을 받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인간세계의 대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였고 천상세계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때 자청비가 문도령을 대신하여 참전하기로 하였다. 자청비를 사위로 삼고 싶어했던 사라대왕의 집으로 문도령을 피신시키고 자신인 양 위장하였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문도령에게 돌아오라고 연락을 하였다. 사라대왕의 딸이 문도령을 계속해서 잡아둘 요량으로 말을 거꾸로 태워 돌려보냈다. 자청비가 멀리서 문도령이 등지고 오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싫어서 그런가보다 판단하였다.
자청비는 문도령과 헤어지고 승전의 대가로 천상세계의 왕에게 곡식 씨앗을 얻어 지상세계로 내려왔다. 자청비는 인간들에게 곡식 씨앗을 나눠주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자청비는 스스로 농경신이 되었으며, 정수남이에게 목축신의 역할을 맡겼다.

이 신화는 사랑을 찾아 천상세계를 찾아간 지상의 여인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인정받아 결국에는 지상으로 돌아와 농경신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자청비는 한국의 다른 신화의 여성 주인공과 달리 상당히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입체적인 존재론적 변화상을 보여준다.

자청비는 아버지의 실수로 인해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태어나지만 여느 남성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루는 자청비가 천상세계의 왕자인 문도령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부터 그녀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자청비에게 끊임없이 요구되는 힘든 과제를 그녀가 어떻게 완수하는지 보여주는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아버지의 명에 따라 정수남이를 회생시키기 위해 사라대왕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환생꽃을 획득한다. 천상세계에서 비단을 잘 짜서 그 능력을 인정받기도 하며, 곤경에 처한 천상 선녀를 도와주는 선행을 베풀기도 한다. 그녀의 행적은 남편인 문도령을 대신해서 전쟁에 나가서 승리하는 것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녀를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던 천상세계의 왕도 그녀의 승전을 치하하기에 이른다. 이는 곧 지상적 존재가 천상세계의 신으로서 인정을 받은 것이라 하겠다. 이제 모든 것이 해결되고 시부모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지만, 어리석은 문도령으로 인해 자청비는 하늘나라 왕의 며느리로서의 삶을 포기한다. 천상의 곡식 씨앗을 얻어 인간세계로 내려온 자청비는 농경신이 되어 인간에게 제향을 받고, 자신이 살려낸 정수남이를 소와 말을 다루는 목축신으로 임명한다.

이렇듯 자청비는 이야기에서 시종 일관 난관을 극복하고 주어진 과제를 완수한다. 최종 과제를 완수하고도 스스로 천상세계의 구성원으로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고 지상 세계를 선택한다. 신화를 전하는 이본(version)에 따라 문도령이 자청비를 좇아 내려와 농경신이 되었다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논리상 자청비는 문도령이 아닌 정수남과 함께 지상의 농경신이 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신화에서 주체적인 인물은 자청비이고, 인간에게 직접 곡식 씨앗을 전파한 이도 자청비이다. 더구나 이야기 초반과 후반에서 반복되는 자청비와 정수남이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의 갈등과 화해는 농경문화와 목축문화가 경쟁하다가 농경문화 중심으로 사회의 생산 시스템이 정비되는 양상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자청비로 대표되는 농경문화가 정수남이로 대표되는 목축문화를 흡수한 것이다.

한국의 주변 아시아의 농경신화에서는 천상세계로 가서 곡식 씨앗을 구해 지상으로 내려오는 영웅은 남성이다. 이에 반해 <세경본풀이>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여성 영웅을 농경신으로 내세웠다. 자청비의 이 같은 성격은 한국의 신화에서 흔히 발견되는 가족 구성의 측면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신화에서는 여성 주인공이 남편을 만나고 자식을 출산하여 온전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대부분이다. 신화의 여성 주인공은 남성으로 대표되는 가부장제 하에서 아내와 아머니로서의 역할이 강조된다. 그런데 자청비는 스스로 천상세계 며느리 자리를 포기하고 지상세계의 신이 된다. 자청비는 한 남성에게 복속되지 않으며, 남성 인물과 결합하여 자식을 출산하지도 않는다. 이는 아마도 목축은 남성, 농사는 여성이 각각 주체였다는 원초적인 신화적 사유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대지는 여성성을, 농사와 같은 생산 시스템은 여성의 출산과 직접적으로 비유되어 왔다. 그만큼 자청비는 농경의 시작만큼은 여성성의 신화적 발현이라는 점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세경본풀이
3. <이공본풀이>
<이공본풀이>는 제주도에서 전승되는 무속신화인데, 불교 설화를 수용하여 신화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늘나라의 꽃관감(꽃을 관리하는 직책)의 직무를 맡은 생사(生死) 관장의 신격에 관한 내용이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원강도령과 원강아미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원강도령은 신성한 세계인 서천 꽃밭을 지키는 꽃감관으로 간택되어 인간세계를 떠나야 했다. 원강아미가 임신을 한 상태라 먼 길을 서둘러 갈 수 없어, 남편 원강도령에게 혼자 가라고 한다. 원강아미는 부잣집에 돈을 받고 종이 되고 그 돈을 남편의 노자돈으로 준다. 원강아미는 부잣집에서 일을 하면서 할락궁이를 낳았다. 부잣집 주인은 아름다운 원강아미를 늘 탐하려고 하였으나 그때마다 원강아미는 핑계를 대면서 위기를 모면했다. 할락궁이가 성장하여 15세가 되자 아버지를 찾아 나서겠다고 하여 원강아미가 길을 일러주었다. 부잣집 주인은 원강아미를 겁탈하려 하였는데 그녀가 완강히 거부하자 죽여서 대밭에 버렸다. 주인은 후사가 두려워 할락궁이를 잡으려 하였으나 할락궁이는 추적을 피해 아버지가 있는 서천 꽃밭으로 갔다.
할락궁이는 아버지를 만나 어머니의 사연을 전하였다. 할락궁이는 아버지로부터 서천 꽃밭의 환생꽃과 악심꽃을 받아 어머니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승으로 왔다. 할락궁이는 막내딸을 제외한 부자의 모든 가족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악심꽃을 꺼내 모두를 죽였다. 그리고 막내딸에게 어머니의 시체가 어디 있는지 물어 찾았다. 시체를 수습하여 놓고 환생꽃으로 어머니를 소생시켰다. 할락궁이는 어머니를 모시고 서천 꽃밭으로 가서 아버지와 상봉하였다. 할락궁이는 아버지를 이어 서천 꽃밭의 꽃관감이 되었다.
이 신화에는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꽃이 등장한다. 환생꽃과 악심꽃은 결국 이승의 존재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야기에 등장하는 꽃감관은 삶과 죽음을 결정하고 관리하는 신격임을 의미한다.

한국의 신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가족관계의 성격이 여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의 무속신화에서는 주인공과 그 가족이 항상 주요 인물로 등장하며 이야기의 구조가 가족의 해체에서 가족의 복원으로 진행된다. <바리공주>에서는 막내딸이 가족 공동체에서 축출되고, 가족의 대표자인 아버지가 죽게 되자, 결국 바리공주가 아버지를 살리고 자신은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게 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제석본풀이>에서는 막내딸이 외부의 신격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게 되고, 부모의 허락 없이 임신한 딸은 집을 나와서 남편을 찾아 새롭게 가족을 구성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공본풀이>에서 주인공 가족은 부모와 아들, 이렇게 3명이다. 아버지는 뛰어난 인물로 천상세계에 호출되어 신격으로 변신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는 일을 위해 밖으로 나가고 남겨진 모자(母子)는 가장(家長) 없는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전통사회에서 아들에게 있어 아버지의 부재(不在)는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하며, 남편 없는 아내는 항상 외부자의 침탈 위기에 놓여있다. 당연히 이들은 아버지이자 남편인 가장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는 가장의 성공과 그것을 뒷바라지하기 위한 아내의 희생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원강아미는 남편의 출세를 위해 스스로 종이 되어 노자를 마련하는 여성이다. 남편 없이 아들을 출산하고 잘 키웠으며, 남편과의 의리를 지키다가 죽는다. 이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한 가정의 성공은 여성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제 보호자가 사라진 아들 할락궁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 천상세계로 가서 아버지를 만난 할락궁이는 아비 없는 후레자식에서 신의 아들로 변신한다. 곧이어 할락궁이는 또 다른 탐색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바로 어머니에 대한 복수, 즉 효의 실천이 요구되는 것이다. 할락궁이는 겉보기에는 아비 없이 태어난 하찮은 존재로 보이지만 실상 신성한 혈통을 계승한 뛰어난 인물이다. 막강한 힘을 가진 부자 주인을 피해 탈출에 성공, 천상세계에 입성하였다. 더구나 서천 꽃밭의 꽃을 사용할 수 있는 주술적 능력까지 겸비하기에 이른다. 결국 할락궁이의 어머니에 대한 복수 과정은 자신이 천상세계의 꽃관감으로서 갖추어야 할 능력에 대한 테스트이자, 한국인들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인 효에 대한 검증 절차라 할 수 있다.

<이공본풀이>는 한국인들이 사고한 인간세계의 가장 근간이 되는 가족 구성의 문제를 압축시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속신화가 여성의 희생과 자식의 성장을 서사의 주요 골자로 해서 이루어지는데 <이공본풀이>가 이러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

Infokorea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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