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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을 도모하는 나카야마(中山) 문부과학省 장관의 발언에 항의한다


보도에 의하면, 11월 27일 오오이타(大分)현 벳푸(別府)시에서 개최됐던 내각 주최 타운미팅에서 나카야마 나리아키(中山成彬) 문부과학성 장관은 역사교과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다.
“지극히 자학적이며 겨우 최근에 이르러서야 소위 종군위안부라든가 강제연행이라는 말이 줄어 든 것은 정말로 잘 된 일이다.” “일본의 교과서는, 정치가가 잘못되어 그랬다는 생각이지만, ‘일본은 나쁜 짓만 일삼아 왔다’라는 말로 가득 차 있던 때가 있었다. 이는 어떻게 해서든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돼 왔다.” “어느 나라의 역사건 빛과 그림자는 있기 마련이다. 나쁜 것은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전부가 다 잘못 되었다는 자학사관에 서서 교육하는 것만은 안 된다. 앞으로의 일본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자기 민족이라든가 역사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는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사히신문 2004년 11월 28일]

나카야마 문부과학성 장관이 “교과서에서 서술이 줄어 잘 됐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침략전쟁이라든가 식민지 지배와 가해에 관한 사항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의 침략전쟁과 가해에 관한 서술은 전후(戰後) 오랜 동안, 정부와 문부성 검정에 의해 삭제-수정의 대상으로 교과서에서 삭제되어 왔다. 일본 역사교과서는 이에나가(家永) 교과서 재판을 중심으로 국내외로부터의 비판과 ‘교과서에 진실을!’이라는 국민의 요구와 운동에 의해, 겨우 8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침략과 가해에 관한 기술이 교과서에 기재되게 되어 개선되어 왔다.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서술은, 93년 8월 “본건(‘위안부’)은 당시의 (일본)군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다” “역사교육을 통해 오랫동안 기억하여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정부 견해[河野洋平(코오노 요오헤이) 관방장관의 담화]를 따라, 97년 판부터 모든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기술하도록 된 것이다.

그런데, 96년 이후 자민당 의원이라든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회(이하 ‘만드는 회’) 등에 의해 “일본군 ‘위안부’라든가 남경 대학살을 교과서에서 삭제하라”는 공격이 행해졌다. ‘만드는 회’는 스스로 역사 왜곡 교과서를 만들어 그것을 학교 현장에 들여 밀기 위해 자민당 ‘일본의 앞길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소장의원 회’(2004년 2월부터 명칭에서 ‘소장’을 삭제)의 부정혐의 정치가(코야마 타카오[小山孝雄] 전 참의원 의원)를 이용하여 채택제도를 개악했다. 이러한 ‘만드는 회’라든가 국회의원의 공격에 의해 교과서에서 ‘위안부’에 관한 서술 등이 지워져, 침략과 가해에 관한 기술 내용이 후퇴되어 오고 있다. 나카야마 문부과학성 장관의 ‘줄어들어 잘 됐다’라는 말은 자기들의 역사왜곡의 ‘성장’을 자만하는 것인 것이다.

자민당의 ‘일본의 앞길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 회’는 ‘만드는 회’ 발족 직후인 1997년 2월에 ‘만드는 회’와 연대하여 지원하기 위해 발족한 의원 연맹인데, 나카야마 장관은 그 부대표 그리고 좌장을 맡아, “‘종군위안부’ 서술은 왜 검정으로 삭제할 수 없는가” “자학사관에 관철된 지금의 역사교과서를 하루라도 빨리 개정하는 것이 국가 백년 대계로서 필요”(<역사교과서에의 의문> 1997년 12월) 등을 주장해 온 인물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나카야마 장관의 이 번 발언은 검정권자인 문부과학성 장관이 교과서의 특정 기술에 대해 비난하고 개입하는 것이며, 교육기본법 제 10조가 금하고 있는 ‘부당한 지배’에 해당하는 중대한 위법 행위인 것이다. 지금, 2006년부터 사용되는 중학교 교과서의 검정이 행해 지고 있다. 나카야마 장관의 발언은 검정에 있어 ‘만드는 회’의 교과서(후소오社版)를 유리하게 하여,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를 엄하게 체크하려는 의도를 표명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타운미팅에서는 남녀 혼합 명부에 대해, ‘어릴 때부터 남자든 여자든 다 똑같다고 한다면, (대체)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라고 발언하여, 기자회견에서는 ‘신체검사 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같은 장소에서 발가벗게 되는 것이 싫다는 소리도 들린다’고 했다(앞의 아사히신문 기사). 이 발언도 ‘만드는 회’ 등 젠더 프리(gender free) 교육을 공격하는 자들이 사실을 왜곡하여 행하고 있는 담론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나카야마 장관은 취임 후 국제승공연합=통일교회 기관지 <세계일보>의 인터뷰에 등장하고 있다. 현역 장관이 동지의 인터뷰에 응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더욱이 11월 29일에는 개헌­익찬조직의 일본회의라든가 同의원연맹 등이 주최한 ‘교육기본법 개정을 구하는 중앙 국민대회’에 ‘정부대표’로 참가해 발언하고 있다.

이렇듯, 나카야마 장관에 공정한 검정이라든가 제대로 된 교육행정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들은 나카야마 장관에 대해 노여움으로 항의하는 동시에 타운미팅에서 행한 발언의 철회와 장관직의 사임을 요구한다. 아울러, 이러한 향기롭지 못한 평판을 지닌 인물을 문부과학성 장관으로 임명한 코이즈미 준이치로오(小泉純一郞) 수상이 그 중대한 책임을 자각하고, 나카야마 장관을 해임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일본의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 21 홈페이지에서 발췌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 21
사무국장 타와라 요시후미(俵 義文) http://www.ne.jp/asahi/kyokasho/net21/top_f.htm



'전후 60년'을 맞이하여 역사문제가 중일 뿐만이


중국에게 있어 2005년은 ‘항일(反 화시스트)전쟁승리 60년’에 해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정부는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 참배 문제로 국내 여론에 밀려 더욱 더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코이즈미(小泉) 수상에 의해 계속되고 있는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중국인들에게 어째서 문제가 되는가 하면, 예컨대 A급 전쟁범죄 문제에 한해 말해 본다면, 중국 민중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혀 동경재판에서 교수형에 처해진 A급 전범으로 ‘만주사변’을 일으킨 이타가키 세에시로오(板垣征四郞) 라든가 남경대학살의 책임자인 마츠이 이와네(松井石根) 등 을 제신(祭神)으로 모셔 놓고 있는 신사가 바로 야스쿠니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작년 8월의 충칭(重慶)에서 있었던 아시아컵 축구대회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과 같이 거기에는 좀 지나친 데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1938년 이후 일본군에 의해 반복된 충칭 무차별 폭격에 의한 피해자들은 사망자만 12000명에 이르렀습니다. 생존 피해자를 둔 많은 가족들은 일본으로부터 사죄 한마디 받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생활해 오고 있습니다. 실은 이 번과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디에선가 어떠한 형태로든 사건이 일어났을 테지요. 이와 같은 예는 중국각지에 많이 존재하여 작년만 해도 버려진 독가스에 의한 새로운 피해자를 만들어 내 놓기도 했었습니다. 중국에게 있어 일본에 대한 역사인식 문제는, 흔히 이야기되듯 ‘교섭 카드’처럼 언제든지 바뀌어 질 수 있는 문젯거리가 아니라 정권의 근간에 관계되는 사항으로 앞으로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지난 달, 코이즈미 수상은 중국에게 ODA의 중단을 수뇌회담에서 제안하고, 12월 21일에는 대만의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에게 비자 발급을 행했습니다. 이것은 야스쿠니 문제에 대항 내지는 보복으로 간주되어(산케이[産經]신문 12월 11일 기사) 중일 양국관계는 지금, 심각한 긴장관계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처럼, 중일 두 나라가 각축을 벌이는 구도는 2005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역사문제에 있어 일본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부드럽게 보입니다. 12월 17일 카고시마(鹿兒島)에서 열린 한일 수뇌회담에서 행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그것인데, 북한을 제재하는 것에 비판적인 발언만 크게 다루어져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표현을 구사하는 발언 등으로 충분히 다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보도된 기사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한국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즉, 대통령은 야스쿠니문제의 처리는 일본측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역사문제가 다시 대두되지 않도록 배려를 구했다’ ‘강제 연행된 한국인의 유골 반환’의 협력을 일본에 요청했다고 전해지는 것이 그것입니다(이상 아사히[朝日]신문 12월 17일 기사). 또 코이즈미 수상은 ‘반성해야 할 것은 반성’이라는 말을 역사문제에 사용하여(쿄오도[共同]신문 12월 17일 기사), 노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세는 아주 억제된 것이며 그 점은 이 번에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입장이 ‘역사문제는 일본이 제기해 왔다’ 즉, 문제 발생의 책임은 일본에 있다는 생각은 선명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야스쿠니문제에 있어 코이즈미수상은 중국뿐 만이 아니라 한국으로부터도 다음 참배에 대해 이 번에 못을 박힌 형국이며, 다음날 외무장관 회담에서는 지난 번의 ‘만드는 회’ 교과서문제에서 발단이 된 ‘한일역사 공동연구’를 내년 5월 이후에도 계속하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혹, 이러한 2국 간의 협력관계를 교과서문제에서 일본이 적당히 처리해 버릴 경우, 한국도 중국에서와 같은 사태로 번질 것으로 당연히 예측됩니다.

왜냐하면, 한국에 있어 올해는 일본에 의한 식민지 지배의 단서가 되었던 한일협약(제2차; 을사보호조약)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게다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60년, 그리고 한일조약체결 40년이 중복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 위에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회’에 의한 교과서 채택이라든가 야스쿠니 문제가 더해질 경우, 올해는 한국에 있어 역사문제가 지극히 중대한 과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는 해인 것입니다.

한국 국회는 올 2월 ‘일제 강제점령 하에 있어 강제동원 피해 진상 구명 특별법’을, 3월에는 ‘일제 강점하의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구명 특별법’을 성립시켜, 식민지 지배의 피해상황과 국내의 협력자를 밝히는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2004년 4월의 한국 국회 선거에서는 의원을 대폭으로 갈아 세대 교체를 이루었습니다.

그 결과, 여-야당 의원 79명이 코이즈미 수상과 각료에 의한 야스쿠니신사 참배 중지를 요구하는 국회결의안을 12월 7일에 제출(산케이[産經]신문, 12월 7일 기사), 연내에는 채택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는, 역사문제를 제기한 것은 일본이라고 하는 노 대통령과 같은 입장이 표명되어 있는 것임과 동시에, 역사왜곡에 대한 비판, 야스쿠니에서의 한국인 유족의 합사(合祀) 취하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제안 이유에는 한국침략의 가해자가 야스쿠니신사에 봉정되어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어, 신사에 합사한 것이 그러한 행위를 고무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등, 야스쿠니 참배에 오랫동안 항의 해 오고 있는 중국을 다소 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후 50년’이었던 해인 1995년은, 아시아에 피해를 끼친 것에 대해 반성하는 것을 ‘자학적’이라 비판하는 세력에 의해, 올바른 역사인식이 공격 당하기 시작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아시아에의 가해인식은 단지 마음가짐의 문제에 의한 것이 아니고, 다수 주위의 이웃들과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인식이며 도덕임을 내년(=2005년)에야말로 일본 사회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교과서 정보 자료 센터
http://www.h2.dion.ne.jp/~kyokasho/


널리 퍼지는 ‘무 애국심’ 결의에서 보여지는 가능성
‘개악(改惡) 반대 등’ 결의는 드디어 400을 돌파!


‘개악’ 추진결의도 都, 道, 府, 縣 단계 중심으로 ‘배증(倍增)’

교육기본법에 대한 개악 결의가 9월과 12월 의회에서 어느 정도 증가할까 주목되고 있습니다. 지난 번 9월말 집계와 비교하면 이 번에는 141이 늘어 280이 되었습니다. 놀랄 만하게도 배나 증가한 것입니다. 그들도 뒤따라 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개정 반대 내지 신중한 심의를 요구하는 결의도 지난 번보다 37 늘어 415에 달했습니다.

都, 道, 府, 縣 의회 결의가 많은 것이 이 번 개악 추진 결의의 특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숫자만을 가지고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방의회의 선거제도를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市, 町, 村의 의회 결의 쪽이 ‘민의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都, 道, 府, 縣의 의원보다 충실하다는 것을 알아 두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市, 町, 村의 의회 선거는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 대선거구제를 취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의 선거구 가운데에서 득표수가 많은 순서로 정원에 따라 당선되는 식으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이른바 ‘죽은 표(死票)’ 수는 낙선한 후보자에게 돌아가는 아주 적은 표에 한정되게 됩니다. 지방의회에 시민파(市民派) 의원이 다수 있게 되는 배경에는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都, 道, 府, 縣 의회의 선거는 한 사람부터 여러 사람을 선출하는 소선거구 내지 중선거구로 되어 있습니다. 즉, 현재의 국회의원 선거에 가까운 형태인 것입니다. 그 때문에, ‘죽은 표’가 반수 가깝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인 것입니다.

개악 추진파는 또 그들의 전략으로 都, 道, 府, 縣에서 먼저 결의를 얻어 낸 후, 그 여세로 市, 町, 村 결의로 밀고 간다는 방침을 현재 취하고 있습니다. 이 번 결의에는 그것이 반영되어 있는 면도 있습니다. 그러한 방법을 그들이 취하는 이유로는 지민토오(自民黨) 중앙의 의향이 전달되기 쉽고, 민의가 반영되기 어려운 都, 道, 府, 縣의 의회 쪽이 개악 결의를 얻어 내는 것이 보다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또, 지민토오(自民黨)가 과반수를 쥐고 있는 의회도 다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앞으로 공방(攻防)이 市, 町, 村 단계로 움직여 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2005년 3월~6월 의회는 그것이 커다란 초점이 될 것입니다.

가까워 오고 있는 우파(右派) 결의의 한계점

이 번 결의의 특징은 코오메이토오(公明黨)라든가 민슈토오(民主黨)에 타협하는 결의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민토오(自民黨)系가 의회의 단독 과반수를 잃게 되는 경우, 일어나기 쉽기 때문에 이제까지 결의에 실패해 왔던 선에서 지금부터 증가돼 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결과, 이 번에 두 가지 변화가 결의 내용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첫째, 지금까지 ‘교육기본법이 조기에 개정될 수 있도록 강력히 요망한다’(치바[千葉]현 의회) 등, ‘조기 개정요구’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번 ‘국민적 논의를 해 가면서 개정이 행해지도록 절실히 요망’(홋카이도[北海道] 의회)이라든가, 또는 ‘교육기본법이 철저히 논의될 것을 요망한다’(히로시마[廣島]현 의회), 또는 ‘교육기본법에 대한 국민적 논의가 행해질 수 있도록’(오오사카[大阪] 의회)과 ‘조기개정’은 물론이거니와 ‘개정’이란 말 조차 없는 결의까지 출현하였습니다. ‘신중하게 심의하여…철저한 논의 하에 교육기본법을 개정’ 이라고 하는 둥, 대체 ‘신중한 심의 요구’인 것인지 ‘개정 촉진’인 것인지 조차 알 수 없는 결의 마저 생겨났습니다.

두 번째는, 지금까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와카야마[和歌山]현, 치바[千葉]현, 오카야마[岡山]현, 톳토리[鳥取]현 의회 등)이 의견서에 잔뜩 들어가 있습니다만, 코오메이토오(公明黨)한가 2004년 6월의 여당 중간보고에서 주장한 입장이 반영되어, ‘조국을 소중하게’(홋카이도[北海道], 셋추[攝津]市 의회)라는 표현 조차 들어 가 있는 결의가 등장하였습니다. 혹은 ‘애국심을 뺀’ 결의(오오사카[大阪]市, 시마네[島根]현 의회)가 널리 퍼져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들 결의도 개악 결의로의 흐름을 만드는 것으로 우리들은 당연히 저지 운동을 펼쳐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만, 전국의 결의 내용을 분석해 볼 때, 우파(右派)의 개악 결의 운동은 그 추진력 뿐만이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한계점에 달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전부의 결의 내용을 엄밀히 분석해 대체 무엇이 국민 여론인가를 해명하는 작업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중앙에서 꽉 막혀 있어 좋은 기회

우파(右派)가 막다른 길에 와 있는 것은 중앙에서도 현저합니다. ‘삼위일체 개혁’에 따르는 ‘의무교육비 국고부담 제도’의 폐지를 둘러싸고, 지금까지 교육기본법의 개악을 추진해 왔던 세력이 분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개혁은 아이들의 교육을 보장하는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만, 우파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교육의 국가주의적인 통제를 약화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교육기본법 개악운동의 중심을 맡고 있는 타카하시 시로오(高橋史郞) 민간교육 임시조사회 운영위원장은 이 개혁에 반대하여, ‘의무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명확히 해야 한다’ ‘교육기본법 개정 논의를 훨씬 늦춘다’(<日本の息吹>04/12호)라고 비판하고 있으며, 그들의 이론적 기둥인 코보리 케이이치로오(小堀桂一郞) 동경대학 명예교수도 ‘교육이 지방분권의 원칙 하에 운영혁되는 경우 각각의 지방이 내걸고 있는 교육원리보다도 (국가의 교육이) 하위 차원으로 자리하게 된’(산케이[産經]신문 11/22)다 라고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同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총무성입니다. 그 중심 인물은 아소오 타로오(麻生太郞) 장관으로, 그는 교육기본법 개악운동의 중심=일본회의에 의한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회장이기도 합니다. 역시 교육기본법 개악을 추진해 왔던 모리 요시로오(森喜郞) 전 총리 등은 교육기본법의 개악에 있어 ‘개혁’은 허락할 수 없다고 하여, 아소오氏와 코이즈미氏를 격렬히 비난하고 있습니다. 지민토오(自民黨)와 코오메이토오(公明黨)가 추진해 온 ‘교육기본법 개정에 관한 검토회’의 호리 코오스케(保利耕輔) 좌장(座長)도, 이 ‘개혁’에서 교육기본법 ‘개정안의 논의는 처음으로 되돌아 가지 않으면 안 된다’(쿄오도오[共同]통신 12/4)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리氏가 그 다음날, 교육기본법 개정안을 2005년의 ‘통상국회에 내고 싶다’(산케이 12/5)라고 응하는 꼴. 교육기본법의 개악을 추진하는 것으로 오히려 삼위일체 ‘개혁’을 저지할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상태라면, 2005년 가을에 중앙 교육심의회에서 앞서 말한 ‘개혁’에 대해 의무 교육비의 결론이 나올 때까지, 법안 상정 연기의 가능성이 다소 있습니다. 그러한 사태를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우파는 지방의회에서, 내용을 무시한 초조함 속의 결의 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여기에서 생겨난 시간적 여유를 잘 살려, 서두르고 있는 국회와 지방의회를 강하게 압박한다면 교육기본법 개악 저지의 가능성도 크게 열리게 될 것입니다.

출처:시민의 교과서 연구소 홈페이지
http://www.h2.dion.ne.jp/~kyokas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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