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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에 의한 우리 역사왜곡, 그리고 이것이 가져올 국가이미지 훼손에 대한 우려가 뜨거운 가운데 아시아에서 시작된 한류열기가 최근 태평양을 건너 중남미 지역으로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아직 열풍이라 할 수는 없고 그저 미풍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자못 기대가 되는 현상임에 틀림없다. 이들 나라에서는 한국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하는 관심을 지니고 최근 멕시코,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중남미 4개국을 방문하였다. 한국바로알리기 사업의 핵심인 이들 나라 교과서 속의 한국 관련 내용 개선을 위한 나들이였다.

금년 말 대통령 순방을 앞두고 있는 중남미 지역의 교과서 속에 한국은 어떠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을까? 한 마디로 말해서 “한국은 없다.” 대부분의 교과서가 한국을 아예 다루고 있지 않다.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우리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나라, 거리에서 움직이는 자동차의 30%정도가 우리 자동차인 나라 칠레의 교과서에 실린 한국 모습을 엿보면 짐작을 할 수 있다.

중등 사회과 교과서 9종 중 5종에서는 한국을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한국을 다루고 있는 나머지 4종의 교과서는 주로 한국전쟁과 이에 따른 분단을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매우 부정확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세계사』 교과서는 한국전쟁이 1953년이 아니고 1951년에 끝났다고 서술하고 있고 유일한 한국관련 사진으로 김일성의 초상화가 들어있다. 그리고 1965년과 1968년에 한국과 북한 사이에 국경분쟁이 있었다는 우리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아마도 무장간첩 남파 사건을 그렇게 표시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아시아의 신흥 공업국 중의 하나로서 한국은 아직도 저임금, 대규모 반체제 운동에 대한 폭력적 진압으로 갈등하고 있는 나라로 묘사하고 있다.

한국을 다루고 있는 또 다른 교과서 『역사 및 사회과학 4』나 『사회탐구 및 이해』에서도 한국은 전쟁이나 분단으로 상징되는 국가일 뿐이다. 『역사 및 사회과학 4』에서 한국은 아세안(ASEAN)에 대한 설명 부분에서 신흥공업국으로 잠깐 언급되고 있다. 『사회탐구 및 이해』의 ‘세계의 다양한 문화’ 부분에는 한복을 입은 남녀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 설명문에는 “자신의 전통을 자신감 있게 뽐내는 일본인들”이라고 소개되어 있으니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중남미 교과서들을 통해 한국을 배운다면 한국은 전쟁을 겪고 분단된 나라, 그리고 최근에 공업국으로 성장하였으나 사회적 불안이나 갈등은 여전한 나라에 불과하다. 역사나 문화가 전혀 없는 나라, 민주적 질서와는 거리가 먼 나라, 그러면서도 첨단 전자제품을 생산해내는 멀고도 먼 이상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러기에 이곳에 진출한 일부 한국 기업들은 자사 제품 홍보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와의 관련성을 애써 감추려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이미지가 기업이나 제품 홍보에 방해가 되고 있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이미지 개선이 시급함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다.

이들 나라의 교과서 속의 한국관련 내용 시정을 요구하기 위해 각 국 교육부나 교과서위원회, 출판사를 방문했을 때 이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한국이란 나라는 그저 경제발전을 갑자기 이루어 낸 신흥공업국인줄로만 알았는데 국가이미지 개선을 위해 이렇게 먼 지구 반대편까지 직접 달려올 정도로 여유가 생긴 나라, 교과서를 통한 상호 이해 증진에 관심을 쓸 정도로 문화적 수준이나 의식이 높은 나라라는 데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일본보다 낫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우리의 방문만으로도 국가이미지 개선에 기여하는 듯하여 유쾌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스페인어와 영어로 된 한국관련 자료들을 전달하며 앞으로 교과서 개정을 할 때 한국관련 내용 집필에 참고해 줄 것을 부탁하면 모두들 당연히 그러겠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현지의 반응으로 보아 우리가 계속해서 자료와 정보 제공 노력을 기울이는 한 2-3년 이내에 이 지역 교과서의 한국관련 내용은 획기적으로 증가되고 개선될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일본해에 가려 없어진 동해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희망과 함께 찾아드는 수치심도 감출 수 없었다.

요즘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이른바 브릭스(BRICs)의 첫 나라 브라질은 인구 1억 6천의 자원부국으로서 포르투갈어를 쓴다. 포르투갈과 아프리카의 일부 지역까지 계산하면 지구상에서 약 3억 명이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교민만도 5만을 헤아리고 아주 훌륭한 한국학교도 있다. 그런데 포르투갈어로 된 한국 소개 자료가 현재 단 하나도 개발된 것이 없다. 일본과 비교해 보라고 현지 교포가 우리에게 포르투갈어로 된 일본 소개 자료를 보여주며 하던 충고를 잊을 수 없다. 미국에 대한 반감, 영어에 대한 반감을 많이 노출하고 있는 브라질의 교과서 관계자들에게 영어와 스페인어로 된 한국 소개 자료를 내밀 때의 느낌은 아쉬움이나 미안함을 넘어 수치심에 가까웠다. 우리에게 일본어로 된 자료를 쥐어주며 참고하라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문화외교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주요언어로 된 우리의 역사와 문화 소개 자료를 개발하여 필요한 곳에 전달하는 것은 문화외교의 출발점이며 국가이미지 제고 사업의 핵심이다. 정부 뿐 아니라 민간기업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중남미 지역에서 느낀 한국. 대단하면서도 보잘 것 없는 나라였다. 대단하면서 볼만한 나라로 만드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지?

이길상(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국제한국문화홍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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