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의 향기

조선 선비의 독서 진흥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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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고문서연구실

   한 해를 시작하며 작성하는 버킷리스트에는 ‘일 년에 책 ○○권 읽기’, ‘한 달에 책 ○권 읽기’ 등 독서와 관련한 다짐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지키지 못할지언정 우리가 독서를 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는 이유는 아마도 어린이 전래동화 전집, 청소년 필독도서 등으로 학습된 효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성인의 월평균 독서량은 한 달에 채 한 권도 되지 않는 0.8권으로 이는 미국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 중국 2.6권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수치이다. 이를 근거로 한국교육방송공사 EBS는 2023년 10대 기획 중 하나로서 대국민 독서 진흥 프로젝트를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조선시대 우리 선조가 남긴 기록유산 중에는 일상생활에서 꾸준히 독서를 하고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기록한 자료가 남아있다. 개인 차원에서 진행한 독서 진흥 프로젝트의 결과인 셈인데, 바로 장서각 수집자료 ‘광주 평산신씨 신대우 종가 전적(廣州 平山申氏 申大羽 宗家 典籍)’에 포함된 『문사(文史)』와 『일월사사(一月私史)』이다. 두 자료의 작성자는 신명호(申命濩, 1790~1851)로, 조선후기의 문신 실재(實齋) 신현(申絢, 1764~1827)의 아들이자 완구(宛丘) 신대우(申大羽, 1735~1809)의 손자이다.


시문

   먼저 『문사』는 자신이 읽은 책의 주요 내용을 선별하여 기록한 초집(抄集)이다. 2권 2책으로 구성되었으며, 신명호의 장서인(藏書印)인 ‘신명호인(申命濩印)’과 ‘중소(仲韶)’가 찍혀 있다.<그림 1>

   그가 1817년(순조 17) 책 말미에 남긴 발문(跋文)에 따르면 15세에 『사기(史記)』를 읽고 잊어버린 지 몇 년이 지났다가 1813년(순조 13) 겨울에 다시 익히고 중요한 문장을 기록하여 순서에 따라 권을 상‧하로 나누었다고 한다. 『문사』라는 제목은 “그 글은 사관이 쓴 것이다.[其文則史之.]”라고 한 맹자(孟子)의 말에서 따온 것이었다.


   선별한 내용은 『사기』가 출처인 고문(古文)으로, 진시황(秦始皇)‧이사(李斯)‧한무제(漢武帝)‧공손홍(公孫弘) 등 제왕과 재상의 문장이 대부분이다. 굴원(屈原)의 「회사부(懷沙賦)」,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부(子虛賦)」 등도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은 신명호의 친필이지만 하권의 일부 내용은 종숙(從叔), 친우 등의 손을 빌려 기록하기도 했다. 그중 ‘흉노유한서(匈奴遺漢書)’부터 ‘장탕상서(張湯上書)’까지 맡아서 쓴 권빈(權馪)의 경우에는 자신과 필적이 유사한 까닭에 많이 요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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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사』가 초집이라면 『일월사사』는 신명호가 25세 되던 해인 1814년(순조 1)에 6월 1일부터 29일까지 한 달 동안 쓴 독서일기이다. 일기의 첫 장에 있는 신명호의 서문(序文)에 따르면 『일월사사』는 그가 고향인 광주 집에서 웃어른을 모시며 살면서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기 위해 남는 시간마다 책을 읽고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다.<그림 2>


   신명호가 읽은 책은 『주례(周禮)』, 『주자유서(朱子遺書)』 뿐만 아니라 도가류(道家類)인 『포박자전(抱朴子傳)』, 중국 정사 중 하나인 『양서(梁書)』, 『수서(隋書)』 등으로 다양하다. 애사(哀辭)‧행장(行狀) 등의 글과 당시문선집(唐詩文選集)인 『당문수(唐文粹)』에 수록된 시도 읽었다. 기록한 내용 역시 다채롭다. 첫날에는 『주례』 「천관총재 상(天官冢宰上)」을 읽고 책의 내력을 기록했다. 이 책은 정유성(鄭維城, 1596~1664)이 대사성일 때 하사받은 것이었으며, 1648년(인조 26) 『국조보감(國朝寶鑑)』 기록에 “『주례』를 새로 인출하고 조정 신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이 시기일 것으로 생각된다고 적었다.



   『손지재집(遜志齋集)』의 경우에는 저자인 방효유(方孝孺)에 대해 그의 첫 스승인 송염(宋濂)이 엄숙하고 영특하며 학식이 출중하다고 칭찬했던 말을 기록했다. 다른 날에는 또 방효유의 사람됨을 칭송하면서 자신이 어렸을 때 “삼군의 장수는 빼앗을 수 있어도, 필부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라는 『논어(論語)』 구절을 인용하며 그를 기렸던 일을 추억했다. 이밖에도 단순히 어떤 책이나 글을 읽었다고 짤막하게만 적은 날도 있었으며, 조상의 시문집을 교정하는 일로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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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점의 자료를 통해 우리는 신명호의 독서 취향뿐만 아니라 그가 어떤 학자를 좋아했는지도 알 수 있다. 또한 이 자료들은 그의 삶에 꽤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명호의 생애를 연도별로 간략하게 기록한 『패위헌연보(佩韋軒年譜)』에서 나이 25세인 1814년에 해당하는 내용에 『문사』와 『일월사사』가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림 3> 밤낮으로 책을 읽으며 독서기록을 꼼꼼히 남겼던 신명호는 이 해 겨울에 심한 눈병을 앓기까지 했다.


   인스타그램, 틱톡 등 SNS와 유튜브, 넷플릭스 등 OTT의 열풍으로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되면서, 책은 우리 손에서 더욱 멀어져갔고 언젠가부터 독서는 큰 결심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봄꽃이 만개하고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는 요즘, 한국학중앙연구원을 산책하는 길에 잠시 한국학도서관에 들러 책 한 권을 빌려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