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연 사람들

조직문화에 있어서는 ‘사람 냄새’가 나는 한중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중연의 풍경은 겨울 문턱 앞 막바지 낙엽들로 고즈넉하며 평온하다. 조용한 연구원 분위기와 달리 팀내 분위기를 즐겁고 활기차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연구정책실 문수영 선생을 만나보았다.


문수영 사진

연구정책실은 어떤 곳인가요? 그중 어떤 일을 담당하시나요?


연구정책실은 중·장기 연구정책 기획 및 지원, 교원업적평가 및 연구직 직무수행 평가, 연구소 운영 지원, 연구기획위원회 및 연구윤리위원회 운영, 국내외 한국학 연구현황 조사 및 자료 구축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실은 실의 특성상, 교원(실장), 연구원, 행정직 등 다양한 직종의 선생님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밖에서 보기에는 업무도 기획, 평가 업무 중심이고, 각기 다른 직종의 구성원들로 구성되다 보니 다소 분위기가 딱딱하거나, 보이지 않는 직종간의 마찰 등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시겠지만, 단연코 말씀드리는데 전혀 없습니다. 저희 실 구성원들은 각자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자부하며, 소수의 인원이라 가족처럼 화목한 분위기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연토피아’라는 얘기도 들리더군요.(웃음)

저는 올해 1월에 연구정책실에 인사발령을 받았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연구정책실은 연구처 소관으로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과업은 우리 한중연의 연구사업이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성 제시를 위한 로드맵을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아울러, 신규 중·장기 연구과제들의 발굴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장기적인 기획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현재 미숙한 점도 있지만 연구정책실이 주축이 되어 지속적으로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랜시간 근무하셨는데요. 선생님께 연구원은 어떤 곳인가요?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2003년부터 여러 부서에서 다양한 업무를 해왔던 것 같네요. 부서만 나열해도 연구행정과, 총무팀, 교학실, 한국학진흥사업단, 기획조정실, 한국바로알리기사업실, 현재의 연구정책실 등입니다. 이렇게 나열해 보니 여러 부서에 근무하면서 있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네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들을 얘기하자면 아마 하루가 걸릴 것 같은데, 지면 관계상 한 가지를 든다면 가장 최근에 근무한 한국바로알리기사업실에서 근무하면서 경험했던 얘기입니다.

워싱턴 출장사진

한국바로알리기사업은 외국교과서를 개선하여,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의미 있는 사업입니다. 2016년 11월경 당시 미국 교과서 개선 활동의 일환으로 미국 워싱턴 해외 출장을 간 적이 있습니다.

당시 미국 교과서 담당 실무 선생님, 홍보 담당 선생님, 그리고 서포트를 하기 위해서 저와 다른 실무 선생님과 같이 갔었죠. 개인적으로도 미국은 처음이라 무척 궁금했었습니다. 더군다나, 다른 도시도 아니고 미국의 수도를 간다고 하니 업무차 가는 것이긴 했지만 무척 설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간의 행정직으로 해왔던 일들은 대부분 사무실 내에서 행정 업무를 많이 했었는데, 당시 미국 워싱턴 출장을 동행 및 수행하면서, 미국의 수도 한 복판에서 대한민국을 알리기 위한 활동의 일원이 되었었다는 것이 너무나 뿌듯하고 자부심이 생기더군요. 그리고 당시 같이 갔었던 멤버들도 각자 국외 출장 업무에서의 역할들을 잘 숙지하여 똘똘 뭉쳐서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가끔 당시 멤버들을 보면 더 친근함을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는 고기를 좋아하는데, 미국에 가서 현지 음식을 먹어보곤 확실히 느꼈습니다. 미국 음식이 제 입에 맞는다는 것을...


근무하시면서 즐거운 점은 무엇인가요?


연구원에 근무한 지 지금 계산해보니 17년 정도 되가고 있네요. 물론 저보다 더 많은 경험이 있으신 선배님들도 계시지만, 어느덧 저도 중견 직원이 되어 가고 있는 듯싶습니다. 처음에 입사할 때는 제 첫 직장 이다보니 부모님 밑에서 자라 처음으로 제가 개설한 통장에 월급이 들어와서 찍히는 것을 보고 너무 기뻤습니다. 17년이 지난 지금 단순히 월급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의미로 저를 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곳, 또 (여러 선생님들도 아시는 일이지만) 사랑스런 아내를 만나게 해 준 곳으로 저에게는 너무 소중하고 큰 의미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원내에서 항상 친근한 분위기를 이끌어내시죠. 재미있는 직장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세계한국학대회 사진

저는 직장내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제가 MC가 되곤 합니다. 같이 일하고 있는 인턴 선생님이 있는데 그분도 저에게 MC같다고 하더군요. 스포츠기자나 MC로 전향해도 잘하실 수 있을 거라는 농담도 던집니다.

요즘은 대화가 부족한 시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사람들과 만나면 대화를 즐겨할 생각입니다. 이것이 정의롭고 밝은 한중연을 유지하기 위한 밑거름 아닐까요?(웃음).

서로 간의 대화와 더불어 또 한가지 필요한 것은 ‘원칙에 의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태도’가 아닐까 싶어요. 성능 좋은 스마트폰도 규칙에 따른 프로그래밍이 되어있어야 그 좋은 기능을 사용할 수 있듯이 마찬가지로 연구원의 구성원들도 원칙 없이 견강부회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각자의 능력을 백분 발휘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유념해야 할 부분이구요.

제가 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조직이 만든 원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업무는 ‘건조한(영어로 자주 쓰는 표현은 드라이하게)’ 분위기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수행되고, 조직문화에 있어서는 ‘사람 냄새’가 나는 한중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쩌다보니 심각해 졌네요(웃음).


예능에서 갑자기 시사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정말 MC 맞으시네요!, 그런데 선생님의 MC능력을 공중파방송에서 볼 수 있을 뻔 했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


아 네에(웃음). 제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었습니다.(고속버스를 타고 당일 치기로 지방에도 다녀올 정도로..)

지금은 사라진 제도입니다만, 제가 초창기 신입 직원 이었을 때는, 일·숙직 제도가 있었죠. 어느 일요일 저녁인가였는데 홀로 외로이 숙직 업무를 보고 있는 와중에, 숙직실에 있는 공중파 TV에서 일요일 오전 시간대에 방송하는 “우리 결혼할까요?”라는 프로그램의 광고를 하더군요. ‘대한민국의 모든 선남선녀들의 신청을 기다린다’ 라는 광고였습니다. 그 당시에도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던 중이었으므로 ‘그래 방송국을 가보자!’ 라는 결심을 하고 재직증명서와 저의 프로필 사진을 구비하여 방송 출연 신청을 하였죠. 그런데, 얼마 후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서류 전형에 합격 한 거에요. 근무하고 있는 와중에 방송국 작가 선생님으로부터 ‘작가 면접’ 참석하라는 요청이 왔었습니다. 이제 결혼할 수 있겠구나(?)라는 기쁜 마음에 여의도에 있는 방송국 공개홀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면접도 잘 통과하고 공개녹화 방송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녹화 2주전쯤인가, 어느 날 청천벽력같이 스포츠 신문 연예코너에 이 프로그램이 폐지된다는 기사가 떴더라구요! 그때 받았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방송에 출연하면 좋은 사람도 만날 수 있고 공중파에서 우리 한국학중앙연구원(당시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홍보도 해야겠다 하며 좋아했었는데 많이 아쉬웠던 기억이 납니다.

아! 물론 저는 지금의 아내를 만났으니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네요!(웃음)


재미있는 옛 이야기가 술술 나오네요. 일직, 숙직이 없는 요즘은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야구분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사내동아리 야구부

저는 야구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래서 퇴근 후 미국 메이저리그나 국내 프로야구는 바빠서 지나친 경기도 꼭 하이라이트를 봐야 하는 야구광입니다. 그리고 게임 마니아이기도 한데, 역시 즐겨하는 것은 메이저리그 야구 게임입니다. 얼마 전까진 우리 한중연 야구단 멤버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해체해서 무척 아쉽네요.

또 한가지 좋아하는 것은 음악입니다. 중학교 때인가, 지금은 장수 프로그램인 ‘배철수의 음악캠프’ 첫 방송을 접하고 나서 더욱 음악 마니아가 되었죠. 한참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락을 모르면 음악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라는 생각으로 락 음악에 빠졌었습니다. 그 당시 주로 좋아했던 그룹은 콘, 림프비즈킷처럼 여러분들이 잘 모를 수 있는 하드코어 락 그룹을 좋아했죠. 그런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장르 불문하고 첫 곡을 듣고 느낌이 오면 다 좋아해요. 요즘 즐겨듣는 음악은 ITZY의 ‘달라달라’에요. 출근할 때마다 들으면 힘이 납니다.(웃음)


세계한국학대회 사진

먼 이야기지만 선생님의 은퇴 후 인생 제2막은 어떤 이야기로 채워질까요?


사람을 좋아하고 함께하는 것을 즐겨하는 제 특성상,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을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창업을 통해 많은 손님들을 만나 보는 거죠. 창업을 한다면 제가 좋아하는 ‘보쌈’이나 ‘닭볶음탕’을 주 아이템으로 해서 창업 하고 싶어요(웃음) 저희 아내가 요리를 정말 잘하거든요! 아내만 허락해 준다면 창업성공을 자신합니다! (제2의 백종원을 목표로!) 아! 물론 아내에게 이 얘기는 아직 비밀입니다.(웃음)


앞으로 개인적으로 바라는 점 또는 미래의 이상향인 모습, 상황이 있나요?


저의 좌우명은 ‘오늘은 어제 죽은 자가 그렇게 살고 싶어하던 내일이다!’ 입니다. 하루 하루에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저의 가정에 항상 좋은 일들만 가득하길 바라고 건강이 넘쳐났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구태의연한 표현 같지만, 살다보면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쉽지 않게 느껴져서입니다.

우리 연구원 가족들도 모두 행복하게 지내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속한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세계적 수준의 한국학 연구 기관으로 발돋움했으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연구원의 일원으로서 매사에 최선을 다하며 거듭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끼고 싶습니다.

그리고 직장의 선배로서 저도 언젠가는 정든 연구원을 떠나겠지만, 떠날 때 후배들에게 선배와의 이별에 아쉬움을 줄 수 있는 선배로 남고 싶은 바람입니다. 제가 퇴직하는 날 연구원 앞의 양평해장국에서 선배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따뜻한 해장국 한 그릇을 기꺼이 사줄 수 있는 후배님들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