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사행록(使行錄)을 활용한 한중관계사 연구의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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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장서각 왕실문헌연구실 선임연구원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우리나라의 고대부터 현재까지 중국은 일본과 함께 가장 많은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웃나라 중 하나이다. 중국에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우리나라와 국교가 단절되었던 때도 있었지만, 1992년 수교가 재개된 이래 양국의 학계에서 관계사(關係史) 연구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 왔다.

조선시대 이웃 국가와의 대외 관계는 일본, 류쿠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화친을 도모한 교린(交隣) 관계와 중국과 같은 대국에 대한 정기적인 조공(朝貢)을 통해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사대(事大) 관계로 나뉜다. 그중 조선에서 중국으로 파견한 부경사행(赴京使行)은 한중관계사 연구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아 왔고, 부경사행을 기록한 사행록은 약 600여종으로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중국 체험을 통한 당시 상황을 전달하여 관계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로 활용되고 있다.


1960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연행록선집』 2책과 1976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국역한 『연행록선집』 12책이 출간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한중수교 이후인 2000년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연행록선집보유』 3책이 출간되었고, 2001년 후마 스스무(夫馬進) 교수와 임기중 교수가 수집한 『일본소장편-연행록전집』 3책, 임기중 교수가 수집한 사행록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출판부에서 100책으로 출간한 『연행록』 시리즈와 2008년 상서원에서 간행한 『연행록속집』 50책 시리즈는 조선시대 중국 사행록을 집대성하여 연행학(燕行學)이 한중관계사의 새로운 학문분야로 급부상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이후 연행록을 기초로 하는 한국학계의 관계사 연구는 그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조선전기 조천록(朝天錄)과 조선후기 연행록(燕行錄)에 나타나는 사신들의 사행시와 수창시문에 대한 문학적 접근을 비롯한 사행록의 기술 방식의 특징, 사행 당시 견문과 체험을 통한 중국사회의 내면을 파악하거나 사행 노정이나 공간 탐색을 통한 인식, 사행을 통한 양국 지식인들의 교류와 18세기 천주당에서 서양문물의 경험을 통한 세계 인식의 확장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중국 학계에서도 홍대용, 박지원, 유득공, 박제가 등 북학사상에 영향을 미친 조선 지식인들의 사행록, 청조 중기 사신 왕래 연구와 16~19세기 초 한중 문화교류 연구를 중심으로 사신 왕래의 제도적 성립, 종류와 임무, 인원구성, 노선, 관사, 외교 의례, 예물, 경제활동, 문화교류를 중심으로 사행 전반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최근에는 조선사절의 시각에서 본 중국 연희와 공연예술, 식생활과 복식, 명청대 북경의 조선관(회동관), 북경 유리창과 조선 문인들, 조선사신을 통한 중국 서적의 조선 전래 등 연구 주제가 점차 각론으로 세분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양국 학계에서는 사행록뿐만 아니라 조선전기 최부의 『표해록』과 같이 뜻하지 않은 표류로 인한 조선인들의 15세기 강남 일대의 경관 및 운하의 실상에 대한 경험에도 주목하여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또한 병자호란 이후 청의 인질로 끌려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관료들이 8년 동안 심양 관소로 사용했던 심양관을 중심으로 기술된 『심양일기』, 『심양장계』, 『심관록』 등을 통해 17세기 전반 청조의 심양관 운영과 조선 정책 결정 과정을 연구하였다. 그밖에 미술사학계에서는 중국사행을 동행한 화원이 그려온 기록화를 중심으로 연구의 성과를 축적해 왔다. 이러한 연구는 기록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사행 노정의 사적과 사행단의 행렬, 중국에서 조선사절의 주요 견문의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어 연행학의 외연을 확장하는데 기여하였다.


한편 한문학계에서는 『황화록(皇華錄)』을 중심으로 조선을 내왕한 명나라 사신들과 조선 원접사 및 관반사들이 수창한 시문이 연구되었으나, 시체(詩體)와 관련한 다양한 연구와 수창 인물들의 교류 현황 등을 좀 더 자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2003년 중국에서 명청대 조선을 왕래한 중국 사신들의 문집을 엮어 『사조선록(使朝鮮錄)』이 간행되었고, 2012년 한국에서 이에 대한 역주서가 발간되어 점차 학계의 인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상에서 사행록을 통한 한중관계사 연구의 현황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러한 사행록의 연구가 학계에서 보다 주목받기 위한 몇 가지 첨언으로 맺음하려 한다. 첫째, 사행록은 그 내용이 매우 흥미롭고 당시 시대 상황을 비교적 잘 반영하고 있지만, 견문을 통한 개인사적인 기록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그 기술 내용이 모두 공식 사료와 같은 무게감을 갖지는 못하다. 따라서 사행록을 연구에 인용할 때는 필요에 따라 당시의 한중 사료를 함께 검토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둘째, 사행 관련 시문이 사행을 경험한 인물의 개인 문집에 포함되어 독립적으로 노출되지 못한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지속적 발굴이 필요하다. 셋째, 양국을 왕래하면서 이루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연구가 아닌 한중 학계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된다.

jeje@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