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칼럼

환경 실천은 현대사회만의 전유물일까

한국학중앙연구원 ESG위원회
혁신홍보팀 곽병훈 팀장


  우리는 보통 환경 실천의 문제를, 현대사회가 낳은 지구 온난화, 환경오염 등 지금의 환경문제와 연관해서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최근의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개념은 과연 현대사회의 지적 공동체가 만들어낸 전유물일까. 이미 오래전 우리 선조들은 일명 ‘생태적 삶’으로 불리는 친환경적 생활을 몸소 실천했다. 이 속에서 우리는 친환경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환경

  선조들은 자연을 정복이 아닌 공존의 대상으로 보았다. 인간과 생물 모두 하늘의 뜻으로부터 생성된 것이기에 인간은 자연을 이용할 수는 있지만 이용에 있어 선악(善惡)을 살펴야 하고, 이용에 앞서 하늘의 명(命)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1) 자연을 이용하는 데 있어 경(敬)을 중시하는 자연 존중과 공존의 정신이 선조들이 자연을 대했던 태도였다. 인간은 자연이란 공간을 빌려 쓰는 존재일 뿐이라고 선조들은 여겼다.


  옛 마을에서 종종 발견되는 돌푯말에 적힌 '기회자 장삼십(棄灰者 杖三十)이요, 기분자 장오십(棄糞者 杖五十)‘이란 말이 선조들의 이런 마음가짐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 말은 재를 버리는 자는 곤장 30대, 변을 버리는 자는 곤장 50대에 처한다는 뜻이다.2) 똥과 재를 들판이나 강에 버린다는 것은 유용한 거름 자원을 낭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환경 또한 오염시킨다는 생각의 다른 표현이었다. 설거지와 빨래에 잿물을 사용하고,3) 산림 훼손의 주범인 가축 방목 행위 또한 엄하게 다스릴 만큼 선조들은 생태 순환의 법칙을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


  국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산림 훼손을 막기 위해 소나무 도벌을 국가 차원에서 금지했다. 화전 금지, 자연 훼손 금지 등을 법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일반 서민들도 「송금작계절목(松禁作契節目)」이란 자치 규정을 두고 계(契)까지 조직해 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지방에서는 오늘날 그린벨트라 할 수 있는 소위 금산(禁山: 입산을 금지한 산)을 지정해 벌목이나 방화를 금했다. 말라 죽는 소나무조차 베지 못하도록 했다는 기록4)이 눈에 띈다. 나아가 수렵 금지 구역을 설정해 일반의 출입을 제한하기도 했다.5) 고기를 잡기 위한 약물 사용 금지, 동물 보호 구역 설정 또한 수질오염 방지책으로 평가되고 있다.6)


  이렇듯 우리 선조들은 자연과 공존하며 친환경적인 삶을 살았다. 선조들의 이런 삶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현대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발만능주의,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환경문제가 현대사회의 가장 큰 난제가 된 현실에서 선조들의 ’생활 속 녹색 실천‘의 현재적 가치를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생태친화적 미래를 구상해야 할 때라 생각한다. 전통에서 환경 실천을 배우는 역사적 접근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참고자료>
1) 오승봉ㆍ안동만, 1995, 「조선시대 자연환경보전에 관한 연구」, 『한국조경학회지』 23권 1호, 53쪽 참조.
2) “똥을 버리는 자에겐 곤장 50대였으니~기분자 장오십 棄 糞者 杖五十”(경남도민일보』, 2005년 9월 3일).
3) “이미 수백 년 전 우리 선조들은 녹색 생활 실천했다”(『오마이뉴스』, 2010/11/15).
4) 오영석ㆍ최병옥, 2000, 「조선시대 자연자원관리체계에 관한 연구」,『한국행정학보』 34권 1호.
5) 『조선왕조실록』 성종19년 7월 9일.
6) 오승봉ㆍ안동만, 1995,「조선시대 자연환경보전에 관한 연구」, 『한국조경학회지』 23권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