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개인, 왕실에 대한 관심과 의궤와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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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환
장서각 고문서연구실 책임연구원

조선 시대 왕실의례는 왕실만을 위한 행사라는 의미를 넘어 국체와도 관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왕실과 국가를 정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왕실의례를 위하여 왕실을 비롯한 국가조직이 총동원되었다. 도감을 중심으로 중앙관서는 물론 지방관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모든 재원이 동원되었다.

왕실의례는 생애주기의 관점에서 출합, 가례, 진연·진찬 그리고 봉릉의 사례들에서 살펴볼 수 있다. 국왕은 왕실 문제와 국가 경영 사이에서 고심했으며, 신료들은 왕실의 지출을 견제하려 했다. 의례에 방대한 물력과 인력이 동원되어야 했기에 이들 재원의 규모에 대한 국왕과 신료 사이의 끊임없는 절충 과정은 복잡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왕실의례와 관련하여 왕실문화를 창출하기 위한 물적 토대를 밝히지 않고는 조선 시대, 그리고 왕실과 국가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다. 조선 왕실의 의례를 중심으로 재원 운영의 실태를 밝히는 일은 왕실문화를 알고자 하는 모두에게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한국학 연구는 실록 등 관찬 사료를 인용한 거시적 조망, 고문서를 활용한 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미시적 분석이라는 방법과 흐름을 통해 많은 성과를 달성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던 왕실에 대한 규명을 시도하여, 출산에서부터 국장에 이르는 일련의 왕실문화의 성격을 알리기도 했다. 의미 있는 성과이다. 한국학 연구가 점차 다양한 층위를 이루면서 깊어지는 만큼, 이제 풍성한 성과의 21세기 한국학 연구를 기대해 본다.


왕실문화라는 용어도 학계의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일단 양적 연구 성과는 충분하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대로 ‘왕실문화’를 가능하게 했던 경제적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있다. 한편으로는 국가 재정의 관점에서 접근하기도 하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국가와 왕실의 분리 혹은 혼재라고 하는 특징을 둘러싼 논쟁도 있다. 이러한 쟁점에서 한 발 물러서서 초심으로 돌아가 그 시대의 기록을 그 시대 사람의 시선으로 읽어 볼 필요는 있다. 그 실마리는 아무래도 조선 후기의 의궤와 등록에 있는 것 같다.


조선 후기는 이른바 근대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역사적 성격을 추적하고 해석하기 위한 연구의 대상이었다. 조선 후기가 내포하고 있던 독창성과 특수성에 대한 조명을 통해 이른바 근대화를 위한 자생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조선 후기의 모습은 조선만의 특징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즉, 왕실 각종 의례의 주체 구분을 왕실 또는 국가로 단정 짓기 힘든 문제, 그리고 의례를 작동하게 하는 여러 인력과 물력을 동원하는 구조의 복잡함과 모호함은 조선의 특징일 수 있다.

조선 시대를 바라보는 연구자의 시각은 혼란스럽다. 왕실의례를 현대적 개념의 ‘재정(Fiscal)’의 관점에서 접근하기에 조선은 신비롭다. 이러한 고민에 집중하고 있을 때 뜻하지 않게 독일의 어느 한국학 연구자가 던진 말은 의미가 있다. 현대 재정의 관점에서 보면 복잡하고 규정하기 어려운 난맥상이, 어쩌면 조선을 500년 동안 가능하게 했던 비법일 수 있다는 의견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좁혀서 조선 왕실의 각종 의례를 가능하게 했던 여러 인력, 물력 등을 재정이라는 관점이 아닌 재원(Sources)이라는 개념에서 접근하고, 복잡한 난맥상을 있는 그대로 읽어줄 시각을 갖춘다면 새로운 조선, 왕실, 국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 출발은 의궤와 등록을 다시 읽는 데에 있다.

swan@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