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S Home | CEFIA Home |  영문홈페이지

문화 포커스

한국의 교육 - 3

고등교육의 확대, 대학수학능력시험

7.30 교육개혁 : 고등교육의 확대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는 ‘7.30 교육개혁’을 발표했습니다. 이 개혁은 대학 입학시험 관리를 개별 대학에서 국가로 이관하여 중앙집권화했습니다. 이전 박정희 정권(1963년~1979년) 하의 대학입학예비고사는 선발 도구로서 부적절하여 대학별 본고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7.30 개혁은 국가 주관의 예비고사와 대학별 본고사를 모두 폐지하고 단일한 ‘대학입학학력고사’로 대체하여 이를 유일한 입학시험으로 삼았습니다. 내용은 이전의 예비고사와 비슷했지만 그 중요성은 크게 격상되었으며 이는 대학 입시 과정에 대한 국가 통제의 강화를 의미했습니다.
이 개혁의 가장 중요한 배경은 고등학생 수의 급격한 증가였습니다.
중등교육에 집중되었던 팽창은 점차 상위 교육의 팽창으로 이동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학생이 대학 학위와 그 이상의 학위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입시 제도가 개편되었고 더 많은 대학이 설립되었습니다. 고등교육 기관의 수는 1960년 80개에서 2000년 372개, 2019년 430개로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표
위 표를 살펴보면, 1970년과 1980년 사이의 한국 고교 졸업생의 수와 대학 입학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졸업생 수는 1970년 145,062명에서 1980년 460,730명으로 증가하여 10년 사이 중등교육이 크게 팽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1970년대에 고교 졸업자가 상당히 증가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예비고사 합격률은 1970년에서 1978년 사이 44.74%에서 53.48% 사이를 오갔습니다.그러나 대학 정원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대학 정원은 1970년 46,300명에서 1980년 205,835명으로 꾸준히 늘었지만 예비고사 합격자 수의 증가율에 비하면 더디게 성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1980년 한국 대학들은 자격을 갖춘 지원자의 46.42%만 수용할 수 있었는데 이는 대학 입시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대학 수용 능력이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늘어나는 고교 졸업생 수는 여전히 대학 정원을 앞질렀습니다. 예비고사 합격자의 대학 진학률은 1970년 73.44%에서 1980년 46.42%로 감소했습니다.
즉, 이 시기 고등교육 기관의 지속적인 확충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폭발적으로 늘어난 고교 졸업자 수를 대학 정원이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서 입시 경쟁은 극도로 심화되었습니다.

7.30 교육개혁은 두 가지 추가 조치를 도입했습니다. 첫째, ‘고교 내신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여 대학 입학 기준의 최소 30%를 반영하도록 했습니다. 이 제도는 고등학교 성적과 교사 평가에 의존했습니다.
둘째, 대학이 정원보다 30% 더 많은 학생을 입학시키되 졸업은 할당된 정원만큼만 시키는 ‘졸업정원제’를 허용했습니다. 이 정책은 4학년 때까지 상당수의 학생을 제적처리하도록 했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대학 중퇴율이 낮았던 한국의 관행과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7.30 교육개혁은 몇 가지 교육적 논거에 의해 지지받았습니다. 이는 고등학생들의 학업 준비를 개별 대학 본고사가 지배하던 국어, 수학, 영어 위주의 좁은 범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중 시험을 없앰으로써 학생들의 심리적, 신체적 부담도 줄였습니다. 고교 내신제의 점진적 도입 또한 주입식 시험 준비에서 벗어나 중등교육을 정상화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교육 당국자들은 이러한 변화가 고등학교 성적을 대학 선별 과정에 포함함으로써 사교육비를 절감하고 고등교육 기회를 확대하여 입시 압박을 줄일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또 다른 기대 효과는 대학의 학구적 엄격함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제적에 대한 공포가 학생들에게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동기를 부여하여 고등교육의 질을 높일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졸업정원제에는 암묵적인 정치적 목적도 있었는데 대학들이 정치적으로 활동적이었던 학생들을 낙제시키도록 압박하여 반정부 시위를 억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학생 운동은 개혁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기에 이 목표는 대체로 실패했습니다.

7.30 교육개혁은 대학 선발 과정의 통제권을 중앙집권화함으로써 교육에 대한 국가의 권한을 크게 강화했습니다. 이는 입학 결정에 있어 과외 활동과 훈육을 포함한 고등학교 생활을 강조함으로써 사회적 이동의 중재자로서 정부의 역할과 궤를 같이했습니다. 이 개혁은 고등교육 기회 확대라는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는 한편, 선발 과정과 학생 모두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여 교육 시스템 내에서 정부의 영향력을 공고히 했습니다.

고등교육의 팽창은 양질의 고등교육 가용성을 높여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졌습니다. 고등교육 기관의 수를 늘리고 기관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것이 1980년대 중반의 주요 정책 관심사였으며 그 결과 제1차 교육개혁심의회가 구성되었습니다. 심의회는 대학 입학 정원의 증원과 졸업 정원의 감축을 권고했습니다(졸업정원제는 이후 폐지되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한국의 대학생 수가 30% 이상 증가했습니다.

고등교육 기관의 주요기능으로서 연구 역량도 크게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국제화와 세계화가 교육 정책의 방향을 이끄는 지배적인 힘이 되었습니다.

글로벌 경쟁력은 고등교육 기관의 성과를 평가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가 되었고 이를 위해 대학 교원들의 연구 역량이 중요해졌습니다.

현재 고등교육이 직면한 과제는 국내외 경쟁력을 강화하고 학생들을 더 실용적으로 교육하여 대졸자 공급과 노동 시장 수요 간의 불일치를 해소하는 일입니다. 대학은 학생들이 사회에서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구조조정이 필요합니다.

고등교육이 직면한 또 다른 과제는 학생 선발과 정부 지원금의 재정 관리 측면에서 기관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교육

한국형 SAT의 수립: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중학교 입학시험 폐지와 고교 평준화 정책의 시행으로 치열한 학업적 압박은 전부 대학 입학시험으로 옮겨갔습니다. 이러한 변화로 대입 준비 시작 연령이 더욱 낮아져 많은 아동이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과 방과 후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등학교 입시 폐지는 선호하는 학군에 거주하는 것의 중요성을 높였습니다.
수년 동안 한국 정부는 대입 제도를 지속적으로 조정해 왔습니다. 가장 중요한 개혁 중 하나는 1991년 대통령 자문 교육개혁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위원회는 과목별 학력고사를 미국의 SAT(Scholastic Aptitude Test)를 모델로 한 심리측정 방식의 시험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 새로운 시험은 구체적인 사실적 지식보다는 포괄적인 능력을 평가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1991년 문교부는 대학 입시 과정의 대대적인 개편을 발표하며 대학에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했습니다. 대학들은 다음 네 가지 입학 기준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1. 학교생활기록부(내신)만 활용 (교과 성적 80%, 비교과 20%).
2. 내신과 새로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병행.
3.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함께 대학별 고사 활용.
4. 대학별 고사, 대학수학능력시험, 내신을 모두 결합.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994년 공식 도입되었으며 이후 한국 교육 시스템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제7차 교육과정에 맞춰 학생들은 자신의 필요, 능력, 흥미, 진로 목표에 따라 과목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수능은 다양한 과목에 걸쳐 수험생의 비판적 사고력과 이해력을 평가하며 매년 11월에 시행됩니다.

수능 시험날이 되면 한국은 사실상 멈춰 섭니다. 관공서와 기업은 출근 시간을 조정하고, 수천 명의 경찰관이 배치되며, 항공기 운항이 제한되고, 소음과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사가 중단됩니다. 수능은 자연재해로 인해 연기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합니다. 시험 출제 과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집니다. 고등학교 교사와 대학교수들은 유출을 막기 위해 한 달 동안 외진 곳에 격리되어 작업합니다.

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으로: 5.31 교육개혁의 지방교육자치제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한국 교육 시스템의 상당 부분은 중앙 정부, 특히 문교부(교육부)에 의해 운영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하향식 교육 시스템은 한국의 급속한 학교 교육 팽창과 교육적 효율성을 설명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효율성 위주의 접근은 오늘날 한국 교육이 가진 단점과 문제점들의 주된 원인이기도 합니다.

분권화를 위한 추진력은 1995년 5월 31일 발표된 주요 교육개혁(5.31 교육개혁) 이후 탄력을 받았습니다. 분권화 지지자들은 강력한 중앙 교육부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지역 중심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지방 교육위원회를 설립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선출된 교육위원회와 교육감에게 일부 권한을 위임하여 지역에서 운영되는 교육 기관을 육성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분권화의 뿌리는 1945년에서 1948년 사이 미 군정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역 사회에 의한 통제를 민주주의의 초석으로 보았던 미국 교육자들은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시스템이 권위주의적 통제에 취약하다고 보아 이를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시스템을 전전 독일과 일본의 권위주의 정권 부상과 연관지었습니다. 결과적으로 1949년 12월 31일 통과된 한국의 첫 교육법에는 학구와 교육위원회에 관한 조항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의 시행은 한국전쟁과 지방자치제 설립 연기로 인해 미뤄졌습니다.

교육 자치 증진을 위한 추가적인 진전은 1953년 4월 교육법 시행령이 채택될 때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진전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지방교육자치제의 부실한 운영과 문교부 및 내무부 관료 간의 마찰은 이 시스템에 대한 거센 비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나마 이루어졌던 작은 진전들도 1961년 군사 쿠데타 발발로 중단되었습니다. 그 시점에서 교육위원회는 기능을 멈췄습니다. 이전에는 대도시와 중소도시, 123개 학구에서 17개의 지방 운영 교육위원회가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61년 교육 행정은 일반 행정에 흡수되었고 교육 시스템 분권화에 대한 지원은 철회되었습니다.
1991년, 지방 자치에 대한 커지는 요구와 정치적 지원에 힘입어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해 교육자치에 관한 규정이 교육법에서 분리되었고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로 제정되었습니다. 이 법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그리고 지역적 특수성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교육 감독 책임은 16개 지역(7개 광역시 및 9개 도)을 관할하는 교육감이 이끄는 시·도 교육청으로 이관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위원회들은 더 작은 기초지자체 단위보다는 광역 단위에서 운영되었습니다.
지방교육자치법은 교육위원회의 구조와 운영, 특히 위원과 교육감의 선출 및 자격 요건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 위원회들이 의사결정 임무를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시·도 의회가 예산과 조세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그 권한은 제한적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의사결정 권한은 교육위원회와 지방의회로 나뉘었습니다.

교육 분권화는 1995년 교육부가 또 다른 교육개혁을 시작하면서 핵심적인 이슈가 되었습니다. 주요 과제는 자율적인 교육 기구의 자율 규제와 중앙 정부의 감독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1995년 교육개혁 확립 이후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3단계 권한 구조로 구성되었습니다. 중앙 수준의 교육부, 중간 수준의 16개 시·도 교육청, 그리고 기초 수준의 180개 지역 교육청입니다.

한국 교육부는 학교 교육 전반, 평생 학습, 학술 연구를 감독할 권한을 가집니다. 1990년대의 분권화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여전히 교육 정책 수립 과정에서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중간 수준에서 시·도 교육청은 교육 행정 관련 업무를 통제할 책임을 지지만 지역 교육 정책이나 장기 계획을 개발할 권한은 부족합니다. 또한 지방 정부와 교육 공무원들은 해당 지역의 고등교육 기관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2007년 한국은 교육감 및 교육의원 직선제를 도입하여 교육 행정을 더욱 분권화했습니다. 4년마다 선출되는 교육감은 관할 구역 내에서 정책을 집행할 임무를 맡습니다. 2022년 기준, 한국에는 17개의 시·도 교육청과 176개의 지역 교육지원청이 있으며 각각 여러 지역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육감 제도의 독특한 특징은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교육감 후보는 정당에 가입할 수 없으며 투표용지에도 정당 관련 사항이 표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거는 종종 후보자들이 정치적 파벌과 연대하여 캠페인을 벌이는 정치 대결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는 ‘7.30 교육개혁’을 발표했습니다. 이 개혁은 대학 입학시험 관리를 개별 대학에서 국가로 이관하여 중앙집권화했습니다. 이전 박정희 정권(1963년~1979년) 하의 대학입학예비고사는 선발 도구로서 부적절하여 대학별 본고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7.30 개혁은 국가 주관의 예비고사와 대학별 본고사를 모두 폐지하고 단일한 ‘대학입학학력고사’로 대체하여 이를 유일한 입학시험으로 삼았습니다. 내용은 이전의 예비고사와 비슷했지만 그 중요성은 크게 격상되었으며 이는 대학 입시 과정에 대한 국가 통제의 강화를 의미했습니다.

결론

한국 교육의 확대는 역사상 가장 엄격하고 영향력 있는 입시 제도 중 하나를 낳았습니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고학력 국가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회적 이동과 국가 발전의 열쇠로 여겨지는 교육은 여전히 한국 사회의 초석으로 남아있습니다. 시스템의 압박에 대한 지속적인 논쟁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한국인은 여전히 교육이 가진 변화시키는 힘을 믿으며 학벌을 개인적, 직업적 미래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깁니다. 이러한 믿음은 대학 입시의 치열한 경쟁적 성격을 고착화했습니다.

또한 지속적인 논쟁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주화 시대 동안 교육의 지방 자치는 강화되었습니다. 교육 정책은 여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로의 전환은 민주적 진보를 반영하는 지방교육 자치의 발전을 포함하여 교육 시스템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1991년 지방자치법 제정으로 교육 행정의 초점은 분권화와 민주화로 이동했습니다.

오늘날의 시·도 교육청은 지역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더 두드러진 역할을 수행합니다. 교육부는 예산 계획 및 행정적 책임을 포함한 많은 의사결정 권한을 이들 지역 교육청으로 이양했습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교육감의 리더십 아래, 지역의 교육적 요구와 필요는 더 효과적으로 파악되고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한국 교육은 오랫동안 놀라운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입증해 왔으며 교육이 모두에게 희망과 기회를 가져다준다는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또한 한국 교육은 역사적으로 더 나은 미래에 기여할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현시점은 그 본연의 역할, 즉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에 다시 초점을 맞출 것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 한국의 교육 - 1 기사 바로가기 => 한국의 교육 - 2 기사 바로가기

InfoKOREA 2025
<인포코리아>(InfoKOREA)는 외국의 교과서 개발자와 교사 등 한국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을 위해 개발된 한국 소개 잡지입니다. 외국의 교과서 저자나 편집자들이 교과서 제작에 참고할 수 있고 교사들이 수업 준비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한국 관련 최신 통계 자료와 특집 원고를 제공합니다. 2025년 호의 주제는 '한국의 교육'입니다.

발행 | 한국학중앙연구원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