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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영화로 만나는 미주 한인 이민사

이진영
이진영
(영화 감독, 나우 프로덕션 대표)
종종 “왜 한인 이민사에 관한 영화를 만들게 되었나요?”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분이 있습니다. 방송기자 시절 만났던, 이제는 고인이 된 김창원 회장님입니다. 그는 하와이의 한 건축회사 말단 사원으로 시작해 회장직에 올랐고, 미주 한인 최초로 주립대 이사장을 지냈으며, 하와이 최초의 한인 은행을 설립하는 등 한인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어른이었습니다. 인터뷰 말미, 저는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평생 수많은 기부와 사회적 활동을 이어온 원동력은 무엇이냐고. 그의 대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성인이 된 이후 일흔이 넘은 지금까지, 나는 단 하루도 우리 이민 선조들이 하와이에서 흘린 피와 땀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하루 열 시간씩 일하면서도 고국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낸 그분들의 마음을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안락한 삶은 그들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젊은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어른 된 도리이자 책임이지요.”

김창원 이사장은 하와이 이민 1세대와 동시대를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초기 이민선에 탔고,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한 선조들은 이웃의 할아버지, 할머니였습니다. 그날 처음, 역사에 진 빚과 이를 갚아야 할 책임을 깨달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번 임금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고, 전쟁으로 황폐한 고국에 대학을 설립하는 등 재건을 도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와 풍요로운 삶은 그 노력의 결실입니다.

저희 비영리 영화사에서 제작한 영화 <무지개 나라의 유산>(2021)과 <하와이 연가>(2024)는 1902년, 121명의 한국인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떠난 역사적 여정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들의 용기는 단순한 한 세대의 삶이 아니라, 오늘날 약 700만 명에 이르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최근 한국 문화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한국 역사와 문화를 교육적으로 전달할 필요성도 한층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영화관에서 찾는 작품은 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입니다. 실제로 미국과 한국의 대학, 고등학교에서 두 작품을 상영하면, 학생들은 의외로 선조들의 삶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러 한글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만, 상영료 예산이 없다.”라고 아쉬움을 전했습니다.

이에 저는 교육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무료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구상했습니다. 그러던 중, 2024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바로알리기 교육 콘텐츠 개발 및 활동 지원 사업’ 공모에 선정되며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나우 아카데미’(www.NowAca.org)는 우리 영화사의 두 작품을 중심으로 교육용 웹사이트와 전자책을 제작, 전 세계 교육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한 플랫폼입니다. 결과적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하와이로 이주한 한인의 역사와 지금의 상황을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어 활용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플랫폼은 2025년 9월 하와이에서 열린 북미 한국어교육학회 강연에서 정식 오픈하였으며, 이후 북미 초중고와 한국의 여러 교육 기관에서 실제 수업에 적용되며 이민사 교육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영화로 만나는 미주 한인 이민사

1. 두 편의 영화로 구성한 입체적 수업 구조

저는 나우 아카데미를 총 10차시 커리큘럼으로 설계하며, 학생들이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입체적 학습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각 수업에는 교실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편집 영상, 학습 목표, 역사적 배경 설명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주도적 사고를 돕는 토론 주제와 퀴즈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웹사이트에서는 이러한 요소를 ‘수업 영상’, ‘학습 목표’, ‘역사적 배경’, ‘토론 주제’ 등으로 명확히 구분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했으며, 동일한 구조의 전자책도 제작해 인터넷이 닿지 않는 오프라인 환경에서도 활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전체 커리큘럼은 두 편의 영화 서사를 토대로 단계적으로 설계되었습니다. 1~6차시는 6부작 다큐멘터리 <무지개 나라의 유산>을 중심으로, 미주 최초의 한인계 시장과 대법원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초기 이민자의 후손 다섯 명이 들려주는 경험과 통찰을 다룹니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이민 1세대의 노력과 희생이 오늘날 공동체와 개인의 정체성에 남긴 의미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7~10차시는 <하와이 연가>를 중심으로, 사진신부 임옥순의 삶과 ‘하와이의 소록도’로 불리는 칼라우파파 섬의 역사를 탐구합니다. 모든 콘텐츠는 한국어·영어 이중 언어로 제공되어, 해외 교육 현장에서도 별도의 번역 과정 없이 바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영화를 통해 역사를 경험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며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구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제가 대표이자 감독·작가로 총괄하며, 현장성과 학술성을 동시에 아우르기 위해 국내외 다양한 전문가들과 긴밀히 협력했습니다. 하와이 칼리히 카이 초등학교의 다니엘 수에히사 교사, 역사 커뮤니케이터 최태성, 인하대학교 국제관계연구소의 이진영 교수, 조지타운대학교 아시아학 전공 다이애나 김 교수 등 국제적 연구진이 참여하여 콘텐츠의 학문적 깊이와 글로벌 활용성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또한 나우 프로덕션의 배소원 팀장이 직관적이면서도 세련된 디자인 기획을 담당해, 교사와 학생 모두가 플랫폼과 자연스럽게 상호작용을 하며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그 결과, 단순히 자료를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학생 참여 중심의 쌍방향 학습 경험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나우 아카데미 수업 자료

2. 교육 현장의 긍정적 반응과 확산

플랫폼 공개 이후, 교육 현장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저는 강연자로 활동하며 국내외 여러 지역에서 강연을 진행하는데, 특히 교육청 초청 이민사 관련 강연에서 항상 나우 아카데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며, 실제로 많은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이나 프로젝트 수업에 나우 아카데미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에는 조지 워싱턴 대학교와 인디애나 대학교 한국어과 교수님들, 그리고 워싱턴 지역 한글학교에서도 활발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오는 2026년 1월 강원도 교육청 교사 연수에서는 나우 아카데미를 통한 역사 연구 방법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나우 아카데미 내 ‘게시판’ 기능에서는 전 세계 교육자들이 수업 적용 사례와 경험을 활발히 공유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려인 밀집 지역인 안산 선일중학교의 원어민 교사께서는 <하와이 연가>를 러시아어로 번역하여,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게시판에 공유했습니다. 이처럼 나우 아카데미는 단순한 온라인 자료 제공을 넘어, 전 세계 교사와 학생을 연결하는 소통의 장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콘텐츠가 언어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자연스럽게 확산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할 계획입니다.
'하와이 연가' 러시아어 대본과 디아스포라 문학 및 도서 목록

맺음말

저는 언제나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인 이민 역사를 더 많은 학생에게,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왔습니다. 이번 나우 아카데미 프로젝트는 단순히 학습 자료를 만드는 것을 넘어, 학생들이 직접 보고, 듣고, 토론하며 역사적 경험을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 플랫폼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저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나아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K-콘텐츠의 세계화’라는 더 큰 목표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뜻깊습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것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바로알리기 교육 콘텐츠 개발 및 활동 지원 사업’ 공모 선정 덕분입니다. 연구원 측의 아낌없는 지원과 신뢰 덕분에, 저희는 교육적 가치와 현장 활용성을 동시에 갖춘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나우 아카데미를 통해 전 세계 교육자, 학생들과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입니다. 한인 이민사와 한국의 문화·역사를 단순한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는 교육 경험으로 확장하고 싶습니다. 또한, 다양한 언어와 지역에서 콘텐츠가 자연스럽게 공유되고, 서로 다른 문화권의 학생들이 한인 디아스포라와 한국사를 보다 깊이 이해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플랫폼이 더욱 많은 교실과 교육 현장에 닿아,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토론하며, 배우는 과정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희생과 용기를 체감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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