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포커스
한국의 음식 - 1
K-푸드의 탄생: 20세기 한국 음식의 역사
Ⅰ. K-푸드
1. 20세기 한국 음식의 역사가 만들어 낸 K-푸드
이 글은 19세기 말부터 21세기 초반까지 한국인의 식생활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다루는 데 목적이 있다. 나는 세계의 식품체제(food regimes) 형성과 한반도의 편입이라는 프레임을 적용해 개항 이후 한국사의 주요 시기에 이루어진 한국인의 식생활과 세계 식품체제와의 접점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이 프레임을 구성하는 키워드는 모두 여섯 개다. 즉, 1876년부터 대한제국 시기의 ‘개항’, 1910년부터 1937년까지의 ‘식민지’, 1938년부터 1953년까지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을 아우르는 ‘전쟁’, 한국전쟁 이후 1970년대까지의 ‘냉전’, 한국인이 경제성장의 결과를 맛보기 시작한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압축성장’, 그리고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가 그것이다.
오늘날 한국인이 소비하는 음식 중에는 개인과 공동체의 취향에 따라 생각하기에 좋은 음식도 있고 나쁜 음식도 있다. 개인과 공동체가 판단하는 음식의 취향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역사의 산물이기도 하다. 나는 이 글에서 여섯 개의 각기 다른 안경을 그때그때 바꾸어 끼면서, 지난 120여 년 동안 한국인이 영위해 온 식생활의 역사를 살핀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19세기 말 한국인의 식생활 양상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2. 19세기 말 사대부 남성 식사 장면
20세기 초반 프랑스에서 유통되었던 사진엽서 한 장이 있다. 이 사진이 촬영된 장소는 어느 사대부 집의 대청마루다. 주인공은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성이다. 그의 앞에 놓인 식탁은 소반의 다리가 개의 다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 ‘개다리소반’이다. 주인공이 쓴 갓은 18~19세기 사대부 남성들이 즐겨 썼던 양태가 넓은 것이 아니라, 매우 좁은 갓이다. 1884년(고종 21)에 시행된 복제(服制) 개혁으로 인해서 기존의 사대부 남성이 쓰던 넓은 양태의 갓이 이런 모양으로 바뀌었다. 주인공이 입은 겉옷 역시 도포가 아니라 두루마기다. 두루마기 역시 복제 개혁 이후에 생긴 것이다. 그러니 이 사진은 적어도 1884~1890년 사이에 촬영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소반 위의 밥상을 보면, 주인공의 위치에서 왼쪽에 밥그릇, 오른쪽에 국그릇이 놓여 있다. 그 앞에는 종지 두 개, 보시기 두 개, 접시 두 개가 자리 잡고 있다. 주인공이 앉은 마룻바닥의 오른쪽 무릎 옆에 대접도 하나 놓여 있다. 이 대접은 생선 뼈나 이물질을 뱉어내는 타구다. 사진엽서의 아래에는 프랑스어로 ‘CORÉE. Bon appétit!’, 즉 ‘조선 사람. 맛있게 드십시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프랑스어 ‘보나페티(Bon appétit)’는 식사 전에 ‘맛있게 드세요’라는 의미로 쓰는 관용적 표현이다. 사진 속의 인물이 조선인이고, 그가 지금 막 식사를 시작하려 한다는 뜻이 여기에 담겨 있다.
이 사진을 촬영한 프랑스의 사진작가는 왜 이 장면에 주목했을까? 요사이 한국인은 이 사진을 보고 지금과 달리 거의 세 배나 되는 큰 밥그릇과 국그릇 때문일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프랑스 사진작가는 남성이 혼자서 식사하는 장면에 주목했을지도 모른다. 호모사피엔스는 ‘함께 식사하는 동물’이다. 그런데 조선 시대 내내 가부장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던 조선의 지배층 남성은 유교적 이념에 근거하여 일상 식사나 잔치와 같은 의례에서 1인 식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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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밥과 국은 개인별, 반찬은 함께 먹는다 일본의 문화인류학자 이시게 나오미치(石毛直道)는 세계 각 지역의 상차림 방식을 크게 나누면 <개별형>과 <공통형>이 있다고 보았다. <개별형>은 한 사람 앞에 놓이는 음식이 오직 그 사람만이 먹도록 차린 상차림 방식이다. 요사이 서양 레스토랑의 정찬이 이렇게 차려진다. 이에 비해 <공통형>은 식탁에 앉은 사람이 차려진 음식을 공유하는 상차림이다. 한국의 음식점 대부분이 이런 상차림으로 음식을 차린다. 또 이시케는 배식 방식도 <시계열형>과 <공간전개형>이 있다고 보았다. <시계열형>은 서양의 레스토랑에서 전채와 메인디쉬, 그리고 후식을 내는 배식 방식이다. 이에 비해 <공간전개형>은 제공될 모든 음식을 한꺼번에 식탁에 내놓은 배식 방식이다. 이시케는 상차림 방식과 배식 방식은 서로 조합을 이루어 <개별형+공간전개형>, <공통형+공간전개형>, <개별형+시계열형>, <공통형+시계열형>으로 나누어진다고 보았다. 사진의 상차림과 배식 방식은 분명 <개별형+공간전개형>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음식점에서의 상차림은 <공통형+공간전개형>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이러한 식사 방식은 그다지 오래된 것이 아니다. 20세기 이후에 정착된 교자상은 사진과 달리 최소한 2~4명이 하나의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하도록 만들었다. 밥과 국만 개인별로 제공되고, 반찬은 사람 숫자와 관계없이 하나씩이 놓였다. 결국 앉은 사람들끼리 반찬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같은 식탁에 앉은 한국인은 반찬을 함께 먹어도 불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식 식탁에서는 “모든 반찬은 공용이다.” |
한국인은 ‘전분+비전분’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맛있는 음식 중 하나는 비빔밥이다. 전분 덩어리인 밥을 입 속에 넣고 오랫동안 씹으면 침 속에 들어 있는 효소인 아밀레이스(amylase, 아밀라아제)가 활성화된다. 특히 아밀레이스의 프티알린(ptyalin)이 밥 속의 전분을 가수분해하여 당으로 바꾸어 준다. 밥을 씹으면 단맛이 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에 동물성단백질까지 더해지면 그 속에 들어 있는 아미노산(amino acid)이 구수한 맛을 낸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이 모든 음식을 한꺼번에 차려서 식사하는 이유다.
Infokorea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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