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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커스

한국 전통복식 문화의 발달 - 1

시대에 따른 한국 전통복식의 변천

풍족한 물질주의 사회에서 더 나은 가치에 대한 관심은 미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아름다운 물질에 매료된 심리가 작동되는 문화적 공간에서 현대인들은 아름다움을 소비하고 있으며 미의 추구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교환가치로서 물질이 전달될 때 욕망과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물질의 아름다움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미학적 탐구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복식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물질주의 정점에서 미적인 환상을 더한 문화소비의 주체로 자리 잡았습니다.

역사 속에서 한국인이 그동안 착용했던 전통복식은 어떤 의미와 형태를 지니고 있었을까요? 그러한 한국의 전통복식에 나타난 문화적 특성은 무엇일까요? 한국인이 착용했던 전통복식의 변천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전통문화의 한 단면을 살펴본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대마다 달리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복식의 종류와 형태는 복합적인 문화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전통사회에서 신분을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전통복식은 오랫동안 착용되었고, 현재에도 착용되고 있는 복식을 말합니다. 전통복식은 한국의 역사 속에 함께 이어져 내려왔으며, 그 속에 생성되고 다듬어졌기에 오랜 역사를 가진 복식의 형태 변천에 대한 내용을 시대별로 분류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한국 전통복식의 기본 구성은 카프탄 양식으로 양쪽 팔을 넣어 앞에서 여미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카프탄 양식은 입기도 편하고 활동적이며 특히 주거문화가 정착되고 좌식(左式)을 주로 했던 동양 문화권에서 발달하였습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농경문화를 중심으로 의식주 생활을 영위해 왔습니다. 수 세대에 걸쳐 한곳에 정착된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주택문화도 온돌이 발달하였습니다. 한국의 가옥에서 난방의 구심점은 온돌이 있는 따뜻한 안방으로 주거의 중심이 되어 좌식문화가 발달하였습니다. 주거의 중심지인 안방은 가족이 먹고, 자고, 여가를 보내는 만능의 장이었고, 이러한 온돌로 이루어진 생활문화는 좌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한국인만의 특유한 좌식문화 발달은 옷의 형태에도 영향을 미쳤고, 전통한복은 좌식 생활에 적합하면서 착용하기 편리하도록 구성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착용했던 남자 한복 바지는 여유량이 많 되어있어서 좌식 생활에 착용할 수 있는 여유분을 두어 넉넉하게 구성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여자들이 착용했던 치마는 길이가 길어서 앉기에도 편리할 뿐만 아니라 구성 자체가 미적 조화나 인체공학적 측면에서 편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복식은 생활문화와 밀접한 연계 속에서 이루어져 전통적으로 착용해 왔던 생활 속의 일상복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양 문물이 유입되고 의식주 문화가 입식 문화로 변화를 가져오면서 좌식문화 속에서만 착용했던 전통복식은 일상에서 착용하는 불편한 옷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착용했던 전통복식은 서양복식과 혼용을 이루며 현재의 한국의 복식문화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한국복식과 서양복식이 구성하게 된 요인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는데 의생활 문화와 연계성이 많은 주택문화와 관계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한국의 전통복식과 서양복식 구성의 차이점
또한, 한국의 전통복식이 이어져 온 배경에는 역사적 변천사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적 배경이 되었던 시대적 배경인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개화기 시대를 거치면서 복식 제도는 의례적인 요소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복식 유형의 변화에 대한 논란이나 갈등도 많은 가운데 사회질서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신분 계급에 대한 구별이 있었는데, 이러한 신분 계층에 따라 착용했던 전통복식은 당시대의 사회적 배경이 반영된 문화적 특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북방 기마민족이었던 한국인은 통이 좁은 저고리와 바지를 착용하였습니다. 몸에 밀착되었던 옷은 말을 타기에 편리하였습니다. 이러한 복식의 형태는 수렵을 하기에 간편하였으며, 추위를 막기에 적합하였습니다. 엉덩이까지 내려온 저고리는 보온성과 기능성을 함께 갖고 있으며, 목이 올라온 신발은 추위를 피하기에 적절하였습니다. 한국인이 착용했던 전통복식은 한국인의 삶과 자연, 문화가 고스란히 반영되었던 것입니다.

삼국시대 이전 복식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동사강목(東史綱目)』 기자조선(箕子朝鮮)에 ‘단군이 백성에게 편발과 개수(蓋首)를 가르쳤으며, 군신, 남녀, 음식, 거처의 제도가 이때에 비롯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서는 ‘의복은 청결하며, 머리는 길게 자른다. 이들은 광폭세포를 짜서 입는데, 법속은 특히 엄준하다.’라고 하였으며, 부여 복식에 관해서는 ‘흰옷 입기를 좋아하며, 소매가 크고 넓은 흰색의 포를 착용하고 가죽신과 바지를 입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진서(晋書)』동이전(東夷傳) 마한(馬韓)에서는 ‘영주(纓珠)를 귀히 여겨 옷에 매달거나 머리를 장식하고 귀로 늘어뜨린다’고 하였고, 누에를 치며 옷감을 짰다고 합니다. 이에 삼국시대 이전 한국인은 양잠에 의해 견직물을 만들었고, 흰옷을 좋아하여 바지를 입고, 미발에 머리 장식과 가죽신을 신는 복식의 기본구조를 갖추었던 것입니다.

1. 한국 복식문화의 원형기와 성숙기(BC37-AD917)

삼국시대는 한국 전통복식문화의 원형기로 볼 수 있습니다. 삼국시대복식의 형태와 종류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표현된 내용은 당시 시대에 한국인이 착용했던 남녀복식의 종류와 문양, 장신구입니다. 삼국시대 복식에 관련된 자료로는 문헌 외에 실물복식이 존재하지 않는 시기이므로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 한국의 전통복식문화를 알 수 있습니다.

상의로 착용했던 저고리와 두루마기는 깃을 앞으로 여미게 되었으며, 허리에 대를 묶어 여밈을 하였습니다. 치마는 주로 여성이 착용하였던 하의인데, 형태는 저고리의 길이가 길었던 만큼 허리에서 착용하여 땅에 닿을 만큼 길었습니다. 치마의 형태는 잔주름을 잡은 형태, 장식선을 단 형태, 색동치마와 같은 형태 등 다양한 치마 종류를 볼 수 있습니다. 바지는 저고리와 함께 남녀 모두 기본복식으로 착용되었으나, 상류계층에서는 치마를 받쳐 입는 속바지로 사용하였습니다. 하류계층에서는 실용성과 활동성을 위해 치마를 짧게 입어 바지를 보이게 착용하였습니다. 상류계층일수록 폭이 넓고 길이가 긴 바지를 입었고, 하류계층에서는 통이 좁고 짧은바지를 착용하여 신분과 계급에 따라 차이를 두었습니다. 머리에 썼던 관모는 자연환경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는 실용적 차원에서 발생하여 신분을 구별하고 의례를 수행하는 등 다양한 역할과 기능이 부여되면서 변천을 거듭하였습니다.

삼국시대에 이어 통일신라시대에는 정치·사회문화적 변화 속에 중국계복식이 유입되어 전통적인 고유복식 구조에 변화를 초래했던 시기로 한국복식문화의 성숙기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통일신라시대에는 복식의 사치를 금하고 신분 계급을 확립하기 위해 흥덕왕이 복식금제령을 내립니다. 복식 관련 법령이 행해졌다는 것은 고문헌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이는 전통복식이 사회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는 국학을 설치하여 경전과 한문학을 교육하는 등 정치적 안정을 꾀하면서도, 불교를 받아들여 번성시켰습니다. 신분제도도 혈통에 의해 6등분으로 골품제도를 구분하여 여러 가지 차별을 두었는데, 당 시대에 복식이 갖는 기능은 신분과 계층 구분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삼국시대에 착용했던 기본적인 남녀 복식인 저고리와 바지 이외에도 바지, 저고리 위에 덧입는 단령, 소매가 없는 남녀가 착용했던 배당, 여자들이 목뒤에서 가슴 앞으로 길게 드리운 숄과 같은 표, 장신구 등 복식의 종류가 다양해졌습니다. 이러한 통일신라시대는 다양한 복식이 발전하는 전성기를 구가함으로써 복식 양식이 발달한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2. 한국 전통복식문화의 정체기(918-1391)

고려시대는 한국복식문화의 정체기로 전통적인 한국의 전통복식 위에 중국과의 외교 과정에서 복식의 종류와 형태도 변화하게 됩니다. 고려시대 복식에 관련해서 고서(古書)나 그림, 현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과 발굴된 직물 등이 있어 유추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는 고구려의 전통성을 계승하였으나 중국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의 당나라, 송나라 등의 외래복식과 한국 고유복식이 존속하는 중국복식과 이중적 구조를 이루게 됩니다. 외래복식은 왕복이나 관리이상 계층의 공식의례나 업무를 볼 때 한정되는 것으로 일상생활에서는 여전히 고유한 한국의 전통복식을 착용합니다. 고려시대 착용했던 전통복식은 천연직물인 관계로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전해지지 않으나 불교유물로 전해지는 고려시대말기 저고리와 포(袍) 등이 남아있습니다.

3. 한국 전통복식문화의 완성기(1392-1897)

조선시대는 한국 전통복식문화의 완성기로 궁중복식의 정립과 전쟁을 전후로 하여 일반복식의 뚜렷한 형태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시기입니다. 조선시대는 서양의 르네상스라 불 정도로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융성하였습니다. 특히 풍속화가 발달하였는데, 풍속화는 당시대 생활모습을 재현하고 있어 다양한 전통복식의 종류를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실학이 대두되면서 세습에 의한 확고한 신분제도가 경제적 능력에 의해 변동이 가능해지면서 과시와 사치 현상도 나타납니다. 상류계층의 전용이었던 남자가 착용했던 포는 하류계층에서도 착용하게 됩니다. 여자복식도 가체를 더한 두발 양식이 화려해졌으며, 상의는 몸에 가능한 밀착되고, 하의는 크게 부풀리는 복식의 형태로 변화됩니다. 이러한 복식형태는 여성의 성적표현과 관능성이 나타나기도 하며 다양한 속옷 문화와 장신구가 발달하게 됩니다. 이러한 복식문화의 새로운 형태는 전통적인 사회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복식은 크게 궁중복식과 일반복식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가. 궁중복식
궁중복식은 착용자의 직위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종류와 형태가 있습니다. 궁중에서 결혼이나 국가제사와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 왕과 왕비가 착용했던 복식입니다.

1) 면복
왕복은 착용하는 시기와 의례에 따라 구별되는데, 복식에는 반드시 관모를 함께 갖추었으며 착용했던 포와 관모도 다양했습니다. 면복의 구성은 면류관(冕旒冠)과 곤복(袞服)으로 구분되며, 면복은 의(衣), 상(裳), 폐슬(蔽膝), 혁대(革帶), 대대(大帶), 패옥(佩玉), 수(綬), 말(襪), 석(舃), 규(圭)를 착용합니다. 면류관(冕旒冠)은 면복을 착용할 때 쓰는 관모로 면류관은 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관모입니다. 면류관의 평천판(平天板) 앞뒤에 늘어뜨린 면류(冕旒)는 그 수(數)를 달리하였습니다.

2) 적의
조선시대 궁중복식으로 여성 최고의 신분이 착용한 복식에는 다양한 포가 있었습니다. 의례와 위엄을 갖추었던 왕비의 복식은 장식품과 격에 맞는 수식품을 착용하였습니다. 왕비가 착용한 적의는 꿩문양의 화려한 자수가 있습니다. 중단(中單), 배자(褙子), 하피(霞帔), 대대(大帶), 옥혁대(玉革帶), 수(綬), 옥패(玉佩), 말(襪), 석(舃), 옥규(玉圭) 등과 함께 착용합니다. 하피에는 청색 바탕에 꿩 문양을 수놓았고, 하피는 목에 걸쳐 등 뒤에 흉배 아래까지 늘어뜨리고 두 폭이 겹치지 않게 맺었습니다. 가슴 앞에서는 치마 끝까지 늘어뜨려 수식하였습니다.
왕의복식(면복)과 왕비복식(적의)
나. 남자복식
조선시대에는 기본적으로 저고리와 바지를 입었고 포와 관모도 착용했습니다. 조선시대는 포의 종류와 형태가 다양하여 시기와 장소, 직분과 신분에 따라 착용하는 포가 달랐습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포의 종류는 답호, 첩리(帖裏), 직령(直領), 도포(道袍), 창의(氅衣), 주의(周衣), 난삼(襴衫), 심의(深衣) 등이 있습니다.

1) 첩리
첩리는 허리에 주름을 잡아 저고리와 치마가 연결된 형태입니다. 품계에 따라 색을 달리하고 소매 한쪽에 단추를 달아 떼었다 붙였다 하기도 하였습니다. 포를 착용했을 때 불편이 없도록 허리에 잔주름을 잡았고 전쟁할 때 상처가 나면 단추를 풀어 소매를 떼어내어 붕대역할을 하는 합리적인 옷입니다.

2) 도포
문관 및 사대부들이 가장 많이 착용하였던 편복포로 뒷자락에 전삼(展衫)을 부착하여 2겹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교통수단으로 말을 타야 했기 때문에 착용하기 편리하도록 뒷면에 트임을 주고 전삼이 달아 말을 탈 때나 좌식할 때 트임 사이로 하의가 보이는 것을 전삼이 가려주어 품위를 갖추었습니다.

3) 관모
한국인이 머리에 쓰는 관모는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실용적으로 착용하다가 신분사회에서 사회성을 갖는 관모로 발전하였습니다. 관모는 재료, 제작법, 용도가 다양하며, 시대에 따라 형태와 구성이 다릅니다. 한국인이 착용했던 다양한 관모 중에서 남자의 대표적인 관모에는 흑립이 있습니다. 한국인은 조선시대 다양했던 직령, 도포, 창의 등을 착용하고 머리에는 흑립을 썼습니다. 흑립은 소재와 양태의 크기, 수식을 달리하여 폭넓게 착용되었습니다. 이러한 흑립은 흑색을 기본으로 하여 용도에 따라 색을 달리하기도 하였습니다. 흑립은 대를 가늘게 쪼개어 만들었고 검정 옻칠을 하였으며, 이러한 흑립은 시대별로 다양한 형태 변화를 하게 됩니다.
흑립
다. 여자복식
1) 저고리
저고리는 한국의 전통복식으로 착용했던 상의입니다. 조선시대 남자저고리는 형태 변화가 거의 없으나, 여자저고리는 형태가 다양하게 변화하게 됩니다. 여자저고리 형태는 후기로 갈수록 저고리 길이와 소매길이가 점차 짧아집니다. 저고리 길이와 소매길이 변화와 함께 깃은 목판깃, 당코깃, 반당코깃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2) 치마
치마는 전통복식 중에서 가장 변화가 적었던 옷으로, 저고리 길이에 따라 치마 길이를 달리 착용하였습니다. 조선시대 초기의 치마는 저고리 길이가 길어서 치마의 길이가 짧아졌지만, 조선시대 후기로 올수록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치마의 길이는 길어졌습니다. 의례용 치마 중에는 폭이 넓고, 길이가 긴 치마의 형태에 앞부분을 덧주름이나 다트식으로 서양의 풀백(pullback) 스커트나 벗슬 스커트(bustle skirt)와 비슷한 형태도 있습니다.

3) 속옷
조선시대 여자가 착용했던 전통한복의 실루엣은 상체 부분은 얇게 보이게 하고 하체 부분은 부풀리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실루엣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속옷을 입어 기능적인 측면에서 보완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속옷은 추위를 막아주는 기능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위생적인 측면에서 다양하게 구성되었습니다. 상의는 저고리 아래에 입는 속옷으로 적삼을 입었습니다. 속적삼 위에 착용한 속저고리는 보통 겹저고리로 하나 추울 때는 얇게 솜을 두르기도 하였습니다. 속적삼보다는 넉넉하게 하고. 고름은 좁고 짧게 달았습니다. 하의로 착용했던 속옷은 팬티 역할을 하는 다리속곳, 바지 형태의 고쟁이를 입었습니다. 속치마의 역할을 하는 단속곳은 바지 위에 입는 통이 넓은 바지 형태의 속옷입니다. 무지기치마는 상류계급에서 정장을 차려입을 때 치마 밑에 입던 속치마의 일종입니다. 무지기치마는 서양의 패티코트 역할을 하여 길이가 다른 것을 3층 혹은 5층, 7층으로 색상을 달리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대슘치마는 주로 상류층에서 예장할 때 입는 밑받침 속치마로 하체를 풍성하게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대슘치마는 치마를 부풀려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한 속옷으로 흰 모시로 12폭 치마를 만들었습니다. 대슘치마 단에는 힘을 주기 위해 높이 약 3~4cm 정도로 창호지를 접어서 만들어 모시로 싸서 감쳐 달았습니다.
페티코트 역할을 하는 무지기(왼쪽)와 대슘(오른쪽)

4. 한국 전통복식문화의 변환기(1876-1945)

개화기 시대는 한국복식문화의 변환기로 조선후기 실학자나 개화파들의 실용주의 노선에 영향을 받아 상하 존비의 등위를 가렸던 전통복식의 체계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한국의 전통복식은 서양복의 유입으로 복식문화에 변혁을 이룬 시기입니다. 개화기시대는 봉건적 민족주의의 한계를 보여 실학을 바탕으로 신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개혁하게 됩니다. 이에 개화기 시대는 전통복식과 서양복식이 이중구조를 이루는 시기로 복식이 변화된 요인을 볼 수 있습니다. 고종은 갑신의제개혁과 갑오의제개혁으로 관복을 간소화하게 됩니다. 관복으로 다양했던 포를 두루마기로 간소화시켜 신분 관계없이 모두 착용하도록 하였습니다. 무관복식인 구군복은 서양복식으로 착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외교관의 복장도 양복화 되었고, 이어서 제복, 군복, 학생복, 관복이 차츰 서양복화 되었습니다. 두식에는 단발령이 내려져서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격동의 시기를 겪으면서 전통복식은 양복과 혼용되는 문화적 변화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전통복식이 서양복식으로 변화한 배경에는 사회개혁과 신교육에 따른 여성들의 의식변화, 언론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가. 남자복식
1) 마고자
마고자는 저고리 위에 덧입는 겉옷으로 저고리보다 품도 넓고 길이나 소매도 길어 넉넉하였습니다. 마고자는 덧저고리 역할을 하였으며, 보온에도 좋고 간편하여 남녀노소가 입었습니다.

2) 두루마기
두루마기는 조선시대 다양했던 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개화기 시대에는 양복에 비유하면 외투와 같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두루마기를 착용하여 의관을 갖추었는데, 여름이라도 바지, 저고리만을 입지 않고 모시로 만든 두루마기를 착용하였습니다. 겨울에는 바지와 저고리 위에 마고자를 입고 그 위에 두루마기를 착용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습니다. 어린이 복식으로 색동두루마기를 착용하기도 하였습니다.

3) 조끼
조끼는 양복이 들어오면서 실용적인 측면에서 입게 되었습니다. 조끼에는 전통복식에는 없는 포켓(pocket)이 있고, 고름 대신 단추로 여밈을 하였습니다. 형태는 서양식 조끼와 같으나 한복지로 제작하여 갖추어 입게 됩니다. 이러한 조끼는 서양복식이 한국복식에 유입되어 한복화 된 대표적인 옷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토시
토시는 장갑의 형태로 실용과 멋을 겸비한 것으로 특히 상류층에서 착용하였습니다. 겨울철에는 방한용으로 안에 털을 부착하였으며, 여름철에는 저고리 손목부분에 땀이 배지 않도록 등나무 또는 말총으로 만들었습니다. 서양에서 장갑이 유입되면서 점차 사라졌습니다.
두루마기(왼쪽)와 토시(오른쪽)
나. 여자복식
1) 배자, 갓저고리
배자와 갓저고리는 저고리 위에 덧입는 것으로 방한과 장식적인 효과를 위해 착용하였습니다. 배자는 소매가 없는 것으로 저고리 위에 입었고, 겨울에는 털을 넣어 입었습니다. 갓저고리도 방한용으로 저고리 형태와 같으며, 저고리 겉에 입는 덧옷입니다.

2) 저고리
저고리는 개화기시대에도 길이가 20㎝정도로 짧았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를 전도하던 선교사들이 착용한 블라우스의 영향으로 저고리 길이가 가슴에서 허리 사이에 오게 되고, 품도 넉넉한 형태로 변하였습니다. 저고리를 묶었던 고름을 대신하여 브로치로 대처되기도 하였습니다. 어린이 복식으로 여자아이들은 색동저고리를 착용했습니다.

3) 치마
치마는 자락치마와 통치마가 혼용된 시기입니다. 전통적인 자락치마는 가슴에 둘러 입었는데, 통치마는 서양 남성의 조끼 모양으로 어깨에 걸쳐서 착용한 것입니다. 개화기시대 치마는 폭이 줄어들고 길이가 짧아졌으며, 짧은 통치마가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특히 검정치마에 흰색저고리는 여학생이나 신식 여성이 많이 입었으므로, 신여성을 상징하는 새로운 표상이 되었습니다. 저고리 길이가 길어질수록 치마 길이는 점점 짧아졌으며, 치마의 형태는 상의인 저고리의 영향을 받아 짧은 치마에 주름을 크게 잡아 입는 것이 유행하였습니다.

4) 양산
양산은 남녀구별과 신분구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얼굴을 가리는 면폐용으로 사용되었던 너울, 쓰개치마, 장옷폐지에 대한 대용물로써 보급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여성들은 쓰개치마를 벗고 양산을 많이 들었는데, 여학생들 사이에서 검정 우산이 보급되어 일반 부녀자들 사이에도 유행하였습니다.

5) 주머니
한국 전통복식에는 물건을 담거나 넣을 만한 포켓(pocket)이 없어 주머니가 발달하였습니다. 주머니는 물건을 넣는 실용성과 장식성이 가미되어 남녀노소 모든 계층에게 애용되었습니다. 주머니는 각이 진 형태의 귀주머니와 둥근 형태인 두루주머니 두 가지 형태입니다. 주머니에는 주로 수를 놓아 장식하였으며, 복식에서 장식효과가 될 수 있게 밝은색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시대에 흐름에 따라 남자복식의 경우는 포켓이 있는 조끼를 착용하고, 여자복식에는 서양에서 핸드백이 유입되면서 차츰 사용이 줄어들게 됩니다.
배자(왼쪽)와 주머니(오른쪽)

Infokorea 2023
<인포코리아>(Infokorea)는 외국의 교과서 개발자와 교사 등 한국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을 위해 개발된 한국 소개 잡지입니다. 외국의 교과서 저자나 편집자들이 교과서 제작에 참고할 수 있고 교사들이 수업 준비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한국 관련 최신 통계 자료와 특집 원고를 제공합니다. 2023년 호의 주제는 '한복'입니다.

발행 |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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