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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없는 유적지 경주에서의 우리 문화유산 답사

2019년도 한국학대학원 가을 학술답사

단체사진

한국학대학원은 2019년 10월 15일(화)~17일(목)에 걸쳐 2019년도 가을(전체) 학술답사를 실시하였다. 이번 답사는 총 110명(교직원 7명, 학생 97명, 국제교류처 6명)이 참석하였고 2박3일 동안 경주 일대 유물과 유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첫째 날은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분황사-황룡사지-동궁과 월지-국립경주박물관 순으로 진행되었다. 첫 답사한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은 백률사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거대면 바위에 조각한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사면(四面) 석불로, 서쪽 면은 아미타삼존불, 동쪽 면은 약사불, 남쪽 면은 양각의 보살입상과 음각의 불입상, 북쪽면은 양각의 불입상 2구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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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우)분황사

분황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3년에 건립된 신라시대 불교 사찰로 신라의 위대한 고승 원효와 자장이 거쳐간 절로 유명하여 왕분사라고도 한다. 선덕여왕이 창건한 분황사의 이름은 ‘향기날 분’, ‘황제 황’자로, 향기나는 황제의 절이란 뜻이다. 신라 최초의 여왕에 올라선 것을 대내외에 알리는 상징적인 절로 분황사 석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에도 가위 등 여자와 관련된 유물이 있었다. 분황사에는 모전석탑(국보 제30호로 석조 불탑)과 겉모양은 팔각이고 내부는 원형인 삼룡변어정이라 불리는 우물이 남아 있다.


황룡사지는 삼국시대 신라 제일의 중심 가람이었던 황룡사의 사찰터 사적으로 건물과 탑 그리고 불상의 자리를 알려주는 초석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그 규모나 사세가 신라 제일이었음은 틀림없다. 황룡사는 국가적 대찰로서 9층탑과 장육상은 신라의 3보로 숭앙을 받아왔다. 고려조에도 높은 숭앙과 보호를 받아왔으나 고려 고종 25년(1238) 몽고의 침입때 전소되었고, 1976년부터 7년에 걸쳐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담장 내 면적이 동서 288m, 남북 281m, 총면적 2만여 평으로 동양에서는 최대의 사찰이며, 당초 늪지를 매립하여 대지를 마련하였음이 밝혀졌다.


다음은 동궁과 월지이다. 신라시대 제30대 왕인 문무왕은 674년(문무왕 14년) 2월에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고 화초를 심고 진기한 짐승을 길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시작으로 5년 뒤인 679년(문무왕 19년) 2월에는 궁궐을 매우 웅장하게 중수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조영된 연못 명칭이 적기되어 있지 않았으나 이곳을 안압지라 한 것은 조선시대 몇몇 사료에서 이름이 확인되었기 때문이고, 2019년 지금의 명칭인 동궁과 월지로 변경되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1945년 설립되어, 경주와 그 주변지역의 유물을 발굴·연구·관리·전시함으로써 신라문화를 재조명하고 국민들에게 문화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월지관 등의 상설전시관 3관과 특별전시관이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답사를 마지막으로 첫째 날의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둘째 날의 답사는 석굴암-감은사지-양남 주상절리-불국사-원성왕릉(쾌릉), 쪽샘유적박물관-노동리고분군-대릉원(천마총)의 일정으로 시작되었다.

석굴암 사진

석굴암은 토함산 중턱에 있는 화강암으로 축조되었다. 751년(경덕왕 10년) 김대성에 의해 창건되었고, 일연의 『삼국유사』 제5권 「대성효이세부모신문왕대」의 문헌이 가장 오래된 석굴암에 대한 기록이다. 석굴암의 발견은 1907년 우연한 기회에 우편배달부가 일본인에게 석실이 있음을 알렸고 그 후 일본인들은 석굴암을 해체, 운반하려 하였으나 주민들의 강한 반발로 좌절되었다. 이후 총독부는 석굴암 중수를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3차례에 걸쳐 행해졌다. 8․15 광복 이후 석굴암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버려진 상태에 있다가 1961년 각계각층의 관심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석굴암 예비공사가 시작되었고 1962~1964년까지 3년의 기간 동안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


다음 답사지로 감은사지를 방문하였다. 감은사는 신라 제31대 신문왕이 부왕인 문무왕의 뜻을 이어 창건하였으며, 불심을 통한 호국이라는 부왕의 뜻을 이어받아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효심의 발로였던 것이다. 또한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이 보낸 동해의 용이 감은사로 와서 신문왕에게 검은 옥대를 주어 왕이 이 옥대로 피리인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석굴암 사진

양남 주상절리는 2012년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되었다. 화산활동으로 분출한 용암이 냉각․수축하여 굳어지면 틈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절리라하여 다각형의 균열이 깊은 곳으로 식어가며 커다란 기둥모양이 형성된 것이다. 이곳의 주상절리는 특이하고 다양한 형태와 방향으로 발달된 누워있는 주상절리, 기울어진 주상절리, 위로 솟은 주상절리 등 다양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불국사는 통일신라 김대성의 발원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신라 경덕왕에서 혜공왕시대에 걸쳐 대규모로 중창되었고 신라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수축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탔으나 이후 중건되었다. 불국사에는 다보탑(국보 20호), 삼층석탑(국보 21호), 연화교칠보교(국보 22호), 청운교백운교(국보 23호),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26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27호) 등 다량의 문화재가 있으며 1995년 12월 석굴암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그 학술적·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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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답사지는 원성왕릉(쾌릉), 쪽샘유적박물관, 노동리고분군, 대릉원(천마총)으로 한국학대학원 인류학박사 아라키 준 선생께서 해설해 주셨다. 선생께서 이곳이 왕들의 공동묘지라는 표현을 하셔서 학생들이 잠시 웃었다. 원성왕릉은 신라 제38대왕 원성왕의 능으로 사적 26호로 지정되었다. 쾌릉이라 부르기도 한다. 쪽샘유적박물관이 있는 쪽샘마을(황남동 일대)은 임금이 살았던 마을이라하여 고려때에는 황촌이라 불렸던 곳이다. 이곳에는 샘(泉)이 있었는데 그 물이 맑고 맛이 좋을뿐 아니라 아무리 가물어도 줄지 않았다고 전하며 사람들이 쪽박으로 떠 마셨다하여 쪽샘이라 불렀다 한다. 노동리고분군은 사적 512호로 경주 대릉원 일원의 무덤군으로 금령총․식리총은 발굴 조사되었으나 봉황대고분은 아직 발굴조사가 실시되지 않았다. 금령총은 1924년 일본인 우메하라에 의해 발굴되었다. 내부에서 금관, 귀걸이, 팔찌, 허리띠, 신발, 쇠솥, 옷칠그릇, 유리그릇, 토기 등이 출토되었고, 2점의 기마인물형토기가 출토되었다.


석리총도 1924년 일본인 우메하라에 의해 발굴되었으며, 내부에서 귀걸이, 은제허리띠, 은제팔찌, 등 금공예품 중 용봉문계 장식이 많은 점이 특징이다. 대릉원은 신라시대의 왕, 왕비, 귀족 등의 무덤 23기가 모여 있는 고분군이다. 고분군이 위치한 지명을 따라 ‘황남동 고분군’이라 부르기도 한다. 1920년대 일제에 의해 서봉황대고분, 금관총 등이 발굴되어 각각의 고분에는 금관과 금제허리띠 등 금속유물을 비롯한 수많은 토기와 생활용품이 출토되어 고대 신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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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전

셋째 날의 첫 답사는 서출지와 통일전을 방문하였다. 서출지는 경주 남산동 남산 기슭에 위치한 삼국시대 신라 때의 연못으로 연꽃으로 이름나 있으며 『삼국유사』에 사금갑 이야기의 설화적 장소로 기술되어 있다. 통일전은 경주시 남산동에 있는 통일기원 전각으로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건립되었다. 전각 안에는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화랑에는 통일을 향한 격전의 현장을 보여주는 기록화를 전시해 놓았다. 건물과 정원은 마치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보는 듯 잘 꾸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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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제2석굴암

다음은 경주 대릉원을 답사하며 신라 왕궁 월성과 얼음을 저장한데서 유래한 석빙고, 경주 반월성에서 계림을 지나 첨성대에 도착하였다. 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였다는 천문관측소로서의 역할을 하였다고 알고 있으나 이설에는 우물이란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이설에도 불구하고 첨성대는 천문대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도에서 다목적 기능을 담당했을 가능성이 크며, 통일 신라사회를 보다 폭넓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학술답사에서의 마지막 답사지는 군위 제2 석굴암이었다.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은 국보 109호로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팔공산에 있는 절이다. 경주 석굴암보다 앞서 만들어진 석굴사원이며, 천연 동굴을 이용하여 그 안에 삼존불을 안치하고 있다. 경주를 여러번 방문했어도 이곳에 경주 석굴암보다 더 오래된 석굴사원이 있다는 것은 이번 답사를 통하여 처음 알게 되었다. 마지막 답사까지 모두 마치고 버스에 올라 한국학중앙연구원을 향하여 출발하였고, 2박 3일의 일정을 함께 한 학생들은 기숙사 등 각자의 쉼터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