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습재 일기

한중연의 가을

대배운 사진
대배운
중국(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국문학 석사과정)

내가 처음으로 한중연에 온 그날은 여름의 더위를 아직 벗지 않은 컴퍼스 안에 꽃이나 나무들이 무성했던 늦여름이었다. 학교에 오자마자 '공원이네~'라고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동시에 여기에서 2년 동안 공부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기쁘고 기대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시습재와 만났던 장면도 잊지 못 할 것 같다. 빨간색 벽돌로 지어진 중세 건축물 같은 곳으로 역사적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다소 밋밋하다 느껴졌던 내부에 들어섰을 때 생각보다 넓은 침대, 많은 물품을 보관할 수 있는 수납장, 그리고 예쁘고 착한 룸메이트까지... 2019년 8월 나는 그렇게 여행지에 도착한 듯한 마음으로 한중연에서의 유학생활을 시작하였다.


한중연에 입학하고 나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학교구경이었다. 학의정, 청계학당, 여러 나라 국기가 펼쳐진 마당을 가진 우리 대학원, 아름다운 고전건축으로 내가 조선왕조에 들어온 것처럼 꾸며진 도서관 등 여러곳의 표지판으로 걸려있던 '한국학'이라는 단어의 매력을 느꼈다. 이 푸릇한 잔디밭에서 책을 읽거나 일광욕을 하면 얼마나 상쾌할까?하며 나의 미래 모습을 상상하였다.


한중연의 가을

하지만 내가 이 그림 같은 학교에서 아직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로 학업이 시작되고 곧 어려움에 빠져버렸다. 발표, 논문, 스터디 등등 공부로 인해 거의 기숙사에 갇혀서 지내듯 했는데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창문을 열어보니 이미 한중연의 멋진 가을이 찾아와 있었다. 예전에는 학교 정보를 검색하면 홈페이지에서 한중연의 단풍을 봤으니 이미 충분히 감탄하였는데 정작 눈앞에 화려한 단청처럼 펼쳐진 이 경치에 나는 입에서 칭찬을 그칠 수가 없었다.

산자수명한 위치에 있고 아름다운 경치가 있지만 나는 새로운 환경에 와서 적응하지 못한 점이 많이 있었다. 그 중에 제일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외로움이었다. 특히 이번 가을은 특유의 쓸쓸함으로 나를 휘감았다. 하지만 환한 햇빛 중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단풍잎을 보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쓸쓸함을 다소 위로하고 있다. 또 시습재 취사장에서 잘 구워진 고구마를 먹고, 소소한 일상에 신경쓰며 지내다보니 행복이라는 말도 조금씩 내뱉게 된 것 같다.


한중연의 가을

한중연의 가을풍경, 직접 촬영

한국학대학원에 온지 비록 짧은 3개월이지만, 친절한 선배들 덕분에 잘 적응하고 있고 또, 온 산천에 가득한 가을 단풍에 취해 마음은 점점 평온해지고 있다. 내가 한중연에서 아직 맞이하지 못한 겨울, 봄에서도 나름대로 아름다움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후 펼쳐질 미래의 대학원생활이 매우 설레고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