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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저항의 역사로 독일 청소년에게 다가가다

이승주
코리아협의회, 탈식민주의 및 평화이론 연구
2023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바로알리기 지원 사업으로 시작된 「한국사 바로알리기 독일어 영상 제작 사업」은 독일 청소년들에게 단순히 한국사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독일 사회에 만연한 유럽 중심주의와 우월주의를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였다. 코리아협의회에서 진행하게 된 이 프로젝트는 독일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사고의 장을 열기 위해, 역사적 사건을 단순히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지양하고, 서구 중심적 사고와 오리엔탈리즘을 비판적으로 탐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코리아협의회는 2020년 평화의 소녀상 설립 후, 전 세계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소녀상 철거 반대운동을 이끌어 온 바 있으며,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 >을 통해 초국가적 연대와 청소년 대상 평화인권교육사업에 힘쓰고 있다. 베를린 주정부 및 독일 연방정부 등 다양한 기관 및 단체와 협력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국내의 정의기억연대, 나눔의 집, 이주민과 함께, 5.18기념재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족문제연구소, 김복동의희망, 어린이 어깨동무 등 다양한 단체 및 기관과도 꾸준히 연대해 오고 있다.

본 프로젝트 영상의 주요 내용은 한국사의 특정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이야기의 본질적인 목표는 독일 청소년들이 자신의 역사 교육 속에서 간과되었던 비유럽 지역의 시각과 목소리를 발견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한국사의 사례를 통해 독일 청소년들에게 유럽 중심주의적 시각을 벗어나 좀 더 비판적으로 역사와 현재를 바라보길 희망하며 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한국사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독일 청소년들에게 매력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오페르트 도굴사건’의 주인공, 독일인 오페르트, 유럽 제국주의의 상징인 베를린 회담 등의 독일과 관계되는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한 애니메이션 형식을 선택했다.

아프리카의 미래와 협력: 식민주의 문제의 초국적 연결성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한국사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사 속에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초국적 연결성을 조명하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독일 내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연구 단체인 아프리카의 미래(AfricAvenir International e.V.)와 협력하여 영상 제작 과정에 탈식민주의적 시각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프리카의 미래는 독일과 아프리카 간의 역사적 관계와 아프리카 식민 지배의 영향을 연구하고 비판하는 단체로, 이번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협력자로 참여했다. 한국사가 일본 식민주의의 맥락에서 겪은 문제를 다루면서도, 이를 단순히 한 지역의 사건으로 한정하지 않고, 세계 각 지역의 식민지 경험과 연결 짓는 데 아프리카의 미래와 협력은 큰 역할을 했다.
한국사 바로알리기 독일어 영상 제작 사업

첫 번째 영상 “정원과 정글"

첫 번째 영상은 19세기 말 조선을 배경으로 독일 상인이었던 오페르트가 주도한 도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영상 속에서 오페르트는 자신의 시각으로 조선을 탐험하며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영상을 보는 학생들은 영상 속 조선인의 관점과 마주치며 서양 중심적 시각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이 영상은 독일 청소년들에게 단순한 역사적 정보를 전달하기보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담론 속에서 서양 중심적 사고 방식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탐구할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서양의 시각에서 벗어나 조선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구조는 독일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사고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데 중점을 두었다.
한국사 바로알리기 독일어 영상 제작 사업

두 번째 영상 “지우개와 연필"

두 번째 영상은 1940년대 조선어학회 사건을 중심으로 한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을 다룬다. 이 영상은 독일 청소년들에게 언어와 문화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일본의 조선어 탄압 정책과 창씨개명은 조선인들이 겪었던 문화적 폭력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 영상은 단순히 폭력의 고발에 그치지 않고, 저항과 회복의 과정을 드러낸다.

특히, 이 영상은 학생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시청 대상인 독일 청소년들에게 더 큰 공감을 유도했다. 학생들이 겪는 갈등과 선택, 그리고 그 안에서 저항과 존엄을 지키려는 노력을 통해,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과 연결 지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영상은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배경을 출발점으로 삼아, 일본 제국주의와 독일 나치의 동맹 관계를 함께 조명한다. 이를 통해 독일 청소년들에게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특정 국가의 과거로만 국한되지 않으며, 국제적이고 복합적인 구조로 얽혀 있음을 이해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접근은 역사적 사건의 상호 연관성을 통해 세계사적 관점을 제시하고, 청소년들에게 비판적 사고를 촉진하는 데 기여하도록 설계되었다.
한국사 바로알리기 독일어 영상 제작 사업

현지 협력과 반응

영상 제작 과정에서 우리는 독일 현지의 다양한 기관 및 단체와 협력했다. 특히, 베를린의 프리츠카슨(Fritz-Karsen) 학교에서 두 편의 영상을 시범 상영하고, 교사와 학생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다. 상영 후 학생들은 영상이 다루고 있는 내용과 형식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학생들은 등장인물들이 각기 다른 언어(한국어, 일본어)를 사용하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자막으로 이해를 돕는 것을 넘어, 다른 언어가 가진 고유의 정체성과 맥락을 느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또한, 독일과 한국의 관점이 교차하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조는 독일 내 교육 콘텐츠에서는 드문 방식으로,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신선한 경험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한국사 바로알리기 독일어 영상 제작 사업

교육 콘텐츠로써의 활용 가능성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독일 내 다양한 교육 현장에서 활용될 예정이다. 프리츠카슨 학교와 같은 독일 학교에서 한국사를 다룰 때 사용할 수 있는 자료로 제공되며,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을 방문하는 학생들에게도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 특히, 영상은 독일의 아프리카 식민 지배 역사와 비교 자료로 활용되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주의 경험을 연결하는 교육적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또한, 독일 청소년 인권 교육 프로그램에서도 본 영상은 중요한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일어난 언어와 문화 탄압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언어적, 문화적 정체성 문제와 연결 지어 논의될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직면한 정체성의 문제와 사회적 갈등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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