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아부다비 한글학교와 『영화로 배우는 한국』
한글학교는 재외국민에게 한국어ㆍ한국 역사 및 한국문화 등을 교육하기 위하여 재외국민단체 등이 자체적으로 설립한 비정규학교를 말한다. 전 세계 114개국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아랍에미리트(UAE)에는 아부다비(Abu Dhabi), 두바이(Dubai), 라스 알 카이마(Ras Al Khaimah) 세 지역에 한글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UAE의 수도에 위치한 아부다비 한글학교는 2010년 문을 열었다. 개교 당시에는 소수의 인원으로 시작되었지만, 한국 교민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2024년 현재 유치반부터 중등반까지 200여 명의 학생이 등교하고 있다.
한글학교는 대개 임대료를 지불하고 현지 학교 건물을 임차해서 운영된다. 그러나 아부다비 한글학교는 개교 무렵 한 재학생의 에미라티(UAE 원주민) 친구 어머니가 교장이었다는 인연으로, 매주 토요일 현지인들이 다니는 Aishah Bint Abi Baker School (아이샤 여고) 건물을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한 보답 차원으로 한글학교 교사들은 현지 여고생들로 구성된 한국어 학습 동아리를 운영하였고, 매년 교내 내셔널데이(National Day) 축제에는 한국을 소개하는 부스를 차려 행사에 동참했다. 이렇게 아부다비 한글학교는 교민 자녀를 위한 교육 기관을 넘어, 현지인들에게 한국문화를 전파하는 역할도 수행해 왔다. 그리고 2023년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바로알리기 교육 콘텐츠 개발 및 활동 지원 사업’ 공모에 선정되어, 한국을 가르치는 교과서를 개발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 프로젝트의 제목은 ‘영화로 배우는 한국’이다.
‘영화로 배우는 한국’ 프로젝트는 영화 매체를 활용한 교재를 만들어 한국바로알리기사업의 효과를 높이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동안 시청각을 모두 활용하여 짧은 시간에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습득한다. 기존의 서책형 자료를 통해서는 단편적인 지식만 쌓을 수 있을 뿐이지만, 영화 매체의 특성을 활용하면 생생한 시청각 체험을 바탕으로 한국에 관한 이해가 더 깊고 넓어질 수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여러 영화 중에서도 ‘한국고전영화’를 소재로 삼았다. 고전영화는 현대영화보다 한국의 사회, 역사, 문화를 더 잘 반영하고 있으며, 미학적으로도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영화를 수집, 보존하는 공공기관인 한국영상자료원의 유튜브 채널 ‘한국고전영화’(https://www.youtube.com/@KoreanFilm)에 올라와 있는 작품만을 활용하였다. 해외에 있는 교수자가 영화 파일이나 DVD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영어 자막이 달려있고 언제 어디서나 무료로 볼 수 있는 위 채널은 좋은 교육 콘텐츠가 된다.
한국영상자료원 채널에 올라와 있는 200여 편의 영화 중에서 책에 실을 만한 작품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왕정 독재국가인 UAE의 특성을 고려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박종원, 1992)과 같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가 담긴 영화는 우선 제외하였으며, 전체관람가로 설정되어 있으나 이슬람 국가에서 시청하기 부적절한 영화도 추려내었다. 그리하여 판소리에서 유래된 <성춘향>(신상옥, 1961)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의 아픔을 그린 <족보>(임권택, 1978)를 거쳐, 한국 IT 산업의 발전상을 담은 <장남>(이두용, 1984)까지, 10편의 고전영화가 리스트에 올랐다. 집필자들은 각 장의 도입부에서 이 작품이 한국영화사 안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서술한 후, 영화 속에 담긴 한국적 요소들을 스크린샷과 함께 설명하였고, 마지막에는 관련 여행 정보도 짧게 추가했다. 이렇게 조선시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의 주요 역사를 관통하면서, 사회문화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의 원고가 완성되었다.
UAE는 영어와 아랍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다. 따라서 교재의 절반은 영어, 절반은 아랍어인 듀얼북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영어 번역은 한국인-영국인 국제 커플인 한글학교 교사 부부가 적은 비용으로 맡아주었으나, 아랍어 번역은 적임자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통번역학과 김수완 교수가 근작 『종교 너머 도시』(쑬딴스북, 2023) 북토크를 위해 UAE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행사장에서 그와의 개인 면담이 성사되어,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를 번역가로 소개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영어와 아랍어 원고가 완성된 후, 북 디자인을 할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아랍어는 한글과 반대 방향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쓰기를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디자인 프로그램으로는 작업이 불가능했다. 난감해하던 와중 주빈국이 한국이었던 ‘2023 샤르자국제도서전’에서 얻은 책자가 떠올랐다. 당시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영어-아랍어 듀얼북을 제작해 배포했었는데, 그 책을 만든 분을 섭외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문학번역원 국제교류팀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했고, 그때와 같은 북 디자이너가 ‘영화로 배우는 한국’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왕정국가인 UAE는 언론·출판의 자유가 헌법상 보장되어 있지 않아서, 문화부 미디어 위원회(Media Council)의 인쇄 허가서를 받아야 책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 전에는 한국인 중 누구도 현지에서 출판을 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그 절차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문화부를 직접 방문해 직원과 상담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모든 검열은 E-service로 진행되며, 인쇄 신청서와 함께 책의 PDF를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말한 대로 온라인 접수를 하고 일주일 후, 다행히도 인쇄 허가서가 발급되었다. 믿을 만한 인쇄소를 찾는 것도 중요했는데, 평소 자주 방문하던 미술관 421 Art Campus에서 전시 도록을 늘 영어-아랍어 듀얼북으로 제작하는 걸 눈여겨보았었다. 도록에 나와 있는 인쇄소를 직접 방문해 보니, 규모도 크고 담당자도 신뢰가 가서, 그곳에서 책을 발행하기로 하였다.
힘들고 긴 여정 끝에 마침내 700권의 책이 완성되었고, 배포하는 일만 남았다. 렙튼스쿨(Repton School) 등의 국제학교와 아부다비 칼리파 파크 도서관(Khalifa Park Library), 샤르자 지혜의 집(House of Wisdom) 등 주요 도서관에는 직접 방문하여 책을 기증하였다. 그리고 두바이와 아부다비 세종학당에도 찾아가 한국어를 공부하는 현지인들에게 책을 나누어주고, 강사분께도 활용해달라고 부탁드렸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이벤트는 ‘UAE 한국영화제’다. 책이 발행되고 얼마 후, 한국문화원 주최로 ‘UAE 한국영화제’가 열렸다.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직접 책자를 배포하기로 협의하고 영화제에 참석했다. 많은 외국인이 기쁘게 책을 받아 갔고, 그들의 이름을 한글로 써주며 약식 사인회도 가질 수 있었다. ‘영화로 배우는 한국’이라는 프로젝트에 딱 어울리는 행사였다.
UAE에도 한류가 불면서 아랍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랍어로 출판된 한국 관련 책은 한국어 학습 교재 혹은 문학 작품 몇 권뿐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된 『영화로 배우는 한국, Understanding Korea through Film』(김도연, 이영숙, 정미정, 김나영 공저)은 ‘영화’라는 창을 통해 한국의 역사, 사회, 문화 전반을 설명하는 최초의 아랍어 책이다. 프로젝트를 지원해 준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감사하며, 이 책을 통해 많은 외국인이 한국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기를, 그리고 ‘한국고전영화’라는 새로운 K-콘텐츠에 입문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글학교는 대개 임대료를 지불하고 현지 학교 건물을 임차해서 운영된다. 그러나 아부다비 한글학교는 개교 무렵 한 재학생의 에미라티(UAE 원주민) 친구 어머니가 교장이었다는 인연으로, 매주 토요일 현지인들이 다니는 Aishah Bint Abi Baker School (아이샤 여고) 건물을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한 보답 차원으로 한글학교 교사들은 현지 여고생들로 구성된 한국어 학습 동아리를 운영하였고, 매년 교내 내셔널데이(National Day) 축제에는 한국을 소개하는 부스를 차려 행사에 동참했다. 이렇게 아부다비 한글학교는 교민 자녀를 위한 교육 기관을 넘어, 현지인들에게 한국문화를 전파하는 역할도 수행해 왔다. 그리고 2023년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바로알리기 교육 콘텐츠 개발 및 활동 지원 사업’ 공모에 선정되어, 한국을 가르치는 교과서를 개발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 프로젝트의 제목은 ‘영화로 배우는 한국’이다.
‘영화로 배우는 한국’ 프로젝트는 영화 매체를 활용한 교재를 만들어 한국바로알리기사업의 효과를 높이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동안 시청각을 모두 활용하여 짧은 시간에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습득한다. 기존의 서책형 자료를 통해서는 단편적인 지식만 쌓을 수 있을 뿐이지만, 영화 매체의 특성을 활용하면 생생한 시청각 체험을 바탕으로 한국에 관한 이해가 더 깊고 넓어질 수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여러 영화 중에서도 ‘한국고전영화’를 소재로 삼았다. 고전영화는 현대영화보다 한국의 사회, 역사, 문화를 더 잘 반영하고 있으며, 미학적으로도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영화를 수집, 보존하는 공공기관인 한국영상자료원의 유튜브 채널 ‘한국고전영화’(https://www.youtube.com/@KoreanFilm)에 올라와 있는 작품만을 활용하였다. 해외에 있는 교수자가 영화 파일이나 DVD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영어 자막이 달려있고 언제 어디서나 무료로 볼 수 있는 위 채널은 좋은 교육 콘텐츠가 된다.
한국영상자료원 채널에 올라와 있는 200여 편의 영화 중에서 책에 실을 만한 작품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왕정 독재국가인 UAE의 특성을 고려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박종원, 1992)과 같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가 담긴 영화는 우선 제외하였으며, 전체관람가로 설정되어 있으나 이슬람 국가에서 시청하기 부적절한 영화도 추려내었다. 그리하여 판소리에서 유래된 <성춘향>(신상옥, 1961)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의 아픔을 그린 <족보>(임권택, 1978)를 거쳐, 한국 IT 산업의 발전상을 담은 <장남>(이두용, 1984)까지, 10편의 고전영화가 리스트에 올랐다. 집필자들은 각 장의 도입부에서 이 작품이 한국영화사 안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서술한 후, 영화 속에 담긴 한국적 요소들을 스크린샷과 함께 설명하였고, 마지막에는 관련 여행 정보도 짧게 추가했다. 이렇게 조선시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의 주요 역사를 관통하면서, 사회문화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의 원고가 완성되었다.
UAE는 영어와 아랍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다. 따라서 교재의 절반은 영어, 절반은 아랍어인 듀얼북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영어 번역은 한국인-영국인 국제 커플인 한글학교 교사 부부가 적은 비용으로 맡아주었으나, 아랍어 번역은 적임자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통번역학과 김수완 교수가 근작 『종교 너머 도시』(쑬딴스북, 2023) 북토크를 위해 UAE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행사장에서 그와의 개인 면담이 성사되어,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를 번역가로 소개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영어와 아랍어 원고가 완성된 후, 북 디자인을 할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아랍어는 한글과 반대 방향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쓰기를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디자인 프로그램으로는 작업이 불가능했다. 난감해하던 와중 주빈국이 한국이었던 ‘2023 샤르자국제도서전’에서 얻은 책자가 떠올랐다. 당시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영어-아랍어 듀얼북을 제작해 배포했었는데, 그 책을 만든 분을 섭외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문학번역원 국제교류팀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했고, 그때와 같은 북 디자이너가 ‘영화로 배우는 한국’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왕정국가인 UAE는 언론·출판의 자유가 헌법상 보장되어 있지 않아서, 문화부 미디어 위원회(Media Council)의 인쇄 허가서를 받아야 책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 전에는 한국인 중 누구도 현지에서 출판을 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그 절차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문화부를 직접 방문해 직원과 상담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모든 검열은 E-service로 진행되며, 인쇄 신청서와 함께 책의 PDF를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말한 대로 온라인 접수를 하고 일주일 후, 다행히도 인쇄 허가서가 발급되었다. 믿을 만한 인쇄소를 찾는 것도 중요했는데, 평소 자주 방문하던 미술관 421 Art Campus에서 전시 도록을 늘 영어-아랍어 듀얼북으로 제작하는 걸 눈여겨보았었다. 도록에 나와 있는 인쇄소를 직접 방문해 보니, 규모도 크고 담당자도 신뢰가 가서, 그곳에서 책을 발행하기로 하였다.
힘들고 긴 여정 끝에 마침내 700권의 책이 완성되었고, 배포하는 일만 남았다. 렙튼스쿨(Repton School) 등의 국제학교와 아부다비 칼리파 파크 도서관(Khalifa Park Library), 샤르자 지혜의 집(House of Wisdom) 등 주요 도서관에는 직접 방문하여 책을 기증하였다. 그리고 두바이와 아부다비 세종학당에도 찾아가 한국어를 공부하는 현지인들에게 책을 나누어주고, 강사분께도 활용해달라고 부탁드렸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이벤트는 ‘UAE 한국영화제’다. 책이 발행되고 얼마 후, 한국문화원 주최로 ‘UAE 한국영화제’가 열렸다.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직접 책자를 배포하기로 협의하고 영화제에 참석했다. 많은 외국인이 기쁘게 책을 받아 갔고, 그들의 이름을 한글로 써주며 약식 사인회도 가질 수 있었다. ‘영화로 배우는 한국’이라는 프로젝트에 딱 어울리는 행사였다.
UAE에도 한류가 불면서 아랍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랍어로 출판된 한국 관련 책은 한국어 학습 교재 혹은 문학 작품 몇 권뿐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된 『영화로 배우는 한국, Understanding Korea through Film』(김도연, 이영숙, 정미정, 김나영 공저)은 ‘영화’라는 창을 통해 한국의 역사, 사회, 문화 전반을 설명하는 최초의 아랍어 책이다. 프로젝트를 지원해 준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감사하며, 이 책을 통해 많은 외국인이 한국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기를, 그리고 ‘한국고전영화’라는 새로운 K-콘텐츠에 입문할 수 있기를 바란다.
